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疏]正義曰:‘否之匪人’者, 言否閉之世, 非是人道交通之時,
‘不利君子貞’者, 由小人道長, 君子道消, 故不利君子爲正也.
否之匪人이니 不利君子貞하니 大往小來는 則是天地不交하여 而萬物不通也요 上下不交하여 而天下无邦也라
內陰而外陽하며 內柔而外剛하며 內小人而外君子하니 小人道長하고 君子道消也라
疏
[疏]正義曰:‘上下不交而天下无邦’者, 與泰卦反也.
泰卦云“上下交而其志同.” 此應云“上下不交則其志不同也”, 非但其志不同, 上下乖隔, 則邦國滅亡, 故變云“天下无邦”也.
‘內柔而外剛’者, 欲取否塞之義, 故內至柔弱, 外禦剛彊, 所以否閉.
若欲取通泰之義, 則云“內健外順”, 各隨義爲文, 故此云“剛柔”, 不云“健順”.
天地不交 否
니 君子以儉德
難
하고 不可榮以祿
이니라
疏
[疏]正義曰:‘君子以儉德辟難’者, 言君子於此否塞之時, 以節儉爲德, 辟其危難, 不可榮華其身, 以居
位.
此若據諸侯公卿言之, 辟其群小之難, 不可重受官賞, 若據王者言之, 謂節儉爲德, 辟其陰陽
運之難, 不可重自榮華而驕逸也.
注
居否之時하여 動則入邪하니 三陰同道하여 皆不可進이라
疏
[疏]正義曰:‘拔茅茹’者, 以居否之初, 處順之始, 未可以動, 動則入邪, 不敢前進.
‘貞吉亨’者, 守正而居, 志在於君, 乃得吉而亨通.
疏
所以居而守正者, 以其志意在君, 不敢懷諂苟進, 故得吉亨也.
六二는 包承이니 小人은 吉하고 大人은 否라야 亨하니라
注
[注]居否之世하여 而得其位하고 用其至順하여 包承於上이라
小人路通하여 內柔外剛하니 大人否之라야 其道乃亨이라
疏
[疏]正義曰:‘包承’者, 居否之世, 而得其位, 用其
順, 包承於上.
‘小人吉’者, 否閉之時, 小人路通, 故於小人爲吉也.
疏
良由否閉小人, 防之以得其道, 小人雖盛, 不敢亂群,
疏
[疏]正義曰:‘包羞’者, 言群陰俱用小人之道, 包承於上, 以失位不當, 所包承之事, 唯羞辱已.
注
[注]夫處否而不可以有命者는 以所應者小人也니 有命於小人이면 則消君子之道者也라
今初志在君
하여 處乎窮下
라 故
로 可以有命无咎
하여 而疇
福也
니 疇
는 謂初也
라
疏
[疏]正義曰:‘有命 无咎’者, 九四處否之時, 其陰爻皆是小人, 若有命於小人, 則君子道消也.
今初六志在於君, 守正不進, 處于窮下, 今九四有命命之,
疏
○正義曰:‘休否’者, 休, 美也, 謂能行休美之事於否塞之時, 能施此否閉之道, 遏絶小人, 則是否之休美者也,
‘大人吉’者, 唯大人乃能如此而得吉也, 若其凡人, 則不能.
‘其亡其亡 繫于苞桑’者, 在道消之世, 居於尊位, 而遏小人, 必近危難.
須恒自戒愼其意, 常懼其危亡, 言丁寧戒愼如此也.
‘繫于苞桑’者, 苞, 本也, 凡物繫于桑之苞本, 則牢固也.
若能其亡其亡, 以自戒愼, 則有繫于苞桑之固, 无傾危也.
疏
○正義曰:‘心存將危’, 解其亡其亡之義, 身雖安靜, 心意常存將有危難,
念其亡其亡.
‘乃得固’者, 卽繫于苞桑也. 必云“苞桑”者, 取會韻之義, 又桑之爲物, 其根衆也, 衆則牢固之義.
注
[注]先傾後通이라 故로 後喜也니 始以傾爲否라가 後得通乃喜라
疏
[疏]正義曰:處否之極, 否道已終, 此上九能傾毁其否, 故曰“傾否”也.
