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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2)

열녀전보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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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齊威虞姬
虞姬者 名娟之注+① 文選注引娟作損. 齊威王之姬也 威王卽位하여 注+② 選注引有“諸侯竝侵之”五字. 疑在此句下, 今脫去之.하니 注+③ 【校注】 六字舊脫. 從文選注引校增.佞臣周破胡專權擅勢하여 嫉賢妒能하여 卽墨大夫賢이로대 而日毁之하고 阿大夫不肖로대 反日譽之러라
虞姬謂王曰 破胡 讒諛之臣也 不可不退이니이다 齊有北郭先生者한대 賢明有道注+① 選注引有作於.하니 可置左右니이다
破胡聞之하고 乃惡虞姬하여 曰 其幼弱在於閭巷之時 嘗與北郭先生通하니이다
王疑之하여 乃閉虞姬於九層之臺하고 而使有司卽窮驗問이로대 破胡賂執事者하여 注+② 竟, 窮治之也.하니 執事者誣其辭而上之하다
王視其辭하니 不合於意注+① 疑其辭不閱實. 乃召虞姬而自問焉하니 虞姬對曰 妾娟之幸得蒙先人之遺體하여 生於天壤之間하여 去蓬廬之下하여 侍明王之讌이라가 泥附王著注+② 讌, 與燕同. 泥, 當作昵. 燕昵, 親近也. 附王著, 當作附著王, 誤倒其文耳.하여 薦床蔽席하고 供執掃除하고 掌奉湯沐 至今十餘年矣니이다
惓惓之心注+③ 惓惓, 猶拳拳也, 拳拳, 猶勤勤也. 明德馬皇后曰 “違慈母之拳拳乎?” 冀幸補一言이나 而爲邪臣所擠注+④ 擠, 排抵也.하여 湮於百重之下注+⑤ 湮, 墜也. 百重之下, 喻深也.러니 不意大王乃復見而與之語니이다
妾聞호니 玉石墜泥라도 不爲汚하고 柳下覆寒女라도 不爲亂注+⑥ 毛詩傳曰 “嫗不逮門之女, 國人不稱其亂.”注+⑦ 【集注】 道管案家語, 魯人有獨處室者, 隣之嫠婦, 亦獨處一室. 夜, 暴風雨至, 嫠婦室壞, 趨而託, 魯人閉戶而不納. 嫠婦自牖與之言 “[何不仁而不納我乎?” 魯人曰 “吾聞男女不六十不同居, 今子幼吾亦幼, 是以不敢納爾也.” 婦人]曰 “子何不如柳下惠? 嫗不逮門之女, 國人不稱其亂.” 魯人曰 “柳下惠則可, 吾固不可. 吾將吾之不可, 學柳下惠之可.”이라하니 積之於素雅注+⑧ 素, 猶故也. 雅, 猶常也. 積之於故常, 言其久也. 故不見疑也니이다 經瓜田不躡履하고 過李園不正冠이라하여늘 妾不避此하니 罪一也注+⑨ 姬言北郭先生賢, 自恨避嫌之不審也. 瓜田二語, 出古諺.니이다
旣陷難中하얀 有司受賂하여 聽用邪人하여 卒見覆冒注+⑩ 【集注】 猶覆盆意.로대 不能自明하니이다 妾聞호니 寡婦哭城 城爲之崩하고 亡士歎市 市爲之罷注+⑪ 左傳, 魯文公之夫人姜氏, 哭而過市, 市人皆哭, 疑此事也. 但亡士二字, 未知何字之誤. 夫子曰 “亡士歎市, 疑用伍子胥吹簫吳市, 事見春秋後語. 亡士二字, 非誤也.”라하니 誠信發內 感動城市하나니이다 妾之冤 明於白日이언마는 雖獨號於九層之內 而衆人莫爲豪釐注+⑫ 言衆人莫爲伸理也. 豪釐, 喻微小也. 賈子新書云 “十豪爲髮, 十髮爲釐.”하니 此妾之罪二也니이다
