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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經注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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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昔者 明王之以孝治天下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영명한 제왕이 로 천하를 다스릴 적에
[注]言先代聖明之王 以至德要道化人하니 是爲孝
‘선대의 성스럽고 영명한 제왕이 지극한 덕과 간요簡要로 백성을 교화했으니, 이것이 로 다스리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不敢遺小國之臣이온 而況於公侯伯子男乎
감히 작은 나라〈에서 온〉 신하도 소홀히 하여 잊지 않았는데 하물며 이겠는가.
[注]小國之臣 至卑者耳로되 主尙接之以禮 況於五等諸侯 是廣敬也
작은 나라〈에서 온〉 신하는 지극히 낮은 사람일 뿐인데도 군주君主로 대우했는데 하물며 다섯 등급의 제후이겠는가. 이것이 널리 공경하는 것이다.
故得萬國之하야 以事其先王하니라
그래서 만국萬國의 환심을 얻어 그 선왕先王(천자의 조상)을 섬겼다.
[注]萬國 擧其多也 言行孝道하야 以理天下하야 皆得歡心하니 則各以其職來助祭也
만국萬國은 많은 수를 든 것이다. ‘효도를 행함으로써 천하를 다스려 〈천하의〉 모든 〈사람들에게〉 환심을 얻게 되자 〈천하 사람들이〉 각기 저마다 맡은 공물貢物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도왔다.’라는 말이다.
[疏]‘子曰’至‘先王’
의 [자왈子曰]부터 [선왕先王]까지
○正義曰:此章之首, 稱“子曰”者, 爲事訖, 更別起端首故也.
정의왈正義曰:이 의 처음에 ‘자왈子曰’이라고 한 것은 〈말하던〉 일이 끝나고 나서 다시 〈다른 말의〉 첫머리를 따로 일으켰기 때문이다.
言昔者聖明之王, 能以孝道治於天下, 大敎接物, 故不敢遺小國之臣, 而況於五等之君乎. 言必禮敬之.
‘옛날에 성스럽고 영명한 제왕이 효도로 천하를 다스려, 타인을 대우하는 도리를 중요하게 가르쳤다. 이 때문에 감히 작은 나라〈에서 온〉 신하도 소홀히 하여 잊지 않았는데 하물며 다섯 등급 제후국의 임금이겠는가.’라고 했으니, 반드시 예우하고 공경했다는 말이다.
明王能如此, 故得萬國之懽心, 謂各脩其德, 盡其懽心而來助祭, 以事其先王.
‘영명한 제왕은 이와 같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만국의 환심을 얻었다.’라는 것은, ‘〈영명한 제왕들이〉 각기 자신의 을 닦아 만국의 환심을 다 얻게 되자 〈만국이〉 와서 제사를 도와 그 선왕을 섬겼다.’라는 말이다.
經“先王”有六焉, 一曰“先王有至德”, 二曰“非先王之法服”, 三曰“非先王之法言”, 四曰“非先王之德行”,
효경孝經≫에 ‘선왕先王’이 여섯 번 나온다. 첫째는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의〉 “선왕先王들은 지극한 이 있으시어”, 둘째는 〈〈경대부장卿大夫章〉의〉 “선왕先王법복法服이 아니면”, 셋째는 “선왕先王법언法言이 아니면”, 넷째는 “선왕先王덕행德行이 아니면”,
五曰“先王見敎之”, 此皆指先代行孝之王. 此章云“以事其先王”, 則指行孝王之.
다섯째는 〈〈삼재장三才章〉의〉 “선왕先王이 〈천지의 밝음과 이로움을 본받은〉 교화敎化〈로 백성을 감화시킬 수 있음을〉 보았다.”이다. 이 경우에 〈선왕은〉 모두 선대先代에 효를 행한 임금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이 장에서 “그 선왕先王을 섬겼다.”라고 했을 〈때 선왕〉은 효를 행한 임금의 선조를 가리킨다.
