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周易正義(3)

주역정의(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주역정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改邑不改井이니
[注]井 以不變爲德者也
[疏]正義曰:‘井’者, 物象之名也, 古者穿地取水, 以甁引汲, 謂之爲井.
此卦明君子修德養民, 有常不變, 終始无改, 養物不窮, 莫過乎井, 故以修德之卦取譬, 名之井焉.
‘改邑不改井’者, 以下明井有常德, 此明井體有常, 邑雖遷移, 而井體无改, 故云“改邑不改井”也.
无喪无得하며
[注]德有常也
[疏]正義曰:此明井用有常德, 終日引汲, 未嘗言損, 終日泉注, 未嘗言益, 故曰“无喪无得”也.
往來井井하나니
[注]不渝變也
汔至라도 亦未繘井하여
[注]已來至而未出井也
羸其甁이면하니라
[注]井道 以已出爲功也 幾至而覆 與未汲同也
[疏]正義曰:此下明井誡, 言井功難成也. 汔, 幾也, 幾, 近也. 繘, 綆也.
雖汲水以至井上, 然綆出猶未離井口, 而鉤羸其甁而覆之也.
棄其方成之功, 雖有出井之勞, 而與未汲不異, 喩今人行常德, 須善始令終,
言亦者, 不必之辭, 言不必有如此不克終者. 計一甁之水, 何足言凶.
以喩人之修德不成, 又云但取喩人之德行不恒, 不能愼終如始, 故就人言凶也.
彖曰 巽乎水而上水 井이니
[注]音 擧上之上이라
[疏]‘彖曰’至‘水井’
○正義曰:此就二體釋井之名義. 此卦坎爲水, 在上, 巽爲木, 在下, 又巽爲入, 以木入於水而又上水, 井之象也.
[疏]○注‘音擧上之上’
養而不窮也 改邑不改井 乃以剛中也
[注]以剛處中故 能定居其所而不變也
[疏]正義曰:‘井養而不窮’者, 歎美井德, 愈汲愈生, 給養於人, 无有窮已也.
‘改邑不改井 乃以剛中也’者, 此釋井體有常, 由於二ㆍ五也. 二ㆍ五以剛居中, 故能定居其所而不改變也.
不釋往來二德者, 无喪无得, 往來井井, 皆由此剛居中, 更无他義, 故不具擧經文也.
汔至亦未繘井 未有功也
[注]井以已成爲功이라
[疏]正義曰:水未及用, 則井功未成, 其猶人德被物, 亦是功德未就也.
羸其甁이라 是以凶也
[疏]正義曰:汲水未出而覆, 喩修德未成而止, 所以致凶也.
象曰 木上有水 井이니 君子以勞民勸相하나니라
[注]木上有水 井之象也 上水以養하여 養而不窮者也 猶助也 可以勞民勸助 莫若養而不窮也
[疏]正義曰:木上有水, 則是上水之象, 所以爲井.
‘君子以勞民勸相’者, 勞, 謂勞賚, 相, 猶助也. 井之爲義, 汲養而不窮,
君子以勞來之恩, 勤恤民隱, 使有成功, 則此養而不窮也.
初六 井泥不食이라 舊井无禽이로다
[注]最在井底하고 上又无應하여 沈滯滓穢 曰 井泥不食也라하니라
井泥而不可食 則是久井不見渫治者也 久井不見渫治 禽所不嚮이어든 而況人乎
一時所共棄舍也 井者 不變之物이요 居德之地어늘 恒德至賤하여 物无取也
[疏]‘初六幷泥’至‘无禽’
○正義曰:初六最處井底, 上又无應, 沈滯滓穢, 卽是井之下泥汚, 不堪食也, 故曰“井泥不食”也.
井泥而不可食, 卽是久井不見渫治, 禽所不嚮, 而況人乎. 故曰“舊井无禽”也.
[疏]○注‘井者不變之物’
○正義曰:‘井者 不變之物 居德之地’者, 繇辭稱改邑不改井, 故曰“井者, 不變之物.”
居德者, 繫辭又云“井, 德之地”, 故曰“居德之地”也. 注言此者, 明井旣有不變, 卽是有恒, 旣居德地, 卽是用德也,
今居窮下, 卽是恒德至賤, 故物无取也, 禽之與人, 皆共棄舍也.
