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周易正義

주역정의(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주역정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國子祭酒上護軍曲阜縣開國子 臣孔穎達 奉勅撰定이라
夫易者 象也 爻者 效也
聖人 有以仰觀俯察하여 象天地而育群品하고 雲行雨施하여 效四時以生萬物하시니 若用之以順이면 則兩儀序而百物和하고 若行之以逆이면而五行亂이라
王者 動必則天地之道하여 不使一物失其性하고 行必協陰陽之宜하여 不使一物受其害
能彌綸宇宙하고 酬酢神明하여 宗社所以无窮이요 風聲所以不朽 非夫道極玄妙 孰能與於此乎
斯乃乾坤之大造 生靈之所益也
其傳易者 則有荀, 劉, 馬, 鄭하니 大體更相祖述이요 非有絶倫이라
唯魏世王輔嗣之注 獨冠古今하니 所以江左諸儒 竝傳其學이요 河北學者 罕能及之
其江南義疏 十有餘家 皆辭尙虛玄하고 義多浮誕이라
原夫易理難窮하여 雖復玄之又玄이나 至於垂範作則하여는 便是有而敎有
斯乃義涉於釋氏 非爲敎於孔門也 旣背其本이요 又違於注
至若復卦云七日來復하여는 竝解云 七日 當爲七月이니 謂陽氣從五月建午而消하여 至十一月建子始復이니
今案 輔嗣注云 陽氣始剝盡이라가 至來復時 凡七日이라하니 則是陽氣剝盡之後 凡經七日始復이라
但陽氣雖建午始消 하니 何得稱七月來復이리오
仲尼之緯分明하고 輔嗣之注若此하고 康成之說 遺跡可尋이라
輔嗣注之於前이어늘 諸儒背之於後하니 考其義理하면 其可通乎
又蠱卦云 先甲三日이요 後甲三日이라한대 輔嗣注云 甲者 創制之令이라하니 又若漢世之時甲令乙令也
輔嗣又云 令洽乃誅
後之三日이라하니라
又巽卦云 先庚三日이요 後庚三日이라한대 輔嗣注云 申命令 謂之庚이라하고 輔嗣又云 甲庚 皆申命之謂也라하니라
諸儒同於鄭氏之說하여 以爲甲者 宣令之日이니 先之三日而用辛也 欲取改新之義 後之三日而用丁也 取其丁寧之義라하니
今旣奉勅刪定하여 考察其事 必以仲尼爲宗이요 義理可詮 先以輔嗣爲本하니 去其華而取其實하여 欲使信而有徵이라
其文簡하고 其理約하니 寡而制衆이요 變而能通이라
仍恐鄙才短見하여 意未周盡이라
謹與朝散大夫行大學博士臣馬嘉運 守大學助敎臣趙乾叶等으로 對共參議하여 詳其可否하고 至十六年하여 又奉勅하여 與前修疏人及給事郞守四門博士上騎都尉臣蘇德融等으로 對勅使趙弘智하여 覆更詳審하여 爲之正義하니 凡十有四卷이라
庶望上裨聖道하고 下益將來
序其大略하여 附之卷首爾로라


국자좨주상호군곡부현개국자國子祭酒上護軍曲阜縣開國子 공영달孔穎達칙령勅令을 받들어 찬정撰定하다.
이고 (나타냄)이다.
성인聖人천문天文을 우러러 관찰하고 지리地理를 굽어 살펴서 천지天地를 형상하여 여러 물건을 기르고, 구름이 흘러가고 비가 내리듯 하여 사시四時를 본받아 만물을 낳으시니, 만약 이것을 순히 따르면 양의兩儀가 차례대로 운행하여 온갖 물건이 하고, 만약 거슬러 행하면 육위六位가 기울고 오행五行이 혼란해진다.
그러므로 왕자王者는 동할 적에 반드시 천지天地를 본받아서 한 물건이라도 본성을 잃지 않게 하고, 행할 적에 반드시 음양陰陽의 마땅함에 화합하게 하여 한 물건이라도 폐해를 받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우주宇宙미륜彌綸(두루 다스림)하고 신명神明수작酬酌할 수 있어서, 종묘와 사직이 이 때문에 무궁하고 풍교風敎가 이 때문에 없어지지 않는 것이니, 가 지극히 현묘한 자가 아니면 누가 여기에 능히 참여하겠는가.
