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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經注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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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者 周公 祀后稷하야 以配天하고
옛날에 주공周公후직后稷에게 제사를 지내어 하늘에 배향하고
[注]后稷 周之始祖也 郊謂圜丘祀天也 周公攝政하고 因行郊天之祭할새 乃尊始祖以配之也
후직后稷나라의 시조始祖이다. 환구圜丘에서 하늘에 제사하는 것을 말한다. 주공周公섭정攝政하고 이로 인해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시조始祖를 높여 하늘에 배향하였다.
祀文王於明堂하야 以配上帝하니라
명당明堂에서 문왕文王에게 제사를 지내어 상제上帝에게 배향配享하였다.
[注]明堂 天子布政之宮也 周公 因祀五方上帝於明堂하야 乃尊文王以配之也
명당明堂천자天子가 정치를 펴는 궁전이다. 주공周公명당明堂에서 다섯 방위의 상제上帝에게 제사 지냄으로 인하여 문왕을 높여 배향하였다.
是以 四海之內 各以其職으로 하니
이 때문에 사해四海 안의 제후들이 각기 저마다 맡은 〈공물貢物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도왔으니
[注]君行嚴配之禮하니 則德敎刑於四海하야 海內諸侯 各脩其職하야 來助祭也
임금(황제)이 〈아버지를〉 존경하여 〈하늘에〉 배향하는 를 행하자, 덕교德敎사해四海에 모범이 되어 해내海內의 제후들이 저마다 맡은 〈공물貢物을〉 마련해 가지고 와서 제사를 도왔다.
夫聖人之德 又何以加於孝乎
성인聖人 중에 또 무엇이 보다 더하겠는가.
[注]言無大於孝者
보다 큰 것은 없다는 말이다.
[疏]‘昔者’至‘孝乎’
의 [석자昔者]부터 [효호孝乎]까지
○正義曰:前陳周公以父配天, 因言配天之事. 自昔武王旣崩, 成王年幼卽位, 周公攝政,
정의왈正義曰:앞에서 주공周公이 아버지를 하늘에 배향했음을 말했는데, 〈여기서는〉 이어서 〈아버지를〉 하늘에 배향한 일을 〈구체적으로〉 말하였다. 옛날에 무왕武王이 죽고 성왕成王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주공周公섭정攝政했는데,
因行郊天祭禮, 乃以始祖后稷配天而祀之. 因祀五方上帝於明堂之時, 乃尊其父文王, 以配而享之.
이로 인해 하늘에 제사 지내는 를 행하고 마침내 시조 후직始祖 后稷을 하늘에 짝하여 제사하였다. 이어서 명당에서 다섯 방위의 상제에게 제사 지낼 때 아버지 문왕文王을 높여서 배향하였다.
尊父祖以配天, 崇孝享以致敬. 是以四海之內有土之君, 各以其職貢, 來助祭也. 旣明聖治之義, 乃摠其意而答之也.
아버지와 시조를 높여 하늘에 배향함으로써 어버이에 대한 제사를 높여 공경을 다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사해四海 안에 영토가 있는 〈제후국의〉 임금들이 저마다 맡은 공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도왔다. 〈앞에서〉 ‘성인聖人이 다스리는[성치聖治]’ 도리를 밝혔는데, 〈여기서〉 마침내 그 내용을 총괄하여 대답하였다.
周公, 聖人, 首爲尊父配天之禮, 以極於孝敬之心. 則夫聖人之德, 又何以加於孝乎. 是言無以加也.
주공周公성인聖人인데, 아버지를 높여 하늘에 배향하는 를 맨 처음 행함으로써 효도와 공경의 마음을 지극히 폈다. 그렇다면 성인聖人 중에 또 무엇이 보다 더하겠는가. 이는 더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疏]○注‘后稷’至‘配之’
의 [후직后稷]부터 [배지配之]까지
○正義曰:云“后稷 周之始祖也”者, 案周本紀云 “后稷名棄, 其母有邰氏女, 曰.
정의왈正義曰:[후직 주지시조야后稷 周之始祖也] 살펴보건대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후직后稷은 이름이 이다. 어머니는 유태씨有邰氏의 딸로, 이름이 강원姜嫄이다.
爲帝嚳元妃, 出野見巨人跡, 心忻然, 欲踐之. 踐之而身動如孕者, 居期而生子.
그녀는 제곡帝嚳원비元妃인데, 야외에 나갔을 때 거인巨人의 발자국을 보고 기쁜 마음이 들어 밟고 싶어졌다. 발자국을 밟자 아기를 잉태한 것처럼 몸이 하더니 1년 뒤에 아들을 낳았다.
以爲不祥, 棄之隘巷, 馬牛過者皆辟不踐, 徙置之林中, 適會山林多人, 遷之, 而棄渠中氷上, 飛鳥以其翼覆薦之.
그녀는 불길하게 여겨 아기를 좁은 골목에 버렸으나, 지나가는 마소들이 모두 밟지 않고 피해 갔다. 아기를 숲속으로 옮겨 놓자, 마침 산림山林 속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아기를 숲 밖으로〉 옮겨주었고, 도랑의 얼음 위에 버리자 새가 날개로 덮어주고 깔아주었다.
