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濟는 亨하니 小狐汔濟니 濡其尾면 无攸利하니라
疏
[疏]正義曰:‘未濟 亨’者, 未濟者, 未能濟渡之名也. 未濟之時, 小才居位, 不能建功立德, 拔難濟險.
若能執柔用中, 委任賢哲, 則未濟有可濟之理, 所以得通, 故曰“未濟, 亨.”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者, 汔者, 將盡之名, 小才不能濟難,
事同小狐雖
渡水, 而无餘力, 必須水汔, 方可涉川.
未及登岸, 而濡其尾, 濟不免濡, 豈有所利. 故曰“
注
[注]以柔處中은 不違剛也니 能納剛健故로 得亨也라
疏
[疏]正義曰:此就六五以柔居中, 下應九二, 釋未濟所以得亨.
柔而得中, 不違剛也. 與二相應, 納剛自輔, 故於未濟之世, 終得亨通也.
注
[注]小狐不能涉大川하여 須汔然後에야 乃能濟라 處未濟之時하여 必剛健拔難然後에야 乃能濟하니 汔乃能濟는 未能出險之中이라
疏
[疏]正義曰:‘小狐汔濟 未出中也’者, 釋小狐涉川, 所以必須水汔乃濟, 以其力薄, 未能出險之中故也.
注
[注]小狐雖能渡나 而无餘力이라 將濟而濡其尾는 力竭於斯하여 不能續終하니 險難을 猶未足以濟也라 濟未濟者는 必有餘力也라
疏
[疏]正義曰:濡尾力竭, 不能相續而終, 至於登岸, 所以无攸利也.
疏
[疏]正義曰:‘雖不當位 剛柔應’者, 重釋未濟之義, 凡言未者, 今日雖未濟, 復有可濟之理.
以其不當其位, 故卽時未濟, 剛柔皆應, 是得相拯, 是有可濟之理. 故稱未濟, 不言不濟也.
象曰 火在水上이 未濟니 君子以愼辨物居方하나니라
疏
[疏]正義曰:‘火在水上 未濟’者, 火在水上, 不成烹飪, 未能濟物. 故曰“火在水上, 未濟.”
注
[注]處未濟之初하여 最居險下하여 不可以濟者也어늘 而欲之其應하여 進則溺身이라
未濟之始는 始於旣濟之上六也니 濡其首로되 猶不反하여 至於濡其尾하면 不知紀極者也라
然이나 以陰處下하여 非爲進亢하여 遂其志者也니 困則能反이라 故로 不曰凶이라
事在已量이어늘 而必困乃反하니 頑亦甚矣라 故로 曰 吝也라하니라
疏
○正義曰:初六處未濟之初, 最居險下, 而欲上之其應, 進則溺身, 如小狐之渡川, 濡其尾也.
未濟之始, 始於旣濟之上六也, 旣濟上六, 但云“濡其首”, 言始入於難, 未沒其身,
此言“濡其尾”者, 進不知極, 已沒其身也. 然以陰處下, 非爲進亢, 遂其志者也, 困則能反, 故不曰“凶.”
不能豫昭事之幾萌, 困而後反, 頑亦甚矣, 故曰“吝”也.
注
[注]體剛履中하여 而應於五하고 五體陰柔하여 應與而不自任者也라
居未濟之時하고 處險難之中하여 體剛中之質로 而見任與하여 拯救危難하고 經綸屯蹇者也라
用健拯難하여 靖難在正하여 而不違中이라 故로 曳其輪이나 貞하여 吉也라
疏
[疏]正義曰:‘曳其輪 貞吉’者, 九二居未濟之時, 處險難之內, 體剛中之質, 以應於五, 五體陰柔, 委任於二, 令其濟難者也.
靖難在正, 然後得吉, 故曰“曳其輪, 貞吉”也.
疏
[疏]正義曰:‘中以行正’者, 釋九二失位而稱貞吉者, 位雖不正, 以其居中, 故能行正也.
注
[注]以陰之質로 失位居險하여 不能自濟者也라 以不正之身으로 力不能自濟어늘 而求進焉이면 喪其身也라 故로 曰 征凶也라하니라
二能拯難이어늘 而己比之하니 棄己委二하여 載二而行이면 溺可得乎아 何憂未濟리오 故로 曰 利涉大川이라하니라
疏
[疏]正義曰:‘未濟 征凶’者, 六三以陰柔之質, 失位居險, 不能自濟者也.
身旣不能自濟, 而欲自進求濟, 必喪其身. 故曰“未濟, 征凶”也.
疏
[疏]正義曰:‘位不當’者, 以不當其位, 故有征則凶.
