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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3)

주역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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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苦節 不可貞이니라
節은 형통하니, 괴로운 節(節制)은 바르게 할 수가 없다.
[疏]正義曰:節, 卦名也. 彖曰“節以制度”, 雜卦云“節, 止也”, 然則節者, 制度之名.
正義曰:‘節’은 卦의 이름이다. 〈彖傳〉에 “制度(法令과 禮制)로써 節(節制)해야 한다.”라고 하였고, 〈雜卦傳〉에 “節은 그침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制度의 명칭인 것이다.
節, 止之義, 制事有節, 其道乃亨, 故曰“節, 亨.” 節須得中,
節은 그친다는 뜻이니, 일을 制裁하여 節度가 있으면 그 道가 비로소 형통하다. 그러므로 “節은 형통하다.”라고 한 것이다. 節는 모름지기 中을 얻어야 한다.
節을 하기를 지나치게 괴롭게 해서 刻薄함에 상하면 사람들이 견뎌내지 못하니, 다시 바르게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괴로운 節은 바르게 할 수가 없다.”라고 한 것이다.
彖曰 節亨 剛柔分而剛得中일새요
〈彖傳〉에 말하였다. “‘節은 형통함’은 剛과 柔가 나뉘고 剛이 中을 얻었기 때문이요,
[注]坎陽而兌陰也 陽上而陰下 剛柔分也 剛柔分而不亂하고 剛得中而爲制主 節之義也 節之大者 莫若剛柔分, 男女別也
坎은 陽이고 兌는 陰이니, 陽이 위에 있고 陰이 아래에 있는 것은 剛과 柔가 나뉜 것이다. 剛과 柔가 나뉘어 혼란하지 않고 剛이 中을 얻어 節制하는 주체가 됨은 節의 뜻이니, 節의 큰 것은 剛과 柔가 나뉘고 남자와 여자가 분별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疏]正義曰:此就上下二體居二ㆍ五剛中, 釋所以爲節得亨之義也.
正義曰:이는 위아래 두 體에 九二와 九五가 剛中에 거함을 가지고 ‘節制를 하여 형통함을 얻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坎의 剛이 위에 있고 兌의 柔가 아래에 처하였으니, 이는 剛과 柔가 나뉜 것인바, 剛과 柔가 나뉘고 남자와 여자가 분별됨은 節의 큰 뜻이다.
二ㆍ五以剛居中, 爲制之主, 所以得節, 節不違中, 所以得亨, 故曰“節, 亨, 剛柔分而剛得中”也.
九二와 九五가 剛으로서 中에 거하여 節制하는 주체가 되었으니, 이 때문에 ‘節’을 얻은 것이니, 節이 中을 어기지 않음은 형통함을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節은 형통함’은 剛과 柔가 나뉘고 剛이 中을 얻었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다.
苦節不可貞 其道窮也
‘괴로운 節은 바르게 할 수가 없음’은 그 道가 곤궁한 것이다.
[注]爲節過苦 則物所不能堪也 物不能堪이면 則不可復正也
절제하기를 지나치게 괴롭게 함은 사람들이 견뎌내지 못하는 바이니, 사람들이 견뎌내지 못하면 다시 바르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疏]正義曰:爲節過苦, 不可爲正, 若以苦節爲正, 則其道困窮, 故曰“苦節不可貞, 其道窮也.”
正義曰:절제를 하여 지나치게 괴롭게 하면 바르게 할 수가 없으니, 만약 괴로운 절제를 바름으로 삼으면 그 道가 곤궁하다. 그러므로 “‘괴로운 節은 바르게 할 수가 없음’은 그 道가 곤궁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說以行險하고 當位以節하여 中正以通하니라
기쁨으로써 험함을 행하고 자리에 마땅하게 節制하여 中正하여 형통하다.
[注]然後亨也 无說而行險하고 過中而爲節이면 則道窮也
그런 뒤에야 비로소 형통한 것이다. 기쁨이 없이 험함을 행하고, 알맞음을 넘어 절제하면 道가 곤궁하다.
