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列女傳補注(2)

열녀전보주(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열녀전보주(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6-13 楚處莊姪
楚處莊姪者注+① 【校注】 姪, 渚宮舊事三作娙, 下竝同. 疑姪字誤. 楚頃襄王之夫人注+② 處, 處子也. 莊, 蓋其姓也. 頃襄王, 懷王之子也.이요 縣邑之女也 頃襄王好하여 出入不時하고 行年四十토록 不立太子하고 諫者蔽塞하여 屈原放逐하여 國旣殆矣러니
秦欲襲其國하여 乃使張儀間之호대 使其左右謂王曰 注+③ 唐, 高唐也. 楚襄王遊焉.이라하니 王將往이라
是時 莊姪年十二러니 謂其母曰 王好淫樂하여 出入不時하고 春秋旣盛이로대 不立太子하더니 今秦又使人重賂左右하여 以惑我王하여 使游五百里之外하여 以觀其勢
王已出이면 姦臣必倚敵國而發謀하고 王必不得反國하리니 姪願往諫之하노이다 其母曰 汝嬰兒也 安知諫이리오하고 不遣하다
姪乃逃하여 以緹竿爲幟注+① 緹, 赤色帛也. 以赤帛揭於竿首爲幟也.하여 姪持幟伏南郊道旁이라가 王車至 姪擧其幟하니 王見之而止하고 使人往問之하다
使者報曰 有一女童伏於幟下하여 願有謁於王이니이다 王曰 召之하라
姪至하니 王曰 女何爲者也 姪對曰 妾縣邑之女也니이다 欲言隱事於王이나 恐壅閼蔽塞而不得見이러니 聞大王出遊五百里하고 因以幟見이니이다
王曰 子何以戒寡人 姪對曰 大魚失水하고 有龍無尾하며 牆欲內崩이로대 而王不視하니이다
王曰 不知也 姪對曰 大魚失水者 王離國五百里也하여 樂之於前하고 不思禍之起於後也 有龍無尾者 年旣四十이로대 無太子也하고 國無强輔하여 必且殆也 牆欲內崩이로대 而王不視者 禍亂且成이나 而王不改也니이다
王曰 何謂也 姪曰 王好臺榭하고 不恤衆庶하여 出入不時하고 耳目不聰明하며 春秋四十이로대 不立太子하고 國無强輔하여 外內崩壞하며
强秦使人內間王左右하여 使王不改하여 注+① 【校注】 舊誤作滋日以甚. 從太平御覽校改.이라 今禍且構注+② 滋, 益也. 構, 交結也.로대 니이다
王曰 何也 姪曰 王之致此三難也 以五患이니이다 王曰 何謂五患
姪曰 宮室相望하고 城郭闊達 一患也 宮垣衣繡注+① 言被土木以文繡也.로대 民人無褐 二患也 奢侈無度하여 國且虛竭 三患也 百姓飢餓어늘 馬有餘秣注+② 孟子所謂廐有肥馬, 民有飢色也. 四患也 邪臣在側하여 賢者不達 五患也 王有五患이라 故及三難注+③ 三難, 謂魚失水ㆍ龍無尾ㆍ牆內崩也.이니이다
王曰 善하다하고 命後車載之하여하니已閉하고 反者已定이어늘
王乃發鄢郢之師以擊之하여 하다 乃立姪爲夫人하니 하다 이러라
君子謂 莊姪 雖違於禮注+① 違禮, 言不由媒聘. 而終守以正이라하니라 詩云 北風其喈 雨雪霏霏注+② 毛詩上霏作其.로다 惠而好我 攜手同歸호리라하니 此之謂也
頌曰
楚處莊姪
雖爲女童이나
以幟見王하여
陳國禍凶이로다
設王三難
五患累重하니
王載以歸하여
終卒有功이로다


6-13 나라의 어린 처녀 장질莊姪
나라의 어린 처녀 장질莊姪注+① 【교주校注】 ‘’은 ≪저궁구사渚宮舊事3 〈주대하周代下〉에는 ‘’으로 되어 있다. 이하도 모두 같다. 아마 ‘’자가 오자인 듯하다. 초나라 부인夫人이자注+② ‘’는 처자處子이다. ‘’은 아마도 그 일 것이다. ‘경양왕頃襄王’은 회왕懷王의 아들이다. 현읍縣邑의 여자이다. 처음에 경양왕이 누대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여 출입이 일정한 때가 없었고, 나이가 마흔이 되도록 태자太子를 세우지도 않았고, 간언諫言하는 자들이 가로막혀 같은 충신이 방축放逐된 나머지 나라가 이미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나라가 초나라를 습격하고자 하여 이에 로 하여금 이간질을 시키되 왕의 측근을 시켜 왕에게 “남쪽으로 오백 리 밖에 있는 에 가서 놀면 즐거울 것입니다.”注+③ ‘’은 고당高唐이니, 양왕襄王이 여기에서 노닐었다.라고 이르게 하니, 왕이 장차 가려고 하였다.