九四는 貞하면 吉하여 悔亡하리니 震用伐鬼方하여 三年에 有賞于大國이로다
注
[注]處未濟之時하여 而出險難之上하고 居文明之初하여 體乎剛質하여 以近至尊하니 雖履非其位나 志在乎正이면 則吉而悔亡矣라
其志得行하여 靡禁其威라 故로 曰 震用伐鬼方也라하니라 伐鬼方者는 興衰之征也라 故로 每至興衰而取義焉이라
處文明之初하여 始出於難하여 其德未盛이라 故로 曰 三年也라하니라
五居尊以柔하여 體乎文明之盛하여 不奪物功者也라 故로 以大國賞之也라
疏
[疏]正義曰:居未濟之時, 履失其位, 所以爲悔. 但出險難之外, 居文明之初, 以剛健之質, 接近至尊, 志行其正,
正則貞吉而悔亡, 故曰“貞吉, 悔亡.” 正志旣行, 靡禁其威, 故震發威怒, 用伐鬼方也.
然處文明之初, 始出於險, 其德未盛, 不能卽勝, 故曰“三年”也.
五以順柔文明而居尊位, 不奪物功, 九四旣克而還, 必得百里大國之賞, 故曰“有賞於大國”也.
疏
[疏]正義曰:‘志行’者, 釋九四失位而得貞吉悔亡者也, 以其正志得行, 而終吉故也.
六五는 貞吉이라야 无悔니 君子之光이 有孚라 吉하니라
注
[注]以柔居尊하고 處文明之盛하여 爲未濟之主라 故로 必正然後乃吉이요 吉乃得无悔也라
夫以柔順文明之質로 居於尊位하여 付與於能하고 而不自役하여 使武以文하고 御剛以柔하면 斯誠君子之光也라
하여 而不疑也
하면 物則竭力
하여 功斯克矣
라 故
로 曰 有孚
라 吉
이라하니라
疏
[疏]正義曰:‘貞吉 无悔’者, 六五以柔居尊, 處文明之盛, 爲未濟之主,
‘君子之光’者, 以柔順文明之質, 居於尊位, 有應於二, 是能付物以能, 而不自役, 有君子之光華矣, 故曰“君子之光”也.
疏
[疏]正義曰:‘其暉吉’者, 言君子之德,
, 然後乃得吉也.
上九는 有孚于飮酒면 无咎어니와 濡其首하니 有孚하여 失是로다
注
[注]未濟之極이면 則反於旣濟하나니 旣濟之道는 所任者當也라
所任者當이면 則可信之无疑하여 而己逸焉이라 故로 曰 有孚于飮酒하면 无咎也라하니라
以其能信於物故로 得逸豫而不憂於事之廢하니 苟不憂於事之廢하고 而耽於樂之甚이면 則至于失節矣라
由於有孚하여 失於是矣라 故로 曰 濡其首하니 有孚하여 失是也라하니라
疏
[疏]正義曰:‘有孚于飮酒 无咎’者, 上九居未濟之極, 則反於旣濟. 旣濟之道, 則所任者當也.
疏
[疏]正義曰:‘亦不知節’者, 釋飮酒所以致濡首之難, 以其不知止節故也.
未濟는 형통하니, 작은(어린) 여우가 물이 말라야 건너가니, 그 꼬리를 적시면 이로운 바가 없다.
疏
正義曰:[未濟 亨] ‘未濟’는 아직 물을 건너가지 못함의 이름이다. 未濟의 때에 작은 재주의 사람이 지위에 있으면 功을 세우고 德을 수립하지 못하여 어려움(患難)에서 벗어나고 험함을 건너가지 못한다.
만약 柔를 지키고 中을 써서 賢哲한 자에게 위임하면 未濟에 건너갈 수 있는 이치가 있게 되니, 이 때문에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未濟는 형통하다.”라고 한 것이다.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 ‘汔’은 장차 다하는 이름이니, 작은 재주의 사람이 어려움을 구제하지 못하여
그 일이 마치 작은 여우가 비록 물을 건너갈 수 있으나 남은 힘이 없어서 반드시 물이 마르기를 기다려야 비로소 냇물을 건너가는 것과 같다.
미쳐 江岸에 오르기 전에 그 꼬리를 적셔서 건넘에 젖음을 면치 못하면 어찌 이로운 바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작은 여우가 물이 말라야 건너가니, 그 꼬리를 적시면 이로운 바가 없다.”라고 한 것이다.
