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易兼義 卷第九
國子祭酒上護軍曲阜縣開國子 臣 孔穎達 奉勅撰正義
韓康伯 注
周易 說卦 第九
疏
[疏]正義曰:說卦者, 陳說八卦之德業變化及法象所爲也.
孔子以伏犧畫八卦, 後重爲六十四卦, 八卦爲六十四卦之本.
又云“古者包犧氏之王天下也, 仰則觀象於天, 俯則觀
於地, 觀鳥獸之文與地之宜,
然引而伸之, 重三成六之意, 猶自未明, 仰觀俯察, 近身遠物之象, 亦爲未見.
故孔子於此, 更備說重卦之由, 及八卦所爲之象, 故謂之說卦焉.
先儒以孔子十翼之次, 乾坤文言在二繫之后․說卦之前,
以彖․象附上下二經, 爲六卷, 則上繫第七, 下繫第八, 文言第九, 說卦第十, 輔嗣
.
疏
[疏]正義曰:‘昔者聖人’至‘以至於命’ 此一節, 將明聖人引伸因重之意,
注
[注]幽
는 深也
요 贊
은 明也
라 蓍受命如
하되 不知所以然而然也
라
疏
○正義曰:據今而稱上世, 謂之昔者也. 聰明叡知謂之聖人, 此聖人卽伏犧也.
且下繫已云“包犧氏之王天下也, 於是始作八卦”, 今言“作易”,
凡言作者, 皆本其事之所由, 故云“昔者聖人之作易也.”
聖人作易, 其作如何. 以此聖知深明神明之道, 而生用蓍求卦之法, 故曰“幽贊於神明而生蓍”也.
疏
‘蓍受命如嚮 不知所以然而然’者, 釋聖人所以深明神明之道, 便能生用蓍之意, 以神道與用蓍相協之故也.
神之爲道, 陰陽不測, 妙而无方, 生成變化, 不知所以然而然者也, 蓍則受人命令, 告人吉凶, 應人如嚮, 亦不知所以然而然, 與神道爲一.
注
[注]參은 奇也요 兩은 耦也니 七, 九는 陽數요 六, 八은 陰數라
疏
○正義曰:倚, 立也, 旣用蓍求卦, 其揲蓍所得, 取奇數於天, 取耦數於地, 而立七․八․九․六之數,
疏
○正義曰:先儒馬融․王肅等解此, 皆依繫辭云“天數五, 地數五, 五位相得而各有合”,
鄭玄亦云“天地之數備於十, 乃三之以天, 兩之以地, 而倚託大演之數五十也.
必三之以天, 兩之以地者, 天三覆, 地二載, 欲極於數, 庶得吉凶之審也.”
其意皆以繫辭所云“大演之數五十, 其用四十有九”, 明用蓍之數,
下云“天數五, 地數五, 五位相得而各有合, 天地之數五十有五”, 以爲大演卽天地之數.
又此上言“幽贊於神明而生蓍,” 便云“參天兩地而倚數”, 驗文準義, 故知如此.
疏
用王輔嗣意, 云“易之所賴者五十, 其用四十有九, 則其一, 不用也. 不用而用以之通, 非數而數以之成.”
用與不用, 本末合數, 故五十也. 以大衍五十, 非卽天地之數, 故不用馬融․鄭玄等說.
然此倚數生數, 在生蓍之後․立卦之前, 明用蓍得數而布以爲卦, 故以七․八․九․六當之.
七․九爲奇, 天數也, 六․八爲耦, 地數也, 故取奇於天, 取耦於地, 而立七․八․九․六之數也.
何以參兩爲目奇耦者. 蓋古之奇耦, 亦以三兩言之, 且以兩是耦數之始, 三是奇數之初故也.
注
卦則雷風相薄하고 山澤通氣하여 擬象陰陽變化之體하고 蓍則錯綜天地參兩之數하니
蓍는 極數以定象하고 卦는 備象以盡數라 故로 蓍에 曰 參天兩地而倚數라하고 卦에 曰 觀變於陰陽也라하니라
疏
○正義曰:言其作易聖人, 本觀察變化之道, 象於天地陰陽, 而立乾坤等卦,
疏
○正義曰:‘卦則雷風相薄 山澤通氣 擬象陰陽變化之體’
, 此言六十四卦, 非小成之八卦也.
伏犧初畫八卦, 以震象雷, 以巽象風, 以艮象山, 以兌象澤, 八卦未重, 則雷風各異, 山澤不通, 於陰陽變化之理, 未爲周備,
故此下云“八卦相錯, 數往者順, 知來者逆”, 注云“八卦相錯, 變化理備, 於往則順而知之, 於來則逆而數之”是也.
