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疏]正義曰:‘夫乾天下’至‘其辭屈’ 此第九章.
自此已下終篇末, 總明易道之美, 兼明易道愛惡相攻, 情僞相感, 吉凶悔吝, 由此而生, 人情不等, 制辭各異也.
夫乾은 天下之至健也니 德行이 恒易以知險하고 夫坤은 天下之至順也니 德行이 恒簡以知阻하나니
注
[注]諸侯는 物主有爲者也니 能說萬物之心하고 能精爲者之務라
疏
[疏]正義曰:‘德行恒易以知險’者, 謂乾之德行, 恒易略, 不有艱難, 以此之故, 能知險之所興.
‘德行恒簡以知阻’者, 言坤之德行, 恒爲簡靜, 不有煩亂, 以此之故, 知阻之所興也.
大難曰險, 乾以剛健, 故知其大難, 小難曰阻, 坤以柔順, 故知其小難.
知大難曰險者, 案坎卦彖云“天險不可升, 地險山川丘陵”, 言險不云阻, 故知險爲大難, 險旣爲大, 明阻爲小也.
‘能說諸心’者, 萬物之心, 皆患險阻, 今以阻險逆告於人, 則萬物之心, 无不喜說, 故曰“能說諸心”也.
‘能硏諸侯之慮’者, 硏, 精也. 諸侯旣有爲於萬物, 育養萬物, 使令得所, 易旣能說諸物之心, 則能精妙諸侯之慮,
謂諸侯以此易之道, 思慮諸物, 轉益精粹. 故云“硏諸侯之慮.”也.
定天下之吉凶하고 成天下之亹亹者라 是故로 變化云爲에 吉事有祥하고 象事知器하고 占事知來하나니라
注
[注]夫變化云爲者는 行其吉事면 則獲嘉祥之應하고 觀其象事면 則知制器之方하고 玩其占事면 則覩方來之驗也라
疏
[疏]正義曰:‘定天下之吉凶’者, 言易道備載諸物得失, 依之則吉, 逆之則凶, 是易能定天下之吉凶也.
‘成天下之亹亹’者, 亹亹, 勉也, 天下有所營爲, 皆勉勉不息. 若依此易道, 則所爲得成, 故云“成天下之亹亹”也.
‘是故變化云爲’者, 易旣備含諸事, 以是之故, 物之或以漸變改, 或頓從化易, 或口之所云, 或身之所爲也.
‘象事知器’者, 觀其所象之事, 則知作器物之方也.
疏
[疏]正義曰:‘天地設位’者, 言聖人乘天地之正, 設貴賤之位也.
‘聖人成能’者, 聖人因天地所生之性, 各成其能, 令皆得所也.
注
[注]人謀는 況議於衆하여 以定失得也요 鬼謀는 況寄卜筮하여 以考吉凶也라
不役思慮로되 而失得自明하고 不勞探討로되 而吉凶自著하여 類萬物之情하고 通幽深之故라
疏
[疏]正義曰:謂聖人欲擧事之時, 先與人衆謀圖, 以定得失, 又卜筮於鬼神, 以考其吉凶, 是與鬼爲謀也.
聖人旣先與人謀鬼神謀, 不煩思慮與探討, 自然能類萬物之情, 能通幽深之理, 是其能也, 則天下百姓, 親與能人, 樂推爲王也.
疏
[疏]正義曰:自此已下, 又明卦爻剛柔變動情僞相感之事也.
疏
[疏]正義曰:‘剛柔雜居 而吉凶可見矣’者, 剛柔二爻相雜而居, 得理則吉, 失理則凶, 故吉凶可見也.
‘變動以利言’者, 若不變不動, 則於物有損有害, 今變而動之, 使利益於物, 是變動以利而言說也.
注
[注]吉凶无定
하여 唯人所動
이니 情順乘理以之吉
하고 情逆違道以
凶
이라
疏
[疏]正義曰:遷, 謂遷移. 凡得吉者, 由情遷移於善也, 所得凶者, 由情遷於惡也.
