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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

주역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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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정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하니 原筮하여 元永貞하면 无咎리라
는 길하니, 근원하고 점쳐서 하고 하고 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不寧方來 後夫凶하리라
편안하지 못한 지방의 사람들이 오니, 뒤늦으면 흉하리라.
[疏]正義曰:‘比吉’者, 謂能相親比而得其吉.
정의왈正義曰:[比吉] 능히 서로 친비親比하여 정길貞吉을 얻음을 이른다.
‘原筮 元永貞 无咎’者, 欲相親比, 必能原窮其情, 筮決其意, 唯有元大永長貞正, 乃得无咎. 元永貞者, 謂兩相親比, 皆須永貞.
[原筮 元永貞 无咎] 서로 친비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 실정을 근원하여 연구하고 그 뜻을 점쳐 결단해서 오직 원대元大하고 영장永長하고 정정貞正함이 있어야 허물이 없을 수 있으니, ‘원영정元永貞’은 둘이 서로 친비할 적에 모두 모름지기 영정永貞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不寧方來’者, 此是寧樂之時, 若能與人親比, 則.
[不寧方來] 지금은 편안하고 즐거운 때이니, 만약 능히 남과 친비하면 편안하지 못한 지방의 사람들이 모두 와서 귀의할 것이다.
‘後夫凶’者, 夫, 語辭也.
[後夫凶] ‘’는 어조사이다.
親比貴速, 若及早而來, 人皆親己, 故在先者吉, 若在後而至者, 人或疎己, 親比不成,
친비함은 빠름을 귀하게 여기니, 만약 조기早期에 오면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친히 하기 때문에 앞에 있는 것이 길하고, 만약 뒤늦게 이르면 사람들이 혹 자기를 소원히 해서 친비함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故後夫凶.
그러므로 ‘뒤늦으면 흉한 것’이다.
혹자는 ‘’를 장부丈夫라 하니, 뒤에 온 사람을 이른다.
彖曰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吉也 輔也 下順從也
는 길하고, 는 도움이니, 아래가 순종하는 것이다.
原筮하여 元永貞하면 无咎 以剛中也
근원하고 점쳐서 하고 하고 하면 허물이 없는 것은 하고 하기 때문이다.
[注]處比之時하여 將原筮以求无咎인댄 其唯元永貞乎인저
의 때에 처하여 장차 근원하고 점쳐서 허물이 없음을 구한다면 오직 하고 하고 함일 것이다.
夫群黨相比 而不以元永貞이면 則凶邪之道也
여러 이 서로 친비할 적에 으로 하지 않으면 흉하고 간사한 이다.
若不遇其主 則雖永貞이나 而猶未足免於咎也 使永貞而无咎者 其唯九五乎인저
만약 그 군주를 만나지 못하면 비록 하더라도 오히려 허물을 면하지 못하니, 친비하는 자들로 하여금 하여 허물이 없게 하는 것은 오직 구오九五일 것이다.
[疏]‘彖曰’至‘以剛中也’
의 [彖曰]에서 [以剛中也]까지
○正義曰:‘比 吉也’者, 釋親比爲善, 言相親.
정의왈正義曰:[比 吉也] 친비함이 좋음이 됨을 해석한 것이니, 서로 친비하여 길함을 얻음을 말한 것이다.
‘比 輔也’者, 釋比所以得吉, 由比者, 人來相輔助也.
[比 輔也]가 길함을 얻는 이유를 해석한 것이니, 가 되는 까닭은 사람들이 와서 서로 돕기 때문이다.
‘下順從’者, 在下之人, 順從於上, 是相輔助也, 謂衆陰順從九五也.
[下順從]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위에 순종하니, 이는 서로 돕는 것인바, 여러 구오九五를 순종함을 이른다.
自此以上, 釋比名爲吉之義.
이로부터 이상은 의 이름이 길함이 된 뜻을 해석하였다.
‘原筮 元永貞 无咎 以剛中’者, 釋原筮元永貞无咎之義, 所以得如此者, 以九五剛而處中, 故使比者, 皆得原筮元永貞无咎也.
[原筮 元永貞 无咎 以剛中] ‘근원하고 점쳐서 하고 하고 하면 허물이 없음’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이와 같음을 얻은 까닭은 구오九五으로서 에 처했기 때문에 친비하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근원하고 점쳐서 하고 하고 하면 허물이 없음’을 얻게 한 것이다.
[疏]○注‘處比之時’至‘其唯九五乎’
의 [處比之時]에서 [其唯九五乎]까지
○正義曰:‘將原筮以求无咎 其唯元永貞乎’者, 原謂原窮比者根本, 筮謂筮決求比之情, 以求久長无咎.