象曰 井泥不食 下也 舊井无禽 時舍也
[疏]正義曰:‘下也’者, 以其最在井下, 故爲井泥也.
九二 井谷射鮒하고 甕敝漏로다
[注]谿谷出水 從上注下하여 水常射焉이라 井之爲道 以下給上者也어늘 而无應於上하여 反下與初
曰 井谷射鮒라하니 謂初也 失井之道하여 水不上出하고 而反下注 曰 甕敝漏也라하니라
夫處上宜下 處下宜上이니 井已下矣 而復下注하여 其道不交 則莫之與也
[疏]正義曰:‘井谷射鮒’者, 井之爲德, 以下汲上, 九二上无其應, 反下比初,
施之於事, 正似谷中之水, 下注敝鮒, 井而似谷, 故曰“井谷射鮒”也. 鮒, 謂初也. 子夏傳云“井中蝦䗫, 呼爲鮒魚也.”
‘甕敝漏’者, 井而下注, 失井之道, 有似甕敝漏水, 水漏下流, 故曰“甕敝漏”也.
象曰 井谷射鮒 无與也
[疏]正義曰:‘无與也’者, 井旣處下, 宜應汲上, 今反養下, 則不與上交, 物莫之與, 故曰“无與也.”
九三 井渫不食하여 爲我心惻이라 可用汲이니 王明하면 並受其福하리라
[注]渫 不停汚之謂也 處下卦之上하고 復得其位하여 而應於上하니 得井之義也
當井之義而不見食 修己全潔而不見用이라 爲我心惻也 猶使也
不下注而應上故 可用汲也 王明則見하여 旣嘉其行하고 又欽其用이라 曰 王明하면 並受其福也라하니라
[疏]‘九三井渫不食’至‘王明並受其福’
○正義曰:‘井渫不食’者, 渫, 治去穢汚之名也, 井被渫治, 則淸潔可食.
九三處下卦之上, 異初六井泥之時, 得位而有應於上, 非射鮒之象.
但井以上出爲用, 猶在下體, 未有成功, 功旣未成, 井雖渫治, 未食也, 故曰“井渫不食”也.
‘爲我心惻’者, 爲, 猶使也. 井渫而不見食, 猶人修己全潔而不見用, 使我心中惻愴, 故曰“爲我心惻”也.
‘可用汲 王明 並受其福’者, 不同九二下注而不可汲也, 有應於上, 是可汲也.
井之可汲, 猶人可用, 若不遇明王, 則滯其才用, 若遭遇賢主, 則申其行能.
賢主旣嘉其行, 又欽其用, 故曰“可用汲, 王明, 並受其福”也.
象曰 井渫不食 行惻也
求王明 受福也
六四 井甃 无咎리라
[注]得位而无應하여 自守而不能給上하니 可以修井之壞하여 補過而已
[疏]正義曰:‘六四 井甃 无咎’者, 案, 子夏傳曰“甃亦治也, 以塼壘井, 修井之壞, 謂之爲甃.”
六四得位而无應, 自守而已, 不能給上. 可以修井崩壞, 施之於人, 可以修德補過, 故曰“井甃, 无咎”也.
象曰 井甃无咎 修井也
[疏]正義曰:‘修井’者, 但可修井之壞, 未可上給養人也.
九五 井洌寒泉이라야이로다
[注]洌 絜也 居中得正하고 體剛不撓하여 不食不義하여 中正高絜이라 井洌寒泉然後 乃食也
[疏]正義曰:餘爻不當貴位, 但修德以待用, 九五爲卦之主, 擇人而用之.
以言剛正之主, 不納非賢, 必須行絜才高, 而後乃用, 故曰“井洌寒泉, 食”也.
象曰 寒泉之食 中正也일새라
[疏]正義曰:以中正者, 若非居中得正, 則任用非賢, 不能要待寒泉, 然後乃食也.
必言寒泉者, 淸而冷者, 水之本性, 遇物然後濁而溫, 故言寒泉以表絜也.
井收하니 勿幕이면 有孚元吉이니라
[注]處井上極하여 水已出井하여 井功大成 在此爻矣 曰 井收也라하니라
群下仰之以濟하니 淵泉由之以通者也 猶覆也 不擅其有하고 不私其利하면 則物歸之하여 往无窮矣
曰 勿幕이면 有孚元吉也라하니라
[疏]正義曰:收,-式冑反.-凡物可收成者, 則謂之收, 如五穀之有收也.