注
[注]泯然同順이면 何吉何凶이리오 愛惡相攻然后에 逆順者殊라 故로 吉凶生이라
疏
[疏]正義曰:若泯然无心, 事无得失, 何吉凶之有.
由有所貪愛, 有所憎惡, 兩相攻擊, 或愛攻於惡, 或惡攻於愛, 或兩相攻擊, 事有得失, 故吉凶生也.
注
[注]相取
는 相資也
라 遠近之爻互相資取而后
에 有悔吝也
라
疏
[疏]正義曰:情, 謂實情, 僞, 謂虛僞. 虛實相感, 若以情實相感則利生, 若以虛僞相感則害生也.
注
[注]近
은 況比爻也
라 易之情
이 剛柔相摩
하여 變動相
者也
라
近而不相得이면 必有乖違之患이로되 或有相違而无患者는 得其應也요 相順而皆凶者는 乖於時也라
疏
各无外應, 則致凶咎, 若各有應, 雖近不相得, 不必皆凶也.
注
[注]夫无對於物而後에 盡全順之道하니 豈可有欲害之者乎아 雖能免濟나 必有悔吝也라 或은 欲害之辭也라
疏
[疏]正義曰:言若能弘通, 不偏對於物, 盡竭順道, 物豈害之, 今旣有心於物, 情意二三其外物, 則或欲害之, 則有凶禍.
假令自能免濟, 猶有悔及吝也. 故云“或害之, 悔且吝”也.
吉人之辭는 寡하고 躁人之辭는 多하며 誣善之人은 其辭游하고 失其守者는 其辭屈이니라
疏
[疏]正義曰:‘將叛者 其辭慙’者, 此已下說人情不同, 其辭各異. 將欲違叛己者, 貌雖相親, 辭不以實, 故其辭慙也.
‘中心疑者 其辭枝’者, 枝謂樹枝也, 中心於事疑惑, 則其心不定, 其辭分散, 若閒枝也.
‘誣善之人 其辭游’者, 游謂浮游, 誣罔善人, 其辭虛漫, 故
其辭游也.
‘失其守者 其辭屈’者, 居不值時, 失其所守之志, 故其辭屈橈, 不能申也.
凡此辭者, 皆論易經之中, 有此六種之辭, 謂作易之人, 述此六人之意, 各準望其意而制其辭也.
疏
정의왈正義曰:경經의 [부건천하夫乾天下]에서 [기사굴其辭屈]까지 이는 제9장이다.
이로부터 이하로 마지막 편의 끝까지는 ‘역易의 도道의 아름다움’을 총괄하여 밝혔고, ‘역易의 도道의 사랑과 미워함이 서로 공격하고 실정과 거짓이 서로 감동하여 길흉吉凶과 회린悔吝이 이로 말미암아 생겨서 인정人情이 똑같지 않고 글을 지음이 각각 다름’을 겸하여 밝혔다.
건乾은 천하의 지극히 굳셈이니 덕행德行이 항상 쉬움으로써 험함을 알고, 곤坤은 천하의 지극히 순함이니 덕행이 항상 간략함으로써 막힘을 아니,
능히 여러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능히 제후諸侯의 생각을 정수精粹하게 하며,
注
제후諸侯는 물건을 주관하여 함이 있는 자이니, 능히 만물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능히 함이 있는 자의 일을 정精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德行恒易以知險] ‘건乾의 덕행德行이 항상 쉽고 간략하여 어려움이 있지 않으니, 이 때문에 험함이 일어남을 알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만약 쉽고 간략함이 있지 않으면 험함이 된다. 그러므로 쉬움을 행하여 험함을 아는 것이다.
[德行恒簡以知阻] ‘곤坤의 덕행德行이 항상 간략하고 고요하여 번거로움과 혼란함이 있지 않으니, 이 때문에 막힘이 일어나는 바를 앎’을 말한 것이다.
만약 간략하지 않으면 막히고 어려움이 된다. 그러므로 간략하고 고요함을 행하여 막힘을 아는 것이다.
