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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3)

주역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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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困은 형통하니,
[注]困必通也 處窮而不能自通者 小人也
困하면 반드시 형통하니, 곤궁함에 처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는 자는 小人이다.
[疏]正義曰:‘困’者, 窮厄委頓之名, 道窮力竭, 不能自濟, 故名爲困.
正義曰:[困] 窮厄과 쓰러짐[委頓]의 이름이니, 道가 궁하고 힘이 다하여 스스로 구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卦의 이름을 ‘困’이라 한 것이다.
‘亨’者, 卦德也. 君子遇之, 則不改其操, 君子處困而不失其自通之道, 故曰“困, 亨”也.
[亨] 卦의 德이다. 小人이 곤궁함을 만나면 窮하여 넘치고, 君子가 이것을 만나면 자기 지조를 바꾸지 않으니, 君子가 곤궁함에 처하여 스스로 형통하는 道를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困은 형통하다.”라고 한 것이다.
하고 大人이라야하고 无咎하니
貞하고 大人이라야 吉하고 허물이 없으니,
[注]處困而得无咎吉이면 乃免也
곤궁함에 처하여 허물이 없고 吉함을 얻으면 마침내 곤궁함을 면하는 것이다.
[疏]正義曰:處困而能自通, 必是履正體大之人, 能濟於困, 然後得吉而无咎, 故曰“貞, 大人吉, 无咎”也.
正義曰:곤궁함에 처하여 스스로 형통하면 반드시 正道를 행하고 큰 것을 體行하는 사람이니, 능히 곤궁함을 구제한 뒤에야 吉하고 허물이 없음을 얻는다. 그러므로 “貞하고 大人이라야 吉하고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有言이면 不信이리라
말이 있으면 믿지 않으리라.
[疏]正義曰:處困求濟, 在於正身修德, 若巧言能辭, 人所不信, 則其道彌窮, 故誡之以有言不信也.
正義曰:곤궁함에 처하여 구제되기를 구함은 몸을 바루고 德을 닦음에 달려 있는데, 만약 공교로운 말로 말을 잘하면 이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바이니, 그 道가 더욱 곤궁하다. 그러므로 “말이 있으면 믿지 않으리라.”라고 경계한 것이다.
彖曰 困 剛揜也
〈彖傳〉에 말하였다. “困은 剛이 〈柔에게〉 가려진 것이니,
[注]剛揜於柔也
剛이 柔에게 가림을 당한 것이다.
[疏]正義曰:此就二體, 以釋卦名,
正義曰:이는 두 體를 가지고 卦의 이름을 해석한 것이다. 兌는 陰卦로 柔가 되고 坎은 陽卦로 剛이 되는데 坎이 兌의 아래에 있으니, 이는 剛이 柔에게 가림을 당한 것이다.
剛應升進, 今被柔揜, 施之於人, 其猶君子爲小人所蔽, 以爲困窮矣.
剛은 응당 위로 나아가야 하나 지금 柔에게 가림을 당하였으니, 이것을 사람에게 베풀면 君子가 小人에게 가림을 당하여 곤궁한 것과 같은 것이다.
險以說하여 困而不失其所亨이니
험하여도 기뻐하여 곤궁하나 형통한 바를 잃지 않으니,
[注]處險而不改其說하여 困而不失其所亨也
험함에 처하여도 그 기뻐함을 바꾸지 않아서 곤궁하나 그 형통한 바를 잃지 않는 것이다.
[疏]正義曰:此又就二體名, 訓以釋亨德也. 坎險而兌說,
正義曰:이는 또 두 體의 이름을 가지고 訓하여 亨의 德을 해석한 것이다. 坎은 險하고 兌는 기뻐하니,
所以困而能亨者, 良由君子遇困, 安其所遇, 雖居險困之世, 不失暢說之心, 故曰“險以說, 困而不失其所亨”也.
困하여도 능히 형통할 수 있는 까닭은 진실로 君子가 困을 만나면 그 만난 바를 편안히 여겨서 비록 험하고 곤궁한 세상에 살더라도 和暢하여 기뻐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험하여도 기뻐하여 곤궁하나 형통한 바를 잃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其唯君子乎인저하고 大人吉 以剛中也일새요
오직 君子일 것이다. ‘貞하고 大人이어야 吉함’은 剛하고 中하기 때문이요,
[注]處困而用剛하여 不失其中 履正而能體大者也
곤궁함에 처하여도 剛함을 써서 그 中을 잃지 않음은 正道를 행하고 능히 큰 것을 體行하는 자이니,
能正而不能大博이면 未能困者也 曰 貞하고 大人吉也라하니라
바르게 할 수 있어도 크고 넓게 하지 못하면 곤궁함을 구제하지 못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貞하고 大人이어야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正義曰:‘其唯君子乎’者, 結歎處困能通, 非小人之事, 唯君子能然也.
正義曰:[其唯君子乎] ‘곤궁함에 처하여 능히 형통하니, 小人의 일이 아니고 오직 君子만이 능히 그러하다.’고 종결하여 감탄한 것이다.
‘貞 大人吉 以剛中’者, 此就二ㆍ五之爻, 釋貞大人之義. 剛則正直, 所以爲貞, 中而不偏, 所以能大,
[貞 大人吉 以剛中] 이는 九二와 九五의 爻를 가지고 ‘貞大人’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剛하여 正直함은 貞을 하는 것이요, 中하여 편벽되지 않음은 크게 할 수 있는 것이니,
若正而不大, 未能濟困, 處困能濟, 濟乃得吉而无咎也, 故曰“貞, 大人吉, 以剛中也.”
만약 바르기만 하고 크지 못하면 곤궁함을 구제하지 못하고, 곤궁함에 처하여 능히 구제하면 구제함에 마침내 吉하고 허물이 없음을 얻는다. 그러므로 “‘貞하고 大人이어야 吉함’은 剛하고 中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다.
