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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2)

열녀전보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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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阿谷處女
阿谷處女者 阿谷之隧浣者也 孔子南 過阿谷之隧注+① 隧, 道也. 文選注引隧作隊, 音義同耳.라가 見處子佩而浣注+② 太平御覽引瑱作璜. 璜, 半璧也.注+③ 【校注】 璜舊誤瑱. 案瑱, 充耳也, 非佩玉. 從詩女曰鷄鳴疏引校改. 太平御覽資産部六引韓詩外傳作璜, 今外傳亦誤作瑱.하다
孔子謂子貢曰 彼浣者 其可與言乎인저하고 抽觴以授子貢曰 之辭하여 以觀其하라
子貢曰 我北鄙之人也 自北徂南하여 將欲之楚 逢天之暑하여 譚譚注+① 夫子曰 “譚譚, 韓詩外傳作潭潭. 蓋皆燂燂之借音耳. 說文云 ‘燂, 火熱也.’ 疑作燂爲是.”하니 願乞一飮하여我心하노라
處子曰 阿谷之隧 隱曲之注+② 韓詩外傳地作汜. 此誤. 其水하여 流入於海 欲飮則飮이니 何問乎婢子잇가하고
子貢觴注+③ 授當作受, 字之誤也.하여 迎流而挹之하여 投而棄之하고 從流而挹之하여 滿而溢之하여 跪置沙上曰 禮不親授라하니이다
子貢還報其辭하니 孔子曰 丘已知之矣로다하고 抽琴去其軫注+① 軫之言抮, 所以戾絃者也.하여 以授子貢曰 하라
子貢往曰 嚮者聞子之言하니 穆如淸風일새 注+② 寤, 觸啎也. 拂寤, 皆乖違之意. 私復, 韓詩外傳作和暢.이라 有琴無軫하니 願借子調其音하노라
處子曰 我鄙野之人也 陋固無心注+③ 韓詩外傳作僻陋無心.하여 五音不知하니 安能調琴이리잇고
子貢以報孔子하니 孔子曰 丘已知之矣로다 注+① 賓, 禮敬也.이라하고 抽絺綌五兩注+② 絺綌, 所以當暑, 葛越之屬也. 五兩, 五尋也. 雜記曰 “束五兩, 兩五尋.”하여 以授子貢曰 하라
子貢往曰 吾北鄙之人也 自北徂南하여 將欲之楚 有絺綌五兩하니 非敢以當子之身也어니와 願注之水旁하노라
處子曰 로소이다 分其資財하여 棄於野鄙온여 妾年甚少로대 何敢受子리잇가 子不早이나 有狂夫之者矣注+③ 命, 婚姻之命也. 名, 男女有行媒相知名也. 此言己已有夫, 却其禮幣也.니이다
子貢以告孔子하니 孔子曰 丘已知之矣로다 斯婦人 達於人情而知禮라하니라 詩云 南有喬木하니 不可休注+① 韓詩外傳息作思. 此魯詩也. 當與韓詩同. 唯毛詩作息耳.注+② 【校注】 當作思. 詩攷引韓詩外傳作思. 此作息者, 後人以誤本毛詩改之也.로다 漢有遊女하니 不可求思로다하니 此之謂也
頌曰
孔子出遊
阿谷之南이로다
異其處子하여
欲觀其風注+① 【校注】 古音方愔半.이로다
子貢三反하니
女辭辨深이로다
子曰達情하고
知禮不淫이라하다


6-6 아곡阿谷의 빨래하던 처녀處女
아곡阿谷의 빨래하던 처녀處女는 아곡의 길가에서 빨래하던 처녀이다. 공자孔子가 남쪽으로 갈 적에 아곡의 산길을 지나다가注+① ‘’는 길이다. 음과 뜻이 똑같다. 어떤 처녀가 을 차고 빨래하는 모습을 보았다.注+② ≪태평어람太平御覽≫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이 ‘’으로 되어 있다. ‘’은 반벽半璧이다.注+③ 【교주校注】 ‘’이 구본舊本에는 ‘’으로 잘못되어 있다. 상고해보건대, ‘’은 귀막이 옥이지, 차는 옥이 아니다. 에 따라 교감校勘 개정改正하였다. ≪태평어람≫ 권826 〈자산부資産部6 〉에 인용된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의 ≪한시외전≫에는 또한 ‘’으로 잘못되어 있다.
