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疏]正義曰:‘中孚 豚魚吉’者, 中孚, 卦名也. 信發於中, 謂之中孚.
魚者, 蟲之幽隱. 豚者, 獸之微賤. 人主內有誠信, 則雖微隱之物, 信皆及矣, 莫不得所而獲吉, 故曰“豚魚吉也.”
‘利涉大川 利貞’者, 微隱獲吉, 顯者可知. 旣有誠信, 光被萬物, 萬物得宜,
以斯涉難, 何往不通. 故曰“利涉大川.” 信而不正, 凶邪之道, 故利在貞也.
彖曰 中孚는 柔在內而剛得中하고 說而巽일새 孚니
疏
[疏]正義曰:此就
及上下二體說而以巽, 釋此卦名爲中孚之義也.
柔內剛中, 各當其所, 說而以巽, 乖爭不作, 所以信發於內, 謂之中孚, 故曰“柔在內而剛得中, 說而巽, 孚”也.
注
[注]信立而後에 邦乃化也라 柔在內而剛得中은 各當其所也라
剛得中이면 則直而正하고 柔在內면 則靜而順하며 說而以巽이면 則乖爭不作이니 如此면 則物无巧競하여 敦實之行著하여 而篤信發乎其中矣라
注
[注]魚者는 蟲之隱者也요 豚者는 獸之微賤者也라 爭競之道不興하고 中信之德淳著면 則雖微隱之物이라도 信皆及之라
注
[注]乘木於川舟之虛면 則終已无溺也니 用中孚以涉難은 若乘木舟虛也라
疏
[疏]正義曰:釋此涉川所以得利, 以中信而濟難, 若乘虛舟以涉川也.
疏
[疏]正義曰:釋中孚所以利貞者, 天德剛正而氣序不差, 是正而信也. 今信不失正, 乃得應於天, 是中孚之盛, 故須濟以利貞也.
疏
‘君子以議獄緩死’者, 中信之世, 必非故犯, 過失爲辜, 情在可恕, 故君子以議其過失之獄, 緩捨當死之刑也.
注
[注]虞는 猶專也라 爲信之始하여 而應在四하니 得乎專吉者也라 志未能變하여 繫心於一이라 故로 有它면 不燕也라
疏
[疏]正義曰:‘志未變’者, 所以得專一之吉, 以志未改變, 不更親於他也.
九二
는 在陰
이어늘 其子和之
로다 我有好爵
하여 吾與爾靡之
로다
注
[注]處內而居重陰之下로되 而履不失中하니 不徇於外하여 任其眞者也라
立誠篤至하면 雖在闇昧나 物亦應焉이라 故로 曰 鳴鶴在陰이어늘 其子和之也라하니라
不私權利하고 唯德是與는 誠之至也라 故로 曰 我有好爵하여 與物散之라하니라
疏
[疏]正義曰:‘鳴鶴在陰 其子和之’者, 九二體剛, 處於卦內, 又在三ㆍ四重陰之下, 而履不失中, 是不徇於外, 自任其眞者也.
處於幽昧, 而行不失信, 則聲聞于外, 爲同類之所應焉, 如鶴之鳴於幽遠, 則爲其子所和, 故曰“鳴鶴在陰, 其子和之”也.
‘我有好爵 吾與爾靡之’者,
又无偏應, 是不私權利, 惟德是與.
若我有好爵, 吾願與爾賢者, 分散而共之, 故曰“我有好爵, 吾與爾靡之.”
疏
[疏]正義曰:‘中心願’者, 誠信之人, 願與同類相應, 得誠信而應之, 是中心願也.
注
以陰居陽은 欲進者也니 欲進而閡敵故로 或鼓也요 四履正而承五하니 非己所克故로 或罷也라
不勝而退면 懼見侵陵故로 或泣也요 四履乎順하여 不與物校하여 退而不見害故로 或歌也라 不量其力하고 進退无恒이면 憊를 可知也라
疏
[疏]正義曰:六三與四, 俱是陰爻, 相與爲類. 然三居少陰之上, 四居長陰之下, 各自有應對, 而不相比, 敵之謂也, 故曰“得敵.”
欲進礙四, 恐其害己, 故或鼓而攻之, 而四履正承尊, 非己所勝, 故或罷而退敗也.
