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疏]正義曰:自此至‘有補將來’爲第四段, 序作注之意,
, 敷暢經義, 望益將來也.
“
吳至中書僕射‧侍中, 領左國史, 封高陵亭侯.”
漢末擧
, 曹公辟, 不就, 仕吳, 以儒學聞. 爲老子‧
魏志
字孔才, 廣平邯鄲人. 仕魏, 歷散騎常侍, 賜爵關內侯, 著人物志百篇.”
此指言韋‧王所學, 在先儒之中, 如衣之有領袖也. 虞‧劉二家亞次之. 抑, 語辭也.
위소韋昭와 왕숙王肅은 선유先儒 중에 우두머리이고 우번虞飜과 유소劉邵는 또 그 다음이며,
疏
정의왈正義曰:여기부터 ‘유보장래有補將來’까지가 제4단락으로, 〈당 현종이〉 주注를 지은 뜻은 여섯 학자의 같고 다른 〈주해들을〉 들고 오경五經의 뜻을 취합하여 경문의 뜻을 부연하여 소통시킴으로써 장래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 것이라고 서술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오지 위요열전吳志 韋曜列傳〉에 “위요韋曜(204~273)는, 자는 홍사弘嗣이고 오군 운양吳郡 雲陽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그의 본명은 소昭인데, 진 문제晉 文帝(211~265, 사마소司馬昭)의 이름자를 피하여 요曜로 이름을 바꾸었다.
〈〈위요열전〉에 또〉 “오吳나라에서 벼슬하여 중서복야中書僕射‧시중侍中에 오르고 좌국사左國史를 담당하였으며 고릉정후高陵亭侯에 봉해졌다.”〈라고 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위지 왕숙렬전魏志 王肅列傳〉에 “왕숙王肅(195~256)은, 자는 자옹子雍이고 왕랑王朗의 아들이며, 위魏나라에서 벼슬하여 산기황문시랑散騎黃門侍郞‧산기상시散騎常侍‧태상太常을 지냈다.”라고 하였다. 〈오지 우번열전吳志 虞飜列傳〉에 “우번虞飜(164~233)은, 자는 중상仲翔이고 회계 여요會稽 餘姚 사람이다.
한漢나라 말기에 무재茂才로 천거받았을 때 조공曹公(조조曹操)이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오吳나라에서 벼슬하여 유학儒學으로 명성이 났다. ≪노자老子≫‧≪논어論語≫‧≪국어國語≫에 훈해訓解와 주석을 낸 것이 세상에 전해진다.”라고 하였다.
〈위지 류소열전魏志 劉邵列傳〉에 “유소劉邵는, 자는 공재孔才이고 광평 한단廣平 邯鄲 사람이다. 위魏나라에서 벼슬하여 산기상시散騎常侍를 지냈으며 관내후關內侯 작위를 하사받았다. ≪인물지人物志≫ 100편을 저술하였다.”라고 하였다.
이 대목은, 위소韋昭와 왕숙王肅이 연구한 것은 선유先儒들 중에서 마치 옷의 깃이나 소매와 같이 〈간요簡要하고〉 우번虞飜과 유소劉邵 두 학자는 그 다음임을 지적하여 말한 것이다. 억抑은 어조사語助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