공자가 자공子貢에게 일러 말하기를 “저 빨래하는 처녀는 더불어 말할 만할 것이다.” 하고는, 잔을 꺼내어 자공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으로 말을 하여 그 뜻을 살펴보아라.” 하였다.
자공이 가서 말하기를 “나는 북방 시골 사람이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서 장차 나라로 가려는 길인데 더운 날씨를 만나 내 속이 타는 듯하니,注+가 말하기를 “‘담담譚譚’은 ≪한시외전韓詩外傳≫ 권1에는 ‘담담潭潭’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첨첨燂燂’의 음차音借일 뿐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10 〈화부火部〉에 이르기를 ‘은 불같이 뜨거운 것이다.’ 하였다. 아마 ‘’이 되는 것이 옳을 듯하다.”라고 하였다. 원컨대 물 한 잔 청하여 내 속을 진정시키고자 하오.” 하니,
처녀가 말하기를 “아곡阿谷의 산길은 그윽하고 굽이진 물가로,注+② ≪한시외전≫ 권1에는 ‘’가 ‘’로 되어 있다. 여기의 ‘’가 오류이다. 그 물은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며 흘러서 바다로 들어갑니다. 마시고 싶으면 마실 일이지, 어찌하여 저에게 묻는단 말입니까.” 하고는,
자공에게 잔을 받아注+③ ‘’는 응당 ‘’가 되어야 하니, 글자의 오류이다. 흐르는 물결을 거슬러 떠서 쏟아 버린 다음, 흐르는 물결을 따라 떠서 가득 넘치게 채운 뒤, 꿇어앉아 모래 위에 놓고 말하기를 하였다.
자공이 돌아와 그 말을 아뢰니, 공자가 말하기를 “내 이미 알고 있었다.” 하고는, 거문고를 꺼내어 기러기발을 제거한 뒤注+① ‘’이란 말은 붙인다는 뜻이니, 을 지지하는 것이다. 자공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으로 말을 해보아라.” 하였다.
자공이 가서 말하기를 “아까 그대의 말을 들으니 화하기가 맑은 바람과도 같아 거스르지도 않고 저촉되지도 않아 내 마음이 회복되었소.注+② ‘’는 저촉함이다. ‘’과 ‘’는 모두 어그러지고 위배되는 뜻이다. ‘사복私復’은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화창和暢’으로 되어 있다. 거문고는 있는데 기러기발이 없으니, 원컨대 그대에게 부탁하여 소리를 조율하고자 하오.” 하니,
처녀가 말하기를 “저는 시골 사람이라 고루하고 아무 생각이 없어注+③ ≪한시외전≫에는 ‘벽루무심僻陋無心’으로 되어 있다. 오음五音을 알지 못하니, 어떻게 거문고를 조율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자공이 그 말을 공자에게 아뢰니, 공자가 말하기를 “내 이미 알고 있었다. 현자賢者를 만나면 공경을 표하는 법이다.”注+① ‘’은 예로써 공경함이다. 하고는, 다섯 을 꺼내어注+② ‘치격絺綌’은 더위를 당해서 입는 것으로, 등속이다. 예기禮記≫ 〈잡기雜記〉에 말하기를 “1은 5이고, 1은 5이다.”라고 하였다. 자공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으로 말을 해보아라.” 하였다.