[疏]正義曰:上言苦節, 不可貞, 其道窮者, 正由爲節不中, 則物所不說, 不可復正, 其道困窮,
正義曰:위에서 ‘苦節 不可貞 其道窮’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절제함이 알맞지 못함에 연유한 것이니,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아 다시(더 이상) 바로잡을 수가 없어서 그 道가 곤궁하다.
故更就二體及四ㆍ五當位, 重釋行節得亨之義, 以明苦節之窮也. 行險以說, 則爲節得中,
그러므로 다시 두 體와 六四ㆍ九五가 자리에 마땅함을 가지고 ‘절제를 행하여 형통함을 얻는 義’를 거듭 해석해서 괴로운 절제의 곤궁함을 밝힌 것이다. 험함을 행하기를 기쁨으로써 함은 절제함이 中을 얻은 것이요,
當位以節, 則可以爲正. 良由中而能正, 所以得通, 故曰“中正以通”, 此其所以爲亨也.
자리에 마땅하게 하여 절제하면 바르게 할 수 있다. 진실로 ‘中하고 능히 바름’으로 말미암아 이 때문에 형통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中正하여 형통하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형통함이 되는 이유이다.
天地節而四時成하나니 節以制度하여 不傷財하고 不害民하나니라
천지가 節序가 있어 四時가 이루어지니, 制度로써 절제하여 재물을 傷하게 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
[疏]正義曰:‘天地節而四時成’者, 此下就天地與人, 廣明節義. 天地以氣序爲節, 使寒暑往來, 各以其序, 則四時功成之也.
正義曰:[天地節而四時成] 이 아래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가지고 節의 뜻을 넓혀 밝힌 것이다. 하늘과 땅이 節氣의 순서를 가지고 절제하여 추위와 더위를 왕래하게 해서 각각 그 節序에 따르게 하면, 四時의 功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王者以制度爲節, 使用之有道, 役之有時, 則不傷財, 不害民也.
王者가 제도로써 절제하여 재물을 씀에 방도가 있고 부역함에 철(농한기)이 있게 하면, 재물을 상하게 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게 된다.
象曰 澤上有水 節이니 君子以制數度하고 議德行하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못 위에 물이 있는 것이 節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數度를 제정하고 德行을 의논한다.”
[疏]正義曰:‘澤上有水 節’者, 水在澤中, 乃得其節, 故曰“澤上有水, 節”也.
正義曰:[澤上有水 節] 물이 못 가운데에 있으면 바로 節(절도)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못 위에 물이 있는 것이 節卦이다.”라고 한 것이다.
[君子以制數度 議德行] ‘數度’는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른 禮命(禮와 爵命)의 많고 적음을 이르고, ‘德行’은 人才에 따라 임무를 감당할 만한 優劣을 이른다.
君子象節, 以制其禮數等差, 皆使有度, 議人之德行任用, 皆使得宜.
君子가 節卦를 본받아서 禮數의 차등을 제정하여 모두 법도가 있게 하고, 사람의 德行에 따른 임용을 의논하여 모두 마땅함을 얻게 하는 것이다.
初九 不出戶庭이면 无咎리라
初九는 문과 뜰을 나가지 않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注]爲節之初하여 將整離散而立制度者也
節의 처음이 되어 장차 離散함을 정돈해서 제도를 확립하는 자이다.
明於通塞하고 慮於險하여 不出戶庭하여 愼密不失이니 然後 事濟而无咎也
그러므로 때의 통하고 막힘에 밝고 험함과 거짓을 염려하여 문과 뜰을 나가지 않고서 愼密하여 실수하지 않으니, 그런 뒤에야 일이 이루어져 허물이 없는 것이다.
[疏]‘初九’至‘无咎’
經의 [初九]에서 [无咎]까지
○正義曰:初九處節之初, 將立制度, 宜其愼密, 不出戶庭, 若不愼而泄, 則民情姦險, 應之以僞,
○正義曰:初九가 節의 처음에 처하여 장차 제도를 확립하려 하니, 마땅히 愼密하여 문과 뜰을 나가지 않아야 하는바, 만약 愼密하지 않고 漏泄하면 백성의 마음이 간사하고 험악하여 應하기를 거짓으로써 한다.
