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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2)

열녀전보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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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漢趙飛燕
趙飛燕姊娣者 成陽侯趙臨之女 孝成皇帝之寵姬也 飛燕初生 父母不舉호되 三日不死어늘 乃収養之 成帝常微行出이러니 過河陽主注+① 外戚傳河陽作陽阿, 說者以河陽爲後人所改, 然五行志及荀悅漢紀, 亦俱作河陽.할새 樂作이라
上見飛燕而悦之하여 召入宫하여 大幸이라 有女弟어늘 復召入하여 俱爲婕妤하니 貴傾後宫이라 乃封父臨爲成陽侯하고 有頃 立飛燕爲皇后하고爲昭儀
飛燕爲后而寵衰 昭儀寵無比 居昭陽舎하여 其中廷彤朱하고 殿上漆注+① 廷與庭同, 彤朱, 以赤色飾地, 卽丹墀也. 殿上以髤漆爲飾.注+② 【校注】 漢書漆上有髤字.하며 砌皆銅沓注+注+④ 【校正】 紹蘭案漢書外戚傳作切皆銅沓冒, 師古以切爲門限, 沓爲冒其頭是也. 說文木部 “榍, 限也, 从木屑聲.” 尸部 “屑, 動作切切也.” 齒部 “𪙌, 齒差也, 从齒屑聲, 讀若切.” 爾雅釋器 “骨謂之切.” 釋文 “切本或作𪙌”, 是古音屑, 近切. 故漢書假切爲榍, 謂門閑也. 金部 “錔以金有所冒也.” 沓卽錔之省文. 切爲門限, 故可以銅沓爲冒, 若階砌, 則不得言冒矣. 且下文白玉階, 別爲一事, 更知切非階砌. 廣雅云“限謂之丞秩, 戺橉砌也. 砌卽切之俗體.” 是亦以切爲門限也. 沓有合訓, 但銅沓冒, 取從上冒合爲義, 非合縫之謂.하고 黄金塗하고 白玉階注+ 殿上之階, 以白玉爲文, 復說上事也.注+⑥ 【校正】 紹蘭按外戚傳“切皆銅沓冒, 黃金塗”, 師古曰 “塗以金塗銅上也.” 然則傳謂以銅沓冒切上, 又以黃金塗銅沓上也. 霍光傳云 “作乘輿輦, 加畫繡絪馮, 黃金塗, 韋絮薦輪.”- 藿夫人傳畧同. - 廁黃金塗於絪馮薦輪之間, 則塗非路可知. 故如湻曰“絪, 亦茵, 馮, 所以馮者也, 以黃金塗飾之”, 師古曰“以繡爲茵馮, 而黃金塗輿輦也”, 皆不以塗爲路. 說文金部“錯, 金涂也.” 涂, 卽塗之正字, 明塗爲塗飾之塗, 非塗路之塗矣. 黃金塗, 今俗云鍍金是.하며 壁往往爲黄金釭注+⑦ 【校注】 漢書壁下有帶字.하고 函藍田璧하고 明珠翠羽飾之注+⑧ 釭, 車轂中鐵也. 壁中橫木如帶, 以黃金飾其外如釭形, 因謂之釭. 故服虔注曰 “釭, 壁中之橫帶也.” 緣服此注有帶字, 而流俗傳寫漢書, 遂衍作壁帶, 誤矣. 函, 猶銜也, 釭, 作圜孔, 於中銜美璧爲飾. 玉字衍也. 其旁又以明珠翠羽連綴爲飾.하니 後宫未嘗有焉이라
姊娣専寵하되 而悉無子 嬌媚不遜하고 嫉妒後宫이라
帝幸許美人하여 有子하니 昭儀聞之하고 謂帝曰 常紿我従中宫来注+① 紿, 欺誑也. 中宮, 皇后宮也.러니 今許美人子何従生고하고하여 手自捯注+② 懟, 怨也. 捯與擣同, 手椎也. 外戚傳懟下有以字, 此脫去之.하고 以頭撃柱하고上自投地하여 涕泣不食曰 今當安置我 我欲歸爾
