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疏]正義曰:震, 動也. 此象雷之卦, 天之威動, 故以震爲名.
震旣威動, 莫不驚懼, 驚懼以威, 則物皆整齊, 由懼而獲通, 所以震有亨德, 故曰“震亨”也.
注
[注]震之爲義는 威至而後에 乃懼也라 故로 曰 震來虩虩이라하니 恐懼之貌也라
震者는 驚駭怠惰하여 以肅解慢者也라 故로 震來虩虩은 恐致福也요 笑言啞啞은 後有則也라
疏
[疏]正義曰:
啞啞, 笑語之聲也. 震之爲用, 天之威怒, 所以肅整怠慢,
故震之來也, 莫不恐懼, 故曰“震來虩虩”也. 物旣恐懼, 不敢爲非, 保安其福, 遂至笑語之盛, 故曰“笑言啞啞”也.
注
[注]威震驚乎百里에 則是可以不喪匕鬯矣라 匕는 所以載鼎實이요 鬯은 香酒니 奉宗廟之盛也라
疏
○正義曰:匕, 所以載鼎實, 鬯, 香酒也, 奉宗廟之盛者也.
威震驚於百里, 可以奉承宗廟, 彝器粢盛, 守而不失也, 故曰“震驚百里, 不喪匕鬯.”
疏
○正義曰:先儒皆云“雷之發聲, 聞乎百里. 故古帝王制國, 公侯地方百里, 故以象焉.”
竊謂天之震雷, 不應止聞百里, 蓋以古之啓土, 百里爲極. 文王作繇在殷時, 明長子威震於一國, 故以百里言之也.
‘匕 所以載鼎實 鬯 香酒’者, 陸績云“匕者, 棘匕, 橈鼎之器.” 先儒皆云“
以棘木爲之, 長三尺, 刊柄與末.
是也. 用棘者, 取其赤心之義.”
祭祀之禮, 先烹牢於鑊, 旣納諸鼎而加冪焉, 將薦, 乃擧羃而以匕出之, 升于俎上,
故曰“匕, 所以載鼎實”也. 鬯者, 鄭玄之義, 則爲秬黍之酒, 其氣調暢, 故謂之鬯.
今特言匕鬯者, 鄭玄云“人君於祭祀之禮,
畢 尙牲薦鬯而已, 其餘, 不足觀也.”
彖曰 震은 亨하니 震來虩虩은 恐致福也요 笑言啞啞은 後有則也라 震驚百里는 驚遠而懼邇也니
疏
○正義曰:‘震亨’者, 卦之名德. 但擧經而不釋名德所由者, 正明由懼得通, 故曰“震亨”, 更无他義. 或本无此二字.
‘震來虩虩 恐致福也’者, 威震之來, 初雖恐懼, 能因懼自修, 所以致福也.
‘笑言啞啞 後有則也’者, 因前恐懼自修, 未敢寬逸, 致福之後, 方有笑言,
以曾經戒懼, 不敢失則, 必時然後言, 樂然後笑, 故曰“笑言啞啞, 後有則也.”
‘震驚百里 驚遠而懼邇’者, 言威震驚於百里之遠, 則惰者恐懼於近也.
注
[注]明所以堪長子之義也라 不喪匕鬯이면 則己出可以守宗廟라
疏
○正義曰:
出, 謂君出巡狩等事也. 君出, 則長子留守宗廟社稷, 攝祭主之禮事也.
疏
[疏]正義曰:洊者, 重也, 因仍也. 雷相因仍, 乃爲威震也, 此是重震之卦, 故曰“洊雷震”也.
‘君子以恐懼修省’者, 君子恒自戰戰兢兢, 不敢懈惰, 今見天之怒, 畏雷之威, 彌自修身, 省察己過, 故曰“君子以恐懼修省”也.