이것은 바로 건곤乾坤의 큰 조화요 백성의 유익한 바이다.
용마龍馬황하黃河에서 나옴에 팔괘八卦가 그 을 펴고, 기린麒麟이 늪에서 부상을 당함에 십익十翼이 그 을 드러내서, 사업은 범인凡人성인聖人이 모두 이용하고 때는 삼고三古를 지났다.
나라에 이르러 금경金鏡(밝은 )을 잃었으나 사문斯文이 실추되지는 않았고, 나라가 주낭珠囊을 다스려서 유아儒雅(儒學)를 중흥시켰다.
주역周易》을 전한 자로는 서도西都에는 정관丁寬, 맹희孟喜, 경방京房, 전왕손田王孫이 있었고, 동도東都에는 순상荀爽, 유표劉表, 마융馬融, 정현鄭玄이 있었으니, 대체로 번갈아 서로 조술祖述한 것이요, 뛰어난 자는 없었다.
오직 나라 왕보사王輔嗣(王弼)의 는 유독 고금古今에 으뜸이니, 이 때문에 강좌江左(江東)의 여러 학자들이 모두 그의 학문을 전하였고, 하북河北 지방의 학자 중에 그에게 미칠 수 있는 자가 적었던 것이다.
강남江南 지방에서 만든 의소義疏는 10여 가 있는데, 모두 내용은 현허玄虛를 숭상하고 뜻은 부탄浮誕한 것이 많다.
근원을 따져보면, 《주역周易》의 이치는 다 알기가 어려워서 비록 현묘玄妙하고 또 현묘玄妙하나, 규범을 남기고 법칙을 만듦에 이르러서는 바로 를 가지고 를 가르친 것이다.
내공內空외공外空에 머무름을 논한 것과 에 나아간 로 말하면, 바로 뜻이 석씨釋氏(佛敎)와 관련된 것이요 공문孔門(儒學)에서 가르친 것이 아니니, 이미 근본을 위배한 것이며 와도 어긋난다.
복괘復卦에 “칠일래복七日來復”이라고 한 것에 있어서는 모두 해석하기를 “칠일七日은 마땅히 칠월七月이 되어야 하니, 양기陽氣건오월建午月인 5로부터 사라져서 건자월建子月인 11에 이르러 처음 회복되는 것이다.
지나간 것이 일곱 지지地支이기 때문에 칠월七月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제 살펴보건대 왕보사王輔嗣에는 “양기陽氣가 처음 깎여[剝] 다하였다가 와서 회복하는 때[復]까지가 모두 칠일七日이다.” 하였으니, 이는 양기陽氣가 깎여 다한 뒤에 무릇 칠일七日을 지나 처음으로 회복된 것이다.
다만 양기陽氣가 비록 건오월建午月에 처음 사라지나 건술월建戌月에 이르러도 양기陽氣가 아직 남아 있으니, 어떻게 칠월七月에 와서 회복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정강성鄭康成(鄭玄)은 역위易緯을 인용하여 “건술월建戌月양기陽氣가 이미 다하였고 건해월建亥月순음純陰용사用事하며 건자월建子月에 이르러 양기陽氣가 처음 생겨나니, 이 순음純陰(十月의 곤괘坤卦)와 떨어져 있는데 는 6 7을 주관하므로 그 성수成數를 들어 말하여 ‘칠일래복七日來復’이라 한 것이다.” 하였다.
중니仲尼위서緯書에 분명히 밝혔고 왕보사王輔嗣가 이와 같으며 정강성鄭康成에서는 남은 자취를 찾을 수 있다.
왕보사王輔嗣가 앞에서 를 냈는데 여러 학자들이 뒤에서 이를 위배하니, 그 의리義理를 고찰해보면 어찌 통할 수 있겠는가.