姜嫄以爲神, 遂收養長之. 初欲棄之, 因名曰棄. 棄爲兒, 好種樹麻菽. 及爲成人, 遂好耕農.
강원姜嫄이 신묘하게 여겨 마침내 아기를 거두어 길렀는데, 처음에 버리려 했었기 때문에 이름을 ‘’라고 하였다. 는 아이 적에 참깨와 콩 심기를 좋아하더니, 성인成人이 되어서 결국 농사짓기를 좋아하였다.
임금이 그를 농사農師(농사를 관장하는 장관長官)로 삼자, 천하 사람들이 모두 이로움을 얻게 하는 공이 있었다. 임금이 ‘야,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 너를 후직后稷(농사 담당관)으로 삼았더니 때맞추어 온갖 곡식을 파종하〈는 방법을 가르쳐 그들을 구제하였〉다.’라고 하였다. 땅에 봉하고 후직后稷이라 불렀다.”
后稷曾孫公劉復脩其業. 自后稷至王季十五世而生文王, 受命作周.
후직의 증손 공류公劉가 다시 그 일을 수행하였다. 후직부터 왕계王季까지 15대가 지나 문왕文王을 낳았는데, 〈문왕이〉 천명天命을 받아 나라를 세웠다.
案毛詩大雅生民之序曰 “生民, 尊祖也. 后稷生於姜嫄, 文‧武之功起於后稷, 故推以配天焉”, 是也.
살펴보건대 ≪모시毛詩≫ 〈대아 생민大雅 生民〉의 소서小序에 “〈생민生民〉은 조상을 높이는 내용의 시이다. 후직은 강원에게서 태어났고, 문왕과 무왕의 공업功業은 후직에게서 일어났다. 이 때문에 〈후직을〉 추앙하여 하늘에 배향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郊謂圜丘祀天也”者, 此孔傳文. 祀, 祭也. 祭天謂之郊. 周禮大司樂云 “凡樂, 圜鍾爲宮, 黃鍾爲角,
[교위환구사천야郊謂圜丘祀天也] 이는 공안국 의 문장이다. 는 제사이다. 하늘에 제사하는 것을 라고 한다. ≪주례周禮≫ 〈대사악大司樂〉에 “모든 악무樂舞는, 환종圜鍾(12율려律呂 중 하나인 협종夾鍾)을 궁음宮音으로 삼고 황종黃鍾각음角音으로 삼고
大蔟爲徵, 爲羽. 雷鼓雷鼗, 孤竹之管, 雲和之琴瑟, 雲門之舞.
태족太蔟징음徵音으로 삼고 고선姑洗우음羽音으로 삼아서 뇌고雷鼓(팔면고八面鼓의 일종)와 뇌도雷鼗(자루 끝에 작은 북과 끈을 단 타악기)를 치고 하나의 대나무 운화산雲和山〈의 목재로 만든〉 을 연주하고 〈운문雲門〉 춤을 춘다.
冬日至, 於地上之圜丘奏之, 若樂六變, 則天神皆降, 可得而禮矣.”
동짓날에 지상地上환구圜丘(둥근 언덕)에서 악무를 연주한다. 악무가 여섯 번 바뀌면 천신天神이 모두 강림하여 를 올릴 수 있다.”라고 하였다.
郊特牲曰 “郊之祭也, , 大報天而主日也. 兆於南郊, 就陽位也.”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에는 “제사는 ‘〈장차〉 길어날 해’를 맞이하는 것으로, 하늘에 크게 보답하되 태양을 〈향사의〉 주신主神으로 삼는다. 도성 남쪽의 교외에 ‘제사하는 곳[]’을 정하여 의 방위로 나아간다.”라고 하고,
又曰 “郊之祭也, 大報本反始也.” 言以冬至之後, 日漸長, 郊祭而迎之. 是建子之月, 則與經俱郊祀於天. 明圜丘南郊也.
또 “제사는 하늘과 조상의 은혜를 잊지 않고 크게 보답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동지 뒤에 해(낮)가 점차 길어나므로 제사를 지내어 〈장차 길어날 해를〉 맞이한다.’는 말이다. 이는 북두칠성 자루가 자방子方을 가리키는 달(음력 11월)이 되면, 〈≪주례≫〉 경문과 함께 모두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 것이니, 환구圜丘가 도성 남쪽의 교외임이 분명하다.
云“周公攝政 因行郊天之祭 乃尊始祖以配之也”者, 案文王世子稱 “仲尼曰 ‘昔者周公攝政,
[주공섭정 인행교천지제周公攝政 因行郊天之祭 내존시조이배지야乃尊始祖以配之也] 살펴보건대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중니仲尼(공자孔子)가 ‘옛날에 주공周公이 섭정하여
而治, 抗世子法於伯禽, 所以善成王也’”, 則郊祀是周公攝政之時也.
천자의 자리에 〈잠시〉 올라 통치할 때 세자世子의 법도를 들어 백금伯禽에게 적용하였는데, 이는 성왕成王선도善導하려는 것이었다.’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주공이〉 제사를 지낸 것은 주공이 섭정할 때의 일이었다.