정의왈正義曰:[將原筮以求无咎 其唯元永貞乎] ‘’은 친비하는 자들의 근본을 근원하고 연구함을 이르고, ‘’는 친비함을 구하는 을 점쳐 결단해서 장구長久하여 허물이 없음을 구하는 것이다.
其唯元永貞乎, 元, 大也, 永, 長也,
기유원영정호其唯元永貞乎’에서 ‘’은 큼이요 ‘’은 긺이다.
爲己有大長貞正, 乃能原筮相親比之情, 得久長而无咎, 謂彼此相親比也.
자기에게 큼과 긺과 정정貞正함이 있어야 비로소 서로 친비하는 사람의 실정을 근원하고 점쳐서 장구長久하여 허물이 없음을 얻으니, 피차가 서로 친비함을 말한 것이다.
‘若不遇其主 則雖永貞 而猶未足免於咎’者, 若不逢遇明主, 則彼此相求, 比者雖各懷永貞, 而猶未足免離於咎.
[若不遇其主 則雖永貞 而猶未足免於咎] 만약 현명한 군주를 만나지 못하면 피차가 서로 구하여, 친비하는 사람들이 비록 각각 을 품고 있더라도 오히려 허물에 걸림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雖有永貞, 而无明主照察, 不被上知, 相親涉於朋黨,
비록 을 소유하였더라도 현명한 군주가 밝게 살펴줌이 없어서 윗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서로 친함이 붕당으로 오해받게 된다.
故不免咎也.
그러므로 허물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使永貞而无咎者 其唯九五乎’者, 使比者, 得免咎, 保永貞, 久而无咎, 其唯九五乎.
[使永貞而无咎者 其唯九五乎] 친비하는 자들로 하여금 허물을 면하고 을 보존하여 오래도록 허물이 없게 하는 것은 오직 구오九五일 것이다.
以九五爲比之主, 剛而處中, 能識比者之情意,
구오九五의 주체가 되니, 하면서 에 처하여 친비하는 자들의 실정과 뜻을 잘 안다.
故使比者得保永貞, 无凶咎也.
그러므로 친비하는 자들로 하여금 을 보존하여 흉함과 허물이 없게 하는 것이다.
不寧方來 上下應也
편안하지 못한 지방의 사람들이 옴은 위아래가 응하는 것이다.
[注]上下无陽以分其民하고 五獨處尊하여 莫不歸之하여 上下應之하여 旣親且安하니 安則不安者託焉이라
위아래에 이 없어 백성을 나눔이 없고 구오九五가 홀로 높은 지위에 처하여 귀의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위아래가 응하여 이미 친하고 또 편안하니, 편안하면 편안하지 못한 자가 의탁한다.
不寧方所以來 上下應故也
그러므로 편안하지 못한 지방의 사람들이 오는 까닭은 위아래가 응하기 때문이다.
夫无者求有하고 有者不求所與하며 危者求安하고 安者不求所保하나니 火有其炎이면 寒者附之
없는 자가 있는 자를 구하고 있는 자는 줄 곳을 구하지 않으며, 위태로운 자가 편안함을 구하고 편안한 자는 보존해줄 사람을 구하지 않으니, 불이 뜨거움이 있으면 추운 자가 다가가는 것이다.
己苟安焉이면 則不寧方來矣
그러므로 자기가 만일 편안하면 편안하지 않은 지방의 사람들이 오는 것이다.
[疏]正義曰:釋不寧方來之義, 以九五處中, 故上下群陰皆來應之.
정의왈正義曰:‘편안하지 못한 지방의 사람들이 옴’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구오九五에 처하였으므로 위아래의 여러 이 모두 와서 응하는 것이다.
於此之時, 陰往比陽, 群陰未得其所, 皆未寧也.
이러한 때에는 이 가서 을 친비하니, 여러 이 제자리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모두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後夫凶 其道窮也
뒤늦으면 흉한 것은 그 가 궁한 것이다.”
[注]將合和親이어늘 而獨在後하니 親成則誅
장차 화합하고 친해야 하는데 홀로 뒤에 있으니, 친비함이 이루어지면 주벌을 받는다.
是以凶也
이 때문에 흉한 것이다.
[疏]‘後夫凶其道窮也’
의 [後夫凶其道窮也]
○正義曰:釋後夫凶,
정의왈正義曰:‘뒤늦으면 흉함’을 해석한 것이다.
他悉親比, 己獨後來, 比道窮困, 无人與親,
다른 사람들은 모두 친비하고 자기만 홀로 뒤늦게 와서 친비하는 가 곤궁하여 자기와 친할 사람이 없다.
故其凶也.
그러므로 흉한 것이다.
此謂上六也.
이는 상육上六을 말한 것이다.
