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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1)

열녀전보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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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楚平伯嬴
伯嬴者 秦穆公之女注+① 吳入郢之歲, 當秦哀公之世, 上去秦穆公之時遠矣. 不知何字之誤.注+② 【校注】 穆字誤. 伯莒之戰, 在魯定公四年, 穆公卒於文公六年, 相去一百十六年矣. 史通云 “校以年代, 殊爲乖剌.” 是唐時本已誤. 楚平王之夫人이며 昭王之母也 當昭王時하여 楚與吳爲伯莒之戰注+③ 伯莒, 左傳作柏舉, 古字通耳.이러니 吳勝楚하여 遂入至郢하다
昭王亡이어늘 吳王闔閭盡妻其後宮하고 次至伯嬴하니 伯嬴持刃曰 妾聞호니 天子者 天下之表也 公侯者 一國之儀也 天子失制 則天下亂하고 諸侯失節이면 則其國危라하니이다
夫婦之道 固人倫之始 王敎之端이라 明王之制 使男女不親授하며 坐不同席하고 食不共器하며 殊椸枷하고 異巾櫛注+① 本曲禮文.하니 所以施之也注+② 施讀爲移, 施易也, 所以變易其邪心.니이다
若諸侯外淫者絶하고 卿大夫外淫者放하고 士庶人外淫者宮割하나니 夫然者 以爲仁失可復以義 義失可復以禮어니와 男女之이면 亂亡興焉일새니이다
夫造亂亡之端 公侯之所絶이요 天子之所誅也어늘 今君王棄儀表之行하고 縱亂亡之欲하여絶之하니 何以行令訓民이리잇고
且妾聞호니 生而辱 不若死而榮이라하니이다 若使君王棄其儀表 則無以臨國이요 妾有淫端이면 則無以生世니이다 而兩辱이어니 妾以死守之 不敢承命이니이다
且凡所欲妾者 爲樂也어늘 近妾而死 何樂之有 如先殺妾이면 又何益於君王이리잇고
於是 吳王慙하여 遂退舍어늘 伯嬴與其保阿 閉永巷之門하고 皆不釋兵이러라 三旬 秦救至하여 昭王乃復矣
君子謂 伯嬴勇而注+① 勇謂持刃誓以必死也. 精疑當作靜, 言其貞靜專壹也.이라하니라 詩曰 莫莫葛纍注+② 纍與藟同. 毛詩作藟, 釋文藟又作虆. 虆省, 因又作纍耳. 施于條枚로다 豈弟君子 求福不回로다하니 此之謂也
頌曰
闔閭勝楚하고
入厥宮室이로다
盡妻後宮하니
莫不戰慄이로다
伯嬴自守호대
堅固專一하니
君子美之하여
以爲有節이로다