公羊傳曰 “郊則曷爲必祭稷. 王者必以其祖配. 王者則曷爲必以其祖配.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제사 때는 어째서 반드시 후직에게 제사하는가? 천자는 반드시 그 시조始祖를 배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천자는 어째서 반드시 그 시조를 배향하는가?
황족 안에서 나온 〈시조始祖는 함께 할〉 짝이 없으면 멀리 갈 수 없고, 황족 밖에서 온 〈천제天帝는 의탁할〉 주인이 없으면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言祭天則天神爲客, 是外至也. 須人爲主, 天神乃至. 故尊始祖以配天神, 侑坐而食之.
이는 ‘하늘에 제사 지낼 때면 천신天神이 〈강림하여〉 손님이 되는데, 이 〈천신〉은 황족 밖에서 온 존재이다. 사람이 〈천신을 의탁받는〉 주인이 되어야만 천신이 비로소 이른다. 이 때문에 시조를 높여 천신에게 배향함으로써 〈시조가 천신을〉 모시고 앉아 〈제향을〉 받아먹게 한다.’라는 말이다.
살펴보건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모든 제사는, 경칩驚蟄이 되면 제사를 지내고”라고 하고, 또 “후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농사의 풍년을 빌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의 정현 주鄭玄 注에는 ≪역설易說≫을 인용하여 “‘삼왕三王(하‧은‧주 삼대三代의 임금) 때 제사는 한결같이 나라 역법曆法정월正月(음력 1월)에 지냈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북두칠성 자루가〉 인방寅方을 가리키는 달(음력 1월)이다.
此言迎長日者, 建卯而晝夜分, 分而日長也.” 然則春分而長短分矣. 此則迎在未分之前, 至謂春分之日也.
여기(〈교특생〉)에서 ‘〈장차 밤보다〉 길어질 해를 맞이한다.’고 한 것은, 〈북두칠성 자루가〉 묘방卯方을 가리킬 때(음력 2월) 낮과 밤이 등분等分되고, 등분된 뒤에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춘분春分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으므로 여기(〈교특생〉의 말)에서 ‘맞이한다’고 한 것은 춘분이 되기 전에 이루어지는 일이고, ‘〈밤보다 낮이 길어지는 순간이〉 도래하는[]’ 것은 춘분날을 일컫는다.
夫至者, 是長短之極也. 明分者, 晝夜均也. 分是四時之中, 啓蟄在建寅之月,
동지冬至하지夏至의〉 ‘’는 〈낮과 밤의〉 길고 짧음이 지극한 것이므로, ‘등분된다는 것[]’은 낮과 밤의 길이가 균등하다는 것이 분명하다. 〈낮과 밤의 길이가〉 균등한 때는 사계절의 중간(춘분春分추분秋分)이고 경칩은 〈북두칠성 자루가〉 인방寅方을 가리키는 달(음력 1월)에 있다.
過至而未及分, 必於夜短, 方爲日長, 則左氏傳不應言啓蟄也. 若以日長有漸, 郊可預迎, 則其初長宜在極短之日.
〈경칩은〉 동지를 지났으나 춘분에 미치지 못한 때이므로 반드시 〈낮이 아직〉 밤보다 짧아서 낮이 한창 길어나는 때이다. 그렇다면 ≪춘추좌씨전≫에 〈장차 길어날 해를 맞이하기 위한 제사를〉 경칩에 지낸다고 말했을 리가 없다. 만약 해(낮)가 점차 길어나므로 제사로 미리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처음 길어나는 순간은 당연히 낮이 가장 짧은 날(동지)에 있다.
故知傳啓蟄之郊, 是祈農之祭也. 周禮冬至之郊, 是迎長日報本反始之祭也.
따라서 ≪춘추좌씨전≫에서 경칩에 지낸다고 한 제사는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이고, ≪주례≫에서 동짓날에 지낸다는 제사는 〈장차〉 길어날 해를 맞이하여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는 제사임을 알 수 있다.
鄭玄以祭法有“周人禘嚳”之文, , 謂東方靑帝靈威仰.
정현은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나라 사람은 제곡帝嚳에게 제사를 올리고’라는 글이 있다 하여 마침내 제사를 감생제感生帝에 대한 제사로 바꾸어 말했으니, 곧 동방의 청제 영위앙靑帝 靈威仰〈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한〉 것이다.
周爲木德. . 以駁之曰 “案爾雅曰 ‘祭天曰燔柴, 祭地曰瘞薶.’
나라는 목덕木德으로 일어났고 영위앙靈威仰목제木帝이므로, 〈후직을 창룡蒼龍의 정기에 배향했다는 것이다. 위소韋昭도 이 설과 부합한다. 다만 나라 태상 왕숙太常 王肅은 홀로 논설을 지어〉 정현의 설을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살펴보건대 ≪이아爾雅≫ 〈석천釋天〉에 ‘하늘에 제사하는 것을 번시燔柴라 하고, 땅에 제사하는 것을 예매瘞薶라고 한다.’ 하였고,
又曰 ‘禘, 大祭也.’ 謂五年一大祭之名. 又祭法祖有功, 宗有德, 皆在宗廟, 本非郊配.
또 ‘는 큰 제사이다.’라고 하였으니, 〈는〉 5년에 한 번 지내는 큰 제사의 이름이다. 또 제사의 법식에, 공로가 있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은덕이 있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종묘에서 지내는 제사이지 본디 제사에 배향하는 것이 아니다.