[疏]○注‘將合和親’至‘是以凶也’
의 [將合和親]에서 [是以凶也]까지
○正義曰:‘親成則誅’者, 彼此相比, 皆速來爲親, 親道已成, 己獨在後而來, 衆則嫌其離貳,
정의왈正義曰:[親成則誅] 피차가 서로 친비함에 모두 속히 와서 친하니, 친하는 가 이미 이루어져서 자기만 홀로 뒤처져 오면, 사람들이 자기가 떠나고 딴마음을 품음을 혐의한다.
所以被誅而凶也.
이 때문에 주벌을 받아 흉한 것이다.
象曰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地上有水 比 先王以建萬國하여 親諸侯하나니라
“땅위에 물이 있는 것이 이니, 선왕先王이 보고서 만국萬國을 세우고 제후諸侯를 친애한다.”
[注]萬國以比建하고 諸侯以比親이라
만국은 로써 건립되고, 제후는 로써 친해진다.
[疏]正義曰:‘建萬國 親諸侯’, 非諸侯以下之所爲, 故特云先王也.
정의왈正義曰:[建萬國 親諸侯] 〈이것을〉 제후 이하의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므로 특별히 ‘선왕先王’이라고 한 것이다.
建萬國, 謂割土而封建之, 親諸侯, 謂爵賞恩澤而親友之, 萬國據其境域, 故曰建也, 諸侯謂其君身, 故云親也.
건만국建萬國’은 땅을 떼어 봉하여 나라를 세움을 이르고, ‘친제후親諸侯’는 관작과 상과 은택을 내려서 친근히 함을 이르니, 만국은 그 경역境域(국경)을 점거하고 있으므로 ‘’이라 말하였고, 제후는 그 군주의 몸을 말한 것이므로 ‘’이라 한 것이다.
‘地上有水’, 猶域中有萬國, 使之各相親比, 猶地上有水, 流通相潤及物,
[地上有水] 국경 안에 만국이 있어서 그들로 하여금 각각 서로 친비하게 하는 것과 같으니, 땅위에 물이 있어서 유통하여 서로 적셔주어서 물건에 미치는 것과 같다.
故云“地上有水比”也.
그러므로 “땅위에 물이 있는 것이 이다.[地上有水比]”라고 말한 것이다.
初六 有孚比之하면 无咎리라
초육初六부신孚信을 두어 친비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有孚盈缶 終來有它吉이리라
부신孚信을 두어 질장구에 가득하면 끝내 물건이 와서 또 다른 길함이 있으리라.
[注]處比之始하니 爲比之首者也
의 시초에 처하였으니, 의 머리가 된다.
夫以不信으로 爲比之首 則禍莫大焉이라
성실하지 않음[不信]으로 의 머리가 되면 가 이보다 더 클 수 없다.
必有孚盈缶然後 乃得免比之咎
그러므로 반드시 부신孚信이 질장구에 가득하게 한 뒤에야 비로소 친비親比하는 허물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曰 有孚比之 无咎也하니라
그러므로 “부신孚信을 두어 친비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處比之首하여 應不在一하여 心无私吝이면 則莫不比之
의 머리에 처하여 응함이 한 곳에 있지 않아서 마음에 사사로이 아낌이 없으면 친하지 않은 이가 없다.
著信立誠하여 盈溢乎質素之器하면 則物終來无衰竭也
을 드러내고 을 세워서 질박한 그릇에 가득 차고 넘치게 하면 물건(사람)이 마침내 와서 쇠하고 다함이 없을 것이다.
親乎天下 著信盈缶하면 應者豈一道而來리오
천하를 친애함에 을 드러내어 질장구에 가득하게 하면 응하는 자가 어찌 한 길에서만 오겠는가.
必有他吉也
그러므로 반드시 또 다른 길함이 있는 것이다.
[疏]‘初六有孚’至‘有他吉’
의 [初六有孚]에서 [有他吉]까지
○正義曰:‘有孚比之 无咎’者, 處比之始, 爲比之首, 若无誠信, 禍莫大焉, 必有誠信, 而相親比, 終始如一, 爲之誠信, 乃得无咎.
정의왈正義曰:[有孚比之 无咎]의 시초에 처하여 의 머리가 되었으니, 만약 성신誠信이 없으면 가 이보다 더 클 수 없을 것이요, 반드시 성신誠信이 있고서 서로 친비하여 시종 한결같아서 친비하기를 성신誠信하게 하여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有孚盈缶 終來有他吉’者, 身處比之首, 應不在一, 心无私吝, 莫不比之.
[有孚盈缶 終來有他吉] 몸이 의 머리에 처하여 응함이 한 곳에 있지 않아서 마음에 사사로이 아낌이 없으면 친비하지 않는 이가 없다.
有此孚信, 盈溢質素之缶, 以此待物, 物皆歸向, 從始至終, 尋常恒來, 非唯一人而已,
부신孚信을 소유하여 질박한 질장구에 가득 차고 넘치게 하니, 이러한 방식으로 남을 대하면 남이 모두 귀의하고 향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평소에 항상 올 것이요, 다만 한 사람뿐만이 아니다.