有言不信 尙口乃窮也
‘말이 있으면 믿지 않음’은 말을 숭상하여 마침내 곤궁한 것이다.”
[注]處困而言이면 不見信之時也 非行言之時어늘 而欲用言以免이면 必窮者也 其吉 在於貞大人하니 口何爲乎
곤궁에 처하여 말하면 신임을 받지 못하는 때이니, 말을 행할 때가 아닌데 말을 사용하여 곤궁함을 면하고자 하면 반드시 곤궁한 자이다. 그 吉함이 ‘貞하고 大人임’에 있으니, 입을 어찌 놀릴 것이 있겠는가.
[疏]正義曰:處困求通, 在於修德, 非用言以免困, 徒尙口說, 更致困窮, 故曰“尙口乃窮也.”
正義曰:곤궁에 처하여 형통함을 구함은 德을 닦음에 있고 말을 사용하여 곤궁함을 면하는 것이 아니니, 입으로 말하는 것을 숭상할 뿐이면 더욱 곤궁함을 부른다. 그러므로 “말을 숭상하여 마침내 곤궁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澤无水 困이니 君子以致命遂志하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못에 물이 없는 것이 困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목숨을 바치고 뜻을 이룬다.”
[注]澤无水 則水在澤下 水在澤下 困之象也 處困而屈其志者 小人也 君子固窮하니 道可忘乎
못에 물이 없으면 물이 못 아래에 있으니, 물이 못 아래에 있음은 곤궁한 象이다. 곤궁함에 처하여 그 뜻을 굽히는 자는 小人이다. 君子는 곤궁함을 굳게 지키니, 道를 잊을 수 있겠는가.
[疏]正義曰:‘澤无水 困’者, 謂水在澤下, 則澤上枯槁, 萬物皆困, 故曰“澤无水困”也.
正義曰:[澤无水 困] 물이 못 아래에 있으면 못 위가 말라서 만물이 모두 곤궁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못에 물이 없는 것이 困卦이다.”라 한 것이다.
‘君子以致命遂志’者, 君子之人, 守道而死, 雖遭困厄之世, 期於致命喪身,
[君子以致命遂志] 君子인 사람은 道를 지키다가 죽어서 비록 困厄의 세상을 만나더라도 목숨을 바치고 몸을 잃을 것을 기약하여
반드시 그 높은 뜻을 이루어서 굽히거나 흔들려 뜻을 바꾸고 고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목숨을 바치고 뜻을 이룬다.”라고 한 것이다.
初六 臀困于株木이라 入于幽谷하여 三歲不覿이로다
初六은 볼기짝이 나무 그루터기에 곤궁하다. 그윽한 골짜기로 들어가서 3년 동안 만나보지 못하도다.
[注]最處底下하여 沈滯卑困하여 居无所安이라 曰 臀困于株木也라하니라
〈初六이〉 가장 아래에 처하여 沈滯하고 낮고 곤궁하여 거처함에 편안한 곳이 없다. 그러므로 “볼기짝이 나무 그루터기에 곤궁하다.”라고 한 것이다.
欲之其應인댄 二隔其路하여 居則困于株木하고 進不獲拯하니 必隱遯者也 曰 入于幽谷也라하니라
그 應으로 가고자 하면 九二가 그 길을 가로막아서, 가만히 있으면 나무 그루터기에 곤궁하고 나아가면 구원을 얻지 못하니, 반드시 은둔할 자이다. 그러므로 “그윽한 골짜기로 들어간다.”라고 한 것이다.
困之爲道 不過數歲者也 以困而藏이라가 困解乃出이라 曰 三歲不覿也라하니라
困卦의 道는 몇 년을 지나지 않으니, 곤궁하기 때문에 은둔하였다가 곤궁함이 풀리면 비로소 나온다. 그러므로 “3년 동안 만나보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疏]‘初六臀困于株’至‘三歲不覿’
經의 [初六臀困于株]에서 [三歲不覿]까지
○正義曰:‘臀困于株木’者, 初六處困之時, 以陰爻最居窮下, 沈滯卑困, 居不獲安, 若臀之困于株木, 故曰“臀困於株木”也.
○正義曰:[臀困于株木] 初六이 困의 때에 처하여 陰爻로서 가장 아래에 거해서 沈滯하고 낮고 곤궁하여 거처함에 편안함을 얻지 못하니, 마치 볼기짝이 나무 그루터기에 곤궁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볼기짝이 나무 그루터기에 곤궁하다.”라고 한 것이다.
[入于幽谷] 應이 九四에 있으나 九二가 가로막아서, 가만히 있으면 그루터기에 곤궁하고 나아가면 구원을 얻지 못하니, 형세가 반드시 은둔할 자이다. 그러므로 “그윽한 골짜기로 들어간다.”라고 한 것이다.
[三歲不覿] 困의 道는 몇 년을 지나지 아니하여 곤궁함에서 마침내 벗어난다. 그러므로 “3년 동안 만나보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入于幽谷 幽不明也
〈象傳〉에 말하였다. “‘入于幽谷(그윽한 골짜기로 들어감)’에서, 幽는 밝지 못한 것이다.”
[注]言幽者 不明之辭也 入于不明 以自藏也
‘幽’라는 말은 밝지 못하다는 말이니, 밝지 못함으로 들어감은 스스로 감추기 때문이다.
[疏]正義曰:‘幽不明’者, 象辭惟釋幽字, 言幽者, 正是不明之辭,
正義曰:[幽不明] 〈象傳〉은 오직 ‘幽’자를 해석하였으니, ‘幽’라는 말은 바로 밝지 못하다는 말인바,
所以入不明, 以自藏而避困也. 釋株者, 謂之株也.
밝지 못함으로 들어간 이유는 스스로 감추어 곤궁함을 피하기 때문이다. ‘株’를 해석한다면, 杌木(그루터기 나무)을 株라고 한다.