初九는 震來虩虩이면 後에 笑言啞啞이리니 吉하니라
注
[注]體夫剛德하여 爲卦之先하니 能以恐懼修其德也라
疏
[疏]正義曰:初九剛陽之德, 爲一卦之先, 剛則不闇於幾, 先則能有前識.
故處震驚之始, 能以恐懼自修, 而獲其吉, 故曰“震來虩虩, 後笑言啞啞, 吉.”
爻論遇震而懼, 修省致福之人, 卦則自震言人, 爻則據人威震, 所說雖殊, 其事一也.
所以爻卦二辭, 本末俱等, 其猶屯卦初九與卦俱稱利建侯.
象曰 震來虩虩은 恐致福也요 笑言啞啞은 後有則也라
六二는 震來厲하여 億喪貝하니 躋于九陵이나 勿逐이라도 七日得하리라
注
[注]震之爲義는 威駭怠懈하여 肅整惰慢者也라 初幹其任이어늘 而二乘之하여 震來則危하여 喪其資貨하고 亡其所處矣라
故曰 震來厲하여 億喪貝라하니라 億은 辭也라 貝는 資貨糧用之屬也라
犯逆受戮하고 无應而行이면 行无所舍요 威嚴大行하여 物莫之納하여 无糧而走하니
雖復超越陵險이나 必困于窮匱하여 不過七日이라 故曰 勿逐이라도 七日得也라하니라
疏
○正義曰:‘震來厲 億喪貝’者, 億, 辭也. 貝, 資貨糧用之屬. 震之爲用, 本威惰慢者也.
初九以剛處下, 聞震而懼, 恐而致福, 卽是有德之人.
六二以陰賤之體, 不能敬於剛陽, 尊其有得, 而反乘之, 是傲尊陵貴, 爲天所誅.
震來則有危亡, 喪其資貨, 故曰“震來厲, 億喪貝”也.
‘躋于九陵 勿逐 七日得’者, 躋, 升也. 犯逆受戮, 无應而行, 行无所舍, 威嚴大行, 物莫之納,
疏
[疏]正義曰:‘乘剛也’者, 只爲乘於剛陽, 所以犯逆受戮也.
注
[注]不當其位하여 位非所處라 故로 懼蘇蘇也나 而无乘剛之逆이라 故로 可以懼行而无𤯝也라
疏
○正義曰:驗註
, 蓋懼不自爲懼, 由震故懼也. 自下爻辭, 皆以震言懼也.
疏
[疏]正義曰:‘位不當’者, 其猶竊位者, 遇威嚴之世, 不能自安也.
注
[注]處四陰之中하고 居恐懼之時하여 爲衆陰之主하니 宜勇其身하여 以安於衆이어늘 若其震也면 遂困難矣라
履夫不正하여 不能除恐하여 使物安己하니 德 未光也라
疏
[疏]正義曰:九四處四陰之中, 爲衆陰之主, 當恐懼之時, 宜勇其身, 以安於衆,
疏
[疏]正義曰:‘未光也’者, 身旣不正, 不能除恐, 使物安己, 是道德未能光大也.
注
[注]往則无應하고 來則乘剛하여 恐而往來하면 不免於危라
夫處震之時하여 而得尊位하니 斯乃有事之機也어늘 而懼往來하면 將喪其事라 故로 曰 億无喪이면 有事也라하니라
疏
[疏]正義曰:‘震往來厲’者, 六五往則无應, 來則乘剛, 恐而往來, 不免於咎, 故曰“震往來厲”也.
象曰 震往來厲는 危行也요 其事在中하면 大无喪也리라
疏
‘其事在中 大无喪也’者, 六五居尊, 當有其事, 在於中位, 得建大功.
