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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1)

열녀전보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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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齊杞梁妻
齊杞梁殖之妻也注+① 文選注引齊上有“杞梁妻者”四字, 今脫去之. 莊公襲莒 殖戰而死어늘 莊公歸라가 遇其妻注+② 水經注引作“其妻將赴之, 道逢齊莊公, 公將弔之”, 與今本異.하야 使使者弔之於路하니
杞梁妻曰 注+③ 【校注】 今疑令之誤. 水經注引作如.어든 君何辱命焉이리잇가 若令殖免於罪인댄 則賤妾有先人之弊廬在하니 下妾不得與郊弔注+④ 水經注引得作敢.니이다 於是 莊公乃還車하여 詣其室하여 成禮然後하다
杞梁之妻無子하고 內外皆無五屬之親注+① 婦人以夫家爲內, 母家爲外. 五屬, 五服之屬也.이라 旣無所歸하여其夫之屍於城下而哭注+② 文選洞簫賦及求通親親表注, 俱引枕作就, 此字形之誤耳. 城, 莒城也. 夫戰死於此, 因就屍而哭之, 作就字是也. 枕則非禮矣. 選注引哭下有之字, 此脫.하니動人注+③ 諴當作誠, 字形之誤.하여 道路過者莫不爲之揮涕 十日而城爲之崩注+④ 水經注及後漢書注․藝文類聚, 俱引十作七. 文選注, 仍作十.이러라
旣葬 曰 吾何歸矣리오 夫婦人 必有所倚者也 父在則倚父하고 夫在則倚夫하며 子在則倚子하나니라
今吾上則無父하고 中則無夫하며 下則無子하여 內無所依以見吾誠하고 外無所倚以立吾節이라 吾豈能更二哉리오 亦死而已로다하고 遂赴淄水而死注+① 【集注】 琴操 “外無所依, 内無所倚, 将何以立吾節? 豈能更二哉? 亦死而已矣! 於是乃援琴而鼓之曰 樂莫樂兮新相知, 悲莫悲兮生别離. 哀感皇天, 城爲之墮. 曲終, 自投淄水而死.”하다
君子謂 杞梁之妻 貞而知禮라하니라 詩云 我心傷悲하니 聊與子同歸注+① 此引蓋亦魯詩, 與毛詩異.注+② 【校注】 毛詩, 句末皆有兮字. 古今注云 “其妹明月悲姊之貞操爲作歌.”호리라하니 此之謂也
頌曰
杞梁戰死하니
其妻收喪이로다
齊莊道弔하니
避不敢當이로다
哭夫於城하니
城爲之崩이로다
自以無親이라하여
赴淄而薨이로다


4-8 나라 의 아내
그러자 기량의 아내가 말하기를 “지금 식에게 죄가 있다면注+③ 【교주校注】 ‘’은 ‘’의 오자誤字인 듯하다. 임금께서 욕되이 명을 내릴 일이 뭐가 있습니까. 만약 식으로 하여금 죄를 면하게 하고자 하신다면 저에게는 조상이 살던 낡은 집이 있으니, 저는 교외郊外에서 조문을 받을 수 없습니다.”注+ 하였다. 이에
기량杞梁의 아내는 자식이 없고, 안팎으로 을 입을 족친族親이 하나도 없었다.注+부인婦人은 남편의 집을 안으로 삼고 어머니의 집을 밖으로 삼는다. ‘오속五屬’은 오복五服친속親屬이다. 그리하여 돌아갈 곳이 없자 마침내 〈나라〉 아래에서 남편의 시신屍身에 나아가 곡을 하니,注+ 여기의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誤字일 뿐이다. ‘’은 나라 이다. 남편이 여기에서 전사戰死하였으므로 시신屍身에 나아가 을 한 것이니, ‘’자로 쓰는 것이 옳다. 시신을 베는[] 것은 가 아니다. 여기에는 빠졌다. 그 마음속의 정성이 사람을 감동시켜서注+③ ‘’은 응당 ‘’이 되어야 하니,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誤字이다. 길을 지나는 사람마다 눈물을 뿌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열흘 만에 성이 이 때문에 무너졌다.注+
장례를 치른 뒤 말하기를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여자는 반드시 의지할 곳이 있어야 하니, 아버지가 있으면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남편이 있으면 남편에게 의지하고 아들이 있으면 아들에게 의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나는 위로는 아버지가 없고 가운데로는 남편이 없고 아래로는 아들이 없어 안으로는 의지하여 나의 정성을 나타낼 곳이 없고 밖으로는 의지하여 나의 절개를 세울 곳이 없다. 그렇지만 내 어찌 두 남편을 섬길 수야 있겠는가. 역시 죽음뿐이로다.” 하고는, 마침내 치수淄水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다.注+① 【집주集注나라 채옹蔡邕의 ≪금조琴操≫에 “‘밖으로도 의지할 곳이 없고 안으로도 의지할 곳이 없으니, 장차 어떻게 나의 절개를 세울 수 있을까. 어떻게 두 남편을 섬길 수야 있겠는가. 역시 죽음뿐이로다.’ 하고는, 이에 거문고를 끌어와 연주하며 라고 하니, 황천皇天이 슬피 감동하여 이 이 때문에 무너졌다. 이 끝나자 스스로 치수淄水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라고 하였다.