고괘蠱卦 괘사卦辭에 “선갑삼일先甲三日이요 후갑삼일後甲三日이다.” 하였는데, 왕보사王輔嗣에 “은 처음으로 만든 명령이다.” 하였으니, 또 나라 때의 갑령甲令, 을령乙令과 같다.
왕보사王輔嗣는 또 말하기를 “명령이 충분히 젖어들어야 처벌할 수 있다.
그러므로 3일 뒤에 한 것이다.” 하였다.
손괘巽卦 구오九五 효사爻辭에 “선경삼일先庚三日이요 후경삼일後庚三日이다.” 하였는데, 왕보사王輔嗣에 “거듭 명령함을 이라 이른다.” 하였고, 왕보사王輔嗣가 또 말하기를 “은 모두 거듭 명령하는 것을 이른다.” 하였다.
그런데 여러 학자들은 정강성鄭康成의 설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말하기를 “은 명령을 선포하는 날이니, 3일 전에 을 쓰는 것은 개신改新의 뜻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요, 3일 뒤에 을 쓰는 것은 정녕丁寧의 뜻을 취한 것이다.” 하였다.
왕씨王氏를 낸 뜻은 본래 이와 같지 않은데, 또 그 를 돌아보지 않고 함부로 이단異端의 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이미 칙명勅命을 받들어 산정刪定하면서, 일을 고찰함은 반드시 중니仲尼종주宗主로 삼고 의리義理를 밝힘은 먼저 왕보사王輔嗣를 근본으로 삼았으니, 이는 화려함을 제거하고 실제를 취해서 진실하여 증거를 갖추고자 해서이다.
문장이 간략하고 이치가 요약되니, 적으면서도 많은 것을 제재制裁하고, 변하여 능히 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나의 재주가 비루하고 식견이 짧아서 뜻을 두루 다하지 못할까 염려되었다.
그리하여 조산대부朝散大夫 행대학박사行大學博士 마가운馬嘉運수대학조교守大學助敎 조건협趙乾叶 등과 마주 대하여 함께 의논해서 가부可否를 자세히 살폈으며, 정관貞觀 16년(642)에 이르러 또다시 칙명勅命을 받들어서 예전에 를 만들었던 사람과 급사랑給事郞 수사문박사守四門博士 상기도위上騎都尉 소덕융蘇德融 등과 함께 칙사勅使조홍지趙弘智를 마주 대하여 다시 자세히 살펴서 《정의正義》를 만드니, 모두 14권이다.
행여라도 위로 성인聖人를 돕고 아래로 장래에 유익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그 대략을 서술하여 책머리에 붙이는 바이다.


역주
역주1 六位傾 : 六位는 여섯 爻의 자리를 말한다. 〈說卦傳〉에 “陰으로 나뉘고 陽으로 나뉘며 柔와 剛을 번갈아 쓰기 때문에 易이 六位에 文章을 이룬 것이다.[分陰分陽 迭用柔剛 故易 六位而成章]” 하였는데, 韓康伯의 注에 “六位는 爻가 처한 자리이다. 二와 四가 陰이 되고 三과 五가 陽이 되므로 ‘陰으로 나뉘고 陽으로 나뉜다.’고 한 것이요, 여섯 爻가 오르고 내려서 柔하기도 하고 剛하기도 하므로 ‘柔와 剛을 번갈아 쓴다.’고 한 것이다.[六位 爻所處之位也 二四爲陰 三五爲陽 故曰分陰分陽 六爻升降 或柔或剛 故曰迭用柔剛也]” 하였다.
역주2 若夫龍出於河 則八卦宣其象 : 伏羲氏는 黃河에서 나온 龍馬의 등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이것을 근거로 八卦를 그었다 하며, 이것을 河圖라 한다. 〈繫辭傳〉에 “河水에서 圖가 나오고 洛水에서 書가 나오자 聖人이 이것을 법받았다.[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라고 보인다.