〈彖傳〉에 말하였다. “‘未濟가 형통함’은 柔가 中을 얻었기 때문이요,
注
柔로서 中에 처함은 剛을 어기지 않는 것이니, 능히 剛健함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형통함을 얻는 것이다.
疏
正義曰:이는 六五가 柔로서 中에 거하고 아래로 九二에 應함을 가지고 未濟가 형통함을 얻은 이유를 해석하였다.
柔하면서 中을 얻음은 剛을 어기지 않는 것이요, 九二와 서로 應함은 剛을 받아들여 스스로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未濟의 세상에 끝내 형통함을 얻는 것이다.
‘작은 여우가 물이 말라야 건너감’은 험한 가운데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요,
注
작은 여우는 큰 냇물을 건너가지 못하여 물이 마르기를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건너갈 수 있다. 未濟의 때에 처하여 반드시 剛健함으로 어려움에서 벗어난 뒤에야 비로소 건너갈 수 있으니, 물이 말라야 비로소 건너감은 험한 가운데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小狐汔濟 未出中也] 작은 여우가 물을 건널 적에 반드시 물이 마르기를 기다려야 비로소 건너가는 이유는, 그 힘이 적어서 능히 그 험한 가운데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임을 해석한 것이다.
‘그 꼬리를 적시면 이로운 바가 없음’은 계속하여 끝마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注
작은 여우가 비록 물을 건널 수 있으나 남은 힘이 없다. 장차 건너려 하는데 꼬리를 적심은 힘이 여기에서 다해서 계속하여 끝마치지 못하는 것이니, 험난함을 아직도 건너가지 못한 것이다. 未濟를 건너는 자는 반드시 남은 힘이 있어야 한다.
疏
正義曰:꼬리가 젖어 힘이 다해서 서로 계속하여 끝마쳐서 江岸에 오름에 이르지 못하니, 이 때문에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이다.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나 剛과 柔가 應한다.”
注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건너가지 못한 것이요, 剛과 柔가 應하기 때문에 건너갈 수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雖不當位 剛柔應] ‘未濟’의 뜻을 거듭 해석한 것이니, 무릇 ‘未’라고 말한 것은 금일에는 비록 건너지 못하였으나 다시 건널 수 있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자기 자리에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즉시 건너가지는 못하나, 剛과 柔가 모두 應하니 이는 서로 구원해줌을 얻는 것이니 이는 건너갈 수 있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未濟’라고 일컫고 ‘不濟’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불이 물 위에 있는 것이 未濟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삼가 물건을 분별하여 方所(제자리)에 있게 한다.”
注
물건을 분별하여 方所에 있게 하여 물건으로 하여금 각각 제자리에 마땅하게 하는 것이다.
疏
正義曰:[火在水上 未濟] 불이 물 위에 있으면 음식을 삶음을 이루지 못하여 물건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불이 물 위에 있는 것이 未濟卦이다.”라고 한 것이다.
[君子以愼辨物居方] 君子가 未濟의 때에 剛과 柔가 正位를 잃음을 보았다. 그러므로 삼감을 德으로 삼아서 여러 가지 물건을 변별해서 각각 方所에 거하게 하여 모두 方所에 편안히 있게 하니, 이 때문에 건너가는 것이다.
注
未濟의 처음(시초)에 처해서 가장 험한 아래에 거하여 건너갈 수 없는 자인데, 자기 應에게 가고자 하여 나아가면 몸을 빠뜨린다.
未濟卦의 시초는 旣濟卦의 上六에서 시작되니, 〈旣濟卦의 上六에서〉 머리를 적시었으나 오히려 돌이키지 아니하여 그 꼬리를 적심에 이르면 그칠 줄[紀極]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그러나 陰으로서 아래에 처해서 나아가기를 亢極하게 하여 그 뜻을 이루는 자가 아니니, 곤궁하면 능히 돌아온다. 그러므로 “흉하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일은 잘 헤아림에 달려 있는데 반드시 곤궁하여야 비로소 돌아오니, 頑惡함이 또한 심하다. 그러므로 “부끄럽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初六이 未濟의 처음에 처해서 가장 험한 아래에 거하여 위로 應에게 가고자 해서 나아가면 몸을 빠뜨리니, 이는 작은 여우가 냇물을 건널 적에 그 꼬리를 적시는 것과 같다.
