동양고전종합DB

孝經注疏

효경주소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효경주소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子曰 孝子之喪親也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효자가 어버이 을 당해서는
[注]生事已畢이나 死事未見이라 故發此事
살아계실 때 모시는 〈는〉 이미 다 서술하였으나 돌아가신 뒤에 모시는 〈도리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 〈장의〉 일을 꺼낸 것이다.
哭不偯하며
을 길게 빼지 않으며,
[注]氣竭而息하야 聲不委曲이라
숨기운이 다하면 멈추어서 소리가 〈길게 남아〉 구불거리지 않는다.
禮無容하며
를 행할 때 의용儀容을 갖추지 않으며,
[注]無容이라
이마를 땅에 부딪치며 〈슬픔을 그대로 드러낼 뿐〉 의용을 갖추지 않는다.
言不文하며
말을 할 때는 문식文飾하지 않으며,
[注]不爲文飾이라
문식文飾하지 않는다.
服美不安하며
아름다운 옷을 입어도 편안하지 않으며,
[注]不安美飾이라 故服縗麻
아름다운 장식이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삼베로 된 상복을 입는다.
聞樂不樂하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注]悲哀在心이라 故不樂也
슬픔이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즐겁지 않다.
食旨不甘하나니
맛난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않으니,
[注]旨 美也 不甘美味 故蔬食水飮이라
(맛난 음식)이다. 맛있는 음식이 달지 않기 때문에 거친 밥을 먹고 맹물을 마신다.
此哀戚之情也니라
이것이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는 〈자식의 지극한〉 감정이다.
[注]謂上六句
앞의 여섯 구를 일컫는다.
三日而食 敎民無以死傷하고 毁不滅性이니 此聖人之政也니라
3일 만에 먹는 것은 백성에게 죽은 사람 때문에 산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고 몸이 야위더라도 생명生命하는 〈지경에는 이르지〉 말도록 가르친 것이니, 이것이 성인聖人정사政事이다.
[注]不食三日하고 哀毁過情하야 滅性而死 皆虧孝道 故聖人制禮施敎하야 不令至於殞滅이라
3일 동안 먹지 않고 슬픔이 지나쳐 건강을 상한 나머지 생명을 하여 죽게 된다면 이는 모두 의 도리를 손상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聖人이 예법을 제정하고 가르침을 베풀어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하였다.
喪不過三年 示民有終也
상기喪期가 3년을 넘지 않는 것은 백성에게 끝〈내는 기한〉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注]三年之喪 天下達禮 使不肖企及하고 賢者俯從이라 夫孝子有終身之憂 聖人以三年爲制者 使人知有終竟之限也
삼년상三年喪천하天下의 공통적인 이니, 불초不肖한 자는 발돋움하여[] 도달하게 하고 어진 자는 감정을 억제하여[] 따르게 한 것이다. 효자(부모상을 당한 자식)에게는 필생畢生의 근심이 있으니, 성인聖人이 3년으로 제도를 정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끝내는 기한이 있음을 알게 한 것이다.
[疏]‘子曰’至‘終也’
의 [자왈子曰]부터 [종야終也]까지
○正義曰:此夫子述喪親之義. 言孝子之喪親, 哭以氣竭而止, 不有餘偯之聲, 擧措進退之禮, 無趨翔之容,
정의왈正義曰:이는 부자夫子(공자孔子)가, 효자가 어버이 을 치루는 도리를 서술한 것이다. ‘효자가 어버이 상을 당했을 때, 은 숨기운이 다하면 멈추어서 뒤에 남아 길게 늘어지는 소리가 있지 않고, 몸을 움직이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등 〈를 행할 때〉는 추창趨蹌(공손하게 종종걸음으로 걸어감)하는 모습이 없으며,
有事應言, 則言不爲文飾, 服美不以爲安, 聞樂不以爲樂, 假食美味, 不以爲甘. 此上六事, 皆哀慼之情也.
일이 있어 말을 해야 할 때면 말을 문식文飾하지 않고, 좋은 옷을 입어도 편안하지 않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을 구해 먹어도 달지 않다. 이상의 여섯 가지 일이 모두 비통한 심정 때문이다.
