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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4)

주역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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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정의(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疏]正義曰:‘易曰困于石’至‘勿恒凶’ 此第四章.
凡有九節. 以上章先利用安身, 可以崇德, 若身自危辱, 何崇德之有.
故此章第一節, 引困之六三危辱之事, 以證之也.
易曰 困于石하며 據于蒺蔾 入于其宮이라도 不見其妻이라하니
子曰 非所困而困焉하니 名必辱하고 非所據而據焉하니 身必危하리니
旣辱且危하여 死期將至어니 其可得見耶
[疏]正義曰:困之六三, 履非其地, 欲上干於四, 四自應初, 不納於己, 是困於九四之石也.
三又乘二, 二是剛陽, 非己所乘, 是下向據於九二之蒺蔾也. 六三又无應, 是入其宮, 不見其妻, 死期將至, 所以凶也.
‘子曰非所困而困焉’者, 夫子旣引易文, 又釋其義, 故云“曰.”
非所困, 謂九四, 若六三不往犯之, 非六三之所困, 而六三彊往干之而取困焉.
‘名必辱’者, 以向上而進取, 故以聲名言之, 云“名必辱”也.
‘非所據而據焉’者, 謂九二也. 若六三能卑下九二, 則九不爲其害, 是非所據也.
今六三彊往陵之, 是非所據而據焉.
‘身必危’者, 下向安身之處, 故以身言之, 云“身必危”也.
易曰 公用射隼于高墉之上하여 獲之 无不利라하니 子曰 隼者 禽也 弓矢者 器也 射之者 人也
君子藏器於身하여 待時而動하나니 何不利之有리오 動而不括이라 是以 出而有獲하나니 語成器而動者也
[注]括 結也 君子待時而動이면 則无結閡之患也
[疏]‘易曰’至‘動者也’
○正義曰:以前章先須安身, 可以崇德, 故此第二節論明先藏器於身, 待時而動, 而有利也, 故引解之上六以證之.
三不應上, 又以陰居陽, 此上六處解之極, 欲除其悖亂, 而去其三也.
故公用射此六三之隼於下體高墉之上, 云自上攻下, 合於順道, 故獲之无不利也.
‘子曰隼者禽也’者, 旣引易文於上, 下以解之, 故言“子曰”也.
‘君子藏器於身 待時而動 何不利’者, 猶若射人持弓矢於身, 此君子若包藏其器於身, 待時而動, 何不利之有, 似此射隼之人也.
‘動而不括’者, 言射隼之人, 旣持弓矢, 待隼可射之動而射之, 則不括結而有礙也,
猶若君子藏善道於身, 待可動之時而興動, 亦不滯礙而括結也.
‘語成器而後動’者, 謂易之所說此者, 語論有見成之器, 而後興動也.
子曰 小人 不恥不仁하며 不畏不義 不見利 不勸하며 不威 不懲하나니 小懲而大誡 此小人之福也
易曰 校滅趾 无咎라하니 此之謂也
[疏]正義曰:此章第三節也. 明小人之道, 不能恒善, 若因懲誡而得福也. 此亦證前章安身之事, 故引易噬嗑初九以證之.
以初九居无位之地, 是受刑者, 以處卦初, 其過未深, 故屨校滅趾而无咎也.
善不積이면 不足以成名이요 惡不積이면 不足以滅身이어늘 小人 以小善爲无益而弗爲也하고 以小惡爲无傷而弗去也
惡積而不可揜하며 罪大而不可解 易曰 校滅耳이라하니라
[疏]正義曰:此章第四節也. 明惡人爲惡之極以致凶也. 此結成前章不能安身之事, 故引噬嗑上九之義以證之.
上九處斷獄之終, 是罪之深極者, 故有何校滅耳之凶.
案第一․第二節, 皆先引易文於上, 其後乃釋之,
此第三已下, 皆先豫張卦義於上, 然後引易於下以結之, 體例不同者, 蓋夫子隨義而言, 不爲例也.
子曰 危者 安其位者也 亡者 保其存者也 亂者 有其治者也
是故 君子安而不忘危하며 存而不忘亡하며 治而不忘亂이라 是以 身安而國家可保也
易曰 其亡其亡이라야 繫于苞桑이라하니라
[疏]正義曰:此第五節. 以上章有安身之事, 故此節恒須謹愼, 可以安身, 故引否之九五以證之.
‘危者 安其位者也’, 言所以今有傾危者, 由往前安樂於其位, 自以爲安, 不有畏愼, 故致今日危也.
‘亡者 保其存’者, 所以今日滅亡者, 由往前保有其存, 恒以爲存, 不有憂懼, 故今致滅亡也.
是故君子今雖復安, 心恒不忘傾危之事, 國之雖存, 心恒不忘滅亡之事, 政之雖治, 心恒不忘禍亂之事.
‘其亡其亡 其繫于苞桑’者, 言心恒畏愼, 其將滅亡, 其將滅亡, .
子曰 德薄而位尊하며 知小而謀大하며 力小而任重이면 鮮不及矣
易曰 鼎折足하고 覆公餗하니 其形渥하여이라하니 言不勝其任也
[疏]‘子曰’至‘其任也’
○正義曰:此第六節, 言不能安其身, 知小謀大而遇禍, 故引易鼎卦九四以證之.
‘鼎折足 覆公餗 其形渥 凶’者, 處上體之下, 而又應初, 旣承且施, 非己所堪, 故有折足之凶.
旣覆敗其美道, 災及其形, 以致渥凶也.
‘言不勝其任’者, 此夫子之言, 引易後以此結之, 其文少, 故不云“子曰”也.