若依鄭說, 以帝嚳配祭圜丘, 是天之最尊也. 周之尊帝嚳, 不若后稷.
만약 정현의 설대로라면 제곡帝嚳환구圜丘의 제사에 배향한 것이 되는데 이(환구圜丘에서의 주향主享 대상)는 천신天神 중에 가장 높은 존재이다. 그런데 나라는 〈후직의 사당은 세웠으나 제곡의 사당은 세우지 않는 등〉 제곡에 대한 존숭이 후직만 못하였다.
, 實乖嚴父之義也. 且徧窺經籍, 竝無以帝嚳配天之文.
〈정현의 설대로〉 지금 〈후직을〉 청제靑帝에게 배향했다고 한다면, 〈청제는 천신天神 중에〉 가장 높은 존재가 아니〈므로 후직에 대한 존숭이 제곡에 대한 존숭만 못한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제곡과 후직에 대한 존숭이 상호 모순되며〉 실로 아버지를 존경하는 도리에 어긋난다. 그리고 경적經籍을 두루 살펴보아도 제곡을 천신에게 배향했다는 글은 전혀 없다.
若帝嚳配天, 則經應云‘禘嚳於圜丘, 以配天’, 不應云‘郊祀后稷’也.
만약 제곡을 천신에게 배향했다면 경문經文에 ‘환구圜丘에서 제곡에게 제사를 올려 천신에게 배향하고’라고 했을 것이고 ‘후직에게 제사를 지내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天一而已. 故以所在, 祭在郊則謂爲圜丘, 言於郊爲壇, 以象圜天. 圜丘卽郊也, 郊卽圜丘也.”
하늘은 하나뿐이다. 그러므로 있는 곳에 따라서, 제사가 남교南郊에서 있으면 환구圜丘라고 하니, 남교에 제단祭壇을 만들어 둥근 하늘을 표상했다는 말이다. 환구가 곧 남교이고 남교가 곧 환구이다.”
其時中郞馬昭抗章, 固執當時, 勅博士張融質之. 融稱 “漢世英儒, 自董仲舒, 劉向‧馬融之倫, 皆斥周人之祀昊天於郊, 以后稷配,
그때 중랑 마소中郞 馬昭상서上書하여 당시〈의 통설을〉 고집하자, 박사 장융博士 張融에게 갈피를 잡아 〈시비를 정하도록〉 칙명勅命을 내렸는데, 장융〈이 올린〉 말은 다음과 같다. “한대漢代의 학식 높은 유자儒者들은 동중서董仲舒를 비롯하여 유향劉向마융馬融의 무리가 모두 ‘나라 사람이 남교에서 호천昊天에게 제사하고 후직을 배향했다.’고 꼭 집어 말했으니,
無如玄說配蒼帝也. 然則周禮圜丘, 則孝經之郊. 聖人因尊事天, 因卑事地, 安能復得祀帝嚳於圜丘, 配后稷於蒼帝之禮乎.
정현처럼 ‘창제蒼帝에게 배향했다.’고 말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례≫의 환구圜丘는 곧 ≪효경≫의 남교南郊입니다. 성인聖人은 높음으로 인해 하늘을 섬기고 낮음으로 인해 땅을 섬겼으니, 어찌 다시 제곡帝嚳환구圜丘에서 제사하고 후직을 창제蒼帝에게 배향하는 예가 있었겠습니까.
且在周頌 ‘思文后稷, 克配彼天’, 又. 則郊非蒼帝, 通儒同辭, 肅說爲長.
또 ≪시경詩經≫ 〈주송 사문周頌 思文〉에 ‘문덕文德 높은 후직이여, 저 하늘에 짝할 만하도다.’라고 하였고, 〈호천유성명昊天有成命〉은 천지에 제사를 지내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제사가 창제蒼帝에게 제향하는 것이 아님은 사리에 통달한 유자들이 똑같이 하는 말이므로 왕숙의 설이 옳습니다.
伏以 孔聖垂文, 固非臆說. 前儒詮證, 各擅一家.
삼가 생각건대, 는 사람 행실의 근본이고 제사는 나랏일 중에 큰 것이라는 공자孔子의 글은 실로 억설臆說이 아니니, 선유先儒의 해석과 증명이 각기 일가一家를 이루었습니다.
自頃脩撰, 備經斟覆, 究理則依王肅爲長, 從衆則鄭義已久. 王義聖證之論, 鄭義(其)[具]於三禮義宗.
근래에 서책을 편찬하며 자세히 반복하여 따져보니, 이치를 궁구하는 데는 왕숙을 따르는 것이 좋지만, 다수 의견을 따르자면 정현의 설이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왕숙의 뜻은 ≪성증론聖證論≫에 갖추어져 있고, 정현의 뜻은 최영은崔靈恩(남조 양南朝 梁)의 ≪삼례의종三禮義宗≫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王‧鄭是非, 於禮記其義文多, 卒難詳縷說. 此略據機要, 且擧二端焉.”
왕숙과 정현의 옳고 그름〈을 따져볼 수 있는 자료로〉, ≪예기≫ 에 그들의 해설이 많지만 갑자기 상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대략 그 핵심에 의거하여 우선 두 가지만 들었습니다.”
