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注]妹者
는 少女之稱也
라 하니 少陰而
長陽
하여 說以動
은 嫁妹之象也
라
疏
[疏]正義曰:‘歸妹’者, 卦名也. 婦人謂嫁曰歸, 歸妹, 猶言嫁妹也.
然易論歸妹得名不同. 泰卦六五云“帝乙歸妹”, 彼據兄嫁妹, 謂之歸妹, 此卦名歸妹,
上咸卦明二少相感, 恒卦明二長相承, 今此卦以少承長, 非是匹敵, 明是妹從娣嫁, 故謂之歸妹焉.
, 嫡夫人及左右媵, 皆以姪娣從, 故以此卦當之矣. 不言歸姪者, 女娣是兄弟之行, 亦擧尊以包之也.
‘征凶 无攸利’者, 歸妹之戒也, 征, 謂進有所往也. 妹從娣嫁, 本非正
, 唯須自守卑退以事元妃,
彖曰 歸妹는 天地之大義也니 天地不交하면 而萬物不興하나니 歸妹는 人之終始也라
注
[注]陰陽旣合하고 長少又交는 天地之大義요 人倫之終始라
疏
[疏]正義曰:‘歸妹 天地之大義也 天地不交 而萬物不興’者, 此擧天地交合, 然後萬物蕃興, 證美歸妹之義.
所以未及釋卦名, 先引證者, 以歸妹之義, 非人情所欲, 且違於匹對之理.
蓋以聖人制禮, 令姪娣從其姑
而充妾媵者, 所以廣其繼嗣,
以象天地以少陰少陽ㆍ長陰長陽之氣共相交接, 所以蕃興萬物也.
‘歸妹 人之終始也’者, 上旣引天地交合爲證, 此又擧人事歸妹, 結合其義也.
天地以陰陽相合而得生物不已, 人倫以長少相交而得繼嗣不絶, 歸妹豈非天地之大義, 人倫之終始也.
注
[注]少女而與長男交는 少女所不樂也로되 而今說以動은 所歸必妹也니 雖與長男交나 嫁而係娣라 是以說也라
疏
[疏]正義曰:此就二體, 釋歸妹之義. 少女而與長男交, 少女所不樂也, 而今說以動, 所歸必妹也.
雖與長男交, 嫁而係於娣, 是以說也. 係娣所以說者, 旣係娣爲媵, 不得別適,
若其不以
, 更有
望之憂, 故係娣而行合禮, 說以動也.
疏
[疏]正義曰:此因二ㆍ三ㆍ四ㆍ五皆不當位, 釋征凶之義. 位旣不當, 明非正嫡, 因說動而更求進, 妖邪之道也, 所戒其征凶也.
疏
○正義曰:此因六三ㆍ六五乘剛, 釋无攸利之義. 夫陽貴而陰賤, 以妾媵之賤, 進求殊寵, 卽是以賤陵貴, 故无施而利也.
疏
○正義曰:彖以失位釋征凶, 乘剛釋无攸利, 而注連引言之者,
云“去初ㆍ上而論位分, 則三ㆍ五各在一卦之上, 何得不謂之陽.
ㆍ四各在一卦之下, 何得不謂之陰. 然則二ㆍ四, 陰位也, 三ㆍ五, 陽位也.”
陽應在上, 陰應在下, 今二ㆍ三ㆍ四ㆍ五並皆失位, 其勢自然柔皆乘剛,
其猶妾媵求寵, 其勢自然以賤陵貴, 以明柔之乘剛, 緣於失正而進也.
疏
[疏]正義曰:澤上有雷, 說以動也, 故曰“歸妹.”
注
[注]少女而與長男爲耦
는 非敵之謂
니 是娣從之義也
라 는 少女之稱也
니 少女之行
은 善莫若娣
라
夫承嗣以君之子
하면 雖幼而不
行
하고 少女以娣
하면 雖跛能履
니
斯乃恒久之義니 吉而相承之道也라 以斯而進이면 吉其宜也라
疏
○正義曰:‘歸妹以娣’者, 少女, 謂之妹, 從娣而行, 謂之歸. 初九以兌適震, 非夫婦匹敵, 是從娣之義也, 故曰“歸妹以娣”也.