子曰 知幾其神乎인저 君子上交不諂하며 下交不瀆하나니 其知幾乎인저
[注]形而上者 況之道하고 形而下者 況之器
於道不冥而有求焉이면 未離乎諂也 於器不絶而有交焉이면 未免乎瀆也 能无諂瀆 窮理者乎인저
[疏]正義曰:‘子曰知幾其神乎’至‘萬夫之望’者, 此第七節.
前章云精義入神, 故此章明知幾入神之事, 故引豫之六二以證之. 云“易曰介于石, 不終日, 貞吉.”
‘知幾其神乎’者, 神道微妙, 寂然不測, 人若能豫知事之幾微, 則能與其神道合會也.
‘君子上交不諂 下交不瀆’者, 上謂道也, 下謂器也. 若聖人知幾窮理, 冥於道, 絶於器, 故能上交不諂, 下交不瀆.
幾者 動之微 吉之先見者也
[注]幾者 去无入有 理而无形하여 不可以名尋이요 不可以形覩者也 唯神也 不疾而速하고 感而遂通이라
能朗然玄昭하여 鑒於未形也 하고 吉凶之彰 始於微兆 爲吉之先見也
[疏]正義曰:此釋幾之義也, 幾, 微也. 是已動之微, 動謂心動․事動.
初動之時, 其理未著, 唯纖微而已, 若其已著之後, 則心事顯露, 不得爲幾.
若未動之前, 又寂然頓无, 兼亦不得稱幾也. 幾是離无入有, 在有无之際, 故云“動之微”也.
若事著之後, 乃成爲吉, 此幾在吉之先, 豫前已見, 故云“吉之先見者也.”
此直云吉, 不云凶者, 凡豫前知幾, 皆向吉而背凶, 違凶而就吉, 无復有凶, 故特云吉也.
君子見幾而作하여 不俟終日하나니 易曰 介于石이라 不終日하여 貞吉이라하니
介如石焉이어니 寧用終日이리오 斷可識矣로다
[注]定之於始 不待終日也
[疏]正義曰:‘君子見幾而作 不俟終日’者, 言君子旣見事之幾微, 則須動作而應之, 不得待終其日, 言赴幾之速也.
‘易曰介于石 不終日 貞吉’者, 此豫之六二辭也, 得位居中, 故守介如石, 見幾則動, 不待終其一日也.
‘介如石焉 寧用終日 斷可識矣’者, 此夫子解釋此爻之時, 旣守志耿介, 如石不動, 纔見幾微, 卽知禍福, 何用終竟其日, 當時則斷可識矣.
君子知微知彰하며 知柔知剛하나니 萬夫之望이라
[注]此知幾其神乎인저
[疏]正義曰:‘君子知微知彰’者, 初見是幾, 是知其微, 旣見其幾, 逆知事之禍福, 是知其彰著也.
‘知柔知剛’者, 剛柔是變化之道, 旣知初時之柔, 則逆知在後之剛.
言凡物之體, 從柔以至剛, 凡事之理, 從微以至彰, 知幾之人, 旣知其始, 又知其末.
是合於神道, 故爲萬夫所瞻望也. 萬夫擧大略而言, 若知幾合神, 則爲天下之主, 何直只云萬夫而已. 此知幾其神乎者也.
子曰 顏氏之子 其殆庶幾乎인저 有不善이면 未嘗不知하고 知之 未嘗復行也
[注]在理則昧하고 造形而悟 顏子之分也 失之於幾 有不善이요
하여 不遠而復이라 知之 未嘗復行也
[疏]正義曰:‘子曰顏氏之子’至‘元吉’者, 此第八節.
上節明其知幾是聖人之德, 此節論賢人唯庶於幾, 未能知幾, 故引顏氏之子以明之也.
‘有不善 未嘗不知’者, 若知幾之人, 本无不善, 以顏子未能知幾, 故有不善.
不近於幾之人, 旣有不善, 不能自知於惡, 此顏子以其近幾, 若有不善, 未嘗不自知也.
‘知之未嘗復行’者, 以顏子幾, 旣知不善之事, 見過則改, 未嘗復更行之.
但顏子於幾理闇昧, 故有不善之事, 於形器顯著, 乃自覺悟, 所有不善, 未嘗復行.
易曰 不遠復하여 无祇悔하니 元吉이라하니라
[注]吉凶者 失得之象也 於理不盡이나 未至成形이라
得不遠而復하여 舍凶之吉하여 免夫祗悔하여 而終獲元吉이라
[疏]正義曰:以去幾旣近, 尋能改悔, 故引復卦初九以明之也.
以復卦初九, 旣在卦初, 則能復於陽道, 是速而不遠, 則能復也, 所以无大悔而有元吉也.
天地絪縕 萬物化醇하며 男女構精 萬物化生하나니라
[疏]正義曰:‘天地絪縕’至‘勿恒凶’, 此第九節也.
以前章利用安身以崇德也, 安身之道, 在於得一, 若已能得一, 則可以安身, 故此節明得一之事也.
‘天地絪縕 萬物化醇’者, 絪縕, 相附著之義. 言天地无心, 自然得一, 唯二氣絪縕, 共相和會, 萬物感之變化而精醇也.
‘男女構精 萬物化生’者, 構, 合也. 言男女陰陽相感, 任其自然, 得一之性, 故合其精, 則萬物化生也,
若男女无自然之性, 而各懷差二, 則萬物不化生也.
易曰 三人行이면 則損一人하고 一人行이면 則得其友라하니 言致一也
[注]致一而後 化成也
[疏]正義曰:此損卦六三辭也. 言六三, 若更與二人, 同往承上, 則上所不納, 是三人俱行, 幷六三不相納, 是則損一人也.