上六, 處井之極, 水已出井, 井功大成者也, 故曰“井收”也.
‘勿幕 有孚元吉’者, 幕, 覆也, 井功已成, 若能不擅其美, 不專其利, 不自掩覆, 與衆共之,
象曰 元吉在上 大成也
[疏]正義曰:上六所以能獲元吉者, 只爲居井之上, 井功大成者也.


井은 邑은 바뀌어도 우물은 바뀌지 않으니,
井은 변하지 않는 것을 德으로 삼는 것이다.
正義曰:[井] 物象의 이름이니, 옛날 땅을 파서 물을 취하고 甁(옹기병)으로 물을 끌어 올리는 것을 ‘井’이라 하였다.
이 卦는 君子가 德을 닦아 백성을 기를 적에 항상함이 있고 변치 않아서 시종 바뀜이 없음을 밝혔으니, 물건을 길러주어 다하지 않음이 우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德을 닦는 卦를 비유하여 이름을 ‘井’이라 한 것이다.
[改邑不改井] 이하는 우물에 떳떳한 德이 있음을 밝힌 것인바, 이는 井의 體가 떳떳함이 있음을 밝힌 것이니, 邑은 비록 옮겨가고 바뀌나 井의 體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邑은 바뀌어도 우물은 바뀌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으며,
德이 항상함이 있는 것이다.
正義曰:이는 井의 쓰임에 떳떳한 德이 있음을 밝힌 것이니, 종일토록 우물에서 물을 퍼 올려도 일찍이 줄어들지 않고, 종일토록 샘물이 주입되어도 일찍이 더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다.”라고 한 것이다.
오고감에 깨끗하고 고요[井井]하나니,
변하지 않는 것이다.
正義曰:이는 성질이 떳떳함을 밝힌 것이다. ‘井井’은 깨끗하고 고요한 모양이다. 가는 자와 오는 자가 모두 깨끗하고 고요하게 하기 때문에 사람이 왕래한다는 이유로 깨끗이 씻는 성질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고감에 깨끗하고 고요하다.”라고 한 것이다.
漢 古井(청동기)漢 古井(청동기)
거의 올라왔더라도 우물에서 두레박 끈을 올리지 못하여
이미 올라와 이르렀으나 아직 우물에서 나오지는 못한 것이다.
그 甁을 망가트리면 흉하다.
井의 道는 이미 올라온 것을 功으로 삼으니, 거의 이르러 엎어짐은 물을 긷지 않은 것과 똑같은 것이다.
正義曰:이 아래는 井의 경계를 밝혔으니, 井의 功은 이루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汔’은 幾(거의)이니, ‘幾’는 가까움이다. ‘繘’은 두레박의 끈이다.
비록 물을 길어 우물 위로 올라왔더라도 두레박 끈의 올라옴이 아직 우물의 입구를 떠나지 않았는데 갈고리로 그 甁을 가로채어 뒤엎는 것이다.
막 이루어지려는 功을 버리면 비록 우물물을 끌어올리는 수고로움이 있으나 물을 긷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으니, 지금 사람들이 떳떳한 德을 행할 적에 모름지기 시작을 잘하고 끝을 잘해야 함을 비유한 것이다.
만약 처음만 있고 끝마침이 없으면 반드시 흉함과 허물을 부른다. 그러므로 “거의 올라왔더라도 우물에서 두레박 끈을 올리지 못하여 그 甁을 망가트리면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亦’을 말한 것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말이니, 이와 같이 끝마치지 못하는 자가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님을 말한 것이다. 생각해보건대, 한 甁의 물을 뒤엎는 것을 어찌 흉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로써 사람이 德을 닦음에 이루지 못함을 비유하였고, 또 다만 사람의 德行이 항상 지속되지 못하여 능히 끝을 삼가기를 시작을 삼가는 것처럼 하지 못함을 취하여 비유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을 가지고 ‘凶’이라 말한 것이다.
〈彖傳〉에 말하였다. “〈나무가〉 물에 공손[巽]하여(〈나무가〉 우물 속으로 공손히 들어가서) 물을 올리는 것이 井이니,
〈‘上’의〉 音은 擧上(들어올린다)의 上자이다.
