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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2)

열녀전보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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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 班女婕妤
班婕妤者 左曹越騎班况之女 漢孝成皇帝之婕妤也 賢才通辯이라 始選入後宫爲使注+① 小當作少, 少使位第十一等.라가 俄而大幸하여 爲婕妤
成帝遊於後庭 嘗欲與婕妤同輦이어늘 辭曰 觀古圖畫하니 賢聖之君 皆有名臣在側하고 三代之末主라야 乃有注+① 【校注】 漢書作嬖女. 今欲同輦하니 得無似之乎아하니 上善其言而止
太后聞而喜曰 古有樊姬러니 今有班婕妤라하니라 毎誦詩及窈窕徳女師之篇注+② 家, 漢書作象, 此字形之誤. 窈窕․德象․女師, 皆古詩篇名, 不知出何書. 必三復之하며 毎進見上疏 依古禮러라
自鴻嘉之後 成帝稍隆於女寵이라 婕妤進侍者李平이러니 平得幸하여 立爲婕妤 帝曰 始衛皇后 亦従微起라하고 乃賜平姓曰衛하니 所謂衛婕妤也
其後 趙飛燕姊有寵注+① 妹當作娣, 外戚傳作弟. 驕妒二字下文方見, 疑此衍也.하여 譖訴婕妤云 挟邪詛呪라한대
考問班婕妤注+② 呪俗祝字也. 婕妤二字應作重文, 此脫.하니 曰 妾聞死生有命하고 富貴在天이라하니 修正尚未蒙福이어든 爲邪欲以何望이리오
且使鬼神有知인댄 不受不臣之訴 如其無知인댄 訴之何益이리오 故弗爲也 上善其對而憐閔之하여 賜黄金百斤이라
時飛燕驕妒하니 婕妤恐久見危하여 求供養皇太后於長信宫한대 上許焉이라 婕妤退處東宫하여 作賦自傷曰
承祖考之遺徳兮 荷性命之俶靈注+① 俶, 善也. 經傳假借作淑耳. 見說文解字.이로다
登薄軀於宫闕兮 充下陳於後庭이로다
蒙聖皇之渥恵兮 當日月之盛明이로다
揚光烈之翕赫兮 奉隆寵於注+② 層, 外戚傳作增, 增成漢宮名.이로다
既過幸於非位兮 竊庶幾乎嘉時로다
毎寤寐而累息兮 申佩離以自思注+③ 離與縭同. 詩曰 “親結其縭.”로다
陳女圖而鏡鑑兮 顧女史而問詩로다
悲晨婦之作戒兮注+④ 婦人專男子之事, 比於牝鷄晨鳴也. 哀褒注+⑤ 艶, 外戚傳作閻, 是也. 谷永傳閻妻驕扇, 說者謂是魯詩也. 毛詩作艶妻, 此疑据毛詩改耳. 尤, 尤物也.로다
美皇英之女注+⑥ 女尼․據切, 舜當從外戚傳作虞. 女虞, 與下句母周相比對也. 榮任姒之母周로다
雖愚陋其靡及注+⑦ 靡及, 言不及古人也. 乎當作兮, 字形之誤耳. 敢舎心而忘玆리오
歴年歲而悼懼兮 閔繁華之不滋注+⑧ 繁與蕃同. 滋, 生也. 此言己生子不成, 比於蕃華易落也.로다
痛陽祿與柘觀兮而離災注+⑨ 觀, 外戚傳作館. 陽祿柘館, 俱離宮名. 生子於此, 仍失之也. 褓當作緥, 襁緥小兒衣也. 離, 遭也.로다
豈妾人之殃咎兮리오 將天命之不可求로다
白日忽以移光兮注+⑩ 【校注】 以, 漢書作已. 遂奄莫而昧幽注+⑪ 奄, 外戚傳作晻, 晻, 不明也. 與昧幽義複, 作奄爲長. 奄猶忽也, 莫讀爲暮, 奄暮, 忽然晩暮也.로다
猶被覆載之厚徳兮 不廢捐於罪尤로다
奉供養於東宫兮 託長信之末流로다
供灑掃於帷幄兮 永終死以爲期로다
願歸骨於山足兮 依松栢之餘休로다
重曰注+① 重猶亂也. 亂者, 理其繁辭, 重者, 申其餘意.