‘言致一也’者, 此夫子釋此爻之意, 謂此爻所論, 致其醇一也. 故一人獨行, 乃得其友也.
子曰 君子安其身而後動하며 易其心而後語하며 定其交而後求하나니 君子脩此三者 全也
危以動이면 則民不與也 懼以語 則民不應也 无交而求 則民不與也 莫之與 則傷之者至矣니라
[疏]正義曰:‘子曰君子安其身而後動’者, 此明致一之道, 致一者, 在身之謂.
若己之爲得, 則萬事得, 若己之爲失, 則萬事失也.
欲行於天下, 先在其身之一, 故先須安靜其身而後動, 和易其心而後語, 先以心選定其交而後求, 若其不然, 則傷之者至矣.
易曰 莫益之 或擊之리니 立心勿恒이니이라하니라
[注]夫虛己存誠이면 則衆之所不迕也 躁以有求 則物之所不
[疏]正義曰:此益之上九爻辭. 在无位高亢, 獨唱无和, 是莫益之也. 衆怒難犯, 是“或擊之”也.
勿, 无也, 由己建立其心, 无能有恒, 故凶危也. 易之此言, 若虛己存誠, 則衆之所與, 躁以有求, 則物之所不與也.


정의왈正義曰의 [易曰困于石]에서 [물항흉勿恒凶]까지 이는 제4장이다.
모두 아홉 개의 절이 있다. 위의 장에서는 먼저 ‘씀을 이롭게 하고 몸을 편안히 하면 덕을 높일 수 있음’을 말하였으니, 만약 몸이 스스로 위태롭고 욕되면 무슨 덕을 높임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장의 제1절에서 곤괘困卦䷮의 육삼효六三爻의 위태롭고 욕된 일을 인용하여 증명한 것이다.
蒺蔾蒺蔾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돌에 곤궁하며, 질려蒺藜를 점거하고 있으니(찔레의 위에 앉아 있으니),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만나보지 못하여 흉하다.”라고 하니,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 “곤궁할 바가 아닌데 곤궁하니 이름이 반드시 욕될 것이요, 점거할 바가 아닌데 점거하였으니 몸이 반드시 위태로울 것이다.
이미 욕되고 또 위태로워서 죽을 시기가 장차 이르렀으니, 아내를 어찌 만나볼 수 있겠는가.”
정의왈正義曰곤괘困卦육삼六三은 밟고 있는 것이 제자리가 아니고, 위로 구사九四를 범하고자 하나 구사九四는 본래 초륙初六하여 자기를 받아주지 않으니, 이는 구사九四의 돌에 곤궁한 것이다.
육삼六三이 또 구이九二를 타고 있으니, 구이九二강양剛陽이어서 자기(육삼六三)가 탈 수 있는 것이 아닌바, 이는 아래로 구이九二질려蒺蔾를 점거하고 있는 것이다. 육삼六三은 또 이 없으니, 이는 자기 집에 들어감에 아내를 만나보지 못하는 것이요, 죽을 시기가 장차 이르렀으니, 이 때문에 흉한 것이다.
[子曰非所困而困焉] 부자夫子가 이미 ≪주역周易≫의 글을 인용하고 또 그 글을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라고 말한 것이다.
곤궁할 바가 아니라는 것은 구사九四를 이르니, 만약 육삼六三이 가서 구사九四를 범하지 않으면 육삼六三이 곤궁할 바가 아닌데, 육삼六三이 억지로 가서 구사九四를 범하여 곤궁함을 취한 것이다.
[名必辱] 위로 향하여 진취進取하기 때문에 성명聲名으로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이름이 반드시 욕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隼
[非所據而據焉] 구이九二를 이른다. 만약 육삼六三이 능히 구이九二에게 낮추면 구이九二가 해로움이 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점거할 바가 아님’이다.
그런데 지금 육삼六三이 억지로 가서 구이九二를 능멸하니, 이것이 ‘점거할 바가 아닌데 점거함’이다.
[身必危] 아래로 몸을 편안히 할 곳을 향하기 때문에 몸으로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몸이 반드시 위태로울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이 높은 담 위에 있는 새매를 쏘아서 잡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니,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 “새매는 새요, 활과 화살은 기물器物이요, 쏘는 것은 사람이다.
군자君子가 기물을 몸에 간직하고서 때를 기다려 하니, 어찌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함에 맺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나가면 얻음이 있는 것이니, 기물을 이루고서 하는 자를 말한 것이다.”
’은 맺음이니, 군자君子가 때를 기다려 동하면 맺히는 근심이 없는 것이다.
의 [역왈易曰]에서 [動者也]까지
정의왈正義曰:앞 장에서는 먼저 ‘모름지기 몸을 편안히 하여야 을 높일 수 있음’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제2절은 먼저 ‘기물을 몸에 간직하고서 때를 기다려 동하면 이로움이 있음’을 논하여 밝힌 것이다. 이 때문에 해괘解卦䷧의 상륙上六을 인용하여 증명한 것이다.
육삼六三상륙上六에 응하지 않고 또 으로서 의 자리에 있으니, 이는 상륙上六해괘解卦에 처해서 패란悖亂한 자를 제거하여 육삼六三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체下體의 높은 담의 위에 있는 이 육삼六三의 새매를 쏜 것이니, 위에서 아래를 공격함은 순도順道에 부합하므로 잡음에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子曰隼者禽也] 이미 ≪주역周易≫의 글을 위에서 인용하고 아래에서는 이것을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라고 말한 것이다.
