鍾離春者
注+① 【校注】 太平御覽人事部五, 又二十三引注云 “鍾離, 姓. 春, 名也.”는 齊無鹽邑之女
注+② 漢地理志, 無鹽邑, 屬東平國. 今之東平州, 是其地.요 宣王之正后也
라 其爲人極醜無雙
하여 臼頭深目
注+③ 初學記引臼作凹. 凹頭, 頭頂窊陷也. 後漢書注引作白頭, 新序同, 誤也.과 長
大節
注+④ 後漢書注引指作壯. 大節, 言骨節大也.과 鼻結喉
注+⑤ 卬, 猶仰也. 仰鼻, 露孔也. 喉, 咽喉也. 結喉, 擁腫也.와 肥項少髮
과 折腰出胸
注+⑥ 折腰, 駝背. 後漢書注引出作凸. 凸胸, 言胸骨突出也.에 皮膚若漆
이라
行年
十
注+⑦ 初學記引四作三.토록 無所容入
하여 衒嫁不售
注+⑧ 衒, 賣也. 言自誇耀以求售也. 初學記及後漢書注引衒作行.하여 流棄莫執
注+⑨ 執, 猶處也. 言流離捐棄, 莫有居處也.注+⑩ 【集注】 道管案執當訓如執友之執. 曲禮注, “執友, 志同者”.이러라
於是
에 乃拂拭短褐
注+① 褐, 毛布也. 短褐, 言其貧.하고 自詣宣
하여 謂謁者曰 妾齊之不售女也
로 聞君王之聖德
하고 願備後宮之掃除
하여 頓首司馬門外
注+② 三輔黃圖, “宮之外門爲司馬門”, “漢未央ㆍ長樂ㆍ甘泉宮, 四面皆有公車司馬門也”.하니 唯王幸許之
하소서
謁者以聞하니 宣王方置酒於漸臺러니 左右聞之하고 莫不掩口大笑曰 此天下强顔女子也니 豈不異哉리오
於是
에 宣王乃召見之
하고 謂曰 昔者先王爲寡人娶
匹
하여 皆已備有列位
라 하니 아 鍾離春對曰 無有
라 特竊慕大王之美義耳
니이다
王曰 雖然
이나 何
注+① 【校注】 善舊誤喜. 從太平御覽校改. 下同. 新序亦誤.가 良久曰 竊嘗(喜)[善]
注+② 隱, 隱語也.하니이다 宣王曰 隱固寡人之所願也
니 試一行之
어다하여늘 言未卒
에 忽然不見
注+③ 按此七字, 新序亦同, 殆不可曉. 審爾, 是遁形之術, 非隱語之謂也. 竊詳文義, ‘言未卒’下, 疑當作‘瞑目不見’四字, 此即所謂‘隱’也.하니 宣王大驚
하여 立發隱書而讀之
注+④ 漢書藝文志, 隱書十八篇注, 引劉向別錄云 “隱書者, 疑其言以相問, 對者以慮思之, 可以無不喻.”하고 退而推之
注+⑤ 新序推作惟.로대 하다
明日
에 又更召而問之
나 不以隱對
하고 但
하고 擧手拊
曰 殆哉殆哉
라하다 如此者四
에 宣王曰 願遂聞命
이라하니
鍾離春對曰 今大王之君國也에 西有衡秦之患하고 南有强楚之讎하여 外有二國之難하고 內聚姦臣하여 衆人不附하며
春秋四十
이로대 壯男不立
하고 不務衆子而務衆婦
하여 尊所好
하고 忽所恃
하니 一旦
에 山陵崩弛
注+① 【校注】 段校云 “當作阤. 國語韋昭注, 大曰崩, 小曰阤.”면 社稷不定
하리니 此一殆也
니이다
漸臺五
에 黃金白玉
과 琅玕
疏
와 翡翠珠璣
로 連飾
注+② 新序籠作龍. 蓋與㰍同. 㰍, 房室之疏也. 言以琅玕飾㰍疏. 又以翡翠珠璣, 連絡其間, 以爲華飾. 新序幕絡作莫落, 音義亦同.하여 萬民罷極
하니 此二殆也
니이다
賢者
於山林
하고 諂諛
於左右
하여 邪僞立於本朝
일새 諫者不得通入
하니 此三殆也
니이다
하여 以夜
하고 女樂俳優
注+③ 俳, 戲也. 優, 倡優也.로 縱橫大笑
하여 外不修諸侯之禮
하고 內不秉國家之治
하니 此四殆也
니이다 故曰殆哉殆哉
라하니이다
於是
에 宣
喟然而嘆曰 痛乎
라 無鹽君之言
이여 이로다 於是
에 漸臺
하고 罷女樂
하며 退諂諛
하고 去雕琢
하며 選兵馬
하고 實府庫
하며 四辟公門
注+① 辟, 與闢同, 開也. 新序作闢.하여 招進直言
하여 延及側陋
하며 卜擇吉日
하여 立太子
하고 進慈母
하며 拜無鹽君爲后
하니 而齊國大安者
는 醜女之力也
라
君子謂 鍾離春은 正而有辭라하니라 詩云 旣見君子호니 我心則喜로다하니 此之謂也라
종리춘鍾離春은
注+① 【교주校注】 ≪태평어람太平御覽≫ 권卷364 〈인사부人事部5 정頂〉과 권卷382 〈인사부23 추부인醜婦人〉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의 주注에 “종리鍾離는 성姓이고, 춘春은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제齊나라
무염無鹽 땅의 여자이자
