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女傳補注者는 補曹大家注也라 古之注此書者가 隋志에 有趙母高氏하고 文選注에 有虞貞節이로되 惟大家之注가 至北宋猶存하여 見於史記正義하고 選注所引에 凡有數處하니 今不敢自名爲注라 故題曰補也라
照圓六歲而孤나 母林夫人이 恩勤鞠育하고 敎以讀書라 嘗從燕閒이러니 顧照圓而命之曰 昔班氏注列女傳十五卷이러니 今其書亡하니 如能補爲之注면 是余所望於汝也라
照圓謹志之不敢忘이나 分陰遄邁하여 奄忽四七이라 寸草盟心이 遂成銜恤하니
追省前言컨대 恒隕越以滋懼라 不揣愚蒙하고 略依先師之詁하여 用達作者之意라
凡所詮釋은 將以通其隱滯하여 取供唫諷하고 至於義所常行이어나 或傳記成文하얀 舊人已注면 則皆闕而弗論이라
誠知疏陋가 無能纂續前修나 庶幾念昔先人하여 少酬明發之懷라 補注成에 請夫子辨析疑義하니 時加訂正하여 無隱乎爾하니 竊所欣慕焉이라
≪열녀전보주列女傳補注≫는 조대고曹大家(반소班昭)의 주注를 보충한 책이다. 옛날에 이 ≪열녀전≫에 주注를 단 분으로는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조모趙母와 고씨高氏가 있고, ≪문선文選≫ 주注에 우정절虞貞節이 있으나 오직 조대고의 주注가 북송北宋에 이르도록 남아 있어서 ≪사기정의史記正義≫에 보이고 ≪문선≫ 주注의 인용문에 여러 곳에 보이니, 지금 감히 스스로 주注라고 명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제목을 보주補注라 하였다.
나는 6세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어머니 임부인林夫人께서 자애慈愛로 기르고 독서를 가르쳤다. 일찍이 한가할 때에 어머니를 따랐더니 나를 돌아보고 명하시기를 “옛날에 반씨班氏가 ≪열녀전≫ 15권에 주注를 달았는데 지금 그 책이 없어졌다. 만일 보충하여 주를 달 수 있다면 이 일이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내가 삼가 기억하여 감히 잊지 못하였으나 세월이 빨리도 흘러 홀연 28년이 지났으니
맹세한 마음이 드디어
어머니께서 전에 하신 말씀을 돌이켜 살펴보건대 항상 황공하여 두려운 마음만 더하였다. 이에 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대략 선사先師의 훈고에 따라 작자作者의 뜻이 통하게 하였다.
무릇 해석한 것은 장차 막힌 뜻을 통하게 하여 읊조리게 하려는 것이고, 항상 행해야 할 도의라든가 혹 이미 전기傳記가 이루어진 경우에 대해서는 옛사람이 이미 주를 달았으면 모두 생략하고 논하지 않았다.
진실로 견문이 넓지 않은 내가
전현前賢을 계승할 수 없음을 알지만
조금이나마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보답하기를 바란다. ≪열녀전보주≫가 이루어짐에
부자夫子(남편
학의행郝懿行)에게
의의疑義를
변석辨析해주기를 청하였는데 때로
정정訂正하여 숨김이 없었으니, 삼가
흔모欣慕하는 바이다.
가경嘉慶 10년(1805) 8월 4일에 복산福山 왕조원王照圓은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