[君子藏器於身 待時而動 何不利] 이는 활 쏘는 사람이 활과 화살을 몸에 간직한 것과 같으니, 이 ‘군자가 만약 기물을 몸에 간직하고서 때를 기다려 동하면 어찌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라는 것인바, 이 새매를 쏘는 사람과 같은 것이다.
[動而不括] 새매를 쏘는 사람이 이미 활과 화살을 잡고 새매를 쏠 수 있는 동시動時를 기다려 쏘면 맺혀서 장애가 있지 않음을 말한 것이니,
군자가 를 몸에 간직하고서 동할 만한 때를 기다려 일어나 동하면 또한 막혀서 맺히지 않음과 같은 것이다.
[語成器而後動] ‘에서 이것을 말한 것은 현재 이루어져 있는 기물을 소유하고서 그런 뒤에 일어나 동함을 논한 것임’을 말한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 “소인小人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의롭지 못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로움을 보지 않으면 권면되지 않으며, 위엄을 보이지 않으면 징계되지 않으니, 작게 징계하여 크게 경계하는 이것이 소인小人이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신발에 차꼬를 채워 발꿈치가 없어진(안 보이는) 것이니, 허물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정의왈正義曰:이 장의 제3절이다. 소인小人가 항상 하지는 못하니, 만약 징계를 인하면 을 얻음을 밝힌 것이다. 이 또한 앞 장의 ‘몸을 편안히 하는 일’을 증명한 것이므로 ≪주역周易≫의 서합괘噬嗑卦초구初九 효사爻辭를 인용하여 증명한 것이다.
초구初九가 지위가 없는 자리에 거하였으니 이는 형벌을 받는 자이나, 시초始初에 처하여 그 허물이 아직 깊지 않으므로 차꼬를 신발에 채워 발꿈치가 없어져서 허물이 없는 것이다.
을 쌓지 않으면 이름을 이루지 못하고, 을 쌓지 않으면 몸을 멸할 수 없는데, 소인小人은 작은 을 무익하다 하여 하지 않고, 작은 을 무해하다 하여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쌓여서 가릴 수 없으며 죄가 커서 풀 수가 없으니,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차꼬를 메어 귀가 없어진 것이니, 흉하다.’라고 하였다.”
정의왈正義曰:이 장의 제4절이다. 한 사람은 을 행하기를 지극히 하여 흉함을 불러옴을 밝혔다. 이는 앞 장의 ‘몸을 편안히 하지 못하는 일’을 맺어 이룬 것이므로 서합괘噬嗑卦 상구上九 효사爻辭의 뜻을 인용하여 증명한 것이다.
상구上九옥사獄事를 결단하는 종말에 처하였으니, 이는 가 깊고 지극한 자이다. 그러므로 차꼬를 메어 귀가 없어진 흉함이 있는 것이다.
살펴보건대, 제1절과 제2절은 모두 먼저 ≪주역周易≫의 글을 위에 인용하고 그 뒤에 비로소 이것을 해석하였는데,
이 제3절 이하는 모두 먼저 의 뜻을 위에 미리 펼쳐놓고 그런 뒤에 ≪주역≫을 아래에 인용해 맺어서 체례體例가 똑같지 않으니, 이는 부자夫子가 뜻에 따라 말씀하여 일정한 준례로 삼지 않은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 “위태로움은 지위를 편안히 여겼기 때문이요, 망함은 보존됨을 보유하였기 때문이요, 화란禍亂은 다스려짐을 소유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편안하여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으며, 보존되어도 멸망함을 잊지 않으며, 다스려져도 화란을 잊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몸이 편안하고 국가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망할까 망할까 염려해야 뽕나무 뿌리에 매어놓듯 〈견고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의왈正義曰:이는 제5절이다. 위의 장에 몸을 편안히 하는 일이 있으므로 이 절은 ‘항상 모름지기 근신하면 몸을 편안히 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괘否卦䷋의 구오九五 효사爻辭를 인용하여 증명한 것이다.
[危者 安其位者也] ‘지금 기울고 위태로움이 있는 이유는 예전에 보유했던 지위를 편안히 여기고 즐거워해서 스스로 편안히 여겨 두려워하고 삼가는 마음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위태로움을 이룬 것임’을 말한 것이다.
[망자亡者 保其存] 지금 멸망하는 이유는 예전에 보존됨을 보유하여 항상 보존될 것이라고 여겨서 근심과 두려운 마음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멸망을 이룬 것이다.
[난자亂者 有其治] 지금 화란禍亂이 있는 이유는 예전에 다스려짐이 있었음을 스스로 믿고 항상 다스려질 것이라고 여겨서 근심하는 생각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화란禍亂을 부른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가 지금 비록 다시 편안하나 마음에 항상 기울고 위태로운 일을 잊지 않고, 나라가 비록 보존되나 마음에 항상 멸망하는 일을 잊지 않고, 정사가 비록 다스려지나 마음에 항상 화란禍亂의 일을 잊지 않는 것이다.
[其亡其亡 其繫于苞桑] 마음에 항상 두려워하고 삼가서 ‘장차 멸망할 것이다. 장차 멸망할 것이다.’라고 염려하여야 비로소 뽕나무 뿌리에 튼튼하게 매어두게 됨을 말한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 “이 적으면서 지위가 높으며 지혜가 적으면서 계책이 크며 힘이 적으면서 짐이 무거우면 〈가〉 미치지 않는 자가 드물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솥의 발이 부러져 에게 바칠 음식을 뒤엎으니, 그 모습이 젖어 있어 하다.’라고 하였으니,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의 [자왈子曰]에서 [其任也]까지
정의왈正義曰:이는 제6절이니, 몸을 편안하게 하지 못함은 지혜가 적으면서 계책이 커서 를 만나는 것임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정괘鼎卦구사九四 효사爻辭를 인용하여 증명한 것이다.