宫兮幽以清이여 應門閉兮禁闥扃이로다
華殿塵兮玉階苔하며 中庭萋兮緑草生이로다
廣屋兮幨帷晻注+② 外戚傳作廣室陰兮帷幄暗, 此蔭誤從草耳. 晻與暗同.하고 房櫳虗兮風冷冷이로다
感帷裳兮發하니 紛悴憏兮紈素聲注+③ 帷裳, 裳正幅也. 紅羅, 當作綺羅. 此與外戚傳俱誤作紅耳. 悴憏與萃蔡同. 外戚傳作綷縩, 文選琴賦注, 又引翠粲, 俱新衣聲也. 紈亦素也, 齊人工作之.이로다
神眇眇兮密靖處注+④ 【校注】 靖, 漢書作靚.하니 君不御兮誰爲荣이리오
俯視兮丹墀하니 思君兮履綦注+⑤ 綦音其, 履飾也.로다
仰視兮雲屋하니 雙涕兮横流注+⑥ 外戚傳無下字.로다
顧左右兮和顔하니 酌羽觴兮銷憂로다
惟人生兮一世 忽壹過兮若浮로다
己獨嚮兮髙明注+⑦ 【校注】 嚮, 漢書作亨.하니 處生民兮極休로다
勉娱精兮極樂注+⑧ 【校注】 娱, 漢書作虞.하여 與福禄兮無期로다
綠衣白華注+⑨ 外戚傳衣下有兮字, 此脫. 自古兮有之로다
至成帝崩하여 婕妤充奉園陵이러니 因葬園中이라
君子謂班婕妤辭同輦之言 盖宣后之志也 進李平於同列 樊姬之徳也 释詛祝之譛 定姜之知也 求供養於東宫之行也注+① 寡李未詳.注+② 【校正】 紹蘭案李當爲孝, 字之誤也. 寡孝卽陳寡孝婦, 專心養姑, 班婕妤求供養皇太后於長信宮, 其事正同. 故云寡孝之行也. 及其作賦하여는 哀而不傷하며 歸命不怨이라
詩云 有斐君子注+③ 【校注】 斐, 毛詩作匪.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로다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諼兮라하니 其班婕妤之謂也로다


8-14 반황班況의 딸
반첩여班婕妤 반황班况의 딸이요, 효성황제孝成皇帝첩여婕妤로 어질고 재능 있고 변론辯論에 능통하였다. 처음에 후궁後宫에 뽑혀 들어와 소사少使가 되었다가注+① ‘’는 응당 ‘’가 되어야 하니, 소사少使지위地位가 제11등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총애를 받아 첩여婕妤가 되었다.
성제成帝왕궁王宮후원後苑에서 노닐 적에 일찍이 반첩여와 연거輦車를 함께 타고자 하였다. 반첩여가 사양하여 말하기를 “고대古代도화圖畫를 보니 현성賢聖한 임금은 모두 명신名臣이 곁에 있었고, 에 이르러서야 총애하는 여인이 곁에 있었습니다.注+① 【교주校注】 〈‘여폐女嬖’는〉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 ‘폐녀嬖女’로 되어 있다. 지금 연거를 함께 타고자 하니 저들과 비슷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니, 성제가 그 말을 훌륭하게 여겨 그만두었다.
태후太后가 이 일을 듣고 기뻐하여 말하기를 “옛적에 가 있었는데, 지금은 반첩여가 있다.”라고 하였다. 반첩여는 매양 ≪시경詩經≫과 〈요조窈窕〉, 〈덕상徳象〉, 〈여사女師송독誦讀할 때마다注+② ‘’는 ≪한서≫에 ‘’으로 되어 있으니, 이는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이다. 〈요조窈窕〉와 〈덕상德象〉과 〈여사女師〉는 모두 고시古詩의 편명인데, 어느 책에 나오는지 알지 못하겠다. 반드시 세 번 반복하였으며, 매양 나아가 성제를 뵙고 소장疏章을 올릴 때마다 고례古禮에 의거하였다.