[疏]○注‘言先’至‘孝理’
의 [언선言先]부터 [효리孝理]까지
○正義曰:此釋“孝治”之義也. 國語云 “古曰在昔, 曰先民.” 尙書洪範云 “睿作聖.”
정의왈正義曰:이는 ‘효치孝治’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국어國語≫에 “옛날을 일컬어 ‘예전에[재석在昔]’라고 하고, 옛 〈백성을〉 일컬어 ‘선대先代의 백성[선민先民]’이라고 하였다.” 하였고, ≪상서尙書≫ 〈홍범洪範〉에 “〈지혜가〉 밝아 〈미묘한 것까지 환히〉 아는 것이 이다.”라고 하였으며,
左傳 “.” “昔者”非當時代之名, “明王”則聖王之稱也, 是汎指前代聖王之有德者.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사방四方을 비추는 것을 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곧〉 ‘옛날에’는 당대當代가 아님을 표현한 말이고, ‘영명한 제왕’은 성스러운 임금을 칭한 것이다. 이는 전대前代의 성스러운 임금들 중 이 있는 사람을 널리 가리킨 것이다.
經言“明王”, 還指首章之“先王”也. 以代言之, 謂之先王, 以聖明言之, 則爲明王. 事義相同, 故注以至德要道釋之.
경문經文에 말한 ‘영명한 제왕’은 첫 장의 ‘선왕先王’을 다시 가리킨 것이다. 시대를 가지고 말할 때는 ‘선왕先王’이라 일컫고, 성스럽고 영명함을 가지고 말할 때는 ‘영명한 제왕[명왕明王]’이라고 한다. 〈두 에서 말한〉 일의 내용이 서로 같기 때문에 〈이 의〉 에서 〈첫 에서 말한〉 ‘지극한 덕과 간요簡要로 풀이한 것이다.
[疏]○注‘小國’至‘敬也’
의 [소국小國]부터 [경야敬也]까지
○正義曰:此依王注義也. 五等諸侯則公‧侯‧伯‧子‧男. 舊解云 “公者, 正也, 言正行其事. 侯者, 候也, 言斥候而服事.
정의왈正義曰:이는 왕숙 주王肅 注의 내용을 따른 것이다. 다섯 등급의 제후는 이다. 옛 풀이에 “(바름)이니, 일을 바르게 행한다는 말이다. (살핌)이니, 살펴서 일에 복무한다는 말이다.
伯者, 長也, 爲一國之長也. 子者, 字也, 言字愛於小人也. 男者, 任也, 言任王之職事也. 爵則上皆勝下, 若行事, 亦互相通.”
(으뜸)이니, 한 나라의 으뜸이다. (사랑함)이니,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맡음)이니, 임금의 직무를 맡는다는 말이다. 작위로는 윗등급이 모두 아래 등급보다 우월하나 일을 수행하는 것으로 말하면 서로 통한다.”라고 하였다.
舜典曰 “輯五瑞.” 孔安國曰 “舜斂公‧侯‧伯‧子‧男之瑞圭璧.” 斯則堯舜之代, 已有五等諸侯也.
상서尙書≫ 〈순전舜典〉에 “다섯 가지 서옥瑞玉(부신용符信用 홀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옥, 또는 그 옥으로 만든 홀)을 모으시니”라고 하였는데, 공안국의 에 “임금이 의 서옥으로 된 을 거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요순시대에 이미 다섯 등급의 제후가 있었던 것인데,
論語云 “殷因於夏禮, 周因於殷禮.” 案尙書武成篇云 “列爵惟五, 分土惟三.”
≪논어≫에 “나라는 나라의 예법을 따랐고, 나라는 나라의 예법을 따랐으니”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상서尙書≫ 〈무성武成〉에 “작위를 다섯 가지로 나열하고, 땅을 세 가지로 나누어주며”라고 하였고,
鄭注王制云 “殷所因夏爵, 三等之制也. 是有公‧侯‧伯而無子‧男. 武王增之, 摠建五等.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대한 정현鄭玄의 주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라가 따른 나라의 작위는 세 등급의 제도였다. 여기에는 만 있고 은 없었다. 무왕武王이 등급 수를 늘려서 총 다섯 등급을 설치했다.