‘先否後喜’者, 否道未傾之時, 是先否之道, 否道已傾之後, 其事得通,
비否는 인도人道가 아니니, 군자君子의 정貞이 이롭지 못하니 대大는 가고 소小는 온다.
疏
정의왈正義曰:[否之匪人] 비색하여 막힌 세상은 인도人道가 서로 통하는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도人道가 아니다.[匪人]”라고 말한 것이다.
[不利君子貞]소인小人의 도道가 자라고 군자君子의 도道가 사라지기 때문에 군자君子가 정도正道를 행함이 이롭지 못한 것이다.
양기陽氣가 가고 음기陰氣가 오기 때문에 “대大는 가고 소小는 온다.[大往小來]”라고 말한 것이다.
양陽은 생식生息을 주장하므로 ‘대大’라 칭하고, 음陰은 소모消耗를 주장하므로 ‘소小’라 칭한 것이다.
“‘비否는 인도人道가 아니니, 군자君子의 정貞이 이롭지 못하니 대大는 가고 소小는 옴’은 바로 천지天地가 사귀지 못하여 만물이 통하지 못하며, 상하가 사귀지 못하여 천하天下에 나라가 없는 것이다.
음陰이 안에 있고 양陽이 밖에 있으며, 유柔가 안에 있고 강剛이 밖에 있으며, 소인小人이 안에 있고 군자君子가 밖에 있으니, 소인小人의 도道가 자라고 군자君子의 도道가 사라지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上下不交而天下无邦]태괘泰卦와 정반대이다.
태괘泰卦에 “상하上下가 사귀어 그 뜻이 같다.” 하였으니, 여기에서는 응당 “상하上下가 사귀지 못하면 그 뜻이 같지 않다.”고 말해야 하는데, 다만 그 뜻이 같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상하가 어그러지고 막히면 나라가 멸망하므로 “천하天下에 나라가 없다.[天下无邦]”라고 바꾸어 말한 것이다.
[內柔而外剛]비색否塞한 뜻을 취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안으로는 유약함에 이르고 밖으로는 강강剛彊함에 막히니, 이 때문에 비색하고 막힌 것이다.
만약 통태通泰의 뜻을 취하고자 한다면 “굳셈이 안에 있고 순함이 밖에 있다.[內健外順]”라고 말해야 하는데, 각각 뜻을 따라 글을 만들었으므로 여기에서는 “강유剛柔”를 말하고 “건순健順”은 말하지 않은 것이다.
“천지天地가 사귀지 않는 것이 비괘否卦이니, 군자君子가 보고서 검소한 덕德으로 난難을 피할 것이요, 녹祿으로써 영화롭게 해서는 안 된다.”
疏
정의왈正義曰:[君子以儉德辟難]군자君子가 이 비색한 때에 절검節儉을 덕德으로 삼아서 위태로움과 어려움을 피해야 하고, 그 몸을 영화롭게 해서 녹祿과 지위地位에 거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이를 만약 제후諸侯와 공경公卿을 근거로 하여 말하면 여러 소인小人들의 환란을 피하고 거듭 관직과 상賞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요, 만약 왕자王者를 근거로 하여 말하면 절검節儉을 덕德으로 삼아서 음양陰陽의 액운厄運의 어려움을 피할 것이요 거듭 스스로 영화롭게 해서 교만하고 안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초육初六은 띠풀의 뿌리를 뽑음에 뿌리가 연결된 것이다.
그 무리와 함께하니, 정貞하면 길하여 형통하다.
注
비否의 처음에 거하고 순順의 시초에 처하였으니, 동류同類 중에 우두머리가 되는 자이다.
비否의 때에 거하여 동하면 간사함으로 들어가니, 세 음陰이 도道를 함께하여 모두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띠풀의 뿌리와 같아서 동류同類와 함께함이 되는 것이요, 정貞하여 아첨하지 않으면 길하여 형통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拔茅茹]비否의 처음에 거하고 순順의 시초에 처하여 동해서는 안 되니, 동하면 간사함으로 들어가므로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세 음陰이 모두 그러하니, 마치 띠풀을 뽑을 적에 그 뿌리가 이어져서 서로 연결된 것과 같다.