이 당시 장질莊姪은 열두 살이었는데, 그 어미에게 일러 말하기를 “왕이 향락을 좋아하여 출입이 일정한 때가 없고, 춘추가 이미 많은데도 태자를 세우지 않더니, 이제 나라가 또 사람을 시켜 측근에게 후한 뇌물을 주어 우리 왕을 미혹시켜 오백 리 밖으로 나가 놀게 한 뒤 그 형세를 살피려고 합니다.
왕이 나가고 나면 간신姦臣들은 틀림없이 적국敵國에 의지하여 모의를 할 것이며, 왕은 틀림없이 국도國都로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가서 간언하겠습니다.” 하니, 그 어미가 말하기를 “너는 어린 아이이다. 어떻게 간언을 할 줄 알겠느냐.” 하고, 보내지 않았다.
그러자 장질은 마침내 도망하여 붉은 비단을 장대에 매달아 깃발을 만든 다음,注+① ‘’는 붉은 색깔의 비단이다. 붉은 비단을 장대 끝에 달아 깃발을 삼은 것이다. 직접 깃발을 지니고 남쪽 교외 길가에 엎드려 있다가 왕의 수레가 이르자 그 깃발을 드니, 왕이 이를 보고 멈춘 뒤 사람을 시켜 가서 물어보게 하였다.
사자使者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어떤 한 여자 아이가 깃발 아래 엎드린 채 왕을 알현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니, 왕이 말하기를 “불러오라.” 하였다.
장질이 이르자, 왕이 말하기를 “너는 무엇 하는 아이이냐?” 하니, 장질이 대답하기를 “저는 현읍縣邑의 여자입니다. 대왕께 은밀한 일을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저지되고 막혀서 뵙지 못할까 저어하였는데, 마침 대왕께서 오백 리 밖으로 유람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깃발을 들고 뵙고자 한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너는 무엇으로 과인寡人을 경계하려 하느냐?” 하니, 장질이 대답하기를 “큰 물고기가 물을 잃었고, 용이 있으나 꼬리가 없으며, 담장이 안에서 무너지려 하는데도 왕께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초처장질楚處莊姪초처장질楚處莊姪
왕이 말하기를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하니, 장질이 대답하기를 “‘큰 물고기가 물을 잃었다’는 것은 왕께서 국도國都를 오백 리나 벗어나 눈앞의 쾌락만 즐기고 화란禍亂이 뒤에서 일어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용이 있으나 꼬리가 없다’는 것은 연세가 이미 마흔인데도 태자가 없고 나라에 강한 보좌가 없어 반드시 장차 위태로울 것이라는 말입니다. ‘담장이 안에서 무너지려 하는데도 왕께서 보지 못한다’는 것은 환란이 장차 이루어지려 하는데도 왕께서 고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무슨 말이냐?” 하니, 장질이 말하기를 “왕께서 누대에서 노는 것만 좋아하고 백성들은 돌보지 아니하여 출입이 일정한 때가 없고 이목耳目이 총명하지 못하며, 춘추가 마흔인데도 태자를 세우지 않고 나라에 강한 보좌가 없어 안팎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구나 강한 나라가 사람을 시켜 안으로 왕의 좌우를 이간하여 왕으로 하여금 고치지 않고 날로 더욱 심해지게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注+① 【교주校注구본舊本에는 ‘자일이심滋日以甚’으로 잘못되어 있다. ≪태평어람太平御覽≫을 따라 교감校勘 개정改正하였다. 그리하여 지금 환란이 장차 일어나게 되었는데도注+② ‘’는 더한다는 뜻이다. ‘’는 서로 맺는다는 뜻이다. 왕께서는 오백 리 밖으로 유람을 가고 있으니, 왕께서 기어이 가시면 이 나라는 왕의 나라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어째서인가?” 하니, 장질이 말하기를 “왕께서 이러한 세 가지 곤경에 이른 것은 다섯 가지 우환 때문입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무엇을 다섯 가지 우환이라 하느냐?” 하니,
장질이 말하기를 “궁실宮室이 서로 잇닿아 있고 성곽城郭이 넓은 것이 첫 번째 우환이요, 궁궐의 담장은 화려하게 꾸몄으나注+토목土木 공사를 가하여 화려하게 꾸몄다는 말이다. 백성들은 거친 베옷조차 없는 것이 두 번째 우환이요, 사치함이 한도가 없어 나라의 재정이 장차 고갈되고 있는 것이 세 번째 우환이요, 백성들은 굶주리는데도 말 먹이는 꼴은 남아도는 것이注+ 네 번째 우환이요, 간사한 신하가 곁에 있어 어진 이가 이르지 못하는 것이 다섯 번째 우환이니, 왕께서 다섯 가지 우환을 가지고 계시기에 세 가지 곤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注+③ ‘삼난三難’은 물고기가 물을 잃은 것과 용이 꼬리가 없는 것과 담장이 안에서 무너지는 것을 이른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훌륭하다.” 하고, 명하여 후거後車에 그녀를 태우게 한 뒤 곧바로 다시 돌아가니, 도성 문이 이미 닫혀 있었으며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 이미 도성을 점거한 뒤였다.