그러므로 愼密하여 실수하지 않은 뒤에야 일이 이루어져 허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과 뜰을 나가지 않으면 허물이 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疏]○注‘將整離散而立制度者也’
○注의 [將整離散而立制度者也]
○正義曰:序卦云“物不可以終離, 故受之以節.” 此卦承渙之後, 初九居節之初, 故曰“將整離散而立法度”也.
○正義曰:〈序卦傳〉에 “물건은 끝내 離散할 수 없다. 그러므로 節卦로써 받았다.”라고 하였으니, 이 卦가 渙卦의 뒤를 잇고 初九가 節卦의 처음에 거하였으므로 “장차 離散함을 정돈해서 제도를 확립한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不出戶庭 知通塞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문과 뜰을 나가지 않음’은 〈때의〉 통하고 막힘을 알기 때문이다.”
[疏]正義曰:‘知通塞’者, 識時通塞, 所以不出也.
正義曰:[知通塞] 때의 통하고 막힘을 아는 것이니, 이 때문에 나가지 않는 것이다.
九二 不出門庭이면하리라
九二는 문과 뜰을 나가지 않으면 凶하리라.
[注]初已造之하니 至二 宜宣其制矣어늘 而故匿之하야 失時之極이면 則遂廢矣 不出門庭이면 則凶也
初九가 이미 제도를 만들었으니, 九二에 이르면 마땅히 그 제도를 펴야 하는데 일부러 숨겨서 때의 알맞음[極]을 잃으면 마침내 廢해진다. 그러므로 문과 뜰을 나가지 않으면 흉한 것이다.
[疏]正義曰:初已制法, 至二宜宣, 若猶匿之, 則失時之極, 可施之事, 則遂廢矣.
正義曰:初九가 이미 법을 만들었으니, 九二에 이르면 마땅히 법을 펴야 하는데 만약 여전히 숨기면 때의 알맞음을 잃어서 시행할 수 있는 일이 마침내 廢해진다.
문과 뜰을 나가지 않음은 흉함을 이루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문과 뜰을 나가지 않으면 凶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不出門庭凶 失時極也
〈象傳〉에 말하였다. “‘문과 뜰을 나가지 않으면 凶함’은 때의 알맞음을 잃은 것이다.”
正義曰:[失時極] ‘極’은 中이니, 응당 나가야 하는데 나가지 않으면 때의 中을 잃으니, 이 때문에 흉함이 되는 것이다.
六三 不節若이면 則嗟若하리니 无咎로다
六三은 節制하지 않으면 슬피 한탄하리니, 허물할 곳이 없도다.
[注]若 辭也 以陰處陽하고 以柔乘剛 違節之道하여 以至哀嗟 自己所致하여 无所怨咎 曰 无咎也라하니라
‘若’은 어조사이다. 陰으로서 陽의 자리에 처하고 柔로서 剛을 타고 있음은 節의 道를 어겨서 슬피 한탄함에 이르는 것이다. 자기가 부른 바여서 원망하고 허물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허물할 곳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疏]正義曰:節者, 制度之卦, 處節之時, 位不可失, 六三以陰處陽, 以柔乘剛, 失位驕逆, 違節之道, 禍將及己, 以至哀嗟,
正義曰:節은 制度의 卦이니, 節의 때에 처하여 正位를 잃어서는 안 되는데, 六三이 陰으로서 陽의 자리에 처하고 柔로서 剛을 타고 있어서 正位를 잃어 교만하고 거슬려 절제하는 道를 어겨서 禍가 장차 자기에게 미치게 되어 슬피 한탄함에 이르렀다.
故曰“不節, 則嗟若”也. 禍自己致, 无所怨咎, 故曰“无咎.”
그러므로 “절제하지 않으면 슬피 한탄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禍가 자기가 부른 것이어서 원망하고 허물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허물할 곳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不節之嗟 又誰咎也리오
〈象傳〉에 말하였다. “不節의 한탄을 또 누구에게 허물하겠는가.”
[疏]正義曰:‘又誰咎’者, 由己不節, 自致禍災, 又欲怨咎誰乎.
正義曰:[又誰咎] 자기가 절제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禍와 재앙을 불렀으니, 또 누구를 원망하고 허물하고자 하는가.
六四 安節이면하리라
六四는 節制를 편안히 하면 형통하리라.
