楚處莊姪者
注+① 【校注】 姪, 渚宮舊事三作娙, 下竝同. 疑姪字誤.는 楚頃襄王之夫人
注+② 處, 處子也. 莊, 蓋其姓也. 頃襄王, 懷王之子也.이요 縣邑之女也
라 初
에 頃襄王好
하여 出入不時
하고 行年四十
토록 不立太子
하고 諫者蔽塞
하여 屈原放逐
하여 國旣殆矣
러니
秦欲襲其國
하여 乃使張儀間之
호대 使其左右謂王曰
注+③ 唐, 高唐也. 楚襄王遊焉.이라하니 王將往
이라
是時에 莊姪年十二러니 謂其母曰 王好淫樂하여 出入不時하고 春秋旣盛이로대 不立太子하더니 今秦又使人重賂左右하여 以惑我王하여 使游五百里之外하여 以觀其勢라
王已出이면 姦臣必倚敵國而發謀하고 王必不得反國하리니 姪願往諫之하노이다 其母曰 汝嬰兒也라 安知諫이리오하고 不遣하다
姪乃逃
하여 以緹竿爲幟
注+① 緹, 赤色帛也. 以赤帛揭於竿首爲幟也.하여 姪持幟伏南郊道旁
이라가 王車至
에 姪擧其幟
하니 王見之而止
하고 使人往問之
하다
使者報曰 有一女童伏於幟下하여 願有謁於王이니이다 王曰 召之하라
姪至하니 王曰 女何爲者也오 姪對曰 妾縣邑之女也니이다 欲言隱事於王이나 恐壅閼蔽塞而不得見이러니 聞大王出遊五百里하고 因以幟見이니이다
王曰 子何以戒寡人가 姪對曰 大魚失水하고 有龍無尾하며 牆欲內崩이로대 而王不視하니이다
王曰 不知也라 姪對曰 大魚失水者는 王離國五百里也하여 樂之於前하고 不思禍之起於後也요 有龍無尾者는 年旣四十이로대 無太子也하고 國無强輔하여 必且殆也요 牆欲內崩이로대 而王不視者는 禍亂且成이나 而王不改也니이다
王曰 何謂也오 姪曰 王好臺榭하고 不恤衆庶하여 出入不時하고 耳目不聰明하며 春秋四十이로대 不立太子하고 國無强輔하여 外內崩壞하며
强秦使人內間王左右
하여 使王不改
하여 注+① 【校注】 舊誤作滋日以甚. 從太平御覽校改.이라 今禍且構
注+② 滋, 益也. 構, 交結也.로대 니이다
王曰 何也오 姪曰 王之致此三難也는 以五患이니이다 王曰 何謂五患고
姪曰 宮室相望
하고 城郭闊達
이 一患也
요 宮垣衣繡
注+① 言被土木以文繡也.로대 民人無褐
이 二患也
요 奢侈無度
하여 國且虛竭
이 三患也
요 百姓飢餓
어늘 馬有餘秣
注+② 孟子所謂廐有肥馬, 民有飢色也.이 四患也
요 邪臣在側
하여 賢者不達
이 五患也
니 王有五患
이라 故及三難
注+③ 三難, 謂魚失水ㆍ龍無尾ㆍ牆內崩也.이니이다
王曰 善
하다하고 命後車載之
하여 立
反
하니 國
已閉
하고 反者已定
이어늘
王乃發鄢郢之師以擊之
하여 하다 乃立姪爲夫人
하니 하다 이러라
君子謂 莊姪
은 雖違於禮
注+① 違禮, 言不由媒聘.나 而終守以正
이라하니라 詩云 北風其喈
며 雨雪霏霏
注+② 毛詩上霏作其.로다 惠而好我
로 攜手同歸
호리라하니 此之謂也
라
초楚나라의 어린 처녀
장질莊姪은
注+① 【교주校注】 ‘질姪’은 ≪저궁구사渚宮舊事≫ 권卷3 〈주대하周代下〉에는 ‘형娙’으로 되어 있다. 이하도 모두 같다. 아마 ‘질姪’자가 오자인 듯하다. 초나라
의
부인夫人이자
注+② ‘처處’는 처자處子이다. ‘장莊’은 아마도 그 성姓일 것이다. ‘경양왕頃襄王’은 회왕懷王의 아들이다. 현읍縣邑의 여자이다. 처음에 경양왕이 누대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여 출입이 일정한 때가 없었고, 나이가 마흔이 되도록
태자太子를 세우지도 않았고,
간언諫言하는 자들이 가로막혀
같은 충신이
방축放逐된 나머지 나라가 이미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진秦나라가 초나라를 습격하고자 하여 이에
로 하여금 이간질을 시키되 왕의 측근을 시켜 왕에게 “남쪽으로 오백 리 밖에 있는
에 가서 놀면 즐거울 것입니다.”
注+③ ‘당唐’은 고당高唐이니, 초楚 양왕襄王이 여기에서 노닐었다.라고 이르게 하니, 왕이 장차 가려고 하였다.
이 당시 장질莊姪은 열두 살이었는데, 그 어미에게 일러 말하기를 “왕이 향락을 좋아하여 출입이 일정한 때가 없고, 춘추가 이미 많은데도 태자를 세우지 않더니, 이제 진秦나라가 또 사람을 시켜 측근에게 후한 뇌물을 주어 우리 왕을 미혹시켜 오백 리 밖으로 나가 놀게 한 뒤 그 형세를 살피려고 합니다.