4-9 의 부인 백영伯嬴
백영伯嬴 목공穆公의 딸이자 평왕平王의 부인이며注+나라가 에 들어온 해는 애공哀公(?~B.C. 534) 시대에 해당하니, 위로 목공穆公(B.C. 682~B.C. 621) 시대와의 거리가 멀다. 어떤 글자가 오자誤字인지 모르겠다.注+② 【교주校注】 ‘’자는 오자誤字이다. 백거伯莒의 전쟁은 정공定公 4년(B.C. 506)에 있었고, 목공穆公 문공文公 6년(B.C. 621)에 죽었으니, 서로간의 차이가 116년이나 된다. ≪사통史通≫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는 나라 때 판본도 이미 잘못되었던 것이다. 의 어머니이다. 소왕昭王 때를 당하여 나라와 나라가 백거伯莒에서 전쟁을 벌였는데,注+③ ‘백거伯莒’는 고자古字에 통용하였다.
소왕昭王이 달아나자 오왕吳王 가 그 후궁後宮을 모두 겁탈하고 차례가 백영伯嬴에게 이르렀는데, 백영이 칼을 잡고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천자天子는 천하의 표본이고 제후諸侯는 한 나라의 모범이니, 천자가 법제法制를 잃으면 천하가 어지럽고 제후가 절도節度를 잃으면 그 나라가 위태롭다 하였습니다.
부부夫婦는 진실로 인륜人倫의 시작이며 왕교王敎의 단서입니다. 이 때문에 밝은 임금의 제도에서는 남자와 여자로 하여금 직접 물건을 건네주게 하지 않으며, 앉을 때는 한 자리에 앉지 않고 먹을 때는 한 그릇에 먹지 않으며, 옷걸이와 시렁을 따로 사용하고 수건과 빗을 따로 사용하게 하였으니,注+ 이는 그 부정한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注+② ‘’는 독음讀音[yì]로, 바꾼다는 뜻이니, 그 부정不正한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제후諸侯혼외婚外음행淫行을 저지를 경우에는 멸절滅絶을 당하고, 경대부卿大夫가 혼외의 음행을 저지를 경우에는 방축放逐을 당하며, 사서인士庶人이 혼외의 음행을 저지를 경우에는 궁형宮刑을 당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까닭은 은 잃어도 로써 회복할 수가 있고 는 잃어도 로써 회복할 수가 있지만, 남녀 간에 도의道義를 상실하면 혼란과 멸망이 일어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혼란과 멸망의 단서를 만드는 자는 공후公侯에게 멸절을 당하고 천자天子에게 주벌을 당하는데, 지금 군왕께서는 모범과 표본이 되는 행실을 버리고 혼란과 멸망에 이르는 욕심을 마음껏 부려 주벌과 멸절을 당하는 일을 범하시니, 어떻게 명을 내려 백성을 가르치겠습니까.
또 제가 들으니, 살아서 치욕을 당하는 것이 죽어서 영화로운 것만 못하다 하였습니다. 만약 군왕께서 그 모범과 표본을 버린다면 나라를 다스리지 못할 것이며, 저에게 음란한 단서가 있다면 세상에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 가지 일로 둘 다 욕을 당하니, 저는 죽음으로 몸을 지키고 감히 명을 받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원하는 것은 즐기기 위해서인데, 저를 가까이하였다가 죽으면 무슨 즐거움이 있겠으며, 만약 저를 먼저 죽이면 또 군왕께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제야 오왕吳王이 부끄러워하며 마침내 물러났는데, 백영伯嬴이 그 보모保姆와 더불어 의 문을 닫고 모두 병장기를 놓지 않았다. 30일 만에 나라의 구원병이 이르러 소왕昭王이 마침내 다시 돌아왔다.
군자가 말하기를 “백영伯嬴은 용감하며 정정貞靜하고 전일專一하였다.”注+① ‘’은 칼을 잡고 기필코 죽으리라 맹서한 것을 말한다. ‘’은 아마도 응당 ‘’이 되어야 할 듯하니, 그 정정貞靜하고 전일專一함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무성한 칡넝쿨이여,注+② ‘’는 ‘’와 같다. ≪모시毛詩≫에는 ‘’로 되어 있고, ≪경전석문經典釋文≫에는 ‘’가 또 ‘’로 되어 있으니, ‘’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또 ‘’로 되었을 뿐이다. 나뭇가지에 뻗어 있도다. 화락한 군자여, 복을 구함에 사특하지 않도다.”
라고 하였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초평백영楚平伯嬴초평백영楚平伯嬴
은 다음과 같다.
합려闔閭가 초나라를 이기고
그 궁실까지 진입하였도다
후궁을 모조리 겁탈하니
벌벌 떨지 않는 이가 없었다네
백영이 스스로를 지키기를
견고하고 한결같이 하니
군자가 이를 아름답게 여겨
정절이 있다고 하였다네


역주
역주1 楚 平王 : 春秋時代 楚나라 임금으로, 熊氏이고 이름은 棄疾이다.
역주2 年代를……어그러진다 : 唐나라 劉知幾의 ≪史通≫ 권18 〈外篇 别傳九條〉에 보인다.
역주3 昭王 : 楚나라 임금으로, 이름은 壬이다.
역주4 春秋左氏傳에……있다 : ≪春秋左氏傳≫ 定公 4년 조에 보인다.
역주5 昭王……진입하였다 : ≪春秋≫ 定公 4년 조의 經文에 “겨울 11월 경오일에 蔡侯가 吳子를 거느리고 楚人과 柏擧에서 전쟁하여 楚軍이 大敗하니, 楚나라 囊瓦가 鄭나라로 出奔하였다. 경진일에 吳人이 楚나라 首都 郢으로 진입하였다.[冬十有一月庚午 蔡侯以吳子及楚人戰于柏擧 楚師敗績 楚囊瓦出奔鄭 庚辰 吳入郢]”라고 하였다.
역주6 闔閭 : 春秋時代 吳나라 임금으로, 姓은 姬이고, 이름은 光이다.
역주7 禮記……말이다 : ≪禮記≫ 〈曲禮 上〉에 “남자와 여자가 뒤섞여 앉지 않으며, 옷걸이와 시렁을 함께 쓰지 않으며, 수건과 빗을 함께 쓰지 않으며, 직접 물건을 건네주지 않는다.[男女不雜坐 不同椸枷 不同巾櫛 不親授]”라고 하였다.
역주8 : ≪繹史≫와 ≪左傳紀事本末≫에는 모두 ‘遠’으로 되어 있고, ≪渚宫舊事≫에는 ‘絶’로 되어 있다.
역주9 : ≪繹史≫, ≪左傳紀事本末≫, ≪渚宫舊事≫, ≪古列女傳≫, ≪古今列女傳≫에는 모두 ‘失’로 되어 있다.
역주10 : ≪渚宫舊事≫에는 ‘放’으로 되어 있다.
역주11 : ≪渚宫舊事≫에는 ‘禁’으로 되어 있다.
역주12 壹擧 : ≪渚宫舊事≫에는 ‘一朝’로 되어 있다.
역주13 永巷 : 궁궐 안의 긴 통로로, 妃嬪이 머무는 곳을 가리킨다.
역주14 무성한……않도다 : ≪詩經≫ 〈大雅 旱麓〉에 보인다.
역주15 (精)[靜] : 저본에는 ‘精’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靜’으로 바로잡았다.

열녀전보주(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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