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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

주역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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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匪我求童蒙이요 童蒙求我 初筮이요 再三이니 瀆則不告이니라
[注]筮 筮者 決疑之物也
童蒙之來求我 欲決所惑也 決之不一하여 不知所從이면 則復惑也
初筮則告 再三則瀆이니 瀆蒙也
能爲初筮 其唯二乎인저
以剛處中하여 能斷夫疑者也
[疏]‘蒙亨’至‘瀆則不告’
○正義曰:‘蒙’者, 微昧闇弱之名, 物皆蒙昧, 唯願亨通,
故云“蒙亨”.
‘匪我求童蒙 童蒙求我’者, 物旣闇弱而意願亨通, 卽明者不求於闇, 卽匪我師德之高明往求童蒙之闇.
但闇者求明, 明者不諮於闇, 故云“童蒙求我”也.
‘初筮告’者, 初者, 發始之辭, 筮者, 決疑之物,
童蒙旣來求我, 我當以初始一理剖決告之.
‘再三瀆 瀆則不告’者, 師若遲疑不定, 或再或三, 是褻瀆, 瀆則不告.
童蒙來問, 本爲決疑, 師若以廣深二義再三之言告之, 則童蒙聞之, 轉亦瀆亂,
自此以上, 解蒙亨之義, 順此上事, 乃得亨也, 故亨文在此事之上也.
不云元者, 謂時當蒙弱, 未有元也.
[疏]○注‘初筮告’
○正義曰:‘初筮則告’者, 童蒙旣來求我, 我當以初心所念所筮之義, 一理而剖告之.
‘再三則瀆 瀆蒙也’者, 若以棄此初本之意, 而猶豫遲疑, 岐頭別說, 則童蒙之人聞之, 褻瀆而煩亂也,
故再三則瀆, 瀆蒙也.
‘能爲初筮 其唯二乎’者, 以彖云“初筮告, 以剛中”者, 剛而得中, 故知是二也.
利貞하니라
[注]蒙之所利 乃利正也
夫明莫若聖이요 昧莫若蒙이니 蒙以養正 乃聖功也
然則養正以明이면 失其道矣
[疏]‘利貞’
○正義曰:貞, 正也, 言蒙之爲義, 利以養正,
故彖云“蒙以養正, 乃聖功也.” 若養正以明, 卽失其道也.
[疏]○注‘然則養正以明 失其道’
○正義曰:‘然則養正以明 失其道’者, 言人雖懷聖德, 若隱默不言, 人則莫測其淺深, 不知其大小, 所以聖德彌遠而難測矣.
若彰顯其德, 苟自發明, 卽人知其所爲, 識其淺深,
故明夷注云”, 是也.
此卦繫辭皆以人事明之.
彖曰
山下有險하고 險而止 蒙이라
[注]退則困險하고 進則閡山하여 不知所適 蒙之義也
[疏]正義曰:‘山下有險’者, 坎在艮下, 是山下有險.
艮爲止, 坎上遇止, 是險而止也.
恐進退不可, 故蒙昧也.
此釋蒙卦之名.
蒙亨 以亨行이니 時中也
[注]時之所願 惟願亨也 以亨行之하면 得時中也
[疏]正義曰:疊蒙亨之義.
言居蒙之時, 人皆願亨, 若以亨道行之, 于時則得中也,
故云“時中也.”
匪我求童蒙이요 童蒙求我 志應也
[注]我 謂非童蒙者也 非童蒙者 卽陽也
凡不識者 求問識者하고 識者 不求所告하며 闇者 求明하고 明者 不諮於闇이라
蒙之爲義 匪我求童蒙이요 童蒙求我也
童蒙之來求我 志應故也
[疏]正義曰:以童蒙闇昧之志, 而求應會明者.
故云“志應”也.
初筮告 以剛中也
[注]謂二也
二爲衆陰之主也 无剛失中이면 何由得初筮之告乎
再三이면이니 瀆則不告 瀆蒙也일새니 蒙以養正 聖功也
[疏]正義曰:‘再三瀆 瀆則不告 瀆蒙’者, 所以再三不告, 恐瀆亂蒙者.
自此以上, 彖辭摠釋蒙亨之義.
此一句釋經之利貞.
山下出泉이니
[注]山下出泉하여 未知所適 蒙之象也
[疏]正義曰:山下出泉, 未有所適之處, 是險而止,
故蒙昧之象也.