‘跛能履’者, 妹而繼姊爲娣, 雖非正配, 不失常道, 譬猶跛人之足然. 雖不正, 不廢能履, 故曰“跛能履”也.
‘征吉’者, 少長非偶, 爲妻而行則凶焉, 爲娣而行則吉, 故曰“征吉”也.
疏
○正義曰:‘夫承嗣以君之子 雖幼而不妄行’者, 此爲少女作此例也. 言君之子宜爲嗣承, 以類妃之妹應爲娣也.
立嗣宜取長, 然君之子雖幼而立之, 不爲妄也. 以言行嫁宜匹敵, 然妃之妹雖至少, 而爲娣則可行也.
疏
[疏]正義曰:‘以恒也’者, 妹而爲娣, 恒久之道也.
注
[注]雖失其位나 而居內處中하니 眇猶能視하여 足以保常也라 在內履中하여 而能守其常이라 故로 利幽人之貞也라
疏
[疏]正義曰:九二不云歸妹者, 旣在歸妹之卦, 歸妹可知, 故略不言也.
然九二雖失其位, 不廢居內處中, 以言歸妹, 雖非正配, 不失交合之道,
‘利幽人之貞’者, 居內處中, 能守其常, 施之於人, 是處幽而不失其貞正也, 故曰“利幽人之貞”也.
疏
[疏]正義曰:‘未變常也’者, 貞正者, 人之常也, 九三失位, 嫌其變常不貞也, 能以履中不偏, 故云“未變常也.”
注
[注]室主猶存이어늘 而求進焉하여 進未値時라 故로 有須也라 不可以進이라 故로 反歸待時하여 以娣乃行也라
疏
[疏]正義曰:‘歸妹以須’者, 六三在歸妹之時, 處下體之上, 有欲求爲室主之象, 而居不當位, 則是室主
存.
室主旣存, 而欲求進, 爲未値其時也, 未當其時, 則宜有待, 故曰“歸妹以須”也.
注
[注]夫以不正无應而適人也면 必須彼道窮盡하여 无所與交니 然後乃可以往이라 故로 愆期遲歸하여 以待時也라
疏
[疏]正義曰:嫁宜及時, 今乃過期而遲歸者, 此嫁者之志, 正欲有所待而後乃行也.
六五는 帝乙歸妹니 其君之袂 不如其娣之袂良이요 月幾望이니 吉하니라
注
[注]歸妹之中에 獨處貴位라 故로 謂之帝乙歸妹也라 袂는 衣袖니 所以爲禮容者也라
其君之袂는 爲帝乙所寵也니 卽五也라 爲帝乙所崇飾故로 謂之其君之袂也라
配在九二어늘 兌少震長하니 以長從少는 不若以少從長之爲美也라 故로 曰 不若其娣之袂良也라하니라
位在乎中하여 以貴而行하여 極陰之盛이니 以斯適配하면 雖不若少나 往亦必合이라 故로 曰 月幾望이니 吉也라하니라
疏
○正義曰:‘帝乙歸妹’者, 六五居歸妹之中, 獨處貴位, 是帝王之所嫁妹也, 故曰“帝乙歸妹.”
‘其君之袂 不如其娣之袂良’者, 六五雖處貴位, 卦是長陽之卦, 若以爻爲人, 卽是婦人之道, 故爲帝乙之妹.
旣居長卦, 乃是長女之象, 其君卽五也. 袂, 衣袖也, 所擧斂以爲禮容, 帝王嫁妹, 爲之崇飾, 故曰“其君之袂”也.
象曰 帝乙歸妹 不如其娣之袂良也니 其位在中하여 以貴行也라
疏
○正義曰:‘帝乙歸妹 不如其娣之袂良’者, 釋其六五雖所居貴位, 言長不如少也, 言不必少女而從於長男也.
‘其位在中 以貴行也’者, 釋月幾望, 吉也. 旣以長適少, 非歸妹之美, 而得吉者,
其位在五之中, 以貴盛而行, 所往必得合, 而獲吉也.