[정절족鼎折足 覆公餗 其形渥 ] 〈구사九四가〉 상체上體의 아래에 처하고 또 초륙初六과 응하니, 이미 위를 받들고 또 아래에 베풂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솥발이 부러지는 흉함이 있는 것이다.
이미 아름다운 를 뒤집어엎고 무너트려서 재앙이 자기 형체에 미쳐서 물에 젖어 흉함을 이룬 것이다.
[言不勝其任] 이는 부자夫子의 말씀이니, ≪주역周易≫을 인용한 뒤에 이로써 맺었으나 그 글이 적기 때문에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 “기미를 아는 것은 일 것이다. 군자君子는 위로 사귐에 아첨하지 않으며, 아래로 사귐에 번독(함부로)하지 않으니, 기미를 안 자일 것이다.
형이상形而上은 이 를 비유하고, 형이하形而下는 이 를 비유하였다.
명합冥合(은연중에 부합함)하지 못하여 구함이 있으면 아첨함을 떠나지 못하고, 를 끊지 아니하여 사귐이 있으면 번독함을 면치 못하니, 이미 능히 아첨과 번독함이 없음은 이치를 궁구한 자일 것이다.
정의왈正義曰의 [子曰知幾其神乎]에서 [만부지망萬夫之望]까지 이는 제7절이다.
앞 장에서는 ‘정묘精妙신화神化에 들어감’을 말하였으므로 이 장에서는 ‘기미를 앎이 신화神化에 들어가는 일임’을 밝혔다. 그러므로 예괘豫卦육이六二 효사爻辭를 인용하여 증명하여 “에 이르기를 ‘절개가 돌과 같다. 하루를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으니 하여 길하다.’ 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知幾其神乎] 가 미묘해서 적연寂然하여 측량할 수 없으니, 사람이 만약 일의 기미를 미리 알면 와 합치될 수 있는 것이다.
[君子上交不諂 下交不瀆] ‘’은 를 이르고, ‘’는 를 이른다. 만약 성인聖人이 기미를 알고 이치를 궁구하면 명합冥合하고 를 끊는다. 그러므로 능히 위로 사귐에 아첨하지 않고 아래로 사귐에 번독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명합冥合하지 못하여 구함이 있으면 아첨을 떠나지 못하고, 를 끊지 아니하여 사귐이 있으면 번독함을 면치 못하니, 능히 아첨과 번독함이 없음은 기미를 알고 이치를 궁구한 자일 것이다.
함이 은미한 것이니, 함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는 를 떠나 로 들어간 것이니, 이치로서 형체가 없어서 이름으로 찾을 수 없고 형상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은 빠르지 않아도 속히 이루어지고 감동하여 마침내 통한다.
그러므로 능히 밝게 현묘히 비추어서 나타나지 않을 때에 비추는 것이다. 한아름 되는 나무는 털끝만 한 데에서 시작되고, 길흉의 드러남은 작은 조짐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길함의 앞에 나타남이 되는 것이다.
정의왈正義曰:이는 ‘’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는 기미이다. 이는 이미 함이 은미한 것이니, 은 마음이 동하고 일이 동함을 이른다.
처음 동할 때엔 그 이치가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오직 작은 기미일 뿐이요, 만약 이미 드러난 뒤라면 마음과 일이 드러나서 기미가 될 수 없다.
동하기 전에는 또 적연寂然하여 완전히 이니, 이것도 겸하여 라고 칭할 수가 없다. 를 떠나 로 들어가서 의 사이에 있다. 그러므로 “동함이 은미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일이 드러난 뒤에 비로소 이루어져 길함이 되는 것이니, 이는 기미가 길함의 앞에 있어서 미리 앞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길함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다만 길함을 말하고 흉함을 말하지 않은 것은, 미리 앞서 기미를 알면 모두 길함으로 향하고 흉함을 등지며 흉함을 떠나 길함으로 나아가서 다시 흉이 있지 않아서이다. 그러므로 길함만을 말한 것이다. 제본諸本에 혹 〈경문의 ‘길지선견자야吉之先見者也’의 ‘’ 뒤에〉 ‘가 있으나 정본定本에는 없다.
군자君子가 기미를 보고 일어나서 하루를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으니,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절개가 돌과 같다. 하루를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으니 하여 하다.’라고 하였으니,
절개가 돌과 같으니 어찌 하루를 마칠 필요가 있겠는가. 〈당시에〉 결단함을 알 수 있다.
처음에 결정하므로 하루를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정의왈正義曰:[君子見幾而作 不俟終日] 군자君子가 이미 일의 기미를 보았으면 모름지기 동하여 일어나 이에 응해서 그날을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음을 말한 것이니, 기미에 달려가기를 신속히 함을 말한 것이다.
[易曰介于石 不終日 정길貞吉] 이는 예괘豫卦䷏의 육이六二 효사爻辭이니, 〈육이六二가〉 정위正位를 얻고 에 거하기 때문에 절개를 지킴이 돌과 같고 기미를 보면 동하여 하루를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介如石焉 寧用終日 斷可識矣] 이는 부자夫子가 ‘이 의 때에 이미 뜻을 지키기를 꼿꼿하게 하여 돌과 같이 동하지 않고 기미를 조금만 보면 즉시 화복禍福을 아니, 어찌 하루를 마칠 필요가 있겠는가. 당시에 결단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해석한 것이다.