君子以果行育德하나니라
[注]果行者 初筮之義也 育德者 養正之功也
[疏]正義曰:君子當發此蒙道, 以果決其行, 告示蒙者, 則初筮之義.
‘育德’, 謂隱默懷藏, 不自彰顯, 以育養其德.
‘果行育德’者, 自相違錯, 若童蒙來問, 則果行也, 尋常處衆, 則育德, 是不相須也.
初六 發蒙호되 利用刑人이요桎梏이니 以往이면하니라
[注]處蒙之初하여 二照其上이라
蒙發也 蒙發疑明이면 刑說當也
以往吝 刑不可長이라
[疏]‘初六’至‘以往吝’
○正義曰:‘發蒙’者, 以初近於九二, 二以陽處中, 而明能照闇, 故初六以能發去其蒙也.
‘利用刑人 用說桎梏’者, 蒙旣發去, 无所疑滯, 故利用刑戮于人, 又利用說去罪人桎梏.
以蒙旣發去, 疑事顯明, 刑人說桎梏, 皆得當.
在足曰桎, 在手曰梏,
‘以往吝’者, 若以正道而往, 卽其事益善矣, 若以刑人之道出往, 往之, 卽有鄙吝.
象曰
利用刑人 以正法也
[注]刑人之道 道所
以正法制 利刑人也
[疏]正義曰:且刑人之道, 乃賊害於物, 是道之所惡, 以利用刑人者, 以正其法制, 不可不刑矣.
故刑罰不可不施於國, 鞭扑不可不施於家.
案, 此經刑人說人二事, 象直云“利用刑人”一者, 但擧刑重故也.
九二 包蒙吉이요 納婦吉이니 子克家로다
[注]以剛居中하여 童蒙所歸 包而不距 則遠近咸至
包蒙吉也
婦者 配己而成德者也 體陽而能包蒙하여 以剛而能居中하니 以此納配 物莫不應이라
納婦吉也
處于卦內하여 以剛接柔하고 親而得中하여 能幹其任하여 施之於子 克家之義
[疏]‘九二’至‘子克家’
○正義曰:包謂包含, 九二以剛居中, 童蒙悉來歸己, 九二能含容而不距, 皆與之決疑,
故得吉也.
九二以剛居中, 陰來應之.
婦謂配也, 故納此匹配而得吉也.
此爻在下體之中, 能包蒙納婦, 任內理中, 幹了其任, 卽是子孫能克荷家事,
故云“子克家”也.
[疏]○注‘親而得中’
曰:‘親而得中’者, 言九二居下卦之中央, 上下俱陰, 以己之兩陽, 迎接上下二陰, 陰陽相親,
故云“親而得中”也.
‘能幹其任’者, 旣能包蒙, 又能納匹, 是能幹其任.
象曰
子克家 剛柔
[疏]正義曰:以陽居於卦內, 接待群陰, 是剛柔相接,
故克幹家事也.
六三 勿用取女 見金夫하고 不有躬하여 无攸利하니라
[注]童蒙之時 陰求於陽하고 晦求於明하여 各求發其昧者也
六三 在下卦之上하고 上九 在上卦之上하니 男女之義也어늘
上不求三而三求上하니 女先求男者也
女之爲體 正行以待命者也 見剛夫而求之 曰 不有躬也라하니라
施之於女하면 行在不順이라
勿用取女하여 而无攸利하니라
[疏]‘六三’至‘无攸利’
○正義曰:‘勿用取女’者, 女謂六三, 言勿用取此六三之女.
所以不須者, 此童蒙之世, 陰求於陽, 是女求男之時也.
‘見金夫’者, 謂上九以其剛陽, 故稱金夫, 此六三之女, 自往求見金夫.
女之爲禮, 正行以待命而嫁, 今先求於夫, 是爲女不能自保其躬, 固守貞信, 乃非禮而動.
行旣不順, 若欲取之, 无所利益,
故云“不有躬, 无攸利”也.
象曰
勿用取女 行不順也일새라
[疏]正義曰:釋勿用取女之義.
所以勿用取此女者, 以女行不順故也.
六四 困蒙이니하도다
[注]獨遠於陽하고 處兩陰之中하여 闇莫之發이라
故曰 困蒙也 困於蒙昧하여 不能比賢以發其志하니 亦以鄙矣
故曰 吝也
[疏]正義曰:此釋六四爻辭也.
六四在兩陰之中, 去九二旣遠, 无人發去其童蒙,
故曰“困于蒙昧而有鄙吝.”