旣有汚名하고 而加此二罪하니 義固不可以生이어니와 所以生者 爲莫白妾之汚名也니이다 且自古有之하니 伯奇放野注+⑬ 尹吉甫聽後妻之譖, 逐孝子伯奇. 琴操有其事也.注+⑭ 【集注】 道管案水經注引揚雄琴清英云 “尹吉甫子伯奇至孝, 後母譖之, 自投江中, 衣帶藻. 忽夢見水仙, 賜其美藥. 惟念養親, 揚聲悲歌, 船人聞之而學之. 吉甫聞船人之聲, 疑似伯奇, 援琴作子安之操.” 又琴操 “履霜操者, 伯奇所作也. 伯奇母老, 吉甫更娶後妻, 生子曰伯邦. 乃譖伯奇於吉甫曰 ‘伯奇見妾有美色, 然有欲心.’ 吉甫曰 ‘伯奇爲人慈仁, 豈有此也?’ 妻曰 ‘試置妾空房中, 君登樓而察之.’ 後妻知伯奇仁孝, 乃取毒蜂綴衣領, 伯奇前持之. 於是吉甫大怒, 放伯奇於野. 編水荷而衣之, 采楟花而食之.”하고 申生被患하니 孝順至明이로대 反以爲殘注+⑮ 殘, 賊也. 言伯奇ㆍ申生, 皆以孝順, 誣被殘賊之名.하니이다
妾旣當死하니 不復重陳이어니와 然願戒大王하노니 群臣爲邪 破胡最甚하니이다 王不執政인댄 國殆危矣리이다
於是 王大寤하여 出虞姬하여 顯之於朝市하고 封卽墨大夫以萬戶하고 烹阿大夫與周破胡하여 遂起兵收故侵地하니 震懼하고 人知烹阿大夫하여 不敢飾非하고 務盡其職하니 齊國大治러라
君子謂 虞姬好善이라하니라 詩云 旣見君子라야 我心則降이라하니 此之謂也
頌曰
惰政하여
不治九年이로다
虞姬譏刺라가
反害其身이로다
姬列其事
上指皇天이로다
威王覺寤하여
卒距强秦이로다


6-9 의 첩 우희虞姬
우희虞姬는 이름이 연지娟之이니,注+ 위왕威王희첩姬妾이다. 위왕威王이 즉위한 뒤 9년이 지나도록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고 정사를 대신大臣에게 맡겨두니,注+② ≪문선≫ 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제후병침지諸侯竝侵之’ 5자가 더 있다. 아마 이 구절 아래에 있었던 듯한데, 금본今本에는 탈거脫去되었다. 제후諸侯들이 너도나도 침탈하였다.注+③ 【교주校注】 6자가 구본舊本에는 빠졌다. ≪문선≫ 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 따라 교감校勘 증보增補하였다. 이 당시 아첨하는 신하 주파호周破胡가 권세를 독점한 채 어질고 유능한 이들을 질시하여 대부大夫는 어진데도 날마다 헐뜯고 대부大夫는 어질지 못한데도 도리어 날마다 칭찬하였다.
이에 우희虞姬위왕威王에게 일러 말하기를 “파호破胡는 참소하고 아첨하는 신하이니, 물리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제나라에 북곽선생北郭先生이라는 이가 있는데, 어질고 명철하며 를 품고 있으니,注+① ≪문선文選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가 ‘’로 되어 있다. 좌우에 둘 만합니다.” 하였다.
파호가 이를 듣고 우희를 미워하여 말하기를 “그녀가 어린 시절 여염에 있을 때, 일찍이 북곽선생과 사통하였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왕이 이를 의심한 나머지, 우희를 9층의 누대 속에 유폐시키고 유사有司로 하여금 철저하게 조사 심문하게 하였는데, 파호가 담당자에게 뇌물을 주어 그녀의 죄로 매듭짓도록 하니,注+② ‘’은 끝까지 치죄治罪하는 것이다. 담당자가 그 진술을 거짓으로 꾸며 올렸다.
