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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經注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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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 以養父母호되 日嚴하나니라
그러므로 친애하는 마음이 〈유아기에〉 슬하에 있을 때 생겨나서 부모를 봉양하되 날로 존경하게 된다.
[注]親 猶愛也 膝下 謂孩幼之時也 言親愛之心 生於孩幼하야 比及年長하야 漸識義方이면 則日加尊嚴하야 能致敬於父母也
와 같다. 슬하膝下는 아주 어릴 적을 말한다. ‘친밀히 사랑하는 마음이 유아기에 생겨나서, 나이가 들면서 점차 규범과 도리를 알게 되면, 나날이 더욱 존경하여 부모에게 공경을 다할 수 있다.’라는 말이다.
聖人 因嚴以敎敬하시고 因親以敎愛하실새
성인聖人이 〈자식 된 자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공경을 가르치시고 친밀한 마음을 바탕으로 사랑을 가르치셨기에,
[注]聖人 因其親嚴之心하야 敦以愛敬之敎 故出以就傅하고 趨而過庭하야 以敎敬也 抑搔癢痛하고 懸衾篋枕하야 以敎愛也
성인聖人이 〈자식 된 자가 아버지에 대해 지니는〉 친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사랑과 공경의 가르침을 돈독히 하였다. 그러므로 〈안채에서〉 나와 바깥 스승에게 나아가고 〈백어伯魚가〉 빠른 걸음으로 뜰을 지나갈 때 〈공자孔子가 잠시 불러 가르침을 준 것처럼 한 집에 함께 거처하더라도 자식을 너무 가까이하지 않음으로써〉 공경을 가르치고, 아픈 곳을 주물러 드리고 가려운 곳을 긁어드리고 부모님의 이부자리를 개고 베개를 상자에 넣게 함으로써 사랑을 가르쳤다.
聖人之敎 不肅而成하고 其政 不嚴而治하니
성인聖人의 교화가 엄숙하지 않아도 이루어지고 그 정사政事가 엄중하지 않아도 다스려졌으니,
[注]聖人 順群心以行愛敬하고 制禮則以施政敎하니 亦不待嚴肅而成理也
성인聖人이 사람들의 마음을 따라서 사랑과 공경을 행하고 예법을 제정하여 정사政事와 교화를 베풀자 또한 엄숙하고 엄중히 하지 않아도 다스림을 이룰 수 있었다.
其所因者 ㄹ새니라
그 말미암은 것이 근본이기 때문이다.
[注]本 謂孝也
근본은 을 일컫는다.
[疏]‘故親’至‘本也’
의 [고친故親]부터 [본야本也]까지
○正義曰:此更廣陳嚴父之由. 言人倫正性, 必在蒙幼之年, 敎之則明, 不敎則昧. 言親愛之心, 生在其孩幼膝下之時, 於是父母則敎示.
정의왈正義曰:이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까닭을 다시 넓게 진술한 것이다. ‘인륜과 바른 성품은 반드시 어린 나이에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으니, 가르치면 밝아지고 가르치지 않으면 어두워진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친애하는 마음은 유아기에 슬하에 있을 적에 생겨나므로 이때 부모가 가르쳐야 한다.’라는 것이다.
比及年長, 漸識義方, 則日加尊嚴, 能致敬於父母, 故云“以養父母日嚴”也. 是以聖人因其日嚴而敎之以敬, 因其知親而敎之以愛.
〈이리 하여〉 나이가 들면서 점차 규범과 도리를 알게 되면 날로 더욱 존경하여 부모에게 공경을 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부모를 봉양하되 날로 존경하게 된다.”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성인聖人이 〈자식 된 자가 아버지를〉 날로 존경함을 말미암아 공경을 가르치고, 친밀할 줄 앎을 말미암아 사랑을 가르쳤다.
故聖人因之以施政敎, 不待嚴肅, 自然成治也. 然其所因者在於孝也, 言本皆因於孝道也.
이 때문에 성인聖人이 이를 말미암아 정교政敎를 베풀자 엄중하고 엄숙히 하지 않아도 자연히 다스림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말미암은 것은 에 있었으니, 본디 모두 효도孝道에 말미암았다는 말이다.