象曰
困蒙之吝 獨遠實也일새라
[注]陽稱實也
[疏]‘象曰’至‘獨遠實也’
○正義曰:‘獨遠實’者, 實謂九二之陽也, 九二以陽, 故稱實也.
六三近九二, 六五近上九, 又應九二, 唯此六四, 旣不近二, 又不近上,
故云“獨遠實也.”
[疏]○注‘陽實也’
○正義曰:陽主生息, 故稱實. 陰主消損, 故不得言實.
六五 童蒙이니하니라
[注]以夫陰質 居於尊位하여 不自任察하고 而委於二하여 付物以能하여 不勞聰明하고 功斯克矣
故曰童蒙吉이라하니라
[疏]正義曰:言六五以陰居於尊位, 其應在二, 二剛而得中, 五則以事委任於二, 不勞己之聰明, 猶若童稚蒙昧之人,
故所以得吉也.
象曰
童蒙之吉 順以巽也
[注]委物以能하여 不先不爲 順以巽也
[疏]‘象曰’至‘順以巽也’
○正義曰:‘順以巽也’, 釋童蒙之吉, 巽以順也, 猶委物於二.
順謂心順, 巽謂貌順.
故褚氏云“順者, 心不違也. 巽者, 外迹相卑下也.”
[疏]○注‘委物以能’至‘順以巽也’
○正義曰:‘委物以能’, 謂委付事物, 與有能之人, 謂委二也.
‘不先不爲’者, 五雖居尊位, 而專委任於二, 不在二先而首唱, 是順於二也.
不爲者, 謂不自造爲, 是委任二也.
不先於二, 是心順也, 不自造爲, 是貌順也.
上九 擊蒙이니 不利爲寇 利禦寇하니라
[注]處蒙之終하여 以剛居上하니 能擊去童蒙하여 以發其昧者也
曰 擊蒙也
童蒙願發而己能擊去之하여 合上下之願이라
莫不順也
爲之扞禦 則物咸附之 若欲取之 則物咸叛矣
不利爲寇 利禦寇也
[疏]正義曰:處蒙之終, 以剛居上, 能擊去衆陰之蒙, 合上下之願,
故莫不順從也.
若因物之來, 卽欲取之而爲寇害, 物皆叛矣,
故不利爲寇也.
若物從外來, 爲之扞禦, 則物咸附之,
故利用禦寇也.
象曰
利用禦寇 上下順也
[疏]正義曰:所宜利爲物禦寇者, 由上下順從故也.
言此爻旣能發去衆蒙, 以合上下之願, 又能爲之禦寇,
故上下彌更順從也.


은 형통하니, 내가 동몽童蒙을 구하는 것이 아니요 동몽童蒙이 나를 구하는 것이니, 처음 점치면 고해주고 두세 가지로 말하면 함이니, 하면 고하지 않는다.
’는, 《주역周易》 점을 치는 자가 의심스러운 것을 결단하는 물건이다.
동몽童蒙이 와서 나를 구함은 의혹하는 바를 해결하고자 해서이니, 해결해주기를 한 가지로 하지 않아서 따를 바를 알지 못하게 하면 더욱 의혹된다.
그러므로 처음 점치면 고하는 것이요, 두세 가지로 말하면 함이니, 몽매한 자를 독란瀆亂하게 한다.
‘처음 점침’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구이九二일 것이다.
으로서 에 처하여 의심나는 것을 결단할 수 있는 자이다.
의 [蒙亨]에서 [瀆則不告]까지
정의왈正義曰:[蒙] 작고 어둡고 암약闇弱한 이름이니, 물건이 모두 몽매하여 오직 형통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은 형통하다.[蒙亨]”라고 한 것이다.
[匪我求童蒙 童蒙求我] 물건이 이미 암약闇弱하여 마음에 형통하기를 원하면, 이는 바로 밝은 자가 어두운 자를 구하는 것이 아니니, 이 고명한 스승인 내가 어두운 동몽童蒙에게 가서 구하는 것이 아니다.
어두운 자가 밝은 자를 구할 뿐이요, 밝은 자는 어두운 자에게 자문하지 않으므로 “동몽童蒙이 나를 구한다.[童蒙求我]”라고 말한 것이다.
[初筮告] ‘’는 시작의 말이요, ‘’는 의심하는 것을 결단하는 물건이다.