군자君子는 은미함(기미)을 알고 드러남을 알며 을 알고 을 아니, 만부萬夫의 바람[]이다.”
이는 기미를 앎이 신묘한 자일 것이다.
정의왈正義曰:[君子知微知彰] 처음에 기미를 보니 이는 ‘은미함을 아는 것’이요, 이미 그 기미를 보고 나면 일의 화복禍福을 미리 아니 이는 ‘드러남을 아는 것’이다.
[知柔知剛] 변화變化이니, 이미 처음의 를 알았으면 뒤에 있는 을 미리 알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물의 로부터 에 이르고, 모든 일의 이치는 은미함으로부터 드러남에 이르니, 기미를 아는 사람은 이미 그 처음을 알고 또 그 끝을 앎’을 말한 것이다.
顔回顔回
이는 신도神道에 부합하므로 만부萬夫가 우러러보는 바가 된 것이다. 만부萬夫는 대략을 들어 말한 것이니, 만약 기미를 앎이 신도神道에 부합한다면 천하의 군주가 될 수 있으니, 어찌 다만 ‘만부萬夫’라고 말했을 뿐이겠는가. 이는 기미를 앎이 신묘한 자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 “안씨顏氏의 아들(안회顔回)은 기미를 사모함에 가까울 것이다. 불선不善이 있으면 알지 못한 적이 없고, 알면 다시 행한 적이 없었다.
이치에 있어서는 어둡고 형체에 나아가면 깨달음은 안자顏子(안회顔回)의 분수이다. 기미에서 잃기 때문에 불선不善이 있고,
둘에서 얻어서(알아서)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므로 알면 다시 행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정의왈正義曰의 [子曰顏氏之子]에서 [원길元吉]까지 이는 제8절이다.
위의 절은 기미를 아는 것이 바로 성인聖人임을 밝혔고, 이 절은 현인賢人이 오직 기미를 사모하지만 기미를 알지 못함을 논하였다. 그러므로 안씨顏氏의 아들을 인용하여 밝힌 것이다.
[기태서기호其殆庶幾乎] ‘성인聖人은 기미를 아는데, 안자顏子아성亞聖(두 번쨰 성인聖人)이라서 기미를 알지는 못하고 다만 사모함에 가까울 뿐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미를 사모함에 가까울 것이다.”라고 말하고, 또 ‘’를 어조사로 삼은 것이다.
[유부선有不善 미상부지未嘗不知] 기미를 아는 사람은 본래 불선不善함이 없는데, 안자顏子는 기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선이 있는 것이다.
기미에 가깝지 못한 사람은 이미 불선이 있어도 스스로 악함을 알지 못하지만, 이 안자는 기미에 가까워서 만약 불선이 있으면 스스로 알지 못한 적이 없는 것이다.
[知之未嘗復行] 안자顏子는 기미에 가까워서 이미 불선不善의 일을 알면 허물을 보는 즉시 고쳐서 다시 행한 적이 없는 것이다.
다만 안자는 기미의 이치에 어둡기 때문에 불선한 일이 있고, 형기形器에 밝게 드러나야 비로소 스스로 깨달아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불선을 다시 행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멀리 가지 않고 회복하여 큰 후회가 없으니 크게 길하다.’라고 하였다.
이다. 둘을 얻은 자는 이치에 미진하나 형기形器를 이룸에는 이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멀리 가지 않고 돌아와서 흉함을 버리고 길함으로 가서 큰 후회를 면하여 끝내 크게 길함을 얻은 것이다. ‘’는 큼이다.
정의왈正義曰:기미와 거리가 이미 가까워서 찾아 능히 허물을 고치고 뉘우친다. 그러므로 복괘復卦䷗의 초구初九효사爻辭를 인용하여 밝힌 것이다.
복괘復卦초구初九는 이미 시초始初에 있으니, 그렇다면 능히 로 돌아올 수 있는바, 이는 〈회복하기를〉 속히 하고 멀리 가지 않아서 능히 돌아오는 것이니, 이 때문에 큰 뉘우침이 없고 크게 길한 것이다.
천지天地가 서로 따르고 붙음에 만물萬物이 변화하여 정순精醇하며, 남녀男女을 맺음에 만물이 변화하여 생겨난다.
정의왈正義曰의 [天地絪縕]에서 [물항흉勿恒凶]까지 이는 제9절이다.
앞 장에 ‘씀을 이롭게 하기 위해 몸을 편안히 하여 을 높인다.’고 〈하였으니,〉 몸을 편안히 하는 을 얻음에 있으니, 만약 이미 을 얻었으면 몸을 편안히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절은 을 얻은 일을 밝힌 것이다.
[天地絪縕 萬物化醇] ‘인온絪縕’은 서로 따르고 붙는다는 뜻이다. ‘천지天地무심无心하여 자연히 을 얻었고, 오직 〈〉 두 기운이 서로 따르고 붙어 함께 하고 모여서 만물萬物이 감동하여 변화해서 정순精醇함’을 말한 것이니,
천지가 만약 마음이 있어 를 하면 만물로 하여금 변화하여 정순하게 하지 못한다.
[男女構精 萬物化生] ‘’는 합함이다. ‘이 서로 감동하여 자연에 맡기면 을 얻는다. 그러므로 그 을 합하면 만물萬物이 변화하여 생겨남’을 말하였으니,
만약 남녀에 자연의 이 없어서 각각 차이와 둘을 품고 있으면 만물이 변화하여 생겨나지 못한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라고 하였으니, 을 지극히 함을 말한 것이다.”