큰 어려움을 ‘험險’이라 하니 건乾은 강건剛健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아는 것이요, 작은 어려움을 ‘조阻’라 하니 곤坤은 유순柔順하기 때문에 작은 어려움을 아는 것이다.
큰 어려움을 험險이라 함을 알 수 있는 까닭은, 살펴보건대 감괘坎卦 〈단전彖傳〉에 “하늘의 험함은 올라갈 수 없고, 땅의 험함은 산천과 구릉이다.”라고 하였으니, ‘험險’이라고 하고 ‘조阻’라고 하지 않았으므로 험險이 큰 어려움이 됨을 아는 것이니, ‘험險’이 이미 큼이 되었으면 분명히 ‘조阻’가 작음이 되는 것이다.
[能說諸心] 만물의 마음이 다 험하고 막힘[험조險阻]을 근심하니, 이제 막히고 험함을 가지고 미리 사람에게 일러주면 만물의 마음이 기뻐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능히 여러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라고 한 것이다.
[能硏諸侯之慮] ‘연硏’은 정精함이다. 제후諸侯가 이미 만물에 하는 바가 있어서 만물을 잘 길러주어 만물로 하여금 제자리를 얻게 하니, 역易이 이미 여러 물건(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으면 제후의 생각을 정밀精密하고 신묘神妙하게 할 수 있으니,
‘제후諸侯가 이 역易의 도道를 가지고 여러 물건을 생각해서 더욱더 정수精粹하게 함’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능히 제후의 생각을 정수精粹하게 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천하의 길흉吉凶을 결정하고 천하의 힘씀[미미亹亹]을 이룬다. 이 때문에 변화하고 말하고 행동함에 길吉한 일은 상서로움이 있고, 상象의 일은 기물을 알고, 점치는 일은 미래를 아는 것이다.
注
변화하고 말하고 행한다는 것은, 길吉한 일을 행하면 아름다운 상서祥瑞의 응보應報를 얻고, 상象의 일을 보면 기물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점치는 일을 살펴보면 래來의 징험을 보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定天下之吉凶] ‘역易의 도道가 여러 물건의 득실得失을 자세히 싣고 있어서 이를 따르면 길하고 이를 거스르면 흉함’을 말한 것이니, 이것이 ‘역易이 능히 천하의 길흉吉凶을 결정함’이다.
[成天下之亹亹] ‘미미亹亹’는 힘씀이니, 천하에 경영하는 바가 있어 모두 힘쓰고 힘써 쉬지 않는다. 만약 이 역易의 도道를 따르면 하는 바가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천하의 힘씀을 이룬다.”라고 말한 것이다.
[是故變化云爲] 역易이 이미 여러 가지 일을 골고루 포함하였다. 이 때문에 물건이 혹 점차 변하여 바뀌고, 혹은 갑자기 화化를 따라 바뀌며, 혹은 입으로 말하는 바와 혹은 몸으로 행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吉事有祥] 길한 일을 행하면 아름다운 상서祥瑞의 응보가 있는 것이다.
[象事知器] 형상한 바의 일을 보면 기물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占事知來] 점치는 일을 말하면 미래의 징험을 아는 것이다.
이는 역易의 도道가 이 여러 덕德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천지天地가 자리를 베풀면 성인聖人이 능함을 이루어주니,
注
성인聖人이 천지天地의 바름을 타면 만물이 각각 그 능함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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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왈正義曰:[天地設位] 성인聖人이 천지天地의 바름을 타고서 귀貴․천賤의 자리를 베풂을 말한 것이다.
[聖人成能] 성인聖人이 천지天地가 낳은 바의 성性을 인하여 각각 그 능함을 이루어서 각각 제자리를 얻게 함을 말한 것이다.
사람과 도모하고 귀신과 도모함에 백성이 능한 사람과 함께한다.
注
‘사람과 도모함’은 무리에 의논하여 실득失得을 결정함을 비유하였고, ‘귀신과 도모함’은 복서卜筮에 붙여서 길흉吉凶을 상고함을 비유하였다.