未濟卦의 시초는 旣濟卦의 上六에서 시작되니, 旣濟卦의 上六에 다만 “머리를 적신다.”라고 말한 것은 처음 患難으로 들어가서 아직 그 몸을 빠뜨리지 않음을 말한 것이요,
여기에서 “꼬리를 적신다.”라고 말한 것은 나아감에 그칠 줄을 알지 못하여 이미 그 몸을 빠뜨린 것이다. 그러나 陰으로서 아래에 처해서 나아가기를 亢極하게 하여 그 뜻을 이루는 자가 아니니, 곤궁하면 능히 돌아온다. 그러므로 “흉하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일의 기미와 싹을 미리 밝게 알지 못하여 곤궁한 뒤에 돌아오니, 頑惡함이 또한 심하다. 그러므로 “부끄럽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不知紀極] ≪春秋左氏傳≫에 “聚斂하고 재물을 축적하여 그 紀極을 알지 못하는 것을 ‘饕餮’이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不知紀極’은〉 쉬고 그침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여우가 꼬리를 적심’은 또한 極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疏
正義曰:[亦不知極] 未濟卦의 처음은 旣濟卦의 上六에서 시작되니, 머리를 적시는데도 알지 못하고 마침내 그 꼬리를 적셨다. 그러므로 “極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注
〈九二는〉 體가 剛하고 中을 밟고 있으면서 六五에 應하고, 六五는 體가 陰柔여서 應에게 맡겨주고 스스로 맡지 않는 자이다.
〈九二는〉 未濟의 때에 거하고 險難한 가운데에 처하여 體가 剛中의 자질로서 위임을 받아서 危難을 구원하고 患亂을 經綸하는 자이다.
강건함을 사용하여 환난을 구제해서 환난을 안정시킴이 바름에 있어서 中을 어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레바퀴를 끄나 貞하여 吉한 것이다.
疏
正義曰:[曳其輪 貞吉] 九二가 未濟의 때에 거하고 험난한 안에 처하여 體가 剛中의 자질로서 六五에 應하며, 六五는 體가 陰柔여서 九二에게 委任하여 〈九二로〉 하여금 患難을 구제하게 하는 자이다.
〈九二는〉 환난을 經綸하여 임무가 무겁고 근심이 깊다. 그러므로 “수레바퀴를 끈다.”라고 한 것이니, ‘수레바퀴를 끎’은 그 수고로움을 말한 것이다. 어려움을 안정시킴이 바름에 있은 뒤에야 吉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수레바퀴를 끄나 貞하여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九二의 貞吉은 中으로써 바름을 행하기 때문이다.”
注
자리가 비록 바르지 않으나 中으로써 바름을 행하는 것이다.
疏
正義曰:[中以行正] ‘九二가 正位를 잃었는데도 貞吉이라고 칭한 이유는 자리가 비록 바르지 않으나 中에 거했기 때문에 바름을 행할 수 있는 것임’을 해석한 것이다.
六三은 未濟에 가면 흉하나 大川을 건넘이 이롭다
注
陰의 자질로서 正位를 잃고 험함에 거하여 스스로 건너가지 못하는 자이다. 바르지 못한 몸으로 힘이 스스로 구제하지 못하는데 나아가기를 구하면 그 몸을 망친다. 그러므로 “가면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九二가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는데 자기가 九二와 가까이 있으니, 자기를 버리고 九二에게 맡겨서 九二를 싣고 가면 물에 빠질 수 있겠는가. 어찌 건너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그러므로 “大川을 건넘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未濟 征凶] 六三이 陰柔의 자질로서 正位를 잃고 험함에 거하여 스스로 건너가지 못하는 자이다.
몸이 이미 스스로 건너가지 못하는데 스스로 나아가 건너기를 구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 몸을 망친다. 그러므로 “未濟에 가면 凶하다.”라고 한 것이다.
[利涉大川] 九二가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는데 자기가 九二와 가까이 있으니, 만약 능히 자기를 버리고 九二에게 맡기면 물에 빠짐을 면할 수 있다. 그러므로 “大川을 건넘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未濟에 가면 흉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位不當] 그 자리에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가면 흉한 것이다.
九四는 貞하면 吉해서 뉘우침이 없어질 것이니, 진동하여 鬼方을 정벌해서 3년 만에 큰 나라로 賞을 주도다.
注
未濟의 때에 처하여 험난함(坎)의 위로 나오고 文明(離)의 처음에 거하여 體가 剛한 자질이면서 至尊과 가까우니, 비록 밟고 있는 것이 正位가 아니나 뜻이 바름에 있으면 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 뜻이 행해져 그 위엄을 禁하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진동하여 鬼方을 정벌한다.”라고 한 것이다. ‘伐鬼方’은 쇠약함을 일으키는 정벌이다. 그러므로 매번 쇠약함을 일으킴에 이르면 여기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文明의 초기에 처하여 처음으로 험난함에서 나와 그 德이 아직 盛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3년”이라고 한 것이다.