上六은 震索索하고 視矍矍이니 征凶이라 震不于其躬하고 于其隣이면 无咎어니와 婚媾有言이리라
注
[注]處震之極하니 極震者也라 居震之極하여 求中未得이라 故로 懼而索索하고 視而矍矍하여 无所安親也니
已處動極而復征焉이면 凶其宜也라 若恐非己造요 彼動故懼하여 懼隣而戒하면 合於備預라
故로 无咎也라 極懼相宜라 故로 雖婚媾而有言也라
疏
○正義曰:‘震索索 視矍矍’者, 索索, 心不安之貌. 矍矍, 視不專之容. 上六處震之極, 極震者也.
旣居震
, 欲求中理以自安, 而未能得, 故懼而索索, 視而矍矍, 无所安親.
‘征凶’者, 夫處動懼之極而復征焉, 凶其宜也, 故曰“征凶”也.
‘震不于其躬 于其隣 无咎’者, 若恐非己造, 彼動故懼,
‘婚媾有言’者, 居極懼之地, 雖復婚媾相結, 亦不能无相
之言, 故曰“婚媾有言”也.
象曰 震索索은 中未得也일새요 雖凶无咎는 畏隣戒也일새라
注
두려워하여 법칙을 이루니, 이 때문에 형통한 것이다.
疏
正義曰:‘震’은 動함이다. 이는 우레를 형상한 卦이니, 하늘의 위엄이 진동하므로 ‘震’으로 이름한 것이다.
‘震’이 이미 위엄을 진동하면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놀라게 하고 두렵게 하기를 위엄으로써 하면 물건(사람)들이 모두 整齊되어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형통함을 얻으니, 이 때문에 震에 형통한 德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震은 형통하다.”라고 한 것이다.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면 웃고 말하여 기뻐할 것이다.
注
震의 뜻은 위엄이 이른 뒤에 비로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한다.”라고 하였으니, 〈‘虩虩’은〉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震은 태만한 자들을 놀라게 하여 풀어지고 태만한 자를 엄숙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함은 두려워하여 福을 오게 하는 것이요, 웃고 말하여 기뻐함은 뒤에 법칙이 있는 것이다.
疏
匕 正義曰:‘虩虩’은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啞啞’은 웃고 말하는 소리이다. 震의 쓰임은 하늘이 위엄으로 怒하는 것이니, 태만한 자를 엄숙하고 단정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빠르게 우레가 치고 바람이 맹렬할 때에 君子가 이로 인하여 용모를 바꾸니, 이것을 사람의 일에 베풀면 위엄의 가르침이 천하에 행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레가 올 적에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한다.”라고 한 것이다. 물건이 이미 두려워하여 감히 나쁜 짓을 하지 못하면 그 福을 편안히 보존하여 마침내 웃고 말하는 盛함에 이른다. 그러므로 “웃고 말하여 기뻐할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우레가 百里를 놀라게 함에 숟가락과 鬱鬯酒(울창주)를 잃지 않는다.
注
위엄이 있는 우레가 百里를 놀라게 함에 숟가락과 鬱鬯酒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匕’는 솥에 담겨진 것을 〈꺼내어 도마에〉 올려놓는 것(숟가락)이요, ‘鬯’은 향기로운 술이니, 宗廟의 성대한 제사를 받드는 것이다.
疏
○正義曰:‘匕’는 솥에 담겨진 것을 〈꺼내어 도마에〉 올려놓는 것이고, 鬯은 향기로운 술이니, 宗廟의 성대한 제사를 받드는 것이다.
