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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1)

열녀전보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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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楚莊樊姬
樊姬 楚莊王之夫人也注+① 文選注引樊姬上有楚莊王三字. 彼衍王字, 此脫楚莊二字. 莊王卽位注+② 【校注】 文選注卽位上有初字. 好狩獵注+③ 文選注引獵下有畢弋二字.이라 樊姬諫不止한대 乃不食禽獸之肉하니 王改過注+④ 文選注引王上有三年二字, 改下無過字.하여 勤於政事러라
王嘗聽朝罷晏이어늘 姬下殿注+① 古人所居, 通謂之殿.迎曰 何罷晏也 得無倦乎注+② 【校正】 頤煊案飢倦當作𠙆倦, 漢書司馬相如傳“窮極倦𠙆”, 郭璞曰 “疲憊也.” 又曰 “𠙆, 疲極.” 此與下文俱作飢倦者, 淺人所改. 王曰 與賢者語하니 不知(飢)[𠙆]倦也로라
姬曰 王之所謂賢者何也注+③ 文選注引賢者下有諸侯之客與將國中士也十字, 而無何也二字. 曰 虞子也注+④ 【校注】 韓詩外傳作沈令尹.
姬掩口而笑어늘 王曰 姬之所笑何也 曰虞邱子賢則賢矣어니와 未忠也니이다
王曰 何謂也 對曰 妾執巾櫛注+⑤ 巾以拂拭, 櫛以理髮. 文選注引作妾幸得充後宮. 自此以下文字, 詳略互異, 而大意則同.十一年이로되 遣人之鄭衛하여 求美人하여 進於王注+⑥ 【集注】 史記 “莊王左抱鄭姬, 右抱越女.” 琴操 “莊王愛幸樊姬, 不敢專席, 飾眾妾使更侍王.”하니 今賢於妾者二人이요 同列者七人이라
妾豈不欲擅王之愛寵哉注+⑦ 【集注】 琴操作妾非不欲專貴擅愛也.리오마는 妾聞堂上兼女注+⑧ 兼字疑誤.注+⑨ 【集注】 王云 “兼字疑誤.” 道管案卽兼味․兼人之兼. 所以觀人能也라하니 妾不能以私蔽公하여 欲王多見하여 知人能也
今虞邱子相楚十餘年注+⑩ 【集注】 新序作數十年. 所薦非子注+⑪ 弟字與下句重複, 文選注引弟作孫是也.이면 則族昆弟 未聞進賢退不肖하니 是蔽君而塞賢路
知賢不進이면 是不忠이요 不知其賢이면 是不智也 妾之所笑 不亦可乎 王悅이라
明日 王以姬言告虞邱子한대 邱子避席하고 不知所對 於是避舍注+① 舍, 所居也. 欲辭相位, 故避之.하고 使人迎孫叔敖而進之하니 王以爲令尹注+② 【集注】 史記 “孫叔敖者, 楚之處士也. 虞丘相進之於楚莊王, 以自代也, 三月爲楚相.” 說苑同.하여 治楚三年 而莊王以霸이라
楚史書曰 莊王之霸 樊姬之力也라하니라 詩曰 大夫夙退하여 無使君勞라하니 其君者 謂女君也 又曰 溫恭朝夕하여 執事有恪이라하니 此之謂也
頌曰
樊姬謙讓하여
靡有嫉妬로다
薦進美人하여
與己同處로다
非刺虞邱
蔽賢之路로다
楚莊用焉하여
功業遂伯注+① 伯與覇古字通, 與處․路韻.로다


2-5 장왕莊王58)의 부인 번희樊姬
번희樊姬 장왕莊王부인夫人이다.注+① ≪문선文選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번희樊姬 위에 ‘초장왕楚莊王’이라는 3자가 있다. ≪문선≫에는 ‘’자가 연자衍字이고, 이 에는 ‘초장楚莊’ 2자가 빠졌다. 장왕이 즉위한 후에注+② 【교주校注】 ≪문선≫ 에는 ‘즉위卽位’ 위에 ‘’자가 있다. 사냥하는 것을 좋아하였다.注+③ ≪문선≫ 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 아래에 ‘필익畢弋’ 2자가 있다. 번희가 간하였는데도 그치지 않자, 이에 금수禽獸의 고기를 먹지 않았다. 장왕이 허물을 고쳐注+④ ≪문선≫ 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 위에 ‘삼년三年’이라는 2자가 있고 ‘’ 아래에는 ‘’자가 없다. 정사를 부지런히 하였다.