[注]得位而順하여 不改其節하여 而能亨者也 承上以斯 得其道也
正位를 얻고 순하여 그 節을 바꾸지 아니하여 형통할 수 있는 자이다. 위를 받들기를 이로써 하면 그 道를 얻은 것이다.
[疏]正義曰:六四得位, 而上順於五, 是得節之道.
正義曰:六四가 正位를 얻고 위로 九五에 순하니, 이는 節의 道를 얻은 것이다. 다만 이 절제를 편안히 행하여 고치거나 변하지 않으면 어디로 간들 형통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절제를 편안히 하면 형통하리라.”라고 하였으니,
明六三以失位乘剛, 則失節而招咎, 六四以得位承陽, 故安節而致亨.
‘六三은 正位를 잃고 剛을 타고 있으니 절제를 잃어서 허물을 부른 것이요, 六四는 正位를 얻고 陽을 받들기 때문에 절제를 편안히 하여 형통함을 이룰 수 있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象曰 安節之亨 承上道也
〈象傳〉에 말하였다. “安節의 형통함은 위를 받들어 道에 맞는 것이다.”
[疏]正義曰:‘承上道’者, 以能承於上, 故不失其道也.
正義曰:[承上道] 능히 윗사람을 받들기 때문에 그 道를 잃지 않는 것이다.
九五 甘節이라하니하면 有尙하리라
九五는 감미로운 절제여서 吉하니, 가면 嘉尙한 일이 있으리라.
[注]當位居中하여 爲節之主하여 不失其中하니 不傷財하고 不害民之謂也 爲節之不苦 非甘而何 術斯以往이면 往有尙也
자리에 마땅하고 中에 거하여 節의 주체가 되어서 그 中을 잃지 않으니, 재물을 상하게 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음을 이른다. 절제하기를 괴롭게 하지 않으면 단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을 따라가면 감에 嘉尙함이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 九五居於尊位, 得正履中, 能以中正爲節之主,
正義曰:[甘] 쓰지(괴롭지) 않음의 명칭이다. 九五가 높은 지위에 거하여 正位를 얻고 中을 밟아서 능히 中正으로써 節의 주체가 되었으니,
則當彖曰“節以制度, 不傷財, 不害民”之謂也. 爲節而无傷害, 則是不苦而甘, 所以得吉,
〈彖傳〉에 “制度로써 절제하여 재물을 상하게 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에 해당한다. 절제하면서 상함과 해로움이 없으면 이는 쓰지(괴롭지) 않고 단 것이니, 이 때문에 吉함을 얻는다.
故曰“甘節, 吉.” 以此而行, 所往皆有嘉尙, 故曰“往有尙”也.
그러므로 “감미로운 절제여서 길하다.”라고 한 것이다. 이로써 가면 가는 곳마다 모두 嘉尙한 일이 있다. 그러므로 “가면 가상한 일이 있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甘節之吉 居位中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甘節의 吉함은 〈높은〉 지위에 거하고 中하기 때문이다.”
[疏]正義曰:‘居位中’者, 以居尊位而得中, 故致甘節之吉也.
正義曰:[居位中] 높은 지위에 거하고 中을 얻었기 때문에 甘節의 吉함을 이룬 것이다.
上六 苦節이니 貞凶이요 悔亡이리라
上六은 괴로운 절제이니, 正道가 흉하고 뉘우침이 없어지리라.
[注]過節之中하여 以致亢極하니 苦節者也 以斯施이면 物所不堪이니 正之凶也
節의 中을 지나서 亢極을 이루었으니, 괴롭게 절제하는 자이다. 이것을 남에게 베풀면 남들이 견디지 못하는 바이니 正道가 흉하며,
以斯修身이면 行在无妄이라 得悔亡이라
이것을 가지고 몸을 닦으면 행실이 无妄에 있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없어짐을 얻는 것이다.
[疏]正義曰:上六處節之極, 過節之中, 節不能甘, 以至於苦, 故曰“苦節”也.
正義曰:上六이 節의 極에 처하여 節의 中을 넘어 절제를 달갑게 여기지 못하여 괴로움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괴로운 절제이다.”라고 한 것이다.
