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不咥人 亨’者, 以六三在兌體, 兌爲和
, 而應乾剛.
雖履其危, 而不見害, 故得亨通, 猶若履虎尾不見咥齧于人.
注
[注]凡彖者는 言乎一卦之所以爲主也니 成卦之體 在六三也라
履虎尾者는 言其危也니 三爲履主하여 以柔履剛하니 履危者也라
履虎尾라도 有不見咥者는 以其說而應乎乾也니 乾은 剛正之德者也라
不以說行夫佞邪하고 而以說應乎乾하니 宜其履虎尾라도 不見咥而亨이라
疏
○正義曰:‘履 柔履剛’者, 言履卦之義, 是柔之履剛, 六三陰爻, 在九二陽爻之上, 故云“柔履剛”也.
‘說而應乎乾 是以履虎尾 不咥人 亨’者, 釋不咥人亨之義,
六三在兌體, 兌爲和說, 應於上九, 上九在乾體, 兌自和說, 應乎乾剛, 以說應剛, 无所見害,
若以和說之行, 而應於陰柔, 則是邪佞之道, 由以說應於剛,
得吉也.
疏
以剛處中, 得其正位, 居九五之尊, 是剛中正, 履帝位也.
‘而不疚光明’者, 能以剛中而居帝位, 不有疚病, 由德之光明故也.
上天下澤이 履이니 君子以辯上下하여 定民志하니라
疏
[疏]正義曰:天尊在上, 澤卑處下, 君子法此履卦之象, 以分辯上下尊卑, 以定正民之志意, 使尊卑有序也.
但此履卦名合二義, 若以爻言之, 則在上履踐於下, 六三履九二也, 若以二卦上下之象言之, 則履禮也, 在下以禮承事於上.
注
[注]處履之初
하여 爲履之始
하니 履道
華
라 故
로 素乃无咎
라
疏
[疏]正義曰:‘獨行願’者, 釋素履之往, 它人尙華, 己獨質素, 則何咎也.
注
[注]履道尙謙
하여 不喜處盈
하고 務在致誠
하니 夫外飾者也
어늘
故로 履道坦坦하여 无險厄也요 在幽而貞하니 宜其吉이라
疏
九二以陽處陰, 履於謙退, 己能謙退, 故履道坦坦
, 无險難也.
‘幽人貞吉’者, 旣无險難, 故在幽隱之人, 守正得吉.
疏
○正義曰:‘履道尙謙’者, 言履踐之道, 貴尙謙退, 然後乃能踐物, 履又爲禮, 故尙謙也.
‘居內履中 隱顯同’者, 履道尙謙, 不喜處盈然, 以陽處陰, 尙於謙德.
居內履中, 以信爲道, 不以居外爲榮, 處內爲屈, 若居在外, 亦能履中謙退, 隱之與顯, 在心齊等, 故曰“隱顯同也.”
‘在幽而貞 宜其吉’者, 以其在內卦之中, 故云“在幽”也, 謙而得中, 是貞正也, 在幽能行此正, 故曰“宜其吉.”
疏
[疏]正義曰:‘中不自亂’者, 釋幽人貞吉, 以其居中, 不以危險而自亂也.
注
[注]居履之時하여 以陽處陽도 猶曰不謙이온 而況以陰居陽하고 以柔乘剛者乎아
故로 以此爲明은 眇目者也요 以此爲行은 跛足者也요 以此履危는 見咥者也라
志在剛健하여 不修所履하고 欲以陵武於人하여 爲于大君하여 行未能免於凶하고 而志存于五하니 頑之甚也라
疏
○正義曰:‘眇能視 跛能履’者, 居履之時, 當須謙退, 今六三以陰居陽, 而又失其位, 以此視物, 猶如眇目, 自爲能視, 不足爲明也, 以此履踐, 猶如跛足, 自爲能履, 不足與之行也.
‘履虎尾 咥人凶’者, 以此履虎尾, 咥齧於人, 所以凶也.
‘武人爲于大君’者, 行此威武, 加陵於人, 欲自爲於大君, 以六三之微, 欲行九五之志, 頑愚之甚.
眇能視는 不足以有明也요 跛能履는 不足以與行也라 咥人之凶은 位不當也요 武人爲于大君은 志剛也라
疏
○正義曰:‘不足以有明’者, 釋眇能視物, 目旣隆眇, 假使能視, 无多明也.