[疏]○注‘親猶’至‘母也’
의 [친유親猶]부터 [모야母也]까지
○正義曰:云“親 猶愛也”者, 嫌以親爲父母, 故云“親猶愛也”.
정의왈正義曰:[친 유애야親 猶愛也] ‘’을 부모父母의 뜻으로 여길까봐 염려되었기 때문에 “와 같다.”라고 한 것이다.
云“膝下 謂孩幼之時也”者, 案內則云 “子生三月, 妻以子見於父, 父執子之右手, 孩而名之.”
[슬하 위해유지시야膝下 謂孩幼之時也] 살펴보건대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자식이 태어난 지 3개월이 되면 아내가 자식을 아버지(남편)에게 보인다. 아버지는 자식의 오른손을 잡고서 웃게[] 하고 이름을 지어준다.”라고 하였다.
案說文云 “孩, 小兒笑也.” 謂指其頤下, 令之笑而爲之名. 故知膝下謂孩幼之時也.
살펴보건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는 어린 아이가 웃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턱 밑을 손가락으로 〈간지럽혀〉 웃게 하고 이름을 지어준다는 말이다. 따라서 ‘슬하膝下’가 아주 어릴 때를 일컬음을 알 수 있다.
云“親愛之心 生於孩幼之時也”者, 言孩幼之時, 已有親愛父母之心生也.
[친애지심 생어해유지시야親愛之心 生於孩幼之時也] 아주 어릴 때 이미 부모를 친밀히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 있다는 말이다.
云“比及年長 漸識義方 則日加尊嚴 能致敬於父母也”者, 春秋左氏傳 石碏曰
[비급년장 점식의방比及年長 漸識義方 즉일가존엄 능치경어부모야則日加尊嚴 能致敬於父母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석작石碏이 “신이 듣건대 자식을 사랑하되 ‘올바른 사람이 되는 바른길[의방義方]’을 가르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方猶道也, 謂敎以仁義合宜之道也. 其敎之者, 案禮記內則 “子能食, 敎以右手,
이때 와 같으니, ‘인의仁義에 부합하는 도리를 가르친다.’는 말이다. 가르치는 것은, 살펴보건대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아이가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면 오른손으로 먹도록 가르치고,
能言, 男‘唯’女‘俞’, 男鞶革女鞶絲. 六年, 敎之數與方名. 七年, 男女不同席, 不共食.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아들은 빠르게 대답하고 딸은 느리게 대답하도록 가르치며, 아들은 가죽 주머니를 차고 딸은 명주 주머니를 차고 다니게 한다. 태어난 지 6년이 되면 숫자와 방향의 명칭(동‧서‧남‧북)을 가르친다. 7년이 되면 남녀가 한 자리에 함께 앉지 않고 〈음식을〉 함께 먹지 않게 한다.
八年, 出入門戶, 及卽席飮食, 必後長者, 始敎之讓. 九年, 敎之數.”
8년이 되면 문을 드나들거나 자리에 나아가고 음식을 먹을 때 반드시 어른보다 뒤에 하도록 하여 비로소 사양辭讓을 가르친다. 9년이 되면 날짜 세는 법(간지干支삭망朔望)을 가르친다.”라고 하였다.
又曲禮云 “幼子, 常視無誑, 立必正方, 不傾聽, 與之提携, 則兩手奉長者之手, 負劍辟咡詔之, 則掩口而對.”
또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어린 자식에게는 속이지 않음을 늘 보여주고, 서 있을 때는 반드시 한 방향을 똑바로 향하게 하며,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인 채 말을 듣지 않게 하고, 〈어른이〉 손을 끌어주면 두 손으로 어른의 손을 받들게 하며, 〈어른이〉 몸을 숙여 귀엣말로 말을 하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대답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注約彼文爲說, 故曰“日加尊嚴”. 言子幼而誨, 及長則能致敬其親也.
〈≪효경≫ 이 대목의〉 는 저 글(앞의 〈내칙〉과 〈곡례〉 인용문)을 요약하여 말하였기 때문에 ‘나날이 더욱 존경하여’라고 한 것이다. 〈의 이 부분은〉 ‘자식이 어릴 때 가르치므로 자라면 어버이에게 공경을 다할 수 있다.’는 말이다.