震卦를 사람에게 베풀면 또 長子가 되니, 長子는 위에서 몸을 바루어 장차 重함(宗統)을 전해서 나가면 군대를 鎭撫하고
지키면 나라를 감독하여 위엄 있는 우레가 百里를 놀라게 하더라도 宗廟를 받들어서 彝器(종묘에서 常用하는 제기)의 粢盛을 지키고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레가 百里를 놀라게 함에 숟가락과 鬱鬯酒를 잃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先儒들은 모두 “우레가 소리를 냄이 百里에 들린다. 그러므로 옛날 帝王이 제후국을 제정할 때에 公과 侯의 땅이 넓이가 사방 百里였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형상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하늘의 진동하는 우레는 단지 百里에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니, 옛날 땅을 열어줌에 百里를 極으로 삼았다. 文王이 繇辭(卦辭)를 지은 것이 殷나라 때에 있었으니, 長子의 위엄이 한 나라에 진동함을 밝혔기 때문에 百里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鼎冪 [匕 所以載鼎實 鬯 香酒] 陸績이 말하기를 “‘匕’는 가시나무 숟가락이니, 솥에 있는 것을 들어 올리는 기구이다.”라 하였고, 先儒들은 모두 말하기를 “‘匕’는 모양이 ‘畢’과 비슷한데 다만 두 갈래가 아닐 뿐이다.
가시나무로 만들어 길이가 3尺이고 자루와 끝을 깎았으니, ≪詩經≫에 ‘굽어 있는 가시나무 숟가락[有捄棘匕]’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가시나무를 사용하는 것은 속이 붉은 뜻을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제사의 禮에는 먼저 犧牲을 가마솥[鑊]에서 삶고 솥[鼎]에 넣어 冪(덮개)을 가했다가 장차 올리려 할 때에 비로소 冪을 들어서 숟가락으로 꺼내어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므로 “숟가락은 솥에 담겨진 것을 〈꺼내어 도마에〉 올려놓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鬯’은, 鄭玄의 뜻은 ‘검은 기장으로 술을 만들면 그 향기가 조화롭고 通暢한다. 그러므로 鬯이라 한다.’는 것이고, ≪毛詩≫의 〈毛傳〉에는 鬯을 香草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王度記≫에 “天子는 鬯을 쓰고 諸侯는 薰을 쓰고 大夫는 난초를 쓴다.”라고 하였으니, 이 準例를 가지고 말하면 ‘鬯’은 풀임이 분명하다.
지금 특별히 ‘匕’와 ‘鬯’을 말한 것에 대해, 鄭玄이 말하기를 “人君이 제사하는 禮에 있어서 희생을 숭상하고 鬯酒를 올릴 뿐이요, 그 나머지는 족히 볼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彖傳〉에 말하였다. “震은 형통하니,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함’은 두려워하여 福을 오게 하는 것이요, ‘웃고 말하여 기뻐함’은 두려워한 뒤에 법칙이 있는 것이다. ‘우레가 百里를 놀라게 함’은 멀리 있는 자를 놀라게 하면 가까이 있는 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니,
注
위엄이 있는 진동이 百里를 놀라게 하면 게으른 자가 가까운 곳에서 두려워한다.
疏
○正義曰:[震亨] 卦의 이름과 德이다. 다만 經文을 들고 卦의 이름과 德이 말미암은 이유를 해석하지 않은 것은, 바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형통함을 얻었으므로 “震은 형통하다.”라고 한 것이요 다시 다른 뜻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어떤 本에는 이 두 글자(震亨)가 없다.
[震來虩虩 恐致福也] 위엄이 있는 진동이 올 때에 처음에는 비록 두려워하나 능히 두려움으로 인하여 스스로 닦으니, 이 때문에 福을 오게 하는 것이다.
[笑言啞啞 後有則也] 전에 두려워하여 스스로 닦음으로 인해 감히 방심하고 안일하지 않으면 福을 오게 한 뒤에 비로소 웃고 말함이 있으니,
일찍이 경계하고 두려워함을 겪어 감히 법칙을 잃지 않아서 반드시 때에 맞은 뒤에 말하고 기뻐한 뒤에 웃는다. 그러므로 “웃고 말하여 기뻐함은 두려워한 뒤에 법칙이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震驚百里 驚遠而懼邇] 위엄 있는 진동이 百里의 먼 곳을 놀라게 하면 게으른 자가 가까운 곳에서 두려워함을 말한 것이다.