三日而食者, 聖人設敎, 無以親死, 多日不食, 傷及生人,
3일 만에 음식을 먹는 것은, 성인聖人이 가르침을 베풀어 어버이의 죽음 때문에 여러 날 먹지 않아 산 사람까지 상하게 하는 일이 없게 하고,
雖卽毁瘠, 不令至於殞滅性命, 此聖人所制喪禮之政也. 又服喪不過三年, 示民有終畢之也.
비록 몸이 야위더라도 생명을 죽이는 데에는 이르지 않도록 한 것이니, 이것이 성인聖人이 제정한 상례喪禮의 규칙[]이다. 또 상복 입는 기간이 3년을 넘지 않는 것은 백성들에게 〈을〉 끝내는 기한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라는 말이다.
[疏]○注‘生事’至‘此事’
의 [생사生事]부터 [차사此事]까지
○正義曰:此依鄭注也. 生事謂上十七章說. 生事之禮已畢, 其死事經則未見, 故又發此章以言也.
정의왈正義曰:이는 정현의 를 따른 것이다. 살아계실 때 모시는 는 앞의 17개 의 내용을 말한다. 살아계실 때 모시는 는 이미 다 서술하였으나 돌아가신 뒤에 모시는 도리는 경문經文에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또 이 을 꺼내어 말한 것이다.
[疏]○注‘氣竭’至‘委曲’
의 [기갈氣竭]부터 [위곡委曲]까지
○正義曰:此依鄭注也. 禮記間傳曰 “斬衰之哭, 若往而不反. 齊衰之哭, 若往而反.”
정의왈正義曰:이는 정현의 를 따른 것이다. ≪예기禮記≫ 〈간전間傳〉에 “참최斬衰를 입는 사람(아버지 상을 당한 사람)의 은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과 같고, 자최齊衰를 입는 사람(어머니 상을 당한 사람)의 은 갔다가 돌아오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此注據斬衰而言之, 是氣竭而後止息. 又曰 “大功之哭, 三曲而偯.”
참최斬衰를 기준으로 말한 것으로, 숨기운이 다한 뒤에 멈춘다는 말이다. 〈〈간전間傳〉에〉 또 “대공복大功服을 입는 사람의 은 세 번 꺾으며 길게 뺀다.”라고 하였는데,
鄭注云 “三曲, 一擧聲而三折也. 偯, 聲餘從容也.” 是偯爲聲餘委曲也. 斬衰則不偯, 故云“聲不委曲”也.
정현의 에 “세 번 꺾는 것은 소리를 한 번 시작하여 세 번 꺾는 것이고, 길게 뺀다는 것은 소리가 남아 여운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길게 뺀다[]는 것은 소리가 남아 구불거리는 것이다. 참최를 입는 사람〈의 곡〉은 길게 빼지[] 않기 때문에 ‘소리가 〈길게 남아〉 구불거리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觸地無容’
의 [촉지무용觸地無容]
○正義曰:此禮記問喪之文也. 以其, 所以稽顙觸地無容, 哀之至也.
정의왈正義曰:이는 ≪예기禮記≫ 〈문상問喪〉의 문장이다. 슬픔이 마음에 있으므로 모습이 외면에서 변한다. 이 때문에 이마를 땅에 부딪칠 뿐 의용儀容을 갖추지 않는 것이니, 슬픔이 지극한 것이다.
[疏]○注‘不爲文飾’
의 [부위문식不爲文飾]
○正義曰:案喪服四制云 “三年之喪, 君不言.” 又云 “不言而事行者, 扶而起, 言而后事行者, 杖而起.”
정의왈正義曰:살펴보건대 ≪예기禮記≫ 〈상복사제喪服四制〉에 “삼년상 중에 임금은 말하지 않는다.”라고 하고, 또 “말하지 않고도 일이 행해지는 사람은 부축을 받아 일어서고, 말한 뒤에야 일이 행해지는 사람은 상장喪杖을 짚고 일어선다.”라고 하였는데,
鄭玄云 “扶而起, 謂天子諸侯也. 杖而起, 謂大夫士也.”