‘不足以與行’者, 解跛能履, 足旣蹇跛, 假使能履, 行不能遠,
‘位不當’者, 釋咥人之凶, 所以被咥見凶者, 緣居位不當, 爲以陰處陽也.
‘志剛’者, 釋武人爲于大君, 所以陵武加人, 欲爲大君, 以其志意剛猛, 以陰而處陽, 是志意剛也.
注
然以陽居陰하고 以謙爲本하니 雖處危懼나 終獲其志라
疏
[疏]正義曰:‘履虎尾 愬愬’者, 逼近五之尊位, 是履虎尾, 近其危也, 以陽承陽, 處嫌隙之地, 故愬愬危懼也.
‘終吉’者, 以陽居陰, 意能謙退, 故終得其吉也.
疏
[疏]正義曰:‘志行’者, 釋愬愬終吉, 初雖愬愬, 終得其吉, 以謙志得行, 故終吉也.
疏
所以夬履貞厲者, 以其位正當處在九五之位, 不得不決斷其理, 不得不有其貞厲, 以位居此地故也.
注
[注]禍福之祥은 生乎所履니 處履之極하여 履道成矣라
疏
[疏]正義曰:‘視履考祥’者, 祥謂徵祥, 上九處履之極, 履道已成,
上九處履之極, 下應兌說, 高而不危, 是其不墜於履, 而能旋反行之, 履道大成,
疏
[疏]正義曰:‘大有慶’者, 解元吉在上之義, 旣以元吉而在上九, 是大有福慶也.
범의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아서 형통하다.
疏
정의왈正義曰:이괘履卦의 뜻은 육삼六三을 주체로 삼는다.
육삼六三이 음유陰柔로서 구이九二의 강함을 밟고 있어서 위태로움을 밟고 있는 자이니, 마치 범의 꼬리를 밟는 것과 같아서 위태로움의 심함이 된다.
[不咥人 亨]육삼六三이 태兌의 체體에 있으니, 태兌는 화설和說함이 되어서 건乾의 강剛에 응한다.
비록 위태로움을 밟고 있으나 상해傷害를 당하지 않으므로 형통함을 얻는 것이니, 마치 범의 꼬리를 밟으나 사람을 물지 않는 것과 같다.
이는 물건의 상象을 빌려서 사람의 일을 비유한 것이다.
“이履는 유柔가 강剛을 밟고 있는 것이니, 기뻐하면서 건乾에게 응한다.
이 때문에 범의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아서 형통한 것이다.
注
모든 단彖은 한 괘卦의 주체가 된 이유를 말한 것이니, 성괘成卦의 주체가 육삼六三에 있다.
범의 꼬리를 밟음은 그 위태로움을 말한 것이니, 육삼六三이 이괘履卦의 주체가 되어서 유柔로서 강剛을 밟고 있으니, 위태로움을 밟고 있는 자이다.
범의 꼬리를 밟더라도 물림을 당하지 않는 것은 기뻐하여 건乾에 응하기 때문이니, 건乾은 강정剛正의 덕德을 가진 자이다.
기뻐함으로써 아첨하고 간사한 사람에게 행하지 않고 기뻐함으로써 건乾에 응하니, 범의 꼬리를 밟더라도 물림을 당하지 않아 형통한 것이 당연하다.
疏
○정의왈正義曰:[履 柔履剛]이괘履卦의 뜻이 바로 유柔가 강剛을 밟고 있는 것임을 말한 것이니, 음효陰爻인 육삼六三이 양효陽爻인 구이九二의 위에 있으므로 “유柔가 강剛을 밟고 있다.[柔履剛]”라고 말한 것이다.
‘이履’는 밟음을 이르니, 이는 이괘履卦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說而應乎乾 是以履虎尾 不咥人 亨] ‘사람을 물지 않아서 형통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육삼六三이 태兌의 체體에 있으니 태兌는 화설和說함이 되어서 상구上九에 응하고, 상구上九는 건乾의 체體에 있는데 태兌가 스스로 화설和說하여 건乾의 강剛에 응하니, 기뻐함으로써 강剛에 응하여 상해傷害를 받는 바가 없다.
이 때문에 범의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어 해치지 않아서 형통함을 얻는 것이다.
만약 화설和說의 행실을 가지고 음유陰柔에 응하면 이는 간사하고 아첨하는 방도인데, 기뻐함을 가지고 강剛에 응하기 때문에 길함을 얻은 것이다.