六五가 柔로서 높은 지위에 거하여 文明의 盛함을 體行해서 남의 功을 빼앗지 않는 자이다. 그러므로 큰 나라로써 상을 주는 것이다.
疏
正義曰:未濟의 때에 거하여 밟은 것이 正位를 잃었으니, 이 때문에 뉘우침이 되는 것이다. 다만 험난함의 밖으로 나오고 文明한 처음에 거하여 剛健한 자질로 至尊에 접근해서 뜻이 바름을 행하려 하니,
바르면 貞吉하여 후회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貞하면 吉해서 뉘우침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바른 뜻이 이미 행해졌으면 그 위엄을 禁하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위엄과 노여움을 진동하여 발해서 鬼方을 정벌한 것이다.
그러나 文明의 초기에 처하여 처음으로 험난함에서 나와 그 德이 아직 盛하지 못하여 즉시 승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3年”이라 한 것이다.
六五가 順柔하고 文明함으로서 높은 지위에 거하여 남의 功을 빼앗지 않으니, 九四가 이미 승리하고 돌아오면 반드시 百里가 되는 큰 나라를 賞으로 얻는다. 그러므로 “큰 나라로 賞을 준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貞하면 吉해서 뉘우침이 없어짐’은 뜻이 행해지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志行] 九四가 正位를 잃었으나 ‘貞하면 吉해서 뉘우침이 없어짐’을 얻은 이유를 해석한 것이니, 바른 뜻이 행해져서 끝내 吉하기 때문이다.
六五는 貞하여 吉하여야 뉘우침이 없으니, 君子의 광채가 믿음이 있어 吉하다.
注
柔로서 높은 지위에 거하고 文明의 盛함에 처하여 未濟의 주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반드시 바른 뒤에야 비로소 吉하고, 吉하여야 비로소 뉘우침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柔順하고 文明한 자질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능한 자에게 맡겨주고 스스로 일하지 아니하여 武를 부리기를 文으로써 하고 剛을 어거하기를 柔로써 하면 이는 진실로 군자의 광채이다.
남에게 맡기기를 능함으로써 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남이 힘을 다하여 功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 吉하다.”라 한 것이다.
疏
正義曰:[貞吉 无悔] 六五가 柔로서 높은 지위에 거하고 文明의 盛함에 처하여 未濟의 주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반드시 바른 뒤에야 비로소 吉하고, 吉하여야 비로소 뉘우침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貞하여 吉하여야 뉘우침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君子之光] 柔順하고 文明한 자질로 높은 지위에 있고 二에 應이 있으니, 이는 남에게 맡기기를 능함으로써 하고 스스로 일하지 아니하여 君子의 光華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君子의 광채”라고 한 것이다.
[有孚 吉] 남에게 맡기기를 능함으로써 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남이 그 정성을 다하여 功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君子의 광채’는 그 빛이 吉한 것이다.”
疏
正義曰:[其暉吉] 君子의 德이 그 광채가 밝게 드러난 뒤에 비로소 吉함을 얻음을 말한 것이다.
上九는 믿음이 있어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으나, 머리를 적시니 믿음이 있어서 이것을 잃은 것이다.
注
未濟가 지극하면 旣濟로 돌아오니, 旣濟의 道는 맡긴 자가 합당한 것이다.
맡긴 자가 합당하면 믿고 의심하지 않아서 자기가 편안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능히 남을 믿기 때문에 편안함을 얻어서 일이 폐해짐을 근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니, 만약 일이 폐해짐을 근심하지 않고 즐거움을 탐하기를 심하게 하면 절제함을 잃는 데에 이른다.
이는 믿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머리를 적시니 믿음이 있어서 이것을 잃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有孚于飮酒 无咎] 上九가 未濟의 極에 거하였으니 旣濟로 돌아간다. 旣濟의 道는 맡긴 자가 합당한 것이다.
맡긴 자가 합당하면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스로 편안하여 술을 마실 뿐이다. 이 때문에 “믿음이 있어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濡其首] 이미 ‘스스로 편안하여 술을 마심’을 얻었으나 절제할 줄을 알지 못하면 머리를 적시는 患難이 또다시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머리를 적신다.”라고 한 것이다.
[有孚 失是] 머리를 적시는 환난이 미치게 된 이유는 진실로 사람을 얻음에 신임하여 일이 폐지됨을 근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서 이것을 잃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술을 마셔서 머리를 적심은 또한 절제를 모르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亦不知節] 술을 마심이 머리를 적시는 患難을 불러온 이유는 그치고 절제할 줄을 알지 못했기 때문임을 해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