왕이 이에 지역의 군사를 출동시켜 공격한 뒤에야 겨우 진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장질을 세워 부인夫人으로 삼으니, 지위가 정자수鄭子袖보다 높았다. 왕을 위해 절약하고 검소하며 백성을 사랑하는 일을 진달하여 초나라가 다시 강성해졌다.
군자가 이르기를 “장질莊姪은 비록 예를 어겼으나注+① 예를 어겼다는 것은 매빙媒聘을 말미암지 않았음을 말한다. 끝내 정도를 지켰다.”라고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북풍北風이 세차게 불어오며, 함박눈이 펑펑 내리도다.注+② ≪모시毛詩≫에는 위의 ‘’가 ‘’로 되어 있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이와, 손잡고 함께 돌아가리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은 다음과 같다.
초나라 처녀 장질은
비록 나이 어린 여자였으나
깃발을 들고 왕을 알현하여
나라의 환란을 진달하였다네
왕에게 세 가지 곤경과
다섯 가지 우환이 거듭 쌓였음을 말하니
왕이 수레에 태우고 돌아가
끝내 공을 이룰 수 있었다네


역주
역주1 頃襄王 : 戰國時代 楚나라 임금으로, 熊氏이고 이름은 橫이다.
역주2 屈原 : 戰國時代 楚나라의 忠臣으로, 이름은 平이고 자가 原이다. 懷王의 신임이 두터웠는데 참소를 당하여 江南으로 귀양을 가게 되자 〈漁父辭〉 등을 지어 자기의 뜻을 보이고 汨羅水에 빠져 죽었다.
역주3 張儀 : 戰國時代 대표적인 遊說客으로, 6國이 동맹해서 秦나라에 대항하자는 蘇秦의 合從策을 반대하고 6국이 秦나라를 섬기자는 連橫策을 내세웠다.
역주4 高唐 : 戰國時代 楚나라의 臺觀 이름으로, 雲夢澤에 있었다. 楚 襄王이 일찍이 高唐에서 노닐다가 꿈속에서 巫山神女를 만나 雲雨之情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역주5 臺榭 : ≪太平御覽≫에는 ‘遊觀之樂焉’으로 되어 있다.
역주6 南游於唐五百里 有樂焉 : 참고로 이 구절은 ‘南游於唐, 五百里有樂焉.’으로 標點을 찍고, ‘남쪽으로 高唐에 가서 놀면 오백 리 길에 즐거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로 풀이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南游於唐五百里. 有樂焉.’으로 傍點을 찍은 臺灣商務印書館本 ≪列女傳補注≫와 ‘남으로 당 땅 오백 리에 가 놀면 즐거울 것입니다.’로 풀이한 국회도서관소장 諺解本 ≪고열녀전≫을 따라 번역하였다.
역주7 (滋)日以[滋]甚 : 저본에는 ‘滋日以甚’으로 되어 있으나, ≪列女傳校注≫, ≪列女傳集注≫, ≪太平御覽≫에 의거하여 ‘日以滋甚’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 今禍且構……國非王之國也 : ≪太平御覽≫에는 ‘王不亟反且及禍雖悔無逮’로 되어 있다.
역주9 孟子의……것이다 : ≪孟子≫ 〈梁惠王 上〉에 보이는 구절로, “푸줏간에는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으면서,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한 것이다.[庖有肥肉 廄有肥馬 民有飢色 野有餓莩 此率獸而食人也]”라고 하였다.
역주10 : ≪太平御覽≫과 ≪渚宮舊事≫에는 모두 없다.
역주11 : ≪太平御覽≫에는 이 앞에 ‘比至國’이 더 있고, ≪渚宮舊事≫에는 이 앞에 ‘旣反國’이 더 있다.
역주12 僅能勝之 : ≪太平御覽≫에는 ‘僅而得勝’으로 되어 있다.
역주13 位在鄭子袖之右 : 참고로 山東大學出版社本 ≪列女傳譯注≫의 張濤의 注에 “여기에서 말한 내용은 아마 오류가 있는 듯하다. 鄭子袖는 곧 鄭袖로, 楚 懷王의 부인이다. ‘右’는 옛날에 오른쪽을 높은 자리로 여겼다.[此處所言疑有誤 鄭子袖 卽鄭袖 楚懷王的夫人 右 古時以右爲尊]”라고 하였다.
역주14 位在鄭子袖之右……楚國復强 : ≪太平御覽≫과 ≪渚宮舊事≫에는 모두 없다.
역주15 北風이……돌아가리라 : ≪詩經≫ 〈邶風 北風〉에 보인다.

열녀전보주(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