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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1)

열녀전보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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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楚白貞姬
貞姬者 楚白公勝之妻也 白公死어늘 其妻紡績不嫁러라 吳王聞其美且有行하고 使大夫持金百鎰白璧一雙以하고 以輜輧三十乘迎之하여 將以爲夫人이라
大夫致幣하니 白妻辭之曰 白公 妾幸得充後宮하여 執箕帚하고 掌衣履하고 拂枕席하다가 託爲妃匹이니이다 白公不幸而死하니 妾願守其墳하여 以終天年이어늘
今王賜金璧之娉 夫人之位하니 非愚妾之所聞也니이다 且夫棄義從欲者 汚也 見利忘死者 貪也 夫貪汚之人 王何以爲哉리잇고
妾聞之호니 忠臣 不借人以力하고 貞女 不假人以色이라하니 豈獨事生若此哉리잇고 於死者亦然이니이다
妾旣不仁하여 不能從死어늘 今又去而嫁 不亦太甚乎잇가하고 遂辭娉而不行하다
吳王賢其守節有義하여 號曰注+① 楚當在貞姬之上, 傳寫者誤倒其文耳. 藝文類聚引不誤.라하다
君子謂 貞姬廉潔而誠信이라하니라 夫任重而道遠이라 仁以爲己任이니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詩云 彼美孟姜이여 德音不忘이로다하니 此之謂也
頌曰
白公之妻
守寡紡績이로다
吳王美之하여
娉以金璧이로다
妻操固行하여
雖死不易이로다
君子大之하여
美其嘉注+① 績疑當作蹟, 字形之誤. 蹟與迹同.이로다


4-11 나라 의 아내 정희貞姬
정희貞姬나라 백공白公 의 아내이다. 백공白公이 죽자, 그 아내는 길쌈으로 〈생계를 잇고〉 개가改嫁하지 않았다. 나라 왕이 그녀가 용모가 아름답고 행실이 훌륭하다는 소문을 듣고는 대부大夫로 하여금 황금 100과 백옥 한 쌍을 가지고 가서 빙문聘問하게 하고, 30으로 맞이하여 장차 그녀를 부인으로 삼으려 하였다.
대부가 예물을 바치자, 백공의 아내가 거절하며 말하기를 “백공이 살아계실 때 제가 다행히 후궁後宮으로 들어가 쓰레받기와 비를 잡고 옷과 신을 맡고 베개와 자리를 털다가 이로 인해 그의 정식 부인이 되었습니다.백공이 불행하게도 돌아가시고 말았으니 첩은 그의 무덤이나 지키면서 타고난 수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지금 왕께서 황금과 백옥으로 빙문하고 부인의 자리를 내리시니, 어리석은 제가 들을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를 버리고 욕심을 쫓는 것은 더러운 것이고, 를 보고 죽음을 잊는 것은 탐욕스러운 것이니, 탐욕스럽고 더러운 사람을 왕께서 어디에 쓰겠습니까.
제가 듣건대, 충신忠臣은 다른 임금에게 힘을 빌려주지 않고, 정녀貞女는 다른 남자에게 미색美色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어찌 유독 살아 있는 사람만 이와 같이 섬겨야 할 뿐이겠습니까. 죽은 사람에게도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미 어질지 못하여 따라 죽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그를 버리고 개가한다면 또한 너무 심하지 않겠습니까.” 하고는, 마침내 빙문을 사양하고 가지 않았다.
나라 왕이 그녀의 정절貞節을 지키고 가 있는 것을 훌륭하게 여겨 ‘초정희楚貞姬’라 일컬었다.注+① ‘’는 응당 ‘정희貞姬’의 위에 있어야 하니, 전사傳寫한 자가 잘못하여 그 글을 도치倒置시킨 것일 뿐이다.
군자가 말하기를 “정희貞姬는 청렴하고 결백하며 지성스럽고 미쁘다.”라고 하였다. 무릇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초백정희楚白貞姬초백정희楚白貞姬
은 다음과 같다.
초나라 백공白公의 아내 정희貞姬
길쌈을 하며 수절하였도다
오왕吳王이 그녀를 아름답게 여겨
황금과 백옥으로 빙문하였다네
아내로서 굳은 행실을 지켜
죽어도 그 마음 변치 않았다오
군자가 이를 훌륭하게 여겨
아름다운 행적을 찬미하였다네注+① ‘’은 아마도 응당 ‘’이 되어야 할 듯하니,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이다. ‘’은 ‘’과 같다.


역주
역주1 白公 : 春秋時代 楚나라 大夫로, 이름은 勝이고 호가 白公이다. 平王의 손자로, 王孫勝이라고도 한다.
역주2 : 古代의 무게 단위로, 20兩 또는 24兩이 1鎰이다.
역주3 輜輧 : 輜車와 輧車의 병칭으로, 부인들이 타는 휘장으로 가린 수레를 가리킨다.
역주4 : ≪列女傳校注≫와 ≪列女傳集注≫에는 모두 ‘聘’으로 되어 있다. 아래도 같다. 참고로 ‘娉’은 ‘聘’과 통한다.
역주5 藝文類聚의……않았다 : ≪藝文類聚≫ 권18 〈人部 2 賢婦人〉에 보인다.
역주6 生之 : ≪藝文類聚≫에는 ‘無恙’으로 되어 있고, ≪太平御覽≫에는 ‘無恙之’로 되어 있다.
역주7 : ≪太平御覽≫에는 이 뒤에 ‘奉其祠祀’가 더 있다.
역주8 [楚]貞姬(楚) : 저본에는 ‘貞姬楚’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 ≪列女傳校注≫, ≪列女傳集注≫, ≪藝文類聚≫ 등에 의거하여 ‘楚貞姬’로 바로잡았다.
역주9 책임은……않은가 : ≪論語≫ 〈泰伯〉에 보이는 曾子의 말로,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되니, 책임이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君子는 仁으로써 자기의 책임을 삼으니 무겁지 않은가. 죽은 뒤에야 끝나니 멀지 않은가.[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라고 하였다.
역주10 저……못하리로다 : ≪詩經≫ 〈鄭風 有女同車〉에 보인다.
역주11 (績)[蹟] : 저본에는 ‘績’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蹟’으로 바로잡았다.

열녀전보주(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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