帝曰 我欲語之어늘 反怒爲아하고 亦不食이라 昭儀曰 陛下自如是하고 不食謂何注+③ 如是, 指許美人事也. 言陛下自己要如是耳, 不食亦何謂也. 如是之如, 外戚傳作知字, 誤.注+④ 【校注】 漢書如作知, 當絶句, 是字續下讀. 陛下常言約不負汝라하더니 今許美人有子 竟負約이니 謂何
帝曰 約以趙氏하노니 故不立許氏하여 使天下無出趙氏之上者 無憂也라하고 乃詔許注+⑤ 氏夫人三字, 蓋美人二字之誤, 衍.하여 令殺所生児하여 革篋盛緘之注+⑥ 外戚傳革作葦, 二字形近. 疑作革是也. 緘, 束也.하고 帝與昭儀共視하고 復緘하여 封以御史中丞印하고 出埋獄垣下
中宫史曹宫 字偉能이니 御幸生子注+⑦ 【校注】 漢書“曹宮以元延元年十月乳, 許美人以二年十一月乳”, 與此傳先後不同. 帝復用昭儀之言하여 勿問男女殺之어늘 宫未殺하니 昭儀怒 掖庭獄丞籍武 因中黄門奏事曰 陛下無繼嗣하니 子無貴賤하고 唯留意하소서
帝不聴하고 時児生八九日이어늘 遂取去殺之 昭儀與偉能書及藥하여 令自死하니
偉能得書曰 果欲姊娣擅天下로다 且我児上有壮髮 似元帝注+⑧ 額, 當作頟. 壯髮者, 頟上髮多覆下, 故曰壯也.러니 今児安在 巳殺之乎注+⑨ 【校注】 漢書作危殺之矣, 疑已是危字脫壞也.아하고 乃飲藥死
自後御幸有子者 輒死어나 或飲藥自墮하니 由是使成帝無嗣 成帝既崩 援立外藩이나 仍不繁育이라
君子謂趙昭儀之凶嬖 與褒姒同行하고 成帝之惑亂 與周幽王同風이라
詩云 池之竭矣 不云自濱注+① 濱, 毛詩作頻, 卽瀕字之省耳. 瀕, 古濱字也. 瀕, 水厓也.注+② 【校注】 毛詩作瀕, 此與鄭箋改字, 合.이라하고 泉之竭矣 不云自中이라하니 成帝之時 舅氏擅外하고 趙氏專内하니 其自竭極 盖亦池泉之勢也


8-15 나라 조비연趙飛燕
조비연趙飛燕 자매姉妹 조림趙臨의 딸이요, 효성황제孝成皇帝의 총애를 받은 여인이다. 조비연이 처음 태어났을 때 부모가 기르려 하지 않았으나 3일이 지나도록 죽지 않자 거두어 길렀다. 성제成帝가 늘 미복微服 차림으로 밖에 나가곤 하였는데 공주公主의 집에 들렀을 적에注+①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 ‘하양河陽’이 ‘양아陽阿’로 되어 있는데, 설명하는 자가 ‘하양河陽후인後人들이 고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서≫ 〈오행지五行志〉와 순열荀悅의 ≪한기漢紀≫에도 모두 ‘하양河陽’으로 되어 있다. 공주가 가무歌舞를 바쳤다.
성제가 무녀舞女 중에서 조비연을 보고 기뻐하여 으로 불러들여 크게 사랑하였다. 조비연에게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녀를 다시 불러 들여 모두 첩여婕妤를 삼으니, 존귀尊貴함이 후궁後宮에 있는 비빈妃嬪들이 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성제가 이에 그녀들의 아버지 조림을 봉하여 성양후로 삼고, 얼마 후 조비연을 세워 황후皇后로 삼고, 그 동생을 소의昭儀로 삼았다.