〈군주가〉 밖으로 나가면 〈長子가〉 宗廟와 社稷을 지켜서 祭主가 되는 것이다.”
注
長子가 감당할 수 있는 바의 뜻을 밝힌 것이다. 숟가락과 울창주를 잃지 않으면 자기(군주)가 나감에 〈長子가〉 宗廟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숟가락과 鬱鬯酒를 잃지 않음’의 뜻을 해석하였다. ‘出’은 군주가 나가 巡狩하는 등의 일을 이른다. 군주가 나가면 長子가 남아 宗廟와 社稷을 지켜서 祭主의 禮事를 攝行하는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거듭된 우레가 震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두려워하여 〈자기를〉 닦고 살핀다.”
疏
正義曰:[洊] 거듭함이니, 인습[因仍]하는 것이다. 우레가 서로 인습하면 마침내 위엄이 있는 진동이 되니, 이는 震이 거듭된 卦이다. 그러므로 “거듭된 우레가 震卦이다.”라고 한 것이다.
[君子以恐懼修省] 君子가 항상 스스로 戰戰兢兢하여 감히 태만히 하지 않으니, 지금 하늘의 노여움을 보고 우레의 위엄을 두려워해서 더욱 스스로 몸을 닦아 자신의 잘못을 성찰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보고서 두려워하여 〈자기를〉 닦고 살핀다.”라고 한 것이다.
初九는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면 뒤에 웃고 말하여 기뻐할 것이니, 吉하다.
注
剛한 德을 體行하여 卦의 맨 먼저가 되었으니, 능히 두려움으로써 그 德을 닦는 것이다.
疏
正義曰:初九는 剛陽의 德으로 한 卦의 먼저가 되었으니, 剛하면 기미에 어둡지 않고 먼저 하면 능히 미리 아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우레가 놀라게 하는 시초에 처하여 능히 두려움으로써 스스로 닦아서 그 吉함을 얻었다. 그러므로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면 뒤에 웃고 말하여 기뻐할 것이니,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이 爻辭의 두 句는 이미 卦辭와 같고 〈象傳〉에서 해석한 것이 또 〈彖傳〉과 다르지 않은 것은, 卦辭에서는 위엄 있는 우레의 功이 물건으로 하여금 두려워하여 福을 오게 함을 주장하였고,
爻辭에서는 震을 만나 두려워해서 닦고 살펴 福을 오게 하는 사람을 논하였으니, 卦辭는 우레의 입장에서 사람을 말하였고 爻辭는 사람에 근거하여 우레를 두려워한 것이니, 말한 것은 비록 다르나 그 일은 똑같다.
이 때문에 爻辭와 卦辭가 本과 末이 모두 같으니, 이는 屯卦 初九의 爻辭가 卦辭와 더불어 모두 ‘侯를 세움이 이롭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屯卦의 卦辭는 무릇 어려울 때에 마땅히 封建하는 바가 있어야 함을 들었고, 爻辭는 귀한 사람으로서 천한 사람에게 낮추는 것이니, 이는 封建을 감당하는 사람인바, 이 震卦의 初九도 저 屯卦와 같은 類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함’은 두려워하여 복을 오게 하는 것이요, ‘웃고 말하여 기뻐함’은 두려워한 뒤에 법칙이 있는 것이다.”
六二는 震이 옴에 위태로워 패물을 잃으니, 높은 언덕에 올라가나 쫓아가지 않아도 7일 만에 잡히리라.
注
震의 뜻은 게으른 자들을 위엄으로 놀라게 하여 태만한 자들을 엄숙하고 단정하게 하는 것이다. 初九가 이 임무를 주간하는데 六二가 初九를 타고 있어서 震이 오면 위태로워 그 資貨를 잃고 자기가 거처하는 곳을 잃는다.
그러므로 “震이 옴에 위태로워 패물을 잃는다.”라고 한 것이다. ‘億’은 어조사이다. ‘貝’는 資貨와 식량과 쓰는 물건의 등속이다.