疏
[疏]正義曰:‘位不當’者, 所以或鼓或罷, 進退无恒者, 止爲不當其位, 妄進故也.
注
[注]居中孚之時하여 處巽之始하고 應說之初하고 居正履順하여 以承於五하니 內毗元首하고 外宣德化者也라
充乎陰德之盛이라 故로 曰 月幾望이라하니라 馬匹亡者는 棄群類也라
若夫居盛德之位하여 而與物校其競爭이면 則失其所盛矣라 故로 曰 絶類而上하여 履正承尊하여 不與三爭이라야 乃得无咎也라하니라
疏
[疏]正義曰:‘月幾望’者, 六四居中孚之時, 處巽應說, 得位履順, 上承於五, 內毗元首, 外宣德化,
‘馬匹亡 无咎’者, 三與己敵, 進來攻己, 己若與三校戰, 則失其所盛,
疏
[疏]正義曰:‘絶類 上’者, 絶三之類, 不與
爭, 而上承於五也.
注
[注]攣如者는 繫其信之辭也라 處中誠以相交之時하여 居尊位以爲群物之主하니 信何可舍리오 故로 有孚攣如라야 乃得无咎也라
疏
[疏]正義曰:‘有孚攣如 无咎’者, 攣如者, 相牽繫不絶之名也. 五在信時, 處於尊位, 爲群物之主,
繫信不絶, 乃得无咎, 故曰“有孚攣如, 无咎”也.
疏
[疏]正義曰:‘位正當’者, 以其正當尊位, 故戒以繫信, 乃得无咎.
注
[注]翰은 高飛也니 飛音者는 音飛而實不從之謂也라 居卦之上하고 處信之終하니
信終則衰하여 忠篤內喪하고 華美外揚이라 故로 曰 翰音登于天也라하니라 翰音登天이면 正亦滅矣라
疏
[疏]正義曰:翰, 高飛也, 飛音者, 音飛而實不從之謂也. 上九處信之終, 信終則衰也.
信衰則詐起, 而忠篤內喪, 華美外揚, 若鳥
翰音登于天, 虛聲遠聞也, 故曰“翰音登于天.”
疏
[疏]正義曰:‘何可長也’者, 虛聲无實, 何可久長.
中孚는 돼지와 물고기에게도 〈믿음이 미쳐〉 吉하니, 大川을 건넘이 이롭고 貞함이 이롭다.
疏
正義曰:[中孚 豚魚吉] ‘中孚’는 卦의 이름이다. 믿음(誠信)이 中心에서 發함을 ‘中孚’라 이른다.
‘물고기’는 벌레 중에 그윽하고 숨어 있는 것이고, ‘돼지’는 짐승 중에 미천한 것이다. 군주가 안에 誠信이 있으면 비록 미천하고 숨어 있는 물건이라도 믿음이 모두 미쳐서 제자리를 얻어 吉함을 얻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돼지와 물고기에게도 〈믿음이 미쳐〉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利涉大川 利貞] 미천하고 숨어 있는 물건까지도 吉함을 얻으면 드러난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미 誠信이 있어서 광채가 萬物에 입혀져서 만물이 마땅함을 얻었으니,
이로써 어려움을 건너가면 어디로 간들 형통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大川을 건넘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믿으면서 바르지 못함은 흉하고 간사한 道이다. 그러므로 이로움이 貞에 있는 것이다.
〈彖傳〉에 말하였다. “‘中孚’는 柔가 안에 있고 剛이 中을 얻고 기뻐하고 공손하므로 믿으니,
注
위에 네 德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믿는 것이다.
疏
正義曰:이는 ‘六三과 六四가 陰柔로서 함께 두 體의 안에 있고 九二와 九五가 剛德으로 각각 한 卦의 중앙에 있으며 상하의 두 體가 기뻐하고 공손함으로써 함’을 가지고 이 卦의 이름이 ‘中孚’가 된 뜻을 해석한 것이다.
柔가 안에 있고 剛이 中에 있음은 각각 제자리에 마땅한 것이고, 기뻐하고 공손함으로써 하면 괴리와 다툼이 일어나지 않으니, 이 때문에 믿음이 안에 發함을 ‘中孚’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柔가 안에 있고 剛이 中을 얻고 기뻐하고 공손하므로 믿는다.”라고 한 것이다.
