案周禮大卜三易에 云 一曰連山이요 二曰歸藏이요 三曰周易이라한대
鄭玄易贊及易論云 夏曰連山이요 殷曰歸藏이요 周曰周易이라하고
鄭玄又釋云 連山者는 象山之出雲이 連連不絶이요 歸藏者는 萬物莫不歸藏於其中이요 周易者는 言易道周普하여 无所不備라하니라
先儒因此
하여 하니 皆煩而无用
하니 今所不取
하노라
案世譜等群書에 神農을 一曰連山氏라하고 亦曰列山氏라하며 黃帝를 一曰歸藏氏라하니
旣連山, 歸藏이 竝是代號면 則周易稱周는 取岐陽地名이니 毛詩云 周原膴膴 是也라
又文王作易之時
에 正在
里
하시니 周德未興
하여 猶是殷世也
라
以此文王所演이라 故로 謂之周易하니 其猶周書, 周禮에 題周以別餘代라
先儒又兼取鄭說云 旣指周代之名이요 亦是普徧之義라하니 雖欲无所遐棄나 亦恐未可盡通이라
唯皇甫謐云 文王在羑里에 演六十四卦하여 著七八九六之爻하고 謂之周易이라하여 以此文王安周字라
살펴보건대, 《주례周禮》 〈춘관春官 태복太卜〉에 삼역三易을 일러 “첫 번째는 《연산連山》이요, 두 번째는 《귀장歸藏》이요, 세 번째는 《주역周易》이다.” 하였는데,
두자춘杜子春이 이르기를 “《연산連山》은 복희伏羲의 역易이고, 《귀장歸藏》은 황제黃帝의 역易이다.” 하였고,
정현鄭玄의 《역찬易贊》과 《역론易論》에는 “하夏나라의 역易을 《연산連山》이라 하고, 은殷나라의 역易을 《귀장歸藏》이라 하고, 주周나라의 역易을 《주역周易》이라 한다.” 하였다.
정현鄭玄은 또 해석하기를 “‘연산連山’은 산山에서 구름이 나옴이 계속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음을 형상한 것이고, ‘귀장歸藏’은 만물萬物이 그 가운데로 돌아가 숨지 않음이 없는 것이고, ‘주역周易’은 역易의 도道가 두루 넓어서 구비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비록 정현鄭玄의 이러한 해석이 있으나 다시 근거할 만한 글이 없다.
선유先儒들이 이 때문에 마침내 문文과 질質의 뜻으로 삼았으니, 이는 모두 번거로워 쓸모가 없으니, 이제 취하지 않는다.
살펴보건대, 《세보世譜》 등의 여러 책에 신농神農을 한편으로는 연산씨連山氏라 하고 또한 열산씨列山氏라 하였으며 황제黃帝를 한편으로는 귀장씨歸藏氏라 하였으니,
이미 ‘연산連山’과 ‘귀장歸藏’이 모두 왕조의 칭호이면 《주역周易》에 주周를 칭함은 주周나라 기양岐陽(岐山의 남쪽)의 지명을 취한 것으로, 《모시毛詩》에 “주나라 언덕이 아름답다.”는 것이 이것이다.
또 문왕文王이 《주역周易》을 지을 적에 바로 유리羑里에 갇혀 있었으니, 주周나라의 덕德이 아직 일어나지 않아서 아직도 은殷나라 때였다.
그러므로 주周라고 써서 은殷나라와 구별한 것이다.
이 역易은 문왕文王이 부연한 것이므로 《주역周易》이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주서周書〉와 《주례周禮》에 주周라고 써서 다른 시대와 구별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역위易緯에 이르기를 “왕조를 따라 주周라고 썼다.” 하였으니, 이것이 옳다.
선유先儒는 또 정현鄭玄의 설說을 겸해 취하여 이르기를 “이미 주周나라 왕조의 이름을 가리키고, 또 두루 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하였으니, 비록 한 가지도 버리지 않으려 하였으나 또한 다 통하지 못할 듯하다.
역易에 주周라고 쓴 것은 왕조를 인하여 주周를 칭한 것이니, 이는 선유先儒들이 다시 구별하여 해석하지 않았고,
오직 황보밀皇甫謐이 이르기를 “문왕文王이 유리羑里에 갇혀 있을 적에 64괘卦를 부연하여 칠七(少陽), 팔八(少陰), 구九(老陽), 육六(老陰)의 효爻를 드러내고 《주역周易》이라 했다.” 하여, 이 문왕文王을 가지고 ‘주周’자에 안착시켰다.
〈계사전繫辭傳〉의 글에는 연산連山과 귀장歸藏을 말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