九二 困于酒食하고 朱紱方來 利用享祀하니 征凶하여 无咎리라
九二는 술과 밥에 곤궁하고 朱紱(붉은 蔽膝)이 바야흐로 온다. 제사를 올림이 이로우니, 가면 흉하여 허물할 데가 없으리라.
[注]以陽居陰하니 尙謙者也 居困之時하여 處得其中하니 體夫剛質하여 而用中履謙하고 應不在一하여 心无所私하니 盛莫先焉이라
陽으로서 陰의 자리에 처하니 겸손함을 숭상하는 자이고, 곤궁할 때에 거하여 처함이 中을 얻었으니, 剛한 質을 體行하여 中을 쓰고 겸손함을 이행하며 應이 한곳에만 있지 않아서 마음에 사사로운 바가 없으니, 盛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夫謙以待物이면 物之所歸 剛以處險이면 難之所濟 履中則不失其宜하고 无應則心无私恃하니
겸손함으로써 물건(사람을 포함)을 대하면 물건이 歸依하는 바요, 剛으로써 險함에 처하면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다. 中을 밟으면 그 마땅함을 잃지 않고, 應이 없으면 마음에 사사로이 믿음이 없으니,
以斯處困이면 物莫不至하여 不勝豐衍이라 故曰 困于酒食라하니 美之至矣
이로써 곤궁함에 처하면 물건이 이르지 않음이 없어서 풍부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술과 밥에 곤궁하다.”라고 한 것이니, 아름다움이 지극한 것이다.
坎은 北方의 卦이고, 朱紱은 南方의 물건이다. 곤궁에 처하기를 이로써 하면 이는 다른 지방의 물건을 불러올 수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朱紱이 바야흐로 온다.”라고 한 것이다.
豐衍盈盛故 利用享祀 盈而又進 傾之道也 以此而征이면 凶誰咎乎 曰 征凶无咎라하니라
蔽膝(1)蔽膝(1)
蔽膝(2)蔽膝(2)
풍부하여 가득하고 성하기 때문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 이로운 것이다. 가득한데 또 나아감은 기울어지는 방도이니, 이로써 가면 흉함을 누구에게 허물하겠는가. 그러므로 “가면 흉하여 허물할 데가 없다.”라 한 것이다.
[疏]‘九二困于酒食’至‘无咎’
經의 [九二困于酒食]에서 [无咎]까지
○正義曰:‘困于酒食’者, 九二體剛居陰, 處中无應. 體剛則健, 能濟險也, 居陰則謙, 物所歸也,
○正義曰:[困于酒食] 九二는 體가 剛하고 陰의 자리에 거하며 中에 처하고 應이 없다. 體가 剛하면 굳세니 능히 험함을 구제할 수 있고, 陰의 자리에 거하면 겸손하니 물건(사람)이 歸依하는 바이며,
中에 처하면 그 마땅함을 잃지 않고, 應이 없으면 마음에 사사로운 黨이 없다. 곤궁함에 처하기를 이로써 하면 물건이 이르지 않음이 없어서 풍부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술과 밥에 곤궁하다.”라고 한 것이다.
[朱紱方來 利用享祀] ‘紱’은 祭服이다. 坎은 北方의 卦이고, ‘紱’은 南方의 물건이다. 곤궁에 처하여 겸손함을 사용하면 이는 다른 지방의 물건을 불러올 수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朱紱이 바야흐로 온다.”라고 한 것이다.
擧異方者, 明物无不至, 酒食豐盈, 異方歸向, 祭則受福, 故曰“利用享祀.”
다른 지방을 든 것은 물건이 이르지 않음이 없음을 밝힌 것이니, 술과 밥이 풍부하여 가득하고 다른 지방의 물건들이 歸依하여, 제사하면 복을 받는다. 그러므로 “제사를 올림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征凶 无咎] 가득한데 또 나아감은 기울고 패하는 방도이니, 이로써 가면 반드시 흉하다. 그러므로 “가면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스스로 나아가 흉함을 불러서 원망하고 허물할 데가 없다. 그러므로 “허물할 데가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困于酒食 中有慶也
〈象傳〉에 말하였다. “‘술과 밥에 곤궁함’은 中德으로 福慶이 있는 것이다.”
正義曰:[中有慶] 九二가 中德을 물건에게 입혀서 물건이 의뢰하는 바가 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福慶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六三 困于石이라 據于蒺藜 入于其宮하야도 不見其妻하여하니라
六三은 돌에 곤궁하다. 蒺藜를 점거하니,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만나보지 못하여 흉하다.
[注]石之爲物 堅而不納者也 謂四也 三以陰居陽하여 志武者也 四自納初하여 不受己者 二非所據 剛非所乘이라
蒺藜蒺藜
돌이란 물건은 단단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니, 九四를 이른다. 六三은 陰으로서 陽의 자리에 거하여 뜻이 강한 자이다. 九四는 본래 初六을 받아들여서 자기(六三)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이고, 九二는 〈六三이〉 점거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剛은 〈柔가〉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上比困石하고 下據蒺藜하여 无應而入이니 焉得配偶리오 在困處斯 凶其宜也
위로 가까이하면 돌에 곤궁하고, 아래는 蒺藜를 점거하여 應이 없이 들어가니 어찌 配偶를 얻겠는가. 곤궁함에 있으면서 이러한 방식으로 처하면 흉함이 당연하다.
[疏]‘六三困于石’至‘不見其妻凶’
經의 [六三困于石]에서 [不見其妻凶]까지
○正義曰:‘困于石 據于蒺藜’者, 石之爲物, 堅剛而不可入也. 蒺藜之草, 有剌而不可踐也.
○正義曰:[困于石 據于蒺藜] 돌이란 물건은 단단하고 剛하여 들어갈 수가 없고, 蒺藜란 풀은 가시가 있어서 밟을 수가 없다.
六三以陰居陽, 志懷剛武, 己又无應, 欲上附於四, 四自納於初, 不受己者也, 故曰“困于石”也.