經의 [彖曰]에서 [水井]까지
○正義曰:이는 두 體를 가지고 井卦의 이름과 뜻을 해석한 것이다. 이 卦는 坎은 물이 되어 위에 있고 巽은 나무가 되어 아래에 있으며 또 巽은 들어감이 되니, 나무를 물속으로 들여보내고 또 물을 퍼올림은 井卦의 象이다.
○注의 [音擧上之上]
○正義曰:〈‘上’자를〉 去聲으로 읽을까 혐의하였다. 그러므로 音을 단 것이다.
井은 길러주어서 다하지 않는다. ‘邑은 바뀌어도 우물은 바뀌지 않음’은 바로 剛이 中에 있기 때문이요,
剛으로서 中에 처했기 때문에 능히 제자리를 정해 거해서 변치 않는 것이다.
正義曰:[井養而不窮] 井의 德이 물을 퍼 올릴수록 더욱 우물물이 생겨나서 사람에게 공급하여 길러줌이 다하고 그침이 없음을 歎美한 것이다.
[改邑不改井 乃以剛中也] 이는 井의 體가 떳떳함이 있음이 九二와 九五에 말미암음을 해석한 것이다. 九二와 九五가 剛으로서 中에 있기 때문에 능히 제자리를 정해 거해서 고치거나 변치 않는 것이다.
‘往來’의 두 德을 해석하지 않은 것은, ‘잃음이 없고 얻음이 없음’과 ‘오고 감이 井井함’은 모두 剛이 中에 거했기 때문이고 다시 다른 뜻이 없으므로 經文을 다 갖추어 거론하지 않은 것이다.
‘거의 올라오더라도 우물에서 두레박 끈을 올리지 못함’은 아직 功이 있지 않은 것이요,
井은 이미 이루어진 것을 功으로 삼는다.
正義曰:물이 쓰임에 미치지 못하면 우물의 功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니, 이는 사람의 德이 남에게 입혀지지 않으면 또한 功德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甁을 망가트렸다. 이 때문에 흉하다.”
正義曰:물을 퍼 올려 올라오기 전에 엎어짐은 德을 닦음에 이루지 못하고 중지함을 비유한 것이니, 이 때문에 흉함을 이루는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나무 위에 물이 있는 것이 井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백성을 위로하고 권면하여 돕는다.”
“나무 위에 물이 있는 것”은 井의 象이니, 물을 퍼 올려 길러주어서 길러주기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相’은 助(돕다)와 같다. 백성을 위로하고 권면하여 도울 수 있음은 길러주기를 다하지 않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正義曰:“나무 위에 물이 있는 것”은 바로 우물물을 퍼 올리는 象이니, 이 때문에 ‘井’이라 한 것이다.
[君子以勞民勸相] ‘勞’는 위로해줌[勞賚]을 이르고, ‘相’은 助와 같다. 井의 義는 우물물을 퍼 올려 길러주어서 다하지 않음이니,
君子가 위로함[勞來]의 은혜로써 백성의 고통을 부지런히 돌보고 백성들을 권면하고 도와주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成功이 있게 하면, 이는 길러주기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初六은 우물에 진흙이 있어 먹지 않는다. 오래된 우물에 새가 오지 않도다.
우물의 가장 밑에 있고 위에 또 應이 없어서 沈滯하여 탁하고 더럽다. 그러므로 “우물에 진흙이 있어 먹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우물에 진흙이 있어 먹을 수가 없는 것은, 이는 오랫동안 우물이 浚渫되어 정비되지 못한 것이니, 오랫동안 우물이 준설되어 정비되지 못하면 새도 향해 오지 않은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동시에 함께 버리는 바이다. 우물은 변치 않는 물건이요 德이 머무는 자리인데, 떳떳한 德이 지극히 賤하여 이를 취하는 물건이 없는 것이다.
經의 [初六幷泥]에서 [无禽]까지
○正義曰:初六은 우물의 가장 밑에 있고 위에 또 應이 없어서 沈滯하여 탁하고 더러우니, 바로 우물 밑에 더러운 진흙이 있어서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물에 진흙이 있어 먹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우물에 진흙이 있어 먹을 수가 없음은 바로 오랫동안 우물이 준설되어 정비되지 못한 것이니, 새도 향해 오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그러므로 “오래된 우물에 새가 오지 않도다.”라고 한 것이다.