知非八卦者, 先儒皆以繫辭論用蓍之法, 云“四營而成易 十有八變而成卦”者, 謂用蓍三扐而布一爻, 則十有八變, 爲六爻也.
蓋伏犧之初, 直仰觀俯察, 用陰陽兩爻而畫八卦, 後因而重之, 爲六十四卦, 然後天地變化, 人事吉凶, 莫不周備, 縕在爻卦之中矣.
文王又於爻卦之下, 繫之以辭, 明其爻卦之中吉凶之義.
故可用數求象, 於是幽贊於神明而生蓍, 用蓍之法, 求取卦爻, 以定吉凶.
繫辭曰“天生神物, 聖人則之”, “无有遠近幽深, 遂知來物”是也.
繫辭言伏犧作易之初, 不假用蓍成卦, 故直言仰觀俯察, 此則論其旣重之后, 端策布爻, 故先言生蓍, 后言立卦.
疏
[疏]正義曰:旣觀象立卦, 又就卦發動揮散, 於剛柔兩畫, 而生變動之爻, 故曰“發揮於剛柔而生爻”也.
和順於道德하고 而理於義하며 窮理盡性하여 以至於命하니라
疏
○正義曰:蓍數旣生, 爻卦又立, 易道周備, 无理不盡.
聖人用之, 上以和協順成聖人之道德, 下以治理斷
人倫之正義,
又能窮極萬物深妙之理, 究盡生靈所稟之性, 物理旣窮, 生性又盡, 至於一期所賦之命, 莫不窮其短長, 定其吉凶,
故曰“和順於道德, 而理於義, 窮理盡性, 以至於命”也.
疏
○正義曰:‘命’者, 人所稟受, 有其定分, 從生至終, 有長短之極, 故曰“命者, 生之極”也.
此所賦命, 乃自然之至理, 故“窮理則盡其極”也.
疏
정의왈正義曰:설괘說卦는 팔괘八卦의 덕업德業의 변화와 법상法象의 하는 바를 진술하여 설명한 것이다.
공자孔子는 ‘복희伏犧가 팔괘를 그었고 뒤에 〈팔괘를〉 거듭하여 64괘卦를 만들어서 팔괘가 64괘卦의 근본이 되었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계사전繫辭傳 상上〉 가운데에서 ‘팔괘에 조금 이루고서 이것을 이끌어 펴니, 일의 종류를 만나 키우면 천하天下의 능한 일이 끝남’을 간략히 밝혔고,
또 말씀하기를 “팔괘가 열위列位를 이루니 상象이 이 가운데 들어 있고, 〈이 팔괘를〉 인하여 거듭하니 효爻가 이 가운데 들어 있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옛날 포희씨包犧氏가 천하에 왕 노릇 할 적에 위로는 하늘에서 상象을 보고 아래로는 땅에서 법法을 취하며, 새․짐승의 문文과 땅의 마땅함을 살펴보며,
가까이에서는 자기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물건에게서 취하여 이에 비로소 팔괘를 만들어서 신명神明의 덕德을 통달하며 만물萬物의 정情을 분류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끌어 폄에 3획을 거듭하여 6획을 이룬 뜻’이 아직도 분명하지 못하고, ‘우러러 관찰하고 굽어 살피며 가까이 몸에서 취하고 멀리 물건에게서 취한 상象’ 또한 잘 드러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공자가 여기에서 다시 괘卦를 거듭한 이유와 팔괘의 하는 바의 상象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설괘說卦라 한 것이다.
선유先儒가 공자의 십익十翼의 차례를 〈정하기를〉,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의 〈문언전文言傳〉을 〈계사전繫辭傳〉 상上․하下의 뒤와 〈설괘전說卦傳〉의 앞에 두고,
〈단전彖傳〉과 〈상전象傳〉을 상上․하下 두 경經에 붙여서 6권卷으로 만드니, 〈계사전繫辭傳 상上〉이 제7이고 〈계사전繫辭傳 하下〉가 제8이고 〈문언전文言傳〉이 제9이고 〈설괘전說卦傳〉이 제10이었는데, 왕보사王輔嗣(왕필王弼)가 〈문언전文言傳〉을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에 나누어 붙였다. 그러므로 〈설괘전說卦傳〉이 제9가 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경經의 [석자성인昔者聖人]에서 [以至於命]까지 이 한 절은 장차 성인聖人이 이끌어 펴고 인하여 거듭한 뜻을 밝히려 하였다.