更有他人竝來而得吉,
그리하여 또다시 다른 사람이 함께 와서 길함을 얻는다.
故云“終來有他吉”也.
그러므로 “끝내 물건이 와서 또 다른 길함이 있다.[終來有他吉]”라고 말한 것이다.
此假外象, 喩人事也.
이는 밖의 을 빌려서 사람의 일을 비유한 것이다.
[疏]○注‘應不在一心无私吝’
의 [應不在一心无私吝]
○正義曰:‘應不在一’者, 初六无應, 是應不在一, 故心无私吝也.
정의왈正義曰:[應不在一]초육初六이 없으니, 이는 응함이 한 곳에 있지 않은 것이므로 마음에 사사로이 아낌이 없는 것이다.
若心有偏應, 卽私有愛吝也, 以應不在一, 故心无私吝也.
만약 마음에 편벽되이 응함이 있으면 바로 사사로이 아낌이 있는 것이니, 응함이 한 곳에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사사로이 아낌이 없는 것이다.
象曰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比之初六 有它吉也
초육初六은 또 다른 길함이 있는 것이다.”
六二 比之自內 貞吉이로다
육이六二는 친비함을 안으로부터 하니, 정길貞吉하다.
[注]處比之時하여 居中得位하고 而繫應在五하여 不能來它
의 때에 처하여 에 거하고 정위正位를 얻었으며 계응繫應구오九五에 있어서 다른 것을 오게 하지 못한다.
得其自內貞吉而已
그러므로 ‘안으로부터 정길貞吉함’을 얻을 뿐이다.
[疏]正義曰:‘比之自內 貞吉’者, 居中得位, 係應在五, 不能使它悉來, 唯親比之道, 自在其內, 獨與五應, 但貞吉而已, 不如初六有它吉也.
정의왈正義曰:[比之自內 貞吉]에 거하고 정위正位를 얻었으며 계응係應구오九五에 있어서 다른 사람을 모두 오게 하지 못하고, 오직 친비하는 가 스스로 그 안에 있어서 홀로 구오九五와 응하니, 다만 정길貞吉할 뿐이요, 초육初六이 또 다른 길함이 있는 것만은 못한 것이다.
象曰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比之自內 不自失也
“친비함을 안으로부터 함은 스스로 잃지 않는 것이다.”
[疏]正義曰:‘不自失’者, 釋比之自內之義, 不自失其所應之偶, 故云“比之自內, 不自失也.”
정의왈正義曰:[不自失] ‘친비함을 안으로부터 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스스로 그 응할 바의 짝을 잃지 않기 때문에 “친비함을 안으로부터 함은 스스로 잃지 않는 것이다.[比之自內 不自失也]”라고 말한 것이다.
六三 比之匪人이로다
육삼六三은 친하지 않은 사람과 친비하도다.
[注]四自外比하고 二爲五하여 近不相得하고 遠則无應하여 所與比者 皆非己親이라
육사六四는 밖으로 〈구오九五와〉 친비하고 육이六二구오九五이 되어서 가까이는 서로 뜻이 맞지 못하고 멀리는 이 없어 더불어 친비하는 자가 모두 자기와 친한 사람이 아니다.
曰 比之匪人이라하니라
그러므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 친비한다.”고 한 것이다.
象曰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比之匪人 不亦傷乎
“친하지 않은 사람과 친비함은 슬픈 것이 아니겠는가.”
[疏]正義曰:‘比之匪人 不亦傷乎’者, 言六三所比, 皆非己親之人.
정의왈正義曰:[比之匪人 不亦傷乎]육삼六三이 친비하는 바가 모두 자기가 친한 사람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四自外比, 二爲五應, 近不相得, 遠又无應, 是所欲親比, 皆非其親,
육사六四는 밖에서 친하고 육이六二구오九五이 되어서 가까이는 서로 뜻이 맞지 않고 멀리는 또 이 없으니, 이는 친비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자기가 친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다.
六四 外比之하니 貞吉이로다
육사六四는 밖에서 친비하니, 정길貞吉하다.
[注]外比於五하고 復得其位하니 比不失賢하고 處不失位
밖에서 구오九五와 친비하고 다시 정위正位를 얻었으니, 친비함에 어진 이를 잃지 않고 처함에 정위正位를 잃지 않았다.
貞吉也
그러므로 정길貞吉한 것이다.
[疏]正義曰:六四上比於五, 欲外比也, 居得其位, 比不失賢, 所以貞吉.
정의왈正義曰:육사六四가 위로 구오九五와 친비함은 밖으로 친하고자 하는 것이니, 거함에 정위正位를 얻고 친비함에 어진 이를 잃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정길貞吉한 것이다.
