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周易正義(2)

주역정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주역정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元亨하고 利貞이라야 无咎리라
隨는 크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로워야 허물이 없으리라.
[疏]‘隨元亨利貞无咎’
經의 [隨元亨利貞无咎]
○正義曰:‘元亨’者, 於相隨之世, 必大得亨通, 若其不大亨通, 則无以相隨, 逆於時也.
○正義曰:[元亨] 서로 따르는 세상에 반드시 크게 형통함을 얻는 것이니, 만약 크게 형통하지 못하면 서로 따르는 이가 없어서 때에 거스르게 된다.
‘利貞’者, 相隨之體, 須利在得正, 隨而不正, 則邪僻之道, 必須利貞也.
[利貞] 서로 따르는 體는 모름지기 이로움이 바름을 얻음에 있으니, 따르면서 바르지 못하면 사벽한 방도이니, 반드시 貞함이 이로워야 하는 것이다.
‘无咎’者, 有此四德, 乃无咎, 以苟相從, 涉於朋黨, 故必須四德, 乃无咎也.
[无咎] 이 네 德이 있어야 비로소 허물이 없는 것이니, 구차히 서로 따르면 朋黨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네 德이 있어야 비로소 허물이 없는 것이다.
[疏]凡卦有四德者, 或其卦當時之義, 卽有四德, 如乾‧坤‧屯‧臨‧无妄, 此五卦之時, 卽能四德備具.
무릇 卦에 〈元‧亨‧利‧貞의〉 네 德이 있는 것은 혹은 卦가 당시의 뜻에 바로 네 德을 소유한 것이니, 예컨대 乾卦‧坤卦‧屯卦‧臨卦‧无妄卦와 같은 것인바, 이 다섯 卦의 때에는 즉시 네 德을 구비한다.
其隨卦以惡相隨, 則不可也, 有此四德, 乃无咎, 无此四德, 則有咎也, 與前五卦, 其義稍別.
그런데 隨卦는 惡함으로 서로 따르면 不可하니 이 네 德을 소유하여야 비로소 허물이 없고 이 네 德이 없으면 허물이 있으니, 앞의 다섯 卦와는 그 뜻이 조금 다르다.
其革卦“已日乃孚”, 有四德, 若不已日乃孚, 則无四德, 與乾‧坤‧屯‧臨‧无妄‧隨, 其義又別.
革卦의 “하루가 지나야 믿는다.”에 네 德이 있는 것은 만약 ‘하루가 지나야 믿음’을 하지 않으면 네 德이 없는 것이니, 乾卦‧坤卦‧屯卦‧臨卦‧无妄卦‧隨卦와 그 뜻이 또 다른 것이다.
若當卦之時, 其卦雖美, 未有四德, 若行此美, 方得在後始致四德者, 於卦則不言其德也.
卦의 때를 당하여 그 卦가 비록 아름다워도 네 德이 아직 없다가 만약 이 아름다움을 행하면 비로소 뒤에 처음으로 네 德을 이룰 수 있는 것과 같은 경우에는 卦에 그 德을 말하지 않았다.
若謙‧泰及復之等, 德義旣美, 行之不已, 久必致此四德,
예컨대 謙卦‧泰卦와 復卦의 등속은 德義가 이미 아름답고 행하기를 그치지 않아서 오래되면 반드시 이 네 德을 이루나,
但當初之時, 其德未具, 故卦不顯四德也. 其諸卦之三德已下, 其義大略亦然也.
다만 당초에 그 德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卦에 네 德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여러 卦의 세 德 이하도 그 뜻이 대략 이와 같다.
彖曰 隨 剛來而下柔하고 動而說 大亨貞하여 无咎하여 而天下隨時하니 隨時之義 大矣哉
〈彖傳〉에 말하였다. “隨는 剛이 와서 柔에게 낮추며 動하고 기뻐함이 隨이다. 크게 형통하고 貞하여 허물이 없어서 천하가 때를 따르니, 때를 따르는 義가 크다.”
[注]震剛而兌柔也 以剛下柔하고 動而之說 乃得隨也
震은 剛이고 兌는 柔이니 剛으로서 柔에게 낮추고, 동하여 기쁨으로 가는 것이 바로 隨를 얻은 것이다.
