褒姒者
는 童妾之女
요 周幽王之后也
라 初
에 夏之衰也
에 褒人之神
注+① 【校注】 國語韋昭注 “褒人, 褒君也.”이 化爲二龍
하여 同於王庭而言曰
注+② 同, 共也. 此下俱鄭語文.注+③ 【校注】 韋昭云 “共處曰同.”余
는 褒之二君也
라하니라
夏后卜殺之與去
하니 莫吉
注+④ 鄭語去下有之字, 又有與止之三字, 吉作告.이어늘 卜請其漦藏之而吉
注+⑤ 漦, 龍所吐沫也. 或曰 “血也.”이라
乃布幣焉
하니 龍忽不見
이어늘 而藏漦櫝中
하여 乃置之郊
注+⑥ 櫝, 櫃也. 置之郊, 鄭語作傳郊之, 蓋言傳祭之於郊也.하여 至周莫之敢發也
러니 及周厲王之末
하여 發而觀之
하니 漦流於庭
하여 不可除也
라
王使婦人裸而譟之
하니 化爲
蚖
하여 入後宮
注+⑦ 裸, 去裳也. 譟, 讙呼也. 鄭語作不幃而譟之, 注云 “裳正幅曰幃.” 蚖, 蜥蜴也, 象龍. 鄭語作黿, 注云 “黿或爲蚖.”이라 宮之童妾
이 未毁
而遭之
注+⑧ 【校注】 國語作未旣齔. 韋昭云 “毁齒曰齔.” 此疑毁下脫齒字.러니 旣笄而孕
注+⑨ 毁, 毁齒也. 女子七歲而毁齒, 十五而筓也.하여 當宣王之時産
하니 無夫而乳
라 懼而棄之
라
先是有童
謠曰 檿弧箕服
注+⑩ 史記童下有女字. 鄭語注云 “山桑曰檿. 弧, 弓也. 箕, 木名. 服, 矢房.”이 實亡周國
이라
宣王聞之
러니 後有人夫妻賣檿弧箕服之器者
어늘 王使執而戮之
라 夫妻夜逃
라가 聞童妾
遭棄而夜號
注+⑪ 【校正】 房案妾字下, 疑脫之女二字.하고 哀而取之
하여 遂竄於褒
라
長而美好
한대 褒人姁有獄
일새 獻之以贖
注+⑫ 姁, 褒人之名也. 贖, 贖罪也.이라 幽王受而嬖之
하고 遂釋褒姁
라 故號曰褒姒
라하니라
旣生子伯服에 幽王乃廢后申侯之女하고 而立褒姒爲后하며 廢太子宜咎하고 而立伯服爲太子라
幽王
이 惑於褒姒
하여 出入
에 與之同乘
하고 不卹國事
하며 驅馳弋獵不時
하여 以適褒姒之意
라 飮酒流湎
注+① 【校注】 流一本作沈.하고 倡優在前
하여 以夜續晝
注+② 【校注】 續一本作繼.라
褒姒不笑
어늘 幽王乃欲其笑萬端
이로되 故不笑
라 幽王爲熢燧大鼓
하여 有寇至則擧
注+③ 熢, 熢火也. 夜曰熢, 晝曰燧, 皆置亭障, 候敵以告警. 大鼓聲聞數百里.러니 諸侯悉至而無寇
라 褒姒乃大笑
라
幽王欲悅之
하여 數爲擧烽火
하니 其後不信
하여 諸侯不至
注+④ 【集注】 呂氏春秋 “周室酆鎬近戎人, 與諸侯約, 爲高葆禱於王路, 置鼓其上, 遠近相聞. 即戎寇至, . 戎寇當至, 幽王擊鼓, 諸侯之兵皆至, 褒姒大說, 喜之. 幽王欲褒姒之笑也, 因數擊鼓, 諸侯之兵數至而無寇. , 幽王, .”라 忠諫者誅
하고 唯褒姒言是從
하니 上下相諛
하고 百姓乖離
라
申侯乃與繒西夷犬戎으로 共攻幽王이라 幽王擧烽燧徵兵호되 莫至라 遂殺幽王於驪山之下하고 虜褒姒하고 盡取周賂而去라
於是諸侯乃卽申侯하여 而共立故太子宜咎하니 是爲平王이라 自是之後로 周與諸侯無異라
詩曰 赫赫宗周
를 褒姒滅之
注+① 宗周, 西周, 鎬京也. 滅, 毛詩作烕. 傳云 “烕, 滅也.” 釋文 “烕, 本或作滅.”注+② 【校正】 庸案烕, 古滅字. 毛詩古文, 故作烕, 韓魯詩今文, 故作滅. 毛傳以今證古, 故曰“烕, 滅也”.라하니 此之謂也
라
포사褒姒는 계집종의 딸이요,
주周 유왕幽王의
후비后妃이다. 처음
하夏나라가 쇠할 때
포褒나라
선군先君의
신령神靈이
注+① 【교주校注】 ≪국어國語≫ 위소韋昭 주注에 “포褒나라 사람은 포나라 임금이다.”라고 하였다. 두 마리
용龍으로 변하여 왕궁의 뜰에 함께 거처하면서 말하기를
注+② ‘동同’은 함께이다. 이 아래는 모두 ≪국어≫ 〈정어鄭語〉의 글이다.注+③ 【교주校注】 위소가 이르기를 “함께 거처하는 것을 ‘동同’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포나라의 두 임금이다.”라고 하였다.