注
믿음이 확립된 뒤에 나라가 비로소 교화되는 것이다. 柔가 안에 있고 剛이 中을 얻음은 각각 제자리에 마땅한 것이다.
剛이 中을 얻으면 곧고 바르며 柔가 안에 있으면 고요하고 순하며 기뻐하고 공손함으로써 하면 괴리와 다툼이 일어나지 않으니, 이와 같이 하면 사람들이 공교롭게 경쟁함이 없어서 돈후하고 진실한 행실이 드러나 돈독한 믿음이 마음속에서 발하게 될 것이다.
疏
正義曰:誠信이 안에서 發하면 나라가 밖에서 교화된다. 그러므로 “마침내 나라를 교화시킨다.”라고 한 것이다.
‘돼지와 물고기까지도 吉함’은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에게도 미쳤기 때문이요,
注
‘물고기’는 벌레 중에 숨어 있는 것이고, ‘돼지’는 짐승 중에 미천한 것이다. 경쟁하는 道가 일어나지 않고 마음에 誠信한 德이 淳厚하게 드러나면 비록 미천하고 숨어 있는 물건이라도 믿음이 모두 미치게 된다.
疏
正義曰:吉함을 얻은 이유가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에게도 미쳤기 때문임을 해석한 것이다.
‘大川을 건넘이 이로움’은 나무를 타되 배가 비어 있기 때문이요,
注
나무를 탈 적에 냇물의 배 중에 빈 배를 타면 끝내 빠짐이 없으니, 中孚를 사용하여 어려움을 건넘은 나무를 타되 배가 빈 것과 같은 것이다.
疏
正義曰:이 냇물을 건넘이 이로움을 얻는 까닭은 中心이 誠信함으로써 어려움을 구제하여 마치 빈 배를 타고 냇물을 건너는 것과 같기 때문임을 해석한 것이다.
中孚가 貞함이 이로운 까닭은 마침내 하늘에 應하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中孚가 貞함이 이로운 까닭은 하늘의 德이 剛正하여 기후의 節序가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니, 이는 바르고 믿는 것임’을 해석한 것이다. 지금 믿음이 바름을 잃지 않으면 마침내 하늘에 應하니, 이는 中孚의 盛함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건너서 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못 위에 바람이 있는 것이 中孚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獄事를 의논하고 死刑을 늦춘다.”
注
믿음이 中心에서 發하니, 비록 과실을 범하였으나 亮察(諒察)할 수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澤上有風 中孚] 바람이 못 위를 지나가면 두루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이는 믿음이 물건에 입혀짐에 이르지 않는 바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못 위에 바람이 있는 것이 中孚卦이다.”라고 한 것이다.
[君子以議獄緩死] 中心이 믿는 세상에서는 반드시 고의로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요 과실로 죄를 지은 것이어서 情狀이 용서할 만한 처지에 있다. 그러므로 君子는 과실의 獄事를 의논하고 마땅히 죽여야 하는 형벌을 늦추고 놓아주는 것이다.
初九는 專一한 吉함이니, 다른 것을 구함이 있으면 편안하지 못하리라.
注
‘虞’는 ‘專’과 같다. 信의 시초가 되어 應이 六四에 있으니, 專一한 吉함을 얻은 자이다. 뜻이 변치 않아서 마음이 하나에 매여 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을 구함이 있으면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疏
正義曰:‘虞’는 ‘專’과 같다. ‘燕’은 편안함이다. 初九는 信의 시초가 되고 應이 六四에 있어서 그 專一한 吉함을 얻었다. 그러므로 “전일한 길함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미 마음이 하나에 매여 있으므로 다시 다른 것을 구함이 있으면 그와 서로 함께 편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다른 것을 구함이 있으면 편안하지 못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初九의 전일한 吉함은 뜻이 변치 않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志未變] 專一한 吉함을 얻은 이유는 뜻이 고쳐지고 바뀌지 않아서 다시 다른 사람과 친하지 않기 때문이다.
九二는 우는 鶴이 陰地에 있는데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 내가 좋은 관작을 소유하여 내 너에게 흩어주겠다.
注
안에 처하고 거듭된 陰의 아래에 거하였으나 밟고 있는 것이 中을 잃지 않았으니, 밖을 따르지 아니하여 그 진솔함에 맡기는 자이다.
