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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1)

열녀전보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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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晉趙衰妻
晉趙衰妻者 晉文公之女也 號趙姬 初文公爲公子時 與趙衰奔狄하니 狄人入其二女叔隗季隗於公子어늘以叔隗妻趙衰注+① 【校注】 左傳公下有子字, 此脫.하여 生盾이라
及反國하여 文公以其女趙姬妻趙衰하여 生原同屛括樓嬰하다
趙姬請迎盾與其母而納之한대 趙衰辭而不敢이라하거늘 姬曰 不可하니이다 夫得寵而忘舊 舍義 好新而嫚故 無恩이요 與人勤於隘注+① 【校正】 念孫案困․厄字古通作隘, 疑此文本作與人勤於隘, 無厄字, 今作隘厄者, 後人旁記厄字, 因誤入正文耳. 古無以隘․厄二字連用者.라가 富貴而不顧 無禮
注+② 三字, 謂禮恩義. 何以使人이리오 雖妾이라도 亦無以侍執巾櫛이라 詩不云乎 采葑采菲 無以下體 德音莫違인댄 及爾同死니라하니
與人同寒苦 雖有小過라도 猶與之同死而不去어든 況於安新忘舊乎
又曰 讌爾注+③ 【校注】 讌毛詩作宴.하여 不我屑以로다하니 蓋傷之也 君其逆之하여 無以新廢舊하소서 趙衰許諾하고 乃逆叔隗與盾來
姬以盾爲賢하여 請立爲嫡子하고 使三子下之하고 以叔隗爲內注+① 婦當作子. 見左傳.하고 姬親下之
及盾爲正卿하여 思趙姬之讓恩하여 請以姬之中子屛括爲公族大夫하여 曰君姬氏之愛子也 微君姬氏 則臣狄人也 何以至此리오하니 成公許之 屛括遂以其族爲公族大夫
君子謂趙姬恭而有讓이라하니라 詩曰 溫溫恭人 維德之基라하니 趙姬之謂也
頌曰
趙衰姬氏
制行分明이로다
身雖尊貴
不妒偏房이로다
躬事叔隗하고
子盾爲嗣로다
君子美之하니
厥行孔備로다


2-8 나라 의 아내
나라 조최趙衰의 아내는 의 딸이니 조희趙姬라고 불렸다. 처음 문공이 공자公子로 있을 때 조최와 함께 땅으로 도망을 가니,
적인狄人숙외叔隗계외季隗라는 두 딸을 공자에게 바쳤는데, 공자가 숙외叔隗를 조최의 아내로 삼게 하여注+① 【교주校注】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 아래에 ‘’자가 있는데, 여기에는 빠졌다. 을 낳았다.
〈본국인〉 나라로 돌아와서는 문공文公이 그의 딸 조희趙姬조최趙衰에게 아내로 주어 원동原同, 병괄屛括, 누영樓嬰을 낳았다.
조희가 조최에게 땅에 있는 과 그 어머니를 나라로 맞이해 오자고 청하였으나, 조최가 사양하면서 감히 그럴 수 없다고 하였다. 조희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 〈새로〉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다 하여 옛사람을 잊는다면 를 버리는 것이요, 새 사람을 좋아하여 옛사람을 경시하면 은혜가 없는 것이요, 곤궁한 처지에서 함께 애쓴 사람을注+① 【교정校正왕염손王念孫이 상고해보건대, 자는 고자古字에 통용하여 ‘’로 썼으니, 아마 이 글은 본래 ‘여인근어애與人勤於隘’로 되어 있고 ‘’자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애액隘厄’으로 되어 있는 것은 후인後人이 곁에 ‘’자를 기록해서 인하여 잘못 정문正文에 들어갔을 뿐이다. 옛적에 2자를 연용連用하는 경우는 없었다. 부귀해진 뒤에 돌아보지 않는다면 가 없는 것입니다.
그대가 이 세 가지를 버린다면注+② ‘’자는 를 이른다. 어떻게 사람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 비록 이라 하더라도 그대를 모시지 않을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추위와 고생을 함께 겪은 사람이라면 비록 작은 잘못이 있더라도 오히려 그와 더불어 죽을 때까지 함께하고 버리지 않는데, 더구나 새 사람을 편안히 여겨 옛사람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시경≫에 또
‘그대는 신혼新婚과 즐겨,注+③ 【교주校注】 ‘’은 ≪모시毛詩≫에 ‘’으로 되어 있다. 나를 좋게 여기지 않누나.’
라고 하였으니, 대개 이를 상심한 것입니다. 그대는 그들을 맞이하여 새 사람 때문에 옛사람을 버리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조최가 허락하고 이에 숙외叔隗을 맞이하여 오게 하였다.
조희趙姬을 어질게 여겨 적자嫡子로 세우기를 청하고서 세 아들로 하여금 그의 하위下位에 있게 하였으며, 숙외叔隗로 삼고서注+ 조희 자신은 스스로 하위下位에 처하였다.
돈이 정경正卿이 되자, 조희가 자신에게 양보와 은혜를 베풀었음을 생각하여 조희의 둘째 아들인 병괄屛括로 삼기를 청하면서 말하기를 “〈병괄은〉 께서 아끼는 아들입니다. 군희씨가 아니었다면 저는 적인狄人이 되었을 것이니, 어찌 여기에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하니, 이 허락하였다. 병괄은 마침내 그 공족公族을 통솔하는 공족대부公族大夫가 되었다.
진조쇠처晉趙衰妻진조쇠처晉趙衰妻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조희趙姬는 공손하고 사양함이 있었도다.”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라고 하였으니, 조희를 두고 이른 말이다.
은 다음과 같다.
조최趙衰의 아내 조희趙姬
예법禮法배행排行이 분명하였도다
자신은 비록 존귀하였으나
측실側室을 질투하지 않았도다
몸소 숙외叔隗를 섬기고
그의 아들 을 후사로 삼았도다
군자君子가 이를 찬미하니
덕행德行이 잘 갖추어졌도다


