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鄭]女夏姬者
는 大夫夏徵舒之母
요 也
注+② 史記正義引大上有陳字, 母下有御叔之妻四字.라 其狀美好無匹
하고 內挾伎術
이라 蓋老而復壯者
爲王后
하고 七爲夫人
注+③ 藝文類聚引三下重三字, 史記正義亦引三爲王后, 此脫三字. 或曰 “當作一字, 今作三, 乃二一兩字之誤倂耳. 二字屬上句, 一字屬下句.”이어늘 公侯爭之
하여 莫不迷惑失意
라 夏姬之子徵舒爲大夫
라
公孫寧儀行父與陳靈公
이 皆通於夏姬
하여 或衣其衣
하고 以戲於朝
注+④ 穀梁傳或衣其衣下有或衷其襦四字, 此脫去之. 藝文類聚引雖未脫, 但誤作或裵其幡, 又衍蔽膝二字耳.라
泄冶見之하고 謂曰 君有不善이면 子宜掩之어늘 今自子率君而爲之하여 不待幽閒하고 於朝廷以戲하니 士民이 其謂爾何리오
二人以告靈公
한대 靈公曰 衆人知
不善
注+⑤ 【校注】 之吾二字疑誤倒.이라도 無害也
注+⑥ 之字衍.어니와 泄冶知之
하니 寡人恥焉
이로다하고 乃使人
賊泄冶而殺之
注+⑦ 徵疑微字之誤. 微, 隱也.라
靈公與二子飮於夏氏
할새 召徵舒也
라 公戲二子曰 徵舒似汝
로다 二子亦曰 不若其似
也
로이다 徵舒疾此言
하여 靈公罷酒出
할새 徵舒伏弩廐門
이라가 射殺靈公
이라
公孫寧儀行父皆奔楚하고 靈公太子午奔晉이라 其明年에 楚莊王擧兵誅徵舒하고 定陳國하고 立午하니 是爲成公이라
莊王見夏姬美好
하고 將納之
하니 申公巫臣諫曰 不可
하니이다 王討罪也
어늘 而納夏姬
면 是貪色也
니이다 貪色爲淫
이요 淫爲大罰
이니 願王圖之
하소서 王從之
하여 使壞後垣而出之
注+① 畏人見也. 此謂一爲王后.하니라
將軍子反見美
하고 又欲取之
하니 巫臣諫曰 是不祥人也
라 殺御叔
하고 弑靈公
하고 戮夏南
하고 出孔儀
하고 喪陳國
이니이다 天下多美婦
어늘 何必取是
리오 子反乃止
하다 莊王以夏姬與連尹襄老
러니 襄老死於邲
하고 亡其尸
하다
其子黑要가 又通於夏姬하다 巫臣見夏姬하고 謂曰 子歸면 我將聘汝호리라
及恭王卽位하여 巫臣娉於齊할새 盡與其室俱하고 至鄭하여 使人召夏姬曰 尸可得也라하니 夏姬從之라
巫臣使介歸幣於楚
하고 而與夏姬奔晉
이라 大夫
注+① 大夫之上, 有脫文. 左傳 “遂奔晉, 晉人使爲邢大夫.”子反怨之
하여 遂與子重滅巫臣之族
하고 而分其室
이라
詩云 乃如之人兮
注+① 兮, 毛詩作也.여 昏姻也
로다 大無信也
하니 不知命也
로다하니 言嬖色殞命也
注+② 【校注】 與毛詩義異.라
7-9
정鄭나라 여인
하희夏姬注+① 진陳은 응당 ‘정鄭’이 되어야 하니, 글자의 오류이다.
정鄭나라의 여인
하희夏姬는
진陳나라
대부大夫 의 어머니요,
의 아내이다.
注+② ≪사기정의史記正義≫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대大 위에 ‘진陳’자가 있고, 모母 아래에 ‘어숙지처御叔之妻’ 4자가 있다. 그 용모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고 안으로
재예才藝까지 겸비하였다. 하희는 늙었다가 젊음을 회복한 것이 두 번이었는데 한 번
왕후王后가 되었고 일곱 번
부인夫人이 되었다.
注+③ ≪예문유취藝文類聚≫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삼三’ 아래에 ‘삼三’자가 중복되어 있고, ≪사기정의≫에도 ‘삼위왕후三爲王后’라고 인용하였으니, 여기에는 ‘삼三’자가 빠졌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응당 ‘일一’자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삼三으로 되어 있으니, 바로 ‘이二’와 ‘일一’ 두 자를 잘못 합친 것일 뿐이다. ‘이二’자는 위 구절에 속하고, ‘일一’자는 아래 구절에 속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공후公侯들이 하희를 얻으려고 다투어 그녀에게 미혹되어 정신을 잃지 않는 자가 없었다. 하희의 아들 징서는
대부大夫가 되었다.
와
이 모두 하희와
간음奸婬하였다. 그들은 혹 하희의 옷을 입기도 하고 혹 하희의 속옷을 속에 받쳐 입고서 조정에서 공공연히 희롱을 일삼았다.
