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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1)

열녀전보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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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齊桓衛姬
衛姬者注+① 文選注引作齊侯衛姬者, 此脫首二字. 衛侯之女 齊桓公之夫人也 桓公好淫樂이어늘 衛姬爲之不聽鄭衛之音注+② 文選注引曹大家曰 “衛國作淫佚之音, 衛姬疾桓公之好. 是故不聽以厲桓公也.”注+③ 【校注】 文選注引曹大家曰“衛國作淫佚之音, 衛姬疾桓公之好. 是故不聽以厲桓公也”, 後漢書列女傳注引“齊桓公好音樂, 衛姬不聽五音以諫”, 與今本不同.이라
桓公用管仲甯戚하여 行霸道하니 諸侯皆朝하되 而衛獨不至어늘 桓公與管仲謀伐衛
罷朝入閨注+① 閨, 宮中小門也.注+② 【集注】 王云 “閨, 宮中小門也.” 道管案說文, 閨, 特立之戶, 上圜下方有似圭.하니 衛姬望見桓公하고 脫簪珥하며 解環佩하고 下堂再拜曰 願請衛之罪注+③ 【集注】 淮南子衛姬論罪於桓公注, 桓公有伐衛之志, 衛姬望見桓公色而知之.라하니 桓公曰 吾與衛無故어늘 姬何請耶
對曰 妾聞之호니 人君有三色하니 顯然喜樂容貌淫樂者 鐘鼓酒食之色이요 寂然淸靜意氣沈抑者 喪禍之色이요 忿然充滿手足矜動者 攻伐之色注+④ 【集注】 梁云 “管子小問篇東郭郵語, 與此同.” 道管案人君有三色至此, 管子及呂覽重言韓詩外傳, 皆有之而各小異, 皆系桓公與管仲謀伐莒東郭牙知之語, 惟管子牙作郵.이라
今妾望君호니 擧趾高하고 色厲音揚하니 意在衛也注+⑤ 呂覽作足高氣彊, 有伐國之志也, 見妾而有動色, 伐衛也. 此有闕脫而意未完善, 宜補正之. 是以請也라하니 桓公許諾이라
明日臨朝하니 管仲趨進曰 君之朝也 恭而氣下하고 言則徐하여 無伐國之志하니 是釋衛也로소이다 桓公曰 善타하고
乃立衛姬爲夫人하고 號管仲爲仲父라하고 曰夫人治內하고 管仲治外 寡人雖愚 足以立於世矣注+① 【集注】 案自諸侯皆朝以下至此, 除人君有三色一段外, 皆本呂覽精諭篇而小異.라하더라
君子謂衛姬信而有行이라하니라 詩曰 展如之人兮 邦之媛也로다
頌曰
齊桓衛姬
忠款誠信이로다
公好淫樂이어늘
姬爲修身이로다
望色請罪하니
桓公加焉注+① 加當作嘉.注+② 【校注】 王安人曰 “加當作嘉.” 案加․嘉古通.이로다
厥使治內하야
立爲夫人이로다


2-2 환공桓公의 부인 위희衛姬
위희衛姬注+① ≪문선文選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제후위희자齊侯衛姬者’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앞의 2자가 빠졌다. 나라 임금의 딸이요 부인夫人이다. 환공이 음란한 음악을 좋아하거늘 위희가 이 때문에 을 듣지 않았다.注+② ≪문선≫ 조대가曹大家의 말을 인용하여 “나라가 음일淫佚한 음악을 지었는데, 위희衛姬환공桓公이 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였다. 그러므로 듣지 않음으로써 환공桓公을 면려하였다.”라고 하였다.注+③ 【교주校注】 ≪문선≫ 조대가曹大家의 말을 인용하여 “나라가 음일淫佚한 음악을 지었는데, 위희가 환공이 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였다. 그러므로 듣지 않음으로써 환공을 면려하였다.”라고 하였고, ≪후한서後漢書≫ 〈열녀전列女傳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제 환공이 음악을 좋아하였는데 위희가 오음五音을 듣지 않음으로써 간하였다.”라고 하였으니, 금본今本과 같지 않다.