왕이 그 내용을 살펴보니, 자신의 생각과 합치하지 않았다.注+① 그 내용이 실정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것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이에 우희를 불러 직접 심문하니, 우희가 대답하기를 “저 연지娟之가 다행히 을 받아 천지 사이에 태어나 초가집 아래를 떠나와서 注+② ‘’은 ‘’과 같고, ‘’는 응당 ‘’이 되어야 하니, ‘연일燕昵’은 친근함이다. ‘부왕저附王著’는 응당 ‘부저왕附著王’이 되어야 하니, 그 문장이 잘못 도치된 것일 뿐이다. 자리를 깔아드리고 청소를 하고 목욕 시중을 든 지가 지금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절절한 제 마음으로는注+③ ‘권권惓惓’은 ‘권권拳拳’과 같고, ‘권권拳拳’은 ‘근근勤勤’과 같다. 행여 한 마디 말이 보탬이 되었으면 싶었으나 간사한 신하에게 배척을 당해注+④ ‘’는 배척함이다. 아득히 깊은 수렁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는데,注+⑤ ‘’은 추락함이다. ‘백중지하百重之下’는 깊음을 비유한다. 대왕께서 마침내 다시 저를 만나보고 더불어 말씀을 하실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제위우희齊威虞姬제위우희齊威虞姬
제가 들으니, 옥석玉石은 진흙에 떨어져도 더럽다 하지 않고, 유하혜柳下惠는 추위에 떠는 여자를 체온으로 따뜻하게 녹여주어도 음란하다고 하지 않는다 하였으니,注+⑥ ≪모시전毛詩傳≫에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注+⑦ 【집주集注】 내가 상고해보건대, ≪공자가어孔子家語2 〈호생제好生第10〉에 다음과 같은 고사가 전한다. 나라 사람 가운데 집에 혼자 사는 남자가 있었는데, 이웃의 과부 또한 집에 혼자 살았다. 어느 날 밤 폭풍우가 몰아쳤는데 과부가 집이 무너지자 달려가 의탁하려 하였으나, 노나라 남자는 문을 닫고 받아주지 않았다. 과부가 창문 너머에서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어이하여 불인不仁하게도 나를 받아주지 않습니까?” 하니, 노나라 남자가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남녀는 60이 되지 않으면 함께 거처하지 않는다 하였소. 지금 그대가 어리고 나 또한 어리니, 이 때문에 감히 그대를 받아줄 수 없는 것이오.” 하였다. 그러자 부인이 말하기를 “그대는 어이하여 유하혜柳下惠처럼 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돌아갈 집이 없는 여인을 체온으로 따뜻하게 녹여주었는데도 나라 사람들이 그를 음란하다고 일컫지 않았습니다.” 하니, 노나라 남자가 말하기를 “유하혜는 가하지만 나는 진실로 불가하오. 나는 장차 나의 불가함으로 유하혜의 가함을 배우고자 하오.” 하였다. 이는 평소부터 쌓은 것이 있기注+⑧ ‘’는 ‘’와 같고, ‘’는 ‘’과 같다. 옛날부터 평상시 쌓았다는 것은 그 오램을 말한다. 때문에 의심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러한 혐의를 피하지 않았으니, 첫 번째 죄입니다.注+우희虞姬북곽선생北郭先生의 어짊을 언급하였는데, 혐의를 피함이 신중하지 못함을 스스로 한스러워한 것이다. ‘과전瓜田’ 두 구절은 옛 속담에 나온다.