동몽童蒙이 이미 와서 나를 구하면 나는 마땅히 처음의 한 가지 이치를 가지고 분석하고 결단하여 고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再三瀆 瀆則不告] 스승이 만약 지체하고 의심하여 결정하지 못해서 혹 두 가지로 하고 혹 세 가지로 말하면 이는 설독褻瀆(褻慢하고 번독煩瀆)함이니, 하면 고해주지 않는 것이다.
동몽童蒙이 와서 묻는 것은 본래 의심나는 것을 결단하기 위해서인데, 스승이 만약 넓고 깊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두세 가지의 말로 고해주면 동몽童蒙이 이 말을 듣고 더욱 더 독란瀆亂해진다.
그러므로 고하지 않음만 못한 것이다.
이로부터 이상은 ‘몽형蒙亨’의 뜻을 해석하였는데, 이 위의 일을 잘 따라야 비로소 형통할 수 있으므로 ‘형통하다’는 글이 이 일의 위에 있는 것이다.
’을 말하지 않은 것은 몽매하고 암약闇弱할 시기를 당하여 이 있지 않음을 이른다.
의 [初筮告]
정의왈正義曰:[初筮則告]동몽童蒙이 이미 와서 나를 구하거든 나는 마땅히 처음 마음에 생각한 바와 점친 바의 뜻을 가지고 한 가지 이치로 분석하여 고해주어야 한다.
[再三則瀆 瀆蒙也] 만약 이 처음 본래의 뜻을 버리고서 유예猶豫하고 주저하여 갈래를 나누어 따로 말해주면 몽매한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설독褻瀆하고 번란煩亂해진다.
그러므로 두세 가지로 말하면 한 것이니, 몽매한 자를 독란瀆亂하게 하는 것이다.
[能爲初筮 其唯二乎] 〈단전彖傳〉에 “처음 점치면 고함은 강중剛中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하면서 을 얻은 것이니, 그러므로 이것이 구이九二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함이 이롭다.
이 이로운 바는 바로 바름이 이로운 것이다.
밝음은 성인聖人보다 더한 것이 없고, 어두움은 몽매함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몽매함으로써 바름을 기름은 바로 성인聖人이다.
그렇다면 바름을 기르기를 밝음으로써 하면 그 도리를 잃은 것이다.
의 [利貞]
정의왈正義曰:은 바름이니, 몽괘蒙卦의 뜻이 바름을 기르는 것이 이로움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단전彖傳〉에 “몽매함으로써 바름을 기름은 바로 성인聖人이다.” 하였으니, 만약 바름을 기르기를 밝음으로써 하면 바로 그 도리를 잃은 것이다.
의 [然則養正以明 失其道]
정의왈正義曰:[然則養正以明 失其道] 사람이 비록 성인聖人을 간직하고 있으나 만약 숨기고 침묵하여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어서 그 크기를 알 수 없으니, 이 때문에 성인聖人이 더욱 깊고 클수록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 을 밝게 드러내어서 스스로 발명하면 사람들이 그 하는 바를 알아서 의 깊이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명이괘明夷卦에 “명이明夷로 사람들에게 임하여 밝음을 밖에 드러냄은 공교히 피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계사繫辭(彖辭와 효사爻辭)에 모두 사람의 일을 가지고 밝혔다.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아래에 험함이 있고 험하고 그치는 것이 몽괘蒙卦이다.
물러나면 험함에 곤궁하고 나아가면 에 막혀서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이 몽괘蒙卦의 뜻이다.
정의왈正義曰:[山下有險] 아래에 있으니 이것이 아래에 험함이 있는 것[山下有險]이다.
은 그침이 되는데 이 위로 그침을 만났으니 이것이 험하고 그치는 것[險而止]이다.
나아가고 물러감이 모두 불가할까 염려되므로 몽매한 것이다.
이는 몽괘蒙卦의 이름을 해석한 것이다.
몽형蒙亨’은 형통함으로써 행함이니 때에 맞는 것이요,
때에 원하는 바는 오직 형통함을 원하는 것이니, 형통함으로써 행하면 때에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정의왈正義曰:몽형蒙亨의 뜻을 거듭 해석한 것이다.
의 때에 거하여 사람들이 모두 형통하기를 원하니, 만약 형통할 방도로써 행하면 때에 을 얻음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때에 맞는 것이다.[時中也]”라고 말한 것이다.
내가 동몽童蒙을 구하는 것이 아니요 동몽童蒙이 나를 구함은 뜻이 응하는 것이다.
‘나’는 동몽童蒙이 아닌 자를 이르니, 동몽童蒙이 아닌 자는 바로 이다.