時九州界狹, 故土惟三等, 則王制云 ‘公‧侯方百里, 伯七十里, 子‧男五十里’.
당시는 구주九州(중국中國)의 영역이 좁았기 때문에 땅을 〈나누어 줄 때〉 세 등급만 있었으니, 곧 〈왕제〉에 ‘는 사방 100리, 은 70리, 은 50리’라고 한 것이다.
至周公攝政, 斥大九州之界, 增諸侯之大者地方五百里, 侯四百里, 伯三百里, 子二百里, 男百里.”
주공周公섭정攝政함에 이르러 구주九州의 영역을 확장하여 제후국 중 큰 나라의 땅은 사방 500리, 는 400리, 은 300리, 는 200리, 은 100리로 늘려주었다.”
然據鄭玄, 夏‧殷不建子‧男, 武王復增之也. 案五等, 公爲上等, 侯‧伯爲次等,
그렇다면 정현鄭玄에 근거할 때, 나라와 나라는 을 설치하지 않았었는데 무왕武王증설增設한 것이다. 살펴보건대 다섯 등급 중 은 상위 등급, 은 다음 등급,
子‧男爲下等, 則小國之臣謂子‧男卿大夫. 況此諸侯則至卑也. 曲禮云 “.”
은 하위 등급이므로 ‘작은 나라〈에서 온〉 신하’는 대부大夫를 일컫는다. 하물며 이 제후()는 가장 낮은 작위임에랴.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열국列國대부大夫천자국天子國에 들어가면 〈천자국의 사람들이 그를〉 ‘아무 나라의 ’라고 부른다.”라고 하였다.
諸侯言列國者, 兼小大. 是小國之卿大夫有見天子之禮也. 言雖至卑, 盡來朝聘, 則天子以禮接之.
제후국을 열국列國이라 한 것은 크고 작은 나라를 겸하여 말한 것이다. 이는 작은 나라의 경‧대부가 천자를 뵙는 예가 있었던 것이다. ‘비록 지위가 지극히 낮더라도 모두 와서 조빙朝聘하면 천자가 그를 로 대우했다.’라는 말이다.
案周禮掌客云 “公饔餼九牢, 飱五牢, 侯‧伯饔餼七牢, 飱四牢, 子‧男饔餼五牢, 飧三牢, 三等.
살펴보건대 ≪주례周禮≫ 〈장객掌客〉에 “상공上公옹희饔餼(빈객에게 선물로 보내는 죽은 가축과 산 가축) 9(9가지 가축), (조례朝禮를 행하기 전에 빈객에게 간단히 대접하는 음식) 5이고, 은 옹희 7뢰, 손 4뢰이며, 은 옹희 5뢰, 손 3뢰로, 〈모두〉 세 등급이다.
其五等之介‧行人‧宰‧史, 皆有飱‧饔餼, 唯上介有禽.
다섯 등급 〈제후국〉의 행인行人에게도 모두 손과 옹희가 있는데, 오직 상개上介에게만 날짐승을 주고,
.” 是待諸侯及其臣之禮, 是皆廣敬之道也.
대부大夫 중에 특별히 와서 빙문聘問하는 자가 있으면 를 접대할 때와 같이 대우한다.”라고 하였다. 이는 제후와 그 신하를 대하는 예로, 이것이 모두 널리 공경하는 방도이다.
[疏]○注‘萬國’至‘祭也’
의 [만국萬國]부터 [제야祭也]까지
○正義曰:云“萬國 擧其多也”者, 此依魏注也. 詩‧書之言萬國者多矣, 亦猶言萬方.