화란 속에 빠진 뒤에는 유사有司가 뇌물을 받고 간신의 말을 수용하여 결국 무함誣陷을 당하고 말았으나,注+⑩ 【집주集注과 같은 의미이다. 능히 스스로 밝히지도 못하였습니다. 제가 들으니, 도망가는 선비가 시장에서 탄식을 하자 시장이 이 때문에 파하였다 하였으니,注+ 아마도 이 일인 듯하다. 다만 ‘망사亡士’ 2자는 어떤 글자의 오류인지 모르겠다. 는 말하기를 “‘망사탄시亡士歎市’는 아마도 를 원용한 듯하다. 이 일은 에 보인다. ‘망사亡士’ 2자는 오류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정성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면 과 시장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억울함은 대낮보다 밝건만 9층 누각 속에서 아무리 홀로 부르짖어도 뭇 사람들 중에 털끝만큼이라도 저를 위하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注+⑫ 뭇 사람들이 그를 위해 억울함을 밝히며 변호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호리豪釐’는 아주 작은 것을 비유한다. 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다. 이것이 저의 두 번째 죄입니다.
이미 오명이 있는데다 이 두 가지 죄까지 더해졌으니, 도의道義로 볼 때 정말이지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살아 있는 까닭은 저의 오명을 깨끗이 씻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옛날부터 이러한 일이 있었으니, 백기伯奇는 들판으로 쫓겨나고注+윤길보尹吉甫후처後妻의 참소를 듣고 효자 백기伯奇를 쫓아냈는데, 에 그 일이 실려 있다.注+⑭ 【집주集注】 내(소도관蕭道管)가 상고해보건대, 어느 날 홀연히 꿈속에서 을 만났는데 좋은 약을 하사하는 것이었다. 오직 부친을 봉양하고 싶은 생각에 목청 높여 슬프게 노래하니, 뱃사공이 이를 듣고 따라 불렀다. 길보가 뱃사공의 목소리를 듣고는 백기伯奇와 같다고 의심하여 거문고를 끌어와 〈자안지조子安之操〉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효성과 공순이 지극히 밝았음에도 도리어 잔적殘賊하다고 하였습니다.注+⑮ ‘’은 해친다는 뜻이다. 백기伯奇신생申生이 모두 효성스럽고 공순함으로도 무함을 받아 잔적殘賊하다는 오명을 입었다는 말이다.
저는 이미 죽어야 할 몸이니 더 이상 거듭 진술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대왕께 경계하고자 합니다. 여러 신하들이 간사한데 그중에 파호破胡가 가장 심합니다. 대왕께서 국정을 관장하지 않으시면 나라가 아마도 위태로울 것입니다.” 하였다.
군자가 이르기를 “우희는 선을 좋아하였다.”라고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은 다음과 같다.
나라 위왕威王이 정사에 게을러
구년 동안이나 다스리지 않았다오
우희虞姬가 이를 비판하다가
도리어 자신이 해를 입었다네
우희가 그 일을 열거하며
위로 황천皇天을 가리켰다오
위왕이 이에 크게 깨달아
마침내 강한 나라에 맞섰다네


역주
역주1 齊 威王 : 戰國時代 齊나라 임금으로, 田氏이고 이름은 因齊 또는 嬰齊이다.
역주2 文選……있다 : ≪文選≫ 卷11 何晏의 〈景福殿賦〉에 “虞姬의 容止를 관찰하면, 治國의 아첨하는 신하를 알 수 있다.[觀虞姬之容止 知治國之佞臣]”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唐나라 李善의 注에 보인다.
역주3 卽墨 : 齊나라 고을 이름으로, 지금의 山東省 平度 동남쪽에 있었다.
역주4 : 이 또한 齊나라 고을 이름으로, 지금의 山東省 陽谷 동남쪽에 있었다.
역주5 九年不治 委政大臣 : ≪文選≫에는 없다.