이 일찍이 조정에 나가 정무를 보다가 늦게 파하였는데 번희樊姬殿에서 내려와注+고인古人이 거처하는 곳을 통틀어 殿이라고 일컬었다. 맞이하여 말하기를 “어찌 이리 늦게 파하였습니까? 피곤하지 않으십니까?”注+② 【교정校正이 상고해보건대, ‘기권飢倦’은 응당 ‘극권𠙆倦’이 되어야 하니, ≪한서漢書≫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에 “극도로 피곤하다.”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곽박郭璞에 말하기를 “피곤함이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𠙆은 극도로 피곤함이다.”라고 하였다. 이곳과 하문下文에 모두 ‘기권飢倦’으로 되어 있는 것은 식견이 얕은 사람이 고친 것이다.라고 하니, 이 말하기를 “현자賢者와 더불어 얘기를 나누다 보니 피곤한 줄을 몰랐소.”라고 하였다.
번희가 말하기를 “께서 이른바 현자란 누구입니까?”注+③ ≪문선文選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현자賢者’ 아래에 ‘제후의 빈객입니까? 아니면 국중國中의 선비입니까?’라는 10자가 있고, ‘하야何也’ 2자는 없다.라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우구자虞邱子란 사람이오.”注+④ 【교주校注】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심영윤沈令尹’으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번희가 입을 가리고 웃자, 왕이 말하기를 “그대가 웃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라고 하니, 번희가 말하기를 “우구자는 현명하다면 현명하거니와 충성스럽지는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무엇을 뜻하는 말이오?”라고 하니, 번희가 대답하기를 “이 왕을 모신 지注+⑤ 천으로 먼지를 닦고 빗으로 머리를 빗는다. ≪문선≫ 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첩이 다행히 후궁에 충원되었다.’로 되어 있다. 이로부터 이하의 문자는 상세함과 소략함이 서로 다르나 대의大意는 같다. 11년이 되었는데 사람을 보내 나라와 나라에 가서 미인美人을 구하여 왕께 추천하였습니다.注+⑥ 【집주集注】 ≪사기史記≫에 “장왕莊王이 왼쪽에 정희鄭姬를 안고, 오른쪽에 월녀越女를 안았다.”라고 하였고, 에 “장왕莊王번희樊姬를 사랑하였으나 감히 자리를 독차지하지 않고 여러 을 단장하여 하여금 다시 왕을 모시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지금 첩보다 나은 자가 두 사람이고, 첩과 동렬同列에 있는 자가 일곱 사람입니다.
첩이 어찌 왕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싶지 않겠습니까마는,注+⑦ 【집주集注】 ≪금조≫에는 로 되어 있다. 첩이 들으니 위에 여자를 여럿 두는 것은注+⑧ ‘’자는 오자인 듯하다.注+⑨ 【집주集注왕안인王安人이 이르기를 “ 자는 오자인 듯하다.”라고 하였다. 내(소도관蕭道管)가 상고해보건대, 바로 겸미兼味겸인兼人이라고 할 때의 의 뜻이다. 사람의 재능을 살피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첩이 사심私心으로 공의公義를 가릴 수 없어서 왕께서 많은 후비를 살펴보아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구자가 나라의 재상이 된 지 10여 년 동안에注+⑩ 【집주集注】 ≪신서新序≫에는 ‘수십년數十年’으로 되어 있다. 천거한 자가 자손子孫이 아니면注+⑪ ‘’자는 아래 구절과 중복되니, ≪문선≫ 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 ‘’가 ‘’으로 되어 있는 것이 옳다. 동족同族 형제였고, 현자를 추천하고 불초不肖한 자를 물리쳤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는 임금의 눈을 가리고 현자의 길을 막는 것입니다.