강중정剛中正으로 황제의 지위를 밟아서 하자가 없음은 광명光明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剛中正 履帝位]구오九五를 말한 것이다.
강剛으로서 중中에 처하여 정위正位를 얻었고 구오九五의 높은 지위에 거하였으니, 이것이 ‘강중정剛中正으로 황제의 지위를 밟는 것[剛中正 履帝位]’이다.
[而不疚光明]강중剛中으로서 황제의 지위에 거하여 하자와 병폐가 있지 않음은 덕德이 광명光明하기 때문이다.
이 한 구句는 이괘履卦의 덕의德義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밝혔으니, 경문經文에는 해석한 바가 없다.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못인 것이 이괘履卦이니, 군자君子가 보고서 상하上下를 분변分辯하여 백성의 뜻(마음)을 안정시킨다.”
疏
정의왈正義曰:하늘은 높게 위에 있고 못은 낮게 아래에 있으니, 군자가 이 이괘履卦의 상象을 본받아서 상하上下의 높고 낮음을 분변分辯하여 백성의 의지意志를 안정시켜 그들로 하여금 높고 낮음에 차례가 있게 하는 것이다.
다만 이 이괘履卦는 괘卦의 이름에 두 가지 뜻이 합해 있어서, 만약 효爻를 가지고 말하면 위에 있으면서 아래를 밟는 것이니 육삼六三이 구이九二를 밟는 것이요, 만약 두 괘卦의 상하의 상象을 가지고 말하면 이履는 예禮이니 아래에 있으면서 예禮로써 윗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다.
이 〈상전象傳〉에서 말한 것은 위아래에 있는 두 괘卦가 낮은 이가 높은 이를 받드는 뜻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못인 것이 이괘履卦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다만 《주역周易》은 만 가지 상象을 포함하고 있어서 반복하여 뜻을 취하니, 정하여 한 가지 체體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초구初九는 검소한 행함으로 가면 허물이 없으리라.
注
이履의 처음에 처하여 이履의 시초가 되니, 이履의 도道는 화려함을 싫어하므로 검소하면 마침내 허물이 없는 것이다.
이履에 처하기를 검소함으로써 하면 어디로 간들 따르지 않겠는가.
반드시 홀로 그 소원을 행하므로 남들이 범하지 않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이履의 시초에 처하여 질박함과 검소함을 사용한다.
만약 질박함과 검소함을 사용하지 않으면 허물이 있을 것이다.
“검소한 행함으로 감은 홀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獨行願] ‘검소한 행함으로 감’을 해석한 것이니, 다른 사람은 화려함을 숭상하더라도 자기가 홀로 질박하고 검소하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홀로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하면 남이 범하지 않는 것이다.
구이九二는 이행하는 도道가 평탄하니, 유인幽人은 정貞하여 길할 것이다.
注
이履의 도道는 겸손함을 숭상하여 가득함에 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힘씀이 정성을 다하는 데에 있으니, 밖으로 꾸밈을 싫어하는 자이다.
그런데 구이九二가 양陽으로서 음陰의 자리에 처하였으니, 겸손함을 행하는 것이다.
안에 거하고 가운데를 밟고 있어서 숨음과 드러남이 똑같으니, 이履의 도道의 아름다움이 이에 성함이 된다.
그러므로 이履의 도道가 평탄하여 험함과 곤액이 없는 것이요, 유幽에 있으면서 정貞하니 길함이 마땅하다.
疏
○정의왈正義曰:[履道坦坦] ‘탄탄坦坦’은 평이한 모양이다.
구이九二가 양陽으로서 음陰의 자리에 처하여 겸손함을 이행하니, 자기가 능히 겸손하기 때문에 이履의 도道가 평탄하고 평이해서 험난함이 없는 것이다.
[幽人貞吉] 이미 험난함이 없기 때문에 그윽하고 숨겨진 곳에 있는 사람이 정도正道를 지켜 길함을 얻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履道尙謙] 이행하는 도道는 겸손함을 귀하게 여기고 숭상함을 말한 것이니, 이렇게 한 뒤에야 물건을 밟을 수 있는 것이요, 이履는 또 예禮가 되기 때문에 겸손함을 숭상하는 것이다.
[居內履中 隱顯同]이履의 도道가 겸손함을 숭상하여, 가득한 자리에 처함을 좋아하지 않으니, 양陽으로서 음陰의 자리에 처함은 겸손한 덕德을 숭상하는 것이다.