[疏]○注‘明堂’至‘之也’
의 [명당明堂]부터 [지야之也]까지
○正義曰:云“明堂 天子布政之宮也”者, 案禮記明朝諸侯于明堂之位,
정의왈正義曰:[명당 천자포정지궁야明堂 天子布政之宮也] 살펴보건대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에 “옛날에 주공周公명당明堂의 자리에서 제후들의 조회를 받았다.
천자는 도끼 그림 병풍을 등 뒤에 두고 남쪽을 향해 섰다.……명당明堂은 제후들의 높고 낮은 지위를 드러내는 곳이다.……〈주공이 허다한〉 예절과 악장樂章을 제정하고 통일된 도량형을 반포하자 천하가 크게 복종하였다.”라고 하였으니, 명당은 〈천자가〉 정치를 펴던 궁전임을 알 수 있다.
云“周公因祀五方上帝於明堂 乃尊文王以配之也”者, 五方上帝, 卽是上帝也. 謂以文王配五方上帝之神, 侑坐而食也.
[주공인사오방상제어명당 내존문왕이배지야周公因祀五方上帝於明堂 乃尊文王以配之也] 다섯 방위의 상제上帝가 곧 이(경문의) 상제이다. ‘문왕文王을 다섯 방위 상제의 에게 배향하여 〈상제를〉 모시고 앉아 〈제향을〉 받아먹게 했다.’는 말이다.
案鄭注論語云 “皇皇后帝, 竝謂太微五帝. 在天爲上帝, 分王五方爲五帝.”
살펴보건대 ≪논어論語≫ 〈요왈堯曰〉에 대한 정현의 에 “크고 크신 후제后帝태미원太微垣오제五帝를 모두 일컫는다. 하늘에 있으면 상제上帝이고 다섯 방위를 나누어 왕이 되면 오제五帝이다.”라고 하였다.
舊說明堂在國之南, 去王城七里, 以近爲媟, 南郊去王城五十里, 以遠爲嚴.
에 따르면 명당은 도성 남쪽에 있는데 왕성王城과의 거리가 7리이므로 가까워서 친근하고, 남교南郊는 왕성과의 거리가 50리이므로 멀어서 장엄하다.
五帝卑於昊天, 所以於郊祀昊天, 於明堂祀上帝也. 其以后稷配郊, 以文王配明堂, 義見於上也.
오제五帝는 하늘보다 낮기 때문에 남교南郊에서 하늘에게 제사하고 명당明堂에서 상제上帝에게 제사하였다. 후직을 남교〈의 제사〉에 배향하고 문왕文王을 명당〈의 제사〉에 배향한 뜻은 앞에 보였다.
五帝謂東方靑帝靈威仰, 南方赤帝赤熛怒, 西方白帝白招拒, 北方黑帝汁光紀, 中央黃帝含樞紐.
오제五帝동방東方청제 영위앙靑帝 靈威仰, 남방南方적제 적표노赤帝 赤熛怒, 서방西方백제 백초거白帝 白招拒, 북방北方흑제 즙광기黑帝 汁光紀, 중앙中央황제 함추뉴黃帝 含樞紐이다.
云 “明堂居國之南, 南是明陽之地, 故曰明堂.” 案史記云 明庭卽明堂也.
정현이 말하기를 “명당은 도성의 남쪽에 있다. 남쪽은 밝은 의 위치이므로 명당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사기史記≫에 “황제黃帝가 온갖 신령神靈명정明庭에서 접견하였다.”라고 하였는데, 명정明庭이 곧 명당이다.
明堂起於黃帝. 周禮考工記曰 “世室, 殷人重屋, 周人明堂.” 先儒舊說, 其制不同.
명당은 황제黃帝 때 처음 건립되었다.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하후씨夏后氏세실世室, 나라 사람의 중옥重屋, 나라 사람의 명당明堂’을 말했는데, 선유先儒의 옛 에 따르면 그 양식이 서로 달랐다.
案大戴禮云 “明堂凡九室, 一室而有四戶八牖, 三十六戶七十二牖, 以茅蓋屋, 上圓下方.”
살펴보건대 ≪대대례기大戴禮記≫에 “명당은 방이 총 9칸인데 방 1칸마다 출입문 4개와 창문 8개가 있어 도합 출입문이 36개, 창문이 72개이고, 띠[]로 지붕을 덮었으며,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졌다.”라고 하였다.
鄭玄據援神契云 “明堂上圜下方, 八牖四闥.” 考工記曰
정현은 효경위孝經緯원신계援神契≫에 의거하여 “명당은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졌으며, 창문이 8개, 출입문[]이 4개이다.”라고 하였다. 〈고공기考工記〉에는 “명당은 방이 총 5칸이다.”라고 하였다.
稱九室者, 或云 “取象陽數也.” 八牖者, “陰數也, 取象八風也.” “三十六戶, 取象也.
〈≪대대례기≫에서〉 방이 총 9칸이라고 한 데 대해 혹자는 “양수陽數를 상징한 것이다.”라고 하고, 창문 여덟에 대해 “음수陰數이며, 팔풍八風(팔방八方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상징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출입문 36개는 〈1년〉 6갑자의 효수爻數를 상징한 것이니, 6×6은 36이다.