정의왈正義曰:[만국 거기다야萬國 擧其多也] 이는 위진극魏眞克를 따른 것이다. ≪시경≫과 ≪상서≫에 ‘만국萬國’을 말한 곳이 많은데, ‘만방萬方’이라는 말과도 같다.
是擧多而言之, 不必數滿於萬也. 皇侃云 “春秋稱 ‘.’
이는 많음을 들어 말한 것이지, 가 반드시 1만에 차는 것이 아니다. 황간皇侃은 “≪춘추春秋≫에 ‘우왕禹王도산塗山에서 제후들을 회합會合할 때 옥백玉帛(신표로 제후가 잡는 과 제후의 세자世子가 잡는 )을 가지고 와서 바치는 나라가 만국萬國이었으니’라고 하였다.
言禹要服之內, 地方七千里, 而置九州, 九州之中, 有方百里‧七十里‧五十里之國, 計有萬國也.”
우왕은 요복要服(천자국의 오복五服 중 변경 바로 안쪽의, 두 번째로 먼 구역) 안의 땅 사방 7,000리에 구주九州를 두었는데, 구주九州 안에 사방 100리, 70리, 50리의 나라가 있어서 모두 헤아리면 만 개의 나라가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고,
因引王制“殷之諸侯有千七七十三國也”‧”, 所以證萬國爲夏法也.
이어서 ≪예기禮記≫ 〈왕제王制〉의 “나라의 제후로는 1,773개의 나라가 있었다.”라는 말과 ≪효경≫의 “나라의 제후로는 9,800개의 나라가 있다.”라는 말을 인용하였으니, 만 개의 나라가 나라의 법이었음을 증명하려 한 것이다.
信如此說, 則周頌云“綏萬邦”, 六月云“萬邦爲憲”, 豈周之代復有萬國乎. 今不取也.
참으로 이 말대로라면, ≪시경詩經≫ 〈주송 환周頌 桓〉에 “만방萬邦을 편안히 하시니”라고 한 것과 〈소아 유월小雅 六月〉에 “만방萬邦이 본보기로 삼도다.”라고 한 것이 어찌 주대周代에 또 만 개의 나라가 있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황간의 설은〉 지금 취하지 않는다.
云“言行孝道 以理天下 皆得懽心 則各以其職來助祭也”者, 言明王能以孝道理於天下, 則得諸侯之懽心, 以事其先王也.
[언행효도 이리천하言行孝道 以理天下 개득환심 즉각이기직래조제야皆得懽心 則各以其職來助祭也] ‘영명한 제왕이 효도孝道로 천하를 잘 다스리면 제후의 환심을 얻어 그 선왕先王을 섬길 수 있다.’라는 말이다.
“各以其職來祭”者, 謂天下諸侯各以其所職貢來助天子之祭也.
‘각기 저마다 맡은 공물貢物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도왔다.’라는 것은 ‘천하의 제후가 각기 자신이 맡은 공물貢物을 가지고 와서 천자의 제사를 도왔다.’는 말이다.
者, 禮器云 “大饗其王事與.” 注云 “盛其饌與貢, 謂祫祭先王.”
’〈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대향大饗은 아마도 왕자王者의 일일 것이다.”라고 한 데 대한 에 “〈대향大饗은〉 음식과 공물을 성대히 갖춘 〈제사이니〉 선왕先王에게 협제사[협제祫祭]를 지냄을 말한다.”라고 하였고,
又云 “三牲‧魚腊, 四海九州之美味也. 籩豆之薦, 四時之和氣也.” 注云 “此饌, 諸侯所獻.”
또 “세 가지 희생과 어포魚脯사해四海구주九州의 맛난 음식이고, 변두籩豆에 올리는 것은 사계절의 조화로운 기운이다.”라고 한 데 대한 에 “이 음식들은 제후들이 바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又云 “內金, 示和也.” 注云 “此所貢也, 內之庭實, 先設之. 從革, 性和, 荊‧楊二州貢金三品.”