성실함을 세움이 돈독하고 지극하면 비록 어두운 곳에 있으나 물건(남)들이 또한 應한다. 그러므로 “우는 鶴이 음지에 있는데 그 새끼가 화답한다.”라고 한 것이다.
權利를 사사로이 하지 않고 오직 德이 있는 사람에게 줌은 誠信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 좋은 관작을 소유하여 남(너)에게 흩어주겠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鳴鶴在陰 其子和之] 九二가 體가 剛하면서 卦의 안에 처하고 또 六三과 六四의 거듭된 陰 아래에 있으나 밟고 있는 자리가 中을 잃지 않았으니, 이는 밖을 따르지 아니하여 스스로 그 진솔함에 맡기는 자이다.
어두운 곳에 처하였으나 행실이 믿음을 잃지 않으면 명성이 밖에 알려져서 同類들이 應하는 바가 되니, 鶴이 그윽하고 먼 곳에서 울면 새끼가 화답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는 鶴이 陰地에 있는데 그 새끼가 화답한다.”라고 한 것이다.
[我有好爵 吾與爾靡之] ‘靡’는 흩어줌이다. 〈九二는〉 또 치우친 應이 없으니, 이는 權利를 사사로이 하지 아니하여 오직 德이 있는 이에게 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좋은 벼슬을 소유하였으면 내가 너 賢者들에게 나누어 흩어주어서 함께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내가 좋은 관작을 소유하여 내 너에게 흩어주겠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그 새끼가 화답함’은 中心에 원하는 것이다.”
疏
正義曰:[中心願] 誠信한 사람은 同類와 서로 應하되 誠信함을 얻어 應하기를 원하니, 이는 中心에 원하는 것이다.
六三은 敵을 얻어 혹은 북을 치고 혹은 罷하며, 혹은 울고 혹은 노래를 부르도다.
注
六三은 少陰의 위에 거하고 六四는 長陰의 아래에 거하여 각각 應待(正應)가 있어서 서로 친하지 못하니, 이것을 ‘敵’이라 이른다.
陰으로서 陽의 자리에 거함은 나아가고자 하는 자이니, 나아가고자 하면서 敵을 꺼리므로 혹은 북을 치는 것이요, 六四가 正位를 밟고 九五를 받들고 있으니, 자기가 이길 수 있는 바가 아니므로 혹은 罷하는 것이다.
이기지 못하고 후퇴하면 적에게 침공과 능멸을 당할까 두려우므로 혹은 우는 것이요, 六四가 順을 밟고 있어서 남과 잘잘못을 따지지 아니하여 물러가도 해로움을 받지 않으므로 혹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자기 힘을 헤아리지 않고 나아가고 물러가기를 항상함이 없게 하면 피곤함을 알 수 있다.
疏
正義曰:六三과 六四가 모두 陰爻로서 서로 더불어 同類가 된다. 그러나 六三은 少陰의 위에 거하고 六四는 長陰의 아래에 거하여 각각 저마다의 應對가 있어서 서로 친하지 못하니, 이것을 ‘敵’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敵을 얻는다.”라고 한 것이다.
나아가고자 하면 六四에게 막혀서 자기를 해칠까 두려우므로 혹은 북을 쳐 공격하나, 六四가 正位를 밟고 尊位을 받들어서 자기가 이길 수 있는 바가 아니므로 혹은 罷하고 후퇴하여 패하는 것이다.
이기지 못하고 물러가면 적에게 침공과 능멸을 당할까 두려우므로 혹 눈물을 흘려 근심하고 슬퍼하는 것이요, 六四가 順을 밟고 있어서 남과 잘잘못을 따지지 아니하여 후퇴하여도 해로움을 받지 않으므로 혹은 노래하여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은 북을 치고 혹은 罷하며 혹은 울고 혹은 노래를 부른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혹은 북을 치고 혹은 罷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位不當] 혹은 북을 치고 혹은 罷하여 나아가고 물러감이 항상함이 없는 까닭은 다만 자리에 마땅하지 못하여 망령되이 나아가기 때문이다.
六四는 달이 거의 보름이 되었으니, 말이 짝을 잃어야 허물이 없으리라.