上圜象天, 下方法地. 八牖者卽八節也, 四闥者象四方也. 稱五室者, 取象五行.” 皆無明文也, 以意釋之耳.
위가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한 것이고, 아래가 네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다. 창문 여덟은 곧 여덟 절기(입춘立春입하立夏입추立秋입동立冬춘분春分하지夏至추분秋分동지冬至)이고, 출입문 넷은 사방四方을 상징한 것이다. 방이 총 5칸이라고 한 것은 오행을 상징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나, 모두 명백한 기록은 없고 뜻으로 풀이한 것일 뿐이다.
此言宗祀於明堂, 謂九月大享靈威仰等五帝, 以文王配之, 卽月令云 注云 “徧祭五帝.”
여기(경문)서 ‘명당明堂에서 〈문왕文王에게〉 제사를 지내어’라고 한 것은 9월에 영위앙靈威仰오제五帝에게 크게 제향을 올리면서 문왕文王을 배향함을 말한다. 이것이 곧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계추季秋(9월)에 상제에게 크게 제향을 올린다.”라고 한 것인데, 그 에 “오제五帝에게 두루 제사한다.”라고 하였다.
以其上言 “擧五穀之要, 藏帝藉之收於神倉.” 月西方成事終而報功也.
〈〈월령〉의〉 이 문구 위에 “오곡의 수입을 장부에 기록하여 천자의 자전藉田에서 수확한 곡식과 함께 신창神倉(제수용품을 저장하는 창고)에 보관한다.”라고 한 것은 9월에 가을걷이가 끝나서 에 보답〈하기 위함〉이다.
[疏]○注‘君行’至‘祭也’
의 [군행君行]부터 [제야祭也]까지
○正義曰:云“君行嚴配之禮”者, 此謂宗祀文王於明堂以配天, 是也.
정의왈正義曰:[군행엄배지례君行嚴配之禮] 이는 ‘명당明堂에서 문왕文王에게 제사를 지내어 하늘에 배향配享했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則德敎刑於四海, 海內諸侯, 各脩其職, 來助祭也”者, 謂四海之內, 六服諸侯, 各脩其職, 貢方物也.
[즉덕교형어사해 해내제후則德敎刑於四海 海內諸侯 각수기직 래조제야各脩其職 來助祭也] ‘사해四海 안의 육복六服의 제후들이 각기 직공職貢을 마련하여 방물方物(지방의 특산물)을 바쳤다.’라는 말이다.
案周禮大行人 又曰 鄭云 “犧牲之屬.”
살펴보건대 ≪주례周禮≫ 〈대행인大行人〉에 “9가지 의절儀節을 이용하여 제후들의 명수命數(작급爵級)를 구분하고, 사당 안에서 〈빙례聘禮를 행할 때〉 폐백(환규桓圭신규信圭궁규躬圭곡벽谷璧포벽蒲璧)을 지니고 세 번에 걸쳐 방물方物을 바친다.”라고 하고, 또 “후복侯服(왕성王城 밖 1,000리~1,500리 지역)의 제후는 제사에 쓰이는 공물을 바친다.”라고 했는데, 정현이 “희생 따위이다.”라고 하였고,
“甸服貢嬪物.” 注云 “絲也.” “男服貢器物.” 注云 “尊彝之屬也.” “采服貢服物.” 注云 “玄纁絺纊也.”
전복甸服(후복侯服 밖 500리까지 지역)의 제후는 빈객 접대에 쓰이는 공물을 바친다.”라고 했는데, 에 “명주실과 모시 등이다.”라고 하였으며, “남복男服(전복甸服 밖 500리까지 지역)의 제후는 각종 용구用具를 공물로 바친다.”라고 했는데, 에 “술동이 따위이다.”라고 하였고, “채복采服(남복男服 밖 500리까지 지역)의 제후는 의복을 공물로 바친다.”라고 했는데, 에 “검정색과 분홍색의 칡베 옷과 솜옷 따위이다.”라고 하였으며,
“衛服貢材物.” 注云 “八材也.” “要服貢貨物.” 注云 “龜貝也.” 此是六服諸侯各脩其職來助祭.
위복衛服(채복采服 밖 500리까지 지역)의 제후는 물품 재료를 공물로 바친다.”라고 했는데, 에 “여덟 가지 재료(진주‧옥구슬‧돌‧나무‧금속‧상아‧가죽‧깃털)이다.”라고 하였고, “요복要服(위복衛服 밖 500리까지 지역)의 제후는 화폐용貨幣用 물품을 공물로 바친다.”라고 했는데, 에 “거북 껍질과 조개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육복六服의 제후들이 각기 맡은 공물貢物을 마련해 가지고 와서 제사를 도왔다는 것이다.
又若尙書武成篇云 “丁未, 祀於周廟, 邦甸侯衛駿奔走, 執豆籩.” 亦是助祭之義也.
또 예컨대 ≪상서尙書≫ 〈무성武成〉에 “정미일丁未日나라의 사당에 제사할 적에 왕성王城과 그 주변 및 전복甸服후복侯服위복衛服에서 매우 분주히 움직여 변두籩豆(제기祭器)를 잡더니”라고 한 것 역시 제사를 도왔다는 뜻이다.
