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疏]正義曰:‘子曰知變化’至‘此之謂也’ 此第九章也.
上章旣明大衍之數, 極盡蓍策之名數, 可與助成神化之功, 此又廣明易道深遠, 聖人之道有四, 又明易之深遠, 窮極幾神也.
注
[注]夫變化之道 不爲而自然이라 故로 知變化者는 則知神之所爲라
疏
[疏]正義曰:言易旣知變化之道理, 不爲而自然也, 則能知神化之所爲, 言神化亦不爲而自然也.
易有聖人之道四焉하니 以言者尙其辭하고 以動者尙其變하고 以制器者尙其象하고 以卜筮者尙其占이라
疏
○正義曰:‘易有聖人之道四焉’者, 言易之爲書, 有聖人所用之道者凡有四事焉.
‘以言者尙其辭’者, 謂聖人發言而施政敎者, 貴尙其爻卦之辭,
其言辭, 出言而施政敎也.
‘以動者尙其變’者, 謂聖人有所興動營爲,
法其陰陽變化, 變有吉凶, 聖人之動, 取吉不取凶也.
‘以制器者尙其象’者, 謂造制形器, 法其爻卦之象,
‘以卜筮者尙其占’者, 策是筮之所用, 幷言卜者, 卜雖龜之見兆, 亦有陰陽
行變動之狀, 故卜之與筮, 尙其爻卦變動之占也.
疏
變是變化, 見其來去, 亦是器象也. 象是形象, 占是占其形狀, 竝是有體之物, 有體則是物之可用, 故云“可得而用者也.”
是以로 君子將有爲也며 將有行也에 問焉而以言이어든 其受命也如響하여 无有遠近幽深하여 遂知來物하나니
疏
[疏]正義曰:‘是以君子將有爲也 將有行也 問焉而以言’者, 旣易道有四, 是以君子將欲有所施爲, 將欲有所行往,
‘其受命也如響’者, 謂蓍受人命, 報人吉凶, 如響之應聲也.
‘无有遠近幽深’者, 言易之告人吉凶, 无問遠之與近, 及幽
深遠之處, 悉皆告之也.
‘遂知來物’者, 物, 事也. 然易以萬事告人, 人因此, 遂知將來之事也.
‘非天下之至精 其孰能與於此’者, 言易之功深如此, 若非天下萬事之內, 至極精妙, 誰能參與於此, 與易道同也.
此已上, 論易道功深, 告人吉凶, 使豫知來事, 故以此結之也.
參伍以變하고 錯綜其數하여 通其變하여 遂成天下之文하며 極其數하여 遂定天下之象하나니
疏
[疏]正義曰:‘參伍以變’者, 參, 三也, 伍, 五也, 或三或五, 以相參合, 以相改變. 略擧三五, 諸數皆然也.
‘錯綜其數’者, 錯謂交錯, 綜謂總聚, 交錯總聚其陰陽之數也.
‘遂成天地之文’者, 以其相變, 故能遂成就天地之文, 若靑赤相雜, 故稱文也.
‘極其數 遂定天下之象’者, 謂窮極其陰陽之數, 以定天下萬物之象.
猶若極二百一十六策, 以定乾之老陽之象, 窮一百四十四策, 以定坤之老陰之象, 擧此, 餘可知也.
‘非天下之至變 其孰能與於此’者, 言此易之理, 若非天下萬事至極之變化, 誰能與於此者, 言皆不能也.
前經論易理深, 故云“非天下之至精”, 此經論極數變通, 故云“非天下之至變”也.
易은 无思也하며 无爲也하여 寂然不動이라가 感而遂通天下之故하나니 非天下之至神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注
[注]夫非忘象者면 則无以制象이요 非遺數者면 无以極數니 至精者는 无籌策而不可亂이요
至變者는 體一而无不周요 至神者는 寂然而无不應이라 斯蓋功用之母요 象數所由立이라
故로 曰 非至精至變至神이면 則不得與於斯也라하니라
疏
○正義曰:‘易无思也 无爲也’者, 任運自然, 不關心慮, 是无思也. 任運自動, 不須營造, 是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者, 旣无思无爲, 故寂然不動.