정현이 “부축을 받아 일어서는 사람은 천자와 제후를 일컫고, 상장喪杖을 짚고 일어서는 사람은 대부와 를 일컫는다.”라고 하였다.
今此經云 “言不文”, 則是謂臣下也. 雖則有言, 志在哀慼, 不爲文飾也.
지금 이 경문에 “말을 할 때는 문식文飾하지 않으며”라고 한 것은 신하를 일컬은 말이다. 비록 말을 하기는 하나 마음이 슬픔에 있기 때문에 문식하지 않는 것이다.
[疏]○注‘不安’至‘縗麻’
의 [불안不安]부터 [최마縗麻]까지
○正義曰:案論語孔子責宰我云 “食夫稻, 衣夫錦, 於汝安乎.” 美飾謂錦繡之類也. 故禮記問喪云 “身不安美”, 是也.
정의왈正義曰:살펴보건대 ≪논어論語≫에서 공자孔子재아宰我를 꾸짖기를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네 마음에 편안하더냐?”라고 하였으니, 아름다운 장식은 비단에 수놓은 것 따위를 일컫는다. ≪예기禮記≫ 〈문상問喪〉에 “아름다운 옷이 몸에 편안하지 않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孝子喪親, 心如斬截, 爲其不安美飾. 故聖人制禮, 令服縗麻. , 當心麄布, 長六寸, 廣四寸.
효자가 어버이 상을 당하면 마음이 끊어지는 듯하여 아름다운 꾸밈이 편안하지 않다. 이 때문에 성인聖人이 예법을 제정하여 최마縗麻를 입게 하였다. 는 가슴 앞에 댄 거친 베로, 길이가 6치, 너비가 4치이다.
麻爲腰絰‧首絰, 俱以麻爲之. 縗之言摧也, 絰之言實也. 孝子服之, 明其心實摧痛也.
요질腰絰수질首絰로, 모두 삼[]으로 만든다. ‘’의 뜻은 (꺾임, 부서짐)이고 ‘’의 뜻은 (실제)이니, 효자가 이를 착용하는 것은 그 마음이 실제로 부서질 듯이 아픔을 표명하는 것이다.
위소韋昭가 ≪상서尙書≫를 인용하기를 “성왕成王이 죽자 강왕康王면복冕服 차림으로 즉위하고 일이 끝난 다음 도로 상복喪服을 입었다.”라고 하였다.
據此則天子諸侯, 但初喪, 是皆服美, 故宜不安也.
이에 따르면 천자와 제후가 다만 을 막 당하여 왕위王位를 확정할 때 모두 아름다운 복장을 입는다. 이 때문에 당연히 편안하지 않은 것이다.
[疏]○注‘悲哀’至‘樂也’
의 [비애悲哀]부터 [악야樂也]까지
○正義曰:此依鄭注也. 言至痛中發, 悲哀在心, 雖聞樂聲, 不爲樂也.
정의왈正義曰:이는 정현의 를 따른 것이다. ‘지극한 비통悲痛이 안에서 발현되어 슬픔이 마음에 있기 때문에 음악 소리를 들어도 즐겁지 않다.’라는 말이다.
[疏]○注‘旨美’至‘水飮’
의 [지미旨美]부터 [수음水飮]까지
○正義曰:“旨 美”, 經傳常訓也. 嚴植之曰 “美食, 人之所甘. 孝子不以爲甘, 故問喪云 ‘口不甘味.’ 是不甘美味也.
정의왈正義曰:[지 미旨 美] 경전經傳에서 일반적인 풀이이다. 엄식지嚴植之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맛있는 음식은 사람들이 달게 먹는 것이지만 효자는 달게 느끼지 못한다. 이 때문에 ≪예기禮記≫ 〈문상問喪〉에 ‘맛난 음식이 입에 달지 않고’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에〉 ‘맛난 음식이 달지 않다.’라고 한 것이다.
間傳曰 ‘父母之喪旣殯, 食粥. 旣虞‧卒哭, 疏食水飮, 不食菜果.’ 是疏食水飮也.”