무릇 알지 못하는 자가 아는 자를 찾아가 묻고 아는 자는 고해줄 상대를 구하지 않으며, 어두운 자가 밝은 자를 구하고 밝은 자는 어두운 자에게 자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의 뜻은 내가 동몽童蒙을 구하는 것이 아니요, 동몽童蒙이 나를 구하는 것이다.
동몽童蒙이 나에게 와서 구함은 뜻이 응하기 때문이다.
정의왈正義曰:동몽童蒙의 어두운 뜻을 가지고 밝은 자를 구하여 응하고 만난다.
그러므로 “뜻이 응하는 것이다.[志應]”라고 말한 것이다.
‘처음 점치면 고함’은 강중剛中하기 때문이요,
구이九二를 말한 것이다.
구이九二는 여러 의 주체가 되니, 이 없고 을 잃으면 어떻게 처음 점쳐 고해줌을 얻을 수 있겠는가.
‘두세 가지로 말하면 함이니 하면 고하지 않는다.’는 것은 몽매한 자를 독란瀆亂하게 하기 때문이니, 몽매함으로써 바름을 기름이 성인聖人이다.”
정의왈正義曰:[再三瀆 瀆則不告 瀆蒙] 두세 가지로 말하면 고하지 않는 까닭은 몽매한 자를 독란瀆亂하게 할까 염려해서이다.
이로부터 이상은 단사彖辭에 ‘몽형蒙亨’의 뜻을 총괄하여 해석하였다.
[蒙以養正 聖功也] 몽매함으로써 숨기고 침묵하여 스스로 정도正道를 기름이 지극한 성인聖人을 이루는 것이다.
이 한 경문經文의 ‘이정利貞’을 해석한 것이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아래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몽괘蒙卦이니,
아래에서 물이 나와 아직 갈 바를 알지 못함은 몽괘蒙卦이다.
정의왈正義曰: 아래에서 물이 나와 아직 갈 곳이 있지 못하니, 이는 험하여 멈추는 것이다.
그러므로 몽매한 이 되는 것이다.
군자君子가 이것을 응용하여 행실을 과단성 있게 하며 을 기른다.”
‘행실을 과단성 있게 하는 것’은 처음 점치는 뜻이요, ‘을 기르는 것’은 바름을 기르는 이다.
정의왈正義曰:군자君子가 마땅히 이 몽매한 를 개발하여 그 행실을 과단성 있게 결단해서 몽매한 자에게 고해주고 보여줌은 처음 점치는 뜻이다.
[育德] 숨고 침묵하고 감추어서 스스로 밝게 드러내지 아니하여 그 을 기름을 이른다.
[果行育德] 서로 모순이 되니, 만약 동몽童蒙이 와서 물으면 행실을 과단성 있게 하여야 하고, 평소 여러 사람에게 대처할 때에는 을 길러야 하니, 이는 서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초육初六은 몽매함을 개발하되 사람을 형벌하는 것이 이롭고 질곡을 벗겨줌이 이로우니, 그대로 밀고 나가면 부끄러우리라.
의 처음에 처하여 구이九二가 그 위에서 비춘다.
그러므로 몽매함이 개발되는 것이니, 몽매함이 개발되고 의심스러운 것이 밝아지면 형벌을 벗겨줌이 마땅하다.
‘그대로 밀고 나가면 부끄러움’은 형벌을 장구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의 [初六]에서 [以往吝]까지
정의왈正義曰:[發蒙]초육初六구이九二에 가까우니, 구이九二양효陽爻로서 에 처하여 밝음이 어둠을 충분히 비출 수 있기 때문에 초육初六이 그 몽매함을 개발하여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利用刑人 用說桎梏]이 이미 개발되고 제거되어서 의심나고 막히는 바가 없으므로 사람을 형벌하는 것이 이롭고 또 죄인의 질곡을 벗겨주는 것이 이로운 것이다.
몽매함이 이미 개발되고 제거되어서 의심스러운 일이 밝게 드러나 사람을 형벌하고 질곡을 벗겨줌이 다 마땅함을 얻는 것이다.
발에 있는 것을 ‘’이라 하고, 손에 있는 것을 ‘’이라 하니, 《소이아小爾雅》에 “이라 하고, 이라 한다.” 하였다.
[以往吝] 만약 정도正道로써 가면 그 일이 더욱 좋을 것이요, 만약 사람을 형벌하는 를 가지고 밀고 나가면 감에 바로 비린鄙吝이 있는 것이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사람을 형벌하는 것이 이로움은 법을 바로잡는 것이다.”