역주6 [諸侯竝侵之 其] : 저본에는 ‘諸侯竝侵之其’가 없으나, ≪列女傳校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7 使竟其罪 : ‘竟’은 ‘結’과 같은 뜻으로, 매듭짓는 것을 말한다. ≪後漢書≫ 卷76 〈循吏列傳 孟嘗〉에 “上虞에 어떤 과부가 지극한 효성으로 시어미를 봉양하였다. 시어미가 연로하여 천수를 누리고 죽었는데, 이전부터 시기하는 마음을 품고 있던 시누이가 마침내 며느리가 공양하기 싫어서 자기 어머니를 짐새의 독으로 독살하였다고 무고하였다. 그리하여 관아에서 송사가 벌어졌는데 고을에서 자세히 조사하지도 않고 마침내 그녀의 죄로 매듭지어버렸다.[上虞有寡婦至孝養姑 姑年老壽終 夫女弟先懷嫌忌 乃誣婦厭苦供養 加鴆其母 列訟縣庭 郡不加尋察 遂結竟其罪]”라고 하였다. 따라서 여기서는 王照圓의 주석을 따르지 않았다.
역주8 어버이가……몸 : ≪禮記≫ 〈祭儀〉에 “曾子가 말하기를 ‘몸이라는 것은 부모가 물려주신 遺體이니, 부모의 遺體를 움직임에 어찌 감히 공경하지 않겠는가. 거처함에 장엄하지 않는 것이 효도가 아니며, 군주를 섬김에 충성하지 않는 것이 효도가 아니며, 관직에 임하여 공경하지 않는 것이 효도가 아니며, 붕우 간에 신실하지 않는 것이 효도가 아니며, 싸움터나 진영에서 용맹이 없는 것이 효도가 아니니, 이 다섯 가지를 이루지 못하면 재앙이 어버이에게 미치니, 어찌 감히 공경하지 않겠는가.’ 하였다.[身也者 父母之遺體也 行父母之遺體 敢不敬乎 居處不莊非孝也 事君不忠非孝也 涖官不敬非孝也 朋友不信非孝也 戰陳無勇非孝也 五者不遂 灾及於親 敢不敬乎]”라고 하였다.
역주9 밝은……모시며 : 원문은 ‘侍明王之讌 泥附王著’인데, 이 구절은 補注를 따르지 않고, 淸나라 학자 孫詒讓의 注에 따라 번역하였다. 山東大學出版社本 ≪列女傳譯注≫의 張濤의 注에 “泥는 昵과 같으니, 가까이함이다. 著는 宁와 같으니, 군주가 신하들의 朝見을 받는 곳으로 곧 궁전의 병풍과 문 사이이다. 孫詒讓이 말하기를 ‘泥附王著는 王宮에서 嬪御가 되어 왕의 宁位에서 가까이 모시는 것을 말한다.’ 하였다.[泥同昵 親近 著同宁 君主接受群臣朝見的地方 卽殿上屛風與門之間的地方 孫詒讓曰:泥附王著 言在王宮爲嬪御 昵近王之宁位也]”라고 하였다.
역주10 明德馬皇后가……하였다 : ≪後漢書≫ 卷10 〈明德馬皇后紀〉에 보이는 구절이다. ‘明德馬皇后’는 後漢 明帝의 后妃로, 伏波將軍 馬援의 딸이다.
역주11 돌아갈……않았다 : ≪詩經≫ 〈小雅 巷伯〉에 “조금 벌어지고 벌어진 것으로, 남쪽 箕星을 이루도다.[哆兮侈兮 成是南箕]”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毛傳에 보이는 구절로, 이른바 ‘顔叔秉燭’의 고사와 함께 실려 있다. 참고로 ≪孔子家語≫ 卷2 〈好生第10〉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역주12 오이……법인데 : 참고로 三國時代 魏나라 曹植의 〈君子行〉에 “군자는 매사를 미연에 방지하여, 혐의를 받는 지경에는 처하지 않나니, 오이 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관을 바루지 않는다.[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라고 하였다.(≪文選≫ 卷27 〈君子行〉․≪樂府詩集≫ 卷33 〈君子行〉)
역주13 覆盆 : 엎어 놓은 동이라는 뜻으로, 억울한 죄를 뒤집어쓴 채 풀 길이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을 말한다. ≪抱朴子≫ 〈辨問〉에 “해와 달도 비치지 못하는 곳이 있고, 성인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어찌 이 때문에 성인이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며 천하에 신선이 없다고 하겠는가. 이것은 바로 三光이 엎어 놓은 동이 안을 비추지 못한다고 책망하는 격이다.[日月有所不照 聖人有所不知 豈可以聖人所不爲 便云天下無僊 是責三光不照覆盆之內也]”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역주14 寡婦가……무너졌으며 : 자세한 내용은 본서 卷4 〈齊杞梁妻〉에 보인다.