上六은 女承筐이면 无實이요 士刲羊이면 无血이니 无攸利하니라
注
[注]羊은 謂三也라 處卦之窮하여 仰无所承하고 下又无應하니 爲女而承命이면 則筐虛而莫之與하고
爲士而下命
이면 則刲羊而无血
이니 刲
而无血
은 不應所命也
라 進退莫與故
로 曰 无攸利也
라하니라
疏
○正義曰:女之爲行, 以上有承順爲美, 士之爲功, 以下有應命爲貴.
上六處卦之窮, 仰則无所承受, 故爲女承筐, 則虛而无實. 又下无其應, 下命則无應之者, 故爲士刲羊, 則乾而无和,
故曰“女承筐, 无實, 士刲羊, 无血”, 則進退莫與, 故无所利.
疏
[疏]正義曰:‘承虛筐’者, 筐本盛幣, 以幣爲實, 今之无實, 正是承捧虛筐, 空无所有也.
注
‘妹’는 少女의 칭호이다. 兌는 少陰이 되고 震은 長陽이 되니, 少陰으로서 長陽을 받들어 기뻐하고 動함은 妹가 시집가는 象이다.
疏
正義曰:[歸妹] 卦의 이름이다. 婦人이 시집가는 것을 일러 ‘歸’라 하니, ‘歸妹’는 ‘妹를 시집보낸다.[嫁妹]’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러나 ≪周易≫에서 歸妹의 이름을 얻음을 논한 것이 똑같지 않다. 泰卦의 六五에 “帝乙歸妹”라 하였으니, 泰卦의 歸妹는 〈帝王인〉 오라비가 여동생을 시집보냄을 근거하여 ‘歸妹’라고 한 것이요,
이 卦의 이름이 ‘歸妹’인 것은 妹로서 언니를 따라 娣의 신분으로 시집감을 ‘歸妹’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初九 爻辭에 “妹가 시집가기를 娣로서 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위의 咸卦(䷞)는 少陽과 少陰이 서로 감동함을 밝혔고, 恒卦(䷟)는 長陽과 長陰이 서로 받듦을 밝혔는데, 지금 이 卦는 少女로서 長陽을 받드니, 이는 배필하여 대등함[匹敵]이 아니요, 妹가 娣가 되어 언니를 따라 시집가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歸妹’라 한 것이다.
옛날에 제후가 한 번에 아홉 여자를 취하여 嫡夫人과 左右의 媵妾이 모두 조카딸[姪]과 여동생[娣]을 데리고 갔다. 그러므로 이 卦를 가지고 여기에 해당시킨 것이다. ‘歸姪’을 말하지 않은 것은 ‘女娣’는 兄弟의 항렬이니, 또한 높은 것을 들어 여기에 포함시킨 것이다.
[征凶 无攸利] 歸妹의 경계이니, ‘征’은 나아가서 가는 바가 있음을 이른다. 妹가 娣가 되어 언니를 따라 시집감은 본래 정식 배필이 아니니, 오직 모름지기 낮추고 겸손함을 스스로 지켜서 元妃를 섬겨야 한다.
만약 망령되이 나아가 총애를 구하면 並后가 되어 凶咎의 敗함이 있다. 그러므로 “가면 凶하여 이로운 바가 없다.”라고 한 것이다.
〈彖傳〉에 말하였다. “‘歸妹’는 하늘과 땅의 大義이니, 하늘과 땅이 사귀지 못하면 萬物이 일어나지 못하니, 歸妹는 사람의 終과 始이다.
注
陰과 陽이 이미 합하고 長陽(長男)과 少陰(少女)이 또 사귐은 天地의 大義이고 人倫의 終始이다.
疏
正義曰:[歸妹 天地之大義也 天地不交 而萬物不興] 이는 하늘과 땅이 사귀어 합한 뒤에 萬物이 번성하고 일어남을 들어서 ‘歸妹’를 찬미한 뜻을 증명한 것이다.