有感必應, 萬事皆通, 是感而遂通天下之故也. 故謂事故, 言通天下萬事也.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者, 言易理神功不測, 非天下萬事之中, 至極神妙, 其孰能與於此也.
此經明易理神妙不測, 故云“非天下之至神”, 若非天下之至神, 誰能與於此也.
疏
○正義曰:云‘夫非忘象者 則无以制象’者, 凡自有形象者, 不可以制他物之形象, 猶若海不能制山之形象, 山不能制海之形象.
‘非遺數者 无以極數’者, 若以數數物, 則不能極其物數, 猶若以萬而數, 則不能苞億, 以一億而數, 則不能苞千億萬億.
遺去數名者, 則无所不苞, 是非遺去其數, 无以極盡於數也.
言‘至精者 无籌策而不可亂’者, 以其心之至精, 理在玄通, 无不記
, 雖无籌策, 而不可亂也.
言‘至變者 體一而无不周’者, 言至極曉達變理者, 能體於淳一之理, 其變通无不周徧, 言雖萬類之變, 同歸於一變也.
‘斯蓋功用之母 象數所由立’者, 言至精․至
․至神三者, 是物之功用之母.
物之功用, 象之與數, 由此至精․至變․至神所由來, 故云“象數所由立”也.
言象之所以立有象者, 豈由象而來, 由太虛自然而有象也, 數之所以有數者, 豈由數而來, 由太虛自然而有數也.
由其至精, 故能制數, 由其至變, 故能制象, 若非至精․至變․至神, 則不得參與妙極之玄理也.
夫易은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니 唯深也故로 能通天下之志하며 唯幾也故로 能成天下之務하나니라
疏
[疏]正義曰:‘夫易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者, 言易道弘大, 故聖人用之, 所以窮極幽深, 而硏覈幾微也.
‘極深’者, 則前經初一節云“君子將有爲, 將有行, 問焉而以言, 其受命如響, 无有遠近幽深”, 是極深也.
‘硏幾’者, 上經次節云“參伍以變, 錯綜其數, 通其變, 遂成天地之文, 極其數, 以定天下之象”, 是硏幾也.
‘唯深也 故能通天下之志’者, 言聖人用易道以極深, 故聖人德深也, 故能通天下之志意,
卽是前經上節“問焉而以言, 其受命如響, 遂知來物”, 是通天下之志也.
‘唯幾也 故能成天下之務’者, 聖人用易道以硏幾, 故聖人知事之幾微,
是前經次節“參伍以變, 錯綜其數, 通其變, 遂成天地之文”, 是也.
幾者, 離无入有, 是有初之微, 以能知有初之微, 則能興行其事, 故能成天下之事務也.
唯神也故로 不疾而速하며 不行而至하나니 子曰 易有聖人之道四焉者는 此之謂也니라
注
[注]四者 由聖道以成이라 故로 曰 聖人之道라하니라
疏
[疏]正義曰:‘唯神也 故不疾而速 不行而至’者, 此覆說上經下節易之神功也.
以无思无爲, 寂然不動, 感而遂通. 故不須急疾, 而事速成, 不須行動, 而理自至也.
案下節云“唯深也”, 言“通天下之志”, “唯幾也”, 言“成天下之務”,
今“唯神也”, 直云“不疾而速, 不行而至”, 不言“通天下”者,
神則至理微妙, 不可測知, 无象无功, 於天下之事, 理絶名言, 不可論也, 故不云“成天下之功”也.
疏
[疏]‘子曰易有聖人之道四焉者 此之謂也’者, 章首論聖人之道四焉, 章中歷陳其三事, 章末結而成之,
章首聖人之道有四者, 韓氏注云“此四者存乎器象, 可得而用者”, 則辭也․變也․象也․占也, 是有形之物, 形器可知也.
若章中所陳則有三事, 一是至精, 精則唯深也, 二是至變, 變則唯幾也, 三是至神, 神則微妙无形, 是其无也.
神旣无形, 則章中三事, 不得配章首四事. 韓氏云“四者存乎器象”, 故知章中三事, 不得配章首四事者也.
但行此四者, 卽能致章中三事. 故章中歷陳三事, 下總以聖人之道四焉結之也.