사려思慮를 하지 않고도 실득失得이 저절로 밝아지고, 수고롭게 탐구하지 않아도 길흉吉凶이 저절로 드러나서, 만물萬物의 실정을 무리로 나누고(분류分類하고), 그윽하고 깊은 연고를 통달한다.
그러므로 백성이 능한 사람과 함께하여 그를 기꺼이 추대하고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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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왈正義曰:‘성인聖人이 일을 거행하고자 할 때에는 먼저 사람들과 도모하여 득실得失을 정하고 또 귀신鬼神에게 복서卜筮하여 길흉吉凶을 상고하였음’을 말한 것이니, 이는 귀신과 더불어 도모한 것이다.
성인이 이미 먼저 사람들과 도모하고 귀신과 도모하니, 번거롭게 사려思慮하고 탐구하지 않아도 자연히 만물의 정情을 무리로 나누고 그윽하고 깊은 이치를 통달할 수 있는바, 이것이 능함이니, 천하의 백성들이 능한 사람을 친근히 함께해서 기꺼이 그를 추대하여 왕으로 삼는 것이다.
이로부터 이상은 역도易道의 큼을 성인이 본받아 행함을 논하였다.
注
글에 험하고 평탄함이 있으나 각각 그 실정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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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왈正義曰:이로부터 이하는 또 괘효卦爻의 강유剛柔가 변동變動하여 실정과 거짓이 서로 감동하는 일을 밝혔다.
강剛과 유柔가 뒤섞여 있어서 길吉과 흉凶을 볼 수 있다. 변동變動하여 이로움으로써 말하였고,
疏
정의왈正義曰:[剛柔雜居 而吉凶可見矣] 강剛과 유柔 두 효爻가 서로 뒤섞여 있어서 이치에 맞으면 길하고 이치를 잃으면 흉하다. 그러므로 길흉吉凶을 볼 수 있는 것이다.
[變動以利言] 만약 변하지 않고 동動하지 않으면 물건에 손해가 있는데, 이제 변하여 동해서 물건에 이익이 되게 하니, 이는 변동하여 이로움으로써 말한 것이다.
注
길吉․흉凶은 일정함이 없어서 오직 사람이 동하는 대로 하니, 정情이 순하면 이치를 타서 길함으로 가고, 정情이 거스르면 도道를 어겨서 흉함을 밟게 된다.
그러므로 “길․흉은 정情에 따라 바뀐다.”라고 말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천遷’은 옮기고 바뀜을 이른다. 무릇 길함을 얻는 이유는 정情이 선善으로 옮겨가기 때문이요, 흉함을 얻는 이유는 정情이 악惡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랑과 미움이 서로 공격하여 길吉․흉凶이 생겨나며,
注
민연泯然히(자취 없이) 함께 순順하면 무슨 길함이 있고 무슨 흉함이 있겠는가. 사랑과 미움이 서로 공격한 뒤에 역逆과 순順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길吉․흉凶이 생겨나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만약 민연泯然히 무심无心하여 일에 득得과 실失이 없으면 무슨 길吉과 흉凶이 있겠는가.
탐애貪愛하는 바가 있고 증오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두 가지가 서로 공격하는 것이니, 혹 사랑이 미움을 공격하고 혹 미움이 사랑을 공격하며 혹은 둘이 서로 공격해서 일에 득得과 실失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길吉과 흉凶이 생기는 것이다.
먼 것과 가까움이 서로 자뢰하여 회린悔吝이 생겨나며,
注
‘상취相取’는 서로 자뢰한다는 말과 같다. 멀고 가까운 효爻가 서로서로 자뢰하여 취한 뒤에 회린悔吝이 있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원遠’은 두 괘卦의 상하上下가 서로 응하는 유類를 이르고, ‘근近’은 가까운 효爻가 함께 모여서 번갈아 자뢰하고 취함을 이르니, 취하기를 이치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회린悔吝이 생기는 것이다.
