渙은 亨하니 王假有廟하며 利涉大川하고 利貞하니라
疏
[疏]正義曰:‘渙 亨’者, 渙, 卦名也.
然則渙者, 散釋之名.
雜卦曰“渙, 離也.” 此又渙是離散之號也. 蓋渙之爲義, 小人遭難, 離散奔迸而逃避也,
大德之人, 能於此時建功立德, 散難釋險. 故謂之爲渙, 能釋險難, 所以爲亨, 故曰“渙, 亨.”
‘利涉大川’者, 德洽神人, 可濟大難, 故曰“利涉大川.”
‘利貞’者, 大難旣散, 宜以正道而柔集之, 故曰“利貞.”
彖曰 渙亨은 剛來而不窮하고 柔得位乎外而上同일새라
注
[注]二以剛來居內하여 而不窮於險하고 四以柔得位乎外하여 而與上同이라
內剛而无險困之難하고 外順而无違逆之乖라 是以로 亨하니 利涉大川하고 利貞也라
疏
‘剛來而不窮 柔得位乎外而上同’者, 此就九二剛德居險, 六四得位從上, 釋所以能散釋險難而致亨通, 乃至利涉大川ㆍ利貞等也.
二以剛德來居險中, 而不窮於險, 四以柔順得位於外, 而上與五同. 內剛无險困之難, 外柔无違逆之乖,
所以得散釋險難而通亨, 建立宗廟而祭亨, 利涉大川而克濟, 利以正道而鳩民也.
疏
○正義曰:‘凡剛得暢而无忌回之累’者, 此還言九二居險不窮, 是剛得暢遂, 剛旣得暢, 无復畏忌回邪之累也.
‘柔履正而同志乎剛’者, 此還言六四得位履正, 同志乎五也. 剛德不暢, 柔不同剛, 何由得亨通而濟難, 利貞而不邪乎.
故言“則皆亨, 利涉大川, 利貞也.” 注於此言皆者, 凡有二意.
下別言“王假有廟, 王乃在中, 利涉大川, 乘木有功”, 恐剛來之言, 惟釋亨德, 不通在下.
二則先儒有以剛來不窮釋亨德, 柔得位乎外釋利貞, 故言皆以通之. 明剛柔皆釋亨以下至于利貞也.
疏
[疏]正義曰:此重明渙時可以有廟之義. 險難未夷, 方勞
,
注
[注]乘木은 卽涉難也라 木者는 專所以涉川也니 涉難而常用渙道면 必有功也라
疏
○正義曰:重明用渙可以濟難之事. 乘木涉川, 必不沈溺, 以渙濟難, 必有成功, 故曰“乘木有功”也.
象曰 風行水上이 渙이니 先王以享于帝하고 立廟하니라
疏
[疏]正義曰:‘風行水上 渙’者, 風行水上, 激動波濤, 散釋之象, 故曰“風行水上, 渙.”
‘先王以享于帝 立廟’者, 先王以渙然无難之時, 享于上帝, 以告太平, 建立宗廟, 以祭祖考, 故曰“先王以享于帝, 立廟”也.
注
[注]渙은 散也라 處散之初하여 乖散未甚이라 故로 可以遊行하여 得其志而違於難也요
不在危劇而後에 乃逃竄이라 故로 曰 用拯馬壯하면 吉이라하니라
注
[注]觀難而行하여 不與險爭이라 故로 曰 順也라
注
[注]机는 承物者也니 謂初也라 二俱无應하여 與初相得이어늘 而初得散道하니 離散而奔에 得其所安이라 故로 悔亡也라
疏
[疏]正義曰:‘渙奔其机’者, 机, 承物者也, 初承於二, 謂初爲机.
‘悔亡’者, 初得散道而二往歸之, 得其所安, 故悔亡也.
机(几)
疏
[疏]正義曰:‘得願’者, 違難奔散, 願得所安, 奔初獲安, 是得其願也.