조비연趙飛燕황후皇后가 된 이후에 성제成帝의 총애가 쇠하였으나 소의昭儀는 비할 데 없는 총애를 받았다. 소양궁昭陽宮에 살면서 정원 가운데를 붉은색으로 칠하고 전각殿閣 위에는 옻칠을 하였으며,注+① ‘’은 ‘’과 같다. ‘동주彤朱’는 붉은 색으로 땅을 장식하는 것이니, 바로 단지丹墀이다. 殿 위에는 옻칠로 꾸민 것이다.注+② 【교주校注】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는 ‘’ 위에 ‘’자가 있다. 섬돌에는 모두 으로 이어 붙이고注+③ ‘’는 섬돌이다. ≪한서≫ 〈외척전〉에는 ‘’로 되어 있다. ‘’은 합함이니, 으로 그 섬돌의 틈새를 이어 붙이는 것이다.注+④ 【교정校正왕소란王紹蘭은 상고하건대, ≪한서≫ 〈외척전〉에는 ‘절개동답모切皆銅沓冒’로 되어 있는데, 안사고顏師古을 문지방이라 하고 을 그 머리를 덮어씌우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옳다. ≪설문해자說文解字≫ 〈목부木部〉에 “은 문지방이니, 을 따르고 은 독음이다.”라고 하였다. 〈시부尸部〉에 “동작動作이 급박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치부齒部〉에 “𪙌은 이가 어긋난 것이다. 를 따르고 은 독음이니, 과 같이 읽는다.”라고 하였다. ≪이아爾雅≫ 〈석기釋器〉에 “을 다루는 것을 이라 이른다.”라고 하였고, ≪이아주소爾雅注疏≫에 인용된 ≪경전석문經典釋文≫에 “은 판본에 따라 혹 ‘𪙌’로 되어 있기도 하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고음古音에 가깝다. 그러므로 ≪한서≫에서 을 가차하여 로 삼아 문지방을 일컬은 것이다. ≪설문해자≫ 〈금부金部〉에 “은 금으로 덮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은 곧 의 생략한 글자이다. 이 문지방이기 때문에 동답銅沓으로 덮개를 만들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섬돌이라면 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아래 글의 ‘백옥계白玉階’는 별도의 한 가지 일이니, ‘’이 섬돌이 아님을 더욱 알 수 있다. ≪광아廣雅≫에 이르기를 “승질丞秩이라 이르니, 사린체戺橉砌이다. 는 바로 속체俗體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또한 을 문지방으로 여긴 것이다. 에는 합한다는 뜻이 있으나 ‘동답모銅沓冒’는 위에서 모합冒合하는 것을 취하여 뜻을 삼은 것이지 합봉合縫을 이르는 것은 아니다. 정원 가운데의 길을 황금으로 장식하고 섬돌을 백옥白玉으로 만들었으며,注+⑤ ‘’는 길이다. 정원 가운데의 길을 황금으로 장식하고 殿 위의 계단을 백옥白玉으로 장식함을 말한 것이니, 위의 일을 다시 말한 것이다.注+⑥ 【교정校正왕소란王紹蘭은 상고하건대, ≪한서≫ 〈외척전〉에 “섬돌은 모두 으로 머리를 덮어씌우고 그 위에 황금으로 바른다.”라고 하였는데,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는 황금으로 위에 바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동답銅沓으로 섬돌 위를 덮어씌우고 또 황금으로 동답銅沓 위에 바르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한서≫ 〈곽광전霍光傳〉에 이르기를 “황제皇帝제후諸侯가 타는 수레를 만들어 수레의 좌석과 식목軾木에 수놓은 천을 깔고, 황금으로 수레를 장식하고, 소가죽과 솜으로 수레바퀴를 감쌌다.”라고 하였다. -〈곽부인전藿夫人傳〉에도 대략 같다.- 수레의 좌석과 식목과 수레바퀴를 감쌌다는 말 사이에 ‘황금으로 장식한다.[황김도黃金塗]’를 끼워 넣었으니 가 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순如湻이 말하기를 “은 또한 자리이고, 은 기대는 곳이니, 황금으로 장식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비단을 수레의 좌석과 식목에 깔고 황금으로 수레를 장식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모두 를 길로 여기지 않았다. ≪설문해자≫ 〈금부金部〉에 “은 금으로 바르는 것이다.[ 금도야金涂也]”라고 하였다. ‘’는 곧 ‘’의 정자正字이니, 도식塗飾이지 도로塗路가 아님이 분명하다. ‘황김도黃金塗’는 지금 세상에서 ‘도금鍍金’이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벽에는 곳곳에 황금으로 수레바퀴 통처럼 둥근 모양을 만들고注+⑦ 【교주校注】 ≪한서≫ 〈외척전〉에는 ‘’ 아래에 ‘’자가 있다. 그 가운데 벽숙璧玊을 박아 넣고 그 곁에 명주明珠를 연이어 장식하였으니,注+⑧ ‘’은 수레바퀴통의 쇠이다. 벽 가운데 띠처럼 가로 댄 나무에 황금으로 그 바깥을 장식한 것이 수레바퀴통의 쇠 모양과 같으니, 이로 인하여 ‘’이라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복건服虔에 말하기를 “은 벽 가운데 가로 댄 띠이다.”라고 하였다. 복건服虔의 이 로 인하여 ‘’자가 있게 되었는데, 세상에서 ≪한서≫를 전사傳寫하면서 드디어 ‘’자를 덧붙여 ‘벽대壁帶’가 된 것이니, 잘못된 것이다. 은 머금음과 같고, 은 둥근 구멍을 만드는 것이니, 그 가운데에 아름다운 옥을 박아 넣어 장식을 한 것이다. ‘’자는 연자衍字이다. 그 곁에 또 명주明珠취우翠羽를 연이어서 장식한 것이다. 후궁後宫에서는 일찍이 없었던 일이었다.