요제오복도堯制五服圖(송판 육경도宋板 六經圖)요제오복도堯制五服圖(송판 육경도宋板 六經圖)
역주
역주1 : 도성 남쪽 교외에 圜丘壇을 쌓고 지내는 제사로, 주된 제향 대상은 하늘이고, 배향 대상은 국가의 始祖이다.
역주2 : 明堂에서 五帝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國語≫ 〈魯語 上〉의 “有虞氏禘黃帝而祖顓頊 郊堯而宗舜(有虞氏는 黃帝에게 禘제사를 지내고 顓頊에게 祖제사를 지내고 堯에게 郊제사를 지내고 舜에게 宗제사를 지냈다.)”에 대한 韋昭의 注에 “이 네 사람(黃帝‧顓頊‧堯‧舜)은 하늘에 제사하면서 배향하는 대상이다. 圓丘에서 昊天을 主神으로 삼아 제사 지내는 것을 禘라고 하고, 明堂에서 다섯 방위의 上帝를 主神으로 삼아 제사 지내는 것을 祖와 宗이라고 하고, 南郊에서 上帝를 主神으로 삼아 제사 지내는 것을 郊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단, 郊제사의 主神에 대해서는 뒤의 疏에 보이듯이 논란이 있고, 바로 위의 御注에서 볼 수 있듯이 남교에서 지내는 제사와 환구단에서 지내는 제사를 동일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역주3 來祭 : 石臺本‧唐石經‧宋熙寧石刻本‧閔本‧監本‧正義本에는 ‘來助祭’로 되어 있어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北京大 標點本 〈校勘記〉 참조)
역주4 (公) : 저본에는 ‘公’이 있으나, 이에 해당하는 御注에 의거하여 ‘公’ 1자를 삭제하였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5 姜原 : 周나라의 시조 后稷의 어머니로, ‘姜嫄’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본서에는 주로 ‘姜嫄’으로 표기되고 여기만 ‘姜原’으로 표기된 데 비해, ≪史記≫ 권4 〈周本紀〉에는 주로 ‘姜原’으로 표기되었다.
역주6 后稷名棄……號曰后稷 : ≪史記≫ 권4 〈周本紀〉에서 발췌 인용한 것이다.
역주7 沽洗 : 姑洗으로도 표기한다.
역주8 迎長日之至也 : 長日은 ‘길어나는 해’ 곧 동지를 지나 점차 길어지는 해(낮)이다. 이 구는 ‘〈장차〉 도래할 長日을 맞이한다’, ‘〈장차〉 길어날 해를 맞이한다.’라는 말로, ≪禮記≫ 〈郊特牲〉의 이 문구에 대한 孔穎達의 疏에 ‘장차 도래할 이 長日을 맞이한다.[迎此長日之將至]’라고 풀이되어 있다. 단, 이 疏 중에 ‘案左氏傳曰 凡祀……至謂春分之日也’에서는 ‘長日’이 ‘밤보다 길어진 해(낮)’, 곧 춘분 뒤의 해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이에 따라 ‘迎長日之至’는 ‘〈장차 밤보다〉 길어질 해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9 (祚)[阼] : 저본에는 ‘祚’로 되어 있으나, ≪禮記≫ 〈文王世子〉 및 監本‧毛本에 의거하여 ‘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0 (主)[匹] : 저본에는 ‘主’로 되어 있으나, ≪春秋公羊傳≫ 宣公 3년에 의거하여 ‘匹’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1 郊則曷爲必祭稷……無主不止 : ≪春秋公羊傳≫ 宣公 3년에 보인다.
역주12 凡祀 啓蟄而郊 : ≪春秋左氏傳≫ 桓公 5년조에 보인다.
역주13 郊祭后稷 以祈農事也 : ≪春秋左氏傳≫ 襄公 7년조에 보인다.
역주14 易說曰……一用夏正 : 여기에 인용된 두 구가 撰者 미상의 漢代 저작으로서 易緯 중 하나인 ≪周易乾鑿度≫ 상권에 보인다. 단, ≪易說≫이 곧 ≪주역건착도≫인지는 미상이다.
역주15 遂變郊爲祀感生之帝 : ≪禮記≫ 〈祭法〉의 鄭玄 注에 “여기서 禘는 圜丘에서 昊天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南郊에서 上帝에게 지내는 제사를 郊라 한다.”라고 한 데서 ‘上帝’라는 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옛날 天子의 선조는 모두 하늘의 太微垣 다섯 방위에 있는 五行의 上帝 중 하나의 정기에 감응하여 태어난다고 생각했는데, 이들 오행의 상제를 感生帝, 感生, 感帝라고 칭한다.(≪東園叢說≫ 卷下 〈雜說〉)
역주16 威仰木帝 : 宋나라 黃榦과 楊復의 ≪儀禮經傳通解續≫에는 이 뒤에 “以后稷配蒼龍精也 韋昭所注亦符此說 惟魏太常王肅獨著論” 25자가 더 있으므로 이를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韋昭所注’는 ≪國語≫ 〈周語 下〉의 韋昭注에 ≪禮記≫ 〈祭法〉의 “周나라 사람은 嚳에게 禘제사를 지내고 稷에게 郊제사를 지냈다.”라는 말을 근거로 “帝嚳은 后稷을 낳은 분”임을 말하고, 帝嚳과 周나라가 모두 木德에 기반했다고 말한 것을 가리킨다.