爲隨而不大通이면 逆於時也 相隨而不爲利 正災之道也 大通利貞이라야 乃得无咎也
따르면서 크게 형통하지 못하면 때를 거스르는 것이요, 서로 따르면서 이롭게 하지 못하면 바로 災禍의 方道이다. 그러므로 크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로워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爲隨而令大通利貞이면 得於時也 得時 則天下隨之矣
따르면서 크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롭게 하면 때를 얻은 것이니, 때를 얻으면 천하의 사람들이 따른다.
隨之所施 唯在於時也 時異而不隨 否之道也 隨時之義 大矣哉
隨의 베풂은 오직 때에 달려 있으니, 때가 달라 따르지 않음은 비색한 道이다. 그러므로 때를 따르는 義가 큰 것이다.
[疏]‘彖曰’至‘大矣哉’
經의 [彖曰]에서 [大矣哉]까지
○正義曰:‘隨 剛來而下柔 動而說 隨’者, 此釋隨卦之義. 所以致此隨者, 由剛來而下柔, 剛謂震也, 柔謂兌也,
○正義曰:[隨 剛來而下柔 動而說 隨] 이것은 隨卦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이 隨를 이룰 수 있는 이유는 剛이 와서 柔에게 낮추기 때문이니, ‘剛’은 震을 이르고 ‘柔’는 兌를 이르는바,
震處兌下, 是剛來下柔. 震動而兌說, 旣能下人, 動則喜說, 所以物皆隨從也.
震이 兌의 아래에 처한 것이 바로 剛이 와서 柔에게 낮추는 것이다. 震은 동하고 兌는 기뻐하니, 이미 남에게 낮추고서 동하면 〈사람들이〉 기뻐하므로 이 때문에 물건(사람)이 모두 따르는 것이다.
‘大亨貞 无咎 而天下隨時’者, 以有大亨貞正, 无有咎害, 而天下隨之, 以正道相隨, 故隨之者廣.
[大亨貞 无咎 而天下隨時]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있으면 허물과 害가 없어서 천하가 따르니, 正道로 서로 따르기 때문에 따르는 자가 많은 것이다.
若不以大亨貞无咎, 而以邪僻相隨, 則天下不從也.
만약 ‘크게 형통하고 貞하여 허물이 없음’을 쓰지 않고 사벽함으로 서로 따르면 천하가 따르지 않는다.
‘隨時之義 大矣哉’, 若以元亨利貞, 則天下隨從, 卽隨之義意廣大矣哉, 謂隨之初始, 其道未弘, 終久義意而美大者.
[隨時之義 大矣哉] 만약 元亨利貞으로 하면 천하가 따르니, 곧 隨의 義意가 廣大한 것인바, 隨의 처음에는 그 道가 넓지 않다가 義意를 끝까지 오래하면 아름다고 커짐을 말한 것이다.
謂此時宜行元亨利貞, 故云“隨時”也.
특별히 “때를 따른다.[隨時]”라고 말한 것은 그 시절을 따르는 뜻을 이른 것이니, 이때에는 마땅히 元亨利貞을 행해야 함을 말하였으므로 “때를 따른다.”라고 말한 것이다.
[疏]○注‘震剛而兌’至‘大矣哉’
○注의 [震剛而兌]에서 [大矣哉]까지
○正義曰:‘爲隨而不大通 逆於時也’, 物旣相隨之時, 若王者不以廣大開通, 使物閉塞, 是違逆於隨從之時也.
○正義曰:[爲隨而不大通 逆於時也] 물건이 이미 서로 따르는 때이니, 만약 王者가 廣大함으로 開通하지 못하여 물건으로 하여금 폐색하게 하면 이는 따르는 때를 거스르는 것이다.
‘相隨而不爲利 正災之道’者, 凡物之相隨, 多曲相朋附, 不能利益於物, 守其正直, 此則小人之道長, 災禍及之, 故云“災之道”也.
[相隨而不爲利 正災之道] 무릇 물건이 서로 따를 때에는 굽혀서 서로 모이고 붙는 경우가 많으니, 물건에게 이익을 주고 정직함을 지키지 못하면 이는 小人의 道가 자라나서 災禍가 미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災禍의 方道[災之道]”라고 말한 것이다.
‘隨之所施 唯在於時’者, 釋隨時之義, 言隨時施設, 唯在於得時.
[隨之所施 唯在於時] ‘隨時’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때를 따라 베풂은 오직 때를 얻음에 달려 있음을 말한 것이다.