注
中孚의 때에 거하여 巽의 시초(六四)에 처하고 기뻐하는(兌) 처음(初九)에 應하며 正位에 거하고 順함을 밟으면서 九五를 받드니, 안으로는 元首를 돕고 밖으로는 德化를 베푸는 자이다.
陰德의 盛함이 충만하므로 “달이 거의 보름이 되었다.”라고 한 것이다. ‘馬匹亡’은 여러 동류를 버리는 것이다.
만약 盛한 德의 지위에 거하여 남과 경쟁을 다투면 그 盛한 바를 잃는다. 그러므로 “무리를 끊고 올라가서 正位를 밟고 尊位를 받들어 六三과 다투지 않아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疏
正義曰:[月幾望] 六四가 中孚의 때에 거하여 巽에 처하고 기뻐함에 應하며 正位를 얻고 順을 밟고 있어서 위로 九五를 받들어 안으로는 元首를 돕고 밖으로는 德化를 베푸니,
陰德의 盛함이 충만하여 마치 달이 보름에 가까운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달이 거의 보름이 되었다.”라고 한 것이다.
[馬匹亡 无咎] 六三이 자기와 敵이 되어서 나아와 자기를 공격하니, 자기가 만약 六三과 더불어 잘잘못을 따지고 싸우면 자기의 盛한 바를 잃는다.
그러므로 동류인 六三을 버리기를 말이 짝을 잃는 것과 같이 하여, 위로 九五를 받들고 六三과 다투지 않아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말이 짝을 잃어야 허물이 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말이 짝을 잃음’은 同類를 끊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注
‘類’는 六三을 이르니, 〈六三과 六四가〉 모두 陰爻이다. 그러므로 類(同類)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絶類 上] 동류인 六三을 끊어 六三과 다투지 아니하여 위로 九五를 받드는 것이다.
九五는 孚信이 있어 매어두어야 허물이 없으리라.
注
‘攣如’는 孚信을 매어둔다는 말이다. 中心이 誠信하여 서로 사귀는 때에 처해서 높은 지위에 거하여 여러 물건의 주체가 되었으니, 誠信을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孚信이 있어 매어두어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有孚攣如 无咎] ‘攣如’는 서로 끌고 매여 있어 끊어지지 않는 이름이다. 九五가 誠信의 때에 있으면서 높은 지위에 처하여 여러 물건의 주체가 되었으니,
항상 모름지기 中心의 誠信으로 물건(남)과 사귀어야 하니, 孚信을 어찌 잠시라도 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孚信이 있어 매어둔다.”라고 한 것이다. 孚信을 매어두어 끊지 않아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孚信이 있어 매어두어야 허물이 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孚信이 있어 매어둠’은 자리가 바로 여기에 當했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位正當] 바로 높은 자리에 당했기 때문에 ‘孚信을 매어두어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다.’고 경계한 것이다.
만약 단지 陽으로서 正位를 얻기만 하고 孚信을 매어둠이 없다면 허물이 있는 혐의를 초래할 것이다.
上九는 날아가는 소리가 하늘에 오르니, 正道가 흉하다.
注
‘翰’은 높이 날아가는 것이니, 날아가는 소리는 소리만 날고 실제가 따르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卦의 위에 거하고 信의 끝에 처하였으니,
信이 끝나면 쇠하여 忠信과 독실함을 안에서 잃고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밖에서 드날린다. 그러므로 “날아가는 소리가 하늘로 올라간다.”라고 말한 것이다. 날아가는 소리가 하늘로 올라가면 正道가 또한 滅한다.
疏
正義曰:‘翰’은 높이 나는 것이니, 나는 소리는 소리만 날고 실제가 따르지 않음을 이른다. 上九가 信의 끝에 처하였으니, 信이 끝나면 쇠한다.
信이 쇠하면 속임수가 일어나서 忠信과 독실함을 안에서 잃고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밖에서 드날리니, 마치 새의 나는 소리가 하늘로 올라가서 빈 소리가 멀리 들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날아가는 소리가 하늘에 오른다.”라고 한 것이다.
빈 소리여서 실제가 없음은 正道가 凶한 것이다. 그러므로 “正道가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날아가는 소리가 하늘에 올라가니, 어찌 長久할 수 있겠는가.”
疏
正義曰:[何可長也] 빈 소리여서 실제가 없으니, 어찌 長久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