연간 이후로 성제成帝가 점점 총애하는 여자에게 깊이 빠지게 되었다. 반첩여班婕妤시녀侍女 이평李平을 성제에게 바쳤는데, 이평이 총애를 받아 첩여婕妤에 책봉되었다. 성제가 말하기를 “처음에 도 미천한 집안 출신이었다.”라고 하였다. 이에 이평에게 위성衛姓을 하사하니, 이가 바로 이른바 위첩여衛婕妤이다.
그 뒤에 조비연趙飛燕 자매가 총애를 받아注+① ‘’는 응당 ‘’가 되어야 하니,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는 ‘’로 되어 있다. ‘교투驕妒’ 2자는 아래 문장에 비로소 보이니, 아마 이곳은 연자衍字인 듯하다. 반첩여班婕妤참소譖訴하여 이르기를 “반첩여는 마음에 간사함을 품고 사람에게 재화災禍를 내려달라고 에게 저주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성제成帝가 반첩여를 심문審問하니,注+② ‘’는 ‘’의 속자俗字이다. ‘첩여婕妤’ 2자는 응당 글자가 중복되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빠졌다. 반첩여가 답하기를 “고 들었습니다. 몸을 닦아 행실을 바르게 해도 오히려 을 받지 못하는데, 사특한 욕심을 부려서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게다가 귀신이 지각知覺이 있다면 신하의 직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의 하소연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만일 지각이 없다면 하소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성제가 그 대답을 훌륭하게 여기고 불쌍히 여겨 황금黄金 백근百斤을 하사하였다.
이때 조비연趙飛燕이 교만과 질투를 부리자 반첩여班婕妤가 시일이 오래가면 자신이 위해危害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에서 황태후皇太后를 봉양하겠다고 청하였는데, 성제成帝가 허락하였다. 반첩여가 물러나 에 거처하면서 를 지어 스스로 상심하였다. 는 다음과 같다.
조상이 남긴 덕을 이어받아, 착하고 어진 품성을 지녔도다.注+① ‘’은 ‘’이니, 경전經傳가차假借하여 ‘’으로 썼을 뿐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보인다.
미천한 몸으로 궁궐에 올라, 후궁後宮의 아래 반열을 채웠도다.
성황聖皇의 후한 은혜를 입으니, 일월日月이 환하고 밝음과 같았도다.
성조聖朝흥성興盛함을 널리 떨치고, 에서 두터운 총애를 받들었도다.注+② ‘’은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는 ‘’으로 되어 있다. ‘증성增成’은 나라의 궁궐 이름이다.
이미 분수에 넘치는 총애를 받았으니, 아름다운 때를 기쁘게 여기노라.
매양 자나 깨나 길이 탄식하며, 거듭 향주머니를 차고 스스로 그리워하도다.注+③ ‘’는 ‘’와 같다.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
를 펼쳐놓고 경계로 삼고, 를 돌아보며 를 물었노라.
비탄悲嘆하고,注+부인婦人남자男子의 일을 오로지 하니,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미인美人임을 애통哀痛해하노라.注+⑤ ‘’은 ≪한서≫ 〈외척전〉에 ‘’으로 되어 있으니, 옳다. 〈곡영전谷永傳〉에 ‘염처閻妻가 교만 방자함을 부린다.’라고 하였는데, 설명하는 자가 ‘이는 ≪노시魯詩≫이다.’라고 하였다. ≪모시毛詩≫에 로 되어 있으니, 이곳에는 아마 ≪모시毛詩≫에 의거하여 고친 듯하다. ‘’는 절세미인絶世美人이다.
임금의 아내임을 아름답게 여기고,注+⑥ ‘’는 반절反切이다. ‘’은 응당 ≪한서≫ 〈외척전〉에 ‘’로 되어 있는 것을 따라야 한다. ‘여우女虞’는 아래 구의 ‘모주母周’와 서로 대구가 된다. 나라의 어머니임을 영화롭게 여기노라.