왕이 나가고 나면 간신姦臣들은 틀림없이 적국敵國에 의지하여 모의를 할 것이며, 왕은 틀림없이 국도國都로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가서 간언하겠습니다.” 하니, 그 어미가 말하기를 “너는 어린 아이이다. 어떻게 간언을 할 줄 알겠느냐.” 하고, 보내지 않았다.
그러자 장질은 마침내 도망하여 붉은 비단을 장대에 매달아 깃발을 만든 다음,
注+① ‘제緹’는 붉은 색깔의 비단이다. 붉은 비단을 장대 끝에 달아 깃발을 삼은 것이다. 직접 깃발을 지니고 남쪽 교외 길가에 엎드려 있다가 왕의 수레가 이르자 그 깃발을 드니, 왕이 이를 보고 멈춘 뒤 사람을 시켜 가서 물어보게 하였다.
사자使者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어떤 한 여자 아이가 깃발 아래 엎드린 채 왕을 알현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니, 왕이 말하기를 “불러오라.” 하였다.
장질이 이르자, 왕이 말하기를 “너는 무엇 하는 아이이냐?” 하니, 장질이 대답하기를 “저는 현읍縣邑의 여자입니다. 대왕께 은밀한 일을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저지되고 막혀서 뵙지 못할까 저어하였는데, 마침 대왕께서 오백 리 밖으로 유람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깃발을 들고 뵙고자 한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너는 무엇으로
과인寡人을 경계하려 하느냐?” 하니, 장질이 대답하기를 “큰 물고기가 물을 잃었고, 용이 있으나 꼬리가 없으며, 담장이 안에서 무너지려 하는데도 왕께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초처장질楚處莊姪
왕이 말하기를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하니, 장질이 대답하기를 “‘큰 물고기가 물을 잃었다’는 것은 왕께서 국도國都를 오백 리나 벗어나 눈앞의 쾌락만 즐기고 화란禍亂이 뒤에서 일어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용이 있으나 꼬리가 없다’는 것은 연세가 이미 마흔인데도 태자가 없고 나라에 강한 보좌가 없어 반드시 장차 위태로울 것이라는 말입니다. ‘담장이 안에서 무너지려 하는데도 왕께서 보지 못한다’는 것은 환란이 장차 이루어지려 하는데도 왕께서 고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무슨 말이냐?” 하니, 장질이 말하기를 “왕께서 누대에서 노는 것만 좋아하고 백성들은 돌보지 아니하여 출입이 일정한 때가 없고 이목耳目이 총명하지 못하며, 춘추가 마흔인데도 태자를 세우지 않고 나라에 강한 보좌가 없어 안팎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구나 강한
진秦나라가 사람을 시켜 안으로 왕의 좌우를 이간하여 왕으로 하여금 고치지 않고 날로 더욱 심해지게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注+① 【교주校注】 구본舊本에는 ‘자일이심滋日以甚’으로 잘못되어 있다. ≪태평어람太平御覽≫을 따라 교감校勘 개정改正하였다. 그리하여 지금 환란이 장차 일어나게 되었는데도
注+② ‘자滋’는 더한다는 뜻이다. ‘구構’는 서로 맺는다는 뜻이다. 왕께서는 오백 리 밖으로 유람을 가고 있으니, 왕께서 기어이 가시면 이 나라는 왕의 나라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어째서인가?” 하니, 장질이 말하기를 “왕께서 이러한 세 가지 곤경에 이른 것은 다섯 가지 우환 때문입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무엇을 다섯 가지 우환이라 하느냐?” 하니,
장질이 말하기를 “
궁실宮室이 서로 잇닿아 있고
성곽城郭이 넓은 것이 첫 번째 우환이요, 궁궐의 담장은 화려하게 꾸몄으나
注+① 토목土木 공사를 가하여 화려하게 꾸몄다는 말이다. 백성들은 거친 베옷조차 없는 것이 두 번째 우환이요, 사치함이 한도가 없어 나라의 재정이 장차 고갈되고 있는 것이 세 번째 우환이요, 백성들은 굶주리는데도 말 먹이는 꼴은 남아도는 것이
注+② 네 번째 우환이요, 간사한 신하가 곁에 있어 어진 이가 이르지 못하는 것이 다섯 번째 우환이니, 왕께서 다섯 가지 우환을 가지고 계시기에 세 가지 곤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注+③ ‘삼난三難’은 물고기가 물을 잃은 것과 용이 꼬리가 없는 것과 담장이 안에서 무너지는 것을 이른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훌륭하다.” 하고, 명하여 후거後車에 그녀를 태우게 한 뒤 곧바로 다시 돌아가니, 도성 문이 이미 닫혀 있었으며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 이미 도성을 점거한 뒤였다.
왕이 이에 언鄢과 영郢 지역의 군사를 출동시켜 공격한 뒤에야 겨우 진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장질을 세워 부인夫人으로 삼으니, 지위가 정자수鄭子袖보다 높았다. 왕을 위해 절약하고 검소하며 백성을 사랑하는 일을 진달하여 초나라가 다시 강성해졌다.
군자가 이르기를 “
장질莊姪은 비록 예를 어겼으나
注+① 예를 어겼다는 것은 매빙媒聘을 말미암지 않았음을 말한다. 끝내 정도를 지켰다.”라고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