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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1)

열녀전보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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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許穆夫人
許穆夫人者 衛懿公之女注+① 据左傳, 是懿公之妹. 此言是其女, 又言懿公不死於翟難, 俱與左傳不合, 疑亦本於魯詩說也.注+② 【校注】 左傳許穆夫人, 公子頑所生, 與此不同. 或女下脫弟字. 許穆公之夫人也 許求之할새 齊亦求之어늘 懿公將與許하니 女因其傅母而言曰 古者諸侯之有女子也 所以苞苴玩弄注+③ 苞苴, 裹魚肉. 玩好, 謂珠玉. 所以下, 當脫爲字. 楚昭越姬傳, 有爲字, 弄作好.하여 繫援於大國也니이다
言今者 許小而遠注+④ 言字, 衍也.注+⑤ 【校注】 大父曰 “言, 疑意之譌.” 案意․抑, 古通.하고 齊大而近하나니이다 若今之世 强者爲雄이니 如使邊境有寇戎之事 維是四方之故호대 赴告大國이니 妾在 不猶愈乎잇가
今舍近而就遠하고 離大而附小 一旦有車馳之難 孰可與慮社稷이니잇가하여늘 衛侯不聽하고 而嫁之於許하다
其後翟人攻衛하여 大破之로되 而許不能救 衛侯遂奔走하여 涉河而南하여 至楚邱하니 齊桓往而存之하고 遂城楚邱以居하다 衛侯於是 悔不用其言이라
當敗之時하여 許夫人馳驅而弔唁衛侯하고 因疾之而作詩云注+① 疾, 怨也. 怨先時不用其言, 今日許果不能救衛也. 載馳載驅하여 歸唁衛侯호리라 驅馬悠悠하여 言至于漕러니 大夫跋涉이라 我心則憂호라 旣不我嘉일새 不能旋反호라 視爾不臧이나 注+② 嘉, 美也. 臧, 善也. 言許人既無救患分災之美, 故衛不能復反其國都, 前日行嫁時, 固視爾不善矣, 我之思慮, 豈不遠乎? 又言許不救衛, 故衛不能濟河而北. 前日之思慮, 豈不甚神乎? 三章又言女子之性, 固善憂思. 然亦各有道理, 許人不知而過責我, 是乃眾幼穉且狂簡, 不更歷於事耳. 四章又言許人既不足恃, 必須求援於大邦. 當時大邦, 固莫如齊矣, 而臣無忠信可任使者, 果誰可依乎? 誰使至乎? 反覆思維, 莫如我身往齊國求救耳. 蓋齊桓之存衛, 許夫人之力也. 禮夫人非有大故, 不越境而親, 自如齊非禮之正, 義不得已. 故云大夫君子, 無我有尤也.호라 君子善其慈惠而遠識也
頌曰
衛女未嫁
謀許與齊로다
女諷母曰
齊大可依로다
衛君不聽이러니
後果遁逃注+① 逃字失韻, 蓋誤.로다
許不能救하니
女作載馳로다


허목부인許穆夫人의 딸이자注+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의거해보면 허목부인은 의공懿公의 누이이다. 여기에서는 그의 딸이라 하고, 또 의공이 적인翟人에 죽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모두 ≪춘추좌씨전≫과 맞지 않으니, 아마도 의 설에 근본한 듯하다.注+② 【교주校注 여기와 같지 않다. 아마도 ‘’ 아래에 ‘’자가 빠진 듯하다. 허적 목공穆公의 부인이다. 처음 허나라에서 그녀에게 구혼하였을 때 나라에서도 그녀에게 구혼하였다. 의공이 장차 허나라에 시집보내려 하자, 딸이 그 를 통해 말하기를 “옛날에 제후에게 딸이 있으면 뇌물이나 노리개 감으로注+완호玩好’는 진주와 옥을 이른다. ‘소이所以’ 아래에 응당 ‘’자가 빠졌을 것이다. 삼아 대국에 의지하거나 원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허나라는 작고 멀리 있으며注+④ ‘’자는 연자衍字이다.注+⑤ 【교주校注대부大父(양옥승梁玉繩)가 말하기를 “‘’자는 아마 ‘’자의 잘못인 듯하다.”라고 하였다. 상고해보건대, ‘’와 ‘’은 옛날에 통용하였다. 제나라는 크고 가까이 있습니다. 지금 같은 세상에는 강한 자가 영웅이니, 만약 변경에 적군이 침범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사방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국에 달려가 고해야 하는데, 첩이 있으면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
지금 가까운 나라를 버리고 먼 나라를 따르며 큰 나라를 떠나고 작은 나라에 붙으면 하루아침에 전쟁의 재난이 생길 경우 누구와 더불어 사직을 염려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러나 위후衛侯는 듣지 않고 딸을 허나라에 시집보냈다.