注+② ≪한서漢書≫ 권卷28하下 〈지리지地理志〉에 따르면, 무염無鹽 고을은 동평국東平國에 속해 있다. 지금의 동평주東平州가 바로 그 지역이다. 의
정후正后이다. 그 사람됨이 지극히 추하기 짝이 없어 절구 같은 머리와 움푹 꺼진 눈,
注+③ 요두凹頭는 정수리가 우묵하게 꺼진 것이다. 오류이다. 길쭉한 손가락과 굵직한 뼈마디,
注+④ ≪후한서≫ 주注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지指’가 ‘장壯’으로 되어 있다. ‘대절大節’은 뼈마디가 크다는 말이다. 들창코와 튀어나온 목젖,
注+⑤ ‘앙卬’은 ‘앙仰’과 같으니, ‘앙비仰鼻’는 드러난 콧구멍이다. ‘후喉’는 인후咽喉이니, ‘결후結喉’는 불룩하게 튀어나온 목젖이다. 두꺼운 목과 듬성한 머리털, 굽은 허리와 불거진 흉골에다
注+⑥ ‘절요折腰’는 낙타처럼 솟은 등이다. ≪후한서≫ 주注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출出’이 ‘철凸’로 되어 있다. 철흉凸胸은 흉골胸骨이 돌출되었다는 말이다. 피부는 마치 옻칠한 듯 검었다.
그리하여 나이 마흔이 되도록
注+⑦ ≪초학기≫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사四’가 ‘삼三’으로 되어 있다.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없어 제 스스로 시집을 가겠다고 떠들고 다녔는데도 팔리지 못한 나머지
注+⑧ ‘현衒’는 판다는 뜻이니, 스스로 과시하여 팔리기를 구한다는 말이다. ≪초학기≫ 및 ≪후한서≫ 주注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현衒’이 ‘행行’으로 되어 있다. 떠돌아다니며 버림받은 신세가 되어 안주할 곳이 없었다.
注+⑨ ‘집執’은 ‘처處’와 같다. 떠돌아다니며 버림받아 거처가 없음을 말한다.注+⑩ 【집주集注】 내가 상고해보건대, ‘집執’은 응당 ‘집우執友’의 ‘집執’과 같이 해석해야 한다.
이에
을 털어내고
注+① ‘갈褐’은 모포毛布이다. ‘단갈短褐’은 그 가난함을 말한다. 스스로
선왕宣王의 궁궐에 나아가
알자謁者에게 일러 말하기를 “저는
제齊나라의 팔리지 못한 여자입니다. 군왕의
성덕聖德을 듣고 청소하는
후궁後宮의 대열에 끼기를 원하여
사마문司馬門 밖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으니,
注+② ≪삼보황도三輔黃圖≫ 권卷2 〈한궁漢宫〉에 “궁宮의 외문外門이 사마문司馬門이다.”라고 하였고,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 장락궁長樂宮, 감천궁甘泉宮에는 사면四面에 모두 공거사마문公車司馬門이 있다.”라고 하였다. 왕께서는 부디 허락하여 주소서.” 하였다.
알자가 이 말을 아뢰니, 선왕이 한창 점대漸臺에서 주연酒宴을 베풀고 있었는데 좌우左右 근신近臣들이 이를 듣고는 모두 입을 가리고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이는 천하의 얼굴 두꺼운 여자로다. 어찌 괴이하지 않은가.” 하였다.
이에
선왕宣王이 그녀를 불러 본 뒤, 일러 말하기를 “예전에
선왕先王께서
과인寡人을 위해 배필을 정해주어 모두 이미
작위爵位를 갖추고 있다. 지금 부인이
향리鄕里의
에게조차 용납받지 못하면서
만승萬乘 군주에게 요구하려 하니, 또한 무슨 특이한 능력이라도 있느냐?” 하니, 종리춘이 대답하기를 “없습니다. 다만 대왕의 아름다운
의義를 흠모할 따름입니다.” 하였다.
선왕이 말하기를 “비록 그렇지만 무엇을 잘하느냐?”
注+① 【교주校注】 ‘선善’이 구본舊本에는 ‘희喜’로 잘못되어 있다. ≪태평어람太平御覽≫을 따라 교감校勘 개정改正하였다. 아래도 같다. ≪신서新序≫에도 잘못되어 있다. 하니, 한참 뒤에 말하기를 “일찍이
은신隱身을 잘했습니다.”