若能大通利貞, 是得時也, 若不能大通利貞, 是失時也.
만약 능히 크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로움을 하면 이는 때를 얻는 것이요, 만약 능히 크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로움을 하지 못하면 이는 때를 잃는 것이다.
‘時異而不隨 否之道’者, 凡所遇之時, 體无恒定, 或値不動之時, 或値相隨之時,
[時異而不隨 否之道] 무릇 만나는 때에는 體가 항상 정해져 있지 않아서 혹 동하지 않는 때를 만나기도 하고 혹 서로 따르는 때를 만나기도 하니,
舊來恒往, 今須隨從, 時旣殊異於前, 而不使物相隨, 則是否塞之道.
예전에는 항상 떠나갔으나 지금은 따라야 해서 때가 이미 이전과 다른데 물건을 서로 따르게 하지 못하면 이는 否塞한 道이다.
當須可隨則隨, 逐時而用, 所利則大, 故云“隨時之義大矣哉.”
마땅히 따라야 하면 따라서 때에 따라 운용하면 이로운 바가 클 것이다. 그러므로 “때를 따르는 義가 크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澤中有雷 隨 君子以嚮晦入宴息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못 가운데에 우레가 있는 것이 隨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저녁이 되면 宴寢에 들어가 편안히 쉰다.”
[注]澤中有雷 動說之象也 物皆說隨 可以无爲하여 不勞明鑒이라 君子嚮晦하여 入宴息也
못 가운데에 우레가 있는 것은 동하여 기뻐하는 象이니, 물건이 모두 기뻐하고 따르면 無爲를 행할 수 있어 수고로이 밝게 비출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君子가 저녁이 되면 宴寢에 들어가서 편안히 쉬는 것이다.
[疏]‘象曰’至‘宴息’
經의 [象曰]에서 [宴息]까지
○正義曰:說卦云“動萬物者, 莫疾乎雷, 說萬物者, 莫說乎澤.” 故注云“澤中有雷, 動說之象也.”
○正義曰:〈說卦傳〉에 이르기를 “萬物을 동하게 하는 것은 우레보다 빠른 것이 없고, 萬物을 기쁘게 하는 것은 못보다 기쁜 것이 없다.” 하였다. 그러므로 注에 “못 가운데에 우레가 있는 것은 동하여 기뻐하는 象이다.”라고 한 것이다.
‘君子以嚮晦入宴息’者, 明物皆說豫相隨, 不勞明鑒, 故君子象之. 鄭玄云“晦, 宴也, 猶人君旣夕之後, 入於宴寢而止息.”
[君子以嚮晦入宴息] 물건이 모두 기뻐하여 서로 따라서 수고로이 밝게 비출 필요가 없으므로 君子가 이를 따름을 밝힌 것이다. 鄭玄이 이르기를 “晦는 宴이니, 人君이 이미 저녁이 된 뒤에 宴寢에 들어가 편안히 쉬는 것과 같다.” 하였다.
初九 官有渝 貞吉이라 出門交 有功하리라
初九는 맡아 지킴에 변함이 있으면 貞하여 길하다. 문을 나가 사귀면 功이 있으리라.
[注]居隨之始하고 上无其應하여 无所偏係하고 動能隨時하여 意无所主者也
隨의 시초에 거하고 위로 應이 없어서 편벽되게 매이는 바가 없고 동함에 능히 때를 따라서 마음에 주장하는 바가 없는 자이다.
隨不以欲하고 以欲隨宜者也 官有渝變이면 隨不失正也 出門无違하니 何所失哉리오
따름을 私慾으로 하지 않고 마땅함을 따르고자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맡아 지킴에 변함이 있으면 따름에 그 바름을 잃지 않는 것이다. 문을 나가 어김이 없으니 어찌 잃는 바가 있겠는가.
[疏]‘初九’至‘有功’
經의 [初九]에서 [有功]까지
○正義曰:‘官有渝’者, 官, 謂執掌之職, 人心執掌, 與官同稱, 故人心所主, 謂之官.
○正義曰:[官有渝] ‘官’은 맡아 지키는 직책을 이르니, 사람의 마음에 맡아 지키는 것이 官과 같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 주장하는 것을 官이라 이른 것이다.
渝, 變也, 此初九旣无其應, 无所偏係, 可隨則隨, 是所執之志, 有能渝變也. 唯正是從, 故貞吉也.