하夏나라 임금
걸桀이 그 용을 죽일지 쫓아낼 지를 점치니 어느 쪽도
길吉하지 않았는데,
注+④ ≪국어≫ 〈정어〉에는 ‘거去’ 아래에 ‘지之’자가 있고, 또 ‘여지지與止之’ 3자가 있으며, 그 침을 청하여 보관하는 일을 점치니
길吉하였다.
注+⑤ ‘시漦’는 용이 뿜어낸 거품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피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폐백幣帛을 진열하여 〈
간책簡冊에 사유를 적어 아뢰었더니〉 용이 홀연 사라지거늘 그 침을 궤 안에 갈무리하여 이에 교외에 두고서
注+⑥ ‘독櫝’은 궤짝이다. ‘치지교置之郊’는 ≪국어≫ 〈정어〉에 ‘전교지傳郊之’로 되어 있으니, 이는 역마驛馬로 운반하여 교제郊祭를 지냄을 말한 것이다. 주周나라에 이르도록 감히 열어보지 못하였다.
주周 여왕厲王 말기에 이르러 열어 보니 침이 뜰에 흘러 없앨 수 없었다.
왕이
부인婦人들로 하여금 치마를 벗고 떠들썩하게 소리 지르게 하였더니 검은 도마뱀으로 변하여
후궁後宮으로 들어갔다.
注+⑦ ‘나裸’는 치마를 벗는 것이다. ‘조譟’는 떠들썩하게 부르짖는 것이다. ≪국어≫ 〈정어〉에는 ‘부위이조지不幃而譟之’로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주注에 이르기를 “치마의 정폭正幅을 위幃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원蚖은 도마뱀이니, 용과 비슷하다. ≪국어≫ 〈정어〉에는 ‘원黿’으로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주注에 이르기를 “‘원黿’은 어떤 본에는 ‘원蚖’으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후궁의 계집종이 아직 젖니도 다 갈지 않은 나이에 도마뱀을 만났는데,
注+⑧ 【교주校注】 ≪국어≫ 〈정어〉에는 ‘아직 이도 다 갈지 않았다.’로 되어 있다. 위소韋昭가 이르기를 “이를 가는 것을 ‘츤齔’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아마 ‘훼毁’ 아래에 ‘치齒’자가 빠진 듯하다. 이미 비녀를 꽂을 나이가 되자 임신을 하여
注+⑨ 훼毁는 이를 가는 것이다. 여자는 7세에 이를 갈고 15세에 비녀를 꽂는다. 선왕宣王 때에 아이를 낳았으니 남편 없이 아이를 낳았는지라 두려워하여 아이를 버렸다.
이보다 앞서 어린 계집아이들의 노래가 있었는데, 그 노래 가사는 “산뽕나무로 만든 활과
기箕나무로 만든 화살통이
注+⑩ ≪사기史記≫에는 ‘동童’ 아래에 ‘여女’자가 있다. ≪국어≫ 〈정어〉 주注에 이르기를 “산뽕나무를 ‘염檿’이라고 한다. 호弧는 활이다. 기箕는 나무 이름이다. 복服은 화살통이다.”라고 하였다. 실로
주周나라를 망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선왕宣王도 이 노래를 들었는데 후에 산뽕나무로 만든 활과
기箕나무로 만든 화살통 등의 기물을 팔러 다니는 부부가 있었다. 왕이 사람으로 하여금 잡아서 죽이게 하였는데, 밤에 부부가 도망을 가다가 계집종의 딸이 버림을 당하여 밤에 우는 소리를 듣고
注+⑪ 【교정校正】 이 상고하건대, ‘첩妾’자 아래에 아마 ‘지녀之女’ 2자가 빠진 듯하다. 불쌍히 여겨 거두어 가지고 드디어 포나라로 달아났다.
그 여자아이는 자라서 아름답고 예뻤는데, 포나라 임금
후姁가 죄를 지어 옥에 갇히게 되었으므로
유왕幽王에게 그 여자아이를 바쳐 죗값을 대신하고자 하였다.