○注의 [井者不變之物]
○正義曰:[井者 不變之物 居德之地] 繇辭(卦辭)에 “邑은 바뀌어도 우물은 바뀌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므로 “우물은 변치 않는 물건이다.”라고 한 것이다.
‘居德’은 〈繫辭傳〉에 또 이르기를 “우물은 德의 자리이다.”라고 하였으므로 “德이 머무는 자리이다.”라고 한 것이다. 注에 이것을 말한 것은, ‘우물이 이미 변치 않음이 있으면 바로 떳떳함이 있는 것이요, 이미 德이 머무는 자리이면 바로 德을 사용하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맨 아래에 있으니 이것은 바로 떳떳한 德이 지극히 賤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취하는 물건이 없어서 새와 사람이 모두 함께 버리는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우물에 진흙이 있어 먹지 않음’은 아래에 있기 때문이요, ‘오래된 우물에 새가 오지 않음’은 동시에 버리는 것이다.”
正義曰:[下也] 우물의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에 ‘우물에 진흙이 있음’이 되는 것이다.
[時舍也] 이미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새도 향해 오지 않는다면 바로 일시에 함께 버리는 것이다.
九二는 우물이 마치 골짜기 물이 鮒(두꺼비)에 쏟아지듯 하고 옹기병이 망가져 물이 새도다.
시내 골짜기에서 나오는 물은 위에서 아래로 주입되어 물이 항상 쏟아진다. 井의 道는 아래에서 위로 공급하는 것인데, 위에 應이 없어서 도리어 아래로 初六과 함께한다.
그러므로 “우물이 마치 골짜기 물이 鮒에 쏟아지듯 한다.”라 한 것이니, ‘鮒’는 初六을 이른다. 井의 道를 잃어서 물이 위로 나오지 않고 도리어 아래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옹기병이 망가져 물이 샌다.”라고 한 것이다.
위에 처하면 마땅히 아래로 내려와야 하고 아래에 처하면 마땅히 위로 올라가야 하니, 우물이 이미 아래에 있고 다시 아래로 주입되어 그 道가 사귀지 못하면 함께하는 이가 없는 것이다.
正義曰:[井谷射鮒] 井의 德은 아래에서 위로 퍼 올리는 것인데 九二가 위에 應이 없어서 도리어 아래로 初六과 가까이하니,
이것을 사람의 일에 베풀면 바로 골짜기 가운데의 물이 아래로 망가진 옹기병에 주입되어 鮒에 쏟아지는 것과 같은바, 우물인데 골짜기 물과 같으므로 “우물이 마치 골짜기 물이 鮒에 쏟아지듯 한다.”라고 한 것이다. ‘鮒’는 初六을 이른다. ≪子夏易傳≫에 “우물 가운데의 蝦䗫(두꺼비)를 ‘鮒魚’라고 부른다.”라고 하였다.
[甕敝漏] 우물인데 아래로 주입하면 우물의 道를 잃어서 마치 옹기병이 망가져 물이 새고 물이 샌 것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옹기병이 망가져 물이 샌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우물이 마치 골짜기 물이 鮒에 쏟아지듯 함’은 함께하는 이가 없는 것이다.”
正義曰:[无與也] 우물이 이미 아래에 처하였으면 마땅히 응당 위로 퍼 올려야 하는데 지금 도리어 아래를 길러주니, 그러면 위와 더불어 사귀지 못하여 물건이 함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함께하는 이가 없다.”라고 한 것이다.
九三은 우물이 준설되었으나 먹히지 아니하여 나로 하여금 마음이 슬프게 한다. 우물물을 길어 먹을 수 있으니, 왕이 현명하면 함께 그 福을 받으리라.
‘渫’은 〈준설하여〉 停汚(停滯하여 더러워짐)하지 않음을 이른다. 下卦의 위에 처하고 다시 지위를 얻어서 위에 應하니, 井의 義를 얻은 것이다.
井의 義에 합당하나 먹히지 않음은 몸을 닦아 온전히 깨끗하게 하였는데도 등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로 하여금 마음이 슬프게 하는 것이니, ‘爲’는 使(하여금)와 같다.
아래로 주입하지 않고 위에 應하므로 사용하여 우물물을 길을 수 있는 것이다. 왕이 현명하면 밝게 보아서 이미 그 행실을 아름답게 여기고 또 그 쓰임을 공경한다. 그러므로 “왕이 현명하면 함께 그 福을 받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經의 [九三井渫不食]에서 [王明並受其福]까지
○正義曰:[井渫不食] ‘渫’은 더러움을 정비하여 제거하는 이름이니, 우물이 浚渫되어 정비되었으면 청결하여 먹을 수 있다.