역주3 麟傷於澤 則十翼彰其用 : 孔子가 十翼을 지은 것을 말한다. ‘麟傷於澤’은 魯 哀公 14년 봄에 서쪽 大野에서 사냥을 하다가 麒麟을 잡은 일을 말하는데, 《春秋左氏傳》에 기록되어 있다. 《史記》에는 “서쪽에서 麒麟을 잡으니, 仲尼가 말씀하기를 ‘내 道가 끝났다.’ 하였다. 그러므로 史官의 기록을 인습하여 《春秋》를 지었다.[西狩獲麟 曰 吾道窮矣 故因史記作春秋]” 하였다. 麒麟이 부상을 당함은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孔子가 十翼 등의 책을 지은 것도 때를 만나지 못하여 정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4 時歷三古 : 三古는 上古, 中古, 下古를 합친 이름으로, 문맥에 따라 가리키는 시대가 조금씩 다르다. 孟康은 “〈繫辭傳〉에 ‘易이 일어남은 中古일 것이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伏羲가 上古가 되고 文王은 中古가 되고 孔子는 下古가 될 것이다.[易之興 其於中古乎 然則伏羲爲上古 文王爲中古 孔子爲下古]” 하였다.
역주5 及秦亡金鏡 : 《太平御覽》에 “《尙書考靈耀》에 이르기를 ‘秦나라가 金鏡을 잃었다.[秦失金鏡]’ 했다.” 하였는데, 宋均의 注에 “金鏡은 밝은 道를 가리킨다.[金鏡 喩明道也]” 하였다.
역주6 漢理珠囊 重興儒雅 : 珠囊은 五星의 궤도로, 漢나라가 天道를 따라 다스려서 儒學을 중흥시켰음을 말한다. 《尙書考靈耀》에 “하늘이 해와 달을 잃어서 珠囊을 잃어버렸다.[天失日月 遺其珠囊]” 하였는데, 鄭玄의 注에 “珠는 五星을 이른다. 囊을 잃었다는 것은 차고 기욺에 궤도를 잃은 것이다.[珠 謂五星也 遺其囊者 盈縮失度也]” 하였다.
역주7 西都……東都 : 西都는 서쪽에 있는 都城이란 뜻으로 長安을 가리키고, 東都는 동쪽에 있는 都城이란 뜻으로 洛陽을 가리킨다. 高祖인 劉邦이 일으킨 前漢은 서쪽인 長安에 도읍하였고, 光武帝 劉秀가 中興한 後漢은 洛陽에 도읍하였다. 이 때문에 前漢을 西漢, 後漢을 東漢이라 하는바, 西都는 西漢을, 東都는 東漢을 가리킨 것이다.
역주8 論住內住外之空 : 內空과 外空은 불교에서 말하는 十八空에 속한 것으로, 內空은 眼, 耳, 鼻, 舌, 身, 意의 六根이 自性이 없고 實體가 아닌 空이라는 것이고, 外空은 六根의 對境인 色, 聲, 香, 味, 觸, 法의 六境이 自性이 없고 實體가 아닌 空이라는 것이다.
역주9 就能就所之說 : 能은 주관이고 所는 객관으로, 불교에서는 空을 깨달으면 能과 所가 함께 泯滅한다고 한다. 儒家에서는 能은 氣, 所는 理로 본다.
역주10 至若復卦云七日來復……云七月 : 復卦의 ‘七日來復’은 일반적으로 12辟卦說에 의거하여 七日을 七月로 해석한다. 이는 七日을 陰氣가 처음 생긴 姤卦䷫(5월)로부터 陽氣가 처음 생긴 復卦䷗(11월)까지의 기간인 7개월을 가리킨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建午月은 北斗星의 자루가 초저녁에 午方을 가리키는 달을 말한 것으로 지금의 음력 5월, 즉 夏至의 姤卦에 해당하는 달이며, 建子月은 北斗星의 자루가 초저녁에 子方을 가리키는 달을 말한 것으로 지금의 음력 11월, 즉 冬至의 復卦에 해당하는 달이다.