悖逆을 범하여 죽임을 받고 應이 없이 가면 감에 머물 곳이 없고, 위엄이 크게 행해져서 물건(남)이 자기를 받아주지 아니하여 양식이 없이 달아나니,
비록 다시 구릉과 험한 곳을 뛰어넘으나 반드시 궁핍함에 곤액을 당하여 7일을 지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쫓아가지 않아도 7일 만에 잡힌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震來厲 億喪貝] ‘億’은 어조사이다. ‘貝’는 資貨와 식량과 쓰는 물건의 등속이다. 震의 쓰임은 본래 태만한 자를 두렵게 하는 것이다.
初九가 剛으로 아래에 처하여 우렛소리를 듣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福을 오게 하니, 바로 德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六二가 천한 陰의 體로서 剛陽을 공경하지 못하고서 자기가 얻음이 있음을 높여 도리어 〈剛陽을〉 타고 있으니, 이는 높은 이를 업신여기고 귀한 이를 능멸하여 하늘에게 주벌을 받는 자이다.
우레가 오면 危亡이 있어서 그 資貨를 잃는다. 그러므로 “震이 옴에 위태로워 패물을 잃는다.”라고 한 것이다.
[躋于九陵 勿逐 七日得] ‘躋’는 오름이다. 悖逆을 범하여 죽임을 받고 應이 없이 가면 감에 머물 곳이 없고, 위엄이 크게 행해져서 물건이 자기를 받아주지 않으니,
이미 資貨를 잃고 양식이 없이 달아나면 비록 다시 구릉과 험한 곳을 높이 뛰어넘으나 반드시 궁핍함에 곤액을 당하여 7일을 지나지 못하고서 有司에게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언덕에 올라가나 쫓아가지 않아도 7일 만에 잡힌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震이 옴에 위태로움’은 剛을 탔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乘剛也] 다만 剛陽을 타고 있는지라 이 때문에 悖逆한 일을 범하여 죽임을 받는 것이다.
六三은 두려워하여 蘇蘇하나 두려워하여 행하면 재앙이 없으리라.
注
자리에 합당하지 아니하여 자리가 자신이 처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여 蘇蘇하나 剛을 탄 悖逆이 없으므로 두려워하여 행하면 재앙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蘇蘇’는 두려워하여 불안해하는 모양이다. 六三이 거한 것이 자리에 합당하지 않으므로 두려워하여 蘇蘇하는 것이다.
비록 자리에 합당하지 않으나 剛을 탄 패역이 없으므로 두려워하여 행하면 재앙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여 蘇蘇하나 두려워하여 행하면 재앙이 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註를 징험해보건대, 震을 두려움으로 訓하였으니, 두려움은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요 우레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아래의 爻辭부터는 모두 震을 두려움으로 말하였다.
〈象傳〉에 말하였다. “‘두려워하여 蘇蘇함’은 자리가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位不當] 그 자리를 도둑질한 자와 같아서 위엄이 있는 세상을 만나면 스스로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注
네 陰의 가운데에 처하고 두려워하는 때에 거하여 여러 陰의 주체가 되었으니, 마땅히 자기 몸을 용감히 하여 무리를 편안히 하여야 하는데, 만약 두려워하면 마침내 곤란해진다.
바르지 못한 자리를 밟아서 두려움을 제거하여 물건으로 하여금 자기를 편안히 여기게 하지 못하니, 德이 光大하지 못한 것이다.
疏
正義曰:九四가 네 陰의 가운데에 처하고 여러 陰의 주체가 되어서 두려워하는 때를 당하였으니, 마땅히 자기 몸을 용감히 하여 무리를 편안히 하여야 하는데,
만약 스스로 두려운 마음을 품으면 마침내 침체하고 빠져서 곤란하게 된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면 마침내 진흙에 빠진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九四가 正位를 잃고 中을 어겼으니, 이는 죄가 있어 스스로 두려워하여 마침내 진흙에 빠지는 자인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두려워하면 마침내 진흙에 빠짐’은 光大하지 못한 것이다.”