六三이 陰爻로서 陽의 자리에 거하여 뜻이 剛武함을 품고, 자기가 또 應이 없어서 위로 九四에게 붙고자 하나 九四는 본래 初六을 받아들여서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이다. 그러므로 “돌에 곤궁하다.”라고 한 것이다.
下欲比二, 二又剛陽, 非己所據, 故曰“據于蒺藜”也.
아래로 九二와 가까이하고자 하나 九二가 또 剛陽이어서 자기가 점거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蒺藜를 점거한다.”라고 한 것이다.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者, 无應而入, 難得配偶, 譬於入宮, 不見其妻,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應이 없이 들어가면 配偶를 얻기 어려우니, 비유하면 집에 들어감에 그 아내를 만나보지 못하는 것이다.
處困以斯, 凶其宜也, 故曰“入于其宮, 不見其妻, 凶”也.
곤궁에 처하기를 이로써 하면 흉함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만나보지 못하여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據于蒺藜 乘剛也 入于其宮이라도 不見其妻 不祥也
〈象傳〉에 말하였다. “‘蒺藜를 점거함’은 剛을 탄 것이요,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만나보지 못함’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다.”
[疏]正義曰:‘乘剛’者, 明二爲蒺藜也. ‘不祥也’者, 祥, 善也吉也, 不吉, 必有凶也.
正義曰:[乘剛] 九二가 蒺藜가 됨을 밝힌 것이다. [不祥也] ‘祥’은 善이요 吉함이니, 길하지 못하면 반드시 흉함이 있는 것이다.
九四 來徐徐 困于金車하나 有終이리라
九四는 오기를 서서히 함은 金車에 곤궁한 것이니, 부끄러우나 끝(有終의 美)이 있으리라.
[注]金車 謂二也 二剛以載者也 謂之金車 徐徐者 疑懼之辭也
‘金車’는 九二를 이르니, 九二는 剛하여 싣는 자이다. 그러므로 ‘金車’라 한 것이다. ‘徐徐’는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말이다.
志在於初而隔於二하고 履不當位하여 威令不行이라 棄之則不能이요 欲往則畏二 曰 來徐徐 困于金車也라하니라
뜻이 初六에 있으나 九二에게 막히고, 밟은 것이 자리에 합당하지 못하여 위엄과 명령이 행해지지 못한다. 初六을 버리려고 하나 하지 못하고 가고자 하면 九二를 두려워하므로 “오기를 서서히 함은 金車에 곤궁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有應而不能濟之 曰 吝也이나 以陽居陰하여 履謙之道하고 量力而處하여 不與二爭하니 雖不當位 物終與之 曰 有終也라하니라
應이 있으나 능히 자기를 구제해주지 못하므로 “부끄럽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陽爻로서 陰의 자리에 거하여 겸손한 道를 이행하고 힘을 헤아려 대처해서 九二와 다투지 않으니, 비록 자리에 합당하지 않으나 사람들이 끝내 함께한다. 그러므로 “끝이 있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疏]‘九四來徐徐’至‘有終’
經의 [九四來徐徐]에서 [有終]까지
○正義曰:何氏(何妥)가 말하기를 “九二는 剛德이 우세하기 때문에 ‘金車’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徐徐’者, 疑懼之辭. 九四有應於初而礙於九, 故曰“困于金車.”
[徐徐]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말이다. 九四가 初六에 應이 있으나 九二에게 막혔다. 그러므로 “金車에 곤궁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欲棄之, 惜其配偶, 疑懼而行不敢疾速, 故來徐徐也.
버리고자 하나 그 配偶를 愛惜히 여겨서 의심하고 두려워하지만 떠나가기를 감히 빨리하고 속히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오기를 서서히 하는 것이다.
有應而不敢往, 可恥可恨, 故曰“吝”也. 以陽居陰, 不失謙道, 爲物之所與, 故曰“有終”也.
應이 있으나 감히 가지 못하면 부끄러울 만하고 한스러울 만하다. 그러므로 “부끄럽다.”라고 한 것이다. 陽爻로서 陰의 자리에 거하여 겸손한 道를 잃지 않아서 사람들이 함께하는 바가 되었다. 그러므로 “끝이 있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來徐徐 志在下也
〈象傳〉에 말하였다. “‘오기를 서서히 함’은 뜻이 아래에 있는 것이니,
[注]下 謂初也
아래는 初六을 이른다.
雖不當位 有與也니라
비록 자리에 합당하지 않으나 함께하는 이가 있는 것이다.”
正義曰:[有與] 자리가 비록 합당하지 않으나 겸손함을 지키기 때문에 물건(사람)이 함께하는 것이다.
九五 劓刖하여 困于赤紱이나 乃徐有說이요 利用祭祀하니라
九五는 코를 베고 발을 베어서 赤紱에 곤궁하나 마침내 서서히 하면 기쁨이 있고 祭祀에 씀이 이롭다.
[注]以陽居陽 任其壯者也 不能以謙致物이면 物則不附
陽으로서 陽의 자리에 있음은 健壯함을 自任하는 자이니, 겸손함으로써 물건(사람)을 오게 하지 못하면 물건이 따르지 않는다.
忿物不附하여 而用其壯猛하여 行其威刑이면 하고 遐邇愈叛하니
물건이 따르지 않는 것을 분하게 여겨서 자기의 건장함과 사나움을 사용하여 위엄과 형벌을 행하면 다른 지방 사람들이 더욱 어긋나고 먼 곳과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 더욱 배반하니,
刑之欲以得 乃益所以失也 曰 劓刖하여 困于赤紱也라하니라
이들을 형벌하여 얻고자 함은 바로 더욱 잃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를 베고 발을 베어서 赤紱에 곤궁하다.”라고 한 것이다.