注+④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는 ‘혹의기의或衣其衣’ 아래에 ‘혹충기유或衷其襦’ 4자가 있는데, 여기에는 빠졌다. ≪예문유취≫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비록 빠지지는 않았으나 다만 ‘혹배기번或裵其幡’으로 잘못되어 있고, 또 ‘폐슬蔽膝’ 2자가 더 들어가 있을 뿐이다.
가 이러한 광경을 보고 〈공손녕과 의행보에게〉 이르기를 “
주군主君에게
선善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그대들이 의당 덮어주어야 하거늘 지금 그대들이 주군을 인도하여 방탕한 짓을 하여 심지어 은밀한 곳도 아니고 조정에서 희롱하고 있으니,
사민士民들이 그대들을 일러 무어라 하겠소?” 하였다.
두 사람이 이 사실을 영공에게 알리자, 영공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이 나의 선하지 못한 점을 알아도
注+⑤ 【교주校注】 ‘지오之吾’ 2자는 잘못 도치된 듯하다. 해로울 것이 없지만
注+⑥ 〈‘지오之吾’의〉 ‘지之’자는 연자衍字이다. 설야가 알았으니,
과인寡人이 수치스럽다.” 하고, 사람을 시켜 몰래 설야를
살해殺害하게 하였다.
注+⑦ ‘징徵’은 ‘미微’자의 오자인 듯하다. 미微는 은밀함이다.
영공靈公이 공손녕公孫寧과 의행보儀行父 두 사람과 함께 하희夏姬의 집에서 술을 마실 적에 아들 징서徵舒를 불렀다. 영공이 두 사람에게 희롱하기를 “징서는 그대들을 닮았소.” 하니, 두 사람이 또한 말하기를 “공을 더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하였다. 징서가 이 말을 싫어하였다. 영공이 술자리를 파하고 나갈 적에 징서가 쇠뇌를 가지고 마구간 문 뒤에 숨어 있다가 영공을 쏘아 죽였다.
공손녕과 의행보는 모두
초楚나라로 달아나고 영공의
태자太子 오午는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그 다음 해에
이 군사를 일으켜 징서를 죽이고
진陳나라를 안정시킨 다음,
오午를 세우니 이가 바로
성공成公이다.
초楚 장왕莊王이
하희夏姬의
미색美色을 보고 자신의 부인으로 거두려고 하니,
이 간하기를 “
불가不可합니다.
군왕君王께서 죄인을
토벌討伐하였는데 하희를 거두신다면 이는
여색女色을 탐하는 것입니다. 여색을 탐하는 것은
음란淫亂이요 음란하면
대벌大罰을 받게 되니, 원컨대 군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 하였다. 이에 장왕이 무신의
간언諫言을 따라 뒷담을 헐어 하희를 내보내게 하였다.
注+① 남이 볼까 두려워한 것이다. 이를 일러 ‘한 번 왕후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장군將軍 이 하희의 미색을 보고 또 취하려 하자 무신이 간하기를 “이 여인은 상서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어숙御叔을 죽게 하고
영공靈公을 시해당하게 하고
하남夏南을 죽게 하고
공손녕公孫寧과
의행보儀行父를 쫓겨나게 하고
진陳나라를 망하게 하였습니다. 천하에 아름다운 부인이 많은데 하필 이 여인을 취하려 하십니까.” 하니, 자반도 즉시 그만두었다. 장왕이 하희를
양로襄老에게 주었는데,
양로의 아들 흑요黑要가 또 하희와 간통姦通하였다. 무신이 하희를 보고 이르기를 “그대가 〈친정親庭인 정鄭나라로〉 돌아가 있으면 내가 예禮를 갖추어 아내로 맞이하겠소.” 하였다.
초楚 이
즉위卽位하기에 이르러
무신巫臣이
제齊나라로 사신가게 되자 무신은 온 가족과 재산을 다 가지고
정鄭나라로 가서 사람을 시켜
하희夏姬를 불러 오게 하면서 말하기를 “〈
양로襄老의〉 시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라고 하니, 하희가 따라 나섰다.
무신이
부사副使로 하여금 제나라가 보낸
예폐禮幣를 가지고
초楚나라로 돌아가
복명復命하게 하고 자신은 하희와
진晉나라로 도망갔다.
대부大夫注+① ‘대부大夫’ 위에 빠진 글이 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라고 하였다.
자반子反이 원망하여 드디어
자중子重과 함께 무신의
친족親族을 죽이고 그 재산을 나누어 가졌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이러한 사람이여!注+① ‘혜兮’는 ≪모시毛詩≫에 ‘야也’로 되어 있다. 혼인昏姻을 망쳤도다. 너무도 미더움이 없으니, 목숨도 보전할 줄 몰랐네.”
라고 하였으니,
미색美色을 총애하여 목숨을 잃음을 말한 것이다.
注+② 【교주校注】
신공申公의 친족을 멸하고 재산을 나누어 가졌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