注
[注]渙之爲義는 內險而外安者也라 散躬志外하여 不固所守하고 與剛合志라 故로 得无悔也라
疏
[疏]正義曰:‘渙其躬 无悔’者, 渙之爲義, 內險外安, 六三內不比二, 而外應上九,
疏
[疏]正義曰:‘志在外’者, 釋六三所以能渙其躬者, 正爲身在於內, 而應在上九, 是志意在外也.
六四는 渙其群이라 元吉이나 渙에 有丘匪夷하여 所思로다
注
[注]踰乎險難하고 得位體巽하여 與五合志하여 內掌機密하고 外宣化命者也라 故로 能散群之險하여 以光其道라
然이나 處於卑順하여 不可自專이요 而爲散之任하여 猶有丘虛匪夷之慮하니 雖得元吉이나 所思를 不可忘也라
疏
[疏]正義曰:‘渙其群’者, 六四出在坎上, 已踰於險, 得位體巽,
‘元吉 渙 有丘匪夷 所思’者, 能散群險, 則有大功, 故曰“元吉.” 然處上體之下, 不可自專, 而得位承尊, 憂責復重,
疏
[疏]正義曰:‘光大也’者, 能散群險而獲元吉, 是其道光大也.
注
[注]處尊履正하고 居巽之中하여 散汗大號하여 以盪險阨者也라 爲渙之主하니 唯王居之라야 乃得无咎也라
疏
[疏]正義曰:‘渙汗其大號’者, 人遇險阨, 驚怖而勞, 則汗從體出, 故以汗喩險阨也.
疏
[疏]正義曰:‘正位’者, 釋王居无咎之義, 以九五是王之正位, 若非王居之, 則有咎矣.
注
[注]逖은 遠也니 最遠於害하여 不近侵害하니 散其憂傷하여 遠出者也라 散患於遠害之地면 誰將咎之哉리오
疏
[疏]正義曰:‘渙其血 去逖出’者, 血, 傷也. 逖, 遠也. 上九處於卦上, 最遠於險, 不近侵害,
疏
[疏]正義曰:‘遠害’者, 釋渙其血也, 是居遠害之地故也.
渙은 형통하니, 왕이 사당을 둠에 이르며 大川을 건넘이 이롭고 貞함이 이롭다.
疏
正義曰:[渙 亨] ‘渙’은 卦의 이름이다. 〈序卦傳〉에 “기뻐한 뒤에 흩어진다. 그러므로 ‘渙’으로써 받았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渙’은 해산하고 풀어짐[散釋]의 이름이요,
〈雜卦傳〉에 “渙은 떠남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또 渙은 離散의 이름인 것이다. 渙卦의 뜻은, 小人이 難을 만나면 離散하여 달아나 도피하는 것이요,
큰 德이 있는 사람은 능히 이러한 때에 功을 세우고 德을 세워서 어려움을 해산하고 險함을 푸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일러 ‘渙’이라 하니, 능히 험난함을 풀어냄은 형통함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渙은 형통하다.”라고 한 것이다.
[王假有廟] 왕이 능히 難을 풀어내어 형통하면 宗廟를 건립함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왕이 사당을 둠에 이른다.”라고 한 것이다.
[利涉大川] 德이 神과 사람에게 흡족하면 큰 難을 구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大川을 건넘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利貞] 큰 어려움이 이미 흩어지면 마땅히 正道로써 부드럽게 하여 모아야 한다. 그러므로 “貞함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彖傳〉에 말하였다. “‘渙亨’은 剛이 와서 곤궁하지 않고 柔가 밖에서 지위를 얻어 위(九五)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注
九二가 剛으로서 와서 안에 거하여 험함에 곤궁하지 않고, 六四가 柔로서 밖에서 지위를 얻어 위(九五)와 함께한다.
안이 剛하나 험함에 곤궁한 어려움이 없고, 밖이 순하여 어기고 거스르는 괴리가 없다. 이 때문에 형통하니, 大川을 건넘이 이롭고 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무릇 剛이 通暢함을 얻어 두려워하고 간사한 累가 없고 柔가 바름을 밟아 剛과 뜻을 함께하면 모두 형통하니, 大川을 건넘이 이롭고 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疏
○正義曰:[渙 亨] 經文을 거듭하여 卦의 이름과 德을 간략히 거론한 것이다.