疏
정의왈正義曰:경經의 [子曰知變化]에서 [此之謂也]까지 이는 제9장이다.
위의 장에서는 이미 ‘대연大衍의 수數가 시책蓍策의 이름과 수數를 극진히 하여 신화神化의 공功을 도와서 이룸’을 밝혔고, 여기에서는 또 역易의 도道가 심원하여 성인聖人의 도道에 네 가지가 있음을 널리 밝히고, 또 역易이 심원하여 기미와 신묘함을 궁극하게 함을 밝혔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 “변화變化의 도道를 아는 자는 신神이 하는 바를 알 것이다.”
注
변화變化의 도道는 작위하지 않고 자연히 된다. 그러므로 변화를 아는 자는 신神이 하는 바를 아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역易이 이미 변화變化의 도리道理가 작위하지 않고 자연히 되는 것임을 알면 신화神化의 하는 바를 알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니, 신화神化 또한 하지 않고 자연히 됨을 말한 것이다.
역易에 성인聖人의 도道가 네 가지 있으니, 말하는 자는 그 말(괘사卦辭와 효사爻辭)을 숭상하고, 동動하는 자는 그 변화를 숭상하고, 기구(기물)를 만드는 자는 상象을 숭상하고, 복서卜筮하는 자는 그 점占을 숭상한다.
注
이 네 가지는 기器의 상象이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易有聖人之道四焉] 역易의 책에는 성인聖人이 사용하는 도道가 무릇 네 가지 일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以言者尙其辭] 말을 하여 정교政敎를 베푸는 성인聖人은 효사爻辭와 괘사卦辭를 귀하게 여기고 숭상하여 그 언사言辭를 본받음을 말한 것이니, 말을 내어 정교를 베푸는 것이다.
[以動者尙其變] 성인聖人이 흥동興動하고 경영하는 일이 있을 적에 음양陰陽의 변화變化를 본받음을 말한 것이니, 변變에는 길吉과 흉凶이 있는데 성인의 동動함은 길吉을 취하고 흉凶을 취하지 않는다.
[以制器者尙其象] 형기形器를 만들 적에 효爻와 괘卦의 상象을 본받음을 말한 것이니, 예를 들면 호시弧矢를 만들 적에는 규괘睽卦의 상象을 본받고, 절굿공이와 절구통을 만들 적에는 소과괘小過卦의 상象을 본받는 것과 같다.
[以卜筮者尙其占] 책策은 주역점[서筮]에 사용하는 것인데 ‘복卜’을 함께 말한 것은, 복卜은 비록 거북껍질에 조짐이 나타난 것이나 이 또한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이 변동하는 형상이 있으므로 복卜과 서筮는 그 효爻와 괘卦가 변동하는 점占을 숭상하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사辭’는 효사爻辭이니, 효사는 기器의 상象이다.
‘변變’은 변화變化이니, 오고감을 보는 것 또한 기器의 상象이다. ‘상象’은 형상形象이고, ‘점占’은 형상形狀을 점치는 것이니, 모두 체體가 있는 물건인바, 체體가 있으면 그 물건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君子가 장차 시행하려 함이 있고 장차 길을 가려 함이 있을 적에 물어서 말로써 하면 그 명命을 받고 〈고告해줌이〉 메아리와 같아서 원근遠近과 유심幽深이 없이(원근遠近과 유심幽深을 막론하고) 〈고해주어〉 마침내 장래의 일을 아니,
천하에 지극히 정묘精妙한 자가 아니면 그 누가 능히 여기에 참여하겠는가.
疏
정의왈正義曰:[是以君子將有爲也 將有行也 問焉而以言] 이미 역易의 도道가 네 가지가 있기 때문에 군자君子가 장차 시행하려는 바가 있고 장차 길을 가려고 하는 바가 있으면,
점쳐 길흉吉凶을 물어서 말로써 시초蓍草에게 명하는 것이다.
[其受命也如響] 시초蓍草가 사람의 명을 받고서 사람에게 길흉吉凶을 알려줌이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无有遠近幽深] 역易이 사람에게 길흉吉凶을 말해줄 적에 멀고 가까운 곳과 그윽하고 깊고 심원한 곳을 막론하고 모두 고해줌을 말한 것이다.