九三이 下卦의 위에 처하여 初六의 ‘우물에 진흙이 있음’의 때와 다르고, 正位를 얻고 위에 應이 있어서 ‘鮒에 물이 쏟아짐’의 象이 아니다.
다만 우물은 위로 올라오는 것을 쓰임으로 삼는데 아직도 下體에 있어서 成功이 있지 못하니, 功이 이미 이루어지지 못했으면 우물이 비록 준설되어 정비되었더라도 먹히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물이 준설되었으나 먹히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爲我心惻] ‘爲’는 使와 같으니, 우물이 준설되었는데도 먹히지 못함은 사람이 몸을 닦아 온전히 깨끗하게 하였는데도 등용받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나로 하여금 心中이 서글프게 한다. 그러므로 “나로 하여금 마음이 슬프게 한다.”라고 한 것이다.
[可用汲 王明 並受其福] 물이 아래로 주입되어 우물물을 길을 수 없는 九二와 같지 아니하여, 위에 應이 있으니 이는 우물물을 길을 수 있는 것이다.
우물에서 물을 길을 수 있음은 사람이 쓸 만한 것과 같으니, 만약 현명한 왕을 만나지 못하면 그 재주의 쓰임이 침체되겠지만 만약 현명한 군주를 만나면 그 행실과 재능을 펼 수 있다.
현명한 군주는 이미 그 행실을 아름답게 여기고 또 그 재주의 쓰임을 공경한다. 그러므로 “우물물을 길어 먹을 수 있으니, 왕이 현명하면 함께 그 복을 받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우물이 준설되었으나 먹히지 않음’은 행실이 서글픈 것이고,
행실이 정성에 감동되므로 “서글프다.”라고 한 것이다.
王의 현명함을 구함은 福을 받는 것이다.”
六四는 우물에 벽돌을 쌓으니, 허물이 없으리라.
正位를 얻었으나 應이 없어서 스스로 지킬 뿐이고 위에 공급하지 못하니, 우물의 파괴된 곳을 수리하여 허물을 補塡할 수 있을 뿐이다.
正義曰:[六四 井甃 无咎] 살펴보건대, ≪子夏易傳≫에 “‘甃’ 또한 다스림이니, 벽돌을 우물에 쌓아 올려 우물의 파괴된 곳을 수리함을 일러 ‘甃’라 한다.”라고 하였다.
六四가 正位를 얻었으나 應이 없어 스스로 지킬 뿐이요 위에 공급하지는 못한다. 우물의 무너진 곳을 수리할 수 있으니, 이것을 사람에게 베풀면 德을 닦고 허물을 補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물에 벽돌을 쌓으니, 허물이 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우물에 벽돌을 쌓으니, 허물이 없음’은 우물을 수리하는 것이다.”
正義曰:[修井] 다만 우물의 무너진 곳을 수리할 수 있을 뿐이요, 위로 공급하여 사람을 기를 수는 없는 것이다.
九五는 우물이 깨끗하여 시원한 샘물이어야 먹는다.
‘洌’은 깨끗함이다. 中에 거하고 正位를 얻고 體가 剛하여 흔들리지 않아서, 의롭지 않은 것을 먹지 아니하여 中正하고 高潔하다. 그러므로 우물이 깨끗하여 시원한 샘물인 뒤에야 비로소 먹는 것이다.
正義曰:나머지 爻는 귀한 자리를 담당하지 아니하여 다만 德을 닦아 등용되기를 기다릴 뿐이요, 九五는 卦의 주체가 되어서 사람을 가려 등용한다.
‘洌’은 깨끗함이다. 九五가 中에 거하고 正位를 얻고 體가 剛直하니, 이미 體가 강직하면 더러운 것을 먹지 아니하여 반드시 우물이 깨끗하여 시원한 샘물인 뒤에야 비로소 먹는다.
이는 ‘剛하고 정직한 君主가 賢者가 아닌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반드시 행실이 깨끗하고 재주가 높은 뒤에야 등용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물이 깨끗하여 시원한 샘물이어야 먹는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시원한 샘물을 먹음은 中正하기 때문이다.”