[剛來而不窮 柔得位乎外而上同] 이는 九二가 剛德으로 험함에 거하고 六四가 지위를 얻고 위를 따름을 가지고 ‘능히 험난함을 해산하고 풀어 형통함을 이루어서 마침내 大川을 건넘이 이로움과 貞함이 이로움 등에 이름’을 해석한 것이다.
九二가 剛德으로 와서 험한 가운데 거하였으나 험함에 곤궁하지 않고, 六四가 柔順함으로 밖에서 지위를 얻어 위로 九五와 함께한다. 안은 강하여 험함에 곤궁한 어려움이 없고 밖은 유순하여 어기고 거스르는 괴리가 없다.
이 때문에 ‘험난함을 해산하고 풀어서 형통하니, 宗廟를 건립하여 祭亨(祭享)을 하고, 大川을 건너 능히 구제함이 이로우며, 正道를 가지고 백성을 모음이 이로움’을 얻는 것이다.
疏
○正義曰:[凡剛得暢而无忌回之累] 이는 또한 ‘九二가 險에 거하였으나 곤궁하지 않음은 剛이 通暢하게 이룸을 얻음’을 말한 것이니, 剛이 이미 通暢함을 얻으면 다시 두려워하고 간사한 累가 없는 것이다.
[柔履正而同志乎剛] 이는 또한 ‘六四가 지위를 얻고 바름을 밟고 있어서 九五와 뜻이 같음’을 말한 것이다. 剛한 德이 通暢하지 못하고 柔가 剛과 함께하지 않으면 어떻게 亨通하여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으며 貞함이 이로워 간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注에〉 “모두[皆] 형통하니, 大川을 건넘이 이롭고 貞함이 이롭다.”라고 말한 것이다. 注에 여기에서 ‘皆’를 말한 것은 무릇 두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彖傳〉에 ‘渙’과 ‘亨’ 두 글자를 거듭 말하였으니, 이는 ‘剛來而不窮 柔得位乎外而上同’을 가지고 이를 해석한 것이요,
아래에 별도로 “王이 사당을 둠에 이름은 왕이 中에 있기 때문이요, 大川을 건넘이 이로움은 나무를 타서 功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으니, ‘剛來’란 말이 오직 ‘亨’의 德만을 해석한 것이어서 아래에 있는 말에는 통하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두 번째는, 先儒 중에 ‘剛來不窮’으로 ‘亨’의 德을 해석하고 ‘柔得位乎外’로 ‘利貞’을 해석한 자가 있었다. 그러므로 ‘皆’라고 말하여 둘을 통하게 한 것이다. ‘剛來不窮’과 ‘柔得位乎外’가 ‘亨’에서 ‘利貞’까지를 모두 해석하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왕이 사당을 둠에 이름’은 왕이 中에 있기 때문이요,
注
왕이 마침내 渙散하는 가운데에 있다. 그러므로 사당을 둠에 이른 것이다.
疏
正義曰:이는 渙의 때에 사당을 둘 수 있는 義를 거듭 밝힌 것이다. 험난함이 아직 평정되지 못했으면 막 經略하는 수고로움이 있는데, 지금 渙散하는 가운데에 있으므로 사당을 둠에 이르는 것이다.
‘大川을 건넘이 이로움’은 나무를 타서 功이 있는 것이다.”
注
‘나무를 탐’은 바로 어려움을 건너는 것이다. 나무는 오로지 냇물을 건너는 것이니, 어려움을 건널 때에 항상 渙散하는 道를 사용하면 반드시 功이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渙散을 사용하여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는 일을 거듭 밝힌 것이다. 나무를 타고 냇물을 건너면 반드시 침몰하지 않고, 渙散으로 어려움을 구제하면 반드시 성공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나무를 타서 功이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先儒들은 모두 이 卦가 坎卦(水)가 아래에 있고 巽卦(木)가 위에 있다 하여 “물 위에서 나무를 타고 냇물을 건너는 象이기 때문에 ‘나무를 타서 功이 있는 것이다.’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王輔嗣(王弼)는 象을 사용하지 않고 다만 비유하는 뜻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을 말하여 서술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바람이 물 위로 다님이 渙卦이니, 先王이 보고서 上帝에게 제향하고 사당을 세운다.”
