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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1)

열녀전보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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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啓母塗山
啓母者 塗山氏長女也注+① 【校注】 藝文類聚后妃部引下有‘曰女嬌’三字. 路史啓母后趫注云 “趫列女傳作嬌.” 蓋今本脫. 夏禹娶以爲妃 旣生啓하고 辛壬癸甲注+② 依書言, 是娶塗山甫四日而往治水也, 依此傳, 是旣生啓, 方四日而遂去也. 啓呱呱泣注+③ 【校正】 瑞辰案路史注引列女傳言“娶四日而去治水, 啓旣生, 呱呱”, 據此, 是古本‘辛․壬․癸․甲’下, 當作“禹去而治水. 啓旣生, 呱呱泣”云云, 今本誤以‘旣生啓’, 移於‘辛․壬․癸․甲’之上, 又以‘禹去而治水’, 誤移於‘啓呱呱泣’之下, 遂覺別有異說矣. 又案頌以辛․壬․癸․甲, 禹王敷土, 接於維配帝禹之下, 足證. 劉向亦謂“娶四日而往治水”, 今本實有譌脫矣. 又案路史后趫注, “趫, 列女傳作嬌”, 亦今本所無.이어늘 禹去而治水하여 惟荒度土功하고 三過其家하되 不入其門이라 塗山獨明敎訓하여 而致其化焉注+④ 言能代禹敎訓其子, 而身致其化焉.이라
及啓長하여 化其德而從其敎하여 卒致令名이라 禹爲天子하고 而啓爲嗣 持禹之功而不殞注+① 持, 循也. 殞, 墜也.이라
君子謂塗山彊於敎誨라하니라 詩云 釐爾士女注+① 毛詩作女士. 從以孫子로다하니 此之謂也
頌曰
啓母塗山
維配帝禹로다
辛壬癸甲
禹往敷土
啓呱呱泣이어늘
母獨論序
敎訓以善하여
卒繼其父로다


1-4 의 어머니
의 어머니는 도산씨塗山氏의 장녀이니,注+① 【교주校注후비부后妃部〉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이 아래에 ‘왈녀교曰女嬌’ 3자가 있다. ≪노사路史≫의 의 어머니 후교后趫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는 ≪열녀전≫에는 ‘’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금본今本에는 빠진 듯하다. 나라 가 장가들어 아내로 삼았다. 계를 낳고 나서 신일辛日임일壬日계일癸日갑일甲日注+② ≪서경書經≫에 의거하여 말하면 바로 에 의거하면 바로 이미 를 낳고 나서 4일 만에 마침내 가서 홍수洪水를 다스린 것이다. 4일을 지남에 계가 응애응애 울었다.注+③ 【교정校正마서신馬瑞辰이 상고해보건대, ≪노사路史에 ≪열녀전≫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장가든 지 4일 만에 가서 홍수를 다스렸는데, 가 이미 태어나 응애응애 울었다.[취사일이거치수娶四日而去治水 계기생啓旣生 고고呱呱]”라고 하니, 이에 의거하면 고본古本에는 ‘신임계갑辛壬癸甲’의 아래는 응당 “우거이치수禹去而治水 계기생啓旣生 고고읍呱呱泣……”이 되어야 한다. 금본今本에 잘못 ‘기생계旣生啓’를 ‘신임계갑辛壬癸甲’의 위에 옮겨놓고, 또 ‘우거이치수禹去而治水’를 잘못 ‘계고고읍啓呱呱泣’의 아래로 옮겨 놓았으니, 마침내 별도로 이설異說이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또 상고해보건대, 에 ‘신임계갑辛壬癸甲’과 ‘우왕부토禹王敷土’를 ‘유배제우維配帝禹’의 아래에 붙여 놓았으니, 증거할 만하다. 유향劉向 또한 “장가든 지 4일 만에 가서 홍수를 다스렸다.”고 하였으니, 금본今本에 실제 오자나 빠진 부분이 있을 것이다. 또 상고해보건대, ≪노사≫의 후교后趫에 대한 에 “‘’는 ≪열녀전≫에 ‘’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는데, 또한 금본今本에는 없는 바이다. 그런데도 우는 집을 떠나서 홍수洪水를 다스려 오직 토목 공사에만 전념하였고, 세 차례나 자신의 집 앞을 지나면서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았다. 도산이 홀로 가르침을 밝혀 교화를 이루었다.注+를 대신하여 그 자식을 가르쳐 몸소 그 교화를 이룸을 말한다.
가 장성하여 도산塗山의 덕행에 감화되고 도산의 가르침을 따라 마침내 아름다운 명성을 이루었다. 가 천자가 되고 계가 후사後嗣가 됨에 우의 을 받들어 실추시키지 않았다.注+는 따름이고, 은 실추함이다.
계모도산啓母塗山계모도산啓母塗山
군자가 이르기를 “도산塗山이 자식 가르침에 힘을 다하였다.”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네게 훌륭한 사녀士女를 주고,注+① ≪모시毛詩≫에는 ‘녀사女士’로 되어 있다. 훌륭한 자손을 낳게 하리로다.”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은 다음과 같다.
의 어머니 도산은
임금의 배필이 되었도다
신일辛日 임일壬日 계일癸日 갑일甲日 나흘을 겨우 지남에
계가 응애응애 울거늘
어머니 홀로 일을 감당하였도다
선함으로 가르쳐
마침내 그 아버지를 계승하였도다


