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將馬服君趙奢之妻요 趙括之母也라 秦攻趙에 孝成王이 使括代廉頗爲將이어늘 將行에 括母上書言於王曰 括不可使將이니이다
王曰 何以
오 曰 始妾事其父
할새 父時爲將
이어늘 身所奉
者以十數
注+① 奉, 手持也. 尊敬其人, 故親以飯奉之. 若記云“執醬而饋”然也.하고 所友者以百數
하며 大王及宗室所賜幣者
注+② 【校注】 者疑帛之誤. 史記趙奢傳作“所賞賜者”.는 盡以與軍吏士大夫
하고 受命之日
엔 不問家事
러니이다
今括
은 一旦爲將
하여 東向而朝軍吏
注+③ 東向, 居尊位也.로대 吏無敢仰視之者
하며 王所賜金帛
은 歸盡臧之
注+④ 臧, 藏也. 古書藏俱作臧.하고 乃日視便利田宅可買
하니 王以爲
其父乎
잇가 父子不同
하여 執心各異
하니 願勿遣
하소서
王曰 母置之
어다 吾計已決矣
니라 括母曰 王終遣之
인댄 卽有不稱
이라도 妾得無
乎
注+① 隨, 從也. 言括若有罪, 得不從坐乎.잇가 王曰 不也
라
括旣行하여 代廉頗三十餘日에 趙兵果敗하여 括死軍覆이로되 王以括母先言이라 故로 卒不加誅하다
君子謂 括母爲仁智라하니라 詩曰 老夫灌灌이어늘 小子蹻蹻로다 匪我言耄어늘 爾用憂謔하나다하니 此之謂也라
조趙나라
장수將帥 의 아내이자
조괄趙括의 어머니이다.
진秦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이 조괄로 하여금
를 대신하여 장수가 되게 하였는데, 장차 출행하려 할 때 조괄의 어머니가 글을 올려 왕에게 말하기를 “조괄을 장수로 삼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왕이 “어째서인가?” 하니, 말하기를 “처음에 제가 조괄의 아비를 섬길 때 그는 당시 장수였는데, 몸소 밥을 받들어 올리는 자가 수십을 헤아리고
注+① ‘봉奉’은 손으로 잡는 것이다. 그 사람을 존경하기 때문에 몸소 밥을 받들어 올리는 것이니, ≪예기禮記≫에서 말한 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벗하는 자가 수백을 헤아렸으며,
대왕大王과
종실宗室들이 하사한
폐백幣帛은
注+② 【교주校注】 ‘자者’는 ‘백帛’의 오자誤字인 듯하다. ≪사기史記≫ 권81 〈조사열전趙奢列傳〉에는 ‘소상사자所賞賜者’로 되어 있다. 모두
군리軍吏와
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명을 받드는 날에는 집안일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조괄은 하루아침에 장수가 되어
동향東向하여
군리軍吏들에게 조회를 받는데,
注+③ 군리軍吏들이 감히 우러러 보는 자가 없으며, 왕께서 하사한
금백金帛은 가지고 돌아와 모두 감추어 둔 채
注+④ ‘장臧’은 감춘다는 뜻이니, 고서古書에는 ‘장藏’이 모두 ‘장臧’으로 되어 있다. 날마다 사들일 만한 알맞은
전지田地와 집이나 살피고 있으니, 왕께서는 제 아비와 같다고 여기십니까? 아비와 아들이 같지 아니하여 마음가짐이 각기 다르니, 원컨대 파견하지 마소서!”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모친은 신경 쓰지 마시오. 내 계책이 이미 결정되었소.” 하니, 조괄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왕께서 끝내 그를 파견하신다면 잘못이 있더라도 저는
연좌連坐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注+① ‘수隨’는 따른다는 뜻이니, 조괄趙括에게 만약 죄가 있다 하더라도 연좌連坐되지 않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왕이 말하기를 “연좌시키지 않겠소.” 하였다.
조괄이 출행한 뒤
염파廉頗를 대신하여 지휘한 지 30여 일 만에
조趙나라 군사가 과연 패하여
왕은 조괄의 어머니와 미리 언약을 하였기 때문에 끝내 주벌을 가하지 못하였다.
군자가 말하기를 “조괄의 어머니는 어질고 지혜로웠다.”라고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처자식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오
조장괄모趙將括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