역주11 至建戌之月 陽氣猶在 : 建戌月은 음력 9월로, 剝卦䷖에 해당하는 달이다. 上位의 한 爻가 아직 陽爻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2 鄭康成引易緯之說……而云七日來復 : 建戌月은 음력 9월(剝卦에 해당), 建亥月은 음력 10월(坤卦에 해당), 建子月은 음력 11월(復卦에 해당)이다. 鄭玄은 ‘七日來復’을 陽氣가 모두 없어졌다가 처음 다시 생긴 시기까지의 사이에 坤卦 한 卦가 있는데, 한 卦가 6日 7分을 점유하므로 成數를 들어 七日이라고 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한 卦가 6日 7分을 점유한다고 하는 것은 易緯의 說로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 卦의 氣는 中孚卦로부터 시작되므로 離卦, 坎卦, 震卦, 兌卦가 각각 하나의 正方을 주관한다. 이 네 卦를 뺀 60개의 卦에는 6개의 爻가 있는바, 모두 360爻여서 각각의 爻가 하루씩을 점유한다. 1년에서 360일을 빼면 5와 4분의 1일이 남는데, 하루는 80分으로 나뉘므로 곧 420分이 남는다. 이를 60卦로 나누면 한 卦당 7分을 점유하게 되어 卦마다 총 6日(6爻에 해당) 7分을 점유하게 되는 것이다.
역주13 又蠱卦云……妄作異端 : 孔穎達은 王弼의 注를 따라 蠱卦의 卦辭에 다음과 같이 疏를 냈다.
“甲은 처음 만든 명령이니, 이미 훌륭한 일을 하는 때에 있으므로 옛 명령을 그대로 따를 수 없다. 이제 처음 명령을 만들어서 백성을 다스리니, 백성이 만약 이를 어기더라도 즉시 형벌을 가할 수 없다. 백성들이 새 명령에 익숙하지 않으므로 이 명령을 선포하기 3일 전에 은근(간곡)히 말해주고, 또 이 명령을 선포한 3일 후에 다시 丁寧히 말해주어서 백성들이 따르지 않으면 비로소 형벌하는 것이다.
褚氏, 何氏, 周氏 등은 모두 鄭玄과 똑같이 ‘甲은 새로운 명령을 만드는 날이니, 甲의 3일 전에 하여 改過自新의 뜻을 취하였으므로 辛(新)을 쓰는 것이고, 甲의 3일 뒤에 하여 丁寧의 뜻을 취하였으므로 丁을 쓰는 것이다.’ 하였다.
지금 王輔嗣의 注를 살펴보면 ‘甲은 처음 만든 명령이다.’ 하였고 ‘처음 만든 날이다.’ 하지 않았으며, 또 巽卦 九五의 爻辭에 ‘先庚三日이요 後庚三日이다.’ 하였는데, 王輔嗣의 注에 ‘거듭 명령을 내리는 것을 庚이라고 한다.’ 하였고, 王輔嗣가 또 말하기를 ‘甲과 庚은 모두 거듭 명령을 내림을 말한다.’ 하였으니, 王輔嗣는 甲을 처음 만든 날로 보지 않은 것인데, 여러 학자들이 王輔嗣가 注를 낸 뜻을 돌아보지 않고서 함부로 異端의 說을 만들어내었으니, 잘못이다.[甲者 創制之令 旣在有爲之時 不可因仍舊令 今用創制之令 以治於人 人若犯者 未可卽加刑罰 以民未習 故先此宣令之前三日 殷勤而語之 又如此宣令之後三日 更丁寧而語之 其人不從 乃加刑罰也 其褚氏何氏周氏等竝同鄭義 以爲甲者 造作新令之日 甲前三日 取改過自新 故用辛也 甲後三日 取丁寧之義 故用丁也 今案輔嗣注 甲者 創制之令 不云創制之日 又巽卦九五 先庚三日 後庚三日 輔嗣注 申命令 謂之庚 輔嗣又云 甲庚皆申命之謂 則輔嗣不以甲爲創制之日 而諸儒不顧輔嗣注旨 妄作異端 非也]”
天干에 있어 丁은 甲으로부터 뒤로 세 번째이고 辛은 甲으로부터 거슬러 세 번째이며, 辛은 改新의 뜻이고 丁은 丁寧의 뜻이 있다 하여 鄭玄 등이 주장한 것이다.
한편 程伊川은 “制作과 政敎의 따위를 甲이라고 한다.” 하여 王弼과 상통하며, 朱子는 鄭玄의 說을 따랐다.

주역정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