자기가 만약 나아가지 않으면 나머지가 모두 따른다.
그러므로 “띠풀의 뿌리를 뽑음에 뿌리가 연결된 것이다.[拔茅茹]”라고 말한 것이다.
[以其彙] 그 동류同類로써 모두 함께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다.
[貞吉亨]정도正道를 지키고 거하여 뜻이 군주에게 있으면 마침내 길함을 얻어 형통한 것이다.
“‘띠풀의 뿌리를 뽑음에 뿌리가 연결된 것이니, 정貞하면 길吉함[拔茅貞吉]’은 뜻이 군주에게 있는 것이다.”
注
뜻이 군주에게 있기 때문에 구차히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志在君] ‘띠풀의 뿌리를 뽑음에 뿌리가 연결된 것이니, 정貞하면 길吉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은거하여 정도正道를 지키는 것은 뜻이 군주에게 있어서 감히 아첨하여 구차히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길함을 얻어 형통한 것이다.
이는 외물外物을 빌려 인사人事를 밝힌 것이다.
육이六二는 포용하여 받듦이니, 소인小人은 길하고 대인大人은 〈소인小人의 길함을〉 막아야 형통하다.
注
비否의 세상에 거하여 정위正位를 얻고 지극히 순함을 써서 윗사람을 포용하고 받든다.
소인小人의 길이 통하여 안은 유순하고 밖은 강하니, 대인大人이 이를 막아야 그 도道가 비로소 형통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包承]비否의 세상에 거하여 정위正位를 얻고 지극히 순함을 써서 윗사람을 포용하고 받드는 것이다.
[小人吉] 비색하고 막힌 때에 소인小人의 길이 통하기 때문에 소인小人에게는 길함이 되는 것이다.
[大人否 亨] 만약 대인大人이 이 포용하고 받드는 덕德을 사용하여 능히 소인小人의 길함을 막으면 그 도道가 비로소 형통한 것이다.
“‘대인大人은 〈소인小人의 길함을〉 막아야 형통함’은 〈소인小人이〉 무리를 어지럽히지 못하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이는 ‘대인大人은 〈소인小人의 길함을〉 막아야 형통함’이 되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진실로 소인小人을 막아서, 막음에 그 도道를 얻었기 때문이니, 소인小人이 비록 성하나 감히 무리를 어지럽히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리를 어지럽히지 못한다.[不亂群也]”라고 말한 것이다.
注
함께 소인小人의 도道를 써서 윗사람을 받드나 다만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포용하여 받듦이 부끄러운 것이다.
“‘포용하여 받듦이 부끄러움’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包羞] 여러 음陰이 함께 소인小人의 도道를 써서 윗사람을 포용하고 받드나 자리를 잃어 마땅하지 않아서 포용하여 받드는 일이 오직 수치와 치욕임을 말한 것이다.
구사九四는 명命이 있으면 허물이 없어서 무리가 복福에 걸리리라.
注
비否에 처해 있으면서 명命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은 응하는 자들이 소인小人이기 때문이니, 소인小人에게 명命이 있으면 이는 군자君子의 도道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지금 초육初六의 뜻이 군주에게 있어 곤궁한 아랫자리에 처해 있으므로 명命이 있으면 허물이 없어서 무리가 복에 걸릴 수 있는 것이니, ‘무리’는 초육初六을 이른다.
疏
정의왈正義曰:[有命 无咎]구사九四가 비否의 때에 처하여 그 음효陰爻가 모두 소인小人이니, 만약 소인小人에게 명命이 있으면 군자君子의 도道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초육初六의 뜻이 군주에게 있어 정도正道를 지키고 나아가지 않아 곤궁한 아랫자리에 처하였는데, 이제 구사九四가 명命을 소유하여 초육初六에게 명命을 내린다.
[疇離位] ‘주疇’는 같은 짝[疇匹]을 이르니 초육初六을 이른다.
‘이離’는 걸림[麗]이니 ‘여麗’는 붙음을 이른다.
구사九四가 초육初六에게 명命을 내림에 자신이 이미 허물이 없고 초육初六이 이미 명命을 받아서 복에 붙고 의지함을 말한 것이니, 초육初六이 복을 얻음을 말한 것이다.