[遂知來物] ‘물物’은 일이다. 그러나 역易은 만 가지 일을 사람에게 고해주니, 사람이 이로 인해서 마침내 장래의 일을 아는 것이다.
[非天下之至精 其孰能與於此] ‘역易의 공功이 깊음이 이와 같으니, 만약 천하만사天下萬事의 안에 지극히 정묘精妙한 자가 아니면 누가 능히 여기에 참여하여 역易의 도道와 같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이 이상은 역易의 도道의 공功이 깊어서 사람에게 길흉을 말해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장래의 일을 미리 알게 함을 논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으로써 맺은 것이다.
삼參(삼三)을 하고 오伍(오五)를 해서 변하며 그 수數를 교착하고 종합하여, 변화를 통하여 마침내 천하天下의 문文을 이루며, 그 수數를 지극히 하여 천하의 상象을 정하니,
천하에 지극히 변화하는 자가 아니면 그 누가 능히 여기에 참여하겠는가.
疏
정의왈正義曰:[參伍以變] ‘삼參’은 3이고, ‘오伍’는 5이니, 혹 3을 하고 혹 5를 해서 서로 참고하고 합쳐서 서로 고치고 변하는 것이다. 간략히 3과 5를 들었으나 여러 수가 모두 그러하다.
[錯綜其數] ‘조錯’은 교착交錯을 이르고, ‘종綜’은 모두 종합함[總聚]을 이르니, 음양陰陽의 수數를 교착交錯하고 종합하는 것이다.
[通其變] 교착交錯하고 종합함으로 말미암아 음양陰陽이 서로 변함을 통하여 지극히 하는 것이다.
[遂成天地之文] 서로 변하기 때문에 마침내 천지天地의 문文을 성취하는 것이니, 예를 들면 청색靑色과 적색赤色이 서로 뒤섞이는 것과 같기 때문에 ‘문文’이라 칭한 것이다.
[極其數 遂定天下之象] 음양陰陽의 수數를 궁극히 하여 천하天下 만물萬物의 상象을 정함을 이른다.
예를 들면 216책策을 지극히 하여 건乾의 노양老陽의 상象을 정하고, 144책策을 궁극히 하여 곤坤의 노음老陰의 상象을 정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들면 나머지를 알 수 있다.
[非天下之至變 其孰能與於此] ‘이 역易의 이치는 만약 천하天下 만사萬事에 지극히 변화하는 자가 아니면 누가 능히 여기에 참여하겠는가.’라고 말하였으니, 〈천하 만사에 지극히 변화하는 자가 아니면〉 아무도 능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이는 역易의 변화하는 도道를 맺어 이루었다. 그러므로 다시 “여기에 참여하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앞의 경문은 역易의 이치가 깊음을 논하였기 때문에 “천하天下에 지극히 정묘精妙한 자가 아니면”이라고 말하였고, 이 경문은 수數를 지극히 하여 변통함을 논하였기 때문에 “천하에 지극히 변화하는 자가 아니면”이라고 말한 것이다.
역易은 생각함이 없으며 함이 없어서 적연寂然하여 동動하지 않다가 감동하면 마침내 천하天下의 일을 통하니, 천하에 지극히 신묘神妙한 자가 아니면 그 누가 능히 여기에 참여하겠는가.
注
형상形象을 잊은 자가 아니면 형상을 만들 수 없고, 수數를 잊어버린 자가 아니면 수數를 다할 수 없으니, 지극히 정묘한 자는 계산하는 산대[주책籌策]가 없어도 어지럽힐 수가 없고,
지극히 변화하는 자는 하나를 체행하여 두루 하지 않음이 없고, 지극히 신묘한 자는 적연寂然하여도 응하지 않음이 없다. 이는 공용功用의 모체요, 상수象數가 말미암아 확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정묘하고 지극히 변화하고 지극히 신묘한 자가 아니면 여기에 참여할 수 없다.”라고 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易无思也 无爲也] 운運에 맡겨 자연히 하여서 마음과 생각을 관여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생각함이 없는 것이다. 운運에 맡겨 저절로 동動하여서 굳이 경영하여 만들지 않으니, 이는 함이 없는 것이다.