내 어리석고 비루하여 그들에게 미칠 수 없으나,注+⑦ ‘미급靡及’은 고인古人에게 미치지 못함을 말한다. ‘’는 응당 ‘’자가 되어야 하니,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이다. 감히 방심放心하여 이들을 잊으리오.
세월이 지나면서 마음이 두려우니, 활짝 핀 꽃이 생장하지 못함이 애련哀憐하도다.注+⑧ ‘’은 ‘’과 같고, ‘’는 생장함이다. 이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성장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니, 활짝 핀 꽃이 쉬이 떨어짐에 비유한 것이다.
에서 비통悲痛해하노니, 강보襁褓에 쌓인 아들이 연이어 재앙을 만났도다.注+⑨ ‘’은 ≪한서≫ 〈외척전〉에 ‘’으로 되어 있다. 양록陽祿자관柘館은 모두 이궁離宮의 이름이다. 이곳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연이어 잃은 것이다. ‘’는 응당 ‘’가 되어야 하니, 강보襁緥는 어린아이의 옷이다. 는 만남이다.
어찌 이 재앙을 일으켰으리오마는, 천명天命을 어이할 수 없도다.
대낮의 해가 홀연 서쪽으로 옮겨가,注+⑩ 【교주校注】 ‘’는 ≪한서≫ 〈외척전〉에 ‘’로 되어 있다. 끝내 홀연 저녁이 되어 어두워졌도다.注+⑪ ‘’은 ≪한서≫ 〈외척전〉에 ‘’으로 되어 있으니, ‘’은 밝지 않은 것이다. ‘매유昧幽’와 뜻이 중복되니, ‘’으로 쓰는 것이 좋다. ‘’은 홀연과 같고, ‘’는 ‘’로 읽으니, 엄모奄暮는 홀연히 저녁이 된 것이다.
오히려 천지 같은 황제의 후덕厚徳을 입어, 폄적貶謫되어 죄에 빠지지는 않았도다.
동궁東宫에서 황태후皇太后의 봉양을 받들어, 장신궁長信宮말석末席에 의탁하였도다.
휘장 사이에서 물 뿌리고 쓰는 일을 하면서, 종신토록 이곳에 머물기를 기약하였도다.
산기슭에 유골이 묻혀, 송백松栢의 짙은 그늘에 의지하길 원하노라.
다시 다음과 같이 읊었다.注+① ‘’은 ‘’과 같다. ‘’이라는 것은 그 번거로운 말을 정리하는 것이고, ‘’이라는 것은 그 남은 뜻을 거듭 펴는 것이다.
깊은 궁궐에 들어가 그윽하고 맑으나, 정문은 닫히고 작은 문은 빗장 걸렸도다.
화려한 궁전에 먼지 앉고 옥 계단에 이끼 끼며, 뜰 가운데 더부룩하게 푸른 풀 났도다.
넓은 궁궐 그늘져 휘장은 어둡고,注+②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는 ‘광실음혜유악암廣室陰兮帷幄暗’으로 되어 있으니, 여기의 ‘’은 잘못 ‘’를 따른 것뿐이다. ‘’은 ‘’과 같다. 방의 창살 듬성하여 바람이 냉랭하도다.
치마가 나부낌에 비단이 펄럭이니, 어지러이 스치는 흰 비단소리로다.注+③ ‘유상帷裳’은 치마의 정폭正幅이다. ‘홍라紅羅’는 응당 ‘기라綺羅’가 되어야 한다. 이곳과 ≪한서≫ 〈외척전〉에 모두 잘못 ‘’으로 되어 있다. ‘췌제悴憏’는 ‘췌채萃蔡’와 같다. ≪한서≫ 〈외척전〉에는 ‘최채綷縩’로 되어 있고, ≪문선文選≫ 〈금부琴賦에는 또 ‘취찬翠粲’으로 인용하였으니, 모두 새 옷에서 나는 소리이다. ‘’은 또한 흰 비단이니, 제인齊人이 만든 것이다.