예기禮記≫ 〈간전間傳〉에 ‘부모의 초빈草殯을 하고 나서 을 먹고, 우제虞祭졸곡제卒哭祭를 지내고 나서 거친 밥을 먹고 맹물을 마실 뿐 채소와 과일은 먹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에〉 ‘거친 밥을 먹고 맹물을 마신다.’라고 한 것이다.”
韋昭引曲禮云 “‘有疾則飮酒食肉’, 是爲食旨, 故宜不甘也.”
위소韋昭는 ≪예기禮記≫ 〈곡례曲禮〉를 인용하여 “〈〈곡례〉에〉 ‘〈거상居喪 중에도〉 질병이 있으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거상 중에〉 맛난 음식을 먹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당연히 달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疏]○注‘不食’至‘殞滅’
의 [불식不食]부터 [운멸殞滅]까지
○正義曰:經云“三日而食, 毁不滅性”, 注言“不食三日”卽三日不食也.
정의왈正義曰경문經文에 “3일 만에 먹는 것은 몸이 야위더라도 생명生命하는 〈지경에는 이르지〉 말도록 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에 ‘부식삼일不食三日’이라고 한 것은 곧 3일 동안 먹지 않는 것이다.
云“哀毁過情”者, 是毁瘠過度也. 言三日不食及毁瘠過度, 因此二者, 有致危亡, 皆虧孝行之道.
[애훼과정哀毁過情] 이는 지나치게 야위는 것이다. ‘3일 동안 먹지 않는 것과 지나치게 야위는 것, 이 두 가지로 인해 죽을 지경에 이른다면 이는 모두 효행을 훼손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禮記問喪云 “親始死, 傷腎乾肝焦肺, 水漿不入口三日.”
예기禮記≫ 〈문상問喪〉에 “어버이가 막 돌아가시면 신장腎臟이 손상되고 간장肝臟이 마르고 폐장肺臟이 타들어가 3일 동안 국물조차 입으로 삼키지 못한다.”라고 하였고,
又間傳稱 “斬衰三日不食.” 此云“三日而食”者何. 劉炫言 “三日之後乃食, 皆謂滿三日則食也.”
또 ≪예기禮記≫ 〈간전間傳〉에 “참최斬衰를 입는 사람(아버지 상을 당한 사람)은 3일 동안 먹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3일 만에 먹는 것은”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유현劉炫이 말하기를 “3일 뒤에 비로소 먹는 것이니, 모두 滿 3일이 되면 먹는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云“故聖人制禮施敎 不令至於殞滅”者, 曲禮云 “居喪之禮, 毁瘠不形”, 又曰 “不勝喪, 乃比於不慈不孝”, 是也.
[고성인제례시교 부령지어운멸故聖人制禮施敎 不令至於殞滅] ≪예기禮記≫ 〈곡례曲禮〉의 “거상居喪하는 예법은, 야위더라도 뼈가 드러나게까지는 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또 “상사喪事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건강을 손상하는 데에 이른다면〉 이는 〈자손에게〉 자애롭지 못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에 비견된다.”라는 말이 이것이다.
[疏]○注‘三年’至‘限也’
의 [삼년三年]부터 [한야限也]까지
○正義曰:云“三年之喪 天下達禮”者, 此依鄭注也. 禮記三年問云 “夫三年之喪, 天下之達喪也.”
정의왈正義曰:[삼년지상 천하달례三年之喪 天下達禮] 이는 정현의 를 따른 것이다. ≪예기禮記≫ 〈삼년문三年問〉에 “〈부모에 대한〉 삼년상은 천하의 공통적인[] 이다.”라고 하였는데,
鄭玄云 “達謂自天子至於庶人.” 注與彼同, 唯改喪爲禮耳.
정현鄭玄이 “공통적[]이라는 것은 천자天子부터 서인庶人까지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효경≫의 이〉 는 저것(〈삼년문三年問〉의 말)과 같으니, 다만 ‘’을 ‘’로 고쳤을 뿐이다.
云“使不肖企及 賢者俯從”者, 案喪服四制曰 “此喪之所以三年, 賢者不得過, 不肖者不得不及.”