以謙得之하고 以剛失之로되 體在中直하여 能不遂迷하니 困而徐하여 能用其道者也
九二는 겸손함으로써 얻고 九五는 剛함으로써 잃는데 體가 中直에 있어서 혼미함을 이루지 않을 수 있으니, 곤궁하나 서서히 하여 능히 그 道를 사용하는 자이다.
致物之功 不在於暴이라 故曰 徐也 困而後乃徐徐하면 則有說矣 曰 困于赤紱이나 乃徐有說也라하니라
물건을 오게 하는 功은 급함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서서히 한다.”라고 한 것이니, 곤궁한 뒤에 마침내 서서히 하면 기쁨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赤紱에 곤궁하나 마침내 서서히 하면 기쁨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祭祀 所以受福也 履夫尊位하여 困而能改하여 不遂其迷하니 以斯祭祀 必得福焉이라 曰 利用祭祀也라하니라
祭祀는 福을 받으려는 것이다. 높은 지위를 밟고 있어서 곤궁하면서도 능히 고쳐 혼미함을 이루지 않으니, 이로써 제사하면 반드시 복을 얻는다. 그러므로 “祭祀에 씀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疏]‘九五’至‘利用祭祀’
經의 [九五]에서 [利用祭祀]까지
○正義曰:九五以陽居陽, 用其剛壯, 物不歸己, 見物不歸, 而用威刑, 行其劓刖之事.
○正義曰:九五가 陽으로서 陽의 자리에 있어서 그 剛함과 健壯함을 사용하여 물건(사람)이 자기에게 歸依하지 않으니, 물건이 귀의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위엄과 형벌을 써서 코를 베고 발을 베는 일을 행한다.
이미 위엄과 형벌을 행하면 다른 지방 사람들이 더욱 어긋나고 먼 곳과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 더욱 배반한다. 兌는 西方의 卦이고, 赤紱은 南方의 물건이다. 그러므로 “코를 베고 발을 베어서 赤紱에 곤궁하다.”라고 한 것이다.
此卦九二爲以陽居陰, 用其謙退, 能招異方之物也, 此言九五剛猛, 不能感異方之物也.
이 卦의 九二는 陽으로서 陰의 자리에 있어서 겸손함을 사용하여 다른 지방의 물건을 불러오는데, 여기에서는 九五가 강하고 사나워서 다른 지방의 물건을 감동시키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만약 다만 中正한 德을 사용하여 물건을 불러오되 빠르고 급하게 하지 않고 서서히 하면 물건이 귀의하여 기쁨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침내 서서히 하면 기쁨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居得尊位, 困而能反, 不執其迷, 用其祭祀, 則受福也.
거함이 尊位를 얻어서 곤궁하면서도 능히 돌이켜서 그 혼미함을 고집하지 않으니, 이것을 제사에 사용하면 福을 받는 것이다.
象曰 劓刖 志未得也 乃徐有說 以中直也 利用祭祀 受福也
〈象傳〉에 말하였다. “‘코를 베고 발을 벰’은 뜻을 얻지 못한 것이요, ‘마침내 서서히 하면 기쁨이 있음’은 中直하기 때문이요, ‘祭祀에 씀이 이로움’은 福을 받는 것이다.”
[疏]正義曰:‘志未得也’者, 由物不附己, 己未得, 故曰“志未得也.”
正義曰:[志未得也] 물건이 자기를 따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뜻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뜻을 얻지 못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乃徐有說 以中直也’者, 居中得直, 不貪不暴, 終得其應, 乃寬緩修其道德, 則得喜說, 故云“乃徐有說, 以中直也.”
[乃徐有說 以中直也] 中에 거하고 정직함을 얻어서 貪하지 않고 급하게 하지 않으면 끝내 그 應을 얻을 것이니, 마침내 너그럽고 느슨히 하여 그 道德을 닦으면 기쁨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서히 하면 기쁨이 있음’은 中直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다.
‘利用祭祀 受福’者, 若能不遂迷志, 用其中正, 則異方所歸, 祭則受福, 故曰“利用祭祀, 受福”也.
[利用祭祀 受福] 만약 능히 뜻을 혼미하게 함을 이루지 않고 中正을 사용하면 다른 지방의 사람들이 귀의하니, 제사하면 福을 받는다. 그러므로 “‘祭祀에 씀이 이로움’은 복을 받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上六 困于葛藟하고 于臲卼하니 曰動悔라하여 有悔하면 征吉하리라
上六은 葛藟(칡넝쿨)에 곤궁하고 위태로움에 곤궁하니, “후회할 만한 일을 발동하여야 한다.”라 해서 후회하는 마음이 있게 하면 감에 吉하리라.
[注]居困之極하여 而乘於剛하고 下无其應하여 行則愈繞者也 行則纏繞하여 居不獲安이라 曰 困于葛藟하고 于臲卼也라하니라
困의 極에 거하여 剛을 타고 있고 아래에 應이 없어서 가면 더욱 감기는 자이다. 가면 감겨서 거함에 편안함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葛藟에 곤궁하고 위태로움에 곤궁하다.”라 한 것이다.
下句无困 因於上也 處困之極하여 行无通路하고 居无所安 困之至也
아래 句에 困이 없음은 위의 困자를 이어받은 것이다. 困의 極에 처하여 감에 통하는 길이 없고 거함에 편안한 곳이 없음은 곤궁함이 지극한 것이다.
凡物 窮則思變하고 困則謀通하나니 處至困之地하니 用謀之時也
모든 물건이 궁하면 변할 것을 생각하고, 곤궁하면 통할 것을 도모한다. 지극히 곤궁한 자리에 처하였으니, 謀策(계책)을 사용하는 때이다.
