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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2)

열녀전보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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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魯宣繆姜
姜者 齊侯之女 魯宣公之夫人이요 成公母也 聰慧而行亂이라 故諡曰繆注+① 諡法, 名與實爽, 曰繆.이라
成公幼 繆姜通於叔孫宣伯하니 名喬如注+② 【校注】 喬, 左傳作僑. 喬如與繆姜으로 謀去季孟而擅魯國이라
晉楚戰於鄢陵이어늘 公出佐晉이라 將行 姜告公호되 必逐季孟이어다 是背君也니이다
公辭以晉難하고 請反聽命한대 又貨晉大夫注+③ 大夫, 卻犨也.하여 使執季孫行父而止之하고 許殺仲孫蔑하면 以魯士晉爲內臣注+④ 士, 事也. 內臣, 比於晉臣也.이라
魯人不順喬如하고 明而逐之注+⑤ 明與盟同. 左傳 “出叔孫僑如而盟之.”한대 喬如奔齊 魯遂擯繆姜於東宮이라
始往하여 繆姜使筮之하니 遇艮之注+① 六, 左傳作入, 此誤.이라 史曰 是謂艮之隨 其出也 君必速出하리다
姜曰 亡是注+② 亡, 讀音無, 無是, 言無此事也. 舊讀以亡斷句, 是屬下句, 非.리라 於周易曰 隨 元亨利貞하니 无咎라하니라 善之長也 嘉之會也 義之和也 故不可誣也
是以雖隨无咎注+③ 終, 左傳作然, 此誤也. 然者, 然上文, 言有此四德也.어니와 今我婦人而與於亂하며 固在下位而有不仁注+④ 婦人卑於丈夫, 故云在下位.하니 不可謂元이요 不靖國家하니 不可謂亨이요 作而害身하니 不可謂利 棄位而하니 不可謂貞注+⑤ 放, 左傳作姣, 此字形之誤也. 釋文姣, 嵇叔夜音效. 正義曰 “服虔讀姣爲放效之效, 蓋此本作效, 因效又誤作放耳.이라
有四德者 隨而無咎어니와 我皆無之하니 豈隨也哉 我則取惡하니 能無咎乎 必死於此 不得出矣리라 卒薨於東宮이라
君子曰 惜哉 繆姜이여 雖有聰慧之質이나 終不得掩其淫亂之罪라하니라 詩曰 士之耽兮 猶可說也어니와 女之耽兮 不可說也로다하니 此之謂也
頌曰
繆姜淫泆하고
宣伯注+① 夫子曰 “是阻, 疑寔怚, 字之誤也. 寔與實, 古字通. 怚與姐, 音義同. 說文怚, 驕也. 文選詩注, 怚作姐. 玉篇怚秦․呂切.”로다
謀逐季孟하고
欲使專魯로다
旣廢見擯하니
心意摧下로다
後雖善言이나
終不能補로다


7-8 의 부인 목강繆姜
목강繆姜나라 제후의 딸이요, 선공宣公부인夫人이요, 의 어머니이다. 목강은 총명하고 지혜로웠지만 행실이 음란하였다. 그러므로 시호를 이라 하였다.注+시법諡法에 명분과 실제가 어긋나는 것을 ‘’이라고 한다.
처음에 성공이 어렸을 때 목강은 사통私通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교여喬如였다.注+② 【교주校注】 ‘’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로 되어 있다. 교여는 목강과 함께 를 제거하고
나라와 나라가 에서 전쟁을 벌였는데, 성공이 〈병사를 거느리고〉 출정하여 나라를 도우려 하였다. 성공이 떠나려 할 때에 목강이 성공에게 고하기를 “반드시 계손씨와 맹손씨를 축출하여야 합니다. 그들은 주군主君을 배반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성공은 진나라의 위난危難을 구원한다는 이유로 거절하고서 돌아와 을 듣겠다고 청하였는데, 또 注+대부大夫각주卻犨이다. 계손행보季孫行父를 붙잡아 억류해두고 우리가 중손멸仲孫蔑을 죽이는 것을 허락해주면 노나라를 가지고 진나라를 섬겨 내신內臣이 되겠다고 하였다.注+④ ‘’는 섬김이다. ‘내신內臣’은 나라 신하에 나란히 하는 것이다.
노나라 사람들이 교여를 따르지 않고 맹약하여 축출逐出하려 하니注+과 같다. ≪춘추좌씨전≫에 “숙손교여叔孫僑如축출逐出하고서 맹약하였다.”라고 하였다. 교여가 나라로 달아났다. 노나라가 드디어 목강을 동궁東宮으로 내쳤다.