疏
正義曰:[風行水上 渙] 바람이 물 위로 다님은 파도를 激動하여 물이 흩어지는 象이다. 그러므로 “바람이 물 위로 다님이 渙卦이다.”라고 한 것이다.
[先王以享于帝 立廟] 先王이 渙散하여 어려움이 없는 때에 上帝에게 제향하여 太平을 고하고, 宗廟를 건립하여 祖考에게 제향한다. 그러므로 “先王이 보고서 上帝에게 제향하고 사당을 세운다.”라고 한 것이다.
初六은 구원하는 말을 사용하되 건장하면 吉하리라.
注
‘渙’은 해산함이다. 해산하는 처음에 처해서 괴리하여 해산함이 심하지 않다. 그러므로 멀리 떠나가서 그 뜻을 얻어 험난함을 피할 수 있는 것이요,
위험이 지극해진 뒤에 비로소 도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구원하는 말을 사용하되 건장하면 吉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初六이 해산하는 처음에 처해서 괴리하여 해산함이 심하지 않으니, 말을 사용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건장한 말을 얻으면 吉하다. 그러므로 “구원하는 말을 사용하되 건장하면 길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初六의 吉함은 순하기 때문이다.”
注
어려움을 보고 떠나가서 험함과 다투지 않는다. 그러므로 “순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어려움을 보고 떠나가서 험함과 다투지 않는다. 그러므로 “순하다.”라고 한 것이다.
九二는 흩어져 달아남에 그 机(几)를 얻으니, 뉘우침이 없어지리라.
注
‘机’는 물건을 받드는 것이니, 初六을 이른다. 〈初六과 九二〉 두 爻가 모두 應이 없어서 〈九二가〉 初六과 뜻이 서로 맞는데 初六이 흩어지는 道를 얻으니, 離散하여 달아남에 그 편안한 바를 얻었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없어진 것이다.
疏
正義曰:[渙奔其机] ‘机’는 물건을 받드는 것이니, 初六이 九二를 받들므로 初六을 일러 ‘机’라 한 것이다.
〈初六과 九二〉 두 爻가 모두 應이 없어서 〈九二가〉 初六과 뜻이 서로 맞는데 初六이 難을 멀리하는 道를 얻으니, 지금 九二가 흩어져 달아나 初六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흩어져 달아남에 그 机을 얻는다.”라고 한 것이다.
[悔亡] 初六이 흩어지는 道를 얻었는데 九二가 初六에게 돌아가면 그 편안한 바를 얻는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없어진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흩어져 달아남에 그 机를 얻음’은 所願을 얻은 것이다.”
疏
正義曰:[得願] 難을 피하여 달아나 흩어져서 편안한 곳을 얻기를 원하니, 初六으로 달아나 편안함을 얻으면 이는 소원을 얻은 것이다.
注
渙의 뜻은 안이 險하고 밖이 편안한 것이다. 몸을 흩고 뜻이 밖에 있어서 지키는 바를 견고히 하지 않고 剛(上九)과 뜻이 합한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渙其躬 无悔] 渙의 뜻은 안이 험하고 밖이 편안한 것이다. 六三이 안으로 九二와 친하지 않고 밖으로 上九에 應하니,
이는 지키는 바를 견고히 하지 아니하여 능히 자기 몸을 흩는 것이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몸을 흩으니, 뉘우침이 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몸을 흩음’은 뜻이 밖에 있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志在外] ‘六三이 능히 그 몸을 흩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몸이 안에 있으나 應이 上九에게 있기 때문임’을 해석한 것이니, 이는 뜻이 밖에 있는 것이다.
六四는 여러 사람의 험난함을 해산한다. 크게 吉하나, 渙에 언덕이 평탄하지 못한 우려가 있어서 생각(우려)하는 바로다.