을 지극히 한 이후에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의왈正義曰:이는 손괘損卦육삼六三효사爻辭이다. ‘육삼六三이 만약 다시 두 사람(육사六四육오六五)과 함께 가서 상구上九를 받들려 하면 상구上九가 받아들이지 않으니, 세 사람이 함께 가면 육삼六三까지 아울러 서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바, 이는 곧 한 사람을 더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만약 육삼六三이 홀로 가면 상구上九가 용납하여 받아들이므로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만 못하고, 에 미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言致一也] 이는 부자夫子가 이 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이 에서 논한 바는 순일醇一(순일純一)을 지극히 한 것임’이라고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홀로 가야 비로소 그 벗을 얻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 “군자君子는 몸을 편안히 한 뒤에 하며, 마음을 하게 한 뒤에 말하며, 사귐을 한 뒤에 구하니, 군자는 이 세 가지를 닦으므로 온전한 것이다.
위태로우면서 하면 백성들이 함께하지 않고, 두려워하면서 말하면 백성들이 응하지 않고, 사귐이 없이 구하면 백성들이 함께하지 않으니, 함께하는 이가 없으면 해치는 자가 이르는 것이다.
정의왈正義曰:[子曰君子安其身而後動] 이는 을 지극히 하는 를 밝힌 것이니, 을 지극히 한다는 것은 몸에 달려 있음을 이른다.
만약 자기가 (잘함)을 행하면 만사萬事가 얻어지고, 만약 자기가 (잘못함)을 행하면 만사를 잃게 된다.
천하天下에 행하고자 하면 먼저 자기 몸을 로 함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먼저 모름지기 자기 몸을 안정시킨 뒤에 해야 하고, 자기 마음을 화평하게 한 뒤에 말해야 하고, 먼저 마음으로써 사귈 사람을 선정한 뒤에 구해야 하니,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해치는 자가 이르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보태주는 이가 없고 혹은 공격할 것이니, 마음을 세우기를 항상 하지 않은 것이니, 흉하다.’라고 하였다.”
자기 마음을 비우고 성신誠信함을 보존하면 무리가 거스르지 않고, 조급함으로써 구함이 있으면 남이 함께하지 않는다.
정의왈正義曰:이는 익괘益卦䷩의 상구上九 효사爻辭이다. 지위가 없는 자리에 있으면서 너무 높아서 홀로 함에 화답하는 이가 없으니, 이것이 ‘보태주는 이가 없음’이다. 여러 사람의 노여움은 범하기 어려우니, 이것이 ‘혹은 공격함’이다.
’은 없음이니, 자기가 그 마음을 세울 적에 능히 항상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흉하고 위태로운 것이다. ≪주역周易≫의 이 말은 만약 자기 마음을 비우고 성신誠信함을 보존하면 무리가 함께하고, 조급함으로써 구함이 있으면 남들이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주
역주1 [言] : 저본에는 ‘言’이 없으나, 阮元의 〈校勘記〉에 “≪周易集解≫에 ‘先’ 아래에 ‘言’자가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 (不)[子] : 저본에는 ‘不’로 되어 있으나, 閩本․監本․毛本에 의거하여 ‘子’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3 (三)[二] : 저본에는 ‘三’으로 되어 있으나, 阮元의 〈校勘記〉에 “살펴보건대 ‘三’은 ‘二’字가 잘못된 것이니, 毛本에는 바로 ‘二’로 되어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
역주4 (履)[屨] : 저본에는 ‘履’로 되어 있으나, 石經․岳本․閩本․監本․毛本 및 噬嗑卦 爻辭와 아래의 疏에 의거하여 ‘屨’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5 : ‘荷(메다)’와 같다.
역주6 亂者……故今致禍亂也 : ≪周易傳義大全≫의 小註에, 이에 대한 설명으로 ≪朱子語類≫의 문답이 다음과 같이 채록되어 있다. “혹자가 물었다. ‘위태로움은 자기의 지위를 편안하게 여길 만하다고 생각하여 경계하고 두려워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위태로워지고, 망함은 자기의 보존됨을 항상 보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망하게 되고, 禍亂은 자기가 다스려짐을 소유했다고 여기기를 「善을 소유함」의 소유함처럼 여기기 때문에 어지러워지는 것입니까?’ 朱子가 답하였다. ‘나도 예전에는 이와 같이 설명하였었는데, 뒤에 보니 保字를 억지로 끌어다가 맞추어 설명한 것이니, 이는 다만 여전히 위태로움과 망함과 화란을 두려워하는 뜻을 간직하고 있으면 그 지위를 편안히 할 수 있고 그 보존됨을 보유할 수 있고 그 다스려짐을 소유하게 된다는 뜻이다.[或問 危者 以其位爲可安 而不知戒懼 故危 亡者 以其存爲可常保 是以亡 亂者 是自有其治 如有其善之有 是以亂 朱子曰 某舊也如此說 看來 保字 說得較牽强 只是常有危亡與亂之意 則可以安其位 保其存 有其治]” 주자의 이러한 설명 때문에 諺解에서는 이 경문을 “危할까 하는 자는 그 位를 安하는 자요, 亡할까 하는 자는 그 存을 保하는 자요, 亂할까 하는 자는 그 治를 둔 자이니”로 풀이하였다.
역주7 乃繫于苞桑之固也 : 否卦 九五 爻辭의 孔穎達의 疏에 “‘苞’는 뿌리이다.[苞 本也]”라고 하였으므로, 이에 의거하여 ‘苞桑’을 ‘뽕나무 뿌리’로 번역하였다.
역주8 君子上交不諂……知幾窮理者乎 : 韓康伯과 孔穎達은 ‘上’을 形而上의 道로, ‘下’를 形而下의 器로 해석하여 ‘上交不諂’을 ‘위로는 道를 구하지 않음’으로, ‘下交不瀆’을 ‘아래로는 器를 번거롭게 하지 않음’으로 풀이한 듯하나, 그 내용이 분명하지 못하다.