卦의 이름을 미쳐 해석하지 않고 먼저 증거를 끌어온 까닭은 歸妹의 義는 人情에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요, 또 匹對(正嫡)의 이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聖人이 禮를 만들 적에 조카딸과 여동생으로 하여금 고모와 언니를 따라가게 하여 妾과 媵妾에 충당시킨 것은 뒤를 잇는 자손[繼嗣]을 넓히기 위함이니,
이로써 ‘하늘과 땅의 少陰과 少陽, 長陰과 長陽의 기운이 서로 交接함은 만물을 번성시키고 일으키기 위한 것임’을 형상한 것이다.
[歸妹 人之終始也] 위에서는 이미 하늘과 땅이 서로 합함을 이끌어 증명으로 삼았고, 여기에서는 또 사람 일의 ‘歸妹’를 들어서 그 뜻을 맺어 합한 것이다.
하늘과 땅은 陰과 陽이 서로 합하여 물건을 낳기를 그치지 않고, 人倫은 長男과 少女가 사귀어 繼嗣를 끊지 않으니, 歸妹가 어찌 하늘과 땅의 大義와 인륜의 終始가 아니겠는가.
기뻐하고 動함은 시집가는 것이 妹이기 때문이니,
注
少女로서 長男과 더불어 사귐은 少女가 좋아하지 않는 바이나 지금 기뻐하고 動함은 시집가는 바가 반드시 ‘妹’이기 때문이니, 〈少女가〉 비록 長男과 사귀나 시집감에 ‘娣’에 매여 있다. 이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疏
正義曰:이는 두 體를 가지고 歸妹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少女로서 長男과 더불어 사귐은 少女가 좋아하지 않는 바이나 지금 기뻐하고 動함은 시집가는 바가 반드시 ‘妹’이기 때문이다.
비록 長男과 사귀나 시집감에 ‘娣’에 매여 있다. 이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娣에 매여 있어 기뻐하는 이유는, 이미 娣에 매여 있어 媵妾이 되어서 따로 시집갈 수가 없으니,
만약 이로써 數를 구비하지 않으면 다시 수고롭게 바라는 근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娣에 매여 합하는 禮를 행하여 기뻐하고 動하는 것이다.
‘가면 凶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요
注
바르지 않은 자리를 밟고 있으면서 기뻐하고 動하여 나아감은 요망하고 간사한 道이다.
疏
正義曰:이는 九二ㆍ六三ㆍ九四ㆍ六五가 모두 자리가 마땅하지 않음을 인하여 ‘가면 흉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자리가 이미 마땅하지 않음은 正嫡이 아님을 밝힌 것이니, 기뻐하고 動함을 인하여 다시 나아감을 구함은 요망하고 간사한 道인바, ‘가면 흉함’을 경계한 것이다.
‘이로운 바가 없음’은 柔가 剛을 탔기 때문이다.”
注
가면 바르지 않은 凶함이 있고, 가만히 있으면 剛을 타는 거스름이 있다.
疏
○正義曰:이는 六三과 六五가 剛을 탐을 인하여 ‘이로운 바가 없음’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陽은 귀하고 陰은 천하니, 妾과 媵妾의 천한 신분으로서 나아가 특별한 총애를 구함은 바로 천한 자로서 귀한 이를 능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푸는 곳마다 이로움이 없는 것이다.
疏
○正義曰:〈彖傳〉은 正位를 잃음을 가지고 ‘가면 흉함’을 해석하였고, 剛함을 탄 것을 가지고 ‘이로운 바가 없음’을 해석하였는데, 注에서 이 둘을 연결하여 말한 것은,
≪周易略例≫에 “初位와 上位를 버리고 자리의 분수를 논하면, 三位와 五位는 각각 한 卦의 위에 있으니 어찌 陽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으며, 二位과 四位는 각각 한 卦의 아래에 있으니 어찌 陰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二位와 四位는 陰의 자리이고, 三位와 五位는 陽의 자리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陽은 응당 위에 있어야 하고 陰은 응당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이제 九二ㆍ六三ㆍ九四ㆍ六五가 모두 正位를 잃어서 그 형세가 자연 柔가 모두 剛을 타게 되었으니,
이는 妾과 媵妾이 은총을 구하면 그 형세가 자연 천한 자로서 귀한 이를 능멸하는 것과 같으니, 柔가 剛을 탐은 바름을 잃고서 나아감에 연유함을 밝힌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못 위에 우레가 있는 것이 歸妹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끝마침을 영원히 하고 병폐를 아는 것이다.”