[적연부동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이미 생각함이 없고 함이 없기 때문에 적연寂然하여 동動하지 않는 것이다.
감동함이 있으면 반드시 응하여 만사가 다 통하니, 이것이 ‘감동하면 마침내 천하의 일을 통함’이다. ‘고故’는 사고事故(일의 원인)를 이르니, 천하天下 만사萬事를 통함을 말한 것이다.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 ‘역易의 이치와 신神의 공功을 측량할 수가 없으니 천하天下 만사萬事의 가운데에 지극히 신묘神妙한 자가 아니면 그 누가 능히 여기에 참여하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이 경문은 역易의 이치가 신묘하여 측량할 수 없음을 밝혔다. 이 때문에 “천하天下에 지극히 신묘한 자가 아니면”이라고 말한 것이니, 만약 천하에 지극히 신묘한 자가 아니면 누가 능히 여기에 참여하겠는가.
疏
○정의왈正義曰:[夫非忘象者 則无以制象] 본래 형상形象이 있는 모든 것은 다른 물건의 형상을 만들 수가 없으니, 예컨대 바다는 산의 형상을 만들지 못하고 산은 바다의 형상을 만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자기의 형상을 잊은 자라야 비로소 여러 물건의 형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非遺數者 无以極數] 만약 수數로 물건을 세면 물건의 수數를 다할 수가 없으니, 예컨대 만萬으로 세면 억億을 포괄하지 못하고 1억億으로 세면 천억千億과 만억萬億을 포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수數의 이름을 잊어버린 자는 포괄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이는 수數를 잊어버린 자가 아니면 수數를 다할 수 없는 것이다.
[至精者 无籌策而不可亂] 마음이 지극히 정밀하여 이치가 현통玄通함에 있어서 기억하지 못함이 없어 비록 주책籌策이 없으나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이다.
[至變者 體一而无不周] 변화하는 이치를 지극히 통달한 자는 능히 순수하고 한결같은 이치를 체행하여 그 변통함이 두루 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비록 만 가지 종류가 변하나 똑같이 하나의 변화로 돌아감을 말한 것이다.
[斯蓋功用之母 象數所由立] 지극히 정묘하고 지극히 변화하고 지극히 신묘한 세 가지는 바로 물건의 공용功用의 모체임을 말한 것이다.
물건의 공용功用과 상象과 수數는 이 지극히 정묘함과 지극히 변화함과 지극히 신묘함에 말미암아 온 것이다. 그러므로 “상수象數가 말미암아 확립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상象이 확립되어 상象이 있게 된 까닭이 어찌 상象에 말미암아 온 것이겠는가. 태허太虛의 자연에 말미암아 상象이 있는 것이다. 수數가 수數가 있게 된 까닭이 어찌 수數에 말미암아 온 것이겠는가. 태허의 자연에 말미암아 수數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 태허의 상象과 태허의 수數가 바로 지극히 정묘하고 지극히 변화하는 것이다.
지극히 정묘하기 때문에 능히 수數를 만들고, 지극히 변화하기 때문에 능히 상象을 만드니, 만약 지극히 정묘하고 지극히 변화하고 지극히 신묘함이 아니면 묘극妙極의현리玄理(깊은 이치)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역易은 성인聖人이 깊은 것을 다하고 기미를 연구한 것이니, 깊기 때문에 능히 천하天下의 뜻을 통하며, 기미를 〈알기〉 때문에 능히 천하天下의 사무事務를 이루는 것이다.
注
미형未形의 이치를 지극히 하면 ‘심深’이라고 말하고, 동動의 은미한 기회에 맞게 하면 기幾라고 하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夫易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 역易의 도道가 넓고 크기 때문에 성인聖人이 이것을 사용하여 그윽하고 깊음을 궁극히 해서 기미를 연구하여 밝힘을 말한 것이다.
‘극심極深’은 앞 경문의 첫 번째 절節에 “군자君子가 장차 시행하려 함이 있고 장차 길을 가려 함이 있을 적에 물어서 말로써 하면 그 명命을 받고 〈고해줌이〉 메아리와 같아서 원근遠近과 유심幽深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깊음을 지극히 하는 것이다.