正義曰:‘中正하기 때문’이란 것은, 만약 中에 거하고 正位를 얻음이 아니면 賢者가 아닌 사람을 임용하게 되므로 시원한 샘물을 기다린 뒤에야 먹는 것을 바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시원한 샘물’이라고 말한 것은, 맑고 차가운 것은 물의 본성이니, 물이 다른 물건을 만난 뒤에야 흐려지고 따뜻해지므로 시원한 샘물을 말하여 깨끗함을 표현한 것이다.
上六은 우물의 〈功을〉 거두었으니, 덮개를 씌우지 않으면 忠信함이 있어 크게 吉하리라.
井卦의 上의 極에 처하여 물이 이미 우물에서 올라와 우물의 功이 크게 이루어짐이 이 爻에 있다. 그러므로 “우물의 〈功을〉 거두었다.”라고 한 것이다.
여러 아랫사람들이 우러러 구제되니, 샘물이 이로 말미암아 통하는 것이다. ‘幕’은 덮개와 같으니, 자기가 소유한 것을 〈덮개를 씌워〉 독점하지 않고 그 이익을 사사로이 하지 않으면 물건이 歸依하여 감이 무궁하다.
그러므로 “덮개를 씌우지 않으면 忠信함이 있어 크게 吉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正義曰:‘收’는, -式과 冑의 反切- 모든 물건이 수확[收成]한 것을 ‘收’라 하니, 五穀에 수확이 있는 것과 같다.
上六은 井의 極에 처하여 물이 이미 우물에서 올라와서 우물의 功이 크게 이루어진 자이다. 그러므로 “우물의 〈功을〉 거두었다.”라고 한 것이다.
[勿幕 有孚元吉] ‘幕’은 덮개이니, 井의 功이 이미 이루어짐에 만약 그 아름다움을 독점하지 않고 그 이익을 오로지하지 아니하여 스스로 우물을 덮지 않고 여러 사람과 함께 사용하면
물건이 귀의하는 바가 되어서 진실로 능히 큰 功을 이루어 크게 吉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덮개를 씌우지 않으면 忠信함이 있어 크게 吉하다.”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크게 길함으로 위에 있음은 크게 이루어진 것이다.”
正義曰:上六이 크게 길함을 얻은 이유는 다만 井의 위에 있어서 우물의 功이 크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 潔(깨끗하다)과 같다.
역주2 井井……故曰往來井井也 : ‘往來井井’을 王弼과 孔穎達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어도 자신의 깨끗하고 고요한 성질을 유지함’의 의미로 보았는바, ‘井井’을 ‘潔靜’으로 訓한 것이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井井’을 ‘우물을 우물로 씀’으로 訓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물을 길어도 다 없어지지 않고 내버려두어도 가득 차지 않음은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는 것이요, 이르는 자가 모두 씀을 얻음은 오고가는 이가 우물을 우물로 쓰는 것이다.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음은 그 德이 항상함이요, 오고가는 이가 우물을 우물로 사용함은 그 쓰임이 두루함이니, 항상함과 두루함은 우물의 道이다.[汲之而不竭 存之而不盈 无喪无得也 至者皆得其用 往來井井也 无喪无得 其德也常 往來井井 其用也周 常也周也 井之道也]”
역주3 汔幾也……凶 : ‘亦未繘井’을 王弼과 孔穎達은 ‘두레박 끈이 아직 우물 입구에서 완전히 나오지 않음’으로 보았는데, 朱子도 이와 같은바, ≪本義≫는 다음과 같다. “우물을 길어 거의 올라왔더라도 끈을 다 올리지 못하고서 병을 깨뜨리면 흉하다.[汲井幾至 未盡綆而敗其甁 則凶也]”
반면 程伊川은 ‘우물에 두레박 끈을 다 내리지 못함’으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우물은 濟用(쓰임을 이룸)을 功으로 삼으니, 거의 올라왔으나 씀에 미치지 못함은 또한 두레박 끈을 우물에 내리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다.[井 以濟用爲功 幾至而未及用 亦與未下䋴於井 同也]”
역주4 (獲)[覆] : 저본에는 ‘獲’으로 되어 있으나, 錢本ㆍ宋本에 의거하여 ‘覆’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5 嫌讀爲去聲 故音之也 : 上이 去聲일 경우에는 ‘높은 곳’, ‘上部’, ‘上天’, ‘尊長’ 등의 의미이다.