그러므로 먼저 성인이 본래 시蓍․수數와 괘卦․효爻를 지은 것을 서술하여 천도天道와 인사人事의 묘함이 지극한 이치를 자세히 밝힌 것이다.
옛날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을 적에 신명神明을 깊이 밝혀서 시초蓍草를 내었고,
注
‘유幽’는 깊음이요, ‘찬贊’은 밝음이다. 시초가 명命을 받고서 고해줌을 메아리와 같이하되 소이연所以然을 알지 못하고 그렇게 된다.
疏
○정의왈正義曰:지금을 근거하여 상세上世를 칭해서 ‘석자昔者’라 한 것이다. 총명聰明하고 예지叡智함을 성인聖人이라 이르니, 여기의 성인은 바로 복희伏犧이다.
복희라 말하지 않고 성인이라고 말한 것은 성聖스러운 지혜로써 〈역易을〉 제작함을 밝힌 것이다.
또 〈계사전繫辭傳 하下〉에 이미 “포희씨包犧氏가 천하에 왕 노릇 할 적에 비로소 팔괘八卦를 만들었다.”라고 하였으니, 지금 “역易을 지었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복희를 말한 것이요 문왕文王 등이 아니다.
무릇 ‘작作’이라고 말한 것은 모두 그 일이 연유한 바를 근본하였다. 그러므로 “옛날 성인이 역易을 지을 적에”라고 말한 것이다.
성인이 역易을 지음은 그 짓기를 어떻게 했는가? 이 성스러운 지혜로써 신명神明의 도道를 깊이 밝혀서 시초蓍草를 사용하여 괘卦를 구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신명을 깊이 밝혀서 시초를 내었다.”라고 말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유幽] 숨어서 보기 어려우므로 ‘깊다[심深]’고 훈訓한 것이다.
[찬贊] 도와서 이루어주어 은미한 것으로 하여금 드러나게 하였으므로 ‘밝다[명明]’고 훈訓한 것이다.
[蓍受命如嚮 不知所以然而然] 성인聖人이 신명神明의 도道를 깊이 밝혀서 시초蓍草를 사용하는 뜻을 만들어내었음을 해석하였으니, 이는 신명의 도道와 시초를 사용함이 서로 화합하기 때문이다.
신神의 도道는 음양陰陽을 측량할 수 없어서 묘妙하여 일정한 방소가 없어서 변화를 생성하되 소이연所以然을 알지 못하고 그렇게 되며, 시초는 사람에게 명령을 받고서 사람에게 길吉․흉凶을 말해주어 사람에게 응하기를 메아리와 같이 하는데 이 또한 소이연所以然을 알지 못하고 그렇게 되는 것이어서 신도神道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계사전繫辭傳 상上〉에 이르기를 “시초의 덕德은 둥글어 신묘하다.”라고 한 것이니, 명을 받으면 메아리와 같다는 것도 〈계사전繫辭傳 상上〉의 글이다.
하늘에서 3을 취하고 땅에서 2를 취하여 수數를 세웠고,
注
3은 기수奇數이고 2는 우수耦數(우수偶數)이니, 〈사상四象의 수數에〉 7(소양少陽)과 9(노양老陽)는 양수陽數이고, 6(노음老陰)과 8(소음少陰)은 음수陰數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의倚’는 세움이니, 이미 시초를 사용해서 괘卦를 구하였으면 시蓍를 떼어 얻는 것이 하늘에서 기수奇數를 취하고 땅에서 우수耦數를 취하여 7․8․9․6의 수數를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3을 취하고 땅에서 2를 취하여 수數를 세웠다.”라고 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선유先儒인 마융馬融과 왕숙王肅 등은 이 글을 해석할 적에 모두 〈계사전繫辭傳 상上〉의 “하늘의 수數가 다섯이고 땅의 수數가 다섯이니, 다섯 자리가 서로 맞아 각각 합함이 있다.”라는 말을 따라서
“다섯 자리가 서로 합하여 음陰으로 양陽을 따랐는바, 하늘은 세 가지 합함을 얻었으니 1․3․5를 이르고, 땅은 두 가지를 합함을 얻었으니 2․4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정현鄭玄은 또한 이르기를 “천天․지地의 수數가 10에 갖추어져 있으니, 하늘로 3을 만들고 땅으로 2를 만들어서 대연大衍(대연大演)의 수數 50에 의탁하였다.