목강繆姜이 처음에 동궁東宮으로 가서 시초점蓍草占을 치게 하였는데 간괘艮卦로 변한 (☶☶)를 만났다.注+① ‘’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로 되어 있으니, 이곳의 ‘’은 오자이다. 가 말하기를 “이것은 간괘가 수괘隨卦(☱☳)로 한 것입니다. 는 나가는 뜻이니, 소군小君께서는 반드시 동궁에서 빨리 나가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니,
목강이 말하기를 “나갈 수 없을 것이다.注+는 독음이 이니, 무시無是는 이런 일이 없음을 말한다. 예전에 ‘’으로 를 끊고 ‘’를 아래 구에 붙여 읽었으니, 잘못이다.주역周易≫ 수괘의 괘사卦辭에 ‘‘하고 하고 하고 하니 가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이와 같기 때문에 진실로 〈사덕四德이 없는 자는 있는 것처럼〉 속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비록 수괘를 만나더라도 재앙이 없지만注+③ ‘’은 ≪춘추좌씨전≫에 ‘’으로 되어 있으니, 이곳의 ‘’은 오자이다. ‘’이라는 것은 윗글을 옳게 여기는 것이니, 이러한 사덕四德이 있음을 말한다. 지금 나는 부인婦人으로 에 참여하였으며, 본래 하위下位의 신분으로 불인不仁을 저질렀으니注+부인婦人장부丈夫보다 낮기 때문에 하위下位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이라 할 수 없고, 국가를 안정시키지 못하였으니 ‘’이라고 할 수 없고, 난을 일으켜 자신을 해쳤으니 ‘’라고 할 수 없고, 소군小君의 지위를 버리고서 간음하였으니 ‘’이라 할 수 없다.注+⑤ ‘’은 ≪춘추좌씨전≫에 ‘’로 되어 있으니, 이곳의 ‘’은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이다. ≪경전석문經典釋文≫에 “‘’를 혜숙야嵇叔夜(혜강嵇康)가 ‘’로 독음하였다.”라고 하였고, ≪춘추좌전정의春秋左傳正義≫에 말하기를 “이 ‘’를 방효放效의 ‘’로 독음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이곳에서는 ‘’로 되어 있는 것에 근본하였고, ‘’로 인하여 또 ‘’으로 잘못 쓴 것인 듯하다.
이 사덕이 있는 사람은 수괘를 만나도 재앙이 없지만 나에게는 사덕이 전혀 없으니 어찌 수괘의 괘사에 부합符合할 수 있겠는가. 내가 악행을 취하였으니 어찌 재앙이 없을 수 있겠는가. 반드시 여기서 죽을 것이고 나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목강은 끝내 동궁에서 죽었다.
군자君子가 말하기를 “애석하도다. 목강繆姜이여. 비록 총명하고 지혜로운 자질을 지녔으나 끝내 음란한 죄를 가릴 수 없었구나.”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은 다음과 같다.
목강繆姜은 행실이 음탕하였고
선백宣伯은 진실로 교만하였도다注+가 말하기를 “‘시조是阻’는 아마 ‘식저寔怚’일 듯하니,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이다. ‘’과 ‘’은 고자古字에 통용하였다. ‘’와 ‘’는 독음과 의미가 같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는 교만함이다.’ 하였고, ≪문선文選≫의 에 대한 에는 ‘’가 ‘’로 되어있고, ≪옥편玉篇≫에는 ‘반절反切이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계손씨季孫氏맹손씨孟孫氏를 축출하려 모의하고
선백에게 나라 정권을 장악하게 하려 하였도다
목강이 폐위되어 동궁東宮유폐幽閉되니
마음과 뜻이 꺾이고 말았도다
후에 점괘의 해설을 잘하였으나
끝내 잘못을 씻지 못하였도다


역주
역주1 魯 宣公 : 春秋時代 魯나라의 임금으로, 姬姓이고 이름은 倭이다. 文公의 아들이다.
역주2 成公 : 春秋時代 魯나라의 임금으로, 姬姓이고 이름은 黑肱이다. 宣公의 아들이다.
역주3 叔孫宣伯 : 魯나라의 宗室大夫이다. 叔孫氏로 이름은 喬如 또는 僑如라고도 한다. 叔牙의 曾孫이며 莊叔得臣의 아들이다.
역주4 季孫氏와 孟孫氏 : 孟孫氏와 叔孫氏와 季孫氏는 魯 桓公의 세 아들 仲慶父, 叔牙, 季友의 후손이다. 이들은 ‘三家’라 일컬어졌는데 당시 魯나라의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들을 합칭하여 ‘三桓’이라고도 한다. 孟孫氏는 仲孫氏라고도 한다. 이 당시 季孫氏의 大宗은 季孫行父 즉 季文子였고, 孟孫氏의 大宗은 仲孫蔑 즉 孟獻子였는데, 두 사람은 일찍이 魯나라의 執政을 지냈다.