또 “금속을 바치는 것은 화합의 뜻을 보이는 것이다.”라고 한 데 대한 에 “이는 공물로 바친 것이니, 정실庭實(사당 안 뜰에 진열해놓는 예물)로 바쳐 먼저 뜰에 늘어놓는다. 금속은 사람의 뜻대로 형상을 바꿀 수 있으므로 그 성질이 조화롭다. 형주荊州양주楊州에서 세 가지 금속(금‧은‧동)을 공물로 바친다.”라고 하였다.
又云 “束帛加璧, 尊德也.” 注云 “貢享所執致命者, 君子於玉比德焉.”
또 “속백束帛(다섯 필 한 묶음의 비단) 위에 을 올리는 것은 덕을 숭상하는 〈뜻을 보이는〉 것이다.”라고 한 데 대한 에 “〈은〉 공물을 바치거나 연향宴享할 때 잡고서 을 전하는 표신標信이다. 군자는 에다 자신의 을 비긴다.”라고 하였다.
又云 “龜爲前列, 先知也.” 注云 “龜知事情者, 陳於庭, 在前. 荊州納錫大龜.”
또 “귀갑龜甲(거북껍질)을 앞줄에 진열하는 것은 예지력이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라고 한 데 대한 에 “귀갑은 일의 실정을 아는 물건이므로 뜰에 진열할 때 앞줄에 놓는다. 형주荊州에서 큰 귀갑을 바친다.”라고 하였고,
又云 “金次之, 見情也.” 注云 “金炤物. 金有兩義, 先入後設.”
또 “금속을 그 다음에 진열하는 것은 진정眞情을 보이는 것이다.”라고 한 데 대한 에 “금속은 〈사물을〉 비출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금속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므로 〈사당에〉 들여오기는 먼저하고 진열은 뒤에 한다.”라고 하였다.
又云 “丹‧漆‧絲‧纊‧竹‧箭, 與衆共財也.” 注云 “萬民皆有此物.
또 “단사丹沙‧옻‧명주실‧목화솜‧크고 작은 대나무〈를 진열하는 것은 천자가〉 백성들과 재화財貨를 공유함을 보이는 것이다.”라고 한 데 대한 에 “만민萬民이 모두 이 물건들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荊州貢丹, 兗漆‧絲, 豫州貢纊, 楊州貢.”
형주荊州는 단사를 공물로 바치고, 연주兗州는 옻과 명주실을 공물로 바치고, 예주豫州는 목화솜을 공물로 바치고, 양주楊州는 크고 작은 대나무를 공물로 바친다.”라고 하였다.
又云 “其餘無常貨, 各以國之所有, 則致遠物也.” 注云 “其餘, 謂九州之外夷服‧鎭服‧蕃服之國.
또 “그 밖의 〈속국屬國〉은 공물로 바치는 일정한 재화財貨가 없고 각기 그 나라에 있는 것을 바치는데 이는 먼 곳의 물건을 불러들인다는 뜻을 보이는 것이다.”라고 한 데 대한 에 “‘그 밖’은 구주九州 바깥의 이복夷服진복鎭服번복蕃服의 나라를 일컫는다.
周禮 ‘九州之外, 謂之蕃國, 世一見, 各以其所貴寶爲贄.’ , 近之.”
주례周禮≫에 ‘구주九州 밖을 번국蕃國이라고 하는데, 한 왕대王代에 한 번 천자를 알현하고 각기 자기 나라의 귀중한 보물을 예물로 사용한다.’라고 하였는데, 주 목왕周 穆王견융犬戎을 정벌하여 흰 이리와 흰 사슴을 얻어 〈돌아온〉 일이 이와 유사한 사례이다.”라고 하였다.
大傳云 “遂率天下諸侯, 執豆籩, 駿奔走.” 又周頌曰 “駿奔走在廟.” 此皆助祭者也.