疏
正義曰:[未光也] 몸이 이미 바르지 못해서 두려움을 제거하여 물건으로 하여금 자기를 편안히 여기게 하지 못하니, 이는 道德이 광대하지 못한 것이다.
六五는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위태로우니, 잃음이 없으면 훌륭한 일이 있으리라.
注
가면 應이 없고 오면 剛을 타고 있어서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위태로움을 면치 못한다.
震의 때에 처하여 높은 지위를 얻었으니, 이는 바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인데,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장차 자기의 일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잃음이 없으면 훌륭한 일이 있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震往來厲] 六五는 가면 應이 없고 오면 剛을 타고 있어서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허물을 면치 못한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위태롭다.”라고 한 것이다.
[億无喪 有事] 震의 때에 처하여 높은 지위를 얻었으니, 이는 바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인데,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장차 자기 일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경계하기를 “잃음이 없으면 훌륭한 일이 있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위태로움’은 위태로운 행실이요, 그 일이 中에 있어 〈큰 功을 세우면〉 크게 잃음이 없을 것이다.
注
크면 잃음이 없고, 오고가면 마침내 위태로울 것이다.
疏
正義曰:[危行也] 두려운 마음을 품고 오고가면 이는 위태로움을 부르는 행실이다.
[其事在中 大无喪也] 六五가 높은 지위에 거하여 마땅히 그 일을 소유하여야 하고, 中의 자리에 있으면 큰 功을 세울 수 있다.
만약 中을 지켜서 큰 功을 세우면 잃음이 없어서 훌륭한 일이 있을 것이요, 만약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위태로움을 불러 功이 없을 것이다.
上六은 두려워하여 索索하고 보면서 두리번거리는 것이니, 가면 凶하다. 두려움을 자기 몸에서 하지 않고 이웃에서 하면 허물이 없지만 혼인하는 자(자신의 짝)가 의심하는 말이 있으리라.
注
震의 極에 처하였으니, 지극히 두려워하는 자이다. 震의 極에 거하여 中을 구하나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여 索索하고 보면서 두리번거려 편안하고 친한 바가 없는 것이다.
이미 動의 極에 처하였는데 다시 가면 凶한 것이 당연하다. 만약 두려움이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요, 저것이 동했기 때문에 두려워하여 이웃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면 미리 대비함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두려움이 지극하면 마땅함을 살펴보므로 비록 혼인하는 자라도 의심하는 말이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震索索 視矍矍] ‘索索’은 마음이 불안해하는 모양이다. ‘矍矍’은 〈두리번거려〉 보는 것이 專一하지 않는 용모이다. 上六이 震의 極에 처하였으니, 지극히 두려워하는 자이다.
이미 震의 極에 거하여 中의 이치를 구해서 스스로 편안히 하고자 하나 얻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여 索索하고 보면서 두리번거려 편안하고 친한 바가 없는 것이다.
[征凶] 動하여 두려워하는 極에 처해서 다시 가면 凶한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가면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震不于其躬 于其隣 无咎] 만약 두려움이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요, 저것이 동했기 때문에 두려워하여
이웃을 두려워하고 경계하여 미리 대비함에 부합하면 허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자기 몸에서 하지 않고 이웃에서 하면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婚媾有言] 지극히 두려워하는 자리에 거하였으니 비록 다시 혼인을 서로 맺었더라도 서로 의심하는 말이 없지 못하다. 그러므로 “혼인하는 자가 의심하는 말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두려워하여 索索함’은 中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요, 비록 凶하나 허물이 없음은 이웃의 動함에 두려워하여 경계하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中未得也] ‘未得中’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畏隣戒也] 이웃의 動함을 두려워하여, 두려워하고 스스로 경계하여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