凡下體爲內, 上體爲外, 六四比五, 故云“外比”也.
무릇 하체下體가 되고 상체上體가 되니, 육사六四구오九五와 친비하기 때문에 “밖에서 친비하다.[外比]”라고 말한 것이다.
象曰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外比於賢 以從上也
“밖에서 어진 이와 친비함은 위를 따르는 것이다.”
[疏]正義曰:九五居中得位, 故稱賢也. 五在四上, 四往比之, 是以從上也.
정의왈正義曰:구오九五에 거하고 정위正位를 얻었기 때문에 ‘’이라고 칭한 것이요, 구오九五육사六四의 위에 있는데 육사六四가 와서 구오九五와 친비하니 이것이 ‘위를 따르는 것[以從上也]’이다.
九五 顯比 王用三驅 失前禽하며 邑人不誡이로다
구오九五는 드러나게 친비함이니, 왕이 삼면三面에서 짐승을 몰면 앞의 짐승을 잃으며 고을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으니, 길하리라.
[注]爲比之主而有應在二 顯比者也
의 주체가 되어서 육이六二에 있음은 드러나게 친비하는 자이니, 친비함에 드러나게 하면 친한 자가 좁다.
夫无私於物하고 唯賢是與 則去之與來 皆无失也
남에게 사사롭게 하지 않고, 오직 어진 이와 친하면 가고 오는 것이 모두 잃음이 없다.
夫三驅之禮 逆來趣己則舍之하고 背己而走則射之하니 愛於來而惡於去也
삼구三驅는 짐승이 거슬러 와서 자기에게 달려오면 놓아주고, 자기를 등지고 달아나면 쏘아 죽이니, 오는 것을 사랑하고 가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故其所施 常失前禽也
그러므로 그 베푸는 바가 항상 앞의 짐승을 잃는 것이다.
以顯比而居王位하여 用三驅之道者也
현비顯比로써 왕의 지위에 있으면서 삼구三驅를 쓰는 자이다.
曰 王用三驅 失前禽也라하니라
그러므로 “왕이 삼면三面에서 짐승을 몰면 앞의 짐승을 잃는다.”고 한 것이다.
用其中正하여 征討有常하여 伐不加邑하고 動必討叛하여 邑人无虞
중정中正함을 사용하여 정벌하고 토벌함에 떳떳함이 있어서 정벌을 자기 고을에 가하지 않고 출동함에 반드시 반역자를 토벌하여, 고을 사람들이 염려함이 없다.
不誡也 雖不得乎大人之吉이나 是顯比之吉也
그러므로 경계하지 않는 것이니, 비록 대인大人의 길함을 얻지는 못하나 이는 현비顯比의 길함인 것이다.
可以爲上之使
이는 윗사람의 부림은 될 수 있지만 윗사람이 된 도리는 아니다.
[疏]‘九五顯比’至‘邑人不誡吉’
의 [九五顯比]에서 [邑人不誡吉]까지
○正義曰:五應於二, 顯明比道, 不能普徧相親, 是比道狹也.
정의왈正義曰:구오九五육이六二에 응하여 친비하는 를 드러내고 밝혀서 널리 서로 친하지 못하니, 이는 친비하는 가 좁은 것이다.
‘王用三驅 失前禽’者, 此假田獵之道, 以喩顯比之事.
[王用三驅 失前禽] 이는 수렵하는 방도를 빌려서 현비顯比하는 일을 비유한 것이다.
凡三驅之禮, 禽向己者則舍之, 背己者則射之, 是失於前禽也.
무릇 삼구三驅는 짐승이 자기를 향하는 놈은 놓아주고 자기를 등지는 놈은 쏘아 죽이니, 이것이 ‘앞의 짐승을 잃는 것’이다.
顯比之道, 與己相應者則親之, 與己不相應者則疎之, 與三驅田獵, 愛來惡去相似,
현비顯比는 자기와 서로 응하는 자는 친애하고 자기와 서로 응하지 않는 자는 소원히 하니, 삼구三驅의 사냥을 할 적에 오는 것을 사랑하고 가는 것을 미워함과 서로 비슷하므로
故云“王用三驅, 失前禽”也, 言顯比之道, 似於此也.
“왕이 삼면三面에서 짐승을 몰면 앞의 짐승을 잃는다.[王用三驅 失前禽]”라고 말한 것이니, 현비顯比가 이와 유사함을 말한 것이다.
‘邑人不誡吉’者, 雖不能廣普親比, 於自己相親之處, 不妄加討罰, 所以己邑之人, 不須防誡而有吉也.
[邑人不誡吉] 비록 널리 먼 곳까지 친비하지는 못하나 자기와 서로 친한 곳에 함부로 토벌을 가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자기 고을 사람들이 굳이 방비하고 경계하지 않더라도 길함이 있는 것이다.