사람을 형벌하는 에서 싫어하는 바이다.
법제를 바로잡기 때문에 사람을 형벌함이 이로운 것이다.
정의왈正義曰:또 사람을 형벌하는 는 바로 물건을 해치는 것이니, 이것은 에서 싫어하는 바인데, 사람을 형벌함이 이로운 것은 법제를 바로잡아 형벌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벌을 나라에 베풀지 않을 수 없고 채찍과 회초리를 가정에 베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살펴보건대 이 경문經文에는 사람을 형벌하고 사람의 질곡을 벗겨주는 두 가지 일이 있는데, 〈상전象傳〉에서는 다만 “사람을 형벌하는 것이 이로운[利用刑人]” 한 가지 일만을 말한 것은 다만 형벌이 중함을 들었기 때문이다.
구이九二는 몽매함을 포용하면 길하고 부인을 받아들이면 길하니, 자식이 집안일을 잘 맡도다.
으로 에 거하여 동몽童蒙이 귀의하는 바이니, 포용하고 막지 않으면 멀고 가까운 사람이 모두 이른다.
그러므로 몽매함을 포용하면 길한 것이다.
‘부인’이란 자기의 배필이 되어서 을 이루는 자인데, 체가 이면서 능히 몽매함을 포용하여 으로서 에 거하니, 이로써 배필을 받아들이면 물건이 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부인을 받아들이면 길한 것이다.
의 안에 처하여 으로 를 접하고 친하여 을 얻어서 능히 그 임무를 주관하여 자식에게 베풂은 ‘집안일을 잘 맡는’ 뜻이다.
의 [九二]에서 [子克家]까지
정의왈正義曰:‘’는 포용을 이르니, 구이九二으로서 에 거하여 동몽童蒙들이 모두 와서 자기에게 귀의하니, 구이九二가 능히 포용하고 막지 아니하여 그들과 모두 의심나는 것을 결단한다.
그러므로 길함을 얻는 것이다.
구이九二으로서 에 거하여 이 와서 응한다.
’는 배필을 이르므로 이 배필을 받아들여 길함을 얻는 것이다.
하체下體에 있어서 능히 몽매함을 포용하고 부인을 받아들이며 안을 맡고 가운데를 다스려서 그 임무를 주관하니, 이는 자손이 집안일을 잘 맡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식이 집안일을 잘 맡는다.[子克家]”라고 한 것이다.
의 [親而得中]
정의왈正義曰:[親而得中]구이九二하괘下卦의 중앙에 거하여 위아래가 모두 인데 자기의 두 으로써 위아래에 있는 두 을 영접하여 이 서로 친함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친하여 을 얻었다.[親而得中]”라고 한 것이다.
[能幹其任] 이미 몽매함을 포용하고 또 배필을 받아들이니, 이것이 능히 그 임무를 주관하는 것[能幹其任]이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자식이 집안일을 잘 맡음은 가 접하는 것이다.”
정의왈正義曰:으로서 의 안에 거하여 여러 을 접대하니, 이는 가 서로 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안일을 잘 주관하는 것이다.
육삼六三은 여자를 취함에 쓰지 말아야 하니, 돈 많은 지아비를 보고 몸을 두지 못하여 이로운 바가 없다.
동몽童蒙의 때에는 을 구하고 어두운 자가 밝은 자에게 구하여, 각각 그 몽매함을 개발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육삼六三하괘下卦의 위에 있고 상구上九상괘上卦의 위에 있으니, 의 뜻이다.
상구上九육삼六三을 구하지 않는데 육삼六三상구上九를 구하니, 이는 여자가 먼저 남자를 구하는 것이다.
여자의 는 행실을 바르게 하여 명령命令을 기다리는 자이니, 강한 지아비를 보고 구하므로 ‘몸을 두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을 여자에 베풀면 행실이 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를 취함에 쓰지 말아서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이다.
의 [六三]에서 [无攸利]까지
정의왈正義曰:[勿用取女] ‘’는 육삼六三을 이르니, 이 육삼六三의 여자를 취함에 쓰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취해서는 안 되는 까닭은 이 몽매한 세상엔 을 구하니, 이는 여자가 남자를 구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見金夫]상구上九양강陽剛이기 때문에 ‘금부金夫’라고 칭하였으니, 이 육삼六三의 여자가 스스로 가서 금부金夫를 찾아보는 것이다.