그 뒤 허나라가 구원해주지 못하였다. 위후衛侯가 마침내 달아나 하수河水를 건너 남쪽으로 가서 에 이르렀는데, 이 가서 위후를 보전시켜주고 마침내 초구에 성을 쌓아 거처하게 하였다. 위후는 이에 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허목부인許穆夫人허목부인許穆夫人
위나라가 패망할 때를 당하여 허목부인은 말을 몰고 달려가 위후를 위문하였다. 이어 이를 원망하면서 注+① ‘’은 원망한다는 뜻이니, 이전에 자기 말을 듣지 않다가 오늘날 허나라가 과연 위나라를 구원하지 못함을 원망함이다. “말 달리고 수레 몰아, 돌아가 위후를 위문하리라. 말 몰기를 멀리하여, 조읍漕邑에 이르려 하였는데, 대부들이 발섭跋涉하고 뒤쫓아 오는지라, 내 마음에 근심하노라. 이미 나를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지라, 곧바로 돌아가지 못하노라. 너에게 좋지 않게 여김을 당하나, 내 그리움은 잊을 수 없노라.”注+② ‘’는 아름답다는 뜻이고, ‘’은 좋다는 뜻이다. “허적나라 사람들에게 이미 아름다움이 없기 때문에 나라가 그 국도國都를 회복할 수 없으니, 지난 날 출가하였을 때 진실로 너에게 좋지 않게 여김을 당하였으나, 나의 사려가 어찌 원대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또 “허나라가 위나라를 구원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위나라가 하수河水를 건너 북쪽으로 가지 못하였으니, 지난날의 사려가 어찌 매우 신묘하지 않았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환공桓公이 위나라를 보전해준 것은 허부인許夫人의 힘이다. 부인夫人대고大故가 있지 않으면 국경을 넘어 근친覲親하러 갈 수 없으니, 본디 제나라에 가는 것은 의 바름이 아니나 의리상 부득이해서이다. 그러므로 “대부大夫군자君子들아. 나를 허물하지 말라.”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니, 군자가 그 자애로운 성품과 원대한 식견을 훌륭하게 여겼다.
은 다음과 같다.
위후의 딸이 출가하기 전에
허나라와 제나라를 가늠질하였네
딸이 보모를 통해 풍간하기를
제나라가 대국이라 의지할만하다 했지
위나라 군주가 듣지 않더니만
뒤에 과연 도망하게 되었도다注+① ‘’자는 이 맞지 않으니, 아마 잘못되었을 듯하다.
허나라가 구원하지 못하니
부인은 〈재치載馳〉 시를 지었다네


역주
역주1 許 穆公 : 許나라 임금으로, 성은 姜이고 이름은 新臣이다.
역주2 夫人 : ≪禮記≫ 〈曲禮 下〉에 “天子의 妃를 ‘后’라 하고, 諸侯의 아내를 ‘夫人’이라 하고, 大夫의 아내를 ‘孺人’이라 하고, 士의 아내를 ‘婦人’이라 하고, 庶人의 아내를 ‘妻’라 한다.[天子之妃曰后 諸侯曰夫人 大夫曰孺人 士曰婦人 庶人曰妻]”라고 하였다.
역주3 衛 懿公 : 衛나라 임금으로, 성은 姬이고 이름은 赤이다.
역주4 魯詩 : 漢나라 초기에 魯나라 사람 申培가 전한 ≪詩經≫으로, 西晉 때 망실되었다. 참고로 한나라 초기에 전해진 ≪시경≫에는 ≪魯詩≫와 齊나라 사람 轅固가 전한 ≪齊詩≫, 燕나라 사람 韓嬰이 전한 ≪韓詩≫가 있었는데, 모두 망실되고 지금은 ≪韓詩≫ 가운데 ≪外傳≫만 남아 있다. 또 魯나라 사람 毛亨과 毛萇이 전한 ≪毛詩≫가 있는데, 이것이 지금의 ≪시경≫이다.
역주5 춘추좌씨전에는……소생으로 : ≪春秋左氏傳≫ 閔公 2년 조에 “당초 衛 惠公이 즉위하였을 때 나이가 어리니, 齊人이 昭伯을 시켜 宣姜과 姦通하게 하였다. 昭伯이 반대하였으나 강제로 간통시켜 齊子․戴公․文公․宋桓夫人․許穆夫人을 낳았다.[初 惠公之卽位也少 齊人使昭伯烝於宣姜 不可 强之 生齊子戴公文公宋桓夫人許穆夫人]”라고 하였다. ‘昭伯’은 惠公의 庶兄으로, 宣公의 庶子 頑이다.
역주6 傅母 : 옛날에 귀족의 자녀를 보육하는 연로한 여인으로, 保母를 가리킨다.
역주7 苞苴는……꾸러미이고 : ‘苞’는 생선이나 고기를 포장하는 부들로 만든 꾸러미[蒲包]를 뜻하고, ‘苴’는 물건을 담는 풀로 짠 고리[草藉]를 말한다. 후에 뇌물을 줄 때는 반드시 포장해야 하므로 뇌물을 뜻하게 되었다.