자매가 성제의 총애를 독차지하였으나 모두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교태를 부려 공손하지 않았고 후궁後宮의 다른 비빈妃嬪들을 질투하였다.
성제成帝허미인許美人을 총애하여 아들을 낳으니, 소의昭儀가 이 소식을 듣고 성제에게 말하기를 “항상 나를 속여 에서 오는 것이라 하더니,注+① ‘紿’는 속임이다. ‘중궁中宮’은 황후궁皇后宮이다. 지금 허미인의 자식은 어디에서 생긴 것입니까?”라고 하고, 원망하면서 손으로 자신을 때리고注+② ‘’는 원망함이다. ‘’는 ‘’와 같으니, 손으로 침이다.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는 ‘’ 아래에 ‘’자가 있는데, 여기에는 빠졌다. 머리로 기둥을 들이받고 침상 위에서 스스로 바닥으로 떨어져 울며 먹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지금 나를 어떻게 처리하려 하십니까? 나는 죽어 버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성제成帝가 말하기를 “내 이 일을 너에게 말하려 하였거늘 도리어 화를 낸단 말이냐.”라고 하고, 또한 먹지 않았다. 소의가 말하기를 “폐하陛下께서 스스로 이렇게 해놓고서는 왜 드시지 않는단 말입니까?注+③ ‘여시如是’는 허미인許美人의 일을 가리킨다. “폐하陛下 자신이 이와 같이 하려 해놓고 먹지 않는 것은 또한 무엇 때문입니까?”라는 말이다. ‘여시如是’의 ‘’가 ≪한서≫ 〈외척전〉에는 ‘’자로 되어 있는데, 오자이다.注+④ 【교주校注】 ≪한서≫ 〈외척전〉에는 ‘’가 ‘’로 되어 있으니, 응당 를 끊고, ‘’자는 아래로 이어 읽어야 한다. 폐하께서 항상 ‘약속하노니 너를 저버리지 않겠다.’라고 하시더니, 지금 허미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결국 약속을 저버렸으니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성제가 말하기를 “조씨趙氏와 약속하노니, 결단코 허씨許氏황후皇后로 세우지 않아서 천하에 조씨보다 높은 자가 없게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라고 하였다. 이에 허미인에게 조서를 내려注+⑤ ‘씨부인氏夫人’ 3자는 아마 ‘미인美人’ 2자의 오자일 것이니, 연자衍字이다. 그녀가 낳은 아이를 죽여 가죽 상자에 담아 묶게 하였다.注+⑥ ≪한서≫ 〈외척전〉에는 ‘’이 ‘’로 되어 있으니, 두 자는 자형이 비슷하다. 아마 ‘’으로 된 것이 옳을 것이다. ‘’은 묶음이다. 성제가 소의와 함께 열어 확인하고 다시 묶어서 어사중승御史中丞으로 한 다음, 가지고 나가 감옥 담장 아래에 묻었다.
조궁曹宫위능偉能이니, 성제의 총애를 받아 아들을 낳았다.注+⑦ 【교주校注】 ≪한서≫ 〈외척전〉에 “조궁曹宮원연元延 원년元年(B.C. 12) 10월에 아이를 낳았고, 허미인許美人은 2년 11월에 아이를 낳았다.”라고 하였으니, 이 선후先後가 같지 않다. 성제가 다시 소의의 말을 따라 아들인지 딸인지 묻지도 않고 죽이게 하였는데, 조궁이 아이를 죽이지 않자 소의가 노하였다. 적무籍武을 통해 이 일에 대해 상주上奏하기를 “폐하陛下께서는 후사後嗣가 없으니 자식은 귀천貴賤을 따지지 말고 소중히 여기소서.”라고 하였다.