“‘명命이 있으면 허물이 없음’은 뜻이 행해지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명命이 있으면 허물이 없음’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구사九四가 명命을 소유하여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까닭은, 초육初六의 뜻이 행해져서 정도正道를 지키고 위에 응하기 때문에 구사九四의 명命이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대인大人이라야 길하니, 망할까 망할까 염려해야 뽕나무 뿌리에 매어놓듯 견고하리라.
注
존위尊位에 거하고 정위正位를 얻어서 비색한 도道를 아름답게 하는 자이다.
비색함을 소인小人에게 베풂은 비색함이 아름다운 것이니, 오직 대인大人인 뒤에야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인大人이라야 길하다.”고 한 것이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사라지는 때에 처하여 자기가 높은 지위에 거하였으니, 어찌 편안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음에 장차 위태로움을 보존하여야 비로소 견고함을 얻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休否] ‘휴休’는 아름다움이니 능히 아름다운 일을 비색할 때에 행함을 이르니, 능히 이 비색하고 막힌 도道를 행하여 소인小人을 막고 끊으면 이는 비색함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므로 “비색함을 아름답게 한다.[休否]”라고 말한 것이다.
[大人吉] 오직 대인大人이라야 비로소 이와 같이 하여 길함을 얻는 것이니, 만약 보통 사람이면 이와 같이 하지 못한다.
[其亡其亡 繫于苞桑]도道가 사라지는 세상에 있으면서 존위尊位에 거하여 소인小人을 막으면 반드시 위태로움과 환란에 가깝게 된다.
모름지기 항상 스스로 그 마음을 경계하고 삼가서 항상 위태로움과 멸망함을 두려워하여야 하니, 정녕丁寧히 경계하고 삼감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繫于苞桑] ‘포苞’는 뿌리이니, 모든 물건이 뽕나무 뿌리에 매어 있으면 견고한 것이다.
만약 망할까 망할까 염려해서 스스로 경계하여 삼가면 뽕나무 뿌리에 매어놓은 견고함이 있어서 기울거나 위태로움이 없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心存將危] ‘망할까 망할까 염려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몸은 비록 편안하나 마음으로는 항상 장차 위태로움과 환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보존하여 항상 망할까 망할까 염려하는 것이다.
[乃得固] 바로 ‘뽕나무 뿌리에 매어놓듯 견고함[繫于苞桑]’이니, 굳이 “포상苞桑”이라고 말한 것은 운韻에 맞추는 뜻을 취하였고, 또 뽕나무란 물건은 그 뿌리가 많으니, 뿌리가 많음은 견고함의 뜻이다.
“대인大人의 길함은 자리가 바로 그 자리에 당하였기 때문이다.”
疏
정의왈正義曰:‘대인大人이라야 길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구오九五가 존위尊位에 거하고 정위正位를 얻었으니, 바로 소인小人을 막아서 그 길함을 얻을 때를 당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상구上九는 비색함을 기울게 하니, 먼저는 비색하다가 뒤에는 기뻐한다.
注
먼저는 기울다가 뒤에는 통하므로 뒤에 기뻐하는 것이니, 처음에는 기울어 비색함이 되었다가 뒤에 통하여 마침내 기쁨을 얻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비否의 극極에 처하여 비색한 도道가 이미 끝나니, 이는 상구上九가 능히 비색함을 기울게 하고 무너지게 하므로 “비색함을 기울게 한다.[傾否]”라고 말한 것이다.
[先否後喜] 비색한 도道가 아직 기울지 않았을 때는 이것이 ‘먼저는 비색한’ 도道이고, 비색한 도道가 이미 기울고 난 뒤에는 그 일이 통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뒤에 기쁨이 있다.[後有喜]”고 말한 것이다.
“비색이 끝나면 기우니, 어찌 장구長久하겠는가.”
疏
정의왈正義曰:‘비색함을 기울게 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비색한 도道가 이미 끝나니 통하는 도道가 장차 이른다.
그러므로 비색의 종극에는 그 비색함이 기울고 줄어드니, 어찌 장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어찌 장구長久하겠는가.[何可長也]”라고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