절제함이 지나치게 괴로우면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바여서 다시 바로잡을 수가 없으니, 正道가 흉하다. 그러므로 “正道가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만약 괴로운 절제를 가지고 남에게 베풀면 이는 正道가 흉한 것이지만, 만약 괴로운 절제를 가지고 자기 몸을 닦으면 검약하고 망령됨이 없어서 뉘우침이 없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없어지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苦節貞凶 其道窮也
〈象傳〉에 말하였다. “‘괴로운 절제이니, 正道가 흉함’은 그 道가 곤궁한 것이다.”
역주
역주1 節須得中……不可貞也 : 孔穎達은 ‘貞’을 ‘사람을 바로잡음’으로 訓하였는데, 程伊川과 朱子는 ‘貞固함(항상함)’으로 訓하였는바, 程伊川은 “節制함은 適中함을 귀하게 여긴다. 지나치면 괴로우니 절제함이 괴로움에 이르면 어찌 항상할 수 있겠는가. 굳게 지켜 항상할 수 없으니, 이는 貞固할 수 없는 것이다.[節貴適中 過則苦矣 節至於苦 豈能常也 不可固守以爲常 不可貞也]”라고 하였다.
역주2 坎剛居上……節之大義也 : ‘剛柔分’을 王弼과 孔穎達은 陽卦가 위에 있고 陰卦가 아래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보았는데, 程伊川은 이를 陰爻와 陽爻가 각각 반씩인 것을 가리키는 말로 보았다.
역주3 (及)[乃] : 저본에는 ‘及’으로 되어 있으나, 岳本과 古本에 의거하여 ‘乃’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4 君子以制數度……謂人才堪任之優劣 : 孔穎達은 ‘數度’와 ‘德行’을 각각 하나의 合成語로 보았으나 程伊川은 數와 度, 德과 行으로 나누어 풀이하였으며, ‘議德行’을 孔穎達은 ‘중용할 사람의 덕행이 임용할 만한가를 의논함’으로 보았으나 程伊川은 사람의 덕과 행실이 절도에 맞는가를 의논하는 것으로 풀이하였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君子가 節의 象을 관찰하여 數와 度를 제정하여 세우니, 무릇 물건의 大와 小, 輕과 重, 高와 下, 文과 質이 모두 數와 度가 있으니, 이는 節制하는 것이다. 數는 多寡이고, 度는 法制이다. ‘議德行’은, 마음속에 둠을 德이라 하고 밖에 발함을 行이라 하니, 사람의 덕행이 義에 마땅하면 節度에 맞는다. 議는 헤아려서 절도에 맞음을 구함을 이른다.[君子觀節之象 以制立數度 凡物之大小輕重高下文質 皆有數度 所以爲節也 數 多寡 度 法制 議德行者 存諸中爲德 發於外爲行 人之德行 當義則中節 議 謂商度求中節也]”
역주5 (爲)[僞] : 저본에는 ‘爲’로 되어 있으나, 아래 疏와 毛本에 의거하여 ‘僞’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6 初九處節之初……无咎 : 王弼과 孔穎達은 ‘不出戶庭’의 이유를 ‘初九가 때의 通塞과 백성의 姦僞를 살펴 삼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반면 程伊川은 “初九가 陽으로서 아래에 있고 위에 다시 應(六四)이 있으니, 절제할 수 있는 자가 아니고, 또 節의 초기를 당하였다. 그러므로 삼가 지켜서 戶庭을 나가지 않음에 이르면 허물이 없다고 경계한 것이다.[初以陽在下 上復有應 非能節者也 又當節之初 故戒之謹守 至於不出戶庭 則无咎也]”라고 하여, 初九를 ‘節制하지 못하는 자’로 보았다.
朱子는, 程伊川과 상반되게, “〈初九는〉 陽剛이 正을 얻고 節의 초기에 거하여 행할 수 없으니, 능히 절제하여 그치는 자이다.[陽剛得正 居節之初 未可以行 能節而止者也]”라고 하였다.