환공桓公을 기용하여 를 행하니 제후諸侯들이 모두 조회하였으나 나라만 이르지 않았다. 이에 환공桓公관중管仲과 더불어 나라를 정벌하기를 도모하였다.
조회를 파하고 규문閨門으로 들어가니,注+궁중宮中의 작은 문이다.注+② 【집주集注왕조원王照圓이 이르기를 “는 궁중의 작은 문이다.”라고 하였다. 내(소도관蕭道管)가 상고해보건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는 우뚝 솟은 이니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난 것이 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였다. 위희衛姬환공桓公을 바라보고 비녀와 귀고리를 빼며 노리개를 풀고 에서 내려가 재배再拜한 다음 말하기를 “원컨대 나라의 죄를 청합니다.”라고 하니,注+③ 【집주集注】 ≪회남자淮南子≫에 위희衛姬환공桓公에게 죄를 논한 대목의 에 “환공이 나라를 정벌할 뜻이 있었는데, 위희가 환공의 안색을 바라보고 알았다.”라고 하였다. 환공이 말하기를 “내가 위나라와 아무런 일도 없는데 그대는 무엇을 청하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위희가 대답하기를 “이 듣건대, 임금에게 세 가지 낯빛이 있으니 현연顯然히 즐거워하여 얼굴이 피어나 화락한 것은 종고鐘鼓를 치며 술과 음식을 먹을 낯빛이고, 적연寂然히 맑고 고요하여 의기가 가라앉는 것은 상화喪禍를 만날 낯빛이고, 분연忿然히 성낸 기운이 두루 퍼져 손발이 떨리는 것은 공벌攻伐할 낯빛이라고 하였습니다.注+④ 【집주集注양단梁端이 이르기를 “소문편小問篇〉의 동곽우東郭郵의 말이 이곳과 같다.”라고 하였다. 내(소도관蕭道管)가 상고해보건대, ‘인군유삼색人君有三色’으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관자≫ 및 ≪여씨춘추呂氏春秋≫ 〈중언重言〉과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모두 있는데 각각 조금 다르다. 모두 환공이 관중管仲과 더불어 를 정벌하기를 도모한 것을 동곽아東郭牙가 알았다는 말과 관계되는데, ≪관자≫에만 ‘’가 ‘’로 되어 있다.
지금 이 임금을 바라보니 발을 듦이 높고 안색이 씩씩하고 음성이 들떠 있으니, 위나라를 정벌하는데 뜻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注+⑤ ≪여씨춘추≫에는 “발을 높이 들고 기운이 강하니 다른 나라를 정벌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고, 을 보고 안색이 흔들렸으니 나라를 정벌하려는 것입니다.”로 되어 있다. 여기에는 빠진 부분이 있어서 뜻이 완전하지 못하니 의당 보충하여 바로잡아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죄를 청한 것입니다.”라고 하니, 환공이 수긍하였다.
환공桓公이〉 이튿날 조회에 나아가니 관중管仲이 달려 나와 말하기를 “주군께서 조회에 나오심에 안색이 공손하고 기운이 가라앉았으며 말씀도 천천히 하시어 다른 나라를 정벌하겠다는 뜻이 없으니, 이는 나라 정벌을 그만두시려는 것입니다.”라고 하니, 환공이 말하기를 “옳다.”라고 하였다.
이에 위희衛姬를 세워 부인을 삼고, 관중에게 호를 내려 중부仲父라 하고 말하기를 “부인은 안을 다스리고 관중은 밖을 다스리면 과인이 비록 어리석으나 세상에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注+① 【집주集注】 상고해보건대, ‘제후개조諸侯皆朝’ 이하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인군유삼색人君有三色’ 1단락을 제외하고 모두 ≪여씨춘추≫ 〈정유편精諭篇〉에 근본하였는데 조금 다르다.라고 하였다.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위희衛姬는 미덥고 덕행이 있었다.”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
은 다음과 같다.