至于邑人不誡而爲吉, 非是大人弘闊之道, 不可爲大人之道, 但可爲大人之使.
고을 사람들이 경계하지 않음에 이르러 길함이 된 것은 대인大人의 넓고 큰 도량이 아니니, 대인大人가 될 수 없고 다만 대인大人의 부림이 될 수 있을 뿐이다.
[疏]○注‘爲比之主’至‘非爲上之道’
의 [爲比之主]에서 [非爲上之道]까지
○正義曰:‘去之與來皆无失’者, 若比道弘闊, 不偏私於物, 唯賢是親, 則背己去者與來向己者, 皆悉親附, 无所失也, 言去亦不失, 來亦不失.
정의왈正義曰:[去之與來皆无失] 만약 친비하는 가 넓고 커서 남에게 편벽되게 하거나 사사로이 하지 않고, 오직 어진 이를 친애하면 자기를 배반하고 가는 자와 와서 자기를 향하는 자가 모두 다 친히 따라서 잃는 바가 없게 되니, 가도 잃지 않고 와도 잃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夫三驅之禮’者, 先儒皆云“三度驅禽而射之也.” 三度則已, 今亦從之, 去則射之.
[夫三驅之禮]선유先儒들이 모두 “세 차례 짐승을 몰아 쏘는 것이다.” 하였으니, 세 번 몰았으면 그만인데 지금 또한 쫓아가서 짐승이 도망가면 쏘아 죽이는 것이다.
褚氏諸儒皆以爲“三面著人驅禽.” 必知三面者, 禽唯有背己‧向己‧趣己,
저씨褚氏(褚仲都) 등 여러 학자들은 모두 “삼면三面에 사람을 두어 짐승을 모는 것이다.”라고 하니, 반드시 삼면三面임을 아는 것은 짐승은 오직 〈뒤에 있어〉 자기(사냥꾼)를 등지는 것과 〈앞에 있어〉 자기를 향해 오는 것과 〈좌우左右 측면에서〉 자기에게 달려오는 경우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故左右及於後, 皆有驅之.
그러므로 좌우와 뒤에 있는 짐승에게는 모두 몲이 있는 것이다.
‘愛於來而惡於去’者, 來則舍之, 是愛於來也, 去則射之, 是惡於去也.
[愛於來而惡於去] 오면 놓아주는 것은 바로 ‘애어래愛於來’이고, 가면 쏘아 죽이는 것은 바로 ‘악어거惡於去’이다.
[故其所施常失前禽] 홀로 친비하는 사람과 응하면 친비하는 바를 잃음이 됨을 말한 것이니, 삼구三驅의 베푸는 바가 오는 이를 사랑하고 가는 이를 미워하면 앞에 있는 짐승을 잃음과 같은 것이다.
[疏]‘用其中正 征討有常 伐不加邑 動必討叛’者, 此九五居中得正, 故云“用其中正”也, 心旣中正, 不妄喜怒,
[用其中正 征討有常 伐不加邑 動必討叛] 이는 구오九五에 거하고 을 얻었으므로 “그 중정中正함을 사용한다.”고 한 것이니, 마음이 이미 중정中正하여 함부로 기뻐하거나 성내지 않는다.
故征伐有常也.
그러므로 정벌함에 떳떳함이 있는 것이다.
所伐之事, 不加親己之邑, 興師動衆, 必欲討其叛逆, 五以其顯比, 親者, 伐所不加也, 叛者, 必欲征伐也.
정벌하는 일을 자기를 친애하는 고을에 가하지 않고, 군대를 일으키고 무리를 동원함에 반드시 반역하는 자를 토벌하고자 하니, 구오九五현비顯比하기 때문에 친애하는 자에게는 정벌을 가하지 않고 반역하는 자는 반드시 정벌하고자 하는 것이다.
云‘雖不得乎大人之吉 是顯比之吉’者, 以象云“顯比之吉”, 其比狹也, 若大人之吉, 則比道弘通也.
[雖不得乎大人之吉 是顯比之吉] 〈상전象傳〉에서 말한 “현비顯比”은 그 친비함이 좁은 것이니, 대인大人의 길함은 친비하는 가 크게 통하는 것이다.
‘可以爲上之使 非爲上之道’者, 九五居上之位, 若爲行如此, 身雖爲王, 止可爲上使之人, 非是爲王之道,
[可以爲上之使 非爲上之道]구오九五가 위의(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행하는 바가 이와 같으면 몸은 비록 왕이 되었으나 다만 위에서 부리는 사람이 될 뿐이요 왕이 된 도리가 아니다.
故云“非爲上之道.”
그러므로 “윗사람이 된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象曰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顯比之吉 位正中也 舍逆取順 失前禽也 邑人不誡 上使中也
현비顯比의 길함은 자리가 중정中正하기 때문이요, 거스르는 자를 버리고 순함을 취함은 앞의 짐승을 잃는 것이요, 고을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음은 위에서의 부림이 한 것이다.”