曰者 思謀之辭也 하니 言將何以通至困乎
‘曰’은 모책을 생각하는 말이니, 모책이 행해질 적에 틈이 있으면 얻어지니, “장차 어떻게 하면 지극히 곤궁함을 통하게 할 수 있겠는가?”라 하는 것이니,
曰 動悔라하여 令生有悔하여 以征則濟矣 曰 動悔라하여 有悔하면 征吉也라하니라
“후회할 만한 일을 발동해야 한다.”라 하여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게 해서 가면 구제된다. 그러므로 “‘후회할 만한 일을 발동해야 한다.’라 해서 후회하는 마음이 있게 하면 감에 吉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疏]‘上六困于葛藟’至‘征吉’
經의 [上六困于葛藟]에서 [征吉]까지
○正義曰:葛藟, 引蔓纏繞之草, 臲卼, 動搖不安之辭. 上六處困之極, 極困者也.
○正義曰:‘葛藟’는 길게 뻗어 감는 풀이고, ‘臲卼’은 동요하여 편안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上六이 困의 極에 처하였으니 지극히 곤궁한 자이고,
而乘於剛, 下又无應, 行則纏繞, 不得安, 故曰“困於葛藟於臲卼”也.
剛을 타고 있고 아래에 또 應이 없으니, 가면 감겨서 거처함에 편안함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葛藟에 곤궁하고 위태로움에 곤궁하다.”라고 한 것이다.
應亦言困於臲卼, 困因於上, 省文也. 凡物窮則思變, 困則謀通, 處至困之地, 是用謀策之時也.
응당 ‘困於臲卼’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困자를 위의 글에서 이어받았으니, 글을 생략한 것이다. 모든 사물은 곤궁하면 변할 것을 생각하고 곤궁하면 통할 것을 도모한다. 지극히 곤궁한 자리에 처했으니, 이는 謀策을 사용하는 때이다.
‘曰’者, 思謀之辭也. 謀之所行, 有隙則獲, 言將何以通至困乎.
[曰] 謀策을 생각하는 말이다. 謀策을 행할 적에 틈이 있으면 얻어지니, “장차 어떻게 하면 지극히 곤궁함을 통하겠는가?”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책하기를 “반드시 후회할 만한 일을 발동해야 한다.”라고 하면 후회하는 마음을 생기게 할 줄을 알 것이니, 그런 뒤에 곤궁에 처하여 변통하기를 구해서 가면 길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후회할 만한 일을 발동해야 한다.’라 해서 후회하는 마음이 있게 하면 감에 吉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困于葛藟 未當也일새요
〈象傳〉에 말하였다. “‘葛藟에 곤궁함’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고,
[注]所處未當이라 致此困也
처한 바가 마땅하지 않다. 그러므로 이 곤궁함을 부른 것이다.
[疏]正義曰:‘未當也’者, 處於困極, 而又乘剛, 所處不當, 故致此困也.
正義曰:[未當也] 困의 極에 처하고 또 剛을 타고 있어서 처한 바가 마땅하지 않다. 그러므로 이 곤궁함을 부른 것이다.
動悔有悔 吉行也
‘후회할 만할 일을 발동하여 후회하는 마음을 있게 함’은 감에 吉한 것이다.”
[疏]正義曰:‘吉行’者, 知悔而征, 行必獲吉也.
正義曰:[吉行] 후회할 만한 일이 있을 줄을 알고 가면 감에 반드시 吉함을 얻는다.
역주
역주1 小人遭困 則窮斯濫矣 : ≪論語≫ 〈衛靈公〉에, 孔子가 陳나라에 있을 때 양식이 떨어져 從者들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자, 子路가 노하여 “君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라고 孔子에게 물었는데, 孔子가 “君子는 窮함을 굳게 지키니, 小人은 궁하면 넘친다.[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라고 답한 것이 보인다.
역주2 (則)[見] : 저본에는 ‘則’으로 되어 있으나, 岳本ㆍ宋本ㆍ古本ㆍ足利本에 의거하여 ‘見’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3 兌陰卦爲柔 坎陽卦爲剛 : 卦의 主爻는 홀로 陰이거나 홀로 陽인 爻인데, 이 主爻에 따라 그 卦의 陰과 陽이 결정되는 것인바, 이 때문에 兌卦(☱)는 陰卦가 되고 坎卦(☵)는 陽卦가 되는 것이다. 가족의 상징으로 보면, 兌卦는 少女에 해당하고 坎卦는 中男(次男)에 해당한다.
역주4 坎在兌下 是剛見揜於柔也 : 朱子는 ‘剛이 柔에게 가려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부연하였다. “坎剛이 兌柔에게 가려지고 九二가 두 陰(初六ㆍ六三)에게 가려지고 九四와 九五가 上六에게 가려지니, 이 때문에 困이 된 것이다.[坎剛爲兌柔所揜 九二爲二陰所揜 四五爲上六所揜 所以爲困]”
역주5 (說)[濟] : 저본에는 ‘說’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濟’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6 君子之人……故曰致命遂志也 : ‘致命’을 孔穎達은 ‘목숨을 바침’으로 해석하였는바, 朱子도 이와 같다.
