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夫人者는 漢丞相安平侯楊敞之妻也라 漢昭帝崩하고 昌邑王賀即帝位어늘 淫亂하니 大將軍霍光與車騎將軍張安世謀하여 欲廢賀更立帝라
議已定에 使大司農田延年報敞한대 敞驚懼하여 不知所言하여 汗出浃背하여 徒曰唯唯而已라
此國之大事라 今大将軍議已定하고 使九卿来報君侯어늘 君侯不疾應하여 與大將軍同心하고 猶與無决이면 先事誅矣리라
延年従更衣還
이어늘 敞夫人與延年参語許諾
注+① 參, 猶錯也. 敞與延年共語, 夫人從旁參錯之, 代敞許諾也.하고 請奉大將軍教令
이라 遂共廢昌邑王
하고 立宣帝
라 居月餘
에 敞薨
하니 益封三千五百户
라
君子謂敞夫人可謂知事之機者矣
로다 詩云 展彼碩女
注+① 展, 信也. 碩, 大也. 言信彼大賢之女, 以善德來敎也. 此蓋魯詩, 毛詩展作辰.여 令徳来教
라하니 此之謂也
라
양부인楊夫人은
한漢나라
승상丞相 후侯 양창楊敞의 아내이다.
가
붕어崩御하고
가 황제로 즉위하였는데 생활이
음란淫亂하였다.
이
와 모의하여
하賀를 폐하고 다른
황제皇帝를 세우고자 하였다.
의논이 이미 정해지자
에게 이를
승상丞相 양창에게 보고하게 하였는데, 양창이 놀라고 두려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등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 그저 ‘예, 예.’라고 할 뿐이었다.
전연년田延年이 잠시 측간에 간 사이에
양창楊敞의 부인이 급히 동쪽 방에서 나와 양창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양부인漢楊夫人
“이는 나라의 대사大事입니다. 지금 대장군大将軍이 의논을 이미 정하고 구경九卿으로 하여금 군후君侯에게 와서 보고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군후께서 속히 응답하여 대장군과 마음을 함께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결정하지 않는다면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군후를 먼저 죽일 것입니다.”
전연년이 측간에서 돌아오자 양창과 부인이 전연년과 더불어 함께 상의하여 허락하고
注+① ‘삼參’은 섞임과 같으니, 양창楊敞이 전연년田延年과 함께 얘기를 나눌 적에 부인夫人이 곁에서 참여하여 양창楊敞을 대신해서 허락한 것이다. 대장군의 명령을 받들기를 청하였다. 드디어 함께
창읍왕昌邑王을 폐하고
를 옹립하였다. 한 달 남짓 지나 양창이 죽었는데
식읍食邑 3,500호를 더 받았다.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
양창楊敞의
부인夫人은 일의 기미를 아는 여인이라 이를 만하도다.”라고 하였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진실로 저 현명한 여인이注+① ‘전展’은 진실함이고, ‘석碩’은 큼이니, 진실로 저 크게 현명賢明한 여인이 선善한 덕德으로 와서 가르쳐 줌을 말한 것이다. 이는 ≪노시魯詩≫이니, ≪모시毛詩≫에는 ‘전展’이 ‘진辰’으로 되어 있다. 선善한 덕으로 와서 가르쳐주네.”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