注+② ‘은隱’은 은어隱語이다. 하였다. 선왕이 말하기를 “
은신술隱身術은 정말이지 과인이 원하는 것이다. 시험 삼아 한번 해보아라.” 하였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注+③ 상고해보건대, 이 7자는 ≪신서≫에도 똑같이 되어 있는데, 이해할 수 없다. 정말로 그렇다면 이는 은신술隱身術이지 은어隱語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의文義를 자세히 살펴보면, ‘언미졸言未卒’ 아래가 아마도 응당 4자로 되어야 할 듯하니, 이것이 곧 이른바 ‘은隱’이다. 선왕이 크게 놀라 곧바로
은서隱書를 펼쳐 읽어보고
注+④ ≪한서漢書≫ 권卷30 〈예문지藝文志〉의 에 대한 안사고顔師古의 주注에, 유향劉向의 ≪별록別錄≫을 인용하여 이르기를 “은서隱書는 그 말을 의심스럽게 하여 물을 경우 대답하는 자가 곰곰이 이를 생각하면 모두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물러나와 이를 궁구해보았으나
注+⑤ ≪신서≫에는 ‘추推’가 ‘유惟’로 되어 있다. 역시 깨치지 못하였다.
이튿날 또다시 불러서 물어보았는데, 은신술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고 단지 눈을 치뜨고 이를 깨물고 손을 들어 무릎을 치면서 말하기를 “위태하다. 위태하다.” 하였다. 이와 같이 네 차례나 하자, 선왕이 말하기를 “가르침을 듣고 싶다.” 하니,
종리춘이 대답하기를 “대왕께서 나라에 임금 노릇을 하고 있는 지금, 서쪽으로는 횡포한 진秦나라라는 근심이 있고 남쪽으로는 강한 초楚나라라는 원수가 있어 밖으로는 두 나라의 환난이 있고, 안으로는 간신들만 우글거려 백성들이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대왕의 춘추가 마흔인데도 장성한 아들을
태자太子로 세우지 않고, 자식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부인들에게만 관심을 쏟아, 좋아하는 것만 존중하고 의지할 것은 소홀히 하고 계십니다. 하루아침에
注+① 【교주校注】 의 교주校注에 이르기를 “〈이弛는〉 응당 ‘타阤’가 되어야 한다. ≪국어國語≫ 위소韋昭의 주注에 하였다.”라고 하였다. 사직社稷이 안정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첫 번째 위태로움입니다.
5층이나 되는
점대漸臺에는
황금黃金과
백옥白玉,
과
,
비취翡翠와
주기珠璣로 얽고 장식하여
注+② ≪신서新序≫에는 ‘농籠’이 ‘용龍’으로 되어 있다. 이는 ‘연㰍’과 같으니, ‘연㰍’은 방실房室의 창窓이다. 낭간琅玕으로 창문을 장식하고, 또 비취翡翠와 주기珠璣로 그 사이를 얽어서 화려한 장식을 삼았다는 말이다. ≪신서新序≫에는 ‘막락幕絡’이 ‘막락莫落’으로 되어 있으니, 발음과 뜻이 또한 똑같다. 만백성의 피폐함이 극에 달했으니, 이것이 두 번째 위태로움입니다.
어진 인재들은 산림山林에 숨어 있고 아첨하는 무리들만 좌우左右에 횡행하여 간사하고 거짓된 소인들만 조정에 가득한 나머지 직간直諫하는 충신들은 통하여 들어갈 길이 없으니, 이것이 세 번째 위태로움입니다.
주연酒宴에 빠져서 밤으로 낮을 잇고
여악女樂의
가무歌舞와 광대놀이로
注+③ ‘배俳’는 희학戲謔함이다. ‘우優’는 광대이다. 어지러이 크게 웃느라 밖으로는
제후諸侯의
예禮를 닦지 않고 안으로는 국가의 정치를 주관하지 않고 계시니, 이것이 네 번째 위태로움입니다. 그러므로 ‘위태하다. 위태하다.’라고 한 것입니다.” 하였다.
제종리춘齊鍾離春
이에
선왕宣王이
위연喟然히 탄식하며 말하기를 “통렬하도다,
무염군無鹽君의 말이여. 이제야 처음으로 듣다니!” 하고는, 이에
점대漸臺를 허물고
여악女樂을 파하였으며, 아첨하는 무리들을 물리치고 아로새긴 장식품을 제거하였으며,
병마兵馬를 선발하고 창고를 채웠으며, 사방으로
공문公門을 열어
注+① ‘벽辟’은 ‘벽闢’과 같으니, 연다는 뜻이다. ≪신서新序≫에는 ‘벽闢’으로 되어 있다. 직언直言하는 이들을 불러들여
한미寒微한 선비들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며, 점을 쳐서
길일吉日을 택한 뒤
태자太子를 세우고
를 나오게 하였으며,
무염군無鹽君을
왕후王后로 삼았으니,
제齊나라가 태평하게 된 것은
추녀醜女의 힘이었다.
군자가 이르기를 “
종리춘鍾離春은 바르고 말을 잘하였다.”라고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