‘거내리중居內履中’은 신信을 도道로 삼아서 밖에 있는 것을 영화榮華로 삼지 않고 안에 있는 것을 굽힘으로 삼지 않아서, 만약 거처함이 밖에 있더라도 중中을 밟고 겸손하여 숨음과 드러남을 자기 마음속에 똑같이 생각하므로 “숨음과 드러남이 똑같다.[隱顯同]”라고 말한 것이다.
[在幽而貞 宜其吉]내괘內卦의 중中에 있기 때문에 “유幽에 있다.[在幽]”라고 말한 것이요, 겸손하면서 중中을 얻음이 바로 정정貞正한 것이니, 유幽에 있으면서 능히 이 바름을 행하기 때문에 “길함이 마땅하다.[宜其吉]”라고 말한 것이다.
“유인幽人이 정貞하여 길함은 중中에 있어서 스스로 어지럽지 않기 때문이다.”
疏
정의왈正義曰:[中不自亂] ‘유인幽人이 정貞하여 길함[幽人貞吉]’을 해석한 것이니, 중中에 거하였기 때문에 위험으로써 스스로 어지럽지 않은 것이다.
이미 겸손하여 그윽히 거처하면 어찌 위험하여 스스로 어지러운 일이 있겠는가.
육삼六三은 애꾸눈이 잘 본다고 여기며 절름발이가 잘 걷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범의 꼬리를 밟아서 사람을 물어 흉하니, 무인武人이 대군大君이 된 것이다.
注
이履의 때에 거하여 양陽으로서 양陽의 자리에 처하여도 오히려 겸손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하물며 음陰으로서 양陽의 자리에 거하고 유柔로서 강剛을 탄 자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이것을 밝다고 여김은 애꾸눈이고, 이것을 잘 걷는다고 여김은 절름발이이며, 이로써 위태로움을 밟음은 물림을 당하는 자인 것이다.
뜻이 강건함에 있어서 이행하는 바를 닦지 않고 남에게 능멸과 무력을 가하여 대군大君이 되려고 해서 행실이 흉함을 면치 못하고 뜻이 구오九五에 있으니, 이는 완악함이 심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眇能視 跛能履]이履의 때에 거하여 모름지기 겸손해야 하는데, 지금 육삼六三이 음陰으로서 양陽의 자리에 거하여 또 정위正位를 잃었으니, 이러한 방도로써 물건을 보면 마치 애꾸눈이 스스로 잘 본다고 여기지만 밝음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고, 이러한 방도로써 걸어가면 마치 절름발이가 스스로 잘 간다고 여기지만 그와 함께 갈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履虎尾 咥人凶] 이러한 방도로써 범의 꼬리를 밟으면 사람을 무니, 이 때문에 흉한 것이다.
[武人爲于大君] 이 위엄과 무력을 행하여 남에게 능멸을 가해서 스스로 대군大君(帝王)이 되고자 하는 것이니, 육삼六三의 미천함으로서 구오九五의 뜻을 행하고자 하면 이는 완악하고 어리석음이 심한 것이다.
“애꾸눈이 잘 본다고 여김은 밝음이 되지 못하고, 절름발이가 잘 걷는다고 여김은 함께 갈 수 없는 것이요, 사람을 물어 흉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요, 무인武人이 대군大君이 됨은 뜻이 강한 것이다.”
疏
경經의 [象曰眇能視]에서 [武人爲于大君志剛也]까지
○정의왈正義曰:[不足以有明] ‘애꾸눈이 물건을 잘 본다고 여김’을 해석한 것이니, 눈이 이미 애꾸가 되었으면 가령 잘 보더라도 많이 밝지 못한 것이다.
[不足以與行] ‘절름발이가 잘 걷는다고 여김’을 해석한 것이니, 발을 이미 절면 가령 잘 가더라도 감이 멀리 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함께 갈 수 없는 것이다.[不足以與行]”라고 말한 것이다.
[位不當] ‘사람을 물어 흉함’을 해석한 것이니, 물려서 흉함을 당한 까닭은 거한 자리가 마땅하지 않아서 음陰으로서 양陽의 자리에 처하였기 때문이다.