역주7 初已制法……凶 : 程伊川은 ‘不出門庭’을 ‘九五를 따르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九二가 비록 剛中의 자질이나 陰位에 처하고 기뻐함에 거하고 柔를 받들고 있으니, 陰位에 처함은 바르지 못함이요, 기뻐함에 거함은 剛함을 잃은 것이요, 柔를 받듦은 邪를 가까이하는 것이다. 節制하는 道는 마땅히 剛中正을 써야 하는데 九二가 剛中의 德을 잃었으니, 九五의 剛中正과는 다르다. 門庭을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니, 九五를 따르지 않음을 이른다. 二爻와 五爻는 陰陽의 正應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따르지 않는 것이다. 만약 剛中의 道로 서로 합한다면 節의 功을 이룰 수 있는데 오직 德을 잃고 때를 잃었기 때문에 흉한 것이니, 九五에게 합하지 않음은 곧 바르지 못한 節制이다.[二雖剛中之質 然處陰居說而承柔 處陰 不正也 居說 失剛也 承柔 近邪也 節之道 當以剛中正 二失其剛中之德 與九五剛中正異矣 不出門庭 不之於外也 謂不從於五也 二五非陰陽正應 故不相從 若以剛中之道相合 則可以成節之功 唯其失德失時 是以凶也 不合於五 乃不正之節也]”
역주8 失時極者……所以爲凶 : 孔穎達은 ‘極’을 ‘中’으로 訓하였는데, 程伊川은 ‘至極’으로 訓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위로 九五의 剛中正한 道를 따라 節制함의 功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사사롭고 친한 陰柔(六三)에게 얽매여 있으니, 이는 때를 잃음이 지극한 것이니, 이 때문에 흉한 것이다. 때를 잃음은 마땅한 바를 잃는 것이다.[不能上從九五剛中正之道 成節之功 乃係於私暱之陰柔 是失時之至極 所以凶也 失時 失其所宜也]”
역주9 (苦)[若] : 저본에는 ‘苦’로 되어 있으나, 經文의 ‘不節若’에 의거하여 ‘若’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但能安行此節而不改變……故曰安節亨 : ‘安節’을 王弼과 孔穎達, 程伊川은 ‘절제를 편안히 여김’으로 해석하였으나, 朱子는 ‘편안히 행하는 절제’로 보았는바, ≪本義≫는 다음과 같다. “柔順하면서 正을 얻고 위로 九五를 받드니, 자연스럽게 節制가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 象과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柔順得正 上承九五 自然有節者也 故其象占如此]”
역주11 甘者 不苦之名也 : 九五의 爻辭에 ‘甘節’이라 하고, 上六의 爻辭에 ‘苦節’이라 하였는바, 甘은 맛이 단 것이고, 苦는 쓴 것이어서 괴로움이 된다. 그리하여 ‘甘節’은 ‘감미로운 절제여서 마음에 달갑게 여기는 절제’이고, ‘苦節’은 ‘견디기 어려운 고달픈 절제여서 괴로운 절제’가 되는 것이다.
역주12 (正)[人] : 저본에는 ‘正’으로 되어 있으나, 閩本ㆍ監本ㆍ毛本에 의거하여 ‘人’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3 上六處節之極……故曰貞凶 : ‘貞凶’을 程伊川은 ‘苦節을 굳게 지키면 흉함’으로 해석하였고, 朱子는 ‘過極에 처했으므로 바르더라도 흉함’으로 해석하였다.
역주14 若以苦節施人……故曰悔亡也 : ‘悔亡’을 王弼과 孔穎達은 ‘苦節을 자기 수양에 베풀면 悔亡하게 됨’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朱子는 “禮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하여야 하므로 비록 뉘우침이 있으나 끝내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禮奢寧儉 故雖有悔而終得亡之也]”라고 하여, 上六의 지나친 절제가 그래도 지나친 사치보다는 낫기 때문에 悔亡하게 된다고 보았다.
한편 程伊川은 이를 ‘뉘우치면 흉함이 없어짐’으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굳게 지키면 흉하고 뉘우치면 흉함이 없어질 것이니, 悔는 過함을 덜어 中을 따름을 이른다. 節卦의 悔亡은 다른 卦의 悔亡과 말은 같으나 뜻은 다르다.[固守則凶 悔則凶亡 悔 損過從中之謂也 節之悔亡 與他卦之悔亡 辭同而義異也]”

주역정의(3)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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