한편 朱子는 경문을 ‘윗사람과 사귈 적에 아첨하지 않고, 아랫사람과 사귈 적에 함부로 대하지 않음’으로 해석하였다. ≪周易傳義大全≫에는 ≪朱子語類≫에 보이는 주자의 말이 다음과 같이 채록되어 있다. “‘君子上交不諂 下交不瀆’이란 것은, 윗사람과 사귈 적에는 공손함을 귀하게 여기니 공손하면 곧 아첨에 가까워지고, 아랫사람과 사귈 적에는 온화함과 평이함을 귀하게 여기니 온화하면 곧 함부로 함[瀆]에 가까워진다. 공손은 아첨과 서로 가깝고, 온화함은 함부로 함과 서로 가까워 다만 작은 것을 다투니, 이렇게 되면 곧 방탕함[流]에 이르는 것이다.[君子上交不諂 下交不瀆 蓋上交貴於恭遜 恭則便近於諂 下交貴於和易 和則便近於瀆 蓋恭與諂相近 和與瀆相近 只爭些子 便至于流也]”
역주9 合抱之木 起於毫末 : ≪道德經≫에 “한아름 되는 나무는 털끝만 한 데에서 생긴다.[合抱之木 生於毫末]”라고 보인다.
역주10 諸本或有凶字者 其定本則无也 : 朱子는 “≪漢書≫에는 ‘吉之’의 중간에 ‘凶’자가 있다.”라고 하였다.
역주11 得之於二 : ‘二’는 일의 失․得이나 吉․凶이 이미 드러난 상태, 즉 기미를 지나 일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十三經注疏正字≫에서는 “살펴보건대, 二는 바로 ‘둘로 인하여 백성의 행실을 구제한다.[因貳以濟民行]’의 ‘둘[貳]’이니, 吉과 凶의 두 가지 이치를 이른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아래 5장에 보이는바, ‘貳’에 대해 韓康伯은 ‘得과 失’이라 하고, 孔穎達은 ‘吉과 凶’이라고 하였다.
역주12 (雖) : 저본에는 ‘雖’가 있으나, ≪十三經注疏正字≫에 “‘雖’자는 아마도 衍文인 듯하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13 其殆庶幾乎者……又以殆爲辭 : 孔穎達은 경문의 ‘庶幾’를 ‘기미를 알지는 못하고 다만 사모함’으로 해석하였다. 반면 朱子는 “‘庶幾’는 가깝다는 뜻이니, 道에 가까움을 말한 것이다.[庶幾 近意 言近道也]”라고 하였다.
역주14 (通)[近] : 저본에는 ‘通’으로 되어 있으나, 錢本․宋本에 의거하여 ‘近’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5 (一)[二] : 저본에는 ‘一’로 되어 있으나, 岳本․宋本․古本․足利本과 위의 注에 ‘得之於二’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6 祗 大也 : 程伊川과 朱子는 ‘祗’를 抵로 보아 ‘이르다’의 뜻으로 해석하고, ‘无祇悔’를 ‘후회에 이르지 않음’으로 풀이하였다.
역주17 天地絪縕……則不能使萬物化醇也 : 朱子는 ‘化醇’은 氣化이고 ‘化生’은 形化라고 하여 둘을 구분하였는바, 氣化는 천지의 기운이 뭉쳐 사람이나 물건이 처음 생기는 것이고, 形化는 男(수컷)과 女(암컷)의 결합에 의하여 개개의 물건이 생기는 것을 이른다.
역주18 若六三獨行……三不及一也 : 程伊川과 朱子는 損卦䷨가 원래 下卦는 乾卦☰이고 上卦는 坤卦☷인 泰卦䷊에서 온 것으로 보았다.
損卦 六三 爻辭에 대한 程伊川의 ≪易傳≫은 다음과 같다. “三人은 아래의 세 陽과 위의 세 陰을 이른다. 세 陽이 함께 가면 九三을 덜어 위에 더하고, 세 陰이 함께 가면 上六을 덜어 六三을 만드니, 세 사람이 갈 때에 한 사람을 더는 것이다.……上과 三은 비록 본래 서로 應하나 〈上과 三〉 두 爻가 오르내림으로 말미암아 한 卦가 다 이루어졌으니, 둘이 서로 친한 것이다. 初九․九二 두 陽爻와 六四․六五 두 陰爻는 德이 같아 서로 친하며, 六三은 上九와 응하여 모두 둘이 서로 친하니, 그 뜻이 專一하여 모두 벗을 얻음이 된다.[三人謂下三陽上三陰 三陽同行 則損九三以益上 三陰同行 則損上六以爲三 三人行 則損一人也……上與三 雖本相應 由二爻升降而一卦皆成 兩相與也 初二二陽 四五二陰 同德相比 三與上應 皆兩相與 則其志專 皆爲得其友也]”
한편 朱子는 “下卦는 본래 乾인데 上爻를 덜어 坤에 더하였으니 세 사람이 갈 때에 한 사람을 더는 것이요, 한 陽이 올라가고 한 陰이 내려왔으니 한 사람이 갈 적에 벗을 얻는 것이다.[下卦本乾而損上爻以益坤 三人行而損一人也 一陽上而一陰下 一人行而得其友也]”라고 하였다.
역주19 (欲)[與] : 저본에는 ‘欲’으로 되어 있으나, 岳本․宋本․古本․足利本에 의거하여 ‘與’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주역정의(4)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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