嘉慶二十有一年秋八月에 南昌學堂에 重栞宋本十三經注疏하여 成卷四百十六하니 幷附錄校勘記하여 爲書萬一千八百一十葉이라
距始事於二十年仲春하여 歷時十有九月하니 蓋官於斯土與生是邦者 合其心力而爲之者也라
曩歲癸酉에 稷이 承乏江寧鹽法道하니 適浙閩制府桐城方公維甸이 予告在籍이라 相與過從하여 講求政事之餘에 究硏經義라
時以各注疏本異同得失로 參差互見하니 近日坊間重刻汲古閣毛氏本은 舛誤滋多일새 計欲重栞之나 而稷調任江西하여 厥議遂寢이라
稷이 向讀其所著十三經注疏校勘記하여 心知其所藏宋本之善하고
欲請觀之나 而涖政之初에 公事旁午하여 踰歲初春에 始獲所願이라
武寧貢生盧宣旬은 宮保門下士니 於稷에 夙有文字契러니 至是來謁이어늘
屬董厥事하여 以宋本으로 召工剞劂하니 而一時賢士大夫樂與觀成者 咸鼓舞而贊襄之라
於官
엔 則有今江南蘇松督糧道
요 前九江府知府方體
와 今江西督糧道
요 前廣信府知府王
言
과 今南昌府知府張敦仁
과 墍南昌縣知縣陳煦
와 新建縣知縣鄭祖琛
과 署鄱陽縣知縣
이요 候補知州周澍
와 浮梁縣知縣劉丙
과 廣豐縣知縣阿應麟
과 會昌縣知縣
이요 候補知州曾暉春
과 二品蔭生儀徵阮常生
이요 於紳
엔 則有給事中黃中傑
과 御史盧浙
과 編修黃中模
와 員外黃中栻
과 擧人余成敎
와 貢生趙儀吉
과 袁泰開
와 李楨
하니 或輸廉以助
하고 或分經以校
하여 續殘補闕
하고 證是存疑
하며
而宮保於退食餘閒에 詳加勘定하고 且令庋其版於學中하여 俾四方讀者로 皆可就而印之하니 誠西江之盛事요 而宮保嘉惠士林之至意也라
宮保旣記刻書始末於序目之後하니 稷亦喜夙願之旣副하여 爲記其重栞日月與校栞諸名氏於全書之末云이라
가경嘉慶 21년(1816) 가을 8월에 남창南昌의 학당에서 ‘송본십삼경주소宋本十三經注疏’를 중간重刊해서 416권의 책을 완성하니, 부록인 교감기校勘記까지 아울러서 책이 11,810장이었다.
가경嘉慶 20년 중춘仲春에 일을 시작하여 19개월이 지났으니, 이 지역에서 지방관으로 있는 분과 이 고을에서 생장한 자들이 마음과 힘을 합쳐 만든 것이다.
지난 계유년癸酉年(1813)에 내가 강녕염법도江寧鹽法道로 부임하였을 때, 마침 절민제부浙閩制府로 있던 동성桐城 방유전方維甸 공公이 휴가를 받아 본적本籍에 있었으므로 서로 방문하여 정사政事를 강구하고 난 여가에 경전經傳의 뜻을 연구하였다.
이때 각 주소본注疏本의 이동異同과 득실得失을 가지고 참고하여 서로 비교해보니, 근래 책방에서 중각重刻한 급고각汲古閣 모씨본毛氏本은 오류가 더욱 많았기 때문에 이를 중간重刊하려고 생각하였으나, 내가 마침 강서江西로 부임하게 되어 이 의논이 마침내 중지되었다.
다음해 갑술년甲戌年(1814)에 궁보宮保인 완원阮元 공公이 강우江右(江西)巡撫로 부임해 왔다.
나는 전에 그가 지은 《십삼경주소교감기十三經注疏校勘記》를 읽고서 마음속으로 그분이 소장한 송본宋本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것을 청하여 보고자 하였으나 부임한 초기에 공무公務가 많아 이듬해 초봄에 처음으로 소원을 이루었다.
그러자 나는 전에 중간重刊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을 또다시 이루려는 마음이 동하였다.
무령武寧의 공생貢生인 노선순盧宣旬은 궁보宮保 문하門下의 선비로 나와 일찍부터 문자로 친분이 있었는데, 이때 나를 찾아와 만나게 되었다.
이에 이 일을 부탁하여 목공들을 불러 송본宋本을 판각하게 하니, 동시대의 어진 사대부들로서 이 일에 기꺼이 참여하여 완성을 보려는 자들이 모두 고무되어 찬조하였다.
지방관으로는, 지금 강남소송독량도江南蘇松督糧道이고 전前 구강부지부九江府知府였던 방체方體, 지금 강서독량도江西督糧道이고 전前 광신부지부廣信府知府였던 왕갱언王賡言, 지금 남창부지부南昌府知府인 장돈인張敦仁과 남창현지현南昌縣知縣인 진후陳煦, 신건현지현新建縣知縣인 정조침鄭祖琛, 서파양현지현署鄱陽縣知縣으로 후보지주候補知州인 주주周澍, 부량현지현浮梁縣知縣인 유병劉丙, 광풍현지현廣豐縣知縣인 아응린阿應麟, 회창현지현會昌縣知縣으로 후보지주候補知州인 증휘춘曾暉春, 이품음생의징二品蔭生儀徵인 원상생阮常生이 있고, 사대부로는, 급사중給事中 황중걸黃中傑, 어사御史 노절盧浙, 편수編修 황중모黃中模, 원외員外 황중식黃中栻, 거인擧人 여성교余成敎, 공생貢生인 조의길趙儀吉‧원태개袁泰開‧이정李楨이 있었는데, 혹은 돈을 내어 협조하고 혹은 경서經書를 나누어 교정해서, 잔결殘缺된 것을 이어 빠진 부분을 보충하고 옳은 것을 증명하되 의심스러운 것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또 궁보宮保가 공무를 마친 한가로운 시간에 교감校勘을 자세히 가하였고, 그 판본을 학당 안에 보관하여 사방의 독자들로 하여금 모두 와서 인쇄하게 하니, 참으로 서강西江의 훌륭한 일이요, 궁보宮保가 사림들에게 은혜를 베푼 지극한 뜻이다.
궁보宮保가 이미 책을 판각한 시말始末을 서목序目의 뒤에 기록하니, 나 또한 숙원이 이미 이루어진 것을 기뻐하여 그 중간重刊한 날짜와, 교정하고 간행한 여러분들의 성씨姓氏와 이름을 전서全書의 끝에 기록하는 바이다.
강서염법도江西鹽法道 분순서원림등처지방分巡瑞袁臨等處地方 여강廬江 호직胡稷은 삼가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