[疏]○注‘聖人’至‘愛也’
의 [성인聖人]부터 [애야愛也]까지
○正義曰:父子之道, 簡易則慈孝不接, 狎則怠慢生焉. 故聖人因其親嚴之心, 敦以愛敬之敎也.
정의왈正義曰: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서로 데면데면하면 자애와 효성이 교감하지 못하고 너무 허물없이 대하면 태만함이 생긴다. 이 때문에 성인이 〈자식이 아버지에 대해 지니는〉 친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사랑과 공경의 가르침을 돈독히 하였다.
云“出以傅”者, 案禮記內則云 “十年, 出就外傅, 居宿於外, 學書計.” 鄭云 “外傅, 敎學之師也.”
[출이취부出以就傅] 살펴보건대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10년이 되면 〈안채에서〉 나와 바깥 스승에게 나아가 바깥채에서 거처하며 글씨와 산법算法을 배운다.”라고 하였는데, 정현이 “바깥 스승은 학문을 가르치는 스승이다.”라고 하였다.
謂年十歲, 出就外傅, 居宿於外, 就師而學也. 案十年出就外傅, 指命士已上. 今此引之, 則尊卑皆然也.
‘10살이 되면 〈안채에서〉 나와 바깥 스승에게 나아가 바깥채에서 거처하며 스승에게 나아가 배운다.’라는 말이다. 살펴보건대 10년이 되면 〈안채에서〉 나와 바깥 스승에게 나아간다는 것은 〈〈내칙〉에서는 본디〉 명사命士(작명爵命을 받은 ) 이상을 가리켜 〈말한〉 것이지만, 지금 여기에 인용한 것은 존비尊卑〈를 막론하고〉 모두 그런 것이다.
云“趨而過庭 以敎敬也”者, 言父之與子, 於禮不得常同居處也. 案論語云 “陳亢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
[추이과정 이교경야趨而過庭 以敎敬也] ‘아버지와 자식은 예법 상 늘 함께 거처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다. 살펴보건대 ≪논어≫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진항陳亢백어伯魚에게 묻기를 ‘그대는 〈부친(공자孔子)께〉 특별히 들은 것이 있는가?’ 하자,
對曰 ‘未也. 嘗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詩乎.」 對曰 「未也.」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詩.
〈백어가〉 대답하기를 ‘아니오. 언젠가 〈부친께서〉 홀로 서 계실 때 내가 빠른 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 「≪≫를 배웠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아직 못 배웠습니다.」라고 답하였소. 이에 「≪시≫를 배우지 않으면 〈자신의 뜻을 원활히〉 말할 수 없느니라.」라고 하시기에, 나는 물러나 ≪시≫를 배웠소.
曰 「學禮乎.」 對曰 「未也.」 「不學禮, 無以立.」 鯉退而學禮. 聞斯二者.’
그 뒤에 또 홀로 서 계실 적에 내가 빠른 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 「≪≫를 배웠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아직 못 배웠습니다.」라고 답하였소. 이에 「≪예≫를 배우지 않으면 〈사회에서 똑바로〉 처신할 수 없느니라.」라고 하시기에, 나는 물러나 ≪예≫를 배웠소. 이 두 가지를 들었소.’라고 하였다.
陳亢退而喜曰 ‘問一得三, 聞詩, 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故注約彼文以爲說也.
이에 진항이 물러나 기뻐하며 말하기를 ‘한 가지를 물어 세 가지를 알았다. ≪시≫〈가 중요함〉을 듣고 ≪예≫〈가 중요함〉을 듣고 또 군자는 자기 자식을 멀리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하였다.” 이 때문에 〈≪효경≫ 이 대목의〉 에서 저 글(앞의 ≪논어論語≫ 〈계씨〉 인용문)을 요약하여 말한 것이다.
云“抑搔癢痛 懸衾篋枕 以敎愛也”者, 此竝約內則文. 案彼云 “以適父母舅姑之所.
[억소양통 현금협침抑搔癢痛 懸衾篋枕 이교애야以敎愛也] 이것도 ≪예기≫ 〈내칙〉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살펴보건대 저기(〈내칙〉)에 “〈채비가 된 뒤에〉 부모 또는 시부모의 거처로 간다.