‘渝’는 변함이니, 이 初九가 이미 應이 없어서 편벽되게 매이는 바가 없으므로 따를 만하면 따르니, 이는 지키는 바의 뜻이 능히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바름을 따르기 때문에 貞하여 길한 것이다.
‘出門交有功’者, 所隨不以私欲, 故見善則往隨之, 以此出門交, 獲其功.
[出門交有功] 따르는 것을 사욕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善을 보면 가서 따르니, 이런 식으로 문을 나가서 사귀면 그 功을 얻는 것이다.
[疏]○注‘居隨之始’至‘何所失哉’
○注의 [居隨之始]에서 [何所失哉]까지
○正義曰:言‘隨不以欲 以欲隨宜’者, 若有其應, 則有私欲, 以无偏應, 是所隨之事, 不以私欲, 有正則從, 是以欲隨其所宜也.
○正義曰:[隨不以欲 以欲隨宜] 만약 그 應이 있으면 사욕이 있는데 치우친 應이 없기 때문에 따르는 일을 사욕으로 하지 않는 것이요, 바름이 있으면 따르기 때문에 마땅함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다.
象曰 官有渝 從正이면 吉也 出門交有功 不失也
〈象傳〉에 말하였다. “맡아 지킴에 변함이 있음은 바름을 따르면 길한 것이요, 문을 나가 사귀면 功이 있음은 〈正道를〉 잃지 않는 것이다.”
[疏]正義曰:‘官有渝 從正 吉’者, 釋‘官有渝’之義, 所執官守正, 能隨時渝變, 以見貞正, 則往隨從, 故云“從正吉.”
正義曰:[官有渝 從正 吉] ‘맡아 지킴에 변함이 있음’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맡아 관장하는 것이 바름을 지켜서 능히 때에 따라 변하여 貞正함을 보면 가서 따른다. 그러므로 “바름을 따르면 길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出門交有功 不失’者, 釋‘交有功’之義, 以所隨之處, 不失正道, 故出門卽有功也.
[出門交有功 不失] ‘사귀면 功이 있음’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따르는 곳에 正道를 잃지 않기 때문에 문을 나가면 功이 있는 것이다.
六二 係小子 失丈夫하리라
六二는 小子에게 매이면 丈夫를 잃으리라.
[注]陰之爲物 以處隨世하여 不能獨立하여 必有係也
陰의 물건으로 隨의 세상에 처하여 獨立하지 못해서 반드시 매이는 것이 있다.
居隨之時하여柔弱하여 而以乘夫剛動하니 豈能秉志違於所近이리오
隨의 때에 거하여 體가 유약함을 분수로 하고 剛함과 動함을 타고 있으니, 어찌 간직한 뜻이 가까운 이를 멀리할 수 있겠는가.
隨此失彼하여 弗能兼與하니 五處己上하고 初處己下 曰 係小子 失丈夫也라하니라
이것을 따르면 저것을 잃어서 겸하여 함께하지 못하니, 九五는 자기의 위에 있고 初九는 자기의 아래에 있다. 그러므로 “小子에게 매이면 丈夫를 잃는다.”고 한 것이다.
[疏]‘六二’至‘失丈夫’
經의 [六二]에서 [失丈夫]까지
○正義曰:小子謂初九也, 丈夫謂九五也, 初九處卑, 故稱小子, 五居尊位, 故稱丈夫.
○正義曰:‘小子’는 初九를 이르고, ‘丈夫’는 九五를 이르니, 初九가 낮은 곳에 처하였기 때문에 小子라 칭한 것이고, 九五가 尊位에 거하였기 때문에 丈夫라 칭한 것이다.
六二旣是陰柔, 不能獨立所處, 必近係屬初九, 故云“係小子.” 旣屬初九, 則不得往應於五, 故云“失丈夫”也.
六二가 이미 陰柔이므로 처한 바에서 獨立하지 못하고 반드시 가까이 初九에게 매이기 때문에 “小子에게 매인다.”라고 한 것이요, 이미 初九에게 붙었으면 九五에게 가서 응할 수 없기 때문에 “丈夫를 잃는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係小子 弗兼與也
〈象傳〉에 말하였다. “小子에게 매임은 겸하여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다.”
[疏]正義曰:釋係小子之意. 旣隨此初九, 則失彼九五丈夫, 是不能兩處兼有, 故云“弗兼與也.”