성제가 이 말을 듣지 않고, 당시 아이가 태어난 지 8, 9일 되었는데 곧장 데리고 가서 죽이게 하였다. 소의가 위능에게 서신書信과 독약을 보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위능이 서신을 받고 말하기를 “과연 조씨趙氏 자매가 천하를 독차지하고자 하는구나. 또 내 아이는 이마 위에 아래로 늘어진 머리카락이 선제先帝원제元帝와 닮았는데,注+⑧ ‘’은 응당 ‘’이 되어야 한다. ‘장발壯髮’이라는 것은 이마 위의 머리털이 아래를 많이 가리기 때문에 ‘’이라 한 것이다. 지금 아이는 어디에 있는가? 이미 죽였느냐?”注+⑨ 【교주校注】 ≪한서≫ 〈외척전〉에는 ‘위살지의危殺之矣’로 되어 있으니, 아마 ‘’는 바로 ‘’자의 획이 빠지고 문드러진 듯하다.라고 하고, 이에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이후로부터 성제成帝의 사랑을 받아 아이를 낳은 자는 그때마다 죽이거나 혹 약을 먹여 스스로 낙태하게 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성제는 후사가 없게 되었다. 성제가 이미 붕어崩御하자 을 찾아 황제의 자리에 세웠으나 여전히 후대後代를 길러내지 못하였다.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조소의趙昭儀의 흉악함과 총애를 받음은 과 습성이 같다.”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못이 마를 때에는 물가에서부터 마른다고 말하지 않으며,注+① ‘’은 ≪모시毛詩≫에 ‘’으로 되어 있으니, 곧 ‘’자를 생략한 것일 뿐이다. ‘’은 옛날의 ‘’자이니, ‘’은 물가이다.注+② 【교주校注】 〈‘’은〉 ≪모시毛詩≫에 ‘’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과 정현鄭玄전주箋注에 글자를 고친 것이 합치된다. 샘물이 마를 때에는 가운데에서부터 마른다고 말하지 않는구나.”라고 하였으니, 성제 때에 이 조정에서 권력을 마음대로 하였고, 조씨趙氏가 궁 안에서 총애를 오로지 하였으니, 나라 왕조王朝가 극도로 쇠퇴한 것이 대체로 또한 못과 샘물이 마르는 형상과 같았다.


역주
역주1 成陽 : 縣名으로, 지금의 河南省 信陽 동북쪽에 있었다.
역주2 河陽 : 縣名으로, 지금의 山西省 陽城 서북쪽에 있었다.
역주3 : ≪列女傳校注≫와 ≪列女傳集注≫에는 ‘娣’로 되어 있다.
역주4 藍田 : 山名으로, 지금의 陝西省 藍田 동쪽에 있었는데 美玉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玉山이라 일컫기도 한다.
역주5 翠羽 : 비취새의 깃털로, 상감과 장식에 쓰인다.
역주6 砌皆銅沓……以銅合其砌縫 : 원 표제어는 “砌皆銅沓 補注 砌階砌也 外戚傳作切 沓合也 以銅合其砌縫”으로 ‘切皆銅沓’에 대한 王照圓의 補注인 원주 ③에 대한 校正이다.
역주7 黄金塗……以黃金爲飾 : 원 표제어는 “黄金塗 補注 塗路也 言中庭之路 以黃金爲飾”으로 ‘黄金塗’에 대한 王照圓의 補注인 원주 ⑤의 黄金塗 부분에 대한 校正이다.
역주8 (玉) : 저본에는 ‘玉’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衍字로 처리하였다.
역주9 中宮 : 황후가 거처하는 궁전으로 趙飛燕의 거처를 말한다.
역주10 中宫史 : 皇后宮의 女史이다.
역주11 掖庭 : 正殿 옆에 있는 궁으로, 妃嬪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역주12 獄丞 : 后宮의 刑獄을 관장하는 관리이다.
역주13 中黄門 : 宮廷 안에서 服役하는 太監이다.
역주14 [以] : 저본에는 ‘以’가 없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5 : ≪列女傳集注≫에는 ‘床’으로 되어 있다.
역주16 (氏夫)[美] : 저본에는 ‘氏夫’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美’로 바로잡았다.
역주17 (額)[頟] : 저본에는 ‘額’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頟’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8 同姓의 諸侯王 : 元帝의 庶孫이며 定都恭王의 아들 劉欣을 말한다. 劉欣은 成帝가 죽은 후 帝位를 이어 哀帝가 되었다.
역주19 褒姒와……幽王 : 본서 권7 〈周幽褒姒〉 참조.
역주20 外戚 : 成帝의 외삼촌인 大將軍 王鳳과 王商 등을 말한다.

열녀전보주(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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