역주15 春秋左氏傳에……하였는데 : ≪春秋左氏傳≫ 文公 18년 조에 “夫人 姜氏가 齊나라로 돌아갔으니, 大歸한 것이다. 제나라로 돌아갈 적에 곡을 하면서 저자를 지나며 말하기를 ‘하늘이시여, 襄仲이 도리를 어기고서 嫡子를 죽이고 庶子를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하니, 저자의 사람들도 모두 곡을 하였다. 이로 인해 魯人은 그를 哀姜이라 불렀다.[夫人姜氏歸于齊 大歸也 將行 哭而過市曰 天乎 仲爲不道 殺嫡立庶 市人皆哭 魯人謂之哀姜]”라고 하였다.
역주16 夫子 : 王照圓의 남편인 郝懿行을 가리킨다. 자세한 내용은 115쪽 주 103) 참조.
역주17 伍子胥가……고사 : 이른바 ‘吳市吹簫’의 고사로, ≪史記≫ 卷79 〈范雎列傳〉에 “伍子胥는 전대 속에 숨어서 昭關을 탈출한 뒤, 밤중에만 길을 가고 낮에는 숨어가며 陵水에 이르렀는데, 입에 풀칠할 것도 없어 무릎걸음으로 기어 다니고 머리를 조아리고 옷을 벗은 채 배를 두드리고 퉁소를 불면서 오나라 저자에서 乞食을 했으나, 끝내 吳나라를 부흥시키고 闔閭를 천하의 패자로 만들었다.[伍子胥橐載而出昭關 夜行晝伏 至於陵水 無以餬其口 膝行蒲伏 稽首肉袒 鼓腹吹簫 乞食於吳市 卒興吳國 闔閭爲伯]”라고 하였다.
역주18 春秋後語 : 東晉의 孔衍(268~320)이 편찬한 책으로 ≪春秋后国语≫라고도 하는데, 原書는 失傳되었다.
역주19 賈子新書 : 漢나라 賈誼의 저서로, ≪贾谊新书≫ 또는 ≪新書≫라고도 한다.
역주20 10豪가……된다 : ≪新書≫ 卷8 〈六術〉에 보이는 구절로, “度數의 시작은 세미한 데서 시작되는데, 형체가 있는 사물은 터럭[毫]보다 가는 것이 없다. 이 때문에 1毫를 세워서 도수의 시초를 삼으니, 10毫가 髮이 되고, 10髮이 氂가 되고, 10氂가 分이 되고, 10分이 寸이 되고, 10寸이 尺이 된다.[數度之始 始於微細 有形之物 莫細於毫 是故立一毫 以爲度始 十毫爲髮 十髮爲氂 十氂爲分 十分爲寸 十寸爲尺]”라고 하였다. 참고로 ‘毫’는 ‘豪’와 통하고, ‘氂’는 ‘釐’와 통한다.
역주21 琴操 : 後漢의 蔡邕이 편찬한 책으로, 原書는 실전되었다.
역주22 水經注에……하였다 : 魏나라 酈道元의 ≪水經注≫ 卷33 〈江水〉에 보인다.
역주23 水仙 : 전설상의 水中 神仙을 말한다.
역주24 또……하였다 : ≪太平御覽≫ 卷511 〈宗親部1 繼母〉에 보인다.