[疏]‘顯比之吉’至‘上使中也’
의 [顯比之吉]에서 [上使中也]까지
○正義曰:‘顯比之吉 位正中’者, 所以顯比得吉者, 以所居之位正而且中, 故云“顯比之吉.”
정의왈正義曰:[顯比之吉 位正中]현비顯比함이 길함을 얻는 까닭은 거한 바의 자리가 하고 또 하기 때문에 “현비顯比의 길함”이라고 말한 것이다.
‘舍逆取順 失前禽也’者, 禽逆來向己者, 則舍之而不害, 禽順去背己而走者, 則射而取之, 是失前禽也.
[舍逆取順 失前禽也] 짐승이 거슬러 와서 자기를 향하는 놈은 놓아주어 해치지 않고, 짐승이 순히 떠나 자기를 등지고 달아나는 놈은 쏘아 잡는 것이니, 이것이 ‘앞의 짐승을 잃는 것[失前禽也]’이다.
‘邑人不誡 上使中也’者, 釋邑人不誡之義.
[邑人不誡 上使中也] ‘고을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음’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所以己邑之人, 不須防誡, 止由在上九五之使, 得其中正之人, 伐不加邑, 動必討叛, 不橫加无罪, 止由在上使中也.
자기 고을 사람들은 방비하고 경계할 필요가 없는 까닭은, 다만 위에 있는 구오九五의 부림이 중정中正한 사람을 얻어서 정벌을 자기 고을에 가하지 않고 출동함에 반드시 반역자를 토벌해서 무죄한 사람을 함부로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는 다만 위에 있는 자의 부림이 하기 때문이다.
中, 謂九五也, 此九五雖不得爲王者之身, 堪爲王者之使, 以居中位, 故云“上使中也.”
’은 구오九五를 이르니, 이 구오九五가 비록 왕자王者의 몸은 될 수 없으나 다만 왕자王者의 부림은 될 수 있으니, 중위中位에 거하기 때문에 “위에서의 부림이 하다.[上使中也]”라고 말한 것이다.
上六 比之无首하니라
상육上六은 친비함에 머리가 없는 것이니, 흉하다.
[注]无首
‘머리가 없음’은 뒤이다.
處卦之終하니 是後夫也
의 끝에 처하였으니, 이는 〈괘사卦辭의〉 ‘후부後夫’인 것이다.
親道已成하여 无所與終하여 爲時所棄하니 宜其凶也
친비하는 가 이미 이루어져서 함께 끝마치는 이가 없어서 세상에 버려지는 바가 되었으니, 그 흉함이 마땅하다.
[疏]正義曰:‘无首凶’者, 謂无能爲頭首.
정의왈正義曰:[无首凶] 머리가 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它人皆比, 己獨在後, 是親比於人, 无能爲頭首也.
다른 사람들은 모두 친비한데 자기만 홀로 뒤에 있으니, 이는 남과 친비함에 머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它人皆比, 親道已成, 己獨在後, 衆人所棄, 宜其凶也.
타인들은 모두 친비하여 친비하는 가 이미 이루어졌는데, 자기만 홀로 뒤에 있어 여러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니, 그 흉함이 마땅하다.
象曰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比之无首 无所終也
“친비함에 머리가 없음은 끝마치는 바가 없는 것이다.”
[疏]正義曰:‘无所終’者, 釋比之无首, 旣不能爲比之初首, 被人所棄,
정의왈正義曰:[无所終] ‘친비함에 머리가 없음’을 해석한 것이니, 이미 의 첫머리(첫 번째)가 되지 못하여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는다.
故无能與之共終也.
그러므로 더불어 함께 끝마칠 수가 없는 것이다.
역주
역주1 不寧之方 皆悉歸來 : 程伊川은 “사람이 스스로 안녕함을 보존하지 못하여야 비로소 와서 親比하기를 구한다.[人之不能自保其安寧 方且來求親比]” 하고, 朱子는 “친하지 못하고 불안하게 여기는 사람도 장차 모두 와서 귀의할 것이다.[其未比而有所不安者 亦將皆來歸之]” 하여, 모두 ‘方’을 ‘바야흐로’의 뜻으로 보았는데, 孔穎達은 王弼이 아래 〈象傳〉의 注에서 “편안하지 못한 지방의 사람들이 오는 까닭은[不寧方 所以來]”이라고 한 것을 따라 ‘方’을 ‘지방’의 뜻으로 보았다.