자공이 가서 말하기를 “나는 북방 시골 사람이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서 장차 초나라로 가려는 길이오. 갈포 다섯 필이 있는데, 감히 그대의 몸값에 합당하다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원컨대 물가에 두고 가고자 하오.” 하니,
처녀가 말하기를 “길 가는 사람이 오래 머무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그 재물을 나누어 시골에 버리시다니요. 저는 나이가 매우 어리나, 어찌 감히 그대의 물건을 받겠습니까. 그대는 일찌감치 혼인을 하지 않았으나 저는 광부狂夫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注+③ ‘’은 혼인의 명이다. ‘’은 이는 자기에게 이미 지아비가 있으므로 그 예폐禮幣를 물리침을 말한다. 하였다.
아곡처녀阿谷處女아곡처녀阿谷處女
자공이 그 말을 공자에게 아뢰니, 공자가 말하기를 “내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부인은 인정人情에 통달하고 를 안다.”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남쪽에 교목喬木이 있으니 가서 쉴 수가 없도다.注+①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이 ‘’로 되어 있다. 이는 ≪노시魯詩≫이니, 응당 ≪한시韓詩≫와 같아야 한다. 오직 ≪모시毛詩≫만 ‘’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注+② 【교주校注】 〈은〉 응당 ‘’가 되어야 한다. 나라 왕응린王應麟의 ≪시고詩攷≫의 ≪한시외전≫을 인용한 곳에는 ‘’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으로 된 까닭은 후인後人이 잘못 ≪모시≫를 근본으로 하여 고쳤기 때문이다. 한수漢水에 놀러 나온 여자가 있으니 구할 수 없도다.”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은 다음과 같다.
공자孔子가 일찍이 길을 가다가
아곡阿谷의 남쪽 산길에 이르렀다오
어떤 처녀를 기이하게 여겨
그 풍도를 관찰하고자 하였다네注+① 【교주校注고음古音반절음反切音이다.
자공子貢이 세 번이나 돌아와 고했으니
처녀의 말이 이치가 깊었다오
공자가 말하기를 인정에 통달하고
예를 알며 음란하지 않다 하였다네


역주
역주1 文選……있으니 : ≪文選≫ 卷25 〈西陵遇風獻康樂一首〉에 “굽이진 강가에 배를 정박하니, 흐르는 하천에 배가 끊겼도다.[曲汜薄停旅 通川絶行舟]”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唐나라 李善의 注에 보인다.
역주2 詩經……곳 : ≪詩經≫ 〈鄭風 女曰雞鳴〉에 “그대가 오게 한 분임을 알면 雜佩를 선물할 것이며, 그대가 사랑하는 분임을 알면 雜佩를 줄 것이며, 그대가 좋아하는 분임을 알면 雜佩로 보답하리라.[知子之來之 雜佩以贈之 知子之順之 雜佩以問之 知子之好之 雜佩以報之]”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孔穎達의 疏에 “≪열녀전≫에서 일컫기를 ‘阿谷의 여자가 璜을 차고 빨래하였다.’라고 하였다.[列女傳稱阿谷之女 佩璜而澣]”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역주3 : ≪韓詩外傳≫, ≪藝文類聚≫, ≪太平御覽≫ 등에는 모두 이 뒤에 ‘適楚’가 더 있다.
역주4 (瑱)[璜] : 저본에는 ‘瑱’으로 되어 있으나, ≪列女傳校注≫, ≪列女傳集注≫, ≪藝文類聚≫, ≪太平御覽≫ 등에 의거하여 ‘璜’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 ≪韓詩外傳≫에는 이 앞에 ‘善’이 더 있다.
역주6 : ≪韓詩外傳≫에는 ‘語’로 되어 있다.
역주7 夫子 : 王照圓의 남편인 郝懿行(1757~1825)으로, 자는 恂九, 호는 蘭皋이며 山東 棲霞 사람이다. 清나라 때의 저명한 經學家이자 訓詁學家로, 벼슬은 戶部 主事를 역임하였으며, 저서에 ≪爾雅義疏≫, ≪山海經箋疏≫, ≪易說≫, ≪書說≫, ≪春秋說略≫, ≪竹書紀年校正≫ 등이 있다.