注
歸妹는 서로 끝마치고 시작하는 道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끝마침을 영원히 하고 병폐를 아는 것이다.
疏
正義曰:못 위에 우레가 있음은 기뻐하고 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卦 이름을 ‘歸妹’라 한 것이다.
[君子以永終知敝] 歸妹는 서로 끝마치고 시작하는 道이다. 그러므로 君子가 이것을 본받아 그 끝마침을 길게 하니, 응당 끝마치지 못하는 병폐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初九는 妹가 시집가기를 娣로서(娣(妾媵)의 신분으로) 하니, 절름발이가 능히 밟고 가는 것이다. 가면 吉하리라.
注
少女로서 長男과 짝이 됨은 匹敵이 아님을 이르니, 娣로서 따라가는 義이다. 妹는 少女의 칭호이니, 少女의 감은 좋음이 娣만 한 것이 없다.
뒤를 잇기를 군주의 자식으로 하면 비록 어리나 망령되이 가지 않고, 소녀가 娣로서 가면 비록 절름발이이나 능히 밟을 수 있으니,
이는 바로 항상하고 오래하는 뜻이니, 吉하면서 서로 계승하는 道이다. 이로써 나아가면 吉함이 당연하다.
疏
○正義曰:[歸妹以娣] 少女를 ‘妹’라 이르고, 娣로서 언니를 따라감을 ‘歸’라 이른다. 初九가 兌로서 震에게 가서 夫婦의 匹敵이 아니니, 이는 娣로서 언니를 따라가는 義이다. 그러므로 “妹가 시집가기를 娣로서 한다.”라고 한 것이다.
[跛能履] 妹로서 언니를 뒤이음이 娣가 되니, 비록 正配가 아니나 떳떳한 道를 잃지 않았으니, 비유하면 절름발이의 발과 같다. 비록 바르지 않으나 능히 밟음을 廢하지 않으므로 “절름발이가 능히 밟고 간다.”라고 한 것이다.
[征吉] 少女와 長男은 올바른 짝이 아니어서 아내가 되어 가면 凶하고 娣가 되어 가면 吉하다. 그러므로 “가면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夫承嗣以君之子 雖幼而不妄行] 이는 少女를 위하여 이 例를 만든 것이다. 군주의 자식이 마땅히 後嗣가 되어 계승하여야 하니, 妃의 妹가 응당 娣(妾媵)가 되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후사를 세움은 마땅히 연장자를 취해야 하나 군주의 자식이 비록 어리더라도 세우는 것은 망령됨이 되지 않는다. 이는 ‘시집감은 마땅히 匹敵이 되어야 하나 妃의 妹가 비록 지극히 어리더라도 娣가 되면 시집갈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妹가 시집가기를 娣로서 함’은 항상하기 때문이요, ‘절름발이가 능히 밟고 감’은 吉함으로 서로 받드는 것이다.”
疏
正義曰:[以恒也] 妹로서 娣가 됨은 항상하고 오래하는 방도이다.
[吉相承也] 행함이 그 마땅함을 얻었으니, 이는 서로 받드는 道이다.
九二는 애꾸눈이 능히 보는 것이니, 幽人(隱士)의 貞함이 이롭다.
注
비록 正位를 잃었으나 안에 거하고 中에 처하였으니, 애꾸눈이 오히려 능히 보아 충분히 떳떳함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안에 있고 中을 밟고 있어서 능히 그 떳떳함을 지킨다. 그러므로 幽人의 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疏
正義曰:九二에 ‘歸妹’를 말하지 않은 것은 이미 歸妹卦에 있으니, 妹가 시집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생략하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九二가 비록 正位를 잃었으나 안에 거하고 中에 처함을 폐하지 않았으니, 歸妹를 가지고 말하면 비록 정식 배필이 아니나 서로 합하는 道를 잃지 않은 것인바,
마치 애꾸눈의 사람이 보는 것이 비록 바르지 못하나 능히 봄을 폐하지 않음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애꾸눈이 능히 본다.”라고 한 것이다.