역주5 교여는……모의하였다 : ≪春秋左氏傳≫ 成公 16년 조에는 “宣伯이 穆姜과 私通하고서, 季孫氏와 孟孫氏를 除去하고 그 家産을 取하고자 하였다.[宣伯通於穆姜 欲去季孟而取其室]”라고 하였다.
역주6 鄢陵 : 鄭나라의 邑名으로, 지금의 河南省 鄢陵縣 북쪽에 있었다.
역주7 교여와……하였다 : ≪春秋左氏傳≫ 成公 16년 조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宣伯이 郤犫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魯나라에 季氏와 孟氏가 있는 것이 晉나라에 欒氏와 范氏가 있는 것과 같아 政令이 이들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지금 저들이 計劃하기를, ‘晉나라는 政令이 여러 곳에서 나와 따를 수가 없으니, 차라리 齊나라와 楚나라를 섬기다가 亡할지언정 晉나라를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貴國이 魯나라에서 뜻을 이루려면 行父를 抑留해 죽이십시오. 그러면 나는 이곳에서 蔑을 죽이고서, 두 마음을 품지 않고 晉나라를 섬기겠습니다. 우리 魯나라가 두 마음을 품지 않으면 작은 나라들도 晉나라와 和睦해질 것이지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行父는 魯나라로 돌아와서 반드시 晉나라를 背叛할 것입니다.[宣伯使告郤犫曰 魯之有季孟 猶晉之有欒范也 政令於是乎成 今其謀曰 晉政多門 不可從也 寧事齊楚 有亡而已 蔑從晉矣 若欲得志於魯 請止行父而殺之 我薨蔑也 而事晉 蔑有貳矣 魯不貳 小國必睦 不然 歸必叛矣]”라고 하였다.
역주8 : ≪春秋左氏傳≫에는 ‘穆’으로 되어 있다.
역주9 太史 : 官名으로, 국가의 典籍과 천문․역법 등의 일을 관장하였다.
역주10 元은……으뜸이고 : ≪春秋左氏傳≫ 襄公 9年 5月 조에는 ‘元은 신체의 가장 높은 곳이다.[元 體之長也]’로 되어 있다. 元은 머리이다.
역주11 亨은……모임이고 : 亨은 宴享이다. 嘉禮를 행할 때 반드시 宴享을 베풀어 主人과 賓客이 있기 때문에 ‘모임[會]’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12 利는……和合함이고 : ≪大戴禮≫ 〈四代〉에 “義는 利의 근본이다.[義 利之本也]”라고 하였다. 古人의 義利觀에 근거하면 公利를 행하는 것을 義라 여기고, 私利를 행하는 것을 利라 여기고, 利가 조화로운 것을 公利라고 여겼다.
역주13 貞은……根幹이다 : ≪周易≫ 乾卦 〈文言傳〉에 “貞固함이 일의 根幹이 될 수 있다.[貞固足以幹事]”라고 하였다.
역주14 服虔 : 後漢의 학자로, 初名은 重, 자는 子愼이다. 河南 滎陽 사람으로 九江太守를 역임하였다. ≪漢書≫ 등을 주석하고, ≪春秋左氏傳解≫를 찬술하였으며, 古文의 經學에 밝았다.
역주15 (六)[八] : 저본에는 ‘六’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八’로 바로잡았다.
역주16 事之幹也 : ≪春秋左氏傳≫ 襄公 9년 5월 조에는 이 뒤에 ‘仁을 體現하면 사람들의 長이 될 수 있고, 아름다운 덕은 禮에 부합할 수 있고, 만물을 이롭게 하면 道義와 조화될 수 있고, 성실하고 견고하면 일을 主幹할 수 있다.[體仁足以長人 嘉德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幹事]’라는 구절이 더 있다.
역주17 (終)[然] : 저본에는 ‘終’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然’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8 (放)[姣] : 저본에는 ‘放’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姣’로 바로잡았다.
역주19 남자의……없느니라 : ≪詩經≫ 〈衛風 氓〉에 보인다.
역주20 夫子 : 王照圓의 남편 郝懿行(1757~1825)으로, 자는 恂久, 호는 蘭皐이며 山東 棲霞 사람이다. 淸나라 때의 저명한 經學家이자 訓詁學者로, 벼슬은 戶部主事를 역임하였으며, 저서에 ≪爾雅義疏≫, ≪山海經箋疏≫, ≪易說≫, ≪書說≫, ≪春秋說略≫, ≪竹書紀年校正≫ 등이 있다.
역주21 (是阻)[寔怚] : 저본에는 ‘是阻’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寔怚’로 바로잡았다.

열녀전보주(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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