及所, 下氣怡聲, 問衣燠寒, 疾痛疴癢, 而敬抑搔之. 父母舅姑將坐, 奉席請何鄕,
도착하면 공순한 태도와 화열和悅한 음성으로 입고 계신 의복이 더운지 추운지, 아프거나 가려운 곳〈은 없는지〉를 여쭙고는 〈아픈 곳이 있으면〉 공경히 주물러 드리고 〈가려운 곳이 있으면〉 긁어 드린다. 부모 또는 시부모가 일어나 앉으려 하시면 깔자리를 받들고서 어느 쪽으로 향하게 할지 여쭙는다.
다시 누우려 하시거든 자식 중에 나이 많은 사람이 깔자리를 받들고서 발을 어느 쪽으로 뻗으실지 여쭙고 나이 적은 사람은 평상平床을 잡고 모시고 앉는다. 시중드는 사람은 안석을 들어 〈어른이 기댈 수 있도록〉 드리고, 깔자리와 요를 거둔다. 이불은 개어 높이 쌓아두고 베개는 상자에 넣으며 요는 거두어 〈싸개로〉 싼다[].”라고 하였는데,
鄭注云 “須臥乃敷之也. 襡, 韜也.” 是父母未寢, 故衾被則懸, 枕則置篋中. 言子有近父母之道, 所以敎其愛也.
정현의 주에 “누울 필요가 있을 때 비로소 편다. (싸개로 쌈)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부모가 취침하지 않는 때이기 때문에 이불은 개어 높이 쌓아두고 베개는 상자 속에 두는 것이다. ‘자식에게는 부모를 가까이해야 할 도리가 있기 때문에 사랑을 가르친다.’라는 말이다.
夫愛以敬生, 敬先於愛, 無宜待敎, 而此言敎敬愛者, 禮記樂記曰 “樂者爲同, 禮者爲異. 同則相親, 異則相敬, 樂勝則流.
사랑은 공경으로 인해 생기므로 공경이 사랑보다 우선이다. 그렇다면 가르칠 필요가 없는데 여기서 공경과 사랑을 가르친다고 말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은 같음(화합)을 위한 것이고 는 다름(구분)을 위한 것이다. 같으면 서로 친밀하고 다르면 서로 공경하게 되므로, 으로 기울면 절도가 없고 로 기울면 소원疏遠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 是愛深而敬薄也. 禮勝則離, 是嚴多而愛殺也.
으로 기울면 절도가 없어진다는 것은 사랑이 깊어 공경이 엷어지는 것이고, 로 기울면 소원하게 된다는 것은 존경하는 마음이 많아서 사랑이 줄어드는 것이다.
不敎敬則不嚴, 不和親則忘愛, 所以先敬而後愛也. 舊注取士章之義, 而分愛敬父母之別, 此其失也.
공경을 가르치지 않으면 존경하지 않고, 친밀함을 조화시키지 않으면 사랑을 잊는다. 이 때문에 먼저 공경을 〈가르치고〉 뒤에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다.〉 옛 는 〈사장士章〉의 내용을 취하여 부모에 대한 사랑과 공경의 차이를 구분하였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疏]○注‘聖人’至‘理也’
의 [성인聖人]부터 [리야理也]까지
○正義曰:云“聖人 順群心以行愛敬”者, 聖人謂明王也. 聖者, 通也. 稱明王, 此言在位無不照也.
정의왈正義曰:[성인 순군심이행애경聖人 順群心以行愛敬] 〈여기서〉 성인聖人은 영명한 제왕을 일컫는다. (사리에 달통함)이다. 영명한 제왕[명왕明王]이라는 호칭은 제위帝位에 있으면서 살펴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고,
稱聖人者, 言用心無不通也. 順群心者, 則首章“以順天下”, 是也. 以行愛敬者, 則天子能愛親敬親者, 是也.
성인聖人이라는 호칭은 마음을 써서 환히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따른다’는 것은 〈본서의〉 첫 장에서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따랐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사랑과 공경을 행한다’는 것은 〈역시 본서의 첫 장에서〉 천자가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버이를 공경한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制禮則以施政敎”者, 則“德敎加於百姓”, 是也.