반면 程伊川은 이를 ‘命을 지극히 함’으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君子가 곤궁할 때를 당하여 이미 방비하고 염려하는 道를 다하였는데도 면할 수 없다면 이는 命이니, 마땅히 그 命을 미루어 지극히 해서 뜻을 이루어야 한다. 命의 當然함을 알았다면 窮塞과 禍患에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義를 행할 뿐이니, 만일 命을 알지 못하면 험난함에 두려워하고 곤궁함에 隕穫(氣가 꺾임)하여 지키는 바를 잃을 것이니, 어떻게 善을 하려는 뜻을 이룰 수 있겠는가.[君子當困窮之時 旣盡其防慮之道而不得免 則命也 當推致其命 以遂其志 知命之當然也 則窮塞禍患 不以動其心 行吾義而已 苟不知命 則恐懼於險難 隕穫於窮厄 所守亡矣 安能遂其爲善之志乎]”
역주7 入于幽谷者……故曰入于幽谷也 : ‘入于幽谷’을 王弼과 孔穎達은 ‘은둔’의 뜻으로 해석하였는데, 程伊川은 ‘더욱 깊은 困에 빠져듦’으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그윽한 골짜기로 들어간다는 것은, 陰柔한 사람은 만난 바를 편안히 여길 수 있는 자가 아니니, 이미 곤궁함을 면치 못하면 더욱 혼미하고 어두워 妄動해서 깊은 곤함에 빠져들 것이니, 幽谷은 깊고 어두운 곳이다.[入于幽谷 陰柔之人 非能安其所遇 旣不能免於困 則益迷暗妄動 入於深困 幽谷 深暗之所也]”
역주8 三歲不覿者……故曰三歲不覿也 : ‘三歲不覿’을 王弼과 孔穎達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곤궁함을 벗어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여 긍정적 의미로 보았는바, ‘三歲不覿’을 ‘3년이 지나면 만날 수 있음’의 뜻으로 확대하여 본 것이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이를 부정적 의미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더욱 곤궁한 데로 들어가서 스스로 벗어날 형세가 없으므로 3년 동안 만나보지 못함에 이르니, 끝내 곤궁한 자이다. ‘不覿’은 亨通한 바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方益入於困 无自出之勢 故至於三歲不覿 終困者也 不覿 不遇其所亨也]”
역주9 (初不)[杌木] : 저본에는 ‘初不’로 되어 있으나, 錢本‧宋本에 의거하여 ‘杌木’으로 바로 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0 坎……能招異方者也 : 朱紱은 붉은 蔽膝(무릎 가리개)로 祭祀나 大禮式 등에 무릎을 가리는 물건인데, 후대에는 대부분 官服으로 사용되었다. 五行상 청색은 東方, 적색은 南方, 황색은 中央, 백색은 西方, 흑색은 北方이며, 坎의 방위는 北方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1 困于酒食者……故曰困于酒食也 : ‘困于酒食’를 王弼과 孔穎達은 ‘九二가 겸손하고 사사로움이 없어서 모든 물건이 이르러 오므로 酒食가 매우 풍부함’의 의미로 보았는데, 朱子 역시 “‘困于酒食’는 술과 밥을 실컷 먹어 苦惱하는 뜻이다. 술과 밥은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이나 취하고 배부름이 적당함을 지나면 이는 도리어 곤함을 당하는 것이 된다.[困于酒食 厭飫苦惱之意 酒食 人之所欲 然醉飽過宜 則是反爲所困矣]”라고 하여, 注疏와 같은 의미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은 이를 ‘남에게 은혜를 베풀지 못함’의 뜻으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술과 밥은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이고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九二가 剛中의 재질로 困할 때에 처하였으니, 君子는 만난 바를 편안히 여겨 비록 곤궁하고 험난하나 마음이 동요하는 바가 없어 그 곤궁함을 근심하지 않으니, 곤궁한 것은 오직 하고자 하는 바에 곤궁할 뿐이다. 군자가 하고자 함은 천하의 백성들에게 은택을 내려 천하의 곤함을 구제하는 것이니, 九二가 하고자 함을 이루고 은혜를 베풀지 못하므로 酒食에 곤하다고 한 것이다.[酒食 人所欲而所以施惠也 二以剛中之才而處困之時 君子安其所遇 雖窮厄險難 无所動其心 不恤其爲困也 所困者 唯困於所欲耳 君子之所欲者 澤天下之民 濟天下之困也 二未得遂其欲施其惠 故爲困于酒食也]”
한편 沙溪(金長生)는 ≪本義≫의 해석에 대하여 “‘困于酒食’는 음식의 일을 말한 것이 아니고,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고 은혜를 베풀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本義≫에서 ‘困于酒食’의 의미를 설명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困于酒食 非謂飮食之事 得遂其欲施其惠也 義意困于酒食之說 未襯貼]”라고 평가하였다. ≪沙溪全書 經書辨疑 권15 周易≫
역주12 朱紱方來……故曰朱紱方來也 : ‘朱紱方來’를 王弼과 孔穎達은 ‘다른 지방의 사람들이 九二에게 귀의함’의 의미로 보았는데, 程伊川과 朱子는 ‘九五가 와서 응함’으로 해석하였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九二가 剛中의 德으로 아래에서 困하니, 위에 九五 剛中의 군주가 있어 道가 같고 德이 합하여 반드시 와서 서로 찾을 것이므로 ‘朱紱이 바야흐로 온다.’고 말하였으니, ‘方來’는 바야흐로 오는 것이다. ‘朱紱’은 王者의 衣服으로 蔽膝이니, 걸어오는 것을 뜻으로 삼았기 때문에 蔽膝로 말한 것이다.[二以剛中之德 困於下 上有九五剛中之君 道同德合 必來相求 故云朱紱方來 方來 方且來也 朱紱 王者之服 蔽膝也 以行來爲義 故以蔽膝言之]”
역주13 征凶无咎者……故曰无咎也 : ‘无咎’를 王弼과 孔穎達은 ‘가득한데 또 나아간 것은 스스로 한 일이므로 원망할 데가 없음’의 의미로 보았는데, 程伊川도 “곤궁할 때에 만일 至誠으로 편안히 처하여 天命을 기다리지 않고 가서 구한다면 難을 범하여 흉함을 얻으리니, 이것은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 장차 누구를 허물하겠는가. 때를 헤아리지 않고 가면 바로 제자리를 편안히 여기지 못하는 것이니, 곤궁함에 동요당한다.[方困之時 若不至誠安處以俟命 往而求之 則犯難得凶 乃自取也 將誰咎乎 不度時而征 乃不安其所 爲困所動也]”라 하여 經文을 ‘허물할 데가 없음’으로 해석하였다.
반면 朱子는 “만일 가면 알맞은 때가 아니므로 흉하나 義에 있어서는 허물이 없음이 된다.[若征行則非其時 故凶而於義爲无咎也]”라고 하였다.