[利幽人之貞] 안에 거하고 中에 처하여 능히 그 떳떳함을 지키니, 이것을 사람에게 베풀면 그윽하게(깊숙하게) 처하여 그 貞正함을 잃지 않는 자이다. 그러므로 “幽人의 貞함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幽人의 貞함이 이로움’은 떳떳함을 변치 않은 것이다.”
疏
正義曰:[未變常也] 貞正은 사람의 떳떳함이니, 九三이 正位를 잃어서 그 떳떳함을 변하여 貞正하지 못할까 혐의되는데, 능히 中을 밟아 편벽되지 않으므로 “떳떳함을 변치 않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六三은 歸妹가 기다림이니, 돌아와 때를 기다려서 娣로서 가는 것이다.
注
안방 주인[室主]이 아직 살아 있는데 잉첩이 나아가기를 구하여 나아감에 때를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기다림이 있는 것이다.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돌아와 때를 기다려서 娣로서 마침내 가는 것이다.
疏
正義曰:[歸妹以須] 六三이 歸妹의 때에 있고 下體의 위에 처하여 室主가 되기를 구하고자 하는 象이 있는데, 거한 것이 자리에 마땅하지 않으니, 이는 室主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室主가 이미 살아 있는데 〈잉첩이〉 나아가기를 구하고자 하면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 되니, 때에 마땅하지 못하면 마땅히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歸妹가 기다린다.”라고 한 것이다.
[反歸以娣] 이미 기다림이 있으면 나아갈 수가 없으니, 마땅히 돌아와 때를 기다려서 娣로서 마침내 간다. 그러므로 “돌아와 때를 기다려서 娣로서 가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歸妹가 기다림’은 마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未當也] 그 때에 마땅하지 않으므로 기다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九四는 歸妹가 시기(婚期)가 지남이니, 더디게 돌아가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注
바르지 못하고 應이 없으면서 남에게 가면 반드시 저쪽(상대방)의 道가 다하여 더불어 사귀는 바가 없기를 기다려야 하니, 그런 뒤에야 비로소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시기가 지나서 더디게 돌아가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疏
正義曰:九四가 아래에 거하여 지위를 얻고 또 그 應이 없으니, 이로써 남에게 가면 저쪽의 道가 다하여 더불어 사귀는 바가 없기를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시기가 지남이니, 더디게 돌아가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愆期’의 뜻은 기다림이 있은 뒤에 가는 것이다.”
疏
正義曰:시집감은 마땅히 제때에 미쳐야 하는데 이제 마침내 시기가 지나 더디게 돌아가니, 이는 시집가는 자의 뜻이 바로 기다리는 바가 있은 뒤에 비로소 가고자 하는 것이다.
六五는 帝乙이 여동생을 시집보냄이니, 그 군주의 소매가 그 娣의 소매가 아름다운 것만 못하고, 달이 거의 보름이 되었으니, 吉하다.
注
歸妹의 가운데 六五가 홀로 귀한 자리에 처하였다. 그러므로 “帝乙이 여동생을 시집보낸다.”라고 한 것이다. ‘袂’는 옷의 소매이니, 禮의 용모를 하는 것이다.
그 군주의 소매는 帝乙에게 총애받는 것이니, 바로 六五이다. 帝乙에게 높이 꾸며진 바가 되었으므로 “그 군주의 소매”라고 한 것이다.
〈六五의〉 배필이 九二에 있는데 兌는 少女이고 震은 長男이니, 長男으로서 少女를 따르는 것은 少女로서 長男을 따름이 아름다운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그 군주의 소매가 그 娣의 소매가 아름다운 것만 못하다.”라고 한 것이다.