正義曰:‘小子에게 매임’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이미 이 初九를 따랐으면 저 九五의 丈夫를 잃으니, 이는 두 곳을 겸하여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겸하여 함께하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六三 係丈夫하고 失小子하니 隨有求得하나 利居貞하니라
六三은 丈夫에게 매이고 小子를 잃으니, 따름에 구함이 있음을 얻으나 貞에 거함이 이롭다.
[注]陰之爲物 以處隨世하여 不能獨立하여 必有係也
陰의 물건으로 隨의 세상에 처하여 獨立하지 못해서 반드시 매이는 것이 있다.
雖體下卦 二已據初하니 將何所附리오 舍初係四하여 志在丈夫
비록 體가 下卦이나 六二가 이미 初九를 점거하였으니, 장차 어디에 붙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初九를 버리고 九四에게 매여서 뜻이 丈夫에게 있는 것이다.
四俱无應하여 亦欲於己隨之하니 則得其所求矣 故曰 隨有求得也라하니라
九四와 〈六三이〉 모두 應이 없어서 또한 자기를 따르고자 하니, 이것이 구하는 바를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따름에 구함이 있음을 얻었다.”고 한 것이다.
應非其正하여 以係於人하니 何可以妄이리오 曰 利居貞也라하니라
應이 正應이 아니면서 남에게 매여 있으니,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貞에 거함이 이롭다.”고 한 것이다.
初處己下하고 四處己上이라 曰 係丈夫하고 失小子也라하니라
初九가 자기 아래에 처하고 九四가 자기 위에 처하였으므로 “丈夫에게 매이고 小子를 잃는다.”고 한 것이다.
[疏]‘六三係丈夫’至‘利居貞’
經의 [六三係丈夫]에서 [利居貞]까지
○正義曰:六三陰柔, 近於九四, 是係於丈夫也, 初九旣被六二之所據, 六三不可復往從之, 是失小子也.
○正義曰:六三이 陰柔로서 九四와 가까우니 이것이 丈夫에게 매여 있는 것이요, 初九가 이미 六二에게 점거당하여 六三이 다시 가서 따를 수 없으니 이것이 小子를 잃은 것이다.
‘隨有求得’者, 三從往隨於四, 四亦更无他應, 己往隨於四, 四不能逆己, 是三之所隨, 有求而皆得也.
[隨有求得] 六三이 九四에게 가서 따르면 九四도 다시 별다른 應이 없어서 자기가 九四에게 가면 九四가 자기를 거스르지 못하니, 이는 六三이 따르는 바에 구함이 있으면 모두 얻는 것이다.
‘利居貞’者, 己非其正, 以係於人, 不可妄動, 唯利在俱處守正, 故云“利居貞”也.
[利居貞] 자기가 正應이 아니면서 남에게 매여 있으니 함부로 동할 수 없고 오직 함께 正을 지킴에 처함이 이롭다. 그러므로 “貞에 거함이 이롭다.[利居貞]”라고 말한 것이다.
[疏]○注‘四俱无應’至‘小子也’
○注의 [四俱无應]에서 [小子也]까지
○正義曰:‘四无應’者, 三旣无應, 四亦无應, 是四與三俱无應也.
○正義曰:[四俱无應] 六三이 이미 應이 없고 九四 또한 應이 없으니, 이는 九四와 六三이 모두 應이 없는 것이다.
此六二‧六三因陰陽之象, 假丈夫小子, 以明人事, 餘无義也.
이는 六二와 六三이 陰陽의 象을 인하여 丈夫와 小子를 빌려서 사람의 일을 밝힌 것이니, 나머지는 다른 뜻이 없다.
象曰 係丈夫 志舍下也
〈象傳〉에 말하였다. “丈夫에게 매임은 뜻이 아래를 버리는 것이다.”
[注]下 謂初也
아래는 初九를 이른다.
[疏]正義曰:釋係丈夫之義, 六三旣係九四之丈夫, 志意則舍下之初九也.
正義曰:‘丈夫에게 매임’의 뜻을 해석하였으니, 六三이 이미 九四의 丈夫에게 매이면 뜻이 아래의 初九를 버린 것이다.