환공桓公의 부인 위희衛姬
충성스럽고 진실하였도다
환공이 음란한 음악을 좋아하거늘
위희가 자신을 바르게 닦았도다
안색을 보고 위나라의 죄를 청하니
환공이 가상히 여겼도다注+① ‘’는 응당 ‘’가 되어야 한다.注+② 【교주校注왕안인王安人이 말하기를 “‘’는 응당 ‘’가 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상고해보건대, ‘’와 ‘’는 고자古字에 통용한다.
안을 다스리게 해서
부인으로 세웠도다


역주
역주1 齊 桓公 : 齊나라 임금으로, 姜姓 呂氏이고 이름은 小白이다. 釐公의 아들이고, 襄公의 동생으로, 즉위한 후 管仲을 중용하여 齊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春秋五霸의 하나가 되었다.
역주2 鄭나라와……음악 : 鄭나라와 衛나라의 음악이 ≪詩經≫ 〈鄭風〉과 〈衛風〉 등에 남아 그 편린이 전하는데 애정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鄭나라와 衛나라 사이의 河南省 濮水 가에 뽕나무 사이라는 뜻에서 취한 지명으로 桑間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남녀가 밀회하는 장소로 많이 이용되면서 애정을 주제로 한 노래가 많이 불렸으므로 음란한 음악의 대명사가 되었다.(≪禮記注疏≫ 권37 〈樂記 19〉) ≪詩經≫ 〈鄘風 桑中〉 章下註에 “鄭나라 衛나라의 음악은 난세의 음악이고……桑間 濮上의 음악은 亡國의 음악이다.[鄭衛之音 亂世之音……桑間濮上之音 亡國之音]”라고 하였고, 〈毛詩序〉에도 淫奔한 시라고 규정하고 비판하여 후대에 鄭나라와 衛나라의 음악은 음란하고 나라를 망치는 음악을 뜻하게 되었다.
역주3 管仲 : 管荑吾(?~B.C. 645)를 가리킨다. 春秋時代 齊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仲은 그의 자이다. 鮑叔牙의 추천으로 정치적으로 반대편이었던 桓公에게 발탁되어 卿의 벼슬에 올랐다. 桓公을 도와 제도를 개혁하고 국토를 효율적으로 구분하였으며, 상업과 수공업의 육성을 통하여 富國强兵을 꾀하였다. 대외적으로는 타국의 제후와 아홉 번 會盟하여 桓公으로 하여금 제후의 신뢰를 얻게 하고 남쪽에서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楚나라를 눌러 桓公을 春秋五覇의 하나로 만들었다. 저서에 ≪管子≫가 있다.
역주4 甯戚 : 寧戚이라고도 한다. 春秋時代 衛나라 사람으로 집이 가난하여 수레 아래에서 소를 먹이다가 齊桓公이 나오기를 기다려 쇠뿔을 두드리며 商歌를 노래하였다. 그 노래를 〈飯牛歌〉라 하는데, 그 가사에 “남산에 깨끗한 돌이여, 흰 돌이 다 닳도록 堯舜 같은 임금을 만나지 못하였으니 짧은 베 홑옷은 정강이도 못 가리네. 어둑한 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소를 먹이노니 긴긴 밤은 어느 때나 밝아올꼬.[南山矸 白石爛 生不遭堯與舜禪 短布單衣不掩骭 從昏飯牛薄夜半 長夜漫漫何時旦]” 하였다. 齊 桓公이 이 노래를 듣고 甯戚을 불러 이야기해보고 좋아하여 그를 재상으로 기용하였다.(≪藝文類聚≫ 권94)
역주5 霸道 : 仁義를 무시하고 무력이나 권모로써 公利를 오로지 하는 정치를 말한다. 이와 반대로 王道는 先王이 행한 仁義에 바탕을 둔 정치를 말한다.
역주6 管子 : 管仲의 저서로, 齊桓公을 도와 民心敎化와 富國强兵을 꾀하던 여러 정책이 수록되어 있다. 管仲이 죽은 이후의 일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後人이 여러 차례 增補한 듯하다. 2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주7 : ≪列女傳校注≫와 ≪列女傳集注≫에는 모두 ‘蒞’로 되어 있다.
역주8 진실로……분이로다 : ≪詩經≫ 〈鄘風 君子〉에 보인다.

열녀전보주(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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