실정과 허위로 서로 감동시켜서 이해利害가 생겨나니,
注
실정으로써 남을 감동시키면 이로움을 얻고, 허위로써 남을 감동시키면 해를 부르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정情’은 실정實情을 이르고, ‘위僞’는 허위虛僞를 이른다. 허위와 실정으로 서로 감동시킴에 만약 실정으로써 서로를 감동시키면 이로움이 생기고, 만약 허위로써 서로 감동시키면 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무릇 역易의 정情이 가까우면서 서로 맞지 못하면 흉하다.
注
‘근近’은 가까이에 있는 효爻를 비유한 것이다. 역易의 실정이 강剛과 유柔가 서로 갈리고 변동이 서로 핍박하는 것이다.
가까우면서 서로 맞지 못하면 반드시 괴리되고 어긋나는 근심이 있으나, 혹 서로 괴리되면서도 근심이 없는 것은 응應을 얻었기 때문이요, 서로 순하면서도 다 흉한 것은 때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疏
정의왈正義曰:‘근近’은 두 효爻가 서로 가까이 있으면서 서로 맞지 못함을 이르니,
또 각각 밖에 응應이 없으면 흉함과 허물을 이루고, 만약 각각 응應이 있으면 비록 가까이 있으면서 서로 맞지 못하지만 반드시 다 흉하지는 않다.
注
물건에 상대가 없은 뒤에 온전히 순한 도道를 다하니, 어찌 해치고자 하는 자가 있겠는가. 비록 능히 〈화禍를〉 면하고 구제되나 반드시 뉘우침과 부끄러움이 있는 것이다. ‘혹或’은 해치고자 한다는 말이다.
疏
정의왈正義曰:‘만약 능히 크게 통해서 물건을 편벽되이 대하지 아니하여 순한 도道를 다하면 물건이 어찌 해치겠는가. 이제 이미 물건에 마음이 있어서 정情과 의意가 외물外物에 대해 둘이 되고 셋이 되면 혹은 해치고자 하니, 이렇게 되면 흉함과 화禍가 있는 것이다.
가령 스스로 〈화를〉 면하고 구제되더라도 오히려 뉘우침과 부끄러움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혹은 해치며 뉘우치고 또 부끄럽다.”라고 한 것이다.
장차 배반하려는 자는 그 말이 부끄럽고, 중심에 의심하는 자는 그 말이 갈래가 있고(분산되고),
길한 사람의 말은 적고, 조급한 사람의 말은 많고, 선善을 무함하는 사람은 그 말이 떠돌고(왔다 갔다 하고), 지킴을 잃은 자는 그 말이 비굴하다.”
疏
정의왈正義曰:[將叛者 其辭慙] 이 이하는 인정人情이 똑같지 않아서 그 말이 각각 다름을 말한 것이다. 장차 자기를 어기고 배반하려는 자는 그 모습은 비록 서로 친한 듯하나 말은 진실되지 못하므로 그 말이 부끄러운 것이다.
[中心疑者 其辭枝] ‘지枝’는 나뭇가지를 이르니, 중심中心이 일에 있어서 의혹하면 그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서 말이 분산됨이 마치 나무의 쓸데없는 가지와 같은 것이다.
[吉人之辭寡] 길하고 선한 말은 정직하기 때문에 말이 적은 것이다.
[躁人之辭多] 번거롭고 조급하기 때문에 그 말이 많은 것이다.
[誣善之人 其辭游] ‘유游’는 떠돌아다님을 이르니, 선인善人을 무함하면 그 말이 허황되고 떠있으므로 그 말이 떠도는 것이다.
[失其守者 기사굴其辭屈] 거함이 제때를 만나지 못하면 지키는 바의 뜻을 잃는다. 그러므로 그 말이 비굴하고 흔들려서 펴지지 못하는 것이다.
무릇 여기의 ‘사辭’는 모두 ≪역경易經≫의 안에 이 여섯 종류의 말이 있음을 논한 것이니, ‘이 역易을 지은 사람이 이 여섯 종류의 사람의 뜻을 기술함에 각각 그 뜻을 기준하여 그 말을 지음’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