九四 隨有獲이나 貞凶이니 有孚하고 在道하여 以明이면 何咎리오
九四는 따름에 얻음이 있으나 貞이 흉하니, 誠信이 있고 道에 머물러 있으면서 〈功을〉 밝게 세우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注]處說之初하고 下據二陰하여 三求係己하니 不距則獲이라 故曰 隨有獲也라하니라
기뻐함의 처음에 처하고 아래로 두 陰을 점거하여 六三이 구하여 자기에게 매이니, 막지 않으면 얻는다. 그러므로 “따름에 얻음이 있다.”고 한 것이다.
居於臣地하여 履非其位하여 以擅其民하여 失於臣道하니 違正者也 故曰 貞凶이라
신하의 지위에 거하여 밟고 있는 것이 正位가 아니면서 백성들을 독차지하여 신하의 도리를 잃으니, 바름을 어긴 자이다. 그러므로 “貞이 흉하다.”고 한 것이다.
體剛居說하여 而得民心하여 能幹其事하여 而成其功者也
體가 강하고 기뻐함에 거하여 民心을 얻어 능히 일을 주간해서 功을 이룰 수 있는 자이다.
常義 志在濟物하여 心有公誠하니 著信在道하여 以明其功이면 何咎之有리오
비록 떳떳한 義를 어기나 뜻이 남을 구제하는 데에 있어서 마음에 공정함과 誠信이 있으니, 誠信을 드러내고 道에 머물면서 功을 밝게 세우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疏]‘九四’至‘何咎’
經의 [九四]에서 [何咎]까지
○正義曰:‘隨有獲’者, 處說之初, 下據二陰, 三求係己, 不距則獲, 故曰“隨有獲”也.
○正義曰:[隨有獲] 기뻐함의 처음에 처하고 아래로 두 陰을 점거하여 六三이 구하여 자기에게 매이니, 막지 않으면 얻는다. 그러므로 “따름에 얻음이 있다.[隨有獲]”라고 말한 것이다.
[貞凶] 신하의 자리에 거하여 밟고 있는 것이 正位가 아니면서 백성들을 독차지하여 신하의 도리를 잃었으니, 바른 이치를 어긴 것이므로 貞이 흉한 것이다.
‘有孚在道以明 何咎’者, 體剛居說, 而得民心, 雖違常義, 志在濟物, 心存公誠,
[有孚在道以明 何咎] 體가 강하고 기뻐함에 거하여 民心을 얻으니, 비록 떳떳한 義를 어기나 뜻이 남을 구제하는 데에 있어서 마음에 공정함과 誠信을 보존하는바,
著信在於正道, 有功以明, 更有何咎. 故云“有孚在道以明, 何咎”也.
誠信을 드러내고 正道에 머물러 功이 있으면서 밝히면 다시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誠信이 있고 道에 머물러 있으면서 〈功을〉 밝게 세우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象曰 隨有獲 其義凶也 有孚在道 明功也
〈象傳〉에 말하였다. “따름에 얻음이 있음은 의리상 흉한 것이요, 誠信이 있고 道에 있음은 功을 밝게 세우는 것이다.
[疏]正義曰:‘隨有獲 其義凶’者, 釋隨有獲貞凶之意.
正義曰:[隨有獲 其義凶] ‘따름에 얻음이 있으나 貞이 흉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九四旣有六三‧六二, 獲得九五之民, 爲臣而擅君之民, 失於臣義, 是以宜其凶也.
九四가 이미 六三과 六二를 소유하여 九五의 백성을 얻어서 신하가 되어 군주의 백성을 독차지하니 신하의 의리를 잃은 것이다. 이 때문에 흉함이 마땅한 것이다.
‘有孚在道 明功’者, 釋以明何咎之義. 旣能著信在于正道, 是明立其功, 故无咎也.
[有孚在道 明功] ‘功을 밝게 세우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이미 誠信을 드러내고 正道에 있을 수 있으면 이는 功을 밝게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九五 孚于嘉하니라
九五는 善을 믿는 것이니, 길하다.
[注]履正居中하고 而處隨世하여 盡隨時之宜하여 得物之誠이라 故嘉吉也
正位를 밟고 中에 거하며 따르는 세상에 처하여 때를 따르는 마땅함을 다해서 남의 誠信을 얻었다. 그러므로 善하여 길한 것이다.
正義曰:嘉는 善이다. 中을 밟고 正位에 거하며 따르는 세상에 처하여 때를 따르는 義를 다해서 남의 誠信을 얻었으므로 아름답고 善한 길함을 얻는 것이다.
象曰 孚于嘉吉 位正中也
〈象傳〉에 말하였다. “善을 믿어서 길함은 자리가 正中하기 때문이다.”