[사부초기급 현자부종使不肖企及 賢者俯從] 살펴보건대 ≪예기禮記≫ 〈상복사제喪服四制〉에 “이 때문에 부모 을 3년으로 정하여, 어진 자는 넘지 못하게 하고, 불초不肖한 자는 도달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라고 하였고,
檀弓曰 “先王制禮也, 過之者俯而就之, 不至焉者跂而及之”也. 注引彼二文, 欲擧中爲節也. 起踵曰企, 俛首曰俯.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선왕先王를 제정한 뜻은, 〈슬픔이〉 지나친 자는 감정을 억제하여[] 에 맞게 하고 못 미치는 자는 발돋움하여[] 도달하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효경≫의 이〉 는 저 두 곳의 문장을 인용한 것으로, ‘중간을 들어 절도節度로 삼고자 했다.’〈라는 뜻이다.〉 발꿈치를 드는 것을 라고 하고 머리를 숙이는 것을 라고 한다.
云“夫孝子有終身之憂 聖人以三年爲制”者, 聖人雖以三年爲文, 其實二十五月而畢.
[부효자유종신지우 성인이삼년위제夫孝子有終身之憂 聖人以三年爲制] 성인聖人이 비록 3년이라고 글을 쓰긴 했지만, 실은 25개월 만에 끝난다.
故三年問云 “將脩飾之君子與, 則三年之喪, 二十五月而畢, 若駟之過隙, 然而遂之,
이 때문에 〈삼년문〉에 “만약 저 몸을 잘 수양한 군자를 따르자면, 〈그들은〉 삼년상이 25개월 만에 끝나는 것을 마치 사마駟馬가 작은 틈을 지나는 것처럼 순식간으로 여긴다.
則是無窮也. 故先王焉爲之立中制節, 壹使足以成文理, 則釋之矣”, 是也.
그러하니 〈그들의 슬픔을〉 온전히 펴려 한다면 끝이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선왕先王이 알맞은 제도를 세워, 한결같이 문리文理(예의禮儀)를 충분히 이루면 탈상脫喪할 수 있도록 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喪服四制曰 “始死, 三日不怠, 三月不解, 期悲哀, 三年憂, 恩之殺也.”
〈상복사제〉에 “〈부모가〉 처음 돌아가신 뒤에 3일 동안 〈을〉 게을리하지 않고, 3개월 동안 〈하며 올리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1년 동안 슬퍼하고, 3년 동안 근심하는 것은 은정恩情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줄어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공자孔子가 “자식이 태어나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므로 〈부모에 대한〉 삼년상은 천하에 공통적인 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부모에 대한〉 은 반드시 3년을 예제禮制로 삼는다.
역주
역주1 觸地 : 搶地(이마를 땅에 부딪치다. 비탄에 잠기다)와 같은 말이다.
역주2 : 고문본에는 이 뒤에 ‘也’ 1자가 더 있다.
역주3 (終)[限] : 저본에는 ‘終’으로 되어 있으나, 閩本‧監本‧毛本에 의거하여 ‘限’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4 悲哀在心 故形變於外 : ≪禮記≫ 〈問喪〉의 “夫悲哀在中 故形變於外也”를 원용한 표현이다.
역주5 [縗] : 저본에는 ‘縗’가 없으나, 뒤에 이어진 내용이 ‘縗’와 ‘麻’를 각각 설명한 것이며, ‘麻’에 대한 설명 앞에 ‘麻’라는 주제어가 제시된 예에 따라 ‘縗’를 보충하였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6 成王旣崩……反喪服 : ≪尙書≫ 〈顧命〉과 〈康王之誥〉의 내용을 요약 인용한 것이다.
역주7 (位定)[定位] : 저본에는 ‘位’가 ‘定’ 앞에 있으나, 閔本‧監本‧毛本에 의거하여 두 글자의 순서를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8 (申天)[由夫] : 저본에는 ‘申天’으로 되어 있으나, 閔本‧監本‧毛本 및 ≪禮記≫ 〈三年問〉에 의거하여 ‘由夫’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9 子生三年……天下之達喪也 : ≪論語≫ 〈陽貨〉에 보인다. 통행본 ≪논어≫에는 ‘達’이 ‘通’으로 되어 있다.

효경주소 책은 2019.11.0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