[志剛] ‘무인武人이 대군大君이 됨’을 해석한 것이니, 능멸과 무력을 남에게 가하여 대군이 되고자 하는 것은 그 뜻이 강하고 사납기 때문이니, 음陰으로서 양陽의 자리에 처함은 바로 뜻이 강한 것이다.
구사九四는 범의 꼬리를 밟은 것이니, 조심하고 조심하면 끝내 길하리라.
注
지존至尊의 자리에 매우 가깝고 양陽으로서 양陽을 받들고 있어서 두려움이 많은 자리에 처하였다.
그러므로 “범의 꼬리를 밟으니 조심하고 조심한다.” 한 것이다.
그러나 양陽으로서 음陰의 자리에 처하고 겸손함을 근본으로 삼아서 비록 위태롭고 두려운 자리에 처하였으나 끝내 그 뜻을 얻는다.
疏
정의왈正義曰:[履虎尾 愬愬]구오九五의 존위尊位에 매우 가까우니, 이는 범의 꼬리를 밟아서 그 위태로움에 가까운 것이요, 양陽(九四)으로서 양陽(九五)을 받들어서 혐의스러운 자리에 처하였으므로 조심하고 조심하여 위태롭게 여기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終吉]양陽(九)으로서 음陰의 자리(四)에 거하여 마음이 겸손하기 때문에 끝내 그 길함을 얻는 것이다.
“조심하고 조심하면 끝내 길함은 뜻이 행해지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志行] ‘조심하고 조심하면 끝내 길함’을 해석한 것이니, 처음에는 비록 조심하고 조심하나 끝내 그 길함을 얻는 까닭은 겸손한 뜻이 행해질 수 있기 때문에 끝내 길한 것이다.
구오九五는 결단하여 이행하니, 바르더라도 위태롭다.
注
정위正位를 얻고 높은 지위에 처하여 강剛으로써 바름을 결단한다.
그러므로 “쾌하게 이행하니 바르더라도 위태롭다.”고 말한 것이다.
이履의 도道는 가득한 것을 싫어하는데 구오九五가 존위尊位에 처하였으니, 이 때문에 위태로운 것이다.
疏
정위正位를 얻고 높은 지위에 처하여 강剛으로써 바름을 결단하여 이행하는 도道가 바름을 행한다.
그러므로 ‘결단하여 이행하는[夬履]’ 것이다.
이행하는 도道는 가득한 것을 싫어하는데, 구오九五가 양陽으로서 존위尊位에 거하였기 때문에 위태로운 것이다.
“‘결단하여 이행하니 바르더라도 위태로움’은 자리가 바로 그 지위에 당했기 때문이다.”
疏
정의왈正義曰:[位正當] ‘결단하여 이행하니 바르더라도 위태로움’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결단하여 이행해서 바르더라도 위태로운 까닭은 그 지위가 바로 구오九五의 지위에 처해 있어서 그 이치를 결단하지 않을 수 없고 ‘바르더라도 위태로움’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니, 이는 지위가 이러한 자리에 거하였기 때문이다.
상구上九는 이행하는 것을 살펴보아 상서로움을 상고하는 것이니, 돌아오면 크게 길하리라.
注
화禍‧복福의 징상徵祥(징조)이 이행하는 바에서 생겨나니, 이履의 극極에 처하여 이履의 도道가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행하는 바를 살펴보아 징상徵祥을 상고할 수 있는 것이다.
이履의 극極에 거하여 화열和悅함에 응하므로 높아도 위태롭지 않으니, 이것이 ‘돌아오는 것’이다.
이履의 도道가 크게 이루어졌으므로 ‘크게 길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視履考祥] ‘상祥’은 상서祥瑞을 이르니, 상구上九가 이履의 극極에 처하여 이행하는 도道가 이미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행하는 바의 행실의 선악善惡과 득실得失을 살펴보아 그 화禍‧복福의 징상徵祥을 상고하는 것이다.
상구上九가 이履의 극極에 처하고 아래로 태兌의 기뻐함에 응하여 높아도 위태롭지 않으니, 이는 이행함을 실추하지 않아서 능히 돌아와 행하여 이행하는 도道가 크게 이루어진 것이다.
“크게 길함으로 위에 있음은 크게 복경福慶이 있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大有慶] ‘크게 길함으로 위에 있음’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이미 크게 길함으로서 상구上九의 자리에 있으면, 이는 크게 복경福慶이 있는 것이다.
복경福慶이 있기 때문에 위에 있어 크게 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