역주8 楚昭越姬傳에는……있다 : 본서 권5 〈節義傳 楚昭越姬〉에 “그러므로 소첩의 몸을 뇌물이나 노리개 감으로 삼았습니다.[故以婢子之身 爲苞苴玩好]”라고 하였는데, 이를 가리킨다.
역주9 翟人 : 고대 북방에 있던 민족으로, ‘翟’은 ‘狄’과 통용한다.
역주10 그……격파하였는데 : 참고로 ≪春秋左氏傳≫ 閔公 2년 조에 “겨울 12월에 狄人이 위나라를 침벌하였다. 衛 懿公은 鶴을 좋아하여 학 중에는 大夫의 지위에 올라 軒을 타는 학까지 있었다. 적인과 전쟁하려 할 때 갑옷을 받은 國人들이 모두 ‘학에게 싸우게 하라. 학은 실로 대부의 祿과 地位가 있지만 우리는 아무 지위도 없으니 어찌 싸울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의공이 石祁子에게 玦을 주고 甯莊子에게 화살을 주어 도성을 지키게 하며 말하기를 ‘이것으로 나라를 도와 이로운 쪽을 선택해 일을 처리하라.’ 하고, 부인에게 수놓은 옷을 주면서 ‘저 두 사람의 명을 따르라.’고 하였다. 그런 뒤에 渠孔을 戎車의 御로 삼고, 子伯을 車右로, 黃夷를 前驅로, 孔嬰齊를 後軍으로 삼아 적인과 熒澤에서 전쟁하다가 衛나라 군사가 大敗하니 적인이 드디어 위나라를 멸망시켰다.[冬十二月 狄人伐衛 衛懿公好鶴 鶴有乘軒者 將戰 國人受甲者皆曰 使鶴 鶴實有祿位 余焉能戰 公與石祁子玦 與寗莊子矢 使守曰 以此贊國 擇利而爲之 與夫人繡衣曰 聽於二子 渠孔御戎 子伯爲右 黃夷前驅 孔嬰齊殿 及狄人戰于熒澤 衛師敗績 遂滅衛]”라고 하였다.
역주11 楚邱 : 지명으로, 지금의 河南省 滑縣의 동쪽에 있었다.
역주12 齊 桓公 : 제나라 임금으로, 姜姓 呂氏이고 이름은 小白이다. 釐公의 아들이고, 襄公의 동생으로, 즉위한 후 管仲을 중용하여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春秋五霸의 하나가 되었다.
역주13 시를……하니 : ≪詩經≫ 〈鄘風 載馳〉에 보인다. 참고로 〈毛序〉에 “〈載馳〉는 許穆夫人이 지은 것이니, 宗國이 전복됨을 민망히 여기고 구원하지 못함을 스스로 서글퍼한 것이다. 衛 懿公이 狄人에게 멸망당하여 國人이 분산되어 漕邑에 노숙하고 있으니, 허목부인이 위나라의 멸망을 안타까워하고 허나라가 힘이 적어 구원하지 못함을 슬퍼하여 위나라로 돌아가 그 오라비인 戴公을 위문하려 하였으나 또 의리상 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읊은 것이다.[載馳 許穆夫人作也 閔其宗國顚覆 自傷不能救也 衛懿公 爲狄人所滅 國人分散 露於漕邑 許穆夫人 閔衛之亡 傷許之小力不能救 思歸唁其兄 又義不得 故賦是詩也]”라고 하였다.
역주14 환란을……분담하는 : ≪春秋左氏傳≫ 僖公 元年 조에 “侯伯이 환란을 구제하고 재해를 분담하고 죄 있는 자를 토벌하는 것이 예이다.[凡侯伯救患分灾討罪禮也]”라고 하였다.
역주15 3章에서는……말하였다 : ≪詩經≫ 〈鄘風 載馳〉 3章에 “저 阿丘에 올라가 貝母를 캐노라. 여자가 근심을 잘하는 것은 또한 각기 道가 있거늘, 허나라 사람들은 이를 허물하니 저 사람들은 어리고 또 미쳤도다.[陟彼阿丘 言采其蝱 女子善懷 亦各有行 許人尤之 衆穉且狂]”라고 하였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역주16 4章에서는……말하였다 : ≪詩經≫ 〈鄘風 載馳〉 4章에 “내 들판을 걸어가니 우북한 보리로다. 큰 나라에 하소연하고프나 누구를 통하며 누구에게 가야 하나. 大夫와 君子들아 나를 허물하지 말지어다. 그대들이 생각을 백방으로 하나 내가 가는 것만 못하니라.[我行其野 芃芃其麥 控于大邦 誰因誰極 大夫君子 無我有尤 百爾所思 不如我所之]”라고 하였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역주17 我思不遠 : ≪詩經集傳≫ 〈鄘風 載馳〉 朱熹의 註에 “遠은 忘과 같다.[遠猶忘也]”라고 하였다.

열녀전보주(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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