역주
역주1 : 禹임금의 아들로, 禹가 죽자 帝位를 繼承하고 아울러 王號를 세우고 夏王朝를 건립하여 安邑에 도읍하였다. 이로부터 禪讓制度가 世襲制度로 바뀌었다.
역주2 塗山 : 바로 塗山氏이다. 옛 부족 이름으로, 도산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 전설에 禹가 塗山氏에게 장가들었으며, 이곳에서 제후와 크게 會盟하였다고 한다. 도산의 위치에 대해서는 일설에는 지금의 安徽省 壽縣에 있었다고 하기도 하고, 일설에는 지금의 四川省 重慶 동쪽의 眞武山이라 하기도 하고, 일설에는 지금의 浙江省 紹興 서북에 있었다고 하기도 한다.
역주3 藝文類聚 : 歐陽詢이 唐 高宗의 명을 받아 지은 辭典이다. 天, 地, 歲時, 州, 郡, 山, 水, 帝王, 后妃 등 48門에 걸쳐서 事實을 說明 考證하고 卷末에는 그에 대한 詩文을 실었다.
역주4 塗山에……것이지만 : ≪書經≫ 〈虞書 益稷〉에 禹가 말하기를 “저는 이와 같음을 징계하여 塗山氏에게 장가들어 겨우 辛日․壬日․癸日․甲日 4일을 지냈으며, 啓가 응애응애 울었으나 저는 자식으로 여겨 사랑하지 못하고 土功을 크게 헤아려 五服의 제조를 도와 이루되 5천 리에 이르게 하고 州마다 12師를 두었으며 밖으로 四海에 이르기까지 모두 五長을 세우니, 각각 나아가 공이 있게 되었습니다.[予創若時 娶于塗山 辛壬癸甲 啓呱呱而泣 予弗子 惟荒度土功 弼成五服 至于五千 州十有二師 外薄四海 咸建五長 各迪有功]”라고 하였다.
역주5 詩經에……하였으니 : ≪詩經≫ 〈大雅 旣醉〉에 보인다.
역주6 우가……분별하였도다 : ≪書經≫ 〈夏書 禹公〉에 “禹는 토지를 분별하고 산을 따라 나무를 제거하여 高山과 大川을 정해 놓았다.[禹敷土 隨山刊木 奠高山大川]”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蔡沉의 注에 “敷는 분별이니, 토지를 분별하여 九州를 만든 것이다. 奠은 정함이니 高山과 大川을 정하여 州의 경계를 구분한 것이다.[敷 分也 分別土地 以爲九州也 奠 定也 定高山大川 以別州境也]”라고 하였다.

열녀전보주(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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