여자의 는 행실을 바르게 하여 명령을 기다려서 시집가는 것인데, 지금 먼저 남자에게 구하면 이는 여자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존해서 정조貞操신의信義를 굳게 지키지 못하는 것이니, 바로 가 아니면서 동하는 것이다.
행실이 이미 순하지 못한데 만약 그를 취하고자 하면 이로운 바가 없다.
그러므로 “몸을 두지 못하여 이로운 바가 없다.[不有躬 无攸利]”라고 한 것이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여자를 취함에 쓰지 말라는 것은 행실이 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왈正義曰:‘여자를 취함에 쓰지 말라.[勿用取女]’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이 여자를 취함에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여자의 행실이 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육사六四는 몽매함에 곤궁하니, 비린鄙吝하도다.
홀로 과 멀리 있고 두 의 가운데에 처하여 어두운 것을 개발해주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몽매함에 곤궁하다.’ 하였고, 몽매함에 곤궁하므로 어진 이를 가까이해서 자기의 뜻을 개발하지 못하니, 또한 비루하다.
그러므로 ‘비린鄙吝하다’ 한 것이다.
정의왈正義曰:이는 육사六四효사爻辭를 해석한 것이다.
육사六四가 두 의 가운데에 있고 구이九二와의 거리가 이미 멀어서 자기의 동몽童蒙을 개발하여 제거해줄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몽매함에 곤궁하여 비린鄙吝함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곤몽困蒙비린鄙吝함은 홀로 과 멀기 때문이다.”
이라 칭한다.
의 [象曰]에서 [獨遠實也]까지
정의왈正義曰:[獨遠實] ‘’은 구이九二을 이르니, 구이九二이기 때문에 ‘’이라고 칭한 것이다.
육삼六三구이九二와 가까우며 육오六五상구上九와 가깝고 또 구이九二와 응하는데, 오직 이 육사六四는 이미 구이九二와 가깝지 않고 또 상구上九와 가깝지 않다.
그러므로 “홀로 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獨遠實也]”라고 말한 것이다.
의 [陽實也]
정의왈正義曰:은 낳고 번식하는 것을 주장하므로 이라 칭하고, 은 사라지고 감손減損하는 것을 주장하므로 이라 칭할 수 없는 것이다.
육오六五동몽童蒙이니 길하다.
의 자질로 높은 지위에 거하여 스스로 맡아 살피지 않고 구이九二에게 위임해서 사물을 유능한 자에게 맡겨 총명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서 을 이룬다.
그러므로 “동몽童蒙이니 길하다.”라고 한 것이다.
정의왈正義曰:‘육오六五으로서 높은 지위에 거하여 그 응함이 구이九二에 있고 구이九二하면서 을 얻었는데 육오六五구이九二에게 일을 위임하여 자기의 총명함을 수고롭게 하지 않으니, 마치 어리고 몽매한 사람과 같다.
그러므로 길함을 얻는다.’는 말이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동몽童蒙의 길함은 순하고 공손하기 때문이다.”
유능한 이에게 사물을 맡겨서 먼저 하지 않고 스스로 하지 않음은 순하고 공손한 것이다.
의 [象曰]에서 [順以巽也]까지
정의왈正義曰:[順以巽也]동몽童蒙의 길함이 공손하고 순하기 때문임을 해석한 것이니, 사물을 구이九二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
’은 마음이 순함을 이르고, ‘’은 용모가 순함을 이른다.
그러므로 저씨褚氏(褚仲都)는 “이란 마음이 어기지 않는 것이요, 이란 외모의 자취가 서로 낮추는 것이다.” 하였다.
의 [委物以能]에서 [順以巽也]까지
정의왈正義曰:[委物以能] 사물을 맡겨서 유능한 사람에게 줌을 이르니, 구이九二에게 맡김을 이른다.
[不先不爲]육오六五가 비록 높은 지위에 있으나 오로지 구이九二에게 위임하여 구이九二의 앞에 있으면서 선창先唱하지 않으니, 이는 구이九二에게 순한 것이다.
불위不爲’는 스스로 만들고 하지 않음을 이르니, 이는 구이九二에게 위임한 것이다.
구이九二보다 먼저 하지 않음은 마음이 순한 것이요, 스스로 만들고 하지 않음은 용모가 순한 것이다.
상구上九는 몽매함을 공격함이니, 도적질함은 이롭지 않고 도적을 막는 것은 이롭다.
몽괘蒙卦의 끝에 처하여 으로서 윗자리에 있으니, 능히 동몽童蒙을 공격하여 제거해서 그 몽매함을 개발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몽매함을 공격한다.’고 말한 것이다.
