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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

주역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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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정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其周易繫辭 凡有二說하니 一說 所以卦辭爻辭 竝是文王所作이라
주역周易》의 괘사卦辭효사爻辭를 단 것에는 모두 두 가지 이 있으니, 한 괘사卦辭효사爻辭를 모두 문왕文王이 지었다고 하는 것이다.
知者 案繫辭云 易之興也 其於中古乎인저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살펴보건대 〈계사전繫辭傳〉에 “이 일어남은 중고中古시대에 있었을 것이다.
作易者其有憂患乎인저하고 又曰 易之興也 其當殷之末世 周之盛德邪인저
을 지은 분은 우환이 있었을 것이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이 일어남은 나라 말기와 나라의 성덕盛德인 때에 해당할 것이다.
當文王與紂之事邪인저하니라
문왕文王의 일에 해당할 것이다.” 하였다.
又乾鑿度云 垂皇策者 卦道演德者이요 成命者이라하니라
또 《건착도乾鑿度》에 이르기를 “황책皇策을 드리운 사람은 복희씨伏羲氏이고, 를 가지고 을 부연한 사람은 문왕文王이고, 을 이룬 사람은 공자孔子이다.” 하였다.
通卦驗 又云 蒼牙通靈하고 昌之成하고 孔演命明道經이라하니
위서緯書인〉 《통괘험通卦驗》에 또 이르기를 “창아蒼牙(伏羲)가 신령함을 통하고 (文王)이 완성하고 공자孔子가 부연해서 도경道經을 명명하여 밝혔다.” 하였다.
準此諸文하면 伏犧制卦하고 文王繫辭하고 孔子作十翼하시니 易歷三聖 只謂此也
이 여러 글을 기준으로 보면 복희씨伏羲氏를 만들고 문왕文王괘사卦辭효사爻辭를 달고 공자孔子십익十翼을 지은 것이니, 이 세 성인聖人을 거쳤다는 것은 다만 이것을 말한 것이다.
史遷云 文王囚而演易이라하니 卽是作易者其有憂患乎 鄭學之徒 竝依此說也
그러므로 사마천司馬遷이 이르기를 “문왕文王유리羑里에 갇혀 있으면서 을 부연하였다.” 하였으니, 바로 이것이 ‘을 지은 분이 우환이 있었을 것이다.’라는 것인바, 정현鄭玄의 무리들이 모두 이 을 따랐다.
以爲驗爻辭하면 多是文王後事
두 번째 은, 효사爻辭를 징험해보면 문왕文王 이후의 일이 많다고 여긴 것이다.
案升卦六四 王用亨于岐山이라한대 武王克殷之後 始追號文王爲王하니 若爻辭是文王所制 不應云 王用亨于岐山이라
살펴보건대, 승괘升卦 육사六四 효사爻辭에 “왕이 기산岐山에서 형통할 것이다.[王用亨于岐山]”라 하였는데, 무왕武王나라를 이긴 뒤에 처음으로 문왕文王추호追號하여 이라 하였으니, 만약 효사爻辭문왕文王이 지은 것이라면 응당 “왕용형우기산王用亨于岐山”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又明夷六五 箕子之明夷라한대 武王觀兵之後 箕子始被囚奴하니 文王不宜豫言箕子之明夷
명이괘明夷卦 육오六五 효사爻辭에 “기자箕子의 밝음을 감춤[箕子之明夷]”이라 하였는데, 무왕武王이 〈맹진孟津(盟津)에서〉 열병閱兵한 뒤에 기자箕子가 처음으로 갇혀서 노예가 되었으므로, 문왕文王이 미리 ‘기자箕子명이明夷’를 말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又旣濟九五 東隣殺牛 不如西隣之라한대 說者皆云 西隣 謂文王이요 東隣 謂紂라하니
기제괘旣濟卦 구오九五 효사爻辭에 “동쪽 이웃[東隣]의 소를 잡아 성대히 제사함이 서쪽 이웃[西隣]의 검소한 제사가 〈을 받는〉 것만 못하다.” 하였는데, 해설하는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서린西隣문왕文王을 이르고, 동린東隣를 이른다.” 하였으니,
文王之時 紂尙南面하니 豈容自言己德受福勝殷이며 又欲抗君之國하여 遂言東西相隣而已리오
문왕文王 때에 가 아직도 천자天子의 지위에 있어 남면南面하고 있었는바, 어찌 문왕文王이 스스로 자기의 을 받아 나라를 이긴다고 말할 수 있었겠으며, 또 군주의 나라와 맞서고자 하여 마침내 동쪽과 서쪽으로 서로 이웃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였겠는가.
又左傳 韓宣子適魯라가 見易象하고 云 吾乃知周公之德이라하니 周公被流言之謗 亦得爲憂患也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한선자韓宣子(韓起)가 나라에 갔다가 역상易象을 보고 말하기를 “나는 이제야 비로소 주공周公을 알았다.” 하였으니, 주공周公이 유언비어의 비방을 받은 것도 〈을 지은 분의〉 우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驗此諸說하면 以爲卦辭文王이요 爻辭周公이니
이 여러 을 징험해보면 괘사卦辭문왕文王이 지었고 효사爻辭주공周公이 지었다고 할 수 있다.
馬融, 陸績等 竝同此說하니 今依而用之하노라
마융馬融육적陸績 등이 모두 이 에 찬동하였는데, 지금 이것을 따라 사용한다.
所以只言三聖하고 不數周公者 以父統子業故也
다만 세 성인聖人을 말하고 주공周公을 넣지 않은 까닭은 아버지가 자식의 사업을 통합하기 때문이다.
案禮稽命徵曰 文王見禮壞樂崩하여 道孤無主 設禮經三百 威儀三千이라하니 其三百, 三千 卽周公所制周官, 儀禮
위서緯書인 《계명징稽命徵》을 살펴보면, “문왕文王예악禮樂이 붕괴됨에 가 고립되어 주장함이 없음을 보았기 때문에 경례經禮 삼백三百위의威儀 삼천三千을 만들었다.” 하였으니, 경례經禮 삼백三百위의威儀 삼천三千은 바로 주공周公이 제정한 《주관周官(周禮)》과 《의례儀禮》이다.
明文王本有此意어시늘 周公述而成之 繫之文王이라
문왕文王이 본래 이러한 뜻을 가지고 계셨는데 주공周公이 전술하여 이룬 것임을 밝혔기 때문에 문왕文王에게 단 것이다.
然則易之爻辭 蓋亦是文王本意 易緯但言文王也
그렇다면 《주역周易》의 효사爻辭문왕文王의 본래 뜻이기 때문에 역위易緯에서 다만 문왕文王이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 약

주역정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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