역주14 中有慶者……故曰有慶也 : 孔穎達은 ‘有慶’을 九二가 현재 그러한 것으로 보았으나, 程伊川은 이를 剛中의 德을 지킨 뒤에 있을 결과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비록 하고자 하는 바에 곤궁하여 물건(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지는 못하나 剛中의 德을 지키면 반드시 亨通함을 이루어 福慶이 있을 것이다. 비록 때가 亨通하지 못하더라도 中德을 지키면 또한 君子의 道가 亨通한 것이니, 福慶이 있는 것이다.[雖困于所欲 未能施惠於人 然守其剛中之德 必能致亨而有福慶也 雖使時未亨通 守其中德 亦君子之道亨 乃有慶也]”
역주15 何氏云……故曰金車也 : ‘金車’가 九二를 가리킨다고 본 것은 王弼ㆍ孔穎達ㆍ程伊川ㆍ朱子가 모두 같은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견해가 조금씩 다르다. 程伊川은 “金은 剛한 것이요 수레는 물건을 싣는 것이니, 九二가 剛함으로 아래에 있으면서 자기를 싣고 있기 때문에 金車라고 이른 것이다.[金 剛也 車 載物者也 二以剛在下載己 故謂之金車]”라 하였고, 朱子는 “金車가 九二의 象이 됨은 자세하지 않으니, 의심컨대 坎에 수레바퀴의 象이 있는 듯하다.[金車爲九二象 未詳 疑坎有輪象也]”라고 하였다.
역주16 (三)[二] : 저본에는 ‘三’으로 되어 있으나, 注에서 ‘初而隔於二’라 하였고, 阮元의 〈校勘記〉에 “살펴보건대, ‘三’은 ‘二’가 되어야 한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
역주17 有與者……物所與也 : 程伊川은 ‘함께하는 이’를 初六으로 보았는바, 初六이 九四의 正應이므로 끝내는 서로 함께한다고 본 것이다. 爻辭의 ‘有終’ 역시 ‘끝내는 初六과 서로 따름’으로 해석하였다.
역주18 異方愈乖 : 赤紱은 九二 爻辭의 朱紱과 같은 것으로, 적색의 방위는 南方이며, 上體인 兌는 방위가 西方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9 九五以陽居陽……困於赤紱也 : ‘劓刖 困于赤紱’을 王弼과 孔穎達은 ‘九五가 남에게 위엄과 형벌을 쓰므로 다른 지방의 사람들이 九五에게 귀의하지 않음’으로 보았는바, ‘赤紱’을 九二 爻辭의 ‘朱紱’과 같은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劓刖’을 ‘九五가 위와 아래의 陰에게 상해를 당함’으로 해석하고, ‘困于赤紱’을 ‘천하의 사람들이 九五의 군주에게 오지 않음’으로 보았다. ‘赤紱’에 대하여 程伊川은 “赤紱은 신하의 의복이니, 걸어오는 뜻을 취하였으므로 紱로써 말한 것이다.[赤紱 臣下之服 取行來之義 故以紱言]”라고 하였다.
沙溪는 “紱이란 바로 걸어온다는 뜻을 취한 것인데, 오지 않은 까닭에 ‘困于赤紱’이라고 한 것이다.[紱 乃取行來之意 而不來 故曰困于赤紱]”라 하여 程伊川의 해석을 지지하였다. ≪沙溪全書 經書辨疑 권15 周易≫
역주20 若但用其中正之德……故曰乃徐有說也 : ‘乃徐有說’을 王弼과 孔穎達은 ‘九五가 서서히 물건을 불러오면 물건이 歸依하여 기쁨이 있을 것임’의 의미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이를 ‘늦게는 기쁨이 있을 것임’의 뜻으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九五가〉 비록 困에 있으나 剛中의 德이 있고 아래에 九二 剛中의 賢者가 있어 道가 같고 德이 합하니, 서서히 반드시 서로 應하여 와서 함께 천하의 곤함을 구제할 것이니, 이는 처음에는 困하나 늦게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雖在困 而有剛中之德 下有九二剛中之賢 道同德合 徐必相應而來 共濟天下之困 是始困而徐有喜說也]”
역주21 (德)[志] : 저본에는 ‘德’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志’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22 謀之所行 有隙則獲 : 곤궁할 적에 생각이 꽉 막히면 곤궁함을 탈출할 틈(구멍)을 얻지 못하는데, 도모함을 생각하여 탈출할 틈이 있게 되면 탈출할 방법을 터득하게 됨을 말한 것이다.
역주23 (者)[居] : 저본에는 ‘者’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居’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24 謀之所行……征吉 : 程伊川은 ‘曰動悔 有悔’를 ‘동할 때마다 뉘우침이 있을 것이라 하여 뉘우치는 마음을 둠’으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動悔’는 동할 때마다 뉘우침이 있는 것이니, 困하지 않은 바가 없는 것이다. ‘有悔’는 예전의 잘못을 허물하는 것이다. 曰은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만일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동할 때마다 모두 뉘우침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면 마땅히 예전에 하던 바를 바꿀 것이다. 이는 뉘우침이 있는 것이니, 뉘우치면 가서 吉함을 얻을 것이다.[動悔 動輒有悔 无所不困也 有悔 咎前之失也 曰 自謂也 若能曰 如是 動皆得悔 當變前之所爲 有悔也 能悔則往而得吉也]”
반면 朱子는 ‘曰’을 어조사로 보고 ‘困于葛藟 于臲卼 曰動悔’를 象으로, ‘有悔 征吉’을 占으로 나누어 보았는바, ≪本義≫는 다음과 같다. “陰柔로 困의 極에 처했기 때문에 葛藟와 臲卼에 困하여 동함에 뉘우치는 象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물이 窮極에 이르면 변하기 때문에 그 占에 ‘만일 뉘우치는 마음을 두면 가서 吉할 것이다’ 한 것이다.[以陰柔處困極 故有困于葛藟于臲卼曰動悔之象 然物窮則變 故其占曰若能有悔 則可以征而吉矣]”

주역정의(3)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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