외롭고 쓸쓸하여 고요히 지냄에,注+④ 【교주校注】 ‘’은 ≪한서≫ 〈외척전〉에는 ‘’으로 되어 있다. 황제께서 오지 않으니 누가 영광을 누리리오.
고개 숙여 붉은 섬돌 바라보니, 황제의 신발 장식 생각나는도다.注+⑤ ‘’의 독음은 ‘’이니, 신발의 장식이다.
고개 들어 바라보니, 두 줄기 눈물이 줄줄 흐르는도다.注+⑥ ≪한서≫ 〈외척전〉에는 ‘’자가 없다.
좌우를 돌아보니 모두 화락한 얼굴로, 술잔을 들어 근심을 풀고 있도다.
인생살이 한 세상이, 홀연히 뜬구름처럼 흘러가는도다.
나만 홀로 고명高明존귀尊貴를 누렸으니,注+⑦ 【교주校注】 ‘’은 ≪한서≫ 〈외척전〉에는 ‘’으로 되어 있다. 백성의 지극히 아름다움에 처하였도다.
마음을 즐기기에 힘써 즐거움 지극히 하여,注+⑧ 【교주校注】 ‘’는 ≪한서≫ 〈외척전〉에는 ‘’로 되어 있다. 복록福祿이 한정 없기를 바라노라.
는 슬픔을 노래했으니,注+⑨ ≪한서≫ 〈외척전〉에는 ‘’ 아래에 ‘’자가 있는데, 이곳에는 빠졌다. 예로부터 이런 일은 있었도다.
성제成帝붕어崩御하자 반첩여班婕妤을 수호하는 데 충당되었는데, 반첩여가 죽자 인하여 원릉에 장사 지냈다.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반첩여班婕妤연거輦車를 함께 타자는 성제成帝의 요구를 사양한 말은 의 뜻이요, 이평李平을 성제에게 바쳐 자신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한 일은 인덕仁徳이요, 저주의 참소를 푼 것은 의 지혜요, 동궁東宫에 물러나 황태후皇太后봉양奉養하는 일을 하기를 청한 것은 의 행실이다.注+① ‘과리寡李’는 미상未詳이다.注+② 【교정校正왕소란王紹蘭은 상고해보건대, ‘’는 응당 ‘’가 되어야 하니, 글자의 오류이다. ‘과효寡孝’는 바로 진현陳縣의 과부 효부孝婦이니, 마음을 오로지 하여 시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반첩여班婕妤장신궁長信宮에서 황태후皇太后를 봉양하겠다고 청하였으니, 그 일이 〈진현의 과부 효부와〉 정히 같기 때문에 ‘과효지행寡孝之行’이라고 한 것이다. 반첩여가 를 짓기에 이르러서는 운명으로 돌리고 남을 원망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문채나는 군자君子注+③ 【교주校注는 ≪모시毛詩≫에는 ‘’로 되어 있다. 잘라놓은 듯하고 다듬어 놓은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갈아놓은 듯하도다.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문채나는 군자君子여 끝내 잊을 수 없도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반첩여를 두고 이르는 말인 듯하다.


역주
역주1 婕妤 : ≪漢書≫ 〈昭帝紀〉 顔師古의 注에 “婕은 총애를 받음이고, 妤는 부인의 美稱이다. 그러므로 婕妤로써 宮中의 婦官을 명명하였다.[倢 接幸也 伃 美稱也 故以名宮中婦官]”라고 하였다. ‘婕妤’는 ‘倢伃’로도 쓴다.
역주2 左曹越騎 : 官名이다. 左曹越騎校尉로, 京師를 경비하는 將領의 하나이다.
역주3 (小)[少] : 저본에는 ‘小’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少’로 바로잡았다.
역주4 三代……군주 : 夏나라의 桀王, 商나라의 紂王, 周나라의 幽王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妺喜, 妲己, 褒姒 등의 여인으로 인하여 나라를 망쳤다.