역주6 (事)[未] : 저본에는 ‘事’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未’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7 勸助百姓 : ‘勸相’을 王弼과 孔穎達은 ‘君子가 백성을 권면하여 도움’으로 해석하였는데, 程伊川과 朱子는 ‘백성들을 권면하여 그들끼리 서로 돕게 함[勸民使相助]’으로 해석하였다.
역주8 時舍也者……卽是一時共棄舍也 : ‘時舍也’를 王弼과 孔穎達은 ‘남들에게 버려짐’의 뜻으로 보았는데, 이는 程伊川과 朱子도 같다. ‘時舍也’는 乾卦 〈文言傳〉에도 “見龍在田 時舍也”라고 보이는데 여기에서 ‘舍’를 訓하면서는, 王弼과 孔穎達은 ‘통함[通舍]’이라고 하였고, 程伊川은 ‘그침[止]’이라고 하였고, 朱子는 乾卦에서와 마찬가지로 ‘버림’이라고 하였다. ≪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孔穎達이 ‘舍’를 ‘通’으로 訓한 것에 대하여 “舍가 어찌하여 通의 뜻이 되는지는 疏(풀이)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를 孔穎達이 전적으로 王弼의 注만을 따라 經文을 해석했다는 것의 근거로 들었다.
역주9 (照)[昭] : 저본에는 ‘照’로 되어 있으나, 監本ㆍ毛本에 의거하여 ‘昭’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0 行感於誠 故曰惻也 : ‘行惻也’를 王弼은 ‘사람의 행실이 깨끗이 닦였는데도 등용되지 못하여 서글픔’의 의미로 해석하였는데, 程伊川은 “우물이 준설되어 정비되었는데도 먹히지 않음은 바로 사람이 재주와 지혜가 있는데도 쓰이지 않는 것이니, 행하지 못함을 근심하고 서글퍼하는 것이다.[井渫治而不見食 乃人有才知而不見用 以不得行爲憂惻也]”라 하였고, 朱子는 “行惻은 길 가는 사람이 모두 서글프게 여기는 것이다.[行惻者 行道之人 皆以爲惻也]”라고 하였다.
역주11 九五居中得正……然後乃食 : ‘井洌寒泉 食’을 王弼과 孔穎達은 ‘九五가 中正하고 體가 剛直해서 깨끗하고 시원한 샘물인 뒤에야 마심’의 뜻으로 해석하였는데, 이를 人事로 설명하면 ‘九五가 剛直한 君主이기 때문에 사람을 등용할 때 오직 賢者만을 등용함’의 의미가 된다.
반면 程伊川은 ‘깨끗하여 시원한 샘물을 먹음’을 ‘우물의 道가 至善’함으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九五는 陽剛中正으로 尊位에 거하여 재주와 德이 盡善盡美하니, 우물이 깨끗하여 시원한 샘물이어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洌은 달고 깨끗함을 이르니, 우물물은 시원한 것을 아름답게 여긴다. 달고 깨끗한 시원한 샘물은 사람이 먹을 수 있으니, 우물의 도리에 至善함이 된다. 그러나 吉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우물은 위로 올라옴을 성공으로 삼으니, 위에 이르지 않으면 쓰임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上六에 이른 뒤에야 元吉을 말한 것이다.[五以陽剛中正 居尊位 其才其德盡善盡美 井洌寒泉食也 洌 謂甘潔也 井泉 以寒爲美 甘潔之寒泉 可爲人食也 於井道 爲至善也 然而不言吉者 井以上出爲成功 未至於上 未及用也 故至上而後言元吉]”
역주12 (九)[六] : 저본에는 ‘九’로 되어 있으나, 井卦의 上爻가 ‘⚋’이므로 ‘六’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3 勿幕有孚元吉者……有孚元吉也 : ‘有孚’에 대하여 王弼과 孔穎達은 특별히 해석하지 않았으나, 程伊川은 “‘有孚’는 항상함이 있어 변치 않음이니, 널리 베풀고 항상함이 있음은 大善의 吉함이다.[有孚 有常而不變也 博施而有常 大善之吉也]”라고 하였으며, 朱子는 “‘有孚’는 그 나옴이 源泉이 있어 다하지 않음을 이른다.[有孚 謂其出有源而不窮也]”라고 하였다.

주역정의(3)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