역주17 若依鄭說……乃非最尊 : 이 문장에는 생략된 부분이 많아 ≪禮記正義≫ 〈祭法〉 疏에 다음과 같이 인용된 王肅의 설을 참고해야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필요에 따라 이를 번역에 보충하였다. “鄭玄以五帝爲靈威仰之屬 非也 玄以圜丘祭昊天 最爲首禮 周人立后稷廟 不立嚳廟 是周人尊嚳不若后稷及文武 以嚳配至重之天 何輕重顚倒之失所 郊則圜丘 圜丘則郊”
역주18 昊天有成命 郊祀天地也 : ≪詩經≫ 〈周頌 昊天有成命〉의 毛序를 인용한 것이다.
역주19 孝爲人行之本 祀爲國事之大 : 본장의 ‘人之行莫大於孝’ 및 ≪春秋左氏傳≫ 文公 2년에 인용된 君子의 논평 중에 ‘祀 國之大事也’를 가리킨다.
역주20 (其)[具] : 저본에는 ‘其’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의거하여 ‘具’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아래도 같다.
역주21 (其二端注明堂)[堂位昔者周公] : 저본에는 ‘其二端注明堂’으로 되어 있으나, 浦鏜의 ≪十三經注疏正字≫에 의거하여 ‘堂位昔者周公’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22 昔者周公朝諸侯于明堂之位……而天下大服 : ≪禮記≫ 〈明堂位〉에서 발췌 인용한 것이다.
역주23 (炫)[玄] : 저본에는 ‘炫’으로 되어 있으나, “元이 되어야 한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 및 阮元의 이 교감기는 淸 聖祖 康熙帝의 이름자를 피하기 위해 ‘玄’을 ‘元’으로 대체 표기한 例에 따른 것임을 감안하여 ‘玄’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4 黃帝接萬靈於明庭 : ≪史記≫ 권12 〈孝武本紀〉와 권28 〈封禪書〉의 ‘黃帝接萬靈明廷’을 인용한 것이다. ≪漢書≫ 권25 〈郊祀志 上〉에는 ‘黃帝接萬靈明庭’으로 되어 있다.
역주25 夏后(曰)[氏]世室……周人明堂 : ≪周禮≫ 〈考工記〉 ‘匠人’조에서 발췌 인용한 것이다. 世室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宗廟의 기능을 강조한 명칭이고, 重屋은 천자의 생활 공간인 寢殿의 기능을 강조한 명칭이며, 明堂은 제후들의 조회를 받고 정치를 행하는 正殿의 기능을 강조한 명칭이다.
역주26 (曰)[氏] : 저본에는 ‘曰’로 되어 있으나, ≪周禮注疏≫에 의거하여 ‘氏’로 바로잡았다.
역주27 明堂 五室 : ≪周禮≫ 〈考工記〉 ‘匠人’조에서 발췌 인용한 것이다.
역주28 六甲子之爻 六六三十六 : 1년을 360일로 볼 때 干支가 총 6번 반복된다. 특정 날짜의 길흉을 점칠 때, 乾卦의 初爻는 甲子, 姤卦의 초효는 辛丑 등과 같이 ≪周易≫ 卦의 爻를 낱낱이 干支에 대응시킨다.(≪星湖僿說≫ 卷2 〈天地門 八宮飛伏〉) 그런데 明나라 文翔鳳의 ≪皇極篇≫ 卷21 〈邵窩易詁〉에 “天干이 열 개인 것은 河圖의 수이고 地支가 12개인 것은 周天의 자리이다. 10干을 12支에 배합하여 나온 60은 甲子의 수이고, 6을 60에 곱하여 나온 360은 주천의 度數이다. 64괘에서 4괘를 제외하면 갑자와 주천이 딱 맞는다.[天干之有十 蓋河圖之數 地支之有十二 蓋周天之次 以十因十二而爲六十則甲子 以六因六十而爲三百六十則周天之度 六十四卦去其四 而甲子周天協也]”라고 한 데서 볼 수 있듯이 64괘 중 4괘를 빼어 전체 爻數를 周天度 360과 일치시킨 후 60간지에 대응시킨다. 따라서 1개의 간지마다 6개의 효에 대응되므로 6개의 甲子는 총 36개의 효에 대응된다.
역주29 季秋大享帝 : ≪禮記≫ 〈月令〉에서 발췌 인용한 것이다.
역주30 (六)[九] : 저본에는 ‘六’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의거하여 ‘九’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31 以九儀辨諸侯之命 廟中將幣三享 : ≪周禮≫ 〈大行人〉에서 발췌 인용한 것이다.
역주32 侯服貢祀物 : ≪周禮≫ 〈大行人〉에서 발췌 인용한 것이다. 뒤의 ‘甸服貢嬪物’, ‘男服貢器物’, ‘采服貢服物’, ‘衛服貢材物’, ‘要服貢貨物’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역주33 (帛)[枲] : 저본에는 ‘帛’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의거하여 ‘枲’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효경주소 책은 2019.11.0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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