역주25 申生은……당하였으니 : 자세한 내용은 본서 卷7 〈晉獻驪姬〉에 보인다.
역주26 [焉] : ≪列女傳集注≫에는 ‘焉’이 없으나, ≪孔子家語≫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7 [何不仁而不納我乎……婦人] : ≪列女傳集注≫에는 ‘何不仁而不納我乎……婦人’이 없으나, ≪孔子家語≫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8 [然] : ≪列女傳集注≫에는 ‘然’이 없으나, ≪孔子家語≫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9 (荷)[苔] : ≪列女傳集注≫에는 ‘荷’로 되어 있으나, ≪水經注≫에 의거하여 ‘苔’로 바로잡았다.
역주30 [曰] : ≪列女傳集注≫에는 ‘曰’이 없으나, ≪太平御覽≫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1 卽墨……다스려졌다 : 참고로 ≪史記≫ 卷46 〈田敬仲完世家〉에 “이에 威王이 即墨 大夫를 불러 말하기를 ‘그대가 卽墨에 부임하면서부터 헐뜯는 말이 날로 이르렀다. 그러나 내가 사람을 시켜 卽墨을 시찰하게 하였더니, 田野가 개간되고 民人이 풍족하며, 관청에는 지체된 公務가 없어 東方이 이 때문에 편안하니, 이는 그대가 나의 좌우 근신을 섬겨 칭찬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고, 그에게 萬戶를 봉해주었다. 阿 大夫를 불러 말하기를 ‘그대가 阿를 맡으면서부터 칭찬하는 말이 날마다 들렸다. 그러나 使者를 시켜 阿를 시찰하게 하였더니, 田野가 개간되지 못하고, 백성들이 가난으로 괴로워하며, 옛날에 趙나라가 甄邑을 공격하였으나 그대가 구원하지 못하였고, 衛나라가 薛陵을 취하였으나 그대가 알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대가 幣帛으로 나의 좌우 근신들을 후하게 섬겨 칭찬을 구하였기 때문이다.’ 하고는, 그날로 阿 大夫와 일찍이 그를 칭찬하였던 좌우 근신들을 모두 삶아 죽였다. 그리고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서쪽으로 趙나라와 衛나라를 격파하고, 濁澤에서 魏나라를 물리쳐 惠王을 포위하니, 惠王이 觀邑을 바치고 화해를 청하였으며, 趙나라 사람이 제나라에게 長城을 반환하였다. 이에 제나라가 두려워 떨면서 사람들이 감히 잘못을 거짓으로 꾸미지 못하고 힘써 그 충성을 다하니, 제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諸侯들이 이를 듣고는 감히 20여 년 동안이나 제나라에 무력을 가하지 못하였다.[於是威王召即墨大夫而語之曰 自子之居即墨也 毀言日至 然吾使人視即墨 田野闢 民人給 官無留事 東方以寧 是子不事吾左右以求譽也 封之萬家 召阿大夫語曰 自子之守阿 譽言日聞 然使使視阿 田野不闢 民貧苦 昔日趙攻甄 子弗能救 衛取薛陵 子弗知 是子以幣厚吾左右以求譽也 是日 烹阿大夫及左右嘗譽者 皆竝烹之 遂起兵西擊趙衛 敗魏於濁澤而圍惠王 惠王請獻觀以和解 趙人歸我長城 於是齊國震懼 人人不敢飾非 務盡其誠 齊國大治 諸侯聞之 莫敢致兵于齊二十餘年]”라고 하였다.
역주32 齊國 : 참고로 臺灣商務印書館本 ≪列女傳今註今譯≫의 張敬의 註에는 “齊國은 아마도 秦國의 오류일 듯하다.[齊國疑爲秦國之訛]”라고 하였다.
역주33 군자를……것이다 : ≪詩經≫ 〈小雅 出車〉에 보인다.
역주34 : ≪列女傳校注≫와 ≪列女傳集注≫에는 모두 ‘國’으로 되어 있다.

열녀전보주(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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