上六 拘係之라야 乃從이요 維之인댄 王用亨于西山하니라
上六은 얽어놓아야 비로소 따르고, 동여매려면 王이 西山을 통해야 할 것이다.
[注]隨之爲體 陰順陽者也어늘 最處上極하여 不從者也 隨道已成이어늘 而特不從이라 拘係之라야 乃從也
隨의 體는 陰이 陽에 順한 것인데, 〈上六이〉 가장 上의 極에 처하여 따르지 않는 자이다. 隨의 道가 이미 이루어졌는데 홀로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얽어놓아야 비로소 따르는 것이다.
率土之濱 莫非王臣이어늘 而爲不從이면 王之所討也 維之인댄 王用亨于西山也
온 海內의 땅이 왕의 신하 아닌 이가 없는데 따르지 않으면 왕이 토벌한다. 그러므로 동여매려면 왕이 西山을 통해야 하는 것이다.
兌爲西方이요 山者 途之險隔也 處西方而爲不從이라 王用通于西山이라
兌는 西方이 되고 山은 길 중에 험한 것이니, 서방에 있으면서 따르지 않기 때문에 왕이 西山을 통하는 것이다.
[疏]‘象曰’至‘于西山’
經의 [象曰]에서 [于西山]까지
○正義曰:最處上極, 是不隨從者也, 隨道已成, 而特不從, 故須拘係之, 乃始從也.
○正義曰:〈上六이〉 가장 上의 極에 처하였으니 이는 따르지 않는 자이니, 隨의 道가 이미 이루어졌는데 홀로 따르지 않으므로 모름지기 얽어놓아야 비로소 따르는 것이다.
[維之 王用亨于西山] 만약 이 上六을 매어놓고자 한다면 王者가 반드시 군대를 사용하여 西山의 험한 곳을 통하여야 얽어맬 수 있는 것이다.
山謂險阻, 兌處西方, 故謂“西山.” 有不從, 必須維係,
‘山’은 험함을 이르고 兌는 西方에 처하므로 “西山”이라고 말한 것이다. 가령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얽어매어야 한다.
此乃王者必須用兵, 通於險阻之道, 非是意在好刑, 故曰王用亨于西山.
이는 바로 王者가 반드시 군대를 사용하여 험난한 길을 통과함이니, 뜻이 형벌을 좋아함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王이 西山을 통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象曰 拘係之 上窮也
〈象傳〉에 말하였다. “얽어매는 것은 위로 궁극하기 때문이다.”
[注]處于上極이라 故窮也
上의 極에 처하였기 때문에 궁극한 것이다.
[疏]正義曰:釋拘係之義, 所以須拘係者, 以其在上而窮極, 不肯隨從故也.
正義曰:‘얽어놓음’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모름지기 얽어매야 하는 까닭은 위에 있으면서 궁극하여 따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特云隨時者 謂隨其時節之義 : 〈彖傳〉에서 時와 義를 함께 “大矣哉”라고 탄미한 卦는 豫卦, 遯卦, 姤卦, 旅卦, 隨卦로 모두 다섯 卦인데, 隨卦에서만 “隨時之義”라고 하여 조금 다르다.
孔穎達은 그 이유를 “비단 이 가운데에 따로 義意가 있을 뿐만이 아니요 또 때를 따름을 취하였기 때문에 변하여 ‘隨時之義 大矣哉’라고 한 것이다.[非但其中別有義意 又取隨逐其時 故變云隨時之義大矣哉]” 하였다.
程伊川은 “君子의 道는 때를 따라 동하여 마땅함을 따르고 변화에 적응해서 일정한 법칙으로 삼을 수 없으니, 道에 조예가 깊어 기미를 알아 저울질할 수 있는 자가 아니면 여기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찬양하기를 ‘때를 따르는 뜻이 크다.’라고 한 것이니, 무릇 찬양한 것은 사람들이 그 義가 큼을 알아서 살펴보고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여기에서 때를 따르는 뜻이 큼을 찬양한 것은 豫卦 등의 여러 卦와 같지 않으니, 여러 卦는 때와 義이니, 이는 두 가지 일이다.[君子之道 隨時而動 從宜適變 不可爲典要 非造道之深 知幾能權者 不能與於此也 故贊之曰 隨時之義 大矣哉 凡贊之者 欲人知其義之大 玩而識之也 此贊隨時之義大 與豫等諸卦不同 諸卦 時與義 是兩事]” 하였다.