‘연기硏幾’는 위 경문의 다음 절에 “삼參(삼三)을 하고 오伍(오五)를 해서 변하며 그 수數를 교착하고 종합하여, 변화를 통하여 마침내 천지天地의 문文을 이루며, 그 수數를 지극히 하여 천하天下의 상象을 정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기미를 연구하는 것이다.
[唯深也 故能通天下之志] ‘성인聖人이 역易의 도道를 사용하여 깊음을 다하기 때문에 성인의 덕德이 깊은 것이니 이 때문에 능히 천하天下의 지의志意를 통하는 것임’을 말하였으니,
이는 앞 경문의 위 절에 “물어서 말로써 하면 그 명命을 받고 〈고해줌이〉 메아리와 같아서 원근遠近과 유심幽深이 없이 〈고해주어〉 마침내 장래의 일을 안다.”라고 한 것이니, 이것이 천하天下의 뜻을 통하는 것이다.
[唯幾也 故能成天下之務] 성인聖人이 역易의 도道를 사용하여 기미를 연구하기 때문에 성인이 일의 기미를 아는 것이니,
이는 앞 경문의 다음 절에 “삼參(삼三)을 하고 오伍(오五)를 해서 변하며 그 수數를 교착하고 종합하여, 변화를 통하여 마침내 천지天地의 문文을 이룬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기幾’는 무无를 떠나 유有로 들어간 것이니, 이는 처음[有初]의 은미함인바, 능히 처음의 은미함을 알면 능히 그 일을 일으켜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능히 천하天下의 사무事務를 이루는 것이다.
신묘하기 때문에 빠르게 하지 않아도 속히 이루어지며 행동하지 않아도 〈이치가〉 이르니, 공자孔子가 말씀하신 “역易에 성인聖人의 도道가 네 가지 있다.”는 것이 이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注
네 가지가 성인聖人의 도道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인의 도道”라 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唯神也 故不疾而速 不行而至] 이는 위 경문 아래 절의 ‘역易의 신묘한 공功’을 반복하여 말한 것이다.
생각함이 없고 함이 없어서 적연寂然하여 동하지 않다가 감동하면 마침내 통한다. 그러므로 굳이 급히 하고 빨리하지 않아도 일이 속히 이루어지고, 굳이 행동하지 않아도 이치가 저절로 이르는 것이다.
살펴보건대, 아래 절에 “천하天下의 뜻을 통한다.”고 하였고, “사무事務를 이룬다.”라고 말하였는데,
지금 “唯神也”에 대해서는 곧바로 “빠르게 하지 않아도 속히 이루어지며 행동하지 않아도 〈이치가〉 이른다.”라고 말하고 “천하를 통한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신神은 지극한 이치가 미묘해서 측량하여 알 수가 없으니, 상象이 없고 공功이 없어서 천하의 일에 대하여 그 이치를 형용하여 말할 수가 없어서 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천하의 공功을 이룬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疏
[子曰易有聖人之道四焉者 此之謂也] 장章 머리에 성인聖人의 도道 네 가지를 논하였고, 장章 가운데에서는 그중에 세 가지 일을 차례로 진술하였고, 장章 끝에서는 맺어 이루었다.
그러므로 “‘성인의 도道가 네 가지 있다.’는 것은 이것을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장章 머리에 ‘성인의 도道가 네 가지 있다.’ 한 것에 대해, 한씨韓氏(한강백韓康伯)의 주注에 “이 네 가지는 기器의 상象이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그 네 가지는〉 곧 사辭․변變․상象․점占이니, 이는 유형有形의 물건이어서 그 형기形器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장章 가운데 말한 것으로 말하면 세 가지 일이 있으니, 첫 번째는 지극히 정묘한 것이니 정묘함은 ‘무无이다.
신神이 이미 형체가 없으면 장章 가운데 세 가지 일은 장章 머리의 네 가지 일에 배합할 수가 없다. 한씨韓氏가 이르기를 “네 가지는 장章 가운데 세 가지 일은 장章 머리의 네 가지 일에 배합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 네 가지를 행하면 바로 장章 가운데의 세 가지 일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장章 가운데에서 세 가지 일을 차례로 말하고서 아래에서는 총괄하여 ‘성인의 도道가 네 가지 있음’으로 끝맺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