[제례즉이시정교制禮則以施政敎] 〈천자장天子章에서〉 ‘덕교德敎가 백성에게 입혀져’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亦不待嚴肅而成理也”者, 蓋言王化順此而行也. 言“亦”者, 三才章已有成理之言, 故云“亦”也.
[역부대엄숙이성리야亦不待嚴肅而成理也] 천자의 교화가 이를 따라 〈자연스럽게〉 행해진다는 말이다. ‘(또한)’이라고 한 것은 〈삼재장三才章〉에 이미 정사政事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또한’이라고 말한 것이다.
[疏]○注‘本謂孝也’
의 [본위효야本謂孝也]
○正義曰:此依鄭注也. 首章云 “夫孝, 德之本也.” 制旨曰 “夫人倫正性, 在蒙幼之中. 導之斯通, 壅之斯蔽.
정의왈正義曰:이는 정현의 를 따른 것이다. 첫 장에 ‘덕행德行의 근본이고’라고 하였다. ≪효경제지孝經制旨≫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인륜人倫과 바른 성품은 어릴 적에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으니, 잘 인도하면 환히 통하고, 막으면 가려진다.
故先王愼其所養, 於是乎有胎中之敎‧膝下之訓. 感之以惠和, 而日親焉, 期之以恭順, 而日嚴焉.
이 때문에 선왕先王들은 그 기르는 방법을 신중히 선택했으니, 이리하여 태중胎中의 교육과 슬하의 가르침이 있게 되었다. 은혜와 온화함으로 감화시키면 날로 친밀해지고, 공순恭順하기를 기대하면 날로 존경한다.
夫親也者, 緣乎正性而達人情者也. 故因其親嚴之心, 敎以愛敬之範, 則不嚴而治, 不肅而成.” 謂其也.
친밀함은 바른 성품에 기인하여 사람 사이의 감정이 잘 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식이 부모에 대해 지니는〉 친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사랑하고 공경하는 법을 가르치면 엄중히 하지 않아도 다스려지고 엄숙히 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 이는 선조先祖에 〈대한 효에〉 근본함을 말한다.
역주
역주1 故親生之膝下 : 고문본에는 ‘是故親生毓之(그러므로 어버이가 낳고 길러주는 〈존재로서〉)’로 되어 있다.
역주2 : 御注에는 孝라고 풀이되었지만, 天性으로 풀이한 董鼎의 풀이도 통용된다. 김용옥이 ‘인간의 본질’로 풀이한 것(김용옥, ≪효경한글역주≫, 통나무, 2010, 365~370쪽)이 그 예이다. 鄭太鉉은 “어버이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孝心은 성품에서 나온 것이고 人爲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鄭太鉉 譯註, ≪孝經大義≫, 傳統文化硏究會, 2009, 73쪽)”라고 하여 두 가지 관점을 동시에 취하였다.
역주3 臣聞愛子 敎之以義方 : ≪春秋左氏傳≫ 隱公 3년조에 보인다.
역주4 (飮)[食] : 저본에는 ‘飮’으로 되어 있으나, ≪禮記≫ 〈內則〉에 의거하여 ‘食’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5 (目)[日] : 저본에는 ‘目’으로 되어 있으나, 監本‧毛本에 의거하여 ‘日’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6 (外)[就] : 저본에는 ‘外’로 되어 있으나, 監本‧毛本에 의거하여 ‘就’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7 [曰學詩乎 對曰未也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詩 他日又獨立 鯉趨而過庭] : 저본에는 이 29자가 없으나 ≪論語≫ 〈季氏〉와 浦鏜의 ≪十三經注疏正字≫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8 (者) : 저본에는 ‘者’가 있으나, 注에 없는 글자이므로 衍文으로 처리하였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9 以適父母舅姑之所……斂簟而襡之 : ≪禮記≫ 〈內則〉에서 발췌 인용한 것이다.
역주10 [禮勝則離 樂勝則流] : 저본에는 이 8자가 없으나 ≪禮記≫ 〈樂記〉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北京大 標點本 〈校勘記〉 참조)
역주11 本於先祖 : 경문의 “그 말미암은 것이 근본이기 때문이다.”에서 ‘근본’을 孝로 풀이한 御注를 부연하여 ‘그 말미암은 바가 선조에 대한 孝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한 것이다.

효경주소 책은 2019.11.0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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