注+⑫ 후姁는 포褒나라 사람의 이름이다. 속贖은 속죄함이다. 유왕幽王이 이 여자아이를 받아들여 총애하고 마침내 포나라 임금 후를 풀어주었다. 그러므로 이름을
포사褒姒라고 하였다.
포사褒姒가 아들 백복伯服을 낳자 유왕幽王은 왕후王后인 신申나라 제후諸侯의 딸을 폐위하고 포사를 세워 왕후王后를 삼고 태자太子인 의구宜咎를 폐위하고 백복을 세워 태자를 삼았다.
유왕은 포사에게 미혹되어 출입할 때에 포사와 수레를 함께 타고 나랏일을 돌보지 않았으며 수시로 말을 몰아 사냥을 하여 포사의 비위를 맞추려 하였다. 음주에 빠지고
注+① 【교주校注】 ‘유流’는 어떤 본에는 ‘침沈’으로 되어 있다. 배우들을 앞에 불러 공연하고 춤을 추게 하여 밤낮없이 즐겼다.
注+② 【교주校注】 ‘속續’은 어떤 본에는 ‘계繼’로 되어 있다.
포사가 웃지 않으니 유왕이 그녀를 웃게 만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썼으나 포사는 그래도 웃지 않았다. 유왕이 〈일찍이 변경에〉 봉화와 큰 북을 만들어 놓고 외적이 침입하면 봉화를 울리고 큰 북을 쳐서 알리도록 제후들과 약속하였다.
注+③ 봉熢은 봉화熢火이다. 밤에 올리는 것을 ‘봉熢’이라고 하고, 낮에 올리는 것을 ‘수燧’라고 하니, 모두 에 두어 적의 동태를 살펴 위급한 상황을 알린다. 큰 북은 소리가 수 백리까지 들린다. 〈한번은 유왕이 봉화를 올리고 북을 치자〉 제후들이 모두 달려왔으나 외적이 침입하지 않았다. 그러자 포사가 크게 웃었다.
유왕이 포사를 기쁘게 해주고자 하여 자주 봉화를 올리니, 그 뒤로 제후들이 믿지 않아 달려오지 않았다.
注+④ 【집주集注】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주周나라 왕실은 풍酆과 호鎬에 터를 잡았는데 융인戎人들의 거처와 가까운지라 제후諸侯들과 약속하되 왕도로 통하는 큰 길을 따라 높이 보루를 만들고 그 위에 북을 설치하여 원근遠近에 들리게 한 다음, 만일 융인이 침략해 오면 북소리를 전해 서로 알리기로 하였다. 융인이 침략하자 유왕幽王이 북을 치니 제후諸侯의 군대들이 모두 이르렀다. 포사褒姒가 매우 좋아하며 기뻐하였다. 유왕이 포사를 웃게 하고 싶어서 인하여 여러 번 북을 치니 제후들의 군대가 여러 번 이르렀지만 침략자는 없었다. 후에 융인의 침략군이 정말로 침입하기에 이르러서, 유왕의 몸은 여산驪山 아래에서 죽임을 당하였다.”라고 하였다. 충심으로 간언하는 자를 죽이고 오직 포사의 말만을 따르니 위아래가 서로 아첨을 일삼고 백성들의 마음은
이반離叛하였다.
신후申侯가 이에 증繒나라와 서이西夷의 견융犬戎과 연합하여 함께 유왕幽王을 공격하였다. 유왕이 봉화를 올려 제후諸侯의 군대를 불렀으나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신후가〉 마침내 여산驪山 아래에서 유왕을 죽이고 포사褒姒를 사로잡고 주周나라의 재물을 모두 취하여 가지고 갔다.
이에 제후들이 신후의 뜻에 따라 옛 태자太子 의구宜咎를 함께 세우니, 이가 바로 평왕平王이다. 이후로부터 주나라는 다른 제후국諸侯國과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注+① 종주宗周는 서주西周이니, 호경鎬京이다. ‘멸滅’은 ≪모시毛詩≫에 ‘혈烕’로 되어 있다. 전傳에 이르기를 “혈烕은 멸滅이다.”라고 하였다. ≪경전석문經典釋文≫에 “‘혈烕’은 어떤 판본에는 ‘멸滅’로 되어 있기도 하다.”라고 하였다.注+② 【교정校正】 장용臧庸은 상고하건대, ‘혈烕’은 옛날의 ‘멸滅’자이다. ≪모시≫는 고문古文이기 때문에 ‘혈烕’로 되어 있고, ≪한시韓詩≫와 ≪노시魯詩≫는 금문今文이기 때문에 ‘멸滅’로 되어 있다. 모전毛傳은 금문으로 고문을 증명하였기 때문에 “‘혈烕’은 ‘멸滅’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