역주5 樊姬 : 楚 莊王의 부인으로, 초 장왕에게 虞邱子가 賢者의 진로를 막는다고 풍자하여, 장왕으로 하여금 叔孫敖를 맞이하여 令尹으로 삼아 霸業을 이루게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2 〈楚莊樊姬〉에 보인다.
역주6 (女嬖)[嬖女] : 저본에는 ‘女嬖’로 되어 있으나, ≪列女傳校注≫에 의거하여 ‘嬖女’로 바로잡았다.
역주7 (家)[象] : 저본에는 ‘家’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象’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 鴻嘉 : 漢 成帝의 연호로, B.C. 20년부터 B.C. 17년까지 사용하였다.
역주9 衛皇后 : 漢 武帝의 皇后 衛子夫이다. 원래 平陽公主 집안의 歌女였는데, 뒤에 궁중으로 들어가 세 딸과 戾太子를 낳아 皇后가 되었다.
역주10 죽고……있다 : 司馬牛가 걱정하면서 말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兄弟가 있는데 나만이 홀로 없구나.[人皆有兄弟 我獨亡]”라고 하니, 子夏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죽고 사는 것은 命運이 있고 부유하고 귀하게 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 하였다. 君子가 恭敬하고 잃음이 없으며, 남과 더붊에 恭遜하고 禮가 있으면 四海의 안이 다 兄弟이니,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음을 걱정하겠는가?[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라고 하였다.(≪論語≫ 〈顔淵〉)
역주11 (妹)[娣] : 저본에는 ‘妹’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娣’로 바로잡았다.
역주12 (驕妒) : 저본에는 ‘驕妒’가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13 [婕妤] : 저본에는 ‘婕妤’가 없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4 長信宮 : 漢나라의 궁궐 이름으로, 太后가 거처하는 곳이다.
역주15 東宫 : 여기서는 長信宮을 가리킨다.
역주16 增成 : 後宮의 구역 이름이다. ≪漢書≫ 〈外戚傳〉의 顔師古의 注에 應邵의 말을 인용하기를 “後宮에 8구역이 있는데 增成은 3번째이다.[後宮有八區 增成第三也]”라고 하였다.
역주17 친히……매준다 : ≪詩經≫ 〈豳風 東山〉에 “친히 그 향주머니를 매주니, 아홉이며 열인 그 威儀로다. 新婚이 매우 아름다우니 舊婚이야 어떠하겠는고?[親結其縭 九十其儀 其新孔嘉 其舊如之何]”라고 하였다. 朱熹의 注에 “딸이 시집갈 때에 어머니가 딸을 경계하고 딸을 위하여 작은 띠를 채워주고 향주머니를 매주는 것이다. 그 威儀가 아홉이요 열이라는 것은 그 威儀의 많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18 女圖 : 婦女의 德行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병풍이다.
역주19 女史 : 古代 女官의 명칭이다. 글을 아는 婦女로 충임하였다. 王后의 禮儀 등에 관계되는 일을 관장하였다. 혹 世婦의 下屬이 되어 書寫와 文件 등의 일을 관장하기도 하였다.
역주20 晨婦가……됨을 : 여자가 국정에 간여함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周 武王이 殷 紂王을 토벌하러 가면서 “옛사람의 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말아야 하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하였다.[王曰 古人有言曰 牝鷄 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 하였다. 암탉은 紂의 애첩이었던 妲己를 두고 한 말이다.(≪書經≫ 〈周書 穆誓〉)
역주21 褒姒와 閻妻 : ≪한서≫ 〈谷永杜鄴傳〉에 “옛적에 褒姒가 나라를 다스려 宗周가 망하였고, 閻妻가 교만을 부려 日食이 일어나 좋지 못하게 되었다.[褒姒用國 宗周以喪 閻妻驕扇 日以不臧]”라고 하였다. 이는 周 幽王이 褒姒의 迷惑에 빠져 宗周가 망하고, 周 厲王의 총애를 받은 閻妻가 교만을 부려 國運이 좋지 못하게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22 艶妻 : ≪詩經≫ 〈小雅 十月〉에 “皇父가 卿士요, 番氏가 司徒요,……楀氏가 師氏가 되었거늘, 艶妻가 화를 일으키며 그대로 있도다.[皇父卿士 番維司徒……楀維師氏 艶妻煽方處]”라고 하였다. 艶은 아름다운 容色이다.
