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章妻女
는 漢京兆尹王
之妻及其女也
라 (仲卿)[章]爲
生
注+① 書當爲諸, 聲之誤也. 男子稱名, 婦人稱字, 上句王仲卿之妻及此句仲卿, 俱當作章. 稱字蓋失之矣.하여 學於長安
에 獨與妻居
라 疾病
에 無被
하여 卧牛衣中
注+② 漢書集注 “牛衣編亂麻爲之, 卽今俗呼爲龍具者.”하여 與妻訣
하여 泣涕
어늘
妻呵怒曰 仲卿
이여 尊貴在朝廷
注+③ 漢書尊上有京師二字, 廷下有人字, 此脫去之.이 誰愈於仲卿者
리오 今疾病困厄
하여 不自激昻
하고 乃反涕泣
하니 何鄙也
오 後章仕宦至京兆尹
이라
成帝舅大將軍王鳳秉政專權하니 章雖爲鳳所舉나 意不肯附라 會有日食之變이어늘 章上封事하여 言鳳不可任用이라
事成當上
注+① 事, 封事也, 言封事旣成, 當奏上之.에 妻止之曰 人當知足
이니 獨不念牛衣中流涕時邪
아
章曰 非女子所知
라하고 書遂上
하니 天子不忍退鳳
하고 章猶是爲鳯所陷
하여 至大逆
注+② 猶與由同. 事當作罪.하여 収繫下獄
이라
章有小女
하니 年十二
라 夜號哭曰 平日坐獄上
하여 聞呼囚
注+① 坐獄, 謂罪名所坐收禁獄中者也. 坐獄二字連讀. 漢書平下脫日字, 坐誤作生. 說者遂以平生爲先時, 殊失之也. 宜据此傳, 以證漢書之脫誤.면 數常至九
러니 今八而止
라 我君素剛
하니 先死者必我君也
라하더니
明日問之
하니 果死
라 妻子皆徙合浦
라 鳳薨後
에 成都侯王商
이 爲大將軍
하여 閔章無罪
하여 白還其妻子
하고 財産田宅
은 衆庶給之
注+② 給, 與也. 言衆庶俱冤章, 給與其財産田宅也.라
君子謂王章妻知卷舒之節
注+① 卷舒, 猶屈伸也.이로다 詩云 昊天已威
나 予慎無罪
로다하니 言王爲威虐之政
에 則無罪而遘咎也
라
왕장王章의 아내와 딸은
한漢나라
경조윤京兆尹 왕장의 아내와 그 딸이다. 왕장이
제생諸生으로
注+① ‘서書’는 응당 ‘제諸’가 되어야 하니, 독음으로 인해 잘못된 것이다. 남자男子는 이름을 일컫고 부인婦人은 자字를 일컫나니, 위 구절의 ‘왕중경지처王仲卿之妻’ 및 이 구절의 ‘중경仲卿’은 모두 응당 ‘장章’이 되어야 한다. 자字를 일컬은 것은 잘못된 듯하다. 장안長安에서 공부할 적에 아내와 단둘이 살았다. 왕장이 병이 들었는데 이불도 없어
우의牛衣 속에 누워
注+② ≪한서집주漢書集注≫에 “우의牛衣는 헝클어진 삼을 엮어 만드니, 곧 지금 항간에서 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아내와 결별하려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아내가 노하여 꾸짖기를 “
중경仲卿이여!
조정朝廷에 있는
경사京師의
존귀尊貴한 인물 중에
注+③ ≪한서漢書≫에는 ‘존尊’ 위에 ‘경사京師’ 2자가 있고, ‘정廷’ 아래에 ‘인人’자가 있는데, 여기에는 빠졌다. 누가 중경보다 낫겠습니까. 지금 병이 들고 곤액을 겪는다 해서 스스로 분발하지 않고 도리어 눈물을 흘리며 우니 어찌 그리 비루하오.”라고 하였다. 후일에 왕장의 벼슬이
경조윤京兆尹에 이르렀다.
의 외삼촌인
대장군大將軍 이
정권政權을 잡고 독단하였는데
왕장王章이 비록 왕봉의 천거를 받아 벼슬길에 올랐으나, 내심 그에게 빌붙으려 하지 않았다. 마침
일식日食의
재변災變이 일어나자 왕장이 이 기회를 타고
봉사封事를 올려 왕봉을
임용任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려 하였다.
봉사를 작성하여 막
천자天子에게 올리려 할 때에,
注+① 사事는 봉사封事이니, 봉사封事를 이미 작성하여 상주上奏하게 된 것을 말한다. 그 아내가 만류하며 말하기를 “사람은 의당 만족할 줄 알아야 하니, 어찌
우의牛衣 속에 누워 눈물 흘리며 울던 때를 생각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왕장이 말하기를 “이 일은 여자가 알 바가 아니오.”라고 하고, 봉사를 드디어 천자에게 올렸다. 천자가 차마 왕봉을 파직하지 못하고, 왕장이 오히려 이 일로 말미암아 왕봉에게 모함을 받아
대역죄大逆罪에 걸려
注+② ‘유猶’는 ‘유由’와 같다. ‘사事’는 응당 ‘죄罪’가 되어야 한다.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튿날 물어보니 과연 왕장이 죽은 것이었다. 왕장의 아내와 딸은 모두
에 유배되었다.
왕봉王鳳이 죽은 뒤에
성도후成都侯 이
注+② ‘급給’은 줌이다. 많은 사람이 모두 왕장王章이 억울하다고 여겨 그 재산財産과 전택田宅을 주었음을 말한다.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
왕장王章의 아내는 굽히고 펴는 절도를 알았다.”라고 하였다.
注+① 권서卷舒는 굽히고 폄과 같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왕이 포학한 정사를 행함에 죄 없이
재화災禍를 만남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