반드시 하늘로 3을 만들고 땅으로 2를 만든 것은, 하늘은 3으로 덮어주고 땅은 2로 실어주어서이니, 수數를 지극히 하여 길흉吉凶의 자세함을 얻고자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뜻이 모두 〈계사전繫辭傳 상上〉에 말한 “대연大衍의 수數가 50이니, 그 쓰임은 49개이다.”라는 것을 가지고 시초蓍草를 사용하는 수數를 밝혔고,
아래(〈계사전繫辭傳 상上〉)에 말한 “하늘의 수數가 다섯이고 땅의 수數가 다섯이니, 다섯 자리가 서로 맞아 각각 합함이 있는바, 천天․지地의 수數가 55이다.”라는 것을 가지고 대연大衍 즉 천天․지地의 수數로 삼은 것이다.
또 이 위(〈설괘전說卦傳〉)에 “〈옛날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을 적에〉 신명神明을 깊이 밝혀서 시초를 내었다.”라 하고, 곧 “하늘에서 3을 취하고 땅에서 2를 취하여 수數를 세웠다.”라고 하였으니, 글을 징험해보고 뜻을 기준해보기 때문에 이와 같음을 아는 것이다.
疏
한강백韓康伯은 〈계사전繫辭傳 상上〉에 “대연大衍의 수數가 50이다.”라고 한 것에 주注를 내면서
왕보사王輔嗣(왕필王弼)의 뜻을 따라 말하기를 “역易이 사용하는 것(시초蓍草)이 50개인데 그 쓰임은 49개이니, 그렇다면 그 하나는 쓰이지 않는 것이다. 쓰이지 않는데도 쓰임이 이 때문에 통하고, 수數가 아닌데도 수數가 이 때문에 이루어진다.”라고 하였다.
쓰임과 쓰이지 않음의 본本과 말末의 수數를 합하였으므로 50인 것이다. 대연수大衍數 50은 천天․지地의 수數가 아니므로 마융馬融과 정현鄭玄 등의 설說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의 ‘수數를 세우고 수數를 낳는 것’이 ‘시초를 낳음’의 뒤와 ‘괘卦를 세움’의 앞에 있으니, 이는 시초를 사용하여 수數를 얻어서 진열하여 괘卦로 삼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7․8․9․6으로 여기에 해당시킨 것이다.
7과 9는 기수奇數가 되니 하늘의 수數이고, 6과 8은 우수耦數(우수偶數)가 되니 땅의 수數이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기수奇數를 취하고 땅에서 우수耦數를 취하여 7․8․9․6의 수數를 세운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3과 2를 가지고 기수奇數와 우수耦數를 지목하였는가? 옛날에 기수奇數와 우수耦數 또한 3과 2를 가지고 말하였고, 또 2는 우수耦數의 시작이고 3은 기수奇數의 처음이기 때문이다.
1로써 기수奇數를 지목하지 않은 이유는, 장씨張氏(장기張譏)가 이르기를 “3 가운데 2가 포함되어 있어서 1로써 2를 포함하는 뜻이 있으니, 하늘에 땅을 포함하는 덕德이 있고 양陽에 음陰을 포함하는 도道가 있음을 밝혔기 때문에 하늘의 〈수數에〉 있어서는 많은 수를 들고 땅의 〈수數에〉 있어서는 적은 수를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음陰과 양陽에서 변화를 관찰하여 괘卦를 세웠고,
注
괘卦는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치고 산과 못이 기운을 통하여 음陰․양陽이 변화하는 체體를 비의比擬하여 형상하였고, 시蓍는 하늘의 3과 땅의 2의 수數를 번갈아 종합하였으니,
시蓍는 수數를 지극히 하여 상象을 정하고 괘卦는 상象을 갖추어 수數를 다하였다. 그러므로 시蓍에서는 “하늘에서 3을 취하고 땅에서 2를 취하여 수數를 세웠다.”라 하고, 괘卦에서는 “음陰과 양陽에서 변화를 관찰한다.”라고 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역易을 지은 성인聖人이 본래 변화의 도道를 관찰하여 천天․지地와 음陰․양陽을 형상하여 건乾․곤坤 등의 괘卦를 세움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음陰과 양陽에서 변화를 관찰하여 괘卦를 세웠다.”라고 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卦則雷風相薄 山澤通氣 擬象陰陽變化之體] 이는 64괘卦를 말한 것이요, 소성小成의 팔괘八卦가 아니다.
