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丞相安國侯王陵之母也
라 陵始爲縣
豪
注+① 邑字衍, 史記漢書無之.니 髙祖微時兄事陵
이라 及髙祖起沛
하여 陵亦聚黨數千
注+② 【校注】 太平御覽人事部八十二千下有人字.하여 以兵屬漢王
이라
項羽與漢爲敵國
에 得陵母
하여 置軍中
이라 陵使至則東嚮坐陵母
注+① 東嚮者, 尊禮之也.하여 欲以招陵
이라
陵母既而私送使者泣曰 爲老妾語陵
호되 善事漢王
하라 漢王長者
注+② 【校注】 太平御覽下有也必得天下五字.리니 無以老妾故
로 懐
二心
하라 言妾已死也
라하고 乃伏劒而死
하여 以固勉陵
이라
項羽怒烹之라 陵志益感하여 終與髙祖定天下하니 位至丞相하고 封侯하여 傳爵五世라
君子謂王陵母能棄身立義
하여 以成其子
로다 詩云 我躬不閱
이어든 遑恤我後
리오하니 終身之仁也
注+① 本表記文.어늘 陵母之仁及五世矣
로다
한漢나라
승상丞相 후侯 왕릉王陵의 어머니이다. 왕릉이 처음에
의 호걸이었는데
注+① ‘읍邑’자는 연문衍文이니,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는 없다. 가 미천했을 때에 왕릉을 형으로 섬겼다. 고조가 패현에서 병사를 일으켜 〈
진秦나라에 항거하기에〉 이르러 왕릉 또한 무리 수천 명을 모아
注+② 【교주校注】 ≪태평어람太平御覽≫ 〈인사부人事部82〉에는 ‘천千’ 아래에 ‘인人’자가 있다. 그 병사를
한왕漢王에게 귀속시켰다.
가
한漢 고조高祖와
대적對敵하게 되자, 왕릉의 어머니를 잡아다가
군중軍中에 두었다. 왕릉의
사자使者가 이르자, 항우가 왕릉의 어머니를
예우禮遇하여
동향東嚮하여 앉게 해서
注+① 동향東嚮은 높여 예우하는 것이다. 이로써 왕릉을 투항하게 하고자 하였다.
이윽고 왕릉의 어머니가 사사로이
사자使者를 보낼 적에 울며 말하기를 “
노첩老妾을 위하여 왕릉에게 말을 전하되
한왕漢王을 잘 모시라고 해주오. 한왕은
인자仁慈하고
충후忠厚한
장자長者인지라
注+② 【교주校注】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이 아래에 ‘야필득천하也必得天下’ 5자가 있다. 반드시 천하를 얻을 것이니, 노첩 때문에 두 마음을 품지 말라고 해주오. 첩은 이미 죽었다고 말해주오.”라고 하고는 칼에 엎어져 죽어 한왕에게 충성하려는 왕릉의 의지를 굳히게 하였다.
항우가
대노大怒하여 왕릉의 어머니의 시체를 삶아버렸다.
왕릉王陵은 더욱 감동하여 마침내 고조와 더불어 천하를 평정하니 지위가
승상丞相에 이르렀고
안국후安國侯에 봉해져 그
작위爵位가
오세五世 자손子孫에게까지 전해졌다.
왕릉지모王陵之母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
왕릉王陵의 어머니는 자신의 몸을 버려
의義를 세워서 그 아들이
공업功業을 이루게 하였도다.”라고 하였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는 종신토록 자신의
인덕仁德을 지켜내기 어려움을 말한 것인데,
注+① 본래 ≪예기禮記≫ 〈표기表記〉의 글이다. 왕릉의 어머니의
인덕仁德은
오세五世 자손에게까지 전해졌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