역주23 娥皇과 女英 : 堯임금의 딸이요, 虞舜의 두 妃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1 〈有虞二妃〉 참조.
역주24 太任과 太姒 : 모두 周室의 어머니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1 〈周室三母〉 참조.
역주25 陽祿과 柘觀 : 둘 다 漢代에 妃嬪이 거처하던 곳으로 上林苑에 있었다. 柘觀은 柘館으로도 쓴다.
역주26 : ≪列女傳校注≫와 ≪列女傳集注≫에는 모두 ‘增’으로 되어 있다.
역주27 (層)[增] : 저본에는 ‘層’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增’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8 (豔)[閻] : 저본에는 ‘豔’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閻’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9 : ≪漢書≫ 〈外戚傳〉에는 ‘郵’로 되어 있으니, 過失이라는 뜻이다. 이에 의거하여 번역하면 ‘褒姒와 閻妻의 過失을 哀痛해 한다.’는 뜻이 된다.
역주30 (舜)[虞] : 저본에는 ‘舜’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虞’로 바로잡았다.
역주31 : ≪列女傳校注≫와 ≪列女傳集注≫에는 모두 ‘兮’로 되어 있다.
역주32 (乎)[兮] : 저본에는 ‘乎’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兮’로 바로잡았다.
역주33 : ≪列女傳集注≫에는 ‘繈’으로 되어 있다.
역주34 (褓)[緥] : 저본에는 ‘褓’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緥’로 바로잡았다.
역주35 구름 궁궐 : 구름 노을처럼 빛나는 궁궐을 말한다. 晉나라 葛洪의 ≪西京雜記≫에 “漢 成帝가 일찍이 甘泉宮의 紫殿에 雲帳, 雲幄, 雲幙을 설치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이 三雲殿이라 하였다.[漢成帝曾於甘泉宮紫殿 設雲帳雲幄雲幙 世謂三雲殿]”라고 하였다.
역주36 綠衣와 白華 : 〈綠衣〉는 ≪詩經≫ 〈邶風〉의 篇名으로, 衛나라 莊姜이 妾에게 참소를 당하여 부인의 자리를 잃고서 상심하여 지은 시이다. 〈白華〉는 ≪詩經≫ 〈小雅〉의 篇名으로, 周 幽王의 后妃인 申后가 褒姒로 인해 쫓겨난 뒤 상심하여 지은 시이다.
역주37 園陵 : 帝王의 묘지로, 여기서는 漢 成帝의 延陵을 말한다.
역주38 : ≪列女傳校注≫와 ≪列女傳集注≫에는 모두 ‘玄’으로 되어 있다.
역주39 (蔭)[陰] : 저본에는 ‘蔭’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陰’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0 (紅)[綺] : 저본에는 ‘紅’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綺’로 바로잡았다.
역주41 (下) : 저본에는 ‘下’가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42 [兮] : 저본에는 ‘兮’가 없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43 周……宣姜 :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2 〈周宣姜后〉 참조.
역주44 楚……樊姬 :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2 〈楚莊樊姬〉 참조.
역주45 衛나라의……定姜 :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1 〈衛姑定姜〉 참조.
역주46 陳縣의……孝婦 :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4 〈陳寡孝婦〉 참조.
역주47 슬퍼하되……않으며 : 孔子가 말하기를 “≪詩經≫ 〈關雎篇〉은 즐거워하되 지나치지 않고, 슬퍼하되 和를 해치지 않는다.[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라고 하였다.(≪論語≫ 〈八佾〉)
역주48 (李)[孝] : 저본에는 ‘李’로 되어 있으나, 王紹蘭의 校正에 의거하여 ‘孝’로 바로잡았다.

열녀전보주(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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