현자를 알고도 추천하지 않는다면 이는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요, 현자를 알지 못하였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첩이 웃는 것이 또한 당연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였다.
이튿날 번희樊姬의 말을 우구자虞邱子에게 전하자, 우구자가 자리를 피하고 대답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우구자가 이에 재상의 직위를 피하고注+는 거처하는 곳이다. 재상의 직위를 사양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피한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를 맞이하여 천거하게 하니, 왕이 손숙오를 으로 삼아注+② 【집주集注】 ≪사기史記≫에 “손숙오라는 자는 나라의 처사處士이다. 우구자가 장왕莊王에게 재상으로 추천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였는데 3달 만에 나라의 재상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에도 같다. 나라를 다스린 지 3년 만에 장왕莊王패업覇業을 이루었다.
나라 사서史書에 말하기를 “장왕莊王패업霸業을 이룬 것은 번희의 힘이다.”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라고 하였으니, 군주라는 것은 여군女君을 이른다. 또 말하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은 다음과 같다.
번희樊姬는 겸손하고 사양하여
질투하는 마음 없었도다
미인美人들을 천거하여
자신과 함께 거처하였도다
우구자虞邱子를 풍자하여
현자의 진로를 막는다 하였도다
나라 장왕莊王이 이 말을 받아들여
공업功業을 세워 마침내 패업을 이루었도다注+① ‘’는 ‘’와 고자古字에 통용하였고, ‘’․‘’와 운자韻字이다.


역주
역주1 楚 莊王 : 春秋五覇의 하나로, 荊莊王이라고도 일컫는다. 羋(미)姓이고 이름은 旅이다. ‘旅’는 ‘呂’ 또는 ‘侶’로도 쓴다. B.C. 597년 晉나라와 벌인 邲 땅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中原의 패자가 되었으며, 春秋五覇 가운데 유일하게 王이라는 칭호를 썼다.
역주2 洪頤煊 : 1765~1833. 淸나라 臨海 사람으로, 자는 筠軒, 호는 卷舫老人이다. 孫星衍의 문인으로 經史를 정밀하게 연구하였다.
역주3 琴操 : 漢나라 때 蔡邕이 撰한 책으로,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주4 妾이……않았다 : ≪琴操≫에는 이 앞에 ‘妾幸得侍王’이 더 있다.
역주5 (飢)[𠙆] : 저본에는 ‘飢’로 되어 있으나, 洪頤煊의 校正에 의거하여 ‘𠙆’으로 바로잡았다. 이하도 같다.
역주6 : ≪列女傳校注≫와 ≪列女傳集注≫에는 모두 ‘丘’로 되어 있다. 이하도 같다.
역주7 (弟)[孫] : 저본에는 ‘弟’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孫’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 孫叔敖 : 春秋時代 楚나라 재상으로, 羋(미)姓 蔿氏이고 이름이 敖, 자가 孫叔이다. 莊王을 도와 霸業을 이루었으나, 천성이 매우 청렴하였으므로 그가 죽은 뒤 妻子가 땔나무를 팔아 생활할 정도로 가난하였다.
역주9 令尹 : 楚나라의 관직명으로, 재상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역주10 說苑 : 漢나라 劉向이 지은 책으로, 春秋時代부터 漢初까지의 여러 학자들의 傳記와 逸事 등을 모았다. 2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주11 大夫들은……하였다 : ≪詩經≫ 〈衛風 碩人〉에 보인다.
역주12 아침저녁으로……하니라 : ≪詩經≫ 〈商頌 那〉에 보인다.

열녀전보주(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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