군자가 말하기를 “기량杞梁의 아내는 곧고 예를 알았다.”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내 마음이 서글프니, 애오라지 그대와 함께 돌아가리라.”注+① 여기에서 인용한 시는 아마도 또한 ≪노시魯詩≫인 듯하니, ≪모시毛詩≫와는 다르다.注+② 【교주校注고금주古今注≫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제기량처齊杞梁妻제기량처齊杞梁妻
은 다음과 같다.
기량이 전장에서 죽으니
그 아내가 수습하여 장사 지냈네
장공莊公이 길에서 조문하니
피하고 감히 받지 않았도다
성 아래에서 남편을 위해 곡하니
성이 이 때문에 무너졌다오
스스로 친척이 없다 하여
치수淄水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다네


역주
역주1 杞梁 : 春秋時代 齊나라 大夫로, 이름은 殖이고, 字가 梁이다.
역주2 文選……있는데 : ≪文選≫ 권37 〈求通親親表〉에 “성이 무너지고 여름에 서리가 내린 일을 신이 처음에는 믿었으나, 지금 신의 심정으로는 한갓 헛된 말일 뿐인 듯합니다.[崩城隕霜 臣初信之 以臣心況 徒虛語爾]”라고 하였는데, ‘崩城’에 대한 唐나라 李善의 注에 보인다.
역주3 莊公 : 春秋時代 齊나라 임금으로, 성은 姜이고, 이름은 光이다.
역주4 莊公이……죽었는데 : ≪春秋左氏傳≫ 襄公 23년 조에 “齊侯가 晉나라에서 돌아와 國都로 들어가지 않고 드디어 莒나라를 습격하여, 且于의 성문을 공격하다가 다리에 상처를 입고 퇴각하였다. 이튿날 齊侯는 다시 전투하려고 군대와 壽舒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杞殖과 華還이 수레에 甲士를 싣고 밤에 且于의 小路로 들어가 莒나라의 郊外에 노숙하였다. 이튿날 杞殖과 華還이 선발대로 가다가 蒲侯氏에서 莒子를 만났는데, 莒子는 이들에게 많은 財物을 주고 전투하지 말게 하며 ‘결맹하기를 청하노라.’라고 하였다. 그러자 華還이 대답하기를 ‘재물을 탐하여 임금의 명을 버리는 것은 莒君께서도 싫어하실 것입니다. 어제 저녁에 명을 받고 아직 정오도 되기 전에 그 명을 버린다면 어찌 임금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莒子가 친히 북을 치며 齊軍을 추격하여 杞梁을 죽였다. 莒人은 齊나라와 和親하였다.[齊侯還自晉 不入 遂襲莒 門于且于 傷股而退 明日將復戰 期于壽舒 杞殖華還載甲 夜入且于之隧 宿於莒郊 明日先遇莒子於蒲侯氏 莒子重賂之 使無死曰 請有盟 華周對曰 貪貨棄命 亦君所惡也 昏而受命 日未中而棄之 何以事君 莒子親鼓之 從而伐之 獲杞梁 莒人行成]”라고 하였다.
역주5 水經注의……있으니 : 魏나라 酈道元의 ≪水經注≫ 권26 〈沭水〉에 보인다.
역주6 水經注의……있다 : ≪水經注≫ 권26 〈沭水〉에 “만약 杞殖의 죽음에 죄가 있다면 임금께서 욕되이 명을 내릴 일이 뭐가 있습니까.[如殖死有罪 君何辱命焉]”라고 하였다.
역주7 水經注의……있다 : ≪水經注≫ 권26 〈沭水〉에 보인다.