역주2 或以夫爲丈夫 謂後來之人也 : 朱子 역시 ‘後夫’를 여기처럼 ‘뒤에 온 사람’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은 “夫는 剛立한 자의 칭호이다.[夫 剛立之稱]”라고 하여, ‘後夫凶’을 “만일 홀로 서고 자신만을 믿어 친비하기를 구하는 뜻이 빠르지 못하고 뒤늦으면 비록 剛立한 자라도 흉하다. 강립한 자도 오히려 흉한데 하물며 유약한 자에 있어서랴.[若獨立自恃, 求比之志 不速而後 則雖夫 亦凶矣 夫猶凶 況柔弱者乎]”라고 풀이하였다. 이 해석에 따르면, 經文은 ‘後면 夫라도 凶이리라’로 현토해야 한다.
역주3 比吉也者……言相親比而得吉也 : 朱子는 ‘比吉也’를 “衍文인 듯하다.”라고 하였다.
역주4 (應)[貞] : 저본에는 ‘應’으로 되어 있으나, 岳本‧宋本‧古本‧足利本에 의거하여 ‘貞’으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應’ 역시 의미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易》에서 內卦를 貞, 外卦를 悔라 하므로 ‘貞’으로 교감하였다. 그러나 아래 疏에는 별도의 교감이 없으므로, 그대로 두었다.
역주5 比之匪人……是以悲傷也 : ‘匪人’을 王弼과 孔穎達은 ‘친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았고, 程伊川과 朱子는 ‘나쁜 사람’으로 보았는바, 그 이유를 程伊川은 “六三은 中正하지 못하고 가까이 있는 바가 모두 中正하지 못하다. 六四는 陰柔로서 中하지 못하고, 六二는 應이 있고 初六과 가까워 모두 中正하지 못하니, 匪人이다.[三不中正 而所比皆不中正 四 陰柔而不中 二 存應而比初 皆不中正 匪人也]”라고 설명하였다. 〈象傳〉 역시 匪人에 대한 견해의 차이에 의하여 孔穎達과 程伊川의 해석이 다른데, 孔穎達은 ‘傷’을 ‘悲傷(슬픔)’으로 본 반면, 程伊川은 ‘傷’을 ‘해로움’으로 보아 “사람이 서로 친비함은 편안함과 길함을 구하기 위한 것인데, 마침내 匪人을 가까이한다면 반드시 장차 도리어 후회와 부끄러움을 얻을 것이니, 이 또한 해로울 만한 것이다.[人之相比 求安吉也 乃比於匪人 必將反得悔吝 其亦可傷矣]”라고 하였다.
역주6 比而顯之 則所親者狹矣 : 九五의 爻辭에 대한 해석은 王弼‧孔穎達과 程伊川‧朱子의 견해가 대조적이다.
王弼과 孔穎達은 ‘顯比’를 ‘드러나게 친비하는 것’으로 보아, 자신과 친한 자만 편애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공격하는 道로 설명하였다. 따라서 ‘失前禽’은 나를 등지고 달아나는 짐승을 미워하여 쏘아죽이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며, ‘邑人不誡’는 자기 고을의 사람에게는 공격을 가하지 않으므로 굳이 경계하거나 방비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으며, 이 九五의 길함을 大人의 길함만 못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반면 程伊川은 이 九五를 “친비하는 道의 善함을 극진히 한 자이다.[盡比道之善者也]”라고 하였으며, 朱子는 “그 친비함을 드러내어 私가 없다.[顯其比而无私]”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친비의 道는 私가 없고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失前禽’은 도망가는 자와 굳이 친비하려 하지 않고 오는 자만을 어루만져 친비하는 뜻이 되고, ‘邑人不誡’는 자기 읍이라고 하여 다른 읍과 차별하여 경계해주지 않음의 뜻이 되어 모두 至公無私의 사례로 해석된다.
역주7 非爲上[之]道(也) : 저본에는 ‘非爲上道也’로 되어 있으나, 아래 疏의 인용에 의거하여 ‘非爲上之道’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8 夫三驅之禮者……則失在前禽也 : ‘三驅’는 고대 왕의 사냥과 관련된 제도인데, ‘三面說’, ‘三度說’ 등이 있는바, 孔穎達은 ‘三面說’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程伊川과 朱子도 ‘三面說’을 따랐으나, 그 내용이 孔穎達과 다르다. 孔穎達은 좌‧우‧후면의 짐승은 놓아주고 오직 앞으로 도망가는 짐승만을 쏘아 잡는다는 의미로 ‘三驅’을 해석하였고, 程伊川과 朱子는 좌‧우‧후면의 짐승은 잡고 앞으로 도망가는 짐승은 놓아준다는 의미로 ‘三驅’를 해석하였다. 따라서 ‘失前禽’의 ‘失’도 程伊川과 朱子는 잡지 않아 놓치는 것으로 해석한 반면, 孔穎達은 쏘아 죽여 해를 입히므로 失이라고 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역주9 (已)[也] : 저본에는 ‘已’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也’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주역정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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