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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2)

열녀전보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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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周郊婦人
周郊婦人者 周大夫尹固所遇於郊之婦人也 周敬王之時 王子朝怙寵爲亂하여 與敬王争立하니 敬王不得入이라 尹固與召伯盈原伯魯 附於子朝 春秋魯昭注+① 年月二字誤, 當作二十六年. 見春秋經傳. 晉師納王하니 尹固與子朝奉周之典藉하여 出奔楚
數日道還周郊러니 婦人遇郊하여 尤之曰注+① 尤, 過責也. 處則勸人爲禍하고 行則數日而反하니 是其過三歳乎리오하더니 至昭公二十九年하여 京師果殺尹固
君子謂周郊婦人 惡尹氏之助亂하고 知天道之不祐하여 示以大期러니 終如其言이라 詩云 取辟不遠注+① 辟, 毛詩作譬.이라 昊天不忒이라하니 此之謂也


나라 국도 교외의 부인婦人은 주나라 대부大夫 윤고尹固가 〈주나라 국도의〉 교외에서 만난 부인이다. 경왕景王의 총애를 믿고 난을 일으켜 경왕敬王과 왕위를 다투니, 경왕敬王도성都城으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윤고가 , 와 함께 왕자 조에게 붙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26년에 의거해보건대,注+① ‘연월年月’ 2자는 오자이니, 의당 ‘이십륙년二十六年’이 되어야 한다. ≪춘추경전春秋經傳≫에 보인다. 나라 군대가 경왕敬王을 도성으로 들여보내자,
며칠이 지난 뒤에 〈윤고尹固나라에서〉 나라 국도國都교외郊外로 돌아왔는데, 한 부인이 교외에서 그를 만나 꾸짖기를注+① ‘’는 꾸짖음이다. “그대는 국내國內에 있을 때는 왕자王子 를 권하여 화란禍亂을 일으키게 하고, 국외國外로 도망가서는 며칠 만에 다시 돌아오니, 이런 사내가 어찌 3년을 넘길 수 있겠는가.”라고 하더니, 소공昭公 29년에 이르러 주나라 서울 사람들이 과연 윤고를 죽였다.
주교부인周郊婦人주교부인周郊婦人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나라 국도 교외의 부인婦人윤씨尹氏왕자王子 를 도와 난을 일으킨 것을 미워하고 천도天道가 그를 돕지 않을 것을 알아 그가 죽을 시기를 미리 보여 주었더니, 마침내 그 말과 같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취하여 비유함이 멀지 않은지라,注+① ‘’는 ≪모시毛詩≫에 ‘’로 되어 있다. 하늘의 이치가 어그러지지 않네.”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역주
역주1 周나라……郊外 : 東周의 都城인 洛邑의 郊外이다. 지금의 河南省 洛陽이다.
역주2 周 敬王 : 周 景王의 아들이며, 悼王의 아우이다. 이름은 丏이다. 혹 匃라고도 한다.
역주3 王子 朝 : 周 景王의 庶長子이다.
역주4 召伯 盈 : 召國의 國君인 召 莊公의 아들 召 簡公을 말한다.
역주5 原伯 魯 : 周나라의 大夫이다.
역주6 윤고와……出奔하였다 : ≪春秋左氏傳≫ 昭公 26년 조에 “겨울 10월 丙申日에 周 敬王이 滑에서 出發하여 辛丑日에 郊邑에 進駐해 있다가 드디어 尸邑에 주둔하였다. 11월 辛酉日에 晉軍이 鞏邑을 공격해 승리하니, 召伯 盈이 王子 朝를 축출하였다. 王子 朝와 召氏의 宗族은 毛伯得․尹氏固․南宮嚚과 함께 周나라의 典籍을 가지고서 楚나라로 出奔하고, 陰忌는 莒邑으로 달아나 叛亂을 일으켰다.[冬十月丙申 王起師于滑 辛丑 在郊 遂次于尸 十一月辛酉 晉師克鞏 召伯盈逐王子朝 王子朝及召氏之族毛伯得尹氏固南宮嚚奉周之典籍以奔楚 陰忌奔莒以叛)]”라고 하였다.
역주7 二(年)[十]六(月)[年] : 저본에는 ‘二年六月’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二十六年’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 취하여……않네 : ≪詩經≫ 〈大雅 抑〉에 보인다.

열녀전보주(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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