역주8 장공이……돌아갔다 : ≪春秋左氏傳≫ 襄公 23년 조에 “齊侯가 돌아올 때 〈남편의 시신을 맞으려고 나온〉 杞梁의 아내를 교외에서 만나 사람을 보내어 弔問하자, 杞梁의 아내가 사절하며 말하기를 ‘殖에게 죄가 있다면 욕되이 명을 내릴 일이 뭐가 있습니까? 만약 죄가 없다면 先人의 낡은 집이 있으니, 下妾은 교외에서 조문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齊侯는 그 집으로 가서 弔喪하였다.[齊侯歸 遇杞梁之妻於郊 使弔之 辭曰 殖之有罪 何辱命焉 若免於罪 猶有先人之敝廬在 下妾不得與郊弔 齊侯弔諸其室]”라고 하였다. ‘下妾’은 ‘賤妾’과 같은 말로, 자신에 대한 겸칭이다.
역주9 [杞梁妻者] : 저본에는 ‘杞梁妻者’가 없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0 今殖有罪 : ≪春秋左氏傳≫에는 ‘殖之有罪’로 되어 있고, ≪水經注≫에는 ‘如殖死有罪’로 되어 있다.
역주11 五服 : 親疏의 차등에 따른 다섯 가지 喪服으로, 斬衰服, 齊衰服, 大功服, 小功服, 緦麻服을 말한다.
역주12 文選의……인용하였으니 : ≪文選≫ 권17 〈洞簫賦〉, 권37 〈求通親親表〉의 唐나라 李善의 注에 보인다.
역주13 文選……있는데 : ≪文選≫ 권17 〈洞簫賦〉와 권37 〈求通親親表〉의 唐나라 李善의 注에 보인다.
역주14 水經注……인용하였으며 : ≪水經注≫ 권26 〈沭水〉, ≪後漢書≫ 권87 〈劉瑜列傳〉 注, ≪藝文類聚≫ 권63 〈居處部 3 城〉에 보인다.
역주15 文選의……있다 : ≪文選≫ 권17 〈洞簫賦〉, 권37 〈求通親親表〉의 唐나라 李善의 注에 보인다.
역주16 (枕)[就] : 저본에는 ‘枕’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와 ≪列女傳校注≫에 의거하여 ‘就’로 바로잡았다.
역주17 [之] : 저본에는 ‘之’가 없으나, 王照圓의 注와 ≪列女傳校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8 (諴)[誠] : 저본에는 ‘諴’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誠’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9 즐거움……없다 : 屈原의 〈少司命〉에 나오는 구절이다.(≪楚辭≫ 〈九歌 少司命〉)
역주20 毛詩에는……있다 : ≪詩經≫ 〈檜風 素冠〉에는 “행여 흰 옷을 입은 사람을 볼 수 있을까. 내 마음이 서글프니, 애오라지 그대와 함께 돌아가리라.[庶見素衣兮 我心傷悲兮 聊與子同歸兮]”라고 하여, 句마다 끝에 ‘兮’자가 더 있으며, 〈毛序〉에 “〈素冠〉은 三年喪을 행하지 않음을 풍자한 시이다.[素冠 刺不能三年也]”라고 하였다.
역주21 그……지었다 : 晉나라 崔豹의 ≪古今注≫ 卷中 〈音樂第3〉에 “〈杞梁妻〉는 杞植의 妻弟 明月이 지은 것이다. 杞植이 戰死하자 그의 아내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위로는 아버지가 없고 가운데로는 남편이 없으며 아래로는 아들이 없으니, 산 사람의 괴로움이 지극하도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목을 놓아 크게 곡을 하니, 杞都의 城이 여기에 감응하여 무너졌다. 끝내 물에 뛰어들어 죽으니, 그 누이가 언니의 貞操를 슬퍼하여 마침내 노래를 지어 〈杞梁妻〉라 이름하였다.[杞梁妻 杞植妻妹明月之所作也 杞植戰死 妻歎曰 上則無父 中則無夫 下則無子 生人之苦至矣 乃抗聲長哭 杞都城感之而頹 遂投水而死 其妹悲其姊之貞操 乃爲作歌 名曰杞梁妻焉]”라고 하였다. ‘梁’은 杞植의 字이다. 참고로 ≪孟子≫ 〈告子 下〉에 “華周와 杞梁의 아내가 그 남편의 喪에 哭을 잘하자, 나라의 풍속이 변하였다.[華周杞梁之妻善哭其夫而變國俗]”라고 하였다.

열녀전보주(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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