注
險難함을 넘었고 正位를 얻고 體가 공손하여 九五와 뜻이 합해서 안으로 機密을 관장하고 밖으로 교화의 명령을 베푸는 자이다. 그러므로 능히 여러 사람의 험함을 해산하여 그 道를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낮고 순한 자리에 처하여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고 해산하는 임무를 맡아서 오히려 언덕이 평탄하지 못한 우려가 있으니, 비록 크게 吉함을 얻으나 〈우려하는〉 생각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疏
正義曰:[渙其群] 六四가 나가 坎의 위에 있어서 이미 험난함을 넘었고, 正位를 얻고 體가 공손하다.
그리하여 九五와 뜻이 합해서 안으로 機密을 관장하고 밖으로 교화의 명령을 베푸는 자이다. 능히 여러 사람을 위하여 그 험함과 해로움을 해산한다. 그러므로 “여러 험난함을 해산한다.”라고 한 것이다.
[元吉 渙 有丘匪夷 所思] 능히 여러 험함을 해산하면 큰 功이 있다. 그러므로 “크게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上體의 아래에 처하여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正位를 얻고 높은 사람을 받들어서 근심과 책임이 다시 중하니,
비록 크게 吉함을 얻었으나 오히려 어려움을 해산하는 가운데에 언덕이 평탄하지 못한 우려가 있어서 그 생각하는 바가 됨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渙에 언덕이 평탄하지 못한 우려가 있어서 생각하는 바로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여러 사람의 험난함을 해산하여 크게 吉함’은 光大한 것이다.”
疏
正義曰:[光大也] 능히 여러 사람의 험난함을 해산하여 크게 吉함을 얻으니, 이는 그 道가 光大한 것이다.
九五는 어려움을 해산함에 크게 호령함이니, 渙에 王이 거하여야 허물이 없으리라.
注
尊位에 처하고 正位을 밟으며 巽의 가운데에 있어서 어려움을 해산함에 크게 호령하여 험난함을 소탕하는 자이다. 渙의 주체가 되었으니, 오직 王이 이 자리에 있어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渙汗其大號] 사람이 험난함을 만나서 놀라 수고로우면 땀이 몸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땀으로 험난함을 비유하였고,
九五가 尊位에 처하고 正位를 밟으며 호령하는 가운데에 있으니, 능히 호령을 행하여 험난함을 해산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해산함에 크게 호령한다.”라고 한 것이다.
[渙 王居 无咎] 渙의 주체가 되었으니 명칭과 지위를 남에게 빌려주어서는 안 되고 오직 王이 이 자리에 있어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渙에 王이 거하여야 허물이 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王이 거하여야 허물이 없음’은 바른 자리이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正位] ‘王이 거하여야 허물이 없음’의 뜻을 해석하였으니, 九五는 바로 王의 바른 자리이니, 만약 왕이 아닌 자가 이 자리에 있으면 허물이 있을 것이다.
上九는 피를 해산하여 떠나가 멀리 나가니, 허물하는 이가 없다.
注
‘逖’은 멂이니, 해로움과 가장 멀어서 侵害를 가까이하지 않으니, 그 근심과 서글픔을 해산하여 멀리 나가는 자이다. 害를 멀리한 자리에서 환란을 해산하면 누가 장차 허물하겠는가.
疏
正義曰:[渙其血 去逖出] ‘血’은 상함이다. ‘逖’은 멂이다. 上九가 卦의 위에 처하여 험함과 가장 멀어서 侵害를 가까이하지 않으니,
이는 능히 그 근심과 서글픔을 해산하여 떠나가서 멀리 나가는 자이다. 그러므로 “피를 해산하여 떠나가 멀리 나간다.”라고 한 것이다.
[无咎] 害를 멀리한 자리에서 환란을 해산하면 누가 장차 허물하겠는가. 그러므로 “허물하는 이가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피를 해산함’은 해로움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遠害] ‘피를 해산함’을 해석한 것이니, 이는 해로움을 멀리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