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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2)

열녀전보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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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晉圉懷嬴
懷嬴者 秦穆公之女 晉惠公太子之妃也注+① 穆下脫公字, 子下脫圉字. 圉質於秦 穆公以嬴妻之러라
六年 圉將逃歸할새 謂嬴氏曰 吾去國數年이로대 子父之接忘하고 而秦晉之不加親也注+① 友當爲交, 字形之誤. 夫鳥飛反鄕注+② 【集注】 禮三年問 “今是大鳥獸, 則失喪其群匹, 越月踰時焉, 則必反巡過其故鄕.”하고 狐死首邱注+③ 首, 猶向也. 言死時必正向其故邱, 不忘本也.하나니 我其首晉而死 子其與我行乎
嬴氏對曰 子 晉太子也 辱於秦하니 子之欲去 不亦宜乎잇가 雖然이나 寡君使 侍執巾櫛 以固子也어늘 今吾不足以結子 是吾不肖也 從子而歸 是棄君也 言子之謀 是負妻之義也
三者無一可行하니 雖吾不從子也 子行矣하소서 吾不敢泄言이어니와 亦不敢從也니이다 子圉遂逃歸하다
君子謂 懷嬴 善處夫婦之間이라하니라
頌曰
晉圉質秦
配以懷嬴이로다
圉將與逃어늘
嬴不肯聽이로다
亦不泄言하니
操心甚平이로다
不告所從하니
無所阿傾이로다


5-3 나라 태자太子 회영懷嬴
회영懷嬴의 딸이자 태자太子 이다.注+① ‘’ 아래에 ‘’자가 빠졌고, ‘’ 아래에 ‘’자가 빠졌다. 어가 나라에 볼모로 와 있을 때 목공穆公회영懷嬴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6년 뒤 가 장차 도망하여 돌아가려고 할 적에, 영씨嬴氏에게 말하기를 “내가 고국을 떠나온 지 몇 해나 흘렀는데, 부자간의 만남도 단절되고 나라와 나라의 외교관계도 더 이상 친밀해지지 않고 있소.注+① ‘’는 응당 ‘’가 되어야 하니,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이다. 무릇 注+② 【집주集注】 ≪예기禮記≫ 〈삼년문三年問〉에 “지금 큰 새와 짐승은 무리와 짝을 잃으면 한 달이 넘고 한 철이 넘어도 반드시 돌아와서 옛 고향을 지나간다.”라고 하였다. 注+③ ‘’는 ‘’과 같다. 죽을 때 반드시 똑바로 그 옛 언덕을 향한다는 말이니, 근본을 잊지 않는 것이다. 나도 그 나라를 향해 죽고자 하오. 그대는 나와 함께 가시겠소?” 하였다.
영씨嬴氏가 대답하기를 “당신은 나라 태자太子입니다. 나라에서 굴욕을 당하고 계시니, 당신이 떠나고자 하는 것은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우리 임금께서 저로 하여금 수건과 빗을 들고 모시게 한 것은 당신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인데, 지금 제가 당신을 잡아두지 못하면 이는 제가 불초不肖한 것이요, 당신을 따라 돌아간다면 이는 임금을 버리는 것이며, 당신의 계획을 발설하면 이는 아내의 도리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군자가 말하기를 “회영懷嬴은 부부간의 도리에 잘 처신하였다.”라고 하였다.
진어회영晉圉懷嬴진어회영晉圉懷嬴
은 다음과 같다.
태자 나라에 볼모 잡혀
회영懷嬴을 배필로 맞이하였다네
가 장차 함께 도망하려 하였으나
회영은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네
그렇다고 말을 누설하지도 않았으니
마음가짐이 매우 공평하였도다
한쪽으로 치우친 마음이 없었도다


역주
역주1 秦 穆公 : 春秋時代 秦나라 임금으로, 성은 嬴, 이름은 任好이다. 春秋五覇 가운데 하나이다.
역주2 晉 惠公 : 春秋時代 晉나라 임금으로, 성은 姬, 이름은 夷吾이다.
역주3 [圉] : 저본에는 ‘圉’가 없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4 새도……돌아가고 : ≪禮記≫ 〈三年問〉에 “무릇 천지의 사이에 사는 것에 血氣가 있는 등속은 반드시 知覺이 있고, 지각이 있는 등속은 그 同類를 사랑할 줄 알지 못함이 없으니, 지금 큰 새와 짐승은 무리와 짝을 잃으면 한 달이 넘고 한 철이 넘어도 반드시 돌아와서 옛 고향을 지나가면서 빙빙 돌며 울고 부르짖으며 머뭇거리고 서성인 뒤에야 비로소 그곳을 떠나가며, 작은 것으로 제비와 참새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한동안 울부짖음이 있은 후에 비로소 그곳을 떠나간다. 그러므로 혈기가 있는 등속은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이 그 어버이에 대해서 슬퍼하는 마음이 죽음에 이르러도 다하지 않는 것이다.[凡生天地之間者 有血氣之屬 必有知 有知之屬 莫不知愛其類 今是大鳥獸 則失喪其群匹 越月踰時焉 則必反巡過其故鄕 翔回焉 鳴號焉 蹢䠱焉 踟蹰焉 然後乃能去之 小者至於燕雀 猶有啁噍之頃焉 然後乃能去之 故有血氣之屬者 莫知於人 故人於其親也 至死不窮]”라고 하였다.
역주5 여우도……향하니 : ≪禮記≫ 〈檀弓 上〉에 “太公을 營丘에 封하였는데, 5世에 이르기까지 죽으면 그 자손들도 모두 고향인 周나라로 돌아가서 장례를 하였다. 이를 두고 군자가 말하기를 ‘樂은 그 말미암아 생겨난 바를 즐거워하는 것이요, 禮는 그 근본을 잊지 않는 것이니, 옛사람이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바로 하여 고향 언덕으로 향하는 것을 仁이라 하였다.’ 하였다.[太公封於營丘 比及五世 皆反葬於周 君子曰 樂 樂其所自生 禮 不忘其本 古之人有言曰 狐死正丘首 仁也]”라고 하였다.
역주6 당신은……않겠습니다 : ≪春秋左氏傳≫ 僖公 22년 조에는 “당신은 晉나라의 太子로 秦나라에서 屈辱을 당하고 있으니, 당신이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임금께서 저에게 수건과 빗을 들고 모시게 한 것은 당신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인데, 당신을 따라 돌아간다면 이는 君命을 버리는 것이니, 감히 따라가지 않겠습니다만 감히 말을 누설하지도 않겠습니다.[子晉大子而辱於秦 子之欲歸 不亦宜乎 寡君之使婢子侍執巾櫛 以固子也 從子而歸 棄君命也 不敢從 亦不敢言]”라고 하였다.
역주7 (友)[交] : 저본에는 ‘友’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交’로 바로잡았다.
역주8 婢子 : 婦人의 스스로에 대한 謙稱이다. ≪禮記≫ 〈曲禮 下〉에 “諸侯의 부인이 他國의 諸侯에게 자칭하기를 ‘寡小君’ 이라 하고 그 君主에게 자칭하기를 ‘小童’이라 하고, 世婦로부터 이하는 자칭하기를 ‘婢子’라 한다.[自稱於諸侯曰寡小君 自稱於其君曰小童 自世婦以下 自稱曰婢子]”라고 하였다.
역주9 따를……않았으니 : 잡아두지도 못하고, 따라가지도 못하고, 발설하지도 못하는 세 가지를 두고 한 말이다.

열녀전보주(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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