역주
역주1 趙衰 : 晉나라 趙夙의 손자이며 正卿인 趙成子로, 자는 子餘이다. 일찍이 公子 重耳 즉 후일의 文公을 따라 狄으로 갔던 다섯 賢臣 중의 한 사람이다.
역주2 晉 文公 : 본서 권2 〈賢明傳 晉文齊姜〉에 상세히 보인다.
역주3 狄人이……낳았다 : 趙盾은 趙宣子로, 자는 宣孟이다. 晉나라 正卿으로 실권을 잡아 晉六卿의 하나가 되었다.≪春秋左氏傳≫ 僖公 23년 조에 “狄人이 廧咎如를 討伐하여 그 두 딸 叔隗와 季隗를 捕虜로 잡아와서 公子에게 바치니, 公子는 季隗를 취하여 伯儵와 叔劉를 낳고, 叔隗를 趙衰의 아내로 주어 盾을 낳았다.[狄人伐廧咎如 獲其二女叔隗季隗 納諸公子 公子取季隗 生伯鯈叔劉 以叔隗妻趙衰 生盾]”라고 하였다. ≪史記≫ 〈晉世家〉에 “狄人이 咎如를 討伐하여 두 딸을 잡아와서 長女를 重耳의 아내로 주어 伯鯈와 叔劉를 낳고 少女를 趙衰의 아내로 주어 盾을 낳았다.[狄伐咎如 狄伐咎如 得二女 以長女妻重耳 生伯鯈叔劉 以少女妻趙衰 生盾]”라고 하였다. 두 책의 기록이 조금 다르다. 廧咎如는 赤狄의 別種으로 隗姓이다.
역주4 [子] : 저본에는 ‘子’가 없으나, ≪列女傳校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5 순무를……할지니라 : ≪詩經≫ 〈邶風 谷風〉에 보인다.
역주6 그대는……않누나 : ≪詩經≫ 〈邶風 谷風〉에 보인다.
역주7 (厄) : 저본에는 ‘厄’이 있으나, 王念孫의 校正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8 得寵而忘舊句……君棄此三者 : 補注의 원 표제어는 得寵而忘舊句 舍義句 好新而嫚故句 無恩句 與人勤於隘厄句 富貴而不顧句 無禮句 君棄此三者이다. 여기서 小字로 쓰인 ‘句’자는 거기서 구를 끊어 읽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역주9 : ≪詩經≫ 〈邶風 谷風〉에는 ‘昏’으로 되어 있다.
역주10 內子 : 卿의 嫡妻를 말한다.
역주11 婦는……보인다 : ≪春秋左氏傳≫ 僖公 24년 조에 “盾과 그 어미가 온 뒤에 趙姬는 盾이 재주가 있다고 여겨 文公에게 굳이 청하여 盾을 嫡子로 삼고서 자기의 세 아들을 그의 下位에 있게 하고, 叔隗를 內子로 삼고서 자기는 그의 下位가 되었다.[來 以盾爲才 固請于公 以爲嫡子 而使其三子下之 以叔隗爲內子 而己下之]”라고 하였다.
역주12 公族大夫 : 官名으로, 公族과 卿大夫 子弟의 사무를 관장하였다.
역주13 君姬氏 : 趙盾이 趙姬를 嫡母로 여겼기 때문에 君姬氏라는 尊稱을 쓴 것이다.
역주14 成公 : 晉나라 27대 군주로, 이름은 黑臀(둔)이다. 文公의 막내아들이며 襄公의 아우이다.
역주15 (婦)[子] : 저본에는 ‘婦’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子’로 바로잡았다.
역주16 온순하고……기반이니라 : ≪詩經≫ 〈大雅 抑〉에 보인다.

열녀전보주(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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