한편 朱子는 王肅本에 “隨之時義”라고 한 것을 따랐는바, 이를 따르면 隨卦의 〈彖傳〉 역시 “隨의 때와 義가 크다.”로 해석하게 된다.
역주2 (於)[分] : 저본에는 ‘於’으로 되어 있으나, 錢本ㆍ閩本ㆍ監本ㆍ毛本에 의거하여 ‘分’으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3 (居)[俱] : 저본에는 ‘居’로 되어 있으나, 注와 毛本에 의거하여 ‘俱’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4 (爲)[違] : 저본에는 ‘爲’로 되어 있으나, 疏에 의거하여 ‘違’로 바로잡았다.
역주5 貞凶者……故貞凶也 : ‘貞凶’을 王弼과 孔穎達은 九四가 신하로서 백성의 마음(六二와 六三)을 얻은 것은 신하의 도리를 잃은 것이므로 바름을 어긴 것이어서 흉하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은 “九四가 陽剛의 재주로 신하 지위의 극에 처하였으니, 만약 따름에 얻음이 있으면 비록 올바르더라도 흉하다.[九四以陽剛之才 處臣位之極 若於隨有獲 則雖正亦凶]”라 하고, 朱子는 “九四가 剛으로서 上卦의 아래에 거하여 九五와 德이 같다. 그러므로 그 占이 따라서 얻음이 있으나 權勢가 九五를 능멸하기 때문에 비록 올바르더라도 흉하다.[九四以剛居上之下 與五同德 故其占隨而有獲 然勢陵於五 故雖正而凶]”라고 하여, ‘貞凶’을 모두 ‘올바르더라도 흉함’으로 해석하였다.
역주6 履中居正……故獲美善之吉也 : ‘孚于嘉’를 王弼과 孔穎達은 九五의 善함을 남이 믿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은 九五가 善을 정성스럽게 따름의 의미로 해석하고, 이를 九五가 六二에 응함과 연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九五는 尊位에 거하고 正을 얻었으며 中이 實하니, 이는 마음의 정성이 善을 따름에 있는 것인바, 길함을 알 수 있다. 嘉는 善이다. 人君으로부터 庶人에 이르기까지 따르는 道의 길함은 오직 善을 따름에 있을 뿐이니, 아래로 六二의 正中에 응하는 것이 善을 따르는 뜻이 된다.[九五居尊得正而中實 是其中誠 在於隨善 其吉可知 嘉 善也 自人君至於庶人 隨道之吉 唯在隨善而已 下應二之正中 爲隨善之義]” 朱子도 이와 같다.
역주7 王用亨于西山者……乃得拘係也 : ‘王用亨于西山’을 王弼과 孔穎達은 ‘王者가 험난한 西山의 길을 통과함’의 뜻으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은 여기의 王을 太王으로 보고, 西山을 岐山으로 보아, “옛날에 太王이 이 道를 써서 王業을 西山에서 亨通하게 하였다. 太王이 狄의 난을 피하여 豳을 버리고 岐山으로 오자, 豳 땅의 늙은이와 어린이가 붙들어 잡고 따르기를 시장에 돌아가듯 하였으니, 인심의 따름이 이처럼 굳게 결속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그 王業을 西山에서 亨通하고 창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西山은 岐山이니, 周나라의 王業이 여기에서 일어났다.[昔者 太王用此道 亨王業于西山 太王避狄之難 去豳來岐 豳人老稚 扶携以隨之 如歸市 蓋其人心之隨 固結如此 用此 故能亨盛其王業於西山 西山 岐山也 周王之業 蓋興於此]”라고 하였다.
朱子는 西山을 程伊川과 똑같이 岐山으로 보았으나, ‘亨’은 大有卦 九三 爻辭의 “公用亨于天子”와 마찬가지로 ‘享’으로 보고, “이 점괘는 王이 西山에서 祭享함이 되니, 亨은 또한 마땅히 祭享의 享자가 되어야 한다. 周나라의 입장에서 말하면 岐山은 서쪽에 있다.[其占爲王用亨于西山 亨亦當作祭享之享 自周而言 岐山在西]” 하였다.
역주8 (今)[令] : 저본에는 ‘今’으로 되어 있으나, 錢本에 의거하여 ‘令’으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주역정의(2)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