자리가 中에 있으면서 귀함으로써 가서 陰의 盛함이 지극하니, 이로써 배필에게 가면 비록 少女만 못하나 가면 또한 반드시 합한다. 그러므로 “달이 거의 보름이 되었으니,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帝乙歸妹] 六五가 歸妹의 가운데에 거하여 홀로 귀한 자리에 처하였으니, 이는 帝王이 여동생을 시집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帝乙이 여동생을 시집보냄이다.”라고 한 것이다.
[其君之袂 不如其娣之袂良] 六五가 비록 귀한 자리에 처하였으나 卦는 바로 長陽의 卦이니, 만약 爻를 사람으로 치면 바로 婦人의 道이다. 그러므로 帝乙의 여동생이 되는 것이다.
이미 長卦에 거하였으면 바로 長女의 象이니, 그 군주는 바로 六五이다. ‘袂’는 옷의 소매이니, 들고 여미어 禮의 용모를 하는 것인바, 帝王이 여동생을 시집보낼 적에 높이 꾸며준다. 그러므로 “그 군주의 소매”라고 한 것이다.
〈六五의〉 배필이 九二에 있는데 兌는 少女이고 震은 長男이니, 長男으로서 少女를 따르는 것인바, 少女를 따르면 비록 그 군주가 높이 꾸며주는 소매가 있으나 오히려 少女로서 長男을 따름이 아름다운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그 娣의 소매가 아름다운 것만 못하다.”라고 한 것이다.
[月幾望 吉] 陰으로서 귀함이 盛함은 달이 보름에 가까운 것과 같으니,
이로써 배필에 나아가면 비록 少女로서 長男을 따르는 것만 못하나 귀함으로 시집가서 가면 반드시 뜻이 합하므로 吉함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달이 거의 보름이 되었으니,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帝乙이 여동생을 시집보냄이 그 娣의 소매가 아름다운 것만 못하니, 그 자리가 中에 있어서 귀함으로서 가는 것이다.”
疏
○正義曰:[帝乙歸妹 不如其娣之袂良] 六五가 비록 거한 바가 귀한 자리이나 長女가 少女만 못함을 말하였음을 해석한 것이니, 굳이 少女로서 長男을 따를 필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其位在中 以貴行也] ‘달이 거의 보름이 되었으니 吉함’을 해석한 것이다. 이미 長男으로서 少女에게 가면 歸妹의 아름다움이 아니나 吉함을 얻는 것은,
그 자리가 五의 中에 있어서 ‘귀함이 盛함’으로서 가기 때문이니, 가는 바에 반드시 합함을 얻어 吉함을 얻는 것이다.
上六은 여자가 광주리를 받들면 담겨진 것이 없고, 士(남자)가 羊을 베면 피가 없으니, 이로운 바가 없다.
注
羊은 六三을 이른다. 卦의 끝에 처하여 위로 받들 바가 없고 아래로 또 應이 없으니, 여자가 되어 명령을 받들면 광주리가 비어서 줄 것이 없고,
士가 되어 명령을 내리면 양을 벰에 피가 없으니, 양을 벰에 피가 없는 것은 명하는 바에 응하지 않는 것이다. 나아가고 물러감에 더부는 이가 없으므로 “이로운 바가 없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여자가 시집감은 위로 받들어 순종함이 있음을 아름다움으로 삼고, 士(남자)가 功으로 삼음은 아래가 命을 應함이 있는 것을 귀함으로 여긴다.
上六이 卦의 끝에 처하여 위로는 받들 바가 없으므로 여자가 되어 광주리를 받들면 비어서 담겨진 것이 없는 것이다. 또 아래에 應이 없어서 命을 내리면 應하는 자가 없으므로 士가 되어 양을 베면 피가 말라 화답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광주리를 받들면 담겨진 것이 없고, 士가 羊을 베면 피가 없다.”라고 하였으니, 나아가고 물러감에 더부는 이가 없으므로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上六이 ‘담겨진 것이 없음’은 빈 광주리를 받드는 것이다.”
疏
正義曰:[承虛筐] ‘광주리’는 본래 폐백을 담아서 폐백으로 가득 채우는 것인데, 지금 담겨진 것이 없음은 바로 빈 광주리를 받들어 텅 비어서 있는 바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