복희伏犧가 처음 팔괘를 그을 적에 진震으로 우레를 형상하고, 손巽으로 바람을 형상하고, 간艮으로 산을 형상하고, 태兌로 못을 형상하니, 팔괘를 거듭하지 않으면 우레와 바람이 각각 다르고 산과 못이 통하지 못하여 음양陰陽이 변화하는 이치에 대하여 두루 하고 구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아래에 “팔괘가 서로 뒤섞이니, 지나간 것을 셈은 순順이요 미래를 앎은 역逆이다.”라고 하였는데, 주注에 “팔괘가 서로 뒤섞임에 변화變化의 이치가 구비되니,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순順하여 알고 미래에 대해서는 역逆하여(거슬러서) 따져본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팔괘가 아닌 줄을 아는 이유는, 선유先儒들이 모두 〈계사전繫辭傳〉에서 시초蓍草를 사용하는 방법을 논하여 “4번 경영하여 역易을 이루고 18번 변하여 괘卦를 이루었다.”라고 한 것을 가지고 ‘시초를 사용하여 3번 손가락에 끼워 한 효爻를 펴니, 18번 변하여 육효六爻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시초를 사용함’은 육효六爻의 뒤에 있는 것이요, 삼획三畫의 때가 아닌 것이다.
복희伏犧의 초기에는 다만 우러러 관찰하고 굽어 살펴서 음陰․양陽 두 효爻를 사용하여 팔괘를 그었는데, 뒤에 인하여 거듭하여 64괘卦를 만드니, 이렇게 한 뒤에 천지天地의 변화와 인사人事의 길흉吉凶이 두루 구비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역易의 도道가〉 효爻와 괘卦의 가운데에 쌓여 있게 되었다.
문왕文王이 또다시 효爻와 괘卦의 아래에 글(괘사卦辭와 효사爻辭)을 달아서 효爻와 괘卦 안의 길흉의 뜻을 밝혔다.
시蓍는 바로 수數이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이르기를 “물건이 생긴 이후에 상象이 있고 상象이 있은 뒤에 불어남이 있고 불어난 뒤에 수數가 있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수數는 상象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다.
이 때문에 수數를 사용하여 상象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니, 이에 신명神明을 깊이 밝혀 시초를 내고, 시초를 사용하는 법으로 괘卦와 효爻를 구하여 취해서 길흉을 결정하는 것이다.
〈계사전繫辭傳〉에 이르기를 “하늘이 신물神物(시초와 거북껍질)을 내자 성인聖人이 이것을 법칙으로 삼았다.”라 하고, “원근遠近과 유심幽深이 없이(원근遠近과 유심幽深을 막론하고) 마침내 미래의 일을 안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계사전繫辭傳〉에서는 복희伏犧가 역易을 만든 초기를 말하면서 시초를 사용하여 괘卦를 이룸을 빌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곧바로 ‘우러러 살피고 굽어 살핌’을 말하였고, 여기서는 이미 〈팔괘八卦를〉 거듭한 뒤에 산대[책策]를 단정히 하여 효爻를 펼침을 논하였으므로 먼저 ‘시초를 낳음’을 말하고 뒤에 ‘괘卦를 세움’을 말한 것이다.
이는 ‘성인聖人이 신명神明을 깊이 밝힘’이 원래 ‘음陰․양陽에서 변화를 관찰함’의 앞에 있던 것은 아니다.
注
강剛과 유柔가 발산되어서 변동이 서로 낳은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이미 상象을 보아 괘卦를 세우고, 또 괘卦에 나아가 발동하고 발산하여 강剛과 유柔 두 획에 변동하는 효爻를 낳았다. 그러므로 “강剛과 유柔를 발휘하여 효爻를 내었다.”라고 한 것이다.
도덕道德에 화순和順하고 의義를 다스리며, 이치를 다하고 성性을 다하여 명命에 이른다.
注
‘명命’은 생명의 극極이니, 이치를 다하면 극極을 다하게 된다.
疏
○정의왈正義曰:시초와 수數가 이미 생겨나고 효爻와 괘卦가 또 확립되면 역易의 도道가 두루 구비되어 이치마다 다하지 않음이 없다.
성인聖人이 이것을 사용하여 위로는 성인의 도덕道德을 화합하여 순히 이루고, 아래로는 인륜人倫의 정의正義를 다스리고 결단하며,
또 만물의 깊고 묘한 이치를 다하고, 생령生靈들이 품부받은 성性을 다하니, 사물의 이치가 이미 다하고 타고난 성性이 또 다하여 한 시기에 받은 명命에 이르러도 그 장단長短을 다하고 그 길흉吉凶을 정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도덕에 화순和順하고 의義를 다스리며, 이치를 다하고 성性을 다하여 명命에 이른다.”라고 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명命] 사람이 받은 것이니, 정해진 분수가 있어서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장단長短의 극極이 있다. 그러므로 “명命은 생명의 극極이다.”라고 한 것이다.
여기의 ‘받은 바의 명命’은 바로 자연의 지극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이치를 다하면 극極을 다한다.”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