역주8 禮에……하였습니다 : ≪禮記≫ 〈曲禮 上〉에 “남자와 여자가 뒤섞여 앉지 않으며, 옷걸이와 시렁을 함께 쓰지 않으며, 수건과 빗을 함께 쓰지 않으며, 직접 물건을 건네주지 않는다.[男女不雜坐 不同椸枷 不同巾櫛 不親授]”라고 하였다.
역주9 我思 : ≪韓詩外傳≫에는 ‘思心’으로 되어 있다.
역주10 : ≪韓詩外傳≫에는 ‘表’로 되어 있다.
역주11 (地)[汜] : 저본에는 ‘地’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汜’로 바로잡았다.
역주12 一淸一濁 : ≪韓詩外傳≫에는 ‘載清載濁’으로 되어 있다.
역주13 (授)[受] : 저본에는 ‘授’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와 ≪韓詩外傳≫에 의거하여 ‘受’로 바로잡았다.
역주14 : ≪韓詩外傳≫에는 이 앞에 ‘善’이 더 있다.
역주15 : ≪韓詩外傳≫에는 이 뒤에 ‘以觀其語’가 더 있다.
역주16 不拂不寤 私復我心 : ≪韓詩外傳≫에는 ‘不悖我語 和暢我心’으로 되어 있다.
역주17 葛布 : 원문은 ‘絺綌’으로, 고운 것을 絺라 하며 거친 것을 綌이라 한다. 참고로 ≪論語≫ 〈鄉黨〉에 “더위를 당해서는 가는 갈포와 굵은 갈포로 만든 홑옷을 반드시 겉에다 입으셨다.[當暑 袗絺綌 必表而出]”라고 하였다.
역주18 葛越 : 草木의 섬유질로 짠 베로, 범범하게 葛布를 가리킨다.
역주19 5兩의……5尋이다 : 5兩[匹]은 1兩[匹]마다 길이가 5尋이라는 뜻으로, 이를 尺으로 환산하면 8尺이 1尋이므로 1兩[匹]은 40尺이고, 5兩[匹]은 200尺이다. 이는 ≪禮記≫ 〈雜記 下〉에 “納幣는 1束이니, 1束은 5兩이고 1兩은 5尋이다.[納幣一束 束五兩 兩五尋]”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鄭玄의 注에 보이는 말이다. 옛날에는 ‘匹’을 ‘兩’이라고도 하였는데, 이것은 비단 1匹에는 두 箇의 끝[端]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5匹[兩]은 곧 10箇[端]이자 200尺이며 1束이다.
역주20 남녀가……것이다 : ≪禮記≫ 〈曲禮 上〉에 “남녀가 중매쟁이가 왕래함이 있지 않으면 서로 이름을 알지 않으며, 폐백을 받지 않았으면 사귀지 않고 친하지 않는다.[男女非有行媒 不相知名 非受幣 不交不親]”라고 하였다.
역주21 (過)[遇] : 저본에는 ‘過’로 되어 있으나, ≪古列女傳≫에 의거하여 ‘遇’로 바로잡았다.
역주22 遇賢則賓 : ≪韓詩外傳≫에는 없다.
역주23 : ≪韓詩外傳≫에는 이 앞에 ‘善’이 더 있다.
역주24 : ≪韓詩外傳≫에는 이 뒤에 ‘以觀其語’가 더 있다.
역주25 行客之人 嗟然永久 : ≪韓詩外傳≫에는 ‘客之行差遲乖人’으로 되어 있다.
역주26 : ≪韓詩外傳≫에는 ‘去’로 되어 있다.
역주27 : ≪韓詩外傳≫에는 이 앞에 ‘今’이 더 있다.
역주28 : ≪韓詩外傳≫에는 ‘守’로 되어 있다.
역주29 남쪽에……없도다 : ≪詩經≫ 〈周南 漢廣〉에 보인다.
역주30 (息)[思] : 저본에는 ‘息’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思’로 바로잡았다.

열녀전보주(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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