예기禮記≫ 〈대전大傳〉에 “마침내 천하의 제후들을 거느려 변두邊豆를 잡고 매우 분주하게 〈사당에서 선조에게 제사를 올렸다.〉”라고 하고, 또 ≪시경詩經≫ 〈주송 청묘周頌 淸廟〉에 “사당에 계신 신주神主를 매우 분주하게 받드나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모두 제사를 도운 것이다.
역주
역주1 : 經文의 ‘治’자를 받되, 唐 高宗 李治의 이름자를 피하여 ‘理’로 고쳐 쓴 것이다.
역주2 : 고문본에는 ‘歡’으로 되어 있다. 경문에 나오는 ‘懽’은 모두 마찬가지이다.
역주3 (考祖)[祖考] : 저본에는 ‘考祖’로 되어 있으나, 浦鏜의 ≪十三經注疏正字≫에 의거하여 ‘祖考’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4 [昔] : 저본에는 ‘昔’이 없으나, ≪國語≫ 〈魯語 下〉에 의거하여 ‘昔’을 보충하였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5 照臨四方曰明 : ≪春秋左氏傳≫ 昭公 28년조에 보인다.
역주6 列國之大夫……曰某士 : 제후국의 대부가 천자국을 聘問할 때 천자국 사람들이 그를 ‘아무 나라의 士’라고 칭한다는 말이다. 鄭玄의 注에 “예컨대 晉나라 韓起가 周나라를 聘問했을 때 인도하는 사람이 그를 ‘晉士 起’라고 칭하였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참고로, 천자국을 빙문한 제후국 대부가 스스로를 칭할 때는 ‘陪臣某’라고 한다.(≪禮記≫ 〈曲禮〉)
역주7 (王)[上] : 저본에는 ‘王’으로 되어 있으나, ≪周禮≫ 〈掌客〉에 의거하여 ‘上’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8 (獸)[獻] : 저본에는 ‘獸’로 되어 있으나, ≪周禮≫ 〈掌客〉에 의거하여 ‘獻’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9 [上]公饔餼九牢……則待之如其爲介時也 : ≪周禮≫ 〈掌客〉에서 발췌 인용한 것이다.
역주10 禹會諸侯於塗山 執玉帛者萬國 : ≪春秋左氏傳≫ 哀公 7년조에 보인다.
역주11 (伯)[百] : 저본에는 ‘伯’으로 되어 있으나, 閔本‧監本‧毛本 및 ≪禮記≫ 〈王制〉에 의거하여 ‘百’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2 孝經稱周諸侯有九千八百國 : 이 말과 달리 현행본 ≪효경≫에는 ‘周諸侯有九千八百國’이라는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역주13 [助] : 저본에는 ‘助’가 없으나, 해당 御注에 의거하여 ‘助’를 보충하였다.
역주14 : 浦鏜의 ≪十三經注疏正字≫에는 ‘知’로 교감했으나, 이 뒤에 열거된 사례들이 모두 職貢에 관한 것이므로 ‘職’이 되어야 할 듯하다.
역주15 (今)[金] : 저본에는 ‘今’으로 되어 있으나, ≪禮記≫ 〈禮器〉의 鄭玄 注에 의거하여 ‘金’으로 바로잡았다.(北京大 標點本 〈校勘記〉 참조)
역주16 (貢丹)[州貢] : 저본에는 ‘貢丹’으로 되어 있으나, 嘉靖本‧汲古閣本‧武英殿本에 의거하여 ‘州貢’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7 (蓧蕩)[篠簜] : 저본에는 ‘蓧(삼태기 조)蕩(쓸어버릴 탕)’으로 되어 있으나, 閔本‧毛本 및 ≪禮記≫ 〈禮器〉의 鄭玄 注에 의거하여 ‘篠(조릿대 소)簜(왕대 탕)’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8 周穆王征犬戎 得白狼白鹿 : ≪國語≫ 〈周語 上〉에 보이는 내용이다.

효경주소 책은 2019.11.0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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