동몽童蒙이 개발되기를 원하는데 자기가 능히 몽매함을 공격하여 제거해서 상하上下의 소원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순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몽매한 자를 위하여 막아주면 물건(사람)이 모두 따르고, 만약 몽매한 자를 취하고자 하면 물건이 모두 배반한다.
그러므로 도적질함은 이롭지 않고 도적을 막는 것은 이로운 것이다.
정의왈正義曰:몽괘蒙卦의 끝에 처하여 으로서 윗자리에 있으니, 능히 여러 의 몽매함을 공격하여 제거해서 상하上下의 소원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순종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만약 물건이 옴을 인하여 즉시 그를 취해서 도적질하여 해를 입히고자 하면 물건이 모두 배반한다.
그러므로 도적질함은 이롭지 않은 것이다.
만약 물건이 밖에서 왔을 적에 그를 위하여 막아주면 물건이 모두 따른다.
그러므로 도적을 막는 것은 이로운 것이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도적을 막음이 이로움은 상하上下가 순종하는 것이다.”
정의왈正義曰:마땅히 물건을 위하여 도적을 막아줌이 이로운 것은 상하가 순종하기 때문이다.
‘이 가 이미 능히 여러 몽매함을 개발하여 제거해서 상하의 소원에 부합하고 또 능히 그를 위하여 도적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상하가 더욱 순종한다.’는 말이다.


역주
역주1 再三瀆……故不如不告也 : ‘再三瀆’을 王弼과 孔穎達은 스승이 제자에게 두세 가지의 말로 고해주는 것으로 보았으나, 程伊川과 朱子는 물으러 온 童蒙이 두세 번 묻는 것으로 보았다. ‘瀆’은 기본적으로 번거로움(煩瀆)의 의미인데, 어지러움(瀆亂), 不敬함(褻瀆) 등의 의미도 지니는바, 王弼과 孔穎達의 해석에서는 어지러움의 의미가, 程伊川과 朱子의 해석에서는 不敬함의 의미가 조금 더 부각된다고 하겠다.
역주2 明夷注云……巧所避 : 明夷卦 〈彖傳〉 “밝음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明夷卦이니, 군자가 보고서 무리에 임한다. 어둠을 사용하여 밝히다.[明入地中 明夷 君子以蒞衆 用晦而明]”의 注에, “무리에 임하면서 밝음을 드러내면 백성을 가리고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蒙昧함으로 바름을 기르고 明夷로 무리에 임하는 것이다. 안에 밝음을 감춰야 비로소 밝음을 얻고 밝음을 밖으로 드러냄은 공교히 피하는 것이다.[蒞象顯明 蔽僞百姓者也 故以蒙養正 以明夷蒞象 藏明於內 乃得明也 顯明於外 巧所辟也]”라고 보인다.
역주3 蒙以養正……乃成至聖之功 : ‘蒙以養正’을 程伊川은 “蒙할 때(개발되지 않았을 때)에 바름을 기르는 것이 배움에 지극히 좋은 것이다.[養正於蒙 學之至善也]”라고 풀이하였는데, 孔穎達은 ‘몽매함으로 바름을 기름’으로 해석하였는바, 이때의 몽매함은 스승이 숨기고 침묵하여 밝게 고해주지 않음을 의미한다. ‘聖人之功’은 程伊川의 풀이에서는 ‘聖人이 되는 工夫’의 의미이고, 孔穎達의 해석에서는 ‘聖人이 하는 일’의 의미이다.
역주4 (彖)[象] : 저본에는 ‘彖’으로 되어 있으나, 《周易集解纂疏》에 의거하여 ‘象’으로 바로잡았다.[北京大本 참조]
역주5 說(탈) : 脫(벗음)과 같다.
역주6 小雅云……械謂之桎 : 이 내용은 《廣雅》에 “杽謂之梏 械謂之桎”이라고 보이는바, 孔穎達이 이를 《小爾雅》로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杽’와 ‘杻’는 모두 수갑의 의미로, 통용되는 글자이다.
역주7 : 오
역주8 (王氏)[正義] : 저본에는 ‘王氏’로 되어 있으나, 錢本‧宋本에 의거하여 ‘正義’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9 (節)[接] : 저본에는 ‘節’로 되어 있으나, 아래의 正義(疏)와 《周易集解》 등에 의거하여 